너는 참, 같은 말을 해도
 
지은이 : 임영균
출판사 : 마인드빌딩
출판일 : 2021년 02월




  • 듣는 사람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화법은 따로 있지 않다. 단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말 잘한다는 것 역시 별거 없다는 말이 된다. 그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핵심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현명하게 말하는 것만큼이나 따뜻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나름의 경험을 통해 짜증이 조금은 덜 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상대방이 최대한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들으면서 기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의 ‘듣는 사람을 위한 말하기 기술’을 소개한다. 그 기술들을 하나둘 보다 보면 당신은 이러한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말 잘한다는 게, 생각보다 별거 없구나.’



    너는 참, 같은 말을 해도


    설명의 언어

    돼지찌개 실종 사건

    친구는 전국을 누비며 취업 준비생들을 만나 면접 컨설팅을 진행한다. 그 덕에 나는 지방에 강의를 하러 갈 때마다 먹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에게 어느 지역에 있다는 말만 하면, 아침 식사부터 점심 저녁, 술 한잔 할 수 있는 식당까지 한 페이지가 넘는 카톡을 보내온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그런 그에게도 전국 최애 맛집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전라도 광주에 있는 ‘엄마네 돼지찌개’ 식당이다. 친구 따라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맛은 있지만 맵기가 하늘을 찔러서 두 번 다시 못 올 곳이다 싶었다. 하지만 매운 음식 마니아인 친구는 광주에만 가면 어떻게든 그곳에 들러 그 찌개를 먹고, 그것도 모자라 2인분은 꼭 포장해서 간다. 맛있는 음식 앞에 검은 봉다리를 들고 KTX에 탑승하는 부끄러움 정도는 그냥 넣어둔다. 그 정도로 엄마네 돼지찌개에 대한 그의 사랑은 대단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단단히 화가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들어보니 충분히 화날 만한 일이었다. 일명 ‘돼지찌개 실종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아내와 함께 밥을 먹던 친구는 흰쌀밥에 돼지찌개를 쓱싹쓱싹 비비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찌개 진짜 맛있지? 더 먹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이거 한 숟가락만 먹고 치워야겠다.”


    그렇게 집을 나선 친구는 퇴근 후에, 남은 돼지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하기 위해 찌개를 찾았다고 한다. 허나 웬걸, 돼지찌개가 보이지 않는다. 친구의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찌개만 생각하면서 버틴 빡센 하루였다. 불똥은 애먼 아내에게 튄다.


    “여보, 돼지찌개 못 봤어? 내 사랑 돼지찌개가 어디로 숨은 걸까? 어서 모습을 드러내렴?”

    “그거? 아침에 여보가 먹고 치운다고 해서 버렸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친구는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치워야겠다”라는 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내 친구는 ‘일단은 치워 놨다가 나중에 또 먹어야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고, 친구의 아내는 그걸 ‘남은 찌개는 버려야겠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그렇게 돼지찌개 실종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며 아내의 뒷담화를 실컷 한 친구는,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이제 내가 끼어들 타이밍이다.


    “너는 스피치 강의한다는 놈이 말의 기본도 모르냐? 말에는 오해가 없어야 할 거 아냐.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라도 오해하지, 네 아내가 뭔 잘못이냐? 정확하게 말했어야지.”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한 말을, 상대방도 똑같이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어느 정도 ‘지식의 저주’와도 연관되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한 것과 동일하게 내 말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내가 어떻게 전달했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했느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없이 명확하게 이야기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 안에서 모든 걸 해석하고 판단한다. 관심사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니 같은 단어를 시용한다고 해서 듣는 사람이 내 마음과 같이, 내가 의도한 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뭔가를 설명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음을 전제해서,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추상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생략해서 말하거나,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표현(‘최대한’, ‘빨리’, ‘정말’ 등)을 많이 사용하면 그 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쉽지 않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친구 아내는 가사를 담당하는 자신의 입장에서 친구의 말을 판단해, 당연히 남은 음식물을 버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만약 친구가, “이거 한 숟가락만 먹고 그만 먹어야겠다. 아껴뒀다가 저녁에 다시 먹을 거니까 치우지 마.”라고 조금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달했다면,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돼지찌개의 결말을 알고 힘없이 주저앉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횡설수설 방지턱

    친구와 함께 지방 출장을 가면, 숙소 예약은 보통 친구가 담당한다. 하룻밤 정도야 아무 데서나 잘 자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숙소에 꽤나 민감하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리뷰를 살펴보고 침구류, 화장실, 소음, 주변 식당 등 많은 것을 체크한 후에 결정한다. 오늘도 친구가 숙소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말을 걸어온다.


    “야,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너, 출장 가거나 그럴 때 잠자리에 민감한 편이냐?”

    “그렇게 민감하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신경이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니지.”

    “아니, 그게 아니라…… 호텔 방에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문제? 무슨 문제?”

    “아니, 전주국제영화제랑 일정이 겹쳐서 숙소 잡기가 쉽지 않네. 웬만한 호텔은 다 만실이야. 지난번 갔던 관광호텔도 벌써 다 찼고.”

    “그러냐? 그럼 어쩌지?”

    “전주 말고 완주나 다른 지역으로 알아봐야 하나?”

    “완주까지? 아니 뭐, 전주에 방이 한 군데도 없다는 거야 지금?”

    “아니, OO호텔에 예약하긴 했는데, 온돌방밖에 없다고 해서 그냥 그걸로 했어. 너 괜찮겠냐?”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든가, 왜 빙빙 돌려서 말해.”


    물론 나를 생각하며 고민해준 친구의 마음은 고맙지만, 하늘 말을 듣고 보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정보, 내가 듣고 싶은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머지를 말해도 충분한데, 친구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순서 없이 꺼내가며 짜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너,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꼭 그렇게 두서없이 말하더라.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 방 온돌방으로 예약했다고 결론부터 말해. 그럼 듣는 내가 편하잖아. 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나 근거는 그다음에 얘길 해. 그게 듣는 사람을 위한 말하기 방식이야. 한마디로 ‘PREP’ 방식으로 이야기하라고.”


    “PREP? 그게 뭔데?”


    Point: 핵심 메시지(결론) 말하기

    Reason: 핵심 메시지에 대한 이유 및 근거 제시

    Example: 이유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사례 제시

    Point: 다시 한번 핵심 메시지를 반복 및 강조


    “쉽게 말해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한 다음에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뒷받침하고, 다시 한번 결론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야.”


    PREP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활용하던 인류 최고의 설명법으로, 결론을 먼저 말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통 장황하게 말하거나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말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배경이나 근거에 의해서, 이런저런 사고 과정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고, 그 순서 그대로를 상대방에게 말한다. 이걸 정확히 뒤집어 말하는 방식이 바로 PREP 기법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었네. 곧 비가 오겠군. 그러니까 너 우산 가지고 나가”라는 말을 PREP으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말의 순서가 정확히 뒤집혀 있다.


    “우산 가지고 나서. (결론) 곧 비 올거야. (이유) 하늘 보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거든. (객관적 근거)”


    이렇게 결론부터 말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는 것으로 듣는 사람의 관심을 잡아둘 것이다. 둘째, 궁금한 것을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대화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 비추어봐도 훨씬 효과적이다. 뇌는 이미 유입된 정보와 연관시켜 이후에 유입되는 정보들을 처리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자동적으로 결론과 연관되어 해석되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을 말한 후에는 이유와 근거를 들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유’와 ‘근거’는 모두 결론을 뒷받침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지만, 사실 두 단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유: 결론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생각 (추론적인 측면)

    근거: 결론에 대한 실질적인 배경 (사실적인 측면)


    이유만 제시해서 이해되는 상황도 있지만, 보다 확실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실적인 정보로서의 근거나 사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통계, 데이터, 사례, 기사, 법적, 기술적 내용, 관찰된 사실, 실제 경험 등이 근거에 해당되며, 이 밖에도 상대방에게 사실로 인식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전부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PREP의 마지막 단계는 다시 한번 결론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수미쌍관 방식으로,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결론’으로 감싸는 방식이다. 결론을 강조해주는 것은 ‘최신 효과’와 관련이 있다. 사람은 마지막에 들은 정보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결론을 가장 마지막에 또 한 번 강조함으로써, 상대방의 머릿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강력하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가 끝날 때쯤, 친구의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온다. 책가방을 풀기도 전에 아빠를 찾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 밥 줘. 배고파. 오늘 아침 10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 라면이랑 김밥 해줘.”


    ‘와, 얘는 유치원에서 PREP을 배운 애인가? 아빠보다 낫네.’ 감탄하기 무섭게 식사를 준비하는 친구를 보며, ‘PREP이 효과가 있긴 있네’ 싶었다.



    설득의 언어

    문제가 뭔데

    친구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들어가자마자 360도 스캔에 들어갔다. 딱 봐도 정리정돈이 안 된 집이다. 그중 압권은 방 두 개 중 한 개를 창고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단히 여유가 있는 녀석이거나, 혹은 도대체 정리정돈이라고는 모르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창고로 들어가 본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물건들도 섞여 있다.


    “이건 다 뭐냐. 사고 뜯지도 않았어?”

    “그거 홈쇼핑에서 산 건데, 막상 사고 보니 쓸 일이 없더라. 왜 샀는지 모르겠어.”


    그렇다. 친구는 홈쇼핑 중독자다. 홈쇼핑에서 하는 물건은 일단 사고 본다. 필요해서 사는 것도 있지만, 쇼호스트의 화려한 언변에 넘어가서 사는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방문한 이날도 친구는 어김없이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구매 버튼에 손을 대려고 한다. 재빨리 친구의 손가락을 꺾어 막아 세운다.


    “스톱. 저걸 왜 사. 너한테 필요 없어.”

    “그러냐? 근데…… 왠지 저 사람들이 말하면 사고 싶어져……”

    “그게 저 사람들 기술이고 무기야. 되게 설득력 있지? 근데 있잖아, 너도 저렇게 말할 수 있어.”


    친구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진다. 구매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먼저 저 사람들이 얘기하는 방식을 예로 들어줄게. 일단 트렌치코트를 파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이 첫 멘트를 어떻게 하는 줄 아냐? ‘우리 트렌치코트는 브랜드가 어떻고, 소재가 어떻고, 스타일이 어떻고’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말하는데?”

    “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외출할 일 많으시죠? 기분 좋게 나가려고 옷장을 열었는데, 어떠세요? 입을 옷 없으시죠? 옷은 많은데 딱히 입을 게 없어요. 바로 지금이 이 트렌치코트를 장만할 때입니다.” 이렇게 말해.”


    전혀 감이 안 오는 눈치다. 친구의 홈쇼핑 중독 처방을 위해 예를 몇 가지 더 들어본다.


    “프라이팬 파는 사람은 이렇게 시작해. 오랜만에 좋은 생선을 사 와서 생선 좀 구우려고 하는데, 생선 구울 때 어떠세요. 꼭 눌어붙으시죠? 소중한 생선살 절반이 날아갑니다. 그럴 땐 이중으로 코팅된 저희 프라이팬 한번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눌어붙을 일이 없습니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이제 좀 눈치를 챘나 보다.


    “아, 일단 고객이 겪고 있을 만한 문제를 짚어주고, 그걸 해결해준다는 방식으로 말한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홀랑 넘어가는 거구나.”


    아무리 좋은 제품일지라도 그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듣는 사람 귀에 들어오지가 않고, ‘그건 네 얘기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너한테 아마 이런 문제가 있을 거야. 그걸 내가 이런 걸로 해결해줄게.”


    반면, 위와 같이 ‘문제 -> 해결책’의 순서로 말을 풀어내는 방식은 상대방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조금 더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게다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15초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광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잇몸약 ‘인사돌’ 광고를 생각해보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꼭 주인공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잇몸을 부여잡으며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등장하는 광고 카피는 다음과 같다.


    “잇몸이 튼튼해야 맛있게 먹죠. 꼭꼭 씹는 행복, 인사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유를 집어내 관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 이런 게 좀 문제지 않아?”

    “요즘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있대.”


    누군가의 말이 유독 설득력 있게 들린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기 바란다. 아무 얘기나 먼저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부터 제시하는 말하기 방식이 눈에 띌 것이다. ‘What’이 아닌 ‘Why’부터 시작하는 것과 해결책이 아닌 문제부터 시작하는 것. 설득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배려의 언어

    해주긴 뭘 해줘

    친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세미나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친구의 기분이 좋지 않다. 집에서 아내와 싸우고 나온 탓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여느 부부싸움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사소한 것이었다. 어제저녁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었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 분리수거는 내가 해줄게.”


    ‘이 말이 뭐가 잘못됐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이어질 친구 아내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너는 집안일이 자기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하지? 그러니까 ‘해줄게’라고 말하지. ‘해줄게’가 아니라 ‘할게’가 맞는 말 아니야? 집안일에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어?”


    물론 친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단순히 아내를 돕고 싶은 마음에 “해줄게”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아마 분리수거는 자기 일이 아닌데, 선심 쓰듯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할게”든 “해줄게”든 무슨 차이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해주다’는 ‘하다’와는 다르게, 베푸는 차원에서 상대를 위해 뭔가를 수고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다’에 붙은 ‘주다’라는 보조 용언이 남을 위해, 남이 원하니까 행동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안일이 마치 아내의 일인 양 “해줄게”라고 한 친구의 말은, 친구 아내 입장에서 충분히 기분 상할 만한 말이었다.


    한편, 친구는 실제로 마음속에서 ‘분리수거는 내 일이 아닌데 대신해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내뱉는 한마디 말에는 알게 모르게 내 생각과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사소한 말 습관 하나에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생각과 가치관이 담기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말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생각을 지배해,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워프라는 학자가 주장한 ‘워피안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우리의 인식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만, 반대로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해진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듣는 사람, 말하는 사람 모두를 이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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