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마법
 
지은이 : 김승 외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1년 07월




  • 서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저자의 서재를 통해 알 수 있다. 20년간 치열하게 책을 읽으며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고 그것을 이루어온 과정은 평범한 사람이 따라 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목적에 맞는 서재를 스스로 꾸미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재의 모습도 그에 따라 변화해간다. 크고 화려한 서재가 아닌 자신에게 맞는 서재가 멋진 서재이며 그래야 인생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 


    서재의 마법


    서재는 회복 그루터기

    베일을 벗은 베이스캠프 서재

    서재는 파주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책장대열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코끝으로 삼나무 향기가 강하게 밀려온다. 바닥과 벽의 자재, 그리고 모든 책장이 삼나무이다. 이곳이 바로 P의 베이스캠프 서재이다. 미란은 P의 인사를 받고 서재로 들어섰다. 그는 미란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미란은 차를 들고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듯 걷기 시작했다. 책장 이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얼핏 보아 6개 정도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구석 쪽의 방에 들어선 미란은 한 책장 앞에서 멈춰 섰다. 책장 하단에는 ‘지식 수첩’이라고 마킹이 되어 있다. 그 속에는 많은 수첩이 꽂혀 있었는데 이는 미란이 7년 전 선물로 받았던 그 수첩과 같은 것들이었다. 미란은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수첩을 펴 들고 메모를 시작했다.


    바로 여기가 미란이 정말 궁금해 했던 P의 베이스캠프이다. 많은 지식세대는 자기만의 베이스캠프인 ‘꿈의 서재’를 갖고 싶어 한다. 지식세대는 누구를 말하는가. 나이로는 20대 이상의 모든 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식세대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지식시대’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는 대학생들, 가정과 직장 사이에 끼어 성장과 성숙을 담보 잡힌 채 다람쥐처럼 달리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그리고 가장 앞서서 지식을 만나고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고 있는 수많은 교육 전문가…….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지식과 만날 수 있는 자신만의 베이스캠프이다. P 역시 오랜 시간 베이스캠프를 꿈꾸며 책을 읽고, 읽은 책을 소중히 간직하며 꿈을 축적해 왔다.


    미란은 지금 그 장소에 서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의미로 채울 줄 아는 이들은 자기만의 서재를 가지고 있다. 꼭 서재가 아니어도 보물상자를 숨긴 장소라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쉼과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P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자신만의 장소가 늘 있었다. 그는 영화를 보며 로망을 키웠다.


    미란은 그와 편안하게 대화하면서 서재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샘. 디테일한 부분은 다음 인터뷰에 하고, 오늘은 좀 편안한 마음으로 서재를 구경해도 될까요?”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꼭꼭 숨겨둔 저의 부끄러운 서재를 공개하는 인터뷰이기에 다소 설레고 조급한 마음이 있지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은 없습니다.”


    지식의 목적은 ‘사람’이다

    “혹시 이 서재의 이름이 있나요?” “그냥 서재입니다. 가족이 그렇게 불러요.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원래 그곳에도 서재가 있었어요. 아내와 아이들이 그곳을 서재라고 불렀습니다.” “가족이 서재를 인정해 주었군요. 자녀들이 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재를 특별한 곳으로 인정해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가족의 지지가 필수군요.”


    P는 서재를 드나들 때마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우며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격려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P에게도 결코 피할 수 없는 부분이 불규칙한 수입과 경제적 불안함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먼저 눈치를 채고 P가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폴샘. 이 서재에 혹 어떤 콘셉트가 있나요?” “콘셉트라기보다는 모토가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오래 독서치료 전문가 과정을 거칠 때 배운 모토입니다. 그때 이후 제 서재의 모토가 되었죠.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은 나라를 살리는 길입니다. 책을 쓰면 수만 명의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제가 지식을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인류역사 천 년을 바꾼 20세기 인물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영향력의 사이즈를 측정하여 나름의 순위를 정한 것이죠. 히스토리채널에서 만든 영상입니다. 저는 10년 전 이 자료를 보고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간단하게 한 명씩 자료화하고 분석하였습니다.”


    한참을 보여주다가 P는 목록에서 세 명의 인물에 표시를 하였다. 아돌프 히틀러, 나폴레옹, 마오쩌둥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대다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폴레옹, 마오쩌둥, 히틀러는 위대한 독서가들이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책을 읽는 것을 강조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며, 책을 잘 선별하여 읽는 사람들에게는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목적이 선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인생의 베이스캠프

    어떤 지식을 다루더라도 항상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 초점, 흐름, 관계, 연결 그리고 마지막 엔딩까지의 과정이 늘 선명하다. 지식전문가들은 근본에 집착한다. 근본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들은 지식의 바다에서 자유로워진다.


    “산 정상에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은 독서를 통한 감격과 울림이겠죠. 이를 흔히 ‘동기부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던 감격이 책을 덮고 일어서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은 마치 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정상에서의 호연지기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정상과 세상, 이상과 현실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베이스캠프’라는 사실입니다. 베이스캠프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리(Bright)가 사라진 셈입니다. 지식전달자의 베이스캠프는 서재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베이스캠프는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미란 선생이 한번 의미를 소개해 주실래요. 인생의 베이스캠프는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의 의미는 베이스캠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베이스캠프는 일반용어가 아니라 등산용어죠. 대개 큰 산을 등반하려면 극지법을 활용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등반 기간이 길어 식량 등 많은 짐을 쌓아두고 자주 옮겨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대원들이 자주 또는 가끔 오래 머물러야 하는 근거지가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베이스캠프가 선정되는 곳은 바닥이 평탄하고 식수를 구하기 쉬운 곳이어야 하는 게 조건입니다.”



    서재는 역사의 궤적

    독서기록의 시작

    P는 화면에 대학 때부터 읽은 자신의 책이 어떻게 지금의 서재 모습으로 바뀌어 왔는지 그 과정을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방에 책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르니 읽은 책이 무엇인지, 읽었던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의 벽을 책장으로 두르고 책을 거기에 꽂기 시작하였다. 책이 가로로 쌓이지 않고, 세로로 꽂혀 있으니 책 찾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렇게 책이 쌓이는 과정에 P는 대학을 졸업하고 강의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읽었던 책에서 강의내용을 찾고 글쓰기의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너무 여기저기 책들이 마구 꽂혀 있어서 책을 활용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결국 책을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이렇게 변화를 거듭하던 서재는 현재 공간별로 주제별로 분류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P는 독서의 습관과 그것이 만들어낸 서재의 변천사를 보여주었다. 하루 한 권의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해 제목, 저자, 날짜, 추천대상, 대상 특성, 연관도서 등 최소한의 정보를 간단히 입력한다. 이렇게 하루에 한 권 읽기와 한 줄 기록을 습관화하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P의 서재에는 그러한 내용이 축적된 바인더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그러게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 주는 일도 많아졌다. 고민하는 후배가 있으면 그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P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때부터 직업과 별개로 대학생들을 멘토링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일종의 사회적 공헌이자 ‘지식나눔’이었다. “저는 한 명의 대학생을 최소 4년 이상을 멘토링하였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교수님들이 일대일 사사(師事) 관계로 묶이는 멘토링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 사람을 돕되, 그 사람이 겪는 수많은 과정적 어려움마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연속적인 하루가 만든 결과

    P는 자신의 태블릿을 들고 와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림사의 훈련 장면이 담긴 사진들이다. 중력을 거스르며 벽을 뛰어가는 모습, 높은 나무와 담장을 넘는 모습, 특이한 동작으로 서 있는 모습 등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이 높은 나무를 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훈련을 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훈련을 했을까요?”


    P는 영상을 하나 더 보여주었다. 70년대에 나온 소림사의 훈련과정을 다룬 영상이었다. 영상은 어린아이가 숙소 앞에 나무를 심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나무를 한 번 뛰어넘는다. 중요한 것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나무를 매일 넘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소년은 성장하고 나무도 성장한다. 소년은 그저 매일 나무를 뛰어넘는다. 나무는 너무 작아 뛰어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오늘 뛰어넘는 것은 어제 넘던 그 나무와 똑같다. 내가 오늘 뛰어 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렇게 소년은 10년을 뛰어넘었다. 엄격한 소림사의 규율을 따라야 하기에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영상은 10년 뒤, 성장한 소년이 매우 높은 곳을 뛰어넘는 장면을 보여준다. 10년 뒤에 소년은 2미터의 나무를 넘는다. 그에게 있어 그 나무는 어제 넘던 그 나무일뿐이다. 영상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준다. 반복적인 삶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모두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P는 현재의 베이스캠프가 오랜 시간의 작은 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반복의 결과임을, 그리고 성실한 하루가 만들어낸 역사임을 조용히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었다.



    서재는 본질과 변화를 잇는 다리

    본질은 변화로 가는 튼튼한 다리

    책마다 특성의 차이가 있기에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P가 어떤 독서를 하든, 예외 없이 ‘적용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책인 문화, 역사, 철학서를 읽어도 그는 적용점을 찾는다. 적용점이 추상적일지라도 꼭 찾는다. 여기서의 적용점은 변화지향적인 실천포인트를 말하는 것이다. 즉 P가 본질적인 독서에서 변화로 가는 다리를 놓는 작업은 철저히 적용과 실천할 점을 찾는 것이다.


    P는 라이브러리의 저자별 코너에서 데이비드 허친스의 작품 중 『레밍딜레마』라는 작품을 꺼냈다. 매우 얇은 책이다. 미란에게 세 장의 삽화를 순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삽화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었다.


    북쪽 마을에 ‘점프하는 쥐’라는 별명을 가진 쥐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절벽 끝에서 멋지게 점프하며 떨어지는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점프를 하지만, ‘에미’라는 쥐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떨어지지? 그리고 왜 점프를 한 뒤에는 다시 안 돌아오지?’라고 말입니다. 에미는 밤마다 절벽 끝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혹시 그곳에 새로운 세상이 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미란 선생,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오랜 관성이요. 하던 일을 계속 하되, 그 의미도 진실도 모르는 채 따라가는 무리가 인상적이에요.” “또 어떤 것을 찾으셨나요?” “에미는 관성에 묶이지 않으려 했어요. 의문을 품었어요.”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에미가 그때 꺼낸 질문을 ‘Why'라고 하죠. 그럼 에미가 품었을 만한 질문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Where, 절벽 아래 어디로 가는 것일까? Who, 저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나는 누구일까? How, 어떻게 하면 저 건너편으로 갈 수 있을까?”


    P는 표 하나를 그려 미란의 답변 내용을 깔끔하게 표 안에 넣었다. 순식간에 그럴 듯하게 제목까지 붙였다. 그런데 한 줄은 비워 놓았다. “한 가지 빼 먹은 위대한 질문이 있어요. 생각해 볼래요?” “찾았어요. If, 만약 건너간다면 저 건너편은 어떤 곳일까?” “빙고!” 이것이 바로 P가 말하는 질문을 도출하는 방법론이다. 변화로 가는 다리에 진입하는 작은 진입로이다.


    이렇게 질문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면 근본적인 변화의 적용점을 만들어내는 통찰을 얻는다. “미란 선생, 변화를 위한 적용점에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를 모르고 하던 것을 멈추는 것도 아름다운 변화의 일부라는 것 아시죠?”


    미래학자는 현재의 신문을 본다

    ‘툭!’ 아파트 문 앞의 바닥을 치는 가벼운 소리가 들린다. 시계는 새벽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일곱 개의 신문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서재와 함께 했던 20년의 시간 동안 매일 아침 P의 일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는 신문을 가지고 들어와 하루의 첫 일과를 시작한다. 신문을 모두 읽고,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미란이 서재를 찾았다.


    “신문읽기가 책을 선정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어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습관이라는 얘기인가요?” “책을 선정하는 것은 단순히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책 선정은 시대변화 그리고 자신의 생애변화를 읽어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가장 본질적인 습관을 통해 시대흐름을 읽고 변화를 주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P의 신문 사랑은 20년 된 습관이었다. 그가 신문을 읽는 방식은 ‘읽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하다. 그냥 신문을 본다. 신문에 대해서 그는 ‘읽기’라고 하지 않고 종종 ‘보기’라고 표현한다. 만약 신문 7종을 제대로 읽으려면 오전 6시간을 다 써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정해 둔다. 1시간 정도가 신문보기의 마감시간이다.


    1단계는 훑기(Preview)단계이다. 정말 빠른 속도로 제목만 보며 넘어간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읽어야 할 내용을 결정한다. 2단계는 선정(Select)단계이다. 훑기와 선정단계는 동시에 진행된다. 3단계는 편집(Edit)단계이다. 빠른 속도로 넘기면서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일단 서재에서 이루어지는 신문보기의 전체 단계이다.


    P는 자신의 신문 보기 역사와 신문 보기 단계를 미란에게 설명해 주었다. 매일 아침 50개 정도의 새로운 기사파일을 스마트폰에 탑재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삶은 일주일만 지나면 300개 이상의 기사가 쌓일 것이고, 그 기사를 주제별로 블로그 폴더에 넣으면 각 주제별로 지식이 축적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식축적의 베이직라이프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문 보기는 최근 저의 지식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신문지면을 일일이 촬영하지 않고도 쉽게 볼 수 있는 신문사 서비스와 그러한 신문기사를 아예 모아서 스크랩과 편집까지 가능한 서비스가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P는 오랜 시간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 왔다. 종이신문을 보는 것과 온라인 스크랩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했다. 그러나 결국 최근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선택하였다.


    미란은 P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이 신문과 스크랩 사이에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P는 알고 있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대부분은 신문읽기를 통해 미래를 분석한다. 다시 말해, 현재를 분석하여 미래의 다가올 변화를 분석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보는 눈

    “미란 선생은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무릎을 치면서 인생을 돌아본 적이 있는지요?” “물론 있었죠. 심지어 논술 분야 책을 읽다가 거기에 실린 글귀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꾼 적도 있었어요. 이런 경험은 폴샘이 더 많지 않으세요?” “네. 다만 통찰과 성찰, 비판과 반성, 몰입과 소통, 결과와 과정, 방향과 방법 등 워낙 경계선을 잘 넘나들다 보니 때로는 기술서적을 읽다가도 그 빈 여백에 성찰의 글을 남기기도 합니다. 책 선정의 주도력을 가지고 오랜 시간 주도적인 독서를 한 사람들은 융합의 내공이 강해집니다.


    다만 단계는 필요합니다. 저는 베스트셀러를 무조건 경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책 선택의 주도력이 없는 상태에서 귀가 얇아지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주도력을 가진 상태에서 베스트셀러를 살피는 것은 매우 건강한 접근법이기 때문이에요. 지식세대들은 집단지성의 힘을 신뢰합니다. 즉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구입하고 읽었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스트셀러는 시대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지식세대의 판단은 그 시대를 반영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죠. 제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방법 중에 또 하나가 바로 베스트셀러입니다. 베스트셀러의 흐름을 보면, 그 시대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재는 희망을 찾는 인간극장

    삶의 스타일을 따라가다

    지식을 정리하는 방식에는 P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민 교수이다. P는 그를 통해 다산의 지식경영을 이해하였고, 정민 교소의 삶 자체도 다산의 지식체계와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20여 년 동안 800권의 책을 집필한 나카타니 아니키로의 대선배가 있으니,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이 지식을 축적하고 정리하여 결과를 만드는 과정은 21세기 ‘엑셀’의 함수와 유사하다고 한다.


    정조가 화성 신도시 건립에 착수한 뒤 수원, 광주, 용인, 남천, 남양 등 여덟 고을에 명하여 나무를 지속적으로 심게 했다. 7년에 걸쳐 나무를 심을 때마다 보고문서가 계속 올라와 나중에는 그 문서가 수레에 가득 싣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서류가 하도 많고 복잡해서 어느 고을이 무슨 나무를 심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조의 명에 따라 다산은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가로 열두 칸을 만들고 세로로 여덟 칸을 만들어 칸마다 그 수를 적었다. 총수를 헤아려 보니 소나무와 노송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합쳐 모두 1200만 9772그루였다. 보고를 받은 정조의 입이 딱 벌어졌다. 수레에 가득 실어도 넘칠 지경이던 많은 서류가 단 한 장의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던 것이다.


    정약용에 대해 연구한 정민 교수는 그의 삶에서도 비전과 지식의 체계를 잡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그는 방대한 지식을 다루고, 어려운 지식을 쉬운 현대의 언어로 바꾸는 데에 탁월하다. P는 대학시절, 그가 쓴 『한시미학산책』을 처음 접했는데 어려운 한시를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친근감 있게 쉽게 풀어주고 있다.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P는 아주 오래 전, 열정적으로 강의를 시작할 무렵 자신이 강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강연회장에서 청중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심지어는 일어나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당시 절망한 그는 멘토를 찾았었다.


    “청중의 눈이 보이지가 않아요. 제가 열정적으로 하면 할수록 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이 너무 두렵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은 ‘프리젠터, 메신저, 커뮤니케이터, 이노베이터’의 단계로 구분됩니다. 객관적인 정답이 아니라 성장구도로 보면 좋겠군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매여 있는 수준이 있고, 청중과 공감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공감을 넘어 소통까지 가는 것은 커뮤니케이터 몫이죠. 그리고 청중으로 하여금 공감, 소통을 넘어 그 삶의 변화를 만들도록 하는 것은 이노베이터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P 선생은 현재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야 제가 강의장에서 열정을 뿜어낼수록 왜 분위기가 싸늘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는 프리젠터였습니다.”


    “낙심하지 말아요. 내가 폴 선생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입니다. 결국 찾아야 할 것은 미래에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P가 삶의 절망과 구체적인 무게 앞에서 힘에 겨워 멘토를 찾을 때면, 그분은 거대한 시대를 바라보고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생각하게 도와준다. “폴 선생,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 의미를 만들 수 있어요. 자신만의 서재를 지금부터 만들어 보세요.”


    이렇게 시작된 베이스캠프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멘토의 방문으로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P는 멘토의 방문으로 새롭게 구성된 코너를 소개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미란이 이전 인터뷰에서 보지 못했던 코너였다. 깊이 사고하는 사고법의 책들과 넓게 사고하는 통찰의 책을 구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깊은 사고와 넓은 통찰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힘과 관련된 책들로 분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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