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
 
지은이 : 이지성
출판사 : 차이정원
출판일 : 2019년 10월




  • UN은 우리나라가 국민 평균 독서량이 세계 166위라고 발표했다(2015년). 유발 하라리를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국가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3대 경영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5년까지 로봇에 의해 일자리가 가장 많이 대체될 국가로 대한민국을 지목했다(2015년). 

    세계로봇연맹(IFR)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간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수가 세계 평균 69대보다 무려 462대나 많은 531대였다(2016년). 

    여기까지 읽으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비율 세계 1위 국가가 될 가능성이 심히 높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직업을 잃을 가능성이 심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당신은, 당신의 가정은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끔찍한 사실이 있다. 당신이 여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에이트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 대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인공지능이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시대

    인류의 미래 문명은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인공지능은 딥블루를 기점으로 과학이 한 분야에서 인류 미래 문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슈퍼비전을 기점으로 현대 인류 문명을 기초로 자리 잡았다.


    아직도 인공지능을 무슨 SF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현대 무명의 기초라는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공부해보면 인공지능이 이미 우주·항공·로봇·선박·자동차·전기·전자·건설·의료·통신·교육·에너지·환경·교통·가전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이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여태까지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좋은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허나 앞으로는 다르다. 인공지능과 인류의 격차가 인간과 동물의 격차 이상으로 벌어진다. 어쩌면 인간과 곤충 수준의 격차가 생길 수도 있다.


    섬뜩한 사실은 늦어도 10년 뒤부터 인공지능이 인류를 초월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은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류를 초월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주로 지식·정보·기술 분야에서 인류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식·정보·기술보다 우위에 있는 무엇, 즉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공지능보다 우위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문명 시대에 누릴 풍요와 번영은 지난 역사상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풍요와 번영의 길인가, 아니면 그 반대의 길인가? 부디 당신이 풍요와 번영의 길로 가고 있기를 빈다.


    빌게이츠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 싶다. 딥블루의 승리가 있고 난 뒤 약 1개월 뒤인 1997년 6월,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문명은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내가 만일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무엇보다 인공지능을 공부할 것이다.”


    빌 게이츠의 방문 소식과 그의 인공지능 발언은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 중 그 누구도 빌 게이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국가부도사태(IMF)가 터졌다. 이제 한 작가가 이 나라에 1997년의 빌 게이츠처럼 말하고 있다. 부디 그 작가의 말이 그때 빌 게이츠의 말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부디 이 나라가 응답하기를.



    10년 뒤, 당신의 자리는 없다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 vs 지시를 받는 사람

    인공지능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

    ‘빅E’와 ‘미들E’와 ‘리틀E’, 공감 능력의 실체

    공감 능력이란 철학에서 나온 용어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의 입장에서 느끼고 이해할 줄 알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특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고 느낄 줄 알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할 줄 아는 능력이다.


    공감 능력은 빅E(Big empathy ability), 미들E(Middle empathy ability), 리틀E(Little empathy ability)로 구분된다.


    빅E는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타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이 가진 공감 능력이다. 전쟁터의 비극을 목격하고 국제적십자를 창설한 인류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앙리뒤낭이라든가, 역시 전쟁터로 달려가서 현대적 의미의 간호학과 위생학을 확립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가진 공감 능력이 대표적이다.


    리틀E는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이타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이 가진 공감 능력이다. 당신이 사는 동네를 한번 살펴보라.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같은 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뭐랄까, 날개 없는 천사라고나 할까. 그런 인물이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이다.


    미들E는 빅E와 리틀E 사이에 있는 공감 능력이다. 지인 중에 《눈을 떠요, 아프리카》라는 책의 저자가 있다. 그는 겉으로 보면 한국에서 평범한 안과 병원을 운영하는 안과 의사다.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떤 위대함이 보인다.


    국제실명구호기구 ‘비전케어’를 설립한 후, 전 세계 빈민촌을 돌면서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전케어가 지난 18년 동안 세계 38개국에서 진료하고 치료한 환자는 16만여 명이다. 이 중 2만 3천여 명이 개안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았다. 이 안과 의사 같은 사람이 미들 E의 대표적 사례다.


    1970년에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로교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신학생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주제로 설교를 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신학생들은 별관의 한 강의실에 모여서 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15분마다 한 명씩 시험장이 있는 본관 건물로 이동해 시험관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 했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는데 호흡이 곤란한지 가슴을 움켜쥐고서 격하게 기침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학교 측에서 몰래 준비한 ‘이타주의 실험’이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연기자였다. 실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40명 중 34명이 선한 사마리아인에 나오는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쓰러진 사람을 못 본체 지나쳤다. 그리고 시험관들 앞에서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설교했다. 오직 여섯 명의 학생만이 시험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었다.


    길가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누군가를 그냥 지나친 34명의 학생들은 공감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공감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식과 기술만 가진 사람은 인공지능에게 대체 된다.


    나머지 여섯 명의 학생은 어떨까? 이들도 인공지능에게 대체 된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부축해서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앞으로 나올 인공지능 구호 로봇이 더 잘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섯 명의 학생이 이 사건을 계기로 프린스턴신학교 내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실제로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면(리틀E), 더 나아가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면(미들E), 또는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이타주의적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빅E), 어떨까?


    인공지능이 이 세 종류의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일전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취재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참고로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이랬다.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예수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그런 삶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8

    -‘에이트’ 하라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인공지능은 유년 시절이 없다

    피터 스킬먼은 노키아 최고경영자 시절 특별한 실험을 했다.


    디자이너들로 이루어진 팀, 공학자들로 이루어진 팀,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팀, 유치원 아이들로 이루어진 팀 등 여섯 개 팀을 상대로 ‘스파게티 면이 담긴 봉지 20개’와 ‘1미터짜리 투명 테이프와 노끈’과 ‘마시멜로’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은 탑을 쌓게 했다. 단 탑의 꼭대기에는 마시멜로가 있어야 했다.


    즉 협동성(공감 능력)과 창의성(창조적 상상력)을 비교하는 실험을 한 것이다. 결과는 유치원 아이들이 승리였다. 유치원 팀은 변호사 팀의 1.5배, 경영대학원생 팀의 3배나 높은 탑을 쌓았다.


    당신에게도 유치원생 시절이 있었다. 그때 당신은 인류 최고 수준의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신은 세상에 물들어가면서 두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제 되찾을 때다. 당신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발견하라. 그 아이와 대화하라. 그 아이와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라. 때론 놀이터로 가라.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라. 그러면서 배워라. 자유롭게 마음껏 노는 법을!


    그렇게 당신이 당신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날 때 당신이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은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비록 어른이어도 내면의 유년 시절의 자기 자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유년 시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써 다시 아이가 되라.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인공지능은 ‘트롤리 딜레마’를 판단하지 못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중요해지는 게 있다. 윤리·도덕적 판단이다. 방금 이 문장을 읽고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실직자가 되고 더 나아가 난민 수준의 삶을 살게 된다는데, 그렇다면 인공지능 자체가 거대한 악(惡)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슨 윤리·도덕적 판단이 중요해진다는 말인가? 진정으로 윤리와 도덕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인공지능 개발을 멈추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공지능에 관한 자료를 보면 볼수록 인류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새로운 문명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전에 없었던 풍요와 편리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과 달리 인공지능 기술 발달은 가속화 될 것이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 대다수의 인류는 안타까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그 정해진 미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 대비책을 알리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윤리·도덕적적 판단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도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공지능 산업을 크게 일으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구글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를 보자. 사실 자율주행차 기술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안정성 등에 있어서도 인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윤리·도덕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궜던 논문,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누군가를 살해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에 나오는 문제를 보자. 이 논문은 영국의 윤리·도덕 철학자 필리파 풋이 제안한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를 자율주행차에 적용했는데, 다음 세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1.직진하면 열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한 명을 친다.

    2.직진하면 한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운전자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3.직진하면 여러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운전자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이 상황 앞에서 인공지능은 각각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여기에 대해 많은 석학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 가지 상황이 마주한 윤리·도덕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는 이 문제의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도로를 주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제조사들이 여기에 대해 완벽한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훌륭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전 세계의 도로를 뒤덮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의 윤리·도덕적 문제를 철저히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철학(윤리·도덕학)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한편으로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마주할 윤리·도덕적 문제를 미리 헤아려 짐작하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기업과 인재가 인공지능 산업의 리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공지능 기업들과 세계적인 대학들이 인공지능 윤리연구소 등을 세우고 인공지능의 윤리·도덕적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의 미래형 학교들이 윤리·도덕 철학을 교육 과정의 핵심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산업의 1인자를 키워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일론 머스크의 애드 아스트라는 아예 교육 과정 전체를 인공지능 중심의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윤리·도덕적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판단 능력을 기르는 내용으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문학은 윤리·도덕적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판단 능력을 기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야기 하고 나니 문학은 인공지능 산업의 도구로 전락 한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문학은 철학과 함께 인공지능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길러주는 최고의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인공지능이 마주한 윤리·도덕적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윤리·도덕적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없다. 이는 인간의 영역이다.


    윤리·도덕적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철학, 특히 윤리·도덕학과 문학의 융합을 추구하라.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인《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관점으로 도스토옙스키가 집필한《죄와 벌》을 읽어보라. 그리고 《죄와 벌》이 다루고 있는 윤리·도덕적 문제들을 인공지능 시대의 인류가 마주할 윤리·도덕적 문제들에 대입해보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보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게 앞으로 당신이 추구해야 할 철학과 문학의 융합이라고. 아니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 강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철학과 문학의 융합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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