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의 설계자들
 
지은이 : 다마키 신이치로(역:안선주))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1년 03월




  • 2020년 코로나19로 12년 만에 최대 실적을 낸 닌텐도. 1억 대가 넘게 팔린 닌텐도 ‘위Wii’는 물론이고, 기네스북에 오른 ‘슈퍼 마리오’, 품절대란 ‘동물의 숲’까지, 사람들은 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친구에게 해보라고 권유하며, 시키지 않아도 닌텐도 게임들을 SNS에 올리며 자랑할까? 바로 닌텐도의 기획자들이 ‘탐닉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탐닉을 설계하는 포인트를 3가지로 집약했다.


    탐닉의 설계자들


    직감 디자인: 왜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걸까?

    컴퓨터 게임이 대중화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그간 게임 발전의 중추를 담당했던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다. 슈퍼 마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게임의 역사를 대표하는 작품임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게임의 대명사로 통한다.


    도입부 화면이 재미없는 게임

    ‘도대체 어떤 게임이 잘 팔릴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 잘 팔리겠지.’ 당연하다.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 잘 팔린다. 그렇다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잘 팔린 슈퍼 마리오도 한눈에 ‘재밌겠다!’ 고 느껴지는 게임일 것이다.


    실험을 하나 해 보았다. 꾸밈없이 대답할 것 같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슈퍼 마리오의 도입부 화면을 보여준 후 ‘재밌어 보이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 게임을 앞에 두고 발칙하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재미없어 보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재미없어 보인다니, 정말 당황스럽다. 정말로 만에 하나 슈퍼 마리오가 재미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슈퍼 마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룰은 무엇인가

    ‘이 게임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룰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슈퍼 마리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문제는 한 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난제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의 심경변화가 의미를 결정한다

    플레이어의 심리는 오른쪽을 향해 걷는 동안 내내 불안한 상태였다. 때문에 설령 발견한 상대가 적일지라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애당초 쿠리보만 보아서는 풀리지 않는다. 쿠리보가 등장하기 전 플레이어의 기분이 어땠는지, 이른바 ‘마음의 문맥’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마음의 문맥이 체험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 정리해보자. 애초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왜 그토록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지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를 풀어줄 열쇠는 쿠리보를 발견하기까지 일련의 체험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오른쪽으로 간다는 가설을 세우고, 불안한 가운데 가설을 실행해본다. 그리고 마침내 적중한 가설에 기뻐한다.


    정말 자전거 타는 법을 아는가

    생뚱맞지만 당신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가? ‘자전거? 당연히 탈수 있지!’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고자 한다. “당신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은 정말로 올바른가?” 다시 질문을 받은 당신은 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불안해질 것이다. 분명 프로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답은 당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전거 타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워서 할 수 있게 된 일에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의심도 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스스로 체득하는 체험을 수반하지 않고 타인에게 배운 지식만으로 가능해진 일에는 좀처럼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처럼 ‘가설→시행→환희’라는 자발적 체험을 통해 이해한 자전거 타는 법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는 진리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 당신은 자신이 ‘자전거 탈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세계에서 발견한 진리를 의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발적으로 학습한 것을 평생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굳게 믿는다. 때문에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로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도 ‘가설→시행→환희’라는 자발적 체험을 통해 ‘오른쪽으로 간다’는 룰을 직감하고 끝까지 믿는 것이다.


    직감은 곧 즐거움

    ‘이 게임은 재밌어!’라고, 직감 디자인은 정보를 직감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도 맡고 있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곧 ‘재미’있다. 이토록 강력한 직감 디자인을 실제로 디자인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1단계(가설) 체험을 만들려면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oo해볼까?’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도록 디자인을 구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단계(시행) 체험에서도, 3단계(환희) 체험에도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oo해보자’, ‘내 가설이 옳았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눈앞의 세계로부터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슈퍼 마리오에서 ‘마리오가 오른쪽을 향해 있다’, ‘왼쪽에 산이 있다’ 등이 정보가 된 것처럼 말이다. 플레이어의 뇌는 이러한 정보를 통해 ‘오른쪽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가설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서 플레이어가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것이 있다. 지금 자신이 쥐고 있는 컨트롤러에 틀림없이 캐릭터를 오른쪽을 가게 하는 버튼이 있음을 말이다.


    생뚱맞지만 우측 버튼의 존재를 알아차린 플레이어는 이제 그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된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가설이 단 하나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확인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우측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강제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게임은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나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가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가설을 찾아내어 우리가 그대로 실행하게끔 만들려고 한다.


    체험 디자인의 기본은 ‘직감 디자인의 연속’

    오른쪽으로 걸어가자 쿠리보와 물음표가 그려진 블록이 등장한다. 그리고 버섯, 토관, 땅 위의 구멍, 코인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플레이어는 어포던스라는 가설을 만들고, 시행하고, 환희에 가득 찬다. 그 모습은 마치 도토리를 주워 모으는 어린아이 같다. 도토리를 발견하고 줍는 체험이 이어진다. 직감 디자인의 연속, 이것이 바로 체험을 디자인하는 기본 전략이자 구조이다.


    직감 디자인에는 반드시 환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감정은 직감 체험을 통과할 때마다 조금씩 고조된다. 그 상태로 감정이 계속해서 고조되어 어느 한 점을 넘었을 때 플레이어는 의식적으로 ‘이거 재밌다’라고 자각하는데, 그 순간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최종 목표다.



    놀람 디자인: 왜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는 걸까?

    졸린 눈 비벼가며 ‘나도 모르게’ 밤마다 하게 되는 게임은? 이런 종류의 설문조사에서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게임은 슈퍼 마리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불후의 명작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다. 책에서는 편의상 ‘드퀘’라고 부르겠다.


    드퀘는 플레이어가 완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즐기는 롤플레잉 게임의 대표주자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친밀함이 인기 요인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게임 화면이 문자와 숫자로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 용어나 독특한 룰이 난무하는 복잡한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졸음을 참으면서까지 드퀘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밀은 실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체험 디자인에 있다.


    놀람 디자인의 구조

    1. 오해: 틀린 가설을 세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2. 시행: 시험 삼아 행동으로 옮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3. 경악: 놀란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가설, 시행이 오류였음을 깨닫는다.


    오해하고, 시행하고, 예상 밖의 결말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 바로 ‘놀람 디자인’이다. 직감 디자인의 연속으로 피로와 싫증이 쌓인 플레이어에게 적용함으로써 피로와 싫증을 떨쳐내고 보다 장시간의 체험을 가져다주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을 그리고 있는가?

    게임 ‘여명기’에 ‘탈의 마작’이라는 장르가 있었는데, 컴퓨터 특유의 반복적이고 난이도 높은 마작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음란한 일러스트 덕분이었다. 이러한 ‘성의 모티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냉정함을 어지럽히는 식, 득실, 승인과 같은 모티프를 체험 끄트러미에 등장시킴으로써 장시간의 체험으로 생긴 피로와 싫증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러한 모티프가 등장하지 않는 콘텐츠를 찾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콘텐츠를 ‘마지막까지 완전하게 체험하는 것’이 목표인 이상 터부의 모티프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체험을 디자인한다면 단적으로 다음과 같은 지표를 가지는 것이 좋다. ‘그 체험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을 그리고 있는가?’


    외면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있는가?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에서 악역은 빼놓을 수 없다. 악역은 부정으로 가득 차 있고 방약무인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폭발과 천변지이와 같은 혼란을 일으켜 강렬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한다. 그렇더라도 악역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악역을 조종하여 나쁜 짓을 시키는 장본인, 진짜 악은 바로 악역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스스로의 인격이 의심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버리고 의식적으로 부정적 모티프를 이용해야 한다. 모든 것은 체험 당사자에게 놀라움을 주고, 나아가 체험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카지노의 역할

    카지노에는 슬롯이나 포커 같은 도박이 나열되고 있고 이기면 얻을 수 있는 코인으로는 다양하고 강력한 무기와 방호구를 교환할 수 있다. 지금껏 수많은 몬스터와의 전투를 부지런히 거듭하여 차곡차곡 돈을 모아 무기나 방호구를 구입해온 플레이어에게 일확천금으로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착실히 돈을 모아 온 플레이어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목적이다. 노력을 거듭하고 배우면서 모험하려는 플레이어의 착실함을 카지노는 의도적으로 빼앗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플레이어에게 피로와 싫증이 축적되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피로와 싫증이 한계를 넘어 플레이어가 게임 자체를 그만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이다. 따라서 카지노는 일부러 모험을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일시 정지를 해제하고 플레이어가 모험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물론 돌아오게 할 장치도 준비되어 있다. 카지노에서 한바탕 즐기고 나면 플레이어의 손에는 모험에 도움을 주는 장비와 아이템이 남는다. 마음껏 즐긴 후의 개운함에 더해 손에는 강력한 장비와 아이템까지 주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다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걸게 하고, 기원하게 하는가?

    게임 속 카지노는 플레이어가 마음껏 이기도록 내버려 둔다. 오히려 수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확률로 플레이어를 이기는 설정도 해두어 결국에는 기분 좋게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배웅해준다. 여기서 키워드는 ‘확률’이다. 확률의 활용은 카지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몬스터와의 전투 중,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강력한 공격이 있다.


    바로 ‘회심의 일격’이다. 등장 확률은 높지 않지만 회심의 일격이 나왔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강적에게 압도되어 패배 직전까지 내몰렸어도 회심의 일격만 등장하면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싸워 적을 알고 레벨을 높이는 꾸준한 ‘노력’ 과 ‘행운’의 여신. 전투 장면 하나에도 대조적인 요소가 균형 있게 배분되어 피로와 싫증을 씻어준다.


    나도 모르게 행운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게임 업계에서는 ‘사행심’이라고 부르는 데서 착안해 10가지 모티프 중 아홉 번째 터부의 모티프는 ‘사행심과 우연의 모티프’ 라고 부른다. 체험 디자인의 지표는 ‘그 체험은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걸게 하고, 기원하게 하는가?’로 삼아도 될 것이다.


    놀람 디자인으로 계속할 수 있는 체험

    놀람 디자인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나 외면하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걸게 하고, 기원하게 하며 플레이어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만든다. 이러한 체험 디자인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직감 디자인의 연속으로 인한 피로와 싫증을 불식시키고 플레이어를 다음 체험을 이끈다. 이것이 바로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는 기본 전략이다.


    놀람 디자인은 플레이어가 체험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게끔 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부지런해서 피로를 모르는 플레이어만 있다면 놀람 디자인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체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놀람 디자인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기본은 직감과 놀람의 조합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포르노나 엽기 영상처럼 본능적 흥분만을 지향하는 콘텐츠다. 이런 콘텐츠는 두말할 것도 없이 터부의 모티프로 가득 채워져 있다. 광고, 만담, 뉴스, 선전을 위한 홈페이지 등 체험이 단시간으로 제한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놀람 디자인이 도입부에 나타나고 그 후로도 높은 밀도로 등장한다. 세심하게 주의를 끌면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반면에 영화, TV 드라마, 연극, 콩트, 게임처럼 시간적으로 긴 체험을 제공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직감 디자인으로 도입부를 시작하고, 직감 디자인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회를 보아 놀람 디자인이 가미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이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주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고민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렇다면 당신도 이미 훌륭한 체험 디자이너다.



    이야기 디자인: 왜 나도 모르게 ‘말하고 싶어지는’ 걸까?

    게임이 시간 낭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게임에 의의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수수께끼를 풀어낼 키워드가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가

    당신은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형태가 떠오르는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형태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소설과 같은 문자의 형태를 떠올렸다. 확실히 이야기는 문자의 형태로 만들어진 듯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굳이 문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의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경우에 자막이 없어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사다난한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문자로 표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문자가 이야기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무엇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 여기서 다름 아닌 ‘이야기론’이라는 분야의 연구를 참고하고자 한다. 이야기론에서는 이야기를 ‘내러티브’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2가지 요소, 즉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 언설’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한다.


    이야기 내용이란 ‘주인공이 A에 가서 B가 일어나고 C가 되는’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이야기 내용이다. 이때 그 사건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이야기 내용은 전달된다. 문자, 영상, 음성과 같은 표현 형식도 중요하고 단어 선택과 전달 순서도 이야기의 재미를 좌우한다. 이야기를 전달할 수단, 이것이 바로 이야기 언설이다.


    정리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 언설을 합친 것이 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내러티브라는 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영상과는 별도로 음성만으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을…


    내러티브와 스토리

    ‘내레이터’라고 부른다. 내레이터는 내러티브 하는 사람, 즉 이야기를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의미하는 단어라도 스토리에는 ‘스토리어’라는 단어가 없다. 전달한다는 의미의 ‘tell’을 붙여서 ‘스토리텔러’라고 해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된다. 왜일까?


    스토리와 내러티브. 둘 다 ‘이야기’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즉 이야기 내용에 중점을 두는 반면 내러티브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언설을 포함하는 뉘앙스가 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다. 게임은 스토리인가 내러티브인가? 게임은 ‘게임을 하는 체험’을 통해 이야기를 설명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 게임의 특징이기 때문에 답은 물론…


    게임은 이야기 화법

    내러티브다. 게임은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모험을 진행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이야기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게임은 문자, 음성, 영상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화법 중 하나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아주 새로운 방식이다.


    최근의 기술 발전으로 게임은 영상과 음성만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와 동등한 표현력을 갖춘 게임은 캐릭터의 행동 하나만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매우 독특한 이야기의 전달 방식을 취해왔다.


    예를 들어, 드퀘는 병사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이야기가 절대로 진전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세계를 모험하고 자력으로 개별 정보를 모아 ‘이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를 추측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의 단편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시키는 이야기의 전달 방식을 전문 용어로는 이렇게 지칭한다.


    파악하고 싶은 뇌

    바로 ‘환경 스토리텔링’이다. 환경 안에 배치된 정보를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모아 이야기를 구축해나가는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리’하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우리의 뇌는 정보를 흩어진 채로 두는 것을 기피하는 것 같다.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의 단편이라도 뇌는 그것을 조합하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추측하려고 한다. 뇌는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전체상과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 한다.


    도대체 공감이란 뭘까?

    성가신 동행자로부터 공감, 성장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수수께끼를 밝혀내려면 우선 ‘도대체 공감이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한다. 공감이란 한마디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상태를 말한다. 필요한 조건은 3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있을 것. 당연히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공감할 수 없다. 두 번째 조건은 플레이어가 ‘주인공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믿을 것. 공감의 핵심이다. 세 번째 조건은 미움 이외의 감정으로 공감할 것. ‘저 녀석이 나쁘다, 밉다’와 같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 3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서 플레이어가 주인공에게 공감하도록 체험을 디자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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