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길
 
지은이 : 신제구
출판사 : 책비
출판일 : 2019년 07월




  • 직원을 윽박지르며 성과를 내기 위해 독단적으로 달려나가던 리더가 ‘갑질’ 논란에 휩싸여 조직에서 쫓겨난다. 조직을 위한 결정 대신 몰래 뇌물을 챙기며 소수를 위한 결정을 내리던 리더는 SNS에 낱낱이 까발려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실무는 직원에게 떠넘기고 성과를 독식하던 리더는 직원의 극렬한 저항에 막혀 결국 좌초한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은 과거에는 통했던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젠 전통적인 리더십으로는 리더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리더의 길


    리더십 딜레마

    나쁜 리더보다 나쁜 ‘나빠진 리더’

    지금 우리 사회는 리더십의 종말을 보는 듯하다. 조직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리더가 오히려 조직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변함없이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리더도 많다. 그러나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리더들의 양심 없는 싸움에 엄한 사람들의 등이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꼭 자식들의 불안과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부부 싸움을 하는 고약한 부모를 보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상황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들의 리더십은 누가 내 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지가 더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모이는 곳에 이 점은 항상 빠져 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은 자기편이 아닌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적대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그러한 정치인들의 불량한 리더십은 국민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과연 정치인들의 리더십만 그럴까? 기업에서도 오너 리스크가 심각하다. 일부 기업의 리더들 중에는 직원들이 죽어라 일해서 번 돈으로 비자금과 같은 사적 재산을 조성하는 데만 급급하고, 그러다 자금이 부족하면 빚을 냈다가 갚기 힘들어지면 직원부터 줄이는 이들이 있다. 또 어떤 오너는 자신의 지분을 아무 생각 없이 전부 팔고 직원들을 버려둔 채 떠났다. 갑자기 버려진 직원들은 하소연 한번 못 하고 땀 흘려 일해온 조직을 말없이 떠나야 했다. 이런 리더는 힘없는 자식을 거리로 내모는 나쁜 부모와 같다.


    미국 스탠퍼드 공과대학 경영과학 로버트 서튼 교수는 2,500개 기업 10만 명을 대상으로 리더십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저서 《좋은 상사 나쁜 상사》에 발표했다. 책의 골자는 직원들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 조직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싫어서라는 것이다. 본래 리더의 존재 이유는 조직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직원을 동기 부여시키고 성장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다. 그래서 리더는 실력과 리더십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리더의 실력과 리더십은 조직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리더가 조직이 부여해준 권한과 책임 가운데 권한에만 집중한다면,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피해를 준다. 또한 조직의 성공은 멀어지고 조직의 가치는 변질된다. 꼴 보기 싫은 리더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로 해석된다. 결국 나쁜 리더가 직원과 조직도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리더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목숨을 걸고라도 지켰어야 할 대상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리더다. 정치 리더들이 국민을 지키지 않고, 리더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쁜 리더는 반드시 나쁜 후유증을 남기고, 그 후유증은 직원에게 깊은 상처를 오랫동안 남긴다.


    나쁜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자신의 잘못과 책임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쁜 리더는 근본적으로 비겁하고 탐욕스럽다. 그런데 사실, ‘나쁜 리더’보다 더 나쁜 리더가 있다. 바로 ‘나빠진 리더’다. 초심을 상실하고 변질된 리더십은 직원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원래부터 나쁜 리더십만 펼친 리더는 직원들이 항상 경계하다 보니, 잘못된 상황이 오지 않도록 미리 주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빠진 리더는 직원들이 이러한 경계심이 없을 때 마주하게 되어, 더 실망을 느끼고 돌이킬 수 없는 배신감에 빠지게 만든다. 조직이 부여한 권한으로 잘해보겠다고 약속했던 리더가 사익에 눈이 멀어 서서히 타락하면, 그 나빠지는 과정에 직원들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 나빠진 리더십에 오염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나빠진 리더는 한번 변질되고 나면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쁜 리더는 애초에 리더로서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나빠진 리더는 변질되지 않도록 점검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고급 시스템이다. 고급 시스템이 작동되면 시스템의 통제력으로 나쁜 리더가 선택받을 확률이 낮아지고 나빠지는 리더 또한 줄어든다. 반면에 고급 시스템이 없거나 작동되지 않는다면 나쁜 리더는 그를 사적 이득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의 허수아비가 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선 시스템이 원칙이 아니라 변칙이 반복되는 혼란과 비정상적 상황을 양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리더는 아무나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의 차이는 분명하다. 좋은 나라는 국민이 먼저이고 나쁜 나라는 권력자가 먼저다.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업은 직원과 고객이 먼저이고 나쁜 기업은 주인과 주인 행세하는 사람이 먼저다. 결국 리더가 좋으면 모두가 좋아진다. 리더가 나쁘면 모두가 나빠진다. 따라서 앞으로 나쁜 리더가 될 자질이 있는 자가 리더가 되지 않도록 하고, 평범했던 리더가 나쁜 리더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고급 시스템을 모든 조직에 정착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는 길

    소유의 리더십보다 ‘존재’의 리더십을 펼쳐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소통을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큰 저항이 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십을 바라보는 리더의 관점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과연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이를 고민하다 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오른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란 책이다. 저자는 ‘소유의 삶’을 지양하고 ‘존재의 삶’에 집중할 것을 주장한다.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오히려 많은 것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유와 존재에 대한 관점을 리더십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많은 유능한 리더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고 사적인 탐욕에 빠져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사례는 이미 만연하다. 그렇다면 과연 리더에게 리더십이란 소유의 대상일까, 아니면 존재의 대상일까? ‘소유의 리더십’과 ‘존재의 리더십’은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출발은 화려했지만 끝이 불행했던 리더들의 공통된 문제점 중 하나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적인 탐욕을 채우고자 했다는 것이다. 소유의 관점으로 리더십을 바라본 탓이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이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책임을 지녔는가를 망각한 채 사리사욕을 우선시하는 순간, 리더십은 오염되고 변질된다.


    어째서 그토록 유능한 리더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하는 걸까? 그 이유는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빠지는 불감증 때문이다.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한 리더가 겪어야 하는 몇 가지 위험한 불감증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 번째, 자신의 책임에 대한 불감증. 소유욕에 불타는 리더는 가장 먼저 초심을 잃는다. 초심은 ‘존재의 가치’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아는 것이다. 하지만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하면 이를 잊어버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바타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유화하고도 이를 합리화하는 등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망각하며 잘못을 저질러도 반성할 줄 모른다.


    두 번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 욕심이 많은 리더는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는 데 집중하느라 타인의 고통과 희생에는 관심이 없다.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차지할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나친 소유욕은 이기심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한다.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망가진 리더의 눈에는 다른 이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으며, 설사 보인다 해도 그 어떤 마음의 울림조차 받지 못한다. 때문에 탐욕적인 리더일수록 더 잔인한 승자 독식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세 번째, 미래의 불행에 대한 불감증. 소유의 리더십에 빠진 리더는 자신의 탐욕이 몰고 올 미래의 ‘역풍’에 대한 염려가 없다. 현재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란 착각으로 인해 뻔히 예측되는 불행을 못 보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기까지 한다. 판단력도 망가져 미래를 예측하기도 버거워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더 뻔뻔스럽고 비겁해진다. 불행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데도 탐욕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네 번째, 자신의 명예에 대한 불감증.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한 리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품위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약자를 조롱하고, 강자에는 비굴하다. 이들 사전에 모멸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굴욕과 비겁함 그리고 거침없는 불법도 똑똑한 기술로 정당화하여 늘 반칙의 악취가 진동한다. 탐욕에 빠진 리더에게 ‘존재의 의미’보다는 ‘소유의 탐미’가 더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소유의 리더십이 가지는 불감증을 나열했지만, 필자는 리더가 추구하는 소유에 대한 열망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다. 단지 소유에 대한 리더의 욕구가 지나치거나, 존재의 가치와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적어도 소유와 존재의 균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소유의 리더십에도 기회는 있다.



    리더와 직원이 상생하는 길

    상전 노릇에 연연하지 마라

    모든 것이 불안해진 현실에서 성과는 조직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팩트이자 최종 목표다. 그래서 조직은 늘 하위 조직에 목표를 할당하고 담당 리더에게 목표 달성을 촉구하며, 그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슬픈 말이지만, 리더에 대한 조직의 선택은 성과에 대한 조건부 선택이다. 리더의 성공은 성과로 결정된다. 성과 없는 리더는 설 자리가 없다. 버티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용서는 없다. 결국 성과는 생존이고 리더의 운명이다.


    성과를 주도하는 것은 리더이지만 성과를 수행하는 당사자는 직원이다. 그래서 직원이 목표를 달성하면 1차 수혜자는 리더가 되고 조직은 그다음이다. 만약 직원이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임무를 회피하면, 1차 피해자는 리더가 된다. 말하자면 리더에게 부하 직원은 상전인 셈이다.


    분명 과거에는 리더가 상전이었다. 지금도 리더가 상전이라고 우기는 리더들이 있다. 외형상 리더가 상전인 건 맞다. 그러나 그 상전 노릇이 사실 예전만 못하다. 조직이 제도적으로 정하고 있는 리더의 직급과 권한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리더가 원하는 만큼  직원들이 움직여주지 않기도 한다.


    왜 그럴까? 직원들이 시스템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직원을 움직이는 동기 요인이 변한 것이다. 요즈음 직원들은 월급을 바라며 일은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일하러 회사에 다니는 것이지 상전을 모시려고 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고, 리더들도 잘 눈치채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부정하려는 리더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지금 이 상황은 딜레마다. 리더로서 권위는 지키고 싶은데, 직원들이 이를 권위주의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충성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충성까지는 아닐지라도 목표만큼은 달성해달라고 애원해야 할까?


    그렇다. 이미 상전은 역전(逆轉)되었다.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더는 고통스러워진다. 직원들은 리더와 달리 저항하는 방식이 영리하다. 출근은 한다. 일도 한다. 그것도 할 일만 한다. 더는 하지 않는다. 충성도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결국 리더가 변해야 한다. 직원들이 바뀌었으니 리 더도 바뀌어야 한다. 갈등이 많은 조직은 이러한 변화를 거부한 조직이다. 현실을 외면한 대가를 리더만 감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더의 생각을 역전시켜야 상전의 역전을 견딜 수 있다.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리더십 전략

    직원들의 마음을 잡는 ‘심리적 계약’

    조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람 관리다. 해줄 것 다 해줘도 직원들 다루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과거 직원들의 저항들은 비교적 순박하고 온순했다. 저항의 이유를 먼저 알리고, 조직의 반응을 살핀 이후에 눈치껏 행동했다. 그래도 계속 다녀야 할 직장이기에 인내심으로 불만을 억누르며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직원들은 조직의 체면보다 자신의 체면을 더 중시하고, 조직을 위한 성취보다 개인의 성장을 더 고려한다. 그리고 현재보다 미래를 더 걱정하며, 걱정이 커진 만큼 조직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조직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직원들의 저항을 이겨내려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의 리더는 난감할 뿐이다. 분명 ‘고용계약’에 따라 조직과 직원이 서로의 책임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삐딱한 태도를 보이는 직원들을 직면하게 되니 말이다. 고용 계약은 민법에,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을 위하여 노무(勞務)를 제공할 것을 약정하고 그 상대방은 이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유상쌍무계약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고용 계약 관점에서만 보면 월급은 다 받아놓고 저항만 하거나 불쑥 떠나는 직원은 말 그대로 ‘천하의 원수’이다. 조직의 어려움은 외면하고, 요구만 많은 주제에, 만족하지 못하면 곧장 떠나는 직원들이 리더의 입장에서는 나름 이유 있는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리더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고용계약 외에 보이지 않는 계약, 바로 ‘심리적 계약’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서에 기록된 계약은 아니지만 고용계약을 초월한다. 만약 고용계약이 심리적 계약보다 더 강력하다면,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편인 기업들은 이직해 나가는 비율이 제로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원이 조직에 기대하는 것은 월급만이 아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일의 의미와 조직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직장 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요하다. 물론 조직이 심리적 계약을 위반하며 섭섭함을 느꼈을지라도, 현실과 타협해 조직에 남아 마음 불편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또한 반대로 배울 것도 많고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조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리적 계약이 고용계약을 초월하여 직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리더는 고용계약대로 일을 시키고 싶겠지만 직원들은 심리적 계약만큼만 일하고 싶어하는 게 현실이다.


    만약 리더가 고용계약에 입각하여 직원들의 보수를 챙기는 만큼 심리적 계약도 챙긴다면 조직은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상식적으로 섭섭한 마음을 갖고 일하는 직원이 리더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러나 조직에 감사하고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직원이라면 조직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심리적 계약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직원들은 역할 외 행동도 수행한다. 이를 학계에서는 ‘조직 시민 행동’이라고 부른다. 즉, 조직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조직을 위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반면 심리적 계약이 준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조직을 위해 나서지 않으며 때론 시킨 일도 소홀히 한다.


    따라서 리더는 매달 월급을 지급하는 것도 중요하나, 직원들이 심리적 계약이 충족되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기껏 월급을 주고도 원망을 듣는다면 리더만 손해 보는 일이다. 지혜로운 리더는 고마워하지도 않는 직원을 위해 돈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받은 만큼 또는 다소 적은 보수로도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찾아 움직이고, 조직에 만족감을 가지도록 노력한다.


    흔히들 리더에 비해 직원은 ‘약자’라는 생각을 한다. 이는 수정이 필요하다. 심리적 계약이 위반되면 직원들은 소리 없는 저항을 진행하고, 조직에 대한 협조를 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리더는 문제를 감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암 덩어리가 조용히 전이되는 것처럼 리더가 문제를 감지하는 순간은 이미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다. 더욱이 리더는 월급이 직원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며 고용계약을 들어 직원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직원들은 리더가 기억하지 못하는 조직의 모든 약점을 관찰하여 기억하고 있다.


    직원은 궁지에 몰리면 월급이야 그냥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리더는 궁지에 몰리면 조직을 통으로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가 오히려 약자일 수 있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를 제대로 아는 리더는 고용계약만으로 직원을 위협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선택하지 않는다.


    마음이 떠난 직원들을 잡고 싶은가? 고용계약의 조건을 문서로 확인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심리적 계약을 먼저 챙겨라.



    새로워지는 조직문화를 위한 리더십 전략

    위기 상황에서 돋보이는 리더의 세 가지 매력

    리더의 치명적인 매력은 언제 돋보일까? 결정적인 순간에 뭔가를 보여줄 때가 아닐까? 직원들이 기대감을 충족했을 때 비로소 리더는 존경받고 대가를 얻는다. 직원들의 기대감이 곧 리더의 역할이다. 만약 직원들의 기대에 어긋난다면 리더의 운명도 어긋나고 만다. 직원들이 리더에게 기대하는 바는 배려와 동기 부여 같은 심리적인 것도 있겠지만, 더 근원적인 것은 조직의 생존과 안녕이다. 이러한 직원들의 근원적인 기대감을 충족해주려면 리더는 세 가지 매력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매력, ‘예측력’.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불안감이 조직 전체로 확산된다. 이때 재빨리 대안을 찾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조직이 직면한 위기는 누구나 감지하지만 아무나 해결에 나설 수 없다. 이는 전적으로 리더의 몫이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내공은 시험대에 오른다. 닥쳐올 조직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내공의 수준은 리더의 몸값을 결정짓는 근거가 된다. 리더의 결단이 곧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단박에 위기를 타파할 전략은 아닐지라도, 조직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리더는 존경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매력, ‘판단력’.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개인이나 조직은 가장 먼저 판단력이 흐려진다. 더욱이 갑자기 닥친 위협은 판단력을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심지어 동종업계 전체에 위험이 불어닥친 상황이라면 해법을 벤치마킹할 대상도 없고 오로지 개별 조직의 판단으로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된다. 이럴 때 리더가 내리는 판단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세 번째 매력, ‘실행력’. 대안이 있어도 실행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리더의 생각이 아무리 강해도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리더십은 의심받는다. 조직에서는 리더가 움직여야 모두가 움직인다. 조직의 자율은 원래 리더의 그늘 아래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 하나라도 리더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은 결과가 빈약해진다. 더욱이 명령과 추종이 익숙한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리더의 살신성인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조직의 위기는 리더의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리더의 예측력과 판단력, 실행력은 조직의 위기 탈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더는 이 능력들 간에 균형을 이루고 유지해야 한다. 이 중 한가지만 흔들려도 리더십은 흔들리고 만다.


    직급이 높아지면 한 가지만 실패해도 평판이 나빠진다. 그래서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만 잘하고자 하는 리더는 모든 일을 한 가지 능력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대응하고자 하기 때문에 쉽게 균형감을 잃고 실패한다. 조직의 위기는 리더의 권력이 아닌 리더십으로 해결된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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