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심리학자, 메타버스를 생각하다
 
지은이 : 김지헌
출판사 : 갈매나무
출판일 : 2023년 04월




  • 인공지능으로 메타버스는 향후 더 거대한 기회의 장을 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경험 가치’를 설계하는 것! 공간 형태부터 아바타까지, 심리학자가 메타버스를 이야기합니다.


    브랜드 심리학자, 메타버스를 생각하다


    가상현실, 그 미묘함에 관하여

    심리학 관점, 가상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다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경험은 무엇을 뜻하는가

    심리학 관점으로 메타버스 가상현실을 바라본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는 실험으로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개념을 메타버스 가상세계에 접목하면, 심리학 관점의 가상세계 연구는 가상세계에서 인간이 보이는 생각과 행동의 이유와 방향을 실험으로 밝혀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인지(cognition), 태도(attitude), 행동(behavior)일 텐데, 이 중 인지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반응하기까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계산 과정을 의미한다. 즉, 가상공간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감각 정보를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정보 처리 과정(주의, 지각, 해석, 기억 등)이라 할 수 있다. 가상세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인지, 태도, 행동 과정을 ‘경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가상공간에서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바로 실감형 몰입(immersion)과 환경과의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이다.


    가상스토어 설계에 실감형 몰입 활용하기

    먼저 실감형 몰입이란 생생한 3차원의 이미지가 나를 에워싸고 있어 실제 내 몸이 존재하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상공간의 자극이 실제와 매우 유사하다면 우리는 인지 과정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잊어버릴 것이다. PC기반의 비몰입형 공간과 HMD를 착용한 후 경험하는 몰입형 공간에서 우리가 느끼는 실감형 몰입의 정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고, 이는 가상 경험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스토어와 PC로 구현된 비몰입형 스토어, 360도 전방위 3D 이미지로 구현된 몰입형 스토어에서 쇼핑 행동이 같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실감형 몰입의 정도가 다른 환경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인지·태도·행동의 차이 분석은 메타버스 공간에서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특히 몰입형 가상스토어에서의 소비자 행동이 오프라인 스토어에서의 행동과 유사하다면, 오프라인 스토어 디자인에 변화를 주기 전 몰입형 가상스토어에서 시뮬레이션을 거쳐 소비자 반응을 미리 모니터링 해볼 수 있다. 이는 잘못된 공간 디자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위험을 예방해줄 테고, 그 효과를 확인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반면 몰입형 가상스토어를 오픈할 계획을 가진 기업들은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가상스토어를 구축하고자 할 때, 오랜 기간 오프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업 뿐 아니라 소비자 또한 자신의 소비 행동을 이해하고 잘못된 소비를 줄이는 등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험의 가치를 결정짓는 가상세계 상호작용

    가상공간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요소인 상호작용은 비인적 요소와의 상호작용과 인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비인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은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감각적 자극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관련이 있다. 천장의 높이, 자리 배치, 아바타의 모습, 제품 진열 등의 시각 정보뿐 아니라 소리의 높낮이와 같은 청각 정보, 그리고 제품을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각 정보 등의 감각 정보는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이와 달리 인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은 내가 있는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타인과의 접촉을 의미한다. 타인은 가상스토어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일 수도 있고, 함께 가상현실의 미술관을 관람하는 다른 소비자일 수도 있다. 당신은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악수나 포옹을 할 수도 있다. 요컨대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이와 같은 인적·비인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은 경험의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메타버스에서 고객 만족 디자인하기

    자리 배치 형태에 따라 설득 효과가 달라진다

    천장의 높이, 유형, 개방성이 같은 조건에서도 공간을 차지하는 대상 즉, 사람이나 물건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회의 참석자들의 자리 배치가 무의식적으로 설득 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3년 주(Zhu) 교수 연구팀은 회의실의 자리배치, 각진 배치와 원형 배치에 따라 서로 다른 유형의 사회적 욕구가 자극되어 효과적인 설득 메시지의 유형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원형 자리 배치에서는 소속감의 욕구가 증가해 자신보다는 가족 중심, 소수보다는 다수 중심의 설득 메시지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반면, 각진 자리 배치에서는 독특함의 욕구가 증가해 반대 메시지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앉는 자리가 의사를 결정한다

    현실세계에서 공간, 특히 회의실의 자리 배치는 대체로 고정되어 있고 회의 내용과 설득 메시지 유형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가상공간은 얘기가 다르다. 현실세계와 달리 자리 배치 방법을 쉽게 변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해진 결론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때에는 가상공간의 자리 배치를 원형으로 바꾼다거나,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소수의 다양한 의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안건을 논의할 때에는 자리 배치를 각진 형태로 바꾸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가상공간의 디자인이 회의 참여자들의 의사결정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리 배치만큼 중요한 ‘옆 사람

    최근에는 자리 배치가 설득 효과뿐 아니라 창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황지영 교사 연구팀은 비대면으로 초등학교 교실의 유형을 시험 대형, 모둠 대형, U자 중심 대형으로 구분한 후, 자리 배치 유형과 자리 위치 선호에 따라 창의적 사고력에 차이가 나타나는지 분석하였다. 창의적 사고력은 제시된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아이디어 생성력’과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를 얘기하는 ‘원격 연합력’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U자 중심 대형이 모둠 대형보다 아이디어 생성력이 높았다. 그 이유는 U자 중심 대형이 가진 개방성이 관계 지향적이며 통합적인 사고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구성원 간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는 U자 중심 대형에서 뒷자리를 선호하는 학생이 시험 대형과 모둠 대형에서 뒷자리를 선호하는 학생에 비해 원격 연합력이 높았다는 점이다. 이는 시험 대형과 모둠 대형에서는 앞자리가 교사와 활발히 소통하고 수업에 적극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간, 즉 액션존(action zone)인 데 반해 U자 중심 대형은 뒷자리가 액션존이기 때문이다. 학습 동기가 높으면 창의력 사고에 도움이 된다는 기존 연구를 고려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자리 배치 효과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이 있다. 바로 자리 배치 방법 못지않게 옆자리에 누가 앉는지가 업무 성과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제조업 근로자의 경우 생산량이 많아도 제품의 품질이 다소 떨어질 수가 있다. 이때 생산성이 높은 사람과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이 나란히 앉으면 서로에게 자극을 주어 두 사람의 성과가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서로의 약점에 물들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점은 전이가 쉬우나 약점은 전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자리 배치 형태와 더불어 어떤 사람을 어디에 앉힐지도 매우 중요함을 말해준다. 특히 잠깐 모여서 하는 회의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에서의 자리와 사람 배치는 업무 성과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무의식을 움직이는 가상공간 파워게임

    가상세계 화면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힘

    현실세계에서는 노골적이든 암묵적이든 권력에 순위가 매겨지고, 내가 느끼는 파워 수준이 나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얼핏 생각해보면 현실을 초월하는 메타버스 가상공간은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뉘는데, 가상세계는 점점 진화할수록 현실세계를 더욱 닮아간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가상현실의 공간 디자인이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파워 수준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줌, 웹엑스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의 디자인을 생각해보자.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화면에 보여지는 형태는 격자, 수평, 수직 등 매우 다양하다. 물론 환경 설정으로 내가 원하는 대화창 레이아웃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기본값으로 제공되는 옵션은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혹시라도 대화 참여자들이 화면에 보여지는 형태에 따라 각자 느끼는 파워 수준이 달라지지 않을까? 특히 참여자들의 모습이 수직으로 보일 경우, 위에 위치한 사람과 아래에 위치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다른 수준의 심리적 파워를 느끼고 행동을 지배받을지 모른다.


    한편, 현실세계에서 협상할 때에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협상을 할 때에 장소를 놓고 논쟁을 벌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 제3국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가상공간에서 협상할 때에도 홈그라운드 이점이 존재할까? 비록 나는 내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가상현실 속 내 아바타는 협상 대상자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오피스를 방문해서 협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고객 최우선주의와 공정서비스를 디자인으로 구현하기

    그렇다면 가상스토어에서 심리적 파워는 인간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서비스 분야에서 고객의 부당한 행동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비행 승무원에게 폭행을 가하고, 백화점 종업원에게 무릎을 꿇게 한 사건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고객 ‘갑질’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어느 기업은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정서비스 안내문을 매장 입구에 부착하였다. 이는 ‘고객이 왕이다’ 또는 ‘고객이 항상 옳다’는 기존 서비스 정신과는 상반되는 행동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기 도 하였다.


    사실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고객을 왕으로 보는 관점은 고객이 느끼는 파워 수준을 높여 비도덕적 행동을 유도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리적 파워가 높은 사람이 야외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침을 뱉는 등 비윤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따라서 관점을 바꿔 고객을 왕이 아니라, 애정으로 따뜻하게 돌봐줘야 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바라보는 편이 고객 ‘갑질’ 문제 예방과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에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공정서비스 활용

    가상스토어에서 고객의 파워 수준을 통제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먼저 가상공간의 매장에서도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하게 공정서비스 안내문을 입구에 부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밖에도 가상공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VR기기에서 사용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절하여 고객이 아래에서 위로 직원을 바라보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최근 노트북 화면의 각도를 달리하여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보는 정도를 조작함으로써 인간이 느끼는 파워 수준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노트북 모니터의 각도가 90도, 70도, 50도로 작아질수록 사용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면서 심리적 파워 수준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광고를 보는 시간이 짧아지고 기억력도 낮아졌다. 가상현실에서는 사용자가 특정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과 각도를 비교적 용이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고객 파워를 통제하는 또 다른 전략으로 가상스토어에 근무하는 직원 아바타의 크기를 고객 아바타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도록 하여 어른과 아이의 관계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홈그라운드 이점을 알고 협상에 임해라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의 협상은 어떨까? 내가 직접 만들고, 주로 활동하는 공간으로 상대를 초대해서 협상을 진행할 때에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효과는 어떤 메타버스 플랫폼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실세계를 완전히 잊을 정도로 실재감이 높은 몰입형 가상환경, 즉 HMD와 같은 VR기기를 착용한 후 VR챗과 같은 공간에서 협상을 벌인다면 협상 결과가 방문자보다 거주자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게더타운, 제페토와 같은 비몰입형 가상공간에서는 각자의 사무실에 놓인 PC 또는 스마트 기기로 접속한 후 상대가 만든 가상의 오피스를 방문하는 형태일 텐데 이 경우에도 협상의 위치 효과가 발생할지는 의문이다. 내 책상과 PC가 주는 협상의 자신감으로 인해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거나 사라질지도 모른다.



    가상으로 만지고 느끼고 소유한다는 것

    긍정적 스킨십으로 만족스러운 가상 경험 설계하기

    아바타 간 스킨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연구가 있다. 바로 2020년 쉬코브니크(Sykownik)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가상현실에서 아바타간 사회적 접촉에 따른 인간의 반응 연구이다. 이 연구는 가상공간에서 만난 이성 아바타와 여섯 가지 유형의 스킨십을 할 때 느끼는 감정적 반응, 즉 안도, 행복, 욕망, 불안, 혐오, 두려움의 차이를 분석하였다. 특히 스킨십의 수위와 방향, 성별이 감정적 반응 차이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세 변수에 차이를 둔 다양한 조건에서의 결과를 비교 분석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자신을 닮은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현실에서 이성의 아바타와 만나서 2회의 스킨십을 한 후 감정적 반응을 묻는 질문에 응답하였다. 두 번의 스킨십 중 한 번은 하이파이브, 주먹 인사, 어깨 두드리기 등과 같이 수위가 낮았고, 다른 한 번은 팔 쓰다듬기, 얼굴 쓰다듬기, 포옹과 같이 수위가 높았다. 참가자는 HMD와 아바타 동작 컨트롤 기기를 착용하였으며, 아바타가 접촉하는 부위에 충돌 센서를 부착하여 접촉이 생길 경우 유사 자극을 전달받도록 하였다.


    아바타 접촉이 주는 불쾌감

    비록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통계 데이터 분석으로 검증한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알아보는 탐색적 성격의 연구이긴 하지만, 이 실험은 가상현실에서 인간이 사회적 접촉에 보이는 반응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선도적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가상공간에서 사회적 접촉을 어떻게 설계해야 한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고려해야 하는 세 요소, 즉 스킨십의 수위·방향·성별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스킨십을 할 때 불쾌감을 느끼는지 안다면 법적 이슈가 되고 있는 성추행 문제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바타 간 상호작용과 가상체험 몰입 정도

    가상 체험은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할 때 더 나을까? 2019년 허드슨(Hudson)교수 연구팀은 가상의 바닷속 생태계 체험을 할 때 타인의 아바타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노는 것과 혼자 조용하게 체험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가상체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는 프랑스 국립해양생물센터(National Marine Life Center)에서 새로운 VR체험을 준비하면서 진행된 현장 실험이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VR 기기를 착용하고 수중 동식물을 구경하고 레이저 빔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연구자들은 외부 세계를 잊고 온전히 가상세계에 빠져드는 실감형 몰입을 제공함으로써, 가상 경험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이때 여러 아바타가 존재하여 사용자들이 상호작용한다면 실감형 몰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일단 체험 그룹에 상관없이 실감형 몰입의 증가는 체험 서비스의 만족도와 충성도에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감형 몰입도가 높을 때에는 여러 명이 동시에 체험하는 상호작용 활동이 만족도와 충성도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지 않은 반면, 몰입도가 낮을 때에는 만족도와 충성도를 모두 높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실감형 몰입도가 낮은 PC 기반 가상체험의 경우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을 독려하여 체험 만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제페토, 로블록스, 게더타운과 같은 비몰입형 가상현실 플랫폼을 이용해 박물관, 미술관 등을 구축할 때 현실과 최대한 비슷한 공간 디자인을 도임하여 실감형 몰입을 증가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바타가 함께 퀴즈를 맞추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체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HMD, 햅틱 기기 등을 착용하고 실감형 몰입도가 높은 가상공간을 디자인하는 경우,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체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실감형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가상현실에서 누구와 상호작용하는지는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즉, 체험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가족, 지인과 같이 사회적 관계 유형에 차이가 있더라도 체험 평가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촉각 자극은 물리적 환경 요소뿐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적 환경 요소로도 전달된다. 가상세계에서의 접촉과 상호작용이 현실세계에 비해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촉각의 자극이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가상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보다 만족스럽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온도는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

    고객의 호감을 얻는 따뜻한 목소리

    가상현실에서 전달하기 힘든 촉각 정보를 제외하고 체감온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자극을 활용할 수 있을까? 2016년 휘브너(Hüebner) 연구팀은 조명 색 온도가 체감온도 인식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참고로 색의 온도는 켈빈(Kelvin)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며 숫자가 커질수록 체감온도는 낮아진다.


    연구자들은 조명 색 온도를 낮추면 체감온도가 증가하여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였다.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다른 색 온도의 조명 2700K와 6500K에 각각 노출한 후 체감온도를 질문하고 옷 입는 양을 관찰하였다. 그 결과 조명 색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참가자들의 체감온도는 증가했다. 이는 실내 온도를 24도에서 20도로 낮췄을 때와 20도에서 24도로 높였을 때 모두 동일하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조명 색의 온도에 따라 옷 입는 양을 확인한 결과, 조명 색 온도가 높아지면 추위를 느껴 추가로 옷을 입는 사람의 수가 증가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촉각 정보의 변화 없이 시각 정보의 변화만으로도 체감온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메타버스 가상스토어에서 조명 색 온도를 낮추면 체감온도가 증가하여 동조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는 브랜드 인기도를 활용한 광고 효과가 증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가상스토어에서 아바타용 겨울옷을 판매할 때 높은 색 온도의 조명을 활용하며 잠재 구매자가 추위를 느껴 매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다.


    광고에 알맞은 목소리 높낮이는 따로 있다

    이번에는 시각이 아닌 청각 정보가 체감온도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자.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높은 목소리 톤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우리는 대화 상대의 낮고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너무 차갑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는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따뜻함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로봇의 경우에도 목소리가 높을 때 사회성(social skill)이 뛰어나고 유쾌하다고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라디오 광고에서 목소리 높낮이를 달리할 경우 각각 따뜻함 또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두 유형의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따뜻함이 중요한 서비스로 노인 돌봄 서비스를, 능력이 중요한 서비스로 금융 서비스를 각각 선정하였으며, 광고에서 목소리 높낮이에 변화를 준 후 광고효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노인 돌봄 서비스는 높은 목소리일 때, 재무 서비스는 낮은 목소리일 때 광고 효과가 좋았다. 이는 ‘높은 목소리=따뜻함’이라는 기억 연상의 연결고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높은 목소리 톤이 항상 평가에 유리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이로 볼 때, 가상공간에서도 따뜻함이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한해서 높은 목소리의 광고와 메시지를 활용해 동조 효과를 고려한 ‘다수의 선택’을 강조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현실의 온도와 가상세계 호감도의 관계

    아무리 매력적으로 구축된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현실 공간의 온도가 적절하지 못하면 공간 체험의 만족도, 탐색 범위와 집중도에 부정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만약 가상체험을 하는 실내 공간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힘들다면, 비몰입형 가상공간에서는 실내조명의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몰입형 가상공간에서는 가상공간 내 조명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체험자가 지각하는 신체 온도에 영향을 줄 필요가 있다. 또한 가상 체험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가상 캐릭터의 목소리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언젠가 액추에이터(Actuator)를 통해 온도를 포함한 모든 촉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테슬라슈트와 같은 VR슈트가 상용화된다면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감각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액추에이터 없이 신경에 전기 자극을 전달함으로써 뇌를 속이는 인공 감각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촉각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개인 맞춤형 자극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뇌에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공 감각 기술들이 상용화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그 전에는 시각과 청각 정보의 변화로 체감 온도를 조절해 긍정적 평가를 유도하는 전략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따뜻함-정서적 가까움-물리적 거리감소와 같은 언어적 은유에서 오는 기억의 연결고리를 잘 이해하면 제약 조건이 있는 가상현실에서도 의외로 좋은 마케팅 전략을 고안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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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