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3
 
지은이 : 김난도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22년 10월




  •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 관계, 일터, 공간, 나이……모든 것이 재정의됩니다! 매우 부정적인 전망이 압도하는 2023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살펴 보세요!


    트렌드코리아 2023


    2022 대한민국

    나노사회로의 전환

    2022년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이 나노 단위로 분해되고 쪼개진 한 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정세는 자국에 이익이 되는 국가끼리 뭉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사회 내부도 성별·나이·직업 등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장을 구성하는 단위도 계속해서 작아졌다.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되고 개인 맞춤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이 기회를 얻었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나노화됐다. 결혼 대신 비혼을 선택하고, 조직에 소속되기보다 혼자 일하는 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 모든 변화의 결과로서 구성원 사이의 공통분모는 계속해서 작아지며 사람들의 가치관은 점차 ‘나 중심’으로 변해갔다.


    나노공동체: 분열된 집단

    “지난 30년간 우리가 경험해왔던 세계화는 끝났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2022년 3월,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 담은 메시지다. 1990년 이후 진행된 세계화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우리는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세계화의 종식은 곧 국가 간의 분열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이들의 대립은 곧 미국·유럽·일본·한국 등을 포함한 자유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북한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이어져 ‘신냉전 시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대만과 중국의 갈등, 미국과 중국 간 대립 등 그간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던 세계는 자원·외교·안보를 중심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국내 정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22년 9월 열린 ‘2022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 공유 콘퍼런스’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가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정치적 분열 해소’를 꼽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내부 계파 갈등이 끊이지 않고, 주요 당직자들은 결집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고 해서 ‘X맨’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어느 해보다도 ‘분열’이란 단어가 한국 정치면에 빈번하게 등장한 2022년이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국민들마저도 서로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하는 집단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성별·직업·나이 등으로 쪼개진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날을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특정 집단의 매장 입장을 금지하는 ‘노OO존’이다. 아이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 반려동물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펫존’에 이어 서울의 한 캠핑장에서는 중년층의 입장을 금하는 ‘노중년존’을 공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성별을 둘러싼 갈등도 극에 달했다. 2021년 12월, <헤럴드경제>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은 남녀 갈등(3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을 둘러싼 갈등은 언어에도 반영됐다. 예컨대 한 잡지사에서 2021년 12월,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5대 신조어 중 하나로 선정한 ‘퐁퐁남’, ‘설거지론’과 같은 단어는 사회에 만연한 남녀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순진한 남성이 결혼 전 연애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게 될 때, 해당 남성을 ‘퐁퐁남’이라고 지칭하고 이런 결혼을 ‘설거지 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미혼 남성들은 “기혼 남성이 여성에게 호구 잡혀 산다”고 조롱하고, 기혼 남성들은 “설거지론은 외모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도태남들의 열등감 표현”이라며 서로를 공격한 것이다.


    나노자아: 혼자를 지향하는 개인주의 가치관

    가치관 측면에서도 집단에 동조하기보다는 개인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언론사 <뉴시안>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2022년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MZ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개인주의(61.8%)’가 선정됐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한다(48.3%)’,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회피한다(31.3%)’는 응답도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당신을 존중할 테니 나도 존중해달라”는 뜻으로, 타인의 평가와 영향력에서 벗어나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다. 나노사회와 나노시장으로부터 촉발된 개인화 경향이 개인주의 가치관으로까지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나노가족의 등장과 고독사회

    ‘우리’를 중시하는 가족에서조차 개인주의 가치관이 강화된다. 혼자 사는 가구가 증가하고, 가구원 수는 점차 감소하며, 함께 산다고 해도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지 않는 ‘나노가족’이 한국 가족의 보편적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족 단위의 미세화, 가족 구조의 다양화와 함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회적 고립도는 인적·경제적·정신적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22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2년 전 조사보다 6.4%p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27.2%를,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응답도 20.4%를 기록하며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외로움에 근간한 ‘고독사회’의 등장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투자 시대 생존법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미국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국 성인에게 물었다. 14개국 국민은 ‘가족’을 꼽은 반면, 유일하게 한국 국민은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여기서 물질적 풍요란 충분한 수입, 빚이 없는 상태, 음식과 집 등을 의미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상위권을 오른 ‘직업’이나 ‘친구’, ‘취미’는 순위 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시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해서였을까? 투자 환경이 급격하게 위축됐던 2022년도 ‘머니러시’는 계속됐다. 고공행진 하는 금리와 오르지 않는 월급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투자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머니러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일지도 모른다. 코난테크놀로지의 분석에 따르면 ‘레버리지/빚투/영끌’ 이슈어 분석에서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불안과 같은 단어들의 언급량이 많았다. 요동치는 경제 상황 속에서 불안한 소비자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재테크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투자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한 해였다. 부동산 시장, 가상자산 시장, 주식 시장 할 것 없이 모두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2022년 7월 전국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해 주택 구매에 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양상을 보였으며, 가상화폐 ‘루나’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며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대다수 소비자는 공격적인 재테크를 잠시 접어두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투자 방법으로 우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안전자산으로 돌아오기

    저금리 시기에는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2022년 하반기에 접어들어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예·적금 상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불과 1년 만에 재테크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금리 상승 기조가 계속되고 증시가 폭락하자 안전한 투자처를 찾으려는 ‘역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비자들은 발 빠르게 위험자산과 손절하고 안전자산으로 이동했다.


    경제가 불안하면 소비자는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유동적인 경제 상황에 맞춰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자산 상품을 기존보다 짧은 호흡으로 재편한 금융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상품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파킹통장’이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시기에 사람들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을 이용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꾀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월이자 지급식 채권’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개인투자자의 수요에 맞춰 통상 3개월 주기였던 이자 지금 시기를 1개월로 단축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롯데카드·롯데캐피탈, 신한카드, 메리츠캐피탈 등이 잇따라 월이자 지급식 채권을 발행하면서 해당 분야의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마저 나타났다.


    일부 소비자는 국내외 증시 폭락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특히 무리하게 빚을 내 일확천금을 노린 2030세대의 피해가 막중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구매한 일명 ‘영끌족’ 또한 역풍을 맞고 있다. 집값은 내려가고, 금리는 올라가는 상황에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편,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단기 고수익을 좇는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전통적 대형주보다 단기간에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밈(meme) 주식(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에서 화제가 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갑작스럽게 몰리는 주식 종목)’ 열풍이 다시 분 것이다.


    * 소액으로 투자하기

    경기 침제가 전망되면서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재테크 시장 속에서 ‘소액 투자’만이 활기를 띠었다. 비싼 주식을 0.1주, 0.01주와 같이 소수점 단위로 쪼개 구매하는 ‘소수점 거래’나 현물을 소액으로 나누어 투자하는 ‘조각투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수점 거래는 투자 자본이 넉넉하지 못한 투자자에게 고가 주식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며,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각화를 용이하게 한다는 이점이 있다. 소수점 거래는 투자자가 소수점 단위의 주문을 하면 증권사가 주문을 취합해 부족한 부분을 채운 뒤 거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022년 8월 말 기준으로 소수점 거래를 사용한 국내 투자자 수는 100만 명이 넘었다. 이 가운데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2030세대가 70%를 차지했다.


    소액 투자는 비단 주식 거래뿐 아니라 현물 재테크에서도 나타났다.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코리아’의 경우 상업용 빌딩과 부동산 소유권을 댑스(DABS)라는 증권 형태로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투자자는 지분에 비례해 임대 수익을 배당받으며, 부동산이 매각되면 차익을 나눠 갖게 된다.


    덕테크

    자신만의 취미 활동인 ‘덕질’도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다. 타인과 고립되어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드는 행위인 덕질에 대해 기존에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즐거움·행복·열정과 같은 긍정적 정서와 결부된 행위로 여겨지며 하나의 능력인 ‘덕질력’으로까지 인정받는다.


    * 좋아하는 대상에 투자하기

    원하는 것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MZ세대를 필두로 덕테크의 범위가 나날이 확장하고 있다. K-콘텐츠 투자 플랫폼인 ‘펀더풀’은 온라인 소액 공모 형식으로 영화·공연·전시·드라마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문화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중개 서비스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애정, 투자 과정에서 오는 재미가 만났을 때 소비자는 덕테크에 합류하게 된다.


    문화 콘텐츠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술품도 2022년 재테크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미술품 시장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자신의 취향에 적극적인 MZ세대가 경제인구로 성장하면서 디지털 세대 컬렉터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NFT 예술이 주목받았다. 기업들 역시 발빠른 대응으로 덕질을 겨냥한 NFT 시장에 합류했다. 롯데홈쇼핑은 자체 캐릭터 ‘벨리곰’에 멤버십 혜택을 연계한 NFT를 발행했으며, LGU+ 또한 자사 대표 캐릭터인 ‘무너’를 활용한 NFT를 발행했다. 아트 마케팅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시몬스 침대도 아티스트 3인과 자사의 2022년 브랜드 캠페인을 NFT 작품으로 발행했다.


    이러한 덕테크의 재미, 희소성, 특별함은 유통업계에서 집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매번 화제가 되는 더현대서울의 팝업스토어는 ‘진로 1924 헤리티지’ 팝업으로 다시 한 번 소비자를 ‘소주런(소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행위)’하게 만들었다. 아직 판매되지 않은 신상품에 대한 선점 욕구, 래플을 통한 구매 자격 부여라는 장치는 10만 원대 소주를 모두 완판시켰다. 한편, 신한카드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드로우, 래플 등 추첨식 프로모션에 익숙한 요즘 소비자를 겨냥한 ‘신한카드 래플’을 출시했다. 월마다 추첨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덕테크는 수고를 더 들이더라도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본주의 키즈의 새로운 소비법을 보여준다. 이들만의 어법으로 대상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인 것이다.



    2023 트렌드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평균 실종

    평균이 사라지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보통, 일반적으로, 대게, 평균적으로 OO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개인의 삶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평균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무난한 상품,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됐던 것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규정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의 가치가 제각각 인정받으면서 평균적인 생각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양극화: 중간이 사라지다

    *자본주의의 숙명, 양극화

    소비자가 양분되다 보니 시장도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초고가 혹은 초저가를 찾는 소비자는 늘어난 반면, 중간 수준의 제품을 고려하는 소비자는 줄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와 미국판 다이소인 달러트리는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78%, 43% 상승하여 호황을 맞이했지만, 대형마트 체인 월마트는 18.2% 감소했다.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거나’의 경쟁 속에서 중간대의 가격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가 위축되면 소비자는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양극단으로 자원을 선택·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불황형 소비인 ‘짠테크(짜다+재테크)’ 열풍이 다시 불면서 무엇이든 필요한 만큼만 쪼개어 쓰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5,000원 미만의 모바일 상품권을 거래하는 경우가 급증했고, 외식비용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22년 1~7월 대형마트의 간편식사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시장 또한 뜨고 있다. 다른 분야에선 아낀 비용을 작지만 특별한 경험을 얻는 데 쓰는 것이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1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의 빙수, 1인당 20만 원이 넘는 한우 오마카세, 1박에 100만 원을 호가하는 특급호텔 스위트룸 등이 성황을 누리며 ‘스몰 럭셔리’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다.


    콘텐츠의 길이 역시 ‘숏폼’과 ‘롱폼’으로 양극화되는 모양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으로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숏폼 콘텐츠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2022년 1분기 틱톡 이용자의 월평균 사용 시간이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늘며 유튜브 이용자의 월평균 사용 시간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렇다고 긴 호흡의 롱폼 콘텐츠를 즐기며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개봉한 영화들의 러닝타임은 2시간은 기본, 3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긴 글 콘텐츠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블로그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네이버에서 새로 개설된 블로그 수는 200만 개, 생성된 콘텐츠는 3억 개에 달한다. 2020년 대비 무려 5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전망 및 시사점

    *‘개개인성’의 시대가 온다

    평균이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어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성적표를 받듯 자기 소득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평균치와 비교하곤 한다. 평균을 넘으면 안심되고 평균에 못 미치면 불안감을 느낀다. 때로는 이러한 비교가 자기반성과 동기부여라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현대사회에서 이것이 과연 적절한 방법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 로즈 박사는 사람들을 정규분포상의 한 점으로 평가하는 ‘평균주의’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 ‘개개인성’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평균’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할 때

    특정한 타깃을 공략해야 하는 기업 및 기관에게 평균 실종 트렌드는 이제 ‘안전한 전략’을 찾기 어려워질 것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기업들은 대중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영어의 ‘mass’는 정확한 형체를 가지지 않는 하나의 큰 덩어리라는 의미로, 대중 시장에서 대상은 뾰족하게 구체화되지 않은 ‘누구나’다. 양극·N극·다극의 사회에서 무난함·적당함이라는 수식어는 애매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취해야 할 전략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양극단의 방향성으로 한쪽으로 색깔을 확실히 하는 ‘양자택일’ 전략, 소수집단(때로는 단 한 명)에게 최적화된 효용을 제공하는 ‘초다극화’ 전략, 마지막으로 경쟁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생태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승자독식’ 전략이다.


    트렌드 격변의 시대는 이제까지 우리가 정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방증일 것이다. 평균도 마찬가지다. 이제 평균적인 무난한 생각, 평범한 상품, 괜찮은 서비스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 평균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정규분포로 상징되는 기존의 대중 시장이 흔들리면서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이 필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평범하면 죽는다. 근본부터 바뀌고 있는 산업의 지형도에 맞춰, 각자의 핵심 역량과 타깃을 분명히 하여 새로운 전략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별해야 한다. 평균을 뛰어넘는 남다른 치열함으로 새롭게 무장할 때 불황으로 침체된 시장에서 토끼처럼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Born Picky, Cherry-sumers 체리슈머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세계경제 전체가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 심리도 급속히 악화되며 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러한 악재 속에 실속 소비자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욕망은 넘쳐나는데 자원은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해 절약을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정해진 소비 방식을 그대로 쫒기보다는 거리낌 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지출을 선택한다. 비용 대비 효용을 극도로 추구하는 현상이 오늘날의 시장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소비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흔히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겨가는 사람을 ‘체리피커’라 부른다. 케이크 위에 올라간 달콤한 체리만 쏙 빼먹듯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챙긴다는 의미의 비유다. 실속만 챙기는 체리피킹은 그동안 소위 ‘먹튀 소비자’ 일부의 문제라고 여겨져 왔는데, 최근 그 방식이 진화하며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실속 소비 경향이 젊은 층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체리슈머, 알뜰소비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한층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들이 만들어가는 시장의 모습도 새롭게 탈바꿈되고 있다.


    체리슈머의 세 가지 소비 전략

    * 조각내어 산다, 조각 전략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만 소량 구매하는 조각 전략을 실천한다. 가장 대표적인 상황이 장보기다. 체리슈머는 개당 가격은 대용량 포장 제품이 더 저렴한 것을 알면서도 소포장을 더 선호한다. 당장 지출되는 비용이 적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다익선의 반대인 소소익선을 추구하는 셈이다.


    체리슈머의 소포장 사랑은 ‘편의점 장보기’로 이어진다. 김밥이나 도시락 등 간편식만 파는 편의점은 이제 옛말이다. 4분의 1통 양배추는 900원, 깻잎 두 묶음은 1,000원에 파는 편의점에서 1~2일 치 장을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맥주나 주류 판매에서도 소용량이 인기다. 500밀리리터짜리 주류를 다소 부담스럽게 느끼는 소비자들은 혼자 가볍게 마시기 좋은 250밀리리터나 355밀리리터짜리를 선호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심지어 명품까지 조각내어 향유한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빈티지 럭셔리 단추 액세서리’가 있다. 명품 액세서리를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대신, 명품 의류의 빈티지 단추에 부자재를 달아 귀걸이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중고거래 플랫폼에 ‘샤넬 단추’나 ‘루이비통 단추’ 등 명품 단추를 판매한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디자인과 색상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7개에 40~70만 원대로 거래된다. 이러한 타이니 럭셔리는 체리슈머의 조각 전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산다, 반반 전략

    꼭 사고 싶지만 혼자서 비용을 전부 지불하기엔 부담스럽고, 조각내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이럴 때 소비를 능동적으로 관리할 줄 아는 체리슈머는 비용과 효용을 나눌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선다. 실제로 치솟는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입주민들이 함께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입주민 오픈채팅방에 “중국음식 드실 분?”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주문하고 싶은 2~3가구가 참여해 각자 원하는 음식을 시키고 배달비는 N분의 1로 나눠서 주문한 사람에게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고자 당근마켓은 2022년 7월에 동네 이웃들이 모여서 같이 사고 나누는 ‘같이 사요’ 서비스를 론칭했다. 이웃과 함께 사고 싶은 물건이나 이용하고 싶은 서비스가 있을 때 “같이 사과 한 상자 사서 나누실 분”과 같은 게시물을 올리고 최대 4명까지 모아 공동구매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현재 서울 관악구·강동구 등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향후 서비스 지역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 유연하게 산다, 말랑 전략

    체리슈머의 마지막 전략인 말랑 전략은 장기 계약의 노예가 되어 매달 일정 비용을 지출하느니,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계약해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해지할 수 있는 유연한 계약을 통해 소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지출의 자유’를 만끽하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유연한 계약 조건은 장기 계약에 비해 추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리슈머는 이조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추가적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계약의 재량을 보장받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계약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증가함에 따라 업계에서도 이를 지원하는 정책을 부지런히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중 구독 경제 분야에서의 말랑 전략이 가장 돋보인다. 매월 정기적으로 결제되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구독료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본전을 뽑을 수 없는 구독 서비스는 과감히 해지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결제하여 사용하는 징검다리식 구독 전략을 구사한다. 기존의 구독 서비스가 가성비나 새로운 경험 등의 혜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체리슈머에게는 ‘유연한 관리’라는 키워드가 덧붙는다.


    매달 소믈리에가 엄선한 전통주를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 ‘술담화’에는 ‘쉬어가기’ 옵션이 있다. 이번 달의 술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지난달에 받은 술이 아직 남아 있으면 건너뛸 수 있는 것이다. 매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구독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체리슈머에게는 언젠가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장기간 꾸준히 지불하는 보험료도 부담스럽다. 이에 보험 업계도 필요할 때마다 단기간 단위로 가입하고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등 합리성을 강조한 ‘미니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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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