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닐 수 있다
 
지은이 : 이근상 (지은이)
출판사 : 몽스북
출판일 : 2023년 09월




  • 마케팅이 시장을 흔들던 시대는 끝나고, 브랜드 본질의 시대로 돌아왔습니다. 제대로 된 본질이 없다면 그 무엇의 도움도 소용이 없는 오늘날, 본질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잘 만들기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전합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닐 수 있다


    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닐 수 있다

    진정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브랜드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한 것인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브랜드가 진정한 브랜드인지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 10가지 질문에 답해 보자. 그중 몇 가지에 해당되어야진 정한 브랜드인가를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로 가는 길 의 어느 부분에 당신의 브랜드가 위치해 있는지 판단하는 척도로 쓰면 좋을 것이다. 현재 위치한 곳에서 그다음 질문에 답하기 위한 행동을 준비하면 된다.


    1. 당신의 브랜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형용사가 있는가?

    2. 그 형용사가 너무 범용적이어서 브랜드의 자산이 되기 어렵지 않은가?

    3. 그 형용사는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된 인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인가?

    4. 그 차별화된 인식은 소비자나 고객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인가?

    5. 차별화된 인식을 만들어가기 위한 (적어도) 3년 이상의 계획이 있는가?

    6. 브랜드가 소비자의 삶과 성공적으로 연결된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가?

    7. 브랜드에 관한 모든 의사 결정은 차별화된 인식을 기반으로 한 것인가?

    8. 매출 증대를 위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무관한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9. 브랜드와 관련된 의사 결정 구조는 단순하며 일관성 있는가?

    10. 조직 구성원 전체가 브랜드의 개념과 정체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브랜드는 사람이다

    브랜드에 관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명확하게 설명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저마다 생각하는 ‘브랜드’의 정의도 조금씩 관점이 다르다.


    브랜드를 제대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품(또는 서비스)과 브랜드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개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장에서 생산된(또는 현장에서 제공되는) 무엇인가가 제품이라면 그에 대해 소비자나 고객이 갖는 인식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패턴을 만들고 기능성 옷감을 이용해 만들어진 바람막이 재킷은 제품이고, 그 위에 붙은 로고(좁은 의미의 브랜드)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인식이 브랜드이다. 그 인식은 광고 등을 통해 수용된 메시지, 브랜드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 등을 통해 쌓인 것이다. 마치 바닷새가 나뭇잎, 지푸라기, 해초, 타액 등을 사용해 새집을 만드는 과정처럼 인식이 만들어지게 되고, 새집이 그러하듯 멀리서 보면 그 인식은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된다. 브랜딩이란 그렇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 즉 새집과 같은 하나의 인식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를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한 터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명제로 브랜드를 정리해 보겠다. ‘브랜드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사람을 키우는 일과 같다.’를 줄여 말한 것이다. 아이를 낳아 원하는 인간상으로 키워가는 과정이 브랜드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은 아이를 낳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브랜드의 비전, 즉 소비자나 고객이 이 브랜드에 대해 가지길 바라는 인식(desired perception)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동기 부여 등을 통해 ‘그렇게’ 성장하도록 지원한다. 이것이 마케팅과 브랜딩이다. 이 개념만 이해하고 나면 많은 문제들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



    DNA가 없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브랜드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리면,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을 그대로 브랜드에 대입해 생각보다 쉽게 브랜드와 관련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실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인식(perception)’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식’을 매개체로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제품이나 서비스의 단계를 넘어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브랜드를 사람으로 치환해 보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는지 생각해 보자.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을 잘 사주는 사람’, ‘곤란한 일을 척척 해결해 주는 사람’ 등의 긍정적 형용사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도 그 대상이고, ‘지적질을 일삼는 사람’, ‘밥값을 잘 내지 않는 사람’, ‘약속에 잘 늦는 사람’ 등의 부정적 딱지를 붙일 수 있는 사람도 그 대상이 될 것 이다. 전자와는 긍정의 관계를 맺고 후자의 사람들과는 부정의 관계, 즉 의도적 회피나 절연 등을 하게 된다. 나머지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다. 내 삶에 필요한 브랜드란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 같은 것이다.


    DNA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키, 생김새, 마음씨, 행동 방식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이다. 이것이 ‘인식’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브랜드에도 이러한 DNA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전적 마케팅에 서는 이것을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콘셉트, 포지셔닝 등으로 표현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굳이 DNA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실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미지나 포지셔닝도 실체가 없이 만들어지기는 힘들지 만, 실체보다는 어떤 인식이 마케팅에 유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1980년대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이기기 위해 (실제로 이겼다.) 자신들을 “he choice of next generation”이라고 자리매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과연 펩시콜라의 어떤 점이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이 대대적으로 펼친 광고 캠페인 이외에는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그 당시는 그런 것이 가능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체 없는 이미지나 자리매김은 지속되기 어렵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라고 부르는 DNA는 ‘삶의 어떤 순간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할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작지만 중요한 실마리 하나를 찾아서 그것을 확대하고 강화해 자신만의 DNA로 만들어야 한다.



    만든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라

    “조그만 플랜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나 지식 측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기존의 화원에 비해 식물의 종류나 수형, 화분 같은 것을 차별화해서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요즘,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듭니다.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진심을 담아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로 만들어낸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상대방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의 무게 중심이 생산자에서 소비자 쪽으로 점점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자는 점점 늘어나고 소비자나 고객의 니즈는 세분화하고 전문화하여 간다. 단순히 ‘내 제품은 정말 좋은데’라는 주장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마케팅을 오래 한 전문가들도 ‘소비자’와 ‘고객’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그 차이를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을 못 하기도 한다. 소비자는 영어의 consumer를 번역한 단어이고, 고객은 customer의 번역이다. ‘consume’이라는 단어에서 ‘sume’은 써버린다는 뜻을 가진 어근이다. 함께 써버리는 것이 ‘consume’이니 써서 없어지는 것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사람을 소비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반면 ‘custom’이라는 단어는 관습, 습관처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니 ‘customer’는 주기적으로 찾아주는 사람, 고객이라는 뜻이 된다. 소비재를 주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을 고객이라 부르지 못할 것은 없으나, 주기적으로 점포를 방문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고객이라 부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자긍심이나 애정은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나 SNS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핵심 메시지를 생산자의 관점에서 써놓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20년 장인의 손길이 탄생시킨’,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진’과 같은 것들이다.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만으로 요즘 소비자나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 좋은 재료로 장인 정신을 발휘하여 제품을 만든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런 메시지를 쓸 수 없는 상황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만 잘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잘난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상투적인 수식어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자신의 브랜드가 소비자나 고객의 삶 속에서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내가 이렇게 잘났다’고 말하기보다 ‘당신의 삶 속에서 나는 이런 의미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스포츠 브랜드의 양대 산맥인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슬로건을 보라. 하나는 ‘Just Do It’이고 또 하나는 ‘Impossible is nothing’이다.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추구하는 스포츠 정신을 외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이런 소비자 관점의 브랜드 메시지를 광고주에게 제안했을 때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가 해도 되는 보편적 가치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로 치환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친구가 되었건 연인이 되었건, 당신 앞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과 당신이 바라는 관계의 핵심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중 누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가? 생산자의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관점으로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전자 기타 시장의 양대 산맥인 깁슨과 펜더라는 두 브랜드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 살펴 보자.


    2000년대 들어오면서 전자 기타 업계는 급격한 판매 감소로 위기를 맞는다. 실제로 깁슨은 2018년 파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반면 펜더는 깁슨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펜더가 2015년 실시한 소비자 조사 결과, 펜더 전자 기타 매출의 50% 이상은 초보자들로부터 나오고, 초보자들의 90%가 석 달 안에 기타 배우기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펜더는 전자 기타 제조 기업에서 기타 초보자들이 기타를 쉽고 재미있게 배워서 오랫동안 기타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2017년 7월 구독형 기타 레슨 플랫폼인 ‘펜더 플레이’를 론칭했다. 펜더 플레이에서는 매달 9.99달러만 내면 수백 개의 기타 레슨 영상을 볼 수 있다. 기존의 고가 기타 라인을 유지하면서 여성 초보자들을 위한 화려한 디자인의 저가 모델도 출시했다. 앱 사용자는 100만 명 이상으로 늘었고, 기타 매출도 2020년 7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소비자의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가 ‘나무사이로’라고 생각한다. ‘나무 사이로’는 2002년 서울 신림동에 문을 연 작은 카페였는데,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 생두를 직접 로스팅해 10여 종류의 원두는 물론이고 커피를 직접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드립백, 콜드브루, 캡슐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광화문과 분당에 카페가 있다.) 일단 전문성의 측면에서 보면, 2003년 직접 로스팅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생두를 직접 수입했으니 이 분야에서는 선도자라 할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양질의 생두를 선별해 로스팅한 결과 해외 매체로부터도 주목을 받기 시작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커피 가이드인 ‘커피리뷰’로부터 2015년 1등을 받기도 했다. 이 정도의 전문성을 가진 로스터리 카페라면 공급자 중심의 까다로운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갔을 법하다.


    하지만 ‘나무사이로’는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2016년 커피를 정기적으로 배달 받을 수 있는 ‘집으로 회사로’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커피 원두의 이름도 어려운 지역명이나 생산자명 대신 '‘디카프리오(디카페인 커피), 와이칸, 브릴리, 몽상스, 날아올라’ 등 소비자들이 쉽게 기억하고 접근할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나무사이로’라는 브랜드명도 친근감을 배가시키는 요소 중 하나이다. (김활성 시인의 시 ‘길’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한다.)


    ‘나무사이로’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드립백이다.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셔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회용 드립백은 썩 멋진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무사이로’의 드립백을 마셔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제대로 내리지 못한 핸드드립 커피보다 훨씬 커피 맛을 잘 표현한다.


    소비자의 편의성을 위해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은 전문성을 지키고 싶은 생산자로서 썩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품의 전문성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삼고, 그것을 즐기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브랜드를 잘 운영하고 있는 사례이다.



    브랜딩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착즙 주스 브랜드를 10년 정도 운영해 왔습니다. 재료의 구입에서 제조, 영업 등 모든 일을 혼자 해오다시피 하다 보니 현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브랜드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 하지만, 하루하루 일어나는 현장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브랜딩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브랜드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장기적 브랜딩과 단기적 문제 해결 사이의 갈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그날그날의 매출이 중요한 현실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브랜딩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브랜딩과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 사이의 균형점은 어떻게 찾는 것이 좋을까?


    다시 ‘브랜드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로 돌아가 보자. 사람에게 건강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적극적 의미의 건강과, 소극 적 또는 치료적 의미의 건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 즉 매일 아침 운동을 하거나, 몸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이나 건강 보조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는 행위 같은 것이고, 후자는 몸에 문제가 생기면 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아 해결하는 치료나 수술 등을 의미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목표대로 잘 성장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 건강 플랜과 방어적 관점에서의 치료 행위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이성적으로는 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후자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몸살에서 회복이 되어야 아침 운동 계획을 세우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대증적 요법으로 연명해 갈 것인가? 두 가지 일을 함께 해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머리가 아플 때 진통제를 쓰는 것이 맞는지, 쓰더라도 어떤 종류의 진통제를 쓰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인지 판단할 수 있다.


    일단 시간을 내서 장기적인 건강 플랜, 즉 브랜딩을 어떻게 해 갈 것인지 지도를 그려보자. 자신의 브랜드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하루이틀 시간을 내어 깊이 생각해 본다고 비즈니스가 망가지겠는가?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이다. 아니면 그 일이 너무 어려워 보여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헬스 클럽에 등록하거나 달리기를 시작하는 결심을 하기 전과 똑같은 상황이다.) 2014년의 일이다. 미국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브랜드 ‘파파이스’의 한국 캠페인을 맡게 되었다. 케이준이라는 미국 남부 특유의 소스와 치킨을 주재료로 하는 개성이 강한 브랜드였는데, 경쟁 패스트푸드 브랜드 대비 차별화되는 전략을 찾지 못해 고전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하는 첫 번째 행동은 ‘리딩 브랜드 따라 하기’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앞서가는 브랜드들이 하는 메뉴나 활동을 따라한다. 몇몇 매장에서 매출 상승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쓸 수 있는 마케팅 자원을 이런 일에 지속적으로 투입한다. 착시현상일 뿐이다. 그러다 만다. ‘그나마’ 있던 브랜드의 특성마저 흐려지는 결과로 돌아올 뿐이다. 당시 파파이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한국 시장 매장 상황에 어울리는 브랜드의 콘셉트를 제안하기 위해 주요 몇 군데를 관찰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주 고객층이었고,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매운맛의 스파이시 케이준 치킨버거였다. 매운맛 떡볶이, 닭발 등 스트레스 해소용의 자극적인 음식들이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당시 소비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적극적이고 직선적인 성향(스파이시한)의 20대 초중반 여성을 브랜드의 페르소나로 설정하고, ‘Girls, Be Spicy!’라는 타이틀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요 매장에 발언대를 설치하고, 주어진 질문에 대해 ‘스파이시한’ 발언을 하는 고객 대상 이벤트를 개최했다.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바이럴 영상으로 활용했다. 매장 내 포스터도 같은 콘셉트로 제작되었다. 첫 번째 이벤트가 열렸던 매장의 방문 고객수는 한 달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다. 다른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버거 대신 ‘누가, 왜 파파이스의 케이준 치킨버거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만들었다. 이 캠페인은 1년 정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괜찮았지만 이벤트의 효과가 전체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서지 않자 ‘과연 이 예산을 여기에 쓰는 것이 옳은가?’라는 반론이 영업 담당 부서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캠페인에 쓰인 예산의 상당 부분은 경쟁 브랜드에서 잘 팔리고 있는 신메뉴 개발과 할인 프로모션 홍보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렇게 캠페인은 흐지부지되었고,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브랜드는 2020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새로운 파트너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2022년 다시 론칭했다.) 얼마 전 브랜딩 작업을 함께 했던 작은 브랜드 하나도 파파이스의 사례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브랜딩이나 마케팅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이 적었기 때문에, 3개월에 걸쳐 단계별로 브랜딩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가장 먼저 생산자 관점에서 소비자 관점으로 브랜드 슬로건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고 난 후 그 메시지에 어울리는 브랜드의 룩 앤 필(Look & Feel)을 만들기 위해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개발하고, 그것을 패키지, 리플릿 등에 적용했다. SNS의 내용과 운영 방식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꿨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3개월 컨설팅 이후의 작업은 내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컨설팅 초기에 제안했던 브랜드 슬로건도, 비주얼 아이덴티티로 사용되었던 일러스트도 사라졌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굳이 다시 연락해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고, 해오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골프나 테니스와 같은 운동을 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혼자 터득한 잘못된 폼을 과감히 버리고 코치로부터 제대로 된 스윙법을 배워야만 한다. 한동안은 오히려 실력이 더 떨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스윙법이 몸에 익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 시기를 견뎌야 한다. 경험상 브랜딩에서는 그 시기를 1년, 3년, 5년으로 나눠 이야기한다. (업종이나 조직의 규모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브랜딩을 왜 해야 하는지를 받아들이는 데 1년, 그것이 자리 잡는 데 3년, 그 모습이 소비자나 고객에게 전달되는 데 5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 몇 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브랜딩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닥쳐올 문제들에 대비해야 한다. 지도를 마련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 지금은 필요하지 않은 짐들을 등에 지고 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길을 잃었을 때 조난당하지 않게 해주고, 비바람을 막아줄 거처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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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