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지은이 : 이근상
출판사 : 몽스북
출판일 : 2021년 12월




  • 광고 시장은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막대한 광고비와 매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은 거대 자본을 지닌 대기업 브랜드만이 엄두낼 수 있는 일이다. 그 광고 시장의 중심에서 일해 온 광고 기획자 이근상은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흐름이 이미 무너졌다고 선언한다. 

    큰 브랜드를 성장시켰던 그동안의 방식은 동력을 잃고 반대로 작은 브랜드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작은 브랜드는 큰 브랜드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큰 브랜드와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제시하고자 저자는 지금 관심 가질 만한 66개의 브랜드를 통해 작은 브랜드의 승리법을 설명한다.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성공의 개념을 바꾸자

    “일부러 작게 존재한다” #타라북스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는 데 평균 9개월 걸리는 출판사가 있다. 폐직물이나 헌 옷을 가공해 종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를 한 후에 손으로 꿰매 책을 만들기에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출판사로 알려진 타라북스(Tarabooks)의 이야기이다.


    타라북스는 남인도의 첸나이(Chennai)에서 20여 년 전 어린이 도서 전문 독립 출판사로 시작한 작은 출판사이다. 출판업의 중심지도 아닌 곳에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것도 느리게 만드는 작은 브랜드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타라북스라는 이름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우리는 작게 존재한다’라는 철학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팔리는 책을 기획하고 출판해서 양적 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내용의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작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공을 크기와 속도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빨리,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면 아름다운 책은 누가 만들까? 남보다 빠르고, 남보다 크게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성공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의 주제인 ‘작은 브랜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람도 나무도 일정한 높이까지는 위로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성장의 척도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높이의 성장이 어느 정도 완성되기 시작하면 이후의 키워드는 속도와 크기가 아니라 질과 깊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이 바로 ‘어느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브랜드의 구매 주체인 소비자가 변화하고 있고, 두 번째는 소비 경제라는 숲의 지속 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측면에서의 변화는 ‘원하는 것’(마케팅에서 사용되는 needs와 wants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쓰고자 한다)의 다양화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업그레이드되고 이는 다양화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대 구분의 기준이 되는 30년 전과 지금의 마트 풍경을 비교해 보면 그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두 종류에 불과하던 맥주는 수십 가지로 늘어났다. 맛도 다르고 제조 방법도 다르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맥주를 만들고 있지만, 누군가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맛이 뛰어난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판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몇 가지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나누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려면 속도와 크기를 기준으로 성공을 정의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타라북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누군가는 천천히 아름다운 것을 만들며, 일부러 몸집을 작게 유지해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기에 큰 브랜드는 여러 이유로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큰 브랜드는 크기의 성장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기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작은 시장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또한 수익이 예상되는 소비자 계층을 겨냥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한 큰 브랜드가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있는 ‘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소비 경제라는 이름의 숲도 이제는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의 소비 경제는 큰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크기의 성장을 위해 그런 숲의 구조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 숲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 군락이 생겨나야 한다. 그래야 숲이 건강해지고, 지속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이야기면서도, 막상 내가 그 대상이 되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계속 작은 브랜드로 남아 있으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기 어렵다.


    한 단계 수준 높은 소비 경제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성공의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모두가 한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가장 높이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 시절의 잣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면 속도에 상관없이 그 길에서 모두 일등이 될 수 있다.


    이미 브랜드의 성공을 정의하는 표현은 ‘점유율 1위의’, 시장을 주도하는‘, 1등을 위협하는’ 등의 순위를 나타내는 것 이외에도 ‘착한 소비를 위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등의 수식어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어떤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작은 브랜드가 성공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는 형용사는 무궁무진하다. 굳이 큰 브랜드에게 유리한 ‘크기’라는 잣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성공의 새로운 잣대를 마련하자.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라

    “방향을 틀어 선구자가 되는 길” #초바니

    2005년 미국에서 탄생한 초바니(Chobani)라는 요거트 브랜드가 있다. 이미 거대 브랜드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터키 출신 이민자인 함디 울루카야는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요거트가 자신이 고향에서 만들어 먹던 그릭 요거트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요거트라는 식품에 나름대로 경험과 철학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는 길이 보였던 것이다.


    당시 미국 요거트 시장에서 그릭 요거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요거트는 유산균 섭취를 위한 보조 식품이나 간식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양과 염소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초바니 요거트는 단백질 함량은 높고 탄수화물 함량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비만으로 고민하는 소비자나 단백질 공급원을 필요로 하는 채식주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초바니의 성장으로 미국 내 그릭 요거트 전체의 판매 비중도 함께 올라갔다. 초바니는 빅 브랜드인 요플레를 제치고 미국 요거트 시장의 2위 브랜드가 되었다.


    큰 브랜드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작은 브랜드에게 늘 따라붙는 악마의 유혹 같은 것이다. ‘길도 없는 곳으로 갔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라고 속삭이며 부추긴다. 큰 브랜드를 따라가면 마음은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멀어져 가는 앞선 자의 등을 바라보는 일 말고 새롭게 벌어지는 일은 없다.


    그렇게 할 용기가 없다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는 방증이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투철한 철학이 있다면 의지와 용기가 생길 것이며, 의지와 용기가 있는 자에겐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되어 있다.



    남의 힘을 이용하라

    “‘정신적 연대’를 이룰 브랜드를 찾다” #곰표

    ‘곰표 맥주’를 사기 어렵다는 기사를 읽고 동네 편의점에 가보니 정말 곰표 맥주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들어오는 대로 바로 다 팔린단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오래된 밀가루 브랜드인 ‘곰표’가 젊은 세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를 젊게 만들기 위한 시도를 했던 경험이 몇 번 있던 터라 이렇게 브랜드를 젊게 만들 수 있었던 캠페인 전략이 궁금했다. 캠페인이 탄생한 배경은 의외였다.


    2017년 곰표 밀가루의 브랜드 담당자는 큰 사이즈 옷을 전문으로 만드는 4XR 측이 곰표 측의 허락 없이 곰표의 디자인을 사용한 것을 발견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기업이 선택하는 방법은 법적 대응이다. 곰표 담당자의 대응은 달랐다. 새로운 길이 보였던 것이다. 회사와 의논을 한 뒤 4XR이 곰표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을 공식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점으로 브랜드 협업의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곰이나 밀가루의 이미지가 어울리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선보였다. 협업 제품은 파운데이션, 치약, 팝콘, 패딩 점퍼, 밀 맥주, 막걸리, 치킨 너겟 등으로 확대되었다. 2018년에는 곰표 레트로 하우스라는 온라인상의 공간을 만들어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더욱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나갔다. 잊혀가던 브랜드가 핫한 브랜드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젊어진 브랜드의 파워를 어떻게 자신을 위해 활용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브랜드를 다시 젊게 만드는 첫 단계는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다.


    큰 브랜드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나 인력이 제한적인 작은 브랜드는 남의 힘을 잘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인데, 다음의 세 단계가 필수적이다. 일단 자신이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 그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협력자를 찾으면 된다.


    첫 번째 필수적 단계가 기업 내부의 준비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보이지 않는다. 곰표의 경우에도 마침 브랜드가 처한 상황을 조사를 통해 파악하고 브랜드를 젊게 만들 방안을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타사의 브랜드 도용이 기회로 보였던 것이다. 내부 준비의 핵심은 브랜드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다. 특히 작은 브랜드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기술력이나 특장점에 매몰되어 브랜드의 관점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에서 만드는 것은 제품이고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브랜드다.”라는 말의 뜻을 내부 관련자들 전체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수많은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차별화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소비자나 경쟁 브랜드의 시각으로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 이외의 요소에서 얼마든지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포장 방법일 수도 브랜드 네임일 수도 있다. 곰표의 경우에는 흰색과 초록색이 단순하게 조합된 BI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그 강점을 잘 활용할 만한 협업의 대상을 찾는 것인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협업 상대와 힘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보다 영향력이 큰 상대로부터 도움을 받기 원한다. 처지가 어려운 두 브랜드가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럴 때에는 자신과 정신적 지향점이 비슷한 브랜드를 찾아 ‘정신적 연대’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크기의 균형점이 아닌 정신의 균형점을 찾아 협업을 해야 한다.



    약점을 받아들여라

    “나의 문제를 감추지 않는다” #HBAF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듯 문제가 없는 브랜드도 없다. 문제는 문제를 감추려는 태도이다. 사람들이 어리숙하고 서로 간의 소통이 더디던 시절에는 문제를 감추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도 브랜드도 문제를 덮고 살기 어렵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공유하는 SNS가 사람들을 더 빠른 속도로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솔직히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편이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브랜드는 적어도 상대방을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베프, 바프’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유치한 말장난 광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절묘한 것은 그다음 카피다. ‘H는 묵음이에요.’ 이 제품의 브랜드 네임이 HBAF인데, 앞의 H는 읽지 말고 뒤의 BAF만 읽어달란 주문이다. 억지이다. 하지만 그걸 전지현이란 모델이 나와서 뻔뻔하게 이야기하니까 그냥 씩 웃게 된다.


    이 제품의 원래 이름이 뭐였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Honey Butter Almonds & Friends다. 이것이 ‘바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유추해 보면 대충 이럴 듯하다. 제품명이 너무 기니까 HBAF라고 줄여 부르자. 그런데 이걸 어떻게 읽으라고 해야 하나? 바프라고 읽게 하자. 앞의 H는 어떻게 하고? 그냥 묵음이라고 하면 되잖아. 긴 이름, 줄여도 읽기 어려운 이름이라는 약점을 정면 돌파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화제가 된 사례이다.


    솔직한 태도를 갖는 것은 사람에게도 브랜드에게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문제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라고 소비자가 되묻기 때문이다. 약점을 당당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그다음 단계를 염두에 둔 전략이어야 한다. 물론 HBAF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의 이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서 좀 다른 케이스이다. 이런 경우는 물의 흐름을 막고 있는 곳을 뚫어주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의 브랜드를 돌아보라. 혹시 자신의 약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을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약점을 당당하게 받아들여라.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면 치워야 할 것이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을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면 당당하게 주장하면 된다.



    당신이 브랜드다

    “브랜드는 리더 ‘그 사람’이어야 한다” #마게 #뿌리깊은나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와인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와인은 매력적인 술이다(술은 대부분 매력적이다). 수만 가지의 와인 중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같은 이름의 와인도 생산 연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같은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도 맛이 다르다. 왜 그럴까?


    일단 땅이 달라서 그렇다. 특히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은 바로 붙어 있는 포도밭끼리도 토양의 성분이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사람이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화되지 않은 작은 규모의 양조장인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와이너리를 방문해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와이너리의 주인과 그가 만든 와인의 맛 사이에 뭔지 모를 공통점이 있다. 주인의 철학과 노하우가 와인에 담기기 때문이다. 포도밭과 포도나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포도를 언제 수확하고 어떤 방법으로 발효시킬 것인가 등 수많은 의사 결정이 그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결과 그가 원하는 맛의 와인이 탄생한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샴페인을 주로 생산하는 마게(Marguet)라는 브랜드가 있다. 2016년 이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나서 와인의 맛과 만드는 사람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와이너리에서는 트랙터 대신 말을 사용해 밭을 갈고, 제초제나 비료를 쓰지 않는 생명 역학(Biodynamic)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그리고 이 와이너리의 주인은 선이나 명상과 같은 동양적인 철학의 신봉자이다. 그가 만든 샴페인에는 이런 것들이 녹아 들어가 그만의 맛을 낸다. 시음을 하기 위해 샴페인을 한 모금 머금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둘이 참 닮았다.’


    브랜드의 리더도 그래야 한다. 이 브랜드를 어떤 브랜드로 만들어가겠다는 명확한 철학이나 방향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리더는 배로 치면 선장이고, 탐험대로 치자면 대장이다. 목적지와 경로에 대한 정확한 계획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상황의 변화에 따라 목적지나 경로를 바꾸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는 안 된다. 브랜드의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지도에 따라 선원이나 대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각종 전략을 수립해 지시해야 한다. 그래야 각 분야를 맡고 있는 선원이나 대원들이 자신의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


    브랜드가 가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략이나 전술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민주적인 리더도 있다. 화목한 조직 분위기를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브랜드가 올바른 길을 가는 데에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마치 선장이 내일은 어떤 항로를 시속 몇 노트의 속도로 항해할지 선원들의 의견을 일일이 물어 결정하는 것과 같다. 실무자나 구성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의견을 듣는 것과 투표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좋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브랜드 리더는 신념을 가지고 선의의 독재를 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는 브랜드를 끌고 가는 ‘그 사람’이어야 한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절대 알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조종석에 앉은 ‘훈이’의 뜻에 따라 동작한다. 브랜드와 브랜드 리더와의 관계가 그러해야 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브랜드는 스티브 잡스 시대의 ‘애플’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고, 애플이 스티브 잡스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도 애플 못지않은 브랜드들이 꽤 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와 그 발행인 ‘한창기’ 선생을 최고의 사례로 꼽고 싶다.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창간된 월간 종합 잡지로 1980년 통권 50호로 폐간되었다.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잡지는 서양식 문화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토박이 민중 문화가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의 순 한글 가로쓰기와 세련되면서도 한국적인 멋을 보여주는 편집 디자인은 카피라이터나 디자이너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계 종사자들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군사 정권에 의해 ‘계급 의식과 사회 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되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브랜드는 발행인인 ‘한창기’ 그 자체라고 해도 좋다. 그는 한국 토박이 문화의 지지자였고, 동서양을 잘 겸비한 시대 최고의 멋쟁이였다. 그런 그의 생각과 감각이 집약된 결과물이 『뿌리깊은 나무』였던 것이다. 한글 쓰기를 고집하기 위해 저명한 필자들의 글을 빨간 펜으로 수정하고, 반듯한 레이아웃을 위해 글의 일부를 잘라내기도 했던 그의 고집과 노력이 『뿌리깊은 나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브랜드를 어떤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비전이나 철학이 없다면 당신은 브랜드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반드시 겉모습이 아니더라도 당신 안에 내재된 가치들이 브랜드에 반영되어야 한다. 옳다고 생각한다면 고집도 부리고, 타협도 거부해야 한다. 당신이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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