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
 
지은이 : 이준호
출판사 : 성안당
출판일 : 2023년 02월




  •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DNA ‘향상지심(向上之心)’을 몸소 실천한 덕산그룹 창업주의 주옥같은 이야기! 벤처 1세대인 그가 평생에 걸쳐 일구어온 성공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


    날지 않으면 높이 오를 수 없다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사회에 첫발을 디디다

    행정고시를 과감히 포기한 다음 해인 1972년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시험에 도전했다. 행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나름대로 실력을 닦았기에 현대중공업 입사 시험은 나에게는 쉽게 느껴졌다. 경쟁률이 12대1이나 되었지만, 무난히 합격하여 채용되었다.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어보면 정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설립할 때의 일화가 나온다. 정주영 회장이 영국 애플도어사에서 조선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롱바톰 회장을 만났을 때,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믿지 못하자 정회장은 5백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나라는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건조해 일본 수군을 격파했다고 말했고, 감동한 롱바톰 회장이 조선 기술 제공은 물론 조선소를 건설할 차관 공여 은행으로 버클레이즈 은행을 소개해 주기까지 했다.


    내가 입사한 그 시점이 바로 정주영 회장이 우여곡절을 거쳐 회사를 설립하고, 조선소를 건설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허허벌판에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는 빨간색 4층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고, 인근에 외국인 숙소와 독신자 숙소가 있었다. 나는 독신자 숙소에서 출퇴근하며 식사는 삼시 세끼를 전부 회사에서 해결했는데, 저녁 8시 이전에는 퇴근할 엄두도 못 낼 만큼 바빴다. 그런 역동적인 시기에 현대중공업(당시는 현대조선)에 입사하여 5년 동안 근무했다.


    나는 자재관리 업무를 맡았는데, 내 직속 상사는 연세대를 나온 박세용 과장(후에 현대종합상사, 현대상선 회장 역임)으로 철두철미한 현대맨이었다. 그분에게 현대맨이 되기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평소 부하들을 아주 엄하게 다루었으며, 결혼하기 위해 선보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말에도 외출을 금지했다. 그분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히 높았고, 정주영 회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전하만은 당시 유리원료가 되는 규사 혹은 주물사로 쓰이는 모래로 유명한 아주 맑고 깨끗한 백사장이었는데 그 일대를 사들여서 조선소를 건설했다. 엄청나게 많은 중장비가 동원되어 도크를 비롯한 수많은 기반공사를 동시에 하다 보니 문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까지 없던 길이 새로 나있곤 했다. 당시 직원들은 현대중공업을 우리 손으로 일구는 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부심과 애사심이 대단했다.


    현대중공업은 우여곡절 끝에 리바노스사에서 수주한 26만 5천톤급 VLCC선박(애틀랜틱 배런호) 건조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첫 작품인 그 선박을 진수할 당시, ‘과연 우리 손으로 지은 배가 바다에 뜰까?’ 궁금해 하며 임직원 수천 명이 도크에 모여 긴장과 기대로 바라보았다. 한민족 5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건조한 대형 선박이었기 때문에 매스컴은 물론 전 국민으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현대의 모든 임직원은 자신이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히 컸기 때문에 긴장과 기대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인선이 도크에서 끌어낸 배가 바다에 뜨자,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손뼉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현대중공업은 처음부터 좋은 경영 여건을 갖추고 출발한 회사였다. 노동 집약적 산업인 조선업은 현대중공업이 출발할 당시 유럽 전체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 선진국이었던 영국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애플도어사와 조선 기술 도입계약을 맺은 것은 물론, 스코트랜드에 있는 조선소와도 협력 계약을 체결하여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현지에서 6개월 동안 연수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덴마크 등의 조선소에서 퇴직한 우수한 임원 출신의 관리 인력을 현대중공업에서 대거 영입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영입된 외국인들이 기술 사장(CTO)와 기획실장, 훈련소장 등 요직에 기용되었다. 그들 덕택에 현대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생각은 자세를, 자세는 행동을, 행동은 인생을 바꾼다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접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일할 때는 일에만 몰입해야 하며, 몰입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하는 데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것을 깨달았기에 내 사업을 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때는 먼저 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여 스스로 자부심을 품고 임하도록 했다. 일에 임하는 자세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직장생활 10년의 의의

    현대에서의 직장생활 10년은 이후의 인생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현대가 나에게 큰 선물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중공업에서의 5년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열정을 선물 받았고, 기업의 체계를 갖추어가면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배웠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초기 경제 발전에 큰 주춧돌이 되었던 중화학공업이 국가 경제에서 가지는 비중과 무게감을 터득할 수 있었다.


    한편 현대정공에서의 5년은 현대중공업에서 흡수한 양호한 영양상태의 체질에 강한 생명력과 자생할 수 있는 면역력을 더해주었다. 길가의 잡초처럼 발에 밟혀 문드러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력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면역체계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내가 경영인으로 사는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 힘으로 내 길을 간다

    도금사업의 시작

    ‘울산에 제대로 된 도금공장을 차리자.’


    막상 그렇게 생각했으나 도금업이 과연 내가 앞으로 매진할 만한 업종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일본에 출장을 나가 일본의 도금업체 몇 군데를 둘러보았는데 일본의 도금업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우선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컸고 도금물량도 엄청나 작업 물량을 쌓아놓고 작업하는 수준이었다. 일본에 도금업이 활발한 것을 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철은 항상 부식이 일어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장이나 도금이 필요하니 철이 소재로 사용되는 한 도금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도금업은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업종이라고 결론을 짓고 울산에 도금공장을 차리는 데 대한 확신이 섰다.


    덕산산업을 창업하고 5년 정도가 지난 1987년경, 도금사업에 착수했다. 도금기술자를 영입하고 아연도금 설비를 도입하여 기존 공장 한편에 아연도금 생산라인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창업하고 난 뒤 처음으로 시도한 변신이자 혁신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도금설비를 도입하여 한참 라인 설치 공사를 하는 중에 울산의 모 업체가 울산에 도금공장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다. 시장이 한정된 울산지역에서 두 개의 도금공장은 불가피하게 가격경쟁을 가져와 두 회사 모두를 파멸시킬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에 부풀어 지금 막 도금사업을 시작한 나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나는 그 업체를 찾아가, “울산에서 두 개의 도금공장은 두 업체 모두가 죽는 일이다. 한 개 공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이미 투자하여 라인을 설치하고 있으니 당신이 이 사업을 포기했으면 한다. 이것이 당신에게도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된다.”라며 사장을 설득시켰다.


    다행히 그 업체는 내 말을 듣고 사업을 접었으나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또 다른 업체가 도금사업을 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설득하여 도금사업을 포기하게 만들어 결국 현재 울산에는 도금업체가 나 하나밖에 없다.


    도금공장을 새로 운영하며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도금공장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기술도 안정되었고 영업 측면에서 수주량도 점차 늘어갔다. 도금사업은 덕산산업을 덕산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주춧돌이 되었다.


    필요가 길을 만든다

    혁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을 때 ‘이노베이션, 이것이 기업을 영속하게 한다.’라는 책을 읽었고 그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또, 울산에 제대로 된 도금회사가 없어 불편했고 울산에도 도금공장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되던 도금사업을 시작했다.


    무언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때가 새로운 길을 만들 기회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책에는 내가 그런 필요를 느꼈을 때 도전하고 혁신한 사례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신도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도전하고 혁신할 수 있다면 당신의 미래는 오늘보다 훨씬 밝아질 것이다.


    “물은 흐르다 막히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 흘러간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벤처1세대 덕산하이메탈

    연구실의 기술 씨앗이 시장에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솔더볼 사업을 하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 어떤 연구 개발이든 실험실의 기술을 시장에 적용할 때까지는 추가적인 연구 개발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그 제품은 씨앗에 불과하고, 기술이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품질을 보완하고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실에서 한두 개 정도 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완성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만 개가 나오고 품질도 보장이 되어야 경제성을 가진 완성된 기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더 들어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솔더볼 기술을 처음 도입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추가적인 연구 개발을 한 끝에 드디어 성공해 실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마침내 2002년 양산 샘플을 가져가 삼성의 승인을 받고 삼성과 거래의 문이 열렸다. 그날 고생한 직원들과 축배를 들며 함께 기뻐했다. 드디어 연구실의 기술 씨앗이 시장에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덕산하이메탈의 솔더볼 사업은 시작한 지 5년 만에 정확한 크기, 높은 구형도 등으로 품질을 인정받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게 되었고 회사는 현재 세계 2대 생산업체로 우뚝 섰다. 그리고 기술력과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내 소재산업을 한 단계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IMF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투자한 결과였다. 그리고 숱하게 닥친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9월에는 정부로부터 우수자본재 개발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2012년에는 정부가 글로벌 히든 챔피언 육성사업의 하나로 실시하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전문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우량 강소기업을 말한다. 또, 2016년에는 벤처, 창업 진흥을 통해 국가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M&A로 덕산 그룹을 만들다

    덕산네오룩스의 발전

    B&A 캄보디아와 휴대폰 모듈 사업을 시작했다가 뼈저린 실패를 경험한 후 창업보다는 M&A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시작한 사업이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es, 유기발광체) 사업이다. OLED는 기존의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 표시 장치)보다 진보된 개념의 기술이다.


    LCD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액정에 화면을 구현하는 것으로, 광원과 화면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뒤쪽에 위치한 광원을 BLU(Back Light Unit)라 한다. LCD액정화면은 자체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두 장의 얇은 유리 기판 사이의 좁은 틈새에 액정을 담고 투명한 전극을 통해 전압을 가하여 분자의 배열 방향을 바꾸어 빛을 통과시키거나 반사한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 화면이 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OLED는 광원 없이 기판 한 장에 재료를 발라 자체 발광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이 구현된다. LCD는 두 개의 기판을 사용하기에 변형할 수 없지만, OLED는 기판이 하나이기에 두루마리식이나 접는 화면도 가능하다.


    액정 재료 기술을 가지고 있는 L기업이라는 영세업체 하나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삼성에서 그 업체를 인수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고, 나도 인수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삼성에게 인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국내 업체를 키워서 재료를 안정되게 공급받아야 하는 삼성이 원하는 것과 비전 있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던 내가 원하는 것이 맞아떨어졌다.


    네오룩스 출범과 직원 동기부여

    그 회사는 경기도 분당에 있었다. 그간의 회사 경영 상태를 확인해보니 임직원 27명에 연간 매출이 30억 원 정도였는데, 4년 연속 적자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4년 동안이나 적자가 나니 임직원들의 의욕이 떨어져 회사 분위기가 많이 침체해 있는 것이었다.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해야 할 급선무가 임직원들에게 일할 의욕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분위기 쇄신을 해서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방책으로 우리사주 조합을 만들어 직급별로 회사의 주식을 나누어주었다. 대리에게는 300주, 과장급은 400주, 부장 등 간부들에게는 스톡옵션 형식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주식을 나누어주었다고 해서 그 주식이 상장되어 있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다. 코스피나 코스닥 등 증권시장에 상장이 되어야 객관적인 가치가 평가되고 주식거래가 자유로워지므로 임직원들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장되지 않으면 주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임직원들의 동기부여에 효과가 없겠다고 생각해 인수된 회사를 이미 상장되어 있는 덕산하이메탈과 합병했다. 합병된 회사의 주식이 일정 비율로 평가되어 덕산하이메탈의 주식으로 교환되니 임직원들은 분배받은 주식으로 재산 가치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임직원들에게 믿음을 주고 나니 침체해있던 회사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임직원들의 의욕이 크게 왕성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래 발전 인자의 예측에는 국제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도 필요

    덕산은 M&A한 회사로 일취월장한 반면 매각한 업체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것은 매각한 업체가 미래 발전 인자를 잘못 판단한 결과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교훈을 얻었다. 미래 발전 인자를 예측할 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의 상황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업체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사업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중국 업체들의 사업에서의 인해전술(대량생산, 대량판매) 때문에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리더다운 리더

    리더는 인재를 잘 활용해야 한다

    내 사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상대 경제과 나온 사람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 등과 같은 첨단 정밀소재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 가냐며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어는 공대 어떤 과를 졸업했는지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대학에서의 전공이 사업의 초기에는 조금 도움이 될지 몰라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기업의 사장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장에게는 관리나 경영적인 측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전문 기술자를 고용해서 해결하면 된다. 카네기의 묘비에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하로 영입해 열심히 일해서 철강왕이 된 사람 여기 묻혀있다.”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초나라 항우와 싸워 이긴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는 세 부하가 있다 한 사람은 전쟁에서 병사를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실력이 뛰어난 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제때 보급하는 능력이 뛰어난 소하이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전쟁에서 책략이 뛰어난 장량이다. 그들은 각자 맡은 부분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제대로 기용하는 능력이 있다.”


    인재 중심 경영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경영자는 한비자처럼 리더의 자질이 있어야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이 큰 것을 바라보는 덕이 있어야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자기 일에 철저해야 하며, 오다 노부나가처럼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세종대왕이나 조조처럼 사람의 능력을 우선시 해야 한다.


    나는 인재 중심 경영을 한다. 인재는 일에 대한 욕심이 있다. 나는 인재를 알아보고 선발하며, 인재를 뽑을 때부터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인재가 덕산으로 모여들어 덕산을 그룹으로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도요토미가 공을 세운 장수에게 전답을 나누어주었던 것처럼, 나는 회사를 위해 헌신한 직원들에게 덕산의 주식을 나누어주었다.



    소재산업 입국, 그 중심기업 덕산

    우리 회사 회의실에 “소재산업 입국, 그 중심기업 덕산”이라고 적힌 판넬이 서 있다. 소재산업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다. 1999년 솔더볼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이 산업의 생태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이해 끝에 ‘소재산업 입국’이라는 이 문구를 생각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IT 제품은 단조롭고 수준도 낮았다. 삼성과 LG에서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을 개발할 때 핵심 소재와 부품은 국내에서 조달하기보다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니 상당 부분의 부를 외국에 주는 꼴이었다. 일반적인 부품은 개발되어 있었지만, 정밀 첨단소재는 거의 불모지 수준이었다. 이 부분에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면 기업도 발전하고 국가 산업에도 이바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재산업으로 나라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로 “소재산업 입국(立國), 그 중심기업 덕산(德山)”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회사는 첨단 소재산업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 있다. 2019년 일본은 우리나라에 소재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그것은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그제야 정부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20년 전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재산업 입국’을 선언하고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덕산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이 공장 벽에 걸려있는 “소재산업 입국(立國), 그 중심기업 덕산(德山)”의 문구를 보고 물었다.


    “누가 만든 것입니까?”

    “20년 전에 내가 만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덕산산업을 시작으로 덕산갈바텍, 덕산하이메탈,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 덕산넵코어스, DS미얀마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9개의 회사를 가진 그룹으로 성장했다. 덕산은 크게 발전했고, IT소재산업 분야에서 덕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많이 커졌다.


    우리나라 산업은 제조업 중심이다.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소재산업 또한 중요하다. 이제껏 중요하다는 말만 했지, 국가는 소재산업 육성에는 인색한 경향이 있었다. 일본에 수출 규제라는 수모를 당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소재산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은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는 더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높은 부가가치와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소재산업 발전이 성공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뿌리는 소재산업이다

    제조업을 나무라 하면 그것의 뿌리는 소재산업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옛말처럼, 소재산업이 튼튼해야 당연히 제조업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수준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 있지만, 소재산업은 아직 많이 취약하다. 그런 만큼 국가는 소재산업을 더 육성해야 한다. 그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소재산업의 발전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재산업의 기술 향상도 중요하지만, 혁신적인 첨단 정밀 기술 개발은 더 중요하다. 그 혁신의 중심에 덕산이 있다. ‘소재산업 입국’이라는 말 그대로 소재산업을 선도하는 덕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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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