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지은이 : 박영규
출판사 : 더난출판
출판일 : 2020년 09월




  •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은 『도덕경』에서 혁신의 영감을 받았다. ‘큰 것이 작은 것이고 많은 것이 적은 것’이라는 『도덕경』의 구절에서 애플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스티브 잡스가 그러했고, 비움의 미학과 무위지치를 바탕으로 검색창 하나로 세계를 정복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그러했다. 이 책은 애플과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스페이스엑스, 오라클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과 삼성을 비롯한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의 창업 과정과 제품 개발, CEO들의 리더십에 얽힌 에피소드를 『도덕경』의 내용과 함께 소개해 그들이 어떻게 도의 자세로 혁신했는지 살펴봄으로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혁신의 영감을 준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상편 도경(道經)

    혁신에는 경계가 없다 -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항구적인 도가 아니고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항구적인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之(무명천지지시): 무는 천지의 근원을 일컫고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유는 만물의 모태를 일컫는다.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항구적인 무에서는 도의 오묘함을 보고

    常有欲以觀其(상유욕이관기요): 항구적인 유에서는 도의 경계를 본다.

    此兩者同出而異名(차량자동출이이명): 무와 유, 이 두 가지는 그 근원이 같으나 이름이 다를 뿐이다.

    同謂之玄(동위지현): 무나 유 둘 다 도의 넓고도 깊음을 일컫는다.

    玄之又玄(현지우현): 넓디넓고 깊디깊으니

    衆妙之門(중묘지문): 모든 오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로다.


    『도덕경』 1장은 도에 대한 총론적 성격을 띤다. 헌법의 전문과 같다. 헌법의 전문과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 중 핵심은 도, 무, 유 세 가지다. 나머지는 이들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것들이다. 1장에서 노자는 도의 성격이나 속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도에 대한 직접 언급한 대목은 ‘도가도비상도’ 딱 하나인데, 문장의 구조가 ‘도란 이런 것이다’라는 긍정문이 아니라 ‘이런 것은 도가 아니다’라는 부정문이다. 노자가 이런 방식의 서술을 택한 이유는 도라는 것이 인간의 언어로 딱 부러지게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의 근원으로서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인간은 그것에 대해 그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항구적인 도, 항구적인 이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그래서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라 했다. 다만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려다 보니 불가피하게 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기업의 도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혁신이다. 도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듯이 혁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이미 혁신이 아니다.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은 기업이 내놓은 후속 제품이 자사의 기존 제품 점유율을 갉아먹는 현상을 가리킨다. 동족 살인을 뜻하는 카니발리즘에서 유래했다. 얼마 전 작고한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혁신기업의 딜레마’도 카니발리제이션과 같은 맥락의 용어다. 파괴적인 혁신을 일으키려면 기존 사업 영역에서 자기 잠식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파괴적 현신을 회피하고 단계적인 혁신에 그치게 되어 결과적으로 또 다른 파괴적 혁신을 불러온 기업에 추월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클레이튼 교수가 말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다. 이러한 딜레마를 두려워하면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카니발리제이션을 두려워하면 혁신도 성공할 수 없다. 자기 살을 스스로 먹어치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남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카니발리제이션이 두려워 과거에 머무른 기업들은 실패했고, 카니발리제이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살을 스스로 먹어치운 기업들은 성공했다. 과거의 명성에 집착하면 혁신할 수 없다. 과거의 이름은 이미 불린 이름이므로 도가 아니다. 거기에는 혁신이 없다. 미래가 없다.


    새로 비워야 혁신을 시작할 수 있다 - 道沖而用之(도충이용지)

    道沖而用之(도충이용지): 도는 비어 있기에 그 쓰임이 있다.

    或不盈(혹불영): 혹여 가득 차지 않아도

    淵兮似萬物之宗(연혜사만물지종): 심연처럼 깊어 만물의 으뜸이 된다.

    挫其銳(좌기예): 예리한 것은 다듬어주고

    解其紛(해기분): 맺힌 것은 풀어주고

    和其光(화기광): 눈부신 것은 은은하게 하고

    同其塵(동기진): 마침내 먼지와 하나가 된다.

    湛兮似或存(잠혜사혹존): 깊디깊은 곳에 뭔가 존재하는 듯하지만

    吾不知誰之子(오부지수지자): 나는 그 실체를 알지는 못한다.

    象帝之先(상제지선): 다만 상제보다 먼저 있음은 분명하다.


    도의 가장 큰 속성은 비움(沖)이다. 빈 그릇, 빈 방처럼 도에는 내용물이 차 있지 않고 비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시작, 으뜸,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빈 그릇에는 무슨 음식이든 다 담을 수 있고, 빈 방에는 무슨 물건이든 다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그릇에 물이 담겨 있거나 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 있으면 나머지 것들은 모두 배제된다. 더 이상 수용될 수도 없다. 도는 배제가 아니라 수용이다. 그 어떤 것도 내치지 않고 무조건 다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궁은 비어 있기 때문에 생명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빈 타석, 빈자리도 이 같은 형태로 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타석이 비어 있어야 타자가 들어설 수 있고, 경기가 진행된다.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에 앉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점유된 자리는 앉음이라는 도의 실체, 내용물을 생산할 수 없다.


    혁신의 관건은 스스로를 비우는 것이다. 과거의 명성을 비우고, 실적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코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필름 시장의 80퍼센트 이상을 점유했다. 경쟁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코닥은 1980년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닥의 연구진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 기술을 개발했지만 경영진이 오판했다. 코닥의 경영진은 당시 잘나가던 필름 시장의 잠식을 우려해 디지털 기술을 상품화하지 않았다. 코닥은 과거를 비우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시장에서 퇴출했다.


    권한이 있어야 능동적으로 일한다 - 孔德之容(공덕지용) 惟道是從(유도시종)

    孔德之容(공덕지용): 위대한 덕의 모습은

    惟道是從(유도시종): 오직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

    道之爲物(도지위물): 도라고 하는 것은

    惟恍惟惚(유황유홀): 그저 황홀할 뿐이다.

    惚兮恍兮(홀혜황혜):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其中有象(기중유상): 그 안에 형상이 있다.

    恍兮惚兮(황혜홀혜):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其中有物(기중유물): 그 안에 질료가 있다.

    窈兮冥兮(요혜명혜): 그윽하고 어둡지만

    其中有精(기중유정): 그 안에 정밀함이 있다.

    其精甚眞(기정심진): 정밀함은 지극히 참된 것으로서

    其中有信(기중유신): 그 안에는 믿음이 있다.

    自古及今(자고급금): 예로부터 이제까지

    其名不去(기명불거): 그 이름이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以蘭衆甫(이열중보): 그로써 만물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吾何以知衆甫之狀哉(오하이지중보지상재): 내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이 그러함을 알 수 있겠는가?

    以此(이차):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도와 덕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도가 현실의 인간세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덕이다. 따라서 도와 덕은 식물에서 씨앗과 열매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씨앗이 잘 발아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도를 온전히 품고 따를 때 덕도 온전한 형태를 띠게 된다. 올바른 도의 속성에 대해서는 앞서 나온 내용들이 또 다시 반복된다. 도는 넓디넓고 깊디깊어 그윽하고 황홀하다. 어두컴컴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그 실체를 분간할 수는 없지만, 도의 가운데에 형상(象)과 질료(物)가 자리 잡고 있으며 대단히 정밀하고(精) 참되고(眞) 믿음직스럽다(信). 태고 적부터 지금까지 도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그 자신을 떠난 적이 없으며 늘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통해 만물의 근원(衆甫)을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창고 창업이라는 신화를 처음으로 쓴 휴렛팩커드는 기업 경영에서 제도적 도덕성을 표방했다. 휴렛과 팩커드 두 사람은 직원들을 철저하게 믿고 존중했으며 수직적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사원들의 복지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두 사람은 CEO이면서도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않았다. 솔선수범해서 부지런히 현장을 뛰어다녔으며 그 과정에서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휴렛팩커드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권한의 분산과 위임이라는 독특한 경영기법이었다. 휴렛팩커드는 고객과 가장 가까이 접하게 되는 직원들에게 그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했다. 이런 경영 철학 덕분에 휴렛팩커드의 직원들은 자신의 권한 범위 내에서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사욕을 덜어내면 모두가 뜻하는 바를 이룬다 - 夫亦將無欲(부역장무욕) 天下將自定(천하장자정)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못 하는 것이 없다.

    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 제후나 임금이 능히 이를 지키면

    萬物將自化(만물장자화): 만물이 장차 저절로 이루어진다.

    化而欲作(화이욕작): 인위적으로 뭘 도모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吾將鎭之以無名之樸(오장진지이무명지박): 나는 이름 없는 통나무로 이를 진압한다.

    無名之樸(무명지박): 이름 없는 통나무로

    夫亦將無欲(부역장무욕): 욕심을 없애니

    不欲以靜(불욕이정):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게 되고

    天下將自定(천하장자정): 천하는 저절로 제자리를 잡는다.


    도란 기본적으로 무위(無爲)다. 인위적으로 뭔가를 도모하지 않는다. 도는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저절로 존재하고, 저절로 드러나고, 저절로 순환한다. 도에는 어떤 욕망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욕망이란 그 자체로 유위(有爲)한 것이다. 인위가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도는 자연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자연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해서, 원해서, 욕망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간섭도, 통제도, 관리도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


    도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자연 현상인 하늘의 구름을 보라. 그것을 압축시키거나 수축시키는 장치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구름은 못하는 것이 없다. 저절로 뭉쳐지고, 저절로 비가 되어 내린다. 그리고 만물을 적시고, 만물을 키운다. 인위적으로 구름을 더 짙게 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연의 노여움만 초래할 뿐이다. 핵무기가 폭발한 이후 형성되는 짙은 구름이 인간에게 재앙을 불러오듯이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자연은 질박한 통나무를 무기로 써서 그 욕망을 억제시킨다. 질박한 통나무란 도의 원리, 자연의 순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편 덕경(德經)

    과감하게 선택하고 과감하게 버려라 - 下德不失德(하덕불실덕) 是以無德(시이무덕
    )

    上德不德(상덕부덕): 상덕은 덕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是以有德(시이유덕): 그러므로 덕이 있다.

    下德不失德(하덕불실덕):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한다.

    是以無德(시이무덕): 그러므로 덕이 없다.

    上德無爲而無以爲(상덕무위이무이위): 상덕은 무위하니 무로써 도모하고

    下德爲之而有以爲(하덕위지이유이위): 하덕은 유위하니 유로써 도모한다.

    上仁爲之而有以爲(상인위지이유이위): 상인은 유위하니 유로써 도모하고

    上義爲之而有以爲(상의위지이유이위): 상의도 유위하니 유로써 도모한다.

    上禮爲之而莫之應(상례위지이막지옹): 상례는 유위하니 자연스럽게 대하지 아니하고

    則攘臂而之(즉양비이잉지): 소매를 걷고 끌어당긴다.

    故失道而後德(고실도이후덕): 도를 잃은 후 덕이 나타나고

    失德而後仁(실덕이후인): 덕을 잃은 후 인이 나타나고

    失仁而後義(실인이후의): 인을 잃은 후 의가 나타나고

    失義而後禮(실의이후례): 의를 잃은 후 예가 나타난다.

    夫禮者(부례자): 예는

    忠信之薄(충신지박): 충성과 신의의 얄팍한 껍질이며

    而亂之首(이란지수): 혼란의 우두머리다.

    前識者(전식자): 사물을 미리 식별하는 것은

    道之華(도지화): 도의 화려함이며

    而愚之始(이우지시):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是以大丈夫處其厚(시이대장부처기후): 그러므로 대장부는 두터움에 머물고

    不居其薄(불거기박): 얄팍한 데 거하지 않는다.

    處其實(처기실): 내실을 중히 여기고

    不居其華(불거기화): 화려함에 거하지 않는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덕이란 도가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윤리적 양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위라는 도의 핵심 원리가 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위한 덕은 상덕이고 유위한 덕은 하덕이다. 도가 인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듯이 상덕도 그러한 욕망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사람은 덕이 없다.


    인, 의, 예는 대립적 사고에 기초한 도덕률이다. 이러한 도덕률은 수학 공식을 적용하듯이 세상을 딱딱 구분 지어 식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람과 사물의 겉모양만 보고 미리 예단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방해하는 편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식자(前識者)는 그런 의미로 쓰였다. 나무에서 꽃이 먼저 피고 열매가 나중에 맺힌다. 꽃은 사물의 겉모습이고 열매는 사물의 속이다. 꽃은 화려하지만 금세 시들어버리고, 열매는 투박해 보이지만 알차다.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두터움은 나중에 맺는 열매에 있으며, 미리 피는 꽃은 그러한 본질 인식을 방해하는 전식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전식자는 도의 화려함이고 어리석음의 시작이라고 했으며, 대장부(성인)는 꽃의 화려함(겉모습)을 버리고 열매의 두터움(내실)을 취한다고 했다.


    창업자에 이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사람은 이건희였다. 이건희는 『도덕경』에 나오는 ‘거피취차(去彼取此)’의 전략을 썼는데, 그것이 제대로 먹혔다. 1993년 취임 6년째를 맞은 이건희 회장은 그룹의 핵심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 호텔로 모이게 했다. 영문을 모른 채 서울 등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경영진들 앞에서 이 회장은 그룹 경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면서 ‘나부터의 변화’를 역설했다. 이것이 이른 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건희는 이렇게 말했다.


    “제도나 관행에 구애받지 마라. 회장의 눈치도 보지 말고, 소신껏 하라. 회장인 나부터 바뀌겠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핵심 사업에 집중했다. 미래의 먹거리를 창조할 수 있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되,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업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비본질적인 사업에서는 손을 떼고 본질적인 사업에만 치중한 것이다. 이러한 거피취차 전략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돼라 - 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 弱者道之用(약자도지용)

    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弱者道之用(약자도지용): 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天下萬物生於有(천하만물생어유):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有生於無(유생어무):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도는 절대적인 완결성을 의미하므로 상대적으로 더 강한 것, 더 큰 것, 더 정밀한 것, 더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사물을 경계 지어 서로를 비교하고, 구분하고, 분리·배척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한다고 해도 궁극의 도를 완성할 수는 없다. 더 큰 것들을 아무리 많이 더해도 가장 큰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사물은 유의 형태를 띠지만 그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다. 무가 있기에 유가 가능하므로 무는 만물의 어머니고, 근원이고, 시초다. 무의 상태인 텅 빈 골짜기, 빈방, 빈 그릇 등의 비유를 통해 자주 나온 바 있는데 『도덕경』후반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도의 기본 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가장 낮아져야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다 - 大國以下小國(대국이하소국) 則取小國(즉취소국)

    大國者下流(대국자하류): 큰 나라는 강의 하류

    天下之交(천하지교): 천하가 만나는 지점이고

    天下之牝(천하지빈): 천하의 여성이다.

    牝常以靜勝牡(빈상이정승모): 여성은 언제나 그 고요함으로 남성을 이긴다.

    以靜爲下(이정위하):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낮춘다.

    故大國以下小國(고대국이하소국): 그러므로 큰 나라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則取小國(즉취소국): 작은 나라를 얻고

    小國以下大國(소국이하대국): 작은 나라는 아래에서 큰 나라를 섬김으로써

    則取大國(즉취대국) 큰 나라를 얻는다.

    故或下以取(고혹하이취) 그러므로 혹 아래로 낮춤으로써 취하기도 하고

    或下而取(혹하이취): 혹 아래에서 위를 섬김으로써 취하기도 한다.

    大國不過欲兼畜人(대국불과욕겸축인): 큰 나라는 사람을 모아 기르고자 하며

    小國不過欲入事人(소국불과욕입사인): 작은 나라는 들어가 남을 섬기고자 한다.

    夫兩者各得其所欲(부량자각득기소욕):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각각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大者宜爲下(대자의위하): 큰 나라가 먼저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 겸양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강대국이 먼저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지덕을 발휘할 것을 촉구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힘이 최고라 믿는 마키아벨리스트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테지만 노자의 평화주의 사상에서 겸양은 최고의 덕목이다.


    겸양지덕은 강대국에게만 적용되는 윤리적 규범이 아니다. 노자는 약소국가도 강대국에게 스스로를 낮출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스스로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한다. 아래 하(下)자가 무려 아홉 번이나 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자는 강자나 약자나 할 것 없이 최상의 미덕은 겸손이라고 결론짓는다.


    마윈이 설립한 알리바바, 타오바오닷컴, 알리페이 등은 모두 인터넷 기업이다. 이걸 보면 마윈을 스티브 잡스나 래리 페이지 같은 IT 천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윈은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컴맹이었다. 돈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공한 비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나는 돈이 없었다. 둘째, 나는 기술을 몰랐다. 셋째,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내게 있어 최고의 규칙은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만물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고, 기술을 몰랐기에 그는 스스로를 낮췄다. 남들 앞에서 겸손했다. 무조건 남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성공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실패가 무엇인지는 안다. 성공여부는 어떤 실패를 경험했느냐에 달려 있다.”


    지식과 돈, 성공에 대해 오만함을 내려놓고 한없이 겸손했던 마윈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성공한 IT 기업인이 되었다.


    리더는 일을 도모하되 다투지 않는다 - 聖人之道(성인지도) 爲而不爭(위이부쟁)

    信言不美(신언불미):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美言不信(미언불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

    善者不辯(선자불변):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辯者不善(변자불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知者不博(지자불박):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博者不知(박자부지):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聖人不積(성인부적): 성인은 쌓아놓지 않고

    旣以爲人(기이위인): 사람들을 위해 베풀지만

    己愈有(기유유) 더욱 더 많이 가지게 되고

    旣以與人(기이여인): 사람들과 더불어 쓰지만

    己愈多(기유다): 더욱 더 많아진다.

    天之道(천지도): 하늘의 도는

    利而不害(이이불해):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 않는다.

    聖人之道(성인지도): 성인의 도는

    爲而不爭(위이부쟁):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의 마지막 장이다. 1장이 총론이었다면 81장은 결론이다. 『도덕경』은 도(道)로 시작하여 부쟁(不爭)으로 끝난다. 이를 연결하면 ‘도는 곧 부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쟁투(爭鬪)가 난무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 내린 결론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재물에 대한 욕심만으로 창업을 했다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발명이 좋아서 발명에 열중했고, 컴퓨터가 좋아서 컴퓨터에 매달렸다. 매달리다 보니 혁신을 하게 되었고, 그 혁신이 모여 실리콘밸리를 만들었다. 부는 혁신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혁신기술을 추구했다면 그 부를 결코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천재는 없다. 그들은 성공한 후 자신이 일군 부를 대부분 사회에 환원했다. 빌 휴렛이 그랬고, 빌 게이츠가 그랬고, 마크 저커버그가 그랬고, 제프 베조스가 그랬다. 오늘 이 시간에도 실리콘밸리에는 혁신기술에 대한 다툼이 치열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부에 대한 부쟁지덕이 자리 잡고 있다. 혁신기술이 도(道)가 될 수 있고 실리콘밸리가 곡신불사의 계곡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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