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전략
 
지은이 : 임춘성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0년 06월




  • 베스트셀러 《매개하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연세대 임춘성 교수는 신작 《베타 전략》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든 비즈니스 전략의 중심에 선 ‘베타 전략’을 소개했다. 일찍이 ‘소유와 생산’의 시대는 끝나고 ‘연결과 매개’의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먼저 역설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한층 더 깊이 파고들었다. 

    ‘베타’는 고객과 기업 사이에 존재하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다. 사람, 물건은 물론이고 제도와 서비스, 개념까지 모두 포함한다. 마치 시계추나 진동자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끊김 없이 기업과 고객을 이어주는 모든 것을 말한다. 



    베타전략


    베타 스토리

    베타, 베타 전략

    재미가 있건 없건 세상사는 ‘관계’입니다. 세상이 인간사회이고, 인간사회는 인간관계이죠. 비즈니스로 시야를 넓히면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대표적인 비즈니스관계이고요. 세상을 살아가고, 살아가며 성공하는 모든 일들은 인간관계와 비즈니스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일은, 간략히 말하자면 인간관계와 비즈니스관계라 할 수 있겠죠. 어차피 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관계는 대부분 이렇게 상정됩니다.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양편으로 나누죠. 내가 있고 상대가 있고, 우리가 있고 상대가 있고, 우리 기업이 있고 상대가 있습니다. 양편의 관계, 둘 사이, 정확히 말하자면 둘만의 관계죠. 둘만의 사이에서 함께하고, 따로 하고, 가까이하고, 멀리하고, 주고, 받고, 지지고, 볶는 것을 소위 ‘관계’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달리 보고, 달리 해보면 어떨까요? 그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여전히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 않나요? 둘 사이에 하나를 넣겠습니다.


    ‘β’, 이름하여 ‘베타’입니다. 베타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두 번째 문자입니다. 영어 알파벳으로는 B에 해당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타는 철저하게 알파의 그림자에 가려집니다. 베타는 알파를 만들어가는 과정 정도로 여겨집니다. 제품 개발에도, 흔히 말하는 ‘베타버전’은 완성품 알파로 가는 중간 제품, 중간 버전입니다.


    베타와 함께 그간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을 깨려 합니다. 양편의, 둘만의, 이원적인, 일대일의 시각을 깨려 합니다. ‘나와 너’가 아니라, ‘나와 너 그리고 베타’ 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그대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그대 그리고 베타입니다. 기업과 고객이 아니라, 기업과 고객 그리고 베타입니다.


    베타는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멍하니 있지 않습니다. 애써서 기업을 고객에게 다가가게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으로 베타는 고객에게 빠르게 다가가게 하고자 합니다. 때론 다가가게 하고 때론 다가오게 합니다. 기업과 고객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가가게 하고, 다가오게 합니다. 때론 기업에서 고객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때론 고객에서 기업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사실 ‘때론’ 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베타는 기업과 고객 사이를 꾸준하게 오갑니다.


    베타는 움직이는 무엇입니다. 마치 시계추처럼, 진동자처럼, 나와 너, 당신과 당신의 그대, 우리와 너희, 그리고 기업과 고객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엇입니다. 그렇습니다. ‘끊임없고(ceaseless) 끊김 없는(seamless)관계’, ‘끊끊한 관계’ 가 궁극적으로 베타가 지향하는 것입니다. 끊이지 않게, 끊기지 않게, 양편의 관계를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 있는 연결로 만들어주는 무엇이 베타입니다.



    베타의 각성 첫 번째 - 완벽함을 잊자

    완벽한 당신, 완벽한 기업

    완벽한, 아니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성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설정한 상태가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고 그제야 다음 단계로 자신 있게 나아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그것도 자신 있게 나아가기 위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점검합니다. 마음에 들 정도로 상태가 온전하고 완전한지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얼핏 보고 대충 체크해도 무난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정상적인 지각의 사람들은 얼핏 대충만 해도 대부분의 해야 할 일은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 식의 일 처리가 무난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죠. 그러나 완벽한 사람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즉 99%가 오케이라 해도, 나머지 1%를 떠올리며 얼핏과 대충을 경계하게 됩니다.


    일류의 기업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 합니다. 최고의 기업이니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에 집착합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이 기업의 현실인 것은 맞지만, 내부자원을 최적화해 업무프로세스도 개선해야 하고, 핵심역량도 키우고, 외부환경에도 최고의 입지에 블루오션도 쳐다봐야 하고, 파괴적 혁신에 대비하기도 해야 합니다. 정녕코 더, 조금 더, 조금 더 더 완벽한 기업,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만이 기업이 살길일까요?


    나는 너에게, 쾌속

    근자에 북유럽을 짧고 굻게 다녀왔습니다. 발트해를 배로 가로질러 도착한 스톡홀롬은 관광도시여서인지 어느 정도의 활달함이 느껴졌습니다. 스톡홀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는 바사박물관입니다. 바사(Vasa)는 스웨덴의 가장 오래된 목조전함으로 길이가 70m에 달하는, 당시에는 매우 거대한 배였습니다. 333년이 지난 후에야 인양되고 복구되어서 지금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어 방문한 스웨덴 왕궁박물관에서야 그 준엄함이 주는 무게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쳤습니다. 갑옷 기마에 올라탄 갑옷 두른 기사의 모형을 보면서요. 저렇게 무거운 갑옷을 온몸에, 말에 두르고 무거운 무기를 양손에 부여잡고 도대체 어떻게 전투를 한단 말인가? 어떻게 스피디하게, 타이밍 맞춰 달린단 말인가? 갑자기 칭기즈칸이 생각났습니다. 가벼운 차림의 말과 군장으로 무장한 그의 군대가 비교되었습니다. 단숨에 유럽을 석권한 날렵한 비결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완벽해지려는 것은 일종의 욕심입니다. 완벽하기 위해서, 완벽한 자신을 위해서 과욕을 부리는 것인지 모릅니다. 갑옷을 하나 더, 대포를 하나 더 장착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하나 더 장착합니다. 그리곤 외칩니다. 왕과 국민을 위해서라고. 또 외칩니다. 상대를, 고객을 위해서라고, 생산성과 품질을 위해서, 고객만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완벽한 당신, 완벽한 기업이라면 생각해보세요. 꼭 그렇습니까?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 첨단기능과 감동서비스에 매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혹시 그것이 고객만족이 아니라 자기만족은 아닌지요? 당신의 노력은 버젓이 상대에게 부담으로 요구될 것이며, 당신 기업의 노력 역시 버젓이 가격으로 청구될 테니까요.


    잊으세요. 완벽함을 잊으세요. 완벽함을 잊는 대신 기억할 것은 ‘쾌속’입니다. 그냥 스피드가 아니라 상대가 기꺼워하는 속도, 이것을 강구하고 갈구해야 합니다. 완벽함을 잊기도 했으니 너무 까다롭고 까칠해지지 말고, 강조하는 점만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쾌속’, 상대와 고객을 기다리지 않게 할 정도의 적당한 스피드입니다. 이제 완벽함을 잊은 베타의 목적이 뚜렷해졌습니다. 베타는 당신을 상대에게, 기업을 고객에게 다가서게 합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원할 때 다가가는 것입니다.



    베타의 각성 두 번째 - 훌륭함도 잊자

    훌륭한 그대, 훌륭한 고객

    기업이든 고객이든,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러면 좋고 저러면 훌륭하다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훌륭한 그것들을, 그분들을 존중하고 좇아가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 어떤 리더, 어떤 기업이 훌륭한지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명백하지 않으니까요.


    이번에는 고객에 관해 묻겠습니다. 훌륭한 고객이란 어떤 고객일까요? 일단 구매를 많이 하고, 그것도 자주 꾸준히 하고, 사소한 불만 없이 만족도 잘하고, 주변에 소개하고, 한 번씩 감동 댓글도 올리고 등등. 기업 입장에서 훌륭한 고객은 이런 고객이겠죠. 어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왠지 ‘호갱’ 같기도 하고요.


    훌륭함이라는 멋진 수사에는 분명 애매함이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배웠습니다. 나만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으로 훌륭하게 말이죠. 그러나 그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너무 다양한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 세대는 이렇고 저 세대를 저렇다 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알기 쉬울까요? ‘홀륜(囫圇)’ 한 훌륭함을 잊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것도 시시각각으로 폭이 넓어지고 있거든요, 알기 쉬움에 빠질수록 괴리의 골은 깊어지고 있거든요. 당신에게 그대가, 기업에게 고객이 소중하다면 절대 홀륜하게 그대를, 고객을 보면 아니 됩니다.


    너는 나에게, 중독

    ‘욕망’ 은 ‘훌륭함’ 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먼 거리입니다. 반대로 의미로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훌륭함이 욕망을 절제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여겨져서 그런가 봅니다. 실제로 인간이 쏟아낸 수많은 문학작품이 욕망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만, 욕망의 찬양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다수가 욕망으로 파멸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죠.


    종종 종교와 금욕주의는 욕망에 멍에를 씌웁니다.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를 절제하라 하죠. 이런 부정적인 족쇄를 풀어준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신교도들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입니다. 근검과 성실을 강조합니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면 절대자 하나님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도록 도와줄 것이라 설파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수긍해주었습니다.


    욕망은 인간으로서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욕망을 품는 자유,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유이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아니겠습니까? 욕망은 전차 이외에도, ‘삶의 에너지’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과도한 욕망, 남을 해치는 욕망이 문제이지, 아무런 욕망이 없는 자를 어찌 살아있는 자라 할 수 있을까요.


    자,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당신의 그대에게, 당신의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상대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상대는 요구하고 있습니까, 욕구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상대의 요구를,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까? 상대는 필요를, 욕망을 충족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그 누군가와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충족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충족되지 않게 해야 당신에게 계속 바랄 것이고 그래야 계속 이어져갈 테니까요.


    당신이 상대에게 끌어내야 할 것은 ‘필요’ 아니라 ‘욕망’입니다. 당신이 상대에게 제공해야 할 그것은 충족될 수 있는 ‘필요’ 가 아니라 충족될 수 없는 ‘욕망’ 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객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까? 욕망을 일으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까? 필요와 혼돈하지 말고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상대는 훌륭하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그때그때 다르며, 개개인이 다양합니다. 결국 훌륭하지도 않은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그들 각각의 다양성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가 스스로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 스스로 나서고,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죠. 자발적으로 애쓰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상대 스스로,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하는 것, 그것도 계속적으로 노력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핵심은 마지막 퍼즐을 맞춰줍니다. ‘충족될 수 없는 욕망’입니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품는 것,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자발적으로 계속적으로 애쓰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중독’입니다. 훌륭함을 잊은 베타가 추구하는 가치는 ‘중독’입니다. 잊어야 합니다. 훌륭함을 잊으세요. 훌륭함을 잊는 대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독’입니다.


    ‘중독’을 간택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종속’은 동태적인 어감이 부족해 보입니다. 중독된 자나 종속된 자는 모두 중독된 것이나 혹은 종속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애쓰는 마음가짐이 달라 보입니다. 종속된 자는 독립선언을 외치고 자유를 되찾고 싶습니다. 그러나 중독된 자의 감성이나 거기에서 발현되는 행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중독된 상태의 평안함, 때론 쾌감을 잊지 못하는 게 중독인 만큼, 어느 정도 중독이 진행된 자의 중독은 중독자의 자발성에 의거합니다. 자주성을 거부하는 자발성에 의거한다는 말이죠.


    상대와 고객이 자발적으로 애쓰는 ‘중독’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베타를 추진해야 합니다. 심오한 권력론에 등장하는 최고 단계의 권력이 무엇인지 아세요? 종속시키고자 하는 상대에 내면화되어 있는 권력, 즉 상대가 상대의 자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종속되고자 하게 만드는 권력입니다. 고객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끊끊한’ 관계를 유지하게 위해 나만이, 우리 기업만이 애쓰는 것이 아닌 ‘중독’, 그러한 의미에서의 ‘중독’입니다.



    베타의 각성 세 번째 - 오직 순간의 진실이다

    완벽하고 훌륭한 순간

    ‘순간(瞬間)’ 은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한자 그대로,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죠. 비슷한 용어로 ‘순식간(瞬息間)’ 은 ‘숨 한 번 쉴 사이’도 포함하고, 별안간(瞥眼間)은 ‘눈길 한 번 돌릴 사이’ 랍니다. 그러고 보니 불교용어인 ‘찰나(刹那)’ 도 있네요.


    많은 현자들이 순간을 ‘고정된 순간’으로 보지 말라 합니다. 순간을 ‘영원한 현재’라 일컫고,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어떻게 순간이 영원이 됩니까? 눈 한 번 깜짝이면, 숨 한 번 내쉬면, 눈길 한 번 돌리면 지나가 버리는 것이 순간인데요. 어떻게 그 잠깐 사이가 영원이 될 수 있을까요? 순간은 순간인데 말이죠.


    어떤 사물이나 풍경이 존재합니다. 하나하나의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죠. 풍경을 구성하는 사물들이나, 개개의 사물들을 구성하는 더 작은 부분들 역시 객체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객체를 정지된 시간과 고정된 관념으로 본다면, 그것의 존재를 본 것입니다. 이 경우의 순간은 0.013초라는 찰나의 순간이죠. 그러나 만일 사물의 구성으로 사물을 보고, 사물들로 어우러진 풍경을 본다면, 그것들의 관계를 본 것이죠. 이때 순간은 결정적 순간이 되고 영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물은 고정된 객체로 존재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우리의 인식에 자리한 그들의 관계는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잔상과 여운으로 계속 남아 있으니까요.


    관계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사 정지된 순간, 고정된 사물이라도 구성과 관계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계, 공감 구성으로 인한 관계를 잡아채야 순간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당신 인생의 절정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순간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나요? 하나의 인상, 한 조각의 추억으로 떠올립니다. 바라던 대학에 입학하던 날 찍었던 사진을 다시 봅니다. 순간의 모습이죠. 순간을 담은 사진이지만 그날 청명했던 하늘, 청량했던 공기, 옆에 서 있는 아버지의 웃음, 어머니의 주름, 그리고 꽃다발, 꽃다발의 향기, 설렘, 기대감…, 이들 모두가 동시에 다가옵니다. 순간이지만 절대 순간으로 머무는 순간은 아니지요.


    완벽하고 훌륭한 순간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접근방식이 요구됩니다. 이 말을 하고 싶어 꽤 많이 돌아왔습니다만, 관계의 관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관계의 관점과 관계 중심의 사고방식은 새롭고 창의적인 시각, 때론 통찰의 시간까지 가져다준다고요.


    서로에게, 지속

    개인의 인생이나 조직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니 1초, 2초, 하루, 이틀…, 이렇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인생과 역사가 늘 연속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주 특별했던 기억과 추억으로 각인된 몇몇 순간이 남습니다. 그러한 순간들로 알록달록 수놓아져 있는 게 인생이고 역사지요. 만일 어떤 순간이, 하얀 구름이 하늘 위에서 내려올 정도로 특별하고 각별했다면, 그 순간을 영원히 이어가고 싶겠지요. 당신과 그대, 당신의 기업과 고객의 각별한 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겠지요. 사람도, 기업도 누구나 자기만의 상황이 있습니다. 소중한 상대와의 소중한 순간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과 사례로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입니다. 비즈니스 관계이니 냉정한 현실이 전제됩니다. 기업은 처음에 높은 기대수준을 갖고 있습니다. 고객에 대한 기대수준입니다. 고객을 바라보고, 고객이 바라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출시합니다. 그러다 경쟁사의 공격도 받고 고객의 여요구도 모른 척할 수 없어 각종 할인 정책을 마련합니다. 기대수준을 낮추는 거죠.


    반면에 고객은 원래부터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르기도 하고 아직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죠. 그러다가 기업의 노력으로, 또는 그간의 사용으로 필요를 느끼며 기업(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져갑니다. 그러다 만납니다. 구매가 이루어지고, 비즈니스 관계가 비로소 성립되는 순간이지요. 그 접점이 바로 서로의 기대수준이 만나는 합의의 순간입니다. 관계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진실’ 에 도달한 것이지요.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만개한 꽃은 시들고, 잘 익은 열매는 떨어집니다. 잠깐 동안 피어오른 구름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죠. 정작 관심 없었던 고객의 기대수준은 점점 상승합니다. 지갑을 연 후에야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으니, 구매 후 사용하면서 기대는 계속 상승하고, 높아진 그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기업은 판이한 입장입니다. 이미 지불한 고객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 고객에 대한 기대수준은 떨어져만 갑니다. 더 바랄 게 없으니까요. 아니라고요? 재구매하게 해야 하고, 다른 이들에게 입소문 내게 해야 하니 계속 잘해야 한다고요?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고, 고객은 왕이니 계속 모셔야 한다고요? 생각해보세요. 진짜 그러한지, 구매 확정 전후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달라지는지. 진실의 순간은 잠깐일 뿐, 금세 멀어집니다. 멀어진 사이는 마치 평행선처럼 계속됩니다.


    원체 기업과 고객은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줄 것과 받을 것이 다르니 만나기 어렵습니다. 서로 얻어내려고만 하니 당연히 가까이하기 어려운 당신이죠. 어찌어찌해서 만났고, 어렵게 ‘순간의 진실’을 경험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가치는 ‘신뢰’였습니다. 신뢰는 기업과 고객의 기대수준이 얼추 비슷해야 생성됩니다. 따로따로 노는 기대수준으로는 신뢰를 구가할 수 없습니다. ‘책임’도 따져볼까요? 고객은 명확히 한 시점에서 책임을 집니다. 가격을 지불하는 접점의 순간이 바로 그 시점이죠. 기업은 꽤 폭이 넓습니다. 접점에 이르기 전에는 과대광고 하지 말아야 하고, 접점에서 만났을 때는 투명하게 거래해야 하고, 접점에서 멀어진 후에는 애프터서비스 해야 합니다. 간혹 사회적 책임도 짊어져야 하고요.


    관계의 핵심가치인 신뢰나 책임으로 보아도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떨어진 관계와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의 눈높이도 맞추려면 가급적 자주자주 접점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관건이죠. 관건이 뚜렷해졌으니, 베타가 추구하는 가치도 또렷해집니다. ‘지속’이겠죠. ‘순간 되지 않게 함’ 은 당연히 ‘지속’입니다. 관계의 가치와 순간의 진실을 지속해야 합니다. 나와 너, 당신과 그대, 당신의 기업과 고객, 서로에게, ‘지속’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소중한 상대와,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과의 소중한 순간을 연이어 가는 방법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 번 주고 한 번 받고, 한 번 팔고 한 번 사고, 그렇게 끝내지 말고 끊임없이 끊김 없이 역동적으로 기꺼운 순간을 지속하는 방안을 강구해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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