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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저   자 : 최재천 외
출판사 : 인플루엔셜
출판일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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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생태와 인간_ 최재천

“바이러스 3~5년마다 창궐한다” _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3년마다 찾아온 바이러스, 어떻게 다른가

‘코로나19’ 라는 미증유의 사태는 단순한 전염병 유행을 넘어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질적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은 대표하는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와 함께 미래를 가늠하고 새로운 시대와 우리의 삶을 통찰해보는 자리 마련했습니다.


교수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우리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죠?

그렇습니다. 자료를 보면 계속 짧아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먼저 드리겠습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이 네 가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간단하게 정리하면요. 네 가지 모두 21세기에 발생한 바이러스입니다. 사스는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인데요. 원인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이며 기침, 호흡 곤란 설사 등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신종플루는 돼지에서 유래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생긴 바이러스입니다. 2009년 4월에 미국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인데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WHO가 이번 코로나19 때처럼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같은 해 백신이 나오면서 신종플루는 안정세를 찾았죠.


메르스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대로 201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주로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년 후인 2015년에 발견되었죠.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바이러스 질환으로 비말감염이 주요 감염 경로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번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만,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병원체로 하고 비말이나 밀접 접촉에 의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WHO에서는 홍콩독감과 신종플루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그럼 교수님,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는 뭘까요? 그리고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의 유행 주기가 왜 이렇게 점점 단축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만 말씀드리면요. 세균은 독자적인 증식이 가능한 생물입니다. 그에 비해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을 못하기 때문에 남의 유전체에 올라타, 그러니까 숙주가 증식할 때 슬쩍 따라서 증식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로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럼 바이러스는 기생 생명체로 봐야 하는 건가요?

그렇죠.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손 하나 대지 않고 증식을 하는데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척 약았다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약았죠?

처음에는 증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얌전하게 삭 들어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또 남한테 전파를 시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자신이 걸렸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남에게 퍼뜨리는 거죠. 그러고 난 다음에 본색을 드러내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장기로 진입합니다.


위중해지지 않고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기를 증식시키다, 그런 거네요.

바이러스에 뇌가 있어서, 그야말로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 씨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계획한 건 아니겠지만요. 그동안 우리를 공격했던 다른 바이러스와 비교해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력합니다. 의인화해서 표현한다면 아주 영리한 놈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원인은 결국 인간

그럼 바이러스의 주기가 짧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앞으로 점점 더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전례 없이 야생동물들을 건드려대기 때문입니다. 박쥐가 우리한테 일부러 바이러스를 배달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박쥐를 잘못 건드린 거예요. 우리나라는 처마를 없애서 이제 박쥐가 숲에만 있지만 일본만 가도 저녁에 웬만한 소도시 강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야외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날아다닌다고 해서 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뿌릴 확률은 극히 낮아요. 그런데 자꾸 숲으로 길을 내고 목재를 실어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동물의 서식지에 들어가서 들쑤시게 된 거죠. 그러면서 야생동물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묻는 겁니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천갑산이 중간 숙주가 맞다면, 중국인들이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먹으니까 가공하는 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만, 가끔 궁합이 딱 맞는 녀석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한마디로 사람,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동물들의 행동반경을 제약해왔는가, 그거군요. 그러다 보니 동물들 틈 속에 있어야 할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왔고요. 그런데 이런 전염병 유행 간격이 앞으로 더 좁아질 거다, 1년 후에 또 뭐가 올지 모른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앞으로 5년으로 줄고, 3년으로 줄고… 한참 있으면 거의 연례행사처럼 벌어지지 않을까요?


진정한 대안은 생태백신과 행동백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같이 살아야 합니까, 앞으로?

애당초 근절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습니까?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서 해충 구제할 때 이미 쓰던 용어들이 있어요. 박멸 퇴치 등등. 지난 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을 때 멧돼지를 쫓으면서도 퇴치나 박멸이라는 똑같은 용어를 썼죠. 이게 다 군사용어거든요. 하지만 경찰이 하는 일과 군대가 하는 일은 달라요. 군대는 쳐들어가서 박멸하는 게 목표고 경찰은 질서를 유지하는 게 목표잖아요. 사실 우리가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들을 대할 때는 경찰 행동을 해야 하는 겁니다.


질서를 잡아야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군사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요. 완전히 한 명도 확진자가 없고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태를 목표로 삼으면 굉장히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기나 독감의 경우처럼 질서를 잡는 수준으로 목표를 잡으면 훨씬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죠.


그러다가 또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죠. 그럼 또 백신이 필요하게 되겠네요?

그렇죠. 그러니 우리가 만능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저는 화학백신이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화학백신보다 생태백신과 행동백신이 중요하단 말씀이고요.



경제의 재편_ 장하준

“1929년 같은 대공황 온다” _ 세계 경제는 어떻게 리셋되는가

코로나19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위기도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장하준 교수께서는 코로나19 사태를 들어 ‘준전시 상태’라는 표현까지 쓰시던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경제에 닥칠 위기, 과거의 위기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이것을 미증유의 사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경제불황이 온다’ 이러면 경제 한 부분이 잘못돼서 시작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오일쇼크가 온다거나 금융시장 거품이 터진다거나…. 이런 것들이 퍼져서 위기가 오는 것인데 이번처럼 수요, 공급, 소비가 한 번에 다 붕괴되는 상황은 없거든요.


더 걱정인 건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에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않고 금리인하, 양적팽창 등으로 억지로 경기를 부양해서 사실상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거고요. 만약 백신이 빨리 개발되지 않아서 경제 마비가 계속되면, 저는 2008년 금융 위기는 물론이고 1929년 대공황 때보다도 더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2008년 금융 위기에 이미 금리인하, 양적완화를 통해서 금융시장에 거품이 끼었는데요. 지금 그 상태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제한으로 돈을 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은 돈을 풀어야죠. 그 방법밖에 없기는 합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2008년 이후 돈을 엄청 풀었지만 그 돈이 실물경제로 거의 가지 않았어요. 그냥 은행들이 쌓아놓고 있다든가 기업들이 무리한 부채를 끌어오는 식으로 해서 자산시장에 거품만 끼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지요.


특히 이번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풀어도 나가서 소비를 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생계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돈을 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임금의 80퍼센트까지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물론 한시적인 것이지만요. 심지어 영국에서는 ‘그러면 자영업자는 어떻게 하냐’ 이런 움직임이 있으니까 자영업자도 80퍼센트까지 지원해주겠다고 하고 있어요.


물론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옛날처럼 그냥 막연하게 돈을 푸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은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줘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 거죠.


가라앉는 산업, 부상하는 산업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세계경제는, 또 각국의 경제는 근본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먼저 산업분야도 상당한 재편이 이루어지겠죠?

그렇죠. 이제 어떤 분야에서는 영업 자체가 아예 안 될 수가 있어요.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걸 하기 시작하면요. 지금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게 서비스 업종입니다. 서로 가까이 대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조업 같은 경우에는 도리어 기계화가 많이 돼 있고 사람들이 띄엄띄엄 일하기 때문에, 아주 노동집약적인 의류, 식품 가공 등 몇 분야를 빼고는 그렇게 크게 타격을 받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타격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겠죠.


관광업에 의존하는 나라 또한 타격이 엄청 클 겁니다. 물론 백신이 개발되면 관광객이 다시 오기는 하겠지만, 예전만큼 많이 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여행산업이라든가 항공산업 등에도 영향이 클 거고요. 현재로서는 정확히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는 힘들겠지만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 같습니다.


반대로 배달업, 택배업은 당장 눈에 띄게 부쩍 늘어나고 있어요. 또한 집 안에서 TV를 통해 영화를 보는 서비스, 이런 것이 엄청나게 커지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리고 화상 미팅을 하는 회사, 화상 강의를 하는 학교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업종의 주가가 엄청 올라가고 있잖아요. 하여튼 무슨 일이 벌어져도 돈 버는 사람들은 또 있다, 이런 얘기도 있고요. 그런 것처럼 사양산업도 있지만 더 잘되는 산업도 있을 겁니다. 주요 산업에 많은 구조 변화가 오리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흔히 얘기해온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코로나19 이후에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요?

어떤 기술들은 그렇겠죠. 특히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일하는 방법들이 더욱 발전하고 상용화 또한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방식이 각 기업에서 어떻게 현실화될지, 언제쯤 본격적으로 가시화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합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좋은 점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한 산업 구조 개편 등도 예상하고 있지만, 이 흐름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사는 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거든요. 왜냐하면 방금 이야기한 배달, 택배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이전에는 떠올리지 못했거든요.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으니까요.


영국 같은 데서는 의료나 먹거리, 교육 등에 종사하는 분들을 ‘핵심 인력(key worker)’이라 부르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필수 직원(essential employee)’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요. 지금까지는 세상에 더 중요한 것도 없고 덜 중요한 것도 없이, 시장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더 많이 생산되고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생산이 안 되는 식으로 사회가 운용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사회를 유지하려면 더 필요한 일들이 있고,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식에 따라 임금구조나 노동시장구조도 변할 것 같아요.



세계관의 전복_ 김누리

“자본주의가 무너지거나, 자본주의가 인간화되거나” _ 세상을 향한 거대 프레임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 한국은 반세기 뒤처져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낯설게 보게 하는 강의로 늘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중앙대 김누리 교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교수님이 이번 대담의 제목을 ‘바보야, 문제는 생각이야’ 이렇게 붙이셨다고요. 왜 이런 제목을 붙이셨어요?

코로나19가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올 텐데요. 결국은 생각, 인식의 변화가 가장 사실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시대적 인식을 바꿔야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꼭 구시대적이라기보다는, 저는 지금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 보편적인 이 세계 또는 근대를 이해하는 데 대체로 반세기 정도 뒤처져 있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가 68혁명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유럽의 68혁명 말씀이신가요? 유럽의 인식에 비해서 우리가 뒤처져 있다?

꼭 유럽만은 아니고요. 세계적 흐름에서 뒤처진 것이죠. 68혁명은 프랑스 파리에서 불붙었지만, 곧 세계로 퍼져나갔어요. 그러나 철통같은 반공국가 대한민국 해협을 건너지는 못한 거죠. 저는 한국만 예외적으로 68혁명의 영향이 닿지 않았다는 게 한국 현대사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한국 예외주의’가 이 나라를 세계적 흐름에서 반세기 정도 뒤처지게 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총체적 미국화의 현실

어떻게 보면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에 대해서 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내용은 이런 거죠. 이번에 저희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생각하는 게 우선 미국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미국관요.


미국은 뭐든 잘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엉망이잖아요.

미국이 저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가 한국이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국민은 한국인일 거예요. 대체로 유럽에서는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이 넓게 퍼져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반미주의가 약한 나라, 거의 없는 나라라고 이야기할 정도예요.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우리가 앞으로 선진국이 된다면 따라가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저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 못한 거죠.


사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제3세계 수준의 삶을 산다는 것, 게다가 생존과 생명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지켜줄 공공의료시스템이 없다는 걸 지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진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너무나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고요. 왜 그런가하면 한국은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가 심한 나라거든요.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에요. 교육제도, 대학제도, 엘리트 대학시스템, 그리고 대학의 경쟁과 높은 대학등록금, 지금 미국 대학의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요.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가장 높은 등록금을 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유럽에는 엘리트 대학도 없고 대학 입시도 없고 학비도 없고요. 정치도 같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총체적으로 따라왔는데요. 문제는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데 있어요.


의료복지 뿐 아니라 사회복지도 좀 약하죠.

맞습니다. 의료는 우리가 더 낫죠. 의료는 왜 우리가 더 나은가? 이것도 사실 이유가 있어요. 우리 사회가 지닌 독특한 점 때문인데요. 1960년대에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는 북한과 경쟁이 굉장히 심한 상태였습니다. 북한이 상당히 진전된 의료시스템을 가진 상황에서 우리도 그런 의료시스템을 기획하게 된 거죠.


지금 필요한 건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

지금 유럽 국가도 나름 복지사회 모델입니다만, 코로나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통제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제대로 못 잡고 있고요. 그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참 놀라운 거죠.

저희도 몰랐던 잠재력을 스스로 깨달았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하나 말씀을 드리면 더 근본적인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해왔던 세계가 당연한 게 아니고 견고한 것도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느꼈어요.


인간은 발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인간의 역사는 발전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발전을 지소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발전 이데올로기인데요. 사실은 근대사회에서, 특히 68혁명 이후에는 발전 이데올로기가 당연하지 않거든요. 물적 발전, 물질주의적 발전이라는 성장지상주의가 대단히 위험할 수 있고 오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동시에 있었어요. 발전 이데올로기, 성장지상주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한국의 공론장에는 아예 없어요.


그걸 요약해서 말하면 뭐가 될까요? 시장중심주의가 바뀌어야 한다, 경제중심주의가 바뀌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건가요?

조금 더 근본적으로 말씀 드리면, 우리가 당연시해온 세계라는 것은 사회학적 용어로 쓰자면 ‘자본주의’죠.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거예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지난 70~80년 동안 경쟁해서 이겼다는 사실을 알잖아요. 그건 역사적 사실이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3가지

코로나19 이후에 시대, 다시 말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것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겁니다. 


둘째는 한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보여준 대응 모델을 사회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대응 모델, 미국의 자유방임적 대응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모델, 그 어느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겁니다.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을 자본지배를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몇몇 재벌과 대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보인 일련의 행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보인 자본친화적 조치들은 재난 자본주의의 악폐가 재현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아 힘든 점도 많습니다만, 이번 위기를 계기로 특히 한국은 전환적 사고의 계기를 맞았다는 점, 그만큼 세계관과 사고가 넓고 깊어졌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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