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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민주주의
저   자 : 남기업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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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민주주의


개혁, 시동을 걸다

‘저항’에서 ‘형성’으로 도약을 꿈꾸다

첫 번째 회장 임기에서 내가 고생한 기간은 약 1년 7개월(2015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이다. 19개월 동안 나는 저들에게 열다섯 번 고소를 당했고, 내가 고소한 것이 열한 번이었으며, 형사재판에 두 번 증인으로 참석했고, 가처분소송을 세 번 했으며, 민사재판에도 원고로 두 번 참석했고, 수원시에는 열다섯 번 민원을 넣었다.


경찰과 검찰에서 수시로 조사를 받고 수원시청을 오가며 나는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소장이나 민원서류, 준비서면 등을 쉽게 작성할 정도까지 되었다.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저들 대다수가 중임제한에 걸려 다음 동대표 선거에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두 번째 회장선거 준비에 돌입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아파트를 바꿔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저항’에서 ‘형성’으로 도약하고 싶었다. 그러나 ‘형성’에 성공하려면 함께 활동할 상식적인 동대표들이 필요했다. 나는 직접 동대표가 될 입주민들을 섭외해야 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접수’

동대표 섭외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상화였다. 당시까지 선관위는 저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회장 남기업 해임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해임투표에서 부결로 결론 났음에도 투표결과를 무효로 하고 세 번이나 해임투표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호시탐탐 나의 동대표직 해임을 노릴 수 있었던 것도, 저들과 선거관리위원회가 한통속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로운 선거관리위원 모집일은 2017년 7월 11일이었다. 선관위 정상화를 위해 나는 평소 함께 활동하던 입주민들과 의논했다. 다행히 그들 중 일곱 명이 선관위원 모집에 원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쪽에서는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선거관리위원회는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 다시 말해 공동주택관리법과 관리규약이 정해놓은 주어진 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내게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입주민이 선거관리위원장이 되었다.


동대표 선거 출마자 찾기

다음 과제는 함께할 상식적인 동대표를 찾는 일이었다. 2017년 9월 4일이 동대표 후보 등록일이었으니, 나는 2017년 6월부터 8월까지 꼬박 3개월 동안 동대표로 나올 만한 입주민을 찾는 작업을 했다. 19개 선거구 전체에 내가 섭외한 사람들을 출마시키고 싶었지만, 과반인 열 명만 섭외해 당선시키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우선적인 대상은 지난 2년 동안 내게 꾸준히 응원 문자를 보내거나, 회의 참관을 하거나, 홈페이지에 우호적인 글을 올린 입주민이었다. 전화로, 때론 직접 만나 동참을 호소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다들 꺼렸다. 생업이 바쁘다, 또는 그 못된 놈들에게 혹시 괴롭힘을 당할까 두렵다는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물론 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동대표직을 마다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알량한 회의비에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나 완장 차고 으스대고 싶은 사람들, 또는 관리비를 빼먹고 싶어 안달 난 나쁜 사람들이 장악하게 된다는 논리로 거듭 설득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굳이 집에까지 와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말로 설득 논리를 바꿨다.


“우리가 나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아요. 그 추운 날 몇 개월 동안 150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야 겨우 대통령 한 명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직장의 변화, 이건 꿈꾸기도 어렵지요. 그런데 여기 아파트는 달라요. 우리의 생각이 바로 현실이 됩니다. 참여를 통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예요. 그리고 저를 괴롭혔던 그 악귀 같은 이들은 중임제한에 걸려 더 이상 출마를 할 수가 없어요. 함께 아파트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논리로 설득을 하니 동참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설득에 응한 동대표들에게 들어보니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또 어떤 동대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2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사람이 권해서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참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나에게 꾸준히 응원 문자를 보내준 한 여성 입주민은 남편을 대신 출마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꼭 함께했으면 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삼겹살 두 근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2년 동안 수난당할 때 나를 응원했고, 뛰어난 소통능력과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어서 공을 들여 설득했는데, 결국 그는 결심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결심한 사람이 총 다섯 명이었다. 다섯 명을 더 찾아야했다. 이 일로 아내와 의논하던 중 나는 아파트 상가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아들 재현이 친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에게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동대표를 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는 그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서 내게 알려주었고, 나는 직접 전화하거나 찾아가 설득했다.


그런데 의외로 기다렸다는 듯이 순순히 응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지난 2년 동안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열 명의 동대표 선거 출마자 섭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열아홉 명을 다 채우고 싶었지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기적 같은 일

두 번째 회장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사 문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원으로 올라오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 내 다른 동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동대표 선거 전에 이사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동대표와 회장에 당선되더라도 동대표 선거 후 이사를 하면 동대표와 회장직이 자동상실되기 때문이다. 사정상 이사를 두 번째 회장 임기를 마치는 2년 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두 번째 회장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게 2017년 6월 초였으니, 이사할 수 있는 기간은 석 달밖에 안 되었다. 이사 갈 집을 찾아 계약하는 일, 거주하고 있는 집을 매각하는 일, 동대표 선거 전에 이사날짜를 잡는 일, 이 세 가지가 거의 동시에 성사되어야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내와 중개사무소에 가보니 내가 이사하려는 동에 팔려고 내놓은 집이 두 채가 있긴 한데, 둘 다 10월 이후에나 이사할 수 있는 집이었다. 절망스러웠다. 회장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어머니 모시는 걸 2년 연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이사하려는 동에 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평소 아파트 일로 고생하던 내게 직접 전화까지 해서 격려해준 입주민이었다.


지체하지 않고 연락해서 그를 만났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회장에 출마하려면 9월 4일 전에 이사해야 하는 상황과 다시 회장이 되어 아파트를 바꿔보고 싶다는 내 뜻을 설명하며 중개인 없이 직접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내 제안에 응했다. 이사 날짜도 최대한 나를 배려해주었고, 다른 곳보다 100-200만 원 싸게 팔기까지 했다. 회장에 다시 당선되어 아파트를 꼭 변화시켜달라고 당부하면서.


이렇게 해서 나는 동대표 선출 공고일인 9월 4일에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삿날 바로 동대표 출마 원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내가 설득한 열 명의 입주민들도 동대표 출마 원서를 제출했다.


물론 저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남기업 위주로 입주자대표회의가 꾸려지면 과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불법행위를 공적으로 처리할 게 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중임제한에 걸리지 않은 당시 동대표 한 명과 그들이 설득한 두 명, 그러니까 총 세 명이 적폐세력의 이름으로 동대표에 출마했다. 드디어 동대표 선거가 시작되었다.


다시 회장이 되어 개혁에 착수하다

2017년 9월, 드디어 동대표 선거의 막이 올랐다. 총 19개 선거구에서 나를 포함해 내가 설득한 사람 열한 명, 적폐세력 쪽 다섯 명, 자발적 출마자 두 명, 이렇게 열여덟 명이 출마했다. 거의 단독후보이고 두 명이 출마한 곳은 두 개 선거구뿐이었는데, 그 선거구에서 적폐세력 쪽과 내가 섭외한 사람이 맞붙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내가 설득해 출마한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40대 중반이었는데 반해 저쪽 출마자들의 평균연령은 70세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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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표 투표결과 나를 포함해 내가 설득한 사람 열한 명이 모두 당선되었다. 적폐세력과 경쟁한 두 개 선거구에서 우리 쪽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쪽 후보는 둘 다 30대 후반이었는데 상대 후보는 70대 중반, 80대 초반이었다. 동대표의 나이가 중요하다고 할 순 없지만, 투표 당시 우리 아파트에 70세 넘은 사람이 동대표직을 맡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쪽 열한 명, 적폐세력 쪽 세 명, 자발적 출마자 두 명, 모두 열여섯 명으로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었다.


연이어 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사실 동대표 선거보다 회장 선거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회장은 나라로 치면 국회의장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통령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아파트의 운영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 후보는 두 명으로 좁혀졌다. 우리 쪽에서는 내가 회장으로 나갔고, 저쪽 출마자는 나와 함께 동대표 활동을 했던 71세 된 목사였다. 첫 회장 임기 초, 종교도 같고 해서 막연히 내게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2년 내내 저들에게 일조했다. 몸통과 그의 하수인들이 내게 쌍욕을 하고 겁박하는 장면을 그렇게 많이 목격하고도 그들에게 보조를 맞추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그와 내가 회장 선거에서 맞붙게 되었다.


다시 회장에 당선되다

결과는 ‘당선’이었다. 투표 마감 일시인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정각에 핸드폰을 통해 당선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총 571세대가 참여한 가운데 내게 표를 던진 입주민이 368명이고, 나머지 203명은 상대 후보를 선택했다.


정말 기뻤다. 처음 회장 선거는 말 그대로 얼떨결에 회장이 뭔지도 모르고 참여했다면, 두 번째 회장 선거는 회장이 되어야 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더더욱 기뻤던 것은 두 명의 감사도 내가 섭외한 사람들이 모두 당선된 것이다. 감사직 선거에도 저쪽에서 73세 된 동대표를 후보로 내보냈지만, 그는 입주민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의 고통과 모욕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선거 과정에서 도움을 준 많은 입주민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 아파트 회의 시간에 남기업이 혼자 속절없이 당하는걸 보고 너무 안쓰럽고 미안했다고, 그래서 돕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런데 나만 이렇게 당하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대한민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처럼 고생하는 동대표와 회장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대부분 죽도록 고생만 하고 아무 결실도 없이 막을 내리는 일이 허다했다. 급기야 병을 얻거나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도 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그만큼 나의 경우는 많은 입주자들이 지지하고 동참해주었기에 가능한 드문 사례였다.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작고 소중한 성취들

놀이터개선위원회: 참여를 통한 변화의 경험

아파트의 비리 발생과 부패의 근본 원인은 주민참여의 부재다. 물론 주민참여의 부재를 조장하는 구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이것은 5부에서 자세히 다룬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에는 동대표를 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동대표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간혹 아파트에 동대표 지원자가 많다는 것,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아파트에 문제가 정말로 많다는 증거다. 대개 어쩌다 관리비가 높게 나오거나 당장 불편한 일을 당한 입주민이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상황을 따져묻는 경우는 있지만, 제대로 된 참여나 감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아파트는 주민주권의 무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동대표와 선거관리위원이 될까? 상당수는 회의비를 받아 용돈에 보태려는 노인들과 대표님이나 위원님 혹은 회장님이란 호칭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까닭에 아파트 회장의 나이가 70세가 넘는 경우가 상당하고 어떤 경우에는 80세가 넘는 경우도 있다. 그뿐 아니라 공사 입찰이나 아파트에 필요한 물품 구매 과정에서 뒷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대표로 나서기도 하니 아파트엔 비리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상식적인 입주민들이 참여를 꺼린다는 점이다. 상식적인 입주민들은 각종 미디어와 소문 등을 통해 형편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낸 관리비를 흥청망청 쓴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관리비 1만원 더 낼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심정으로 차라리 모른 체하는 것을 택한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아파트 일에 무관심하다.


그렇다. 국가의 가장 작은 단위,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 (2018년 현재 50.1퍼센트)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주민주권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아파트는 상식 있는 다수 입주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의 현장이 아니라, 타락한 소수가 무관심한 다수를 지배하는 ‘과두제’의 현장이다.


참여의 계기 만들기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것은 아파트의 일에 입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참여가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경험을 우리아파트 주민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래야 질 낮은 사람들이 동대표나 선관위원이 되기 어렵고, 나아가 참여자 중 일부가 동대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위적으로 호소해서는 입주민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관리비에 관심을 가져야 관리비가 절감된다고 설명해도, 입주자대표회의에 참관해 실제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감시해야 비리가 근절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입주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는 걸 부인하지 않지만 굳이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관건은 참여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섭외해 동대표가 된 사람들과 어떻게 계기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했다. 입주민들이 즐겁게 참여하며 변화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은 끝에 우리는 ‘놀이터 개선’을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의 비율이 꽤 높았다. 나는 잘 몰랐는데 놀이터에 나가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끼리 놀이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30년이 다 된 우리 아파트의 놀이터는 이용하는 아이들이 꽤 되었지만, 불편한 점이 많고 위험시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젊은 엄마들의 놀라운 열정

2018년 3월 30일, 관리사무소 회의실에서 놀이터개선위원회와 미팅을 가진 나는 그들의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들이 만든 제안서는 파워포인트 30장 정도 되었는데, 거기에는 구체적인 개선 사항과 비용추산 등이 담겨 있었다. 놀이터 전문 회사가 만든 자료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유모차 진입로 확보, 그네의 쇠줄 교체, 소음이 나는 시소 교체의 필요성과 수리 방법, 엄마들이 쉴 수 있는 벤치 수리와 등나무 교체 등 놀이터 개선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었다. 감동한 나는 식사 대접으로 그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제외하고 그들이 제안한 거의 모든 것들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해서 우리 아파트의 놀이터는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더 안전하고 편리해졌다. 유모차 진입이 쉬워졌고, 그네의 쇠줄을 안전한 재료로 교체했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쉴 수 있는 벤치와 등나무는 위원회가 요청한 대로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고 엄마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놀이터개선위원회 활동은 무보수다. 그런데 그들의 열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게 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일차적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 안에 잠재된, 이유가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뜻의 ‘자유의지’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연말에 놀이터개선위원회 위원 5명에게 시상을 했다. 그들의 ‘즐거운 참여’를 통해 입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상장과 함께 위원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소액의 격려금도 지급했다. 그들의 이런 경험이 또 다른 시도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학교: 갈등과 비리의 아파트에서 화합과 상식의 아파트로

비록 눈에 보이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의 젊은 엄마들로 구성된 놀이터개선위원회의 시도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아파트의 모든 일은 동대표들과 관리사무소의 일이었다. 주민이 직접 나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놀이터개선위원회를 통한 아파트의 변화는 아파트의 주인인 주민이 직접 제안하고 그것을 입주자대표회의가 받아서 진행한 일이다. 입주민들이 주체가 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해 나는 아파트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학교’ 개최를 추진했다. 마을학교를 추진한 목적은 우리 아파트가 ‘갈등과 비리의 아파트’에서 ‘화합과 상식의 아파트’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우리 아파트는 갈등과 비리로 악명이 높았다.


적폐세력의 기획자로 온갖 패악질을 부리다 전과자가 되어 쫓겨난 관리소장 후임으로 온 신임 소장에게 들으니, 당시 관리소장들 사이에서 우리 아파트는 기피 대상 1호였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 소장으로 간다고 하니 다들 말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거기 가면 갈등에 휘말려 고생만 하다 결국 얼마 못 가 그만두게 된다고 하면서, 나는 마을학교 개최를 통해 우리 아파트의 이와 같은 꼬리표를 떼내고 싶었다.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선포하고 싶었다.


또한 마을학교를 통해 아파트 일에 입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싶었다. 아파트 민주주의, 공동체 만들기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다 보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입주민들이 반드시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마을에서도 ‘촛불 시민’을 만나 그들과 함께 우리 아파트를 참다운 ‘마을 공화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전국 최초로 연 아파트 마을학교

내 제안을 들은 수원시정연구원은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까지 연구원은 수원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자치학교를 개최하고 있었는데, 우리 아파트의 경우에는 ‘찾아가는 마을학교’라는 콘셉트로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원은 마을학교와 관련된 모든 비용 지원은 물론 강사 섭외와 현수막 제작까지 맡아주었다.


연구원과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쳐 2018년 11월 11일 토요일 저녁 7시에 관리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학교를 열었다. 전단을 돌리고 현수막도 게시했다. 평소 아카데미를 직접 개최하기도 하고 강의도 했었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하는 것이어서인지 많이 긴장되었다. 얼마나 올까, 우리 아파트에 숨어 있는 ‘촛불 시민’은 얼마나 될까. 개최하기 전날 밤잠을 설쳤다.


가장 걱정되는 건 인원이었다. 열 명밖에 안 오면 안 하느니만 못한데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무려 3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한 것이 아닌가. 아마도 ‘1680세대에서 겨우 30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행사를 한다고 광고해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오는 건 힘들다. 마을학교에는 첫 회장 임기 2년 동안 나를 위로해주고 맛난 음식을 사준 초등학교 동창 희동이와 철규도 참석해주었다. 나는 입구에 서서 속속 들어오는 입주민들에게, 평소 나의 아파트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지지해주던 아파트 상가 내 농협지점장이 협찬한 음료수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인사했다. 당시 내가 한 인사말이다.


“좋은 아파트 공동체는 누가 만들어서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최근 5년 동안 극심한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첫 번째 회장일 때는 저를 향한 불법해임투표를 무려 세 번씩이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매월 1-2회 열리는 정기(임시)회의는 거의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몰상식과 불법이 난무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파트는 정상화되었습니다. 상식적인 입주민들이 동대표가 되었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전체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놓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하여 의결하고 있고, 관리사무소는 이렇게 결정된 사항을 제대로 집행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마을학교는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희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런 행사를 연 까닭은 이제 우리 아파트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우리 아파트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좋은 아파트 공동체는 누가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기성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해준 수원시정연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작이나 계속 함께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파트 전체 분위기를 바꾸다

마을학교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학교를 마친 입주민 모두가 아파트 일에 주체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과거 갈등과 비리의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주민들도 나의 새로운 시도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었다. “비록 못 가봤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입주민이 여럿 있었고 나를 알아보는 입주민도 많아졌다. 이렇게 마을학교는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성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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