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인문
Preview
Trend
Briefing
번영의 역설
저   자 :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역:이경식)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0년 05월
206

번영의 역설


시장 창조 혁신의 힘

모든 혁신은 동일하게 창조되지 않는다

혁신의 세 가지 유형

“우리 회사는 연구 개발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혁신'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혁신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또 각 유형의 혁신은 제각기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 같고요. 우리 회사가 진정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려면 연구 개발 부서의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혁신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혁신을 단 하나의 획일적인 어떤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더군요."


그 사람 말이 맞다. 모든 혁신은 동일하게 창조되지 않는다. 오랜 연구 결과 혁신에는 지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 효율성 혁신(efficiency innovation), 시장 창조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이라는 세 가지 유형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세 유형 가운데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다만 각 유형은 성장을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조직들을 위해 저마다 독특한 역할을 할 뿐이다.


지속성 혁신

지속성 혁신은 기존의 해법을 개선하는 것이며, 전형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더 나은 성능(성과)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 포장 소비재(CPG0 산업에 종사하는 내 친구들은 이것을 ‘새로운 소식을 위한 상품 품목(SKUS for news)’이라고 부른다. 이미 자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추가로 어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기존 제품의 향이나 색깔이나 특징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유니레버(Unilever)의 립톤이라는 차 브랜드를 놓고 생각해 보자. 지금 립톤 차의 향 종류는 지구상에 있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과장이 심하다고 지적한다면, 적어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많다고 수정하겠다. 이 브랜드는 ‘기존의’ 차 음료 시장에서 더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최소한 기존의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마차그린티(Matcha Green Tea)에서부터 민트(Mint), 그린아이스드티(Green Iced Tea)에 이르기까지 새롭고 흥미로운 제품들을 끝없이 개발하고 있다. 이런 것이 지속성 혁신이다. 이 혁신은 차 음료의 신규 소비자를 포착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대체재’인 셈이다. 이 혁신은 립톤이라는 브랜드가 낡은 것이 아님을 알려 주기 때문에 회사와 소비자에게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새롭게 개발한 베리히비스커스(Berry Hibiscus) 향이 완전히 새로운 차 음료 소비자 시장을 반드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성 혁신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으며, 사실상 우리 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나라로서는 이 혁신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속성 혁신은 한 나라의 경제에 다른 두 가지 혁신 유형(효율성 혁신, 시장 창조 혁신)과는 전혀 다른 영향력을 가진다. 기업들은 성숙한 시장에서 지속성 혁신을 개발할 때 판매, 유통, 마케팅 그리고 제조에서 새로운 엔진을 구축할 필요성이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세분 시장에서 대체로 확립된 방식으로 자기네 상품을 이미 잘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속성 혁신은 시장 창조 혁신과 비교할 때 일자리 창출이나 수익 창출 그리고 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전혀 다른 효과를 낸다.


효율성 혁신

효율성 혁신은 말 그대로 기업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해 준다. 다시 말해 어떤 기업이 기존에 있던 자원이나 새로 확보한 자원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뽑아낼 때, 이 기업의 기본 사업 모델과 이 기업이 자기네 제품의 소구 대상으로 삼는 소비자는 그대로 유지된다. 해당 산업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질 때 효율성 혁신은 기업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효율성 혁신은 전형적으로 과정(공정, process) 혁신이다. 즉 제품이 생산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효율성 혁신을 수행함으로써 기업의 수익성은 높아지며, 결정적으로 현금 흐름상의 문제가 개선된다.


효율성 혁신은 모든 산업에 존재하며, 어떤 조직에서든 수익성 개선과 고객 유지 수단들을 관리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효율성 혁신은 조직의 생산성에는 유익하지만 기존 직원 입장에서는 언제나 유리하지만은 않다. 현재 효율성 혁신의 대표적 현상인 외주화(아웃소싱)의 결과로 공장이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효율성 혁신은 그 자체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이 혁신 덕분에 자유로워진 자본이 시장 창조 혁신에 재투자되지 않는 한에는 그렇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시장 창조 혁신

시장 창조 혁신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다. 그러나 이때의 ‘새로운 시장’은 그냥 새로운 시장이 아니다. 기존 제품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혹은 기존 제품이 있긴 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비싸고 접근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시장이다. 이 혁신은 복잡하고 비싼 제품을 훨씬 더 저렴하고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꾸어 놓는다. 몇몇 경우에는 심지어 완전히 새로운 제품 범주들을 창조하기도 한다. 모 이브라힘의 셀텔은 과거에는 비싸기만 했던 해결책(이동통신)을 수백만 명이 구매할 수 있도록 간편하면서 또 값싸게 만들었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시장 창조 혁신은 과거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용하던 제품과 서비스를 평범한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던 상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의 혁신은 시장을 창조할 뿐 아니라 일자리도 창조한다. 새로운 고객을 거느리는 새로운 시장이 나타날 때 기업은 그 시장에서 제품의 생산, 마케팅, 유통,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의 업무를 맡아서 해 줄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창조 혁신은 이른바 ‘지역 일자리(local job)’와 ‘글로벌 일자리(global job)’를 창출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두 전략 이야기 : 밀어붙이기 대 끌어당기기

밀어붙이기 대 끌어당기기

밀어붙이기 전략은 보통 처음 제안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서 강력하게 추진하는 전략이다. 이 제안자들은 대개 특정 개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밀어붙이기 전략은 저소득 국가들에 추천되는 해결책들을 내놓는다. 이 전략으로 투입되는 자원 가운데 많은 것들이 좋은 것이며, 따라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투입되는 자원을 환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좋은 일로 시작되었던 것이 매우 실망스러운 일로 바뀔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에 반해 끌어당기기 전략은 거의 모든 점에서 밀어붙이기 전략과 다르다. 예를 들어 교육 부문, 더 구체적으로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살펴보자. 인적 자원은 수요에 대한 반응으로 한 사회에 끌어당겨질 때 훨씬 더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인적 자원 수요는 사람들이 배우는 지식과 기술을 경제가 흡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발생한다.


우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끌어당기기 전략은 지속가능한 번영을 촉발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첫째, 끌어당기기 전략은 흔히 소비자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힘겨운 해결 과제 혹은 시장의 특수한 요구에 대응하고자 하는 현장 혁신가들에 의해 시작된다.


둘째, 끌어당기기 전략은 더 강하게 주창하는 확신에 찬 접근법이 아니라 더 탐구적인 신중한 접근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전략을 취하는 혁신가들은 현장에서 배우고 그런 다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것은 특정한 개발 과제에 대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믿는 것을 마구잡이로(심지어 선의로라도) 밀어붙이는 방식과 확실히 다르다. 예를 들어 TCS는 매 분기마다 조직에 끌어당길 필요가 있는 기술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 적절하게 투입한다.


셋째, 끌어당기기 전략은 시장을 창조하거나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고 나면 시장은 스스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끌어당기는 일을 해야 한다. 끌어당기기 전략은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강력하고 절실한 필요에서 비롯된다. 이 전략은 대개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데, 처음에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 해결책이야말로 시장을 창조하거나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시장 창조 수요는 끌어당긴 해결책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17년 연속 36퍼센트 성장의 비밀

다른 많은 신흥 시장 및 프런티어 시장(신흥 시장 중의 신흥 시장을 가리킨다. 이미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신흥 시장보다 경제 규모는 작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지역의 국가들을 의미한다-옮긴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에는 사실상 '공식적인' 슈퍼마켓 부문이라고 할 것이 없으며,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누수'가 발생한다. 즉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매장의 매대에 오르기 전에 도둑질 등의 이유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톨라람의 경영진은 슈퍼마켓 공급망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간단하거나 작은 일이 아니었다. 이 공급망을 갖춘다는 것은 톨라람이 전체 유통-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물류 창고를 만들고, 가게를 열고, 회사 직영 및 개인 영업 소매점에 인도미 국수를 배송할 수백 대의 트럭을 구입하고 또 이 트럭을 운전할 기사를 고용해야 했다.


혁신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의 올바른 해결책을 마련하는 길은, 소비자가 제품을 싼 가격에 그리고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만드는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 창조 혁신은 단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에 이익을 안겨 주는 사업 모델과 결합된 제품이나 서비스, 즉 총체적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 이런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 조직은 인프라, 공장, 유통 및 물류 체계, 판매 등 사업 모델의 여러 다른 요소들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거꾸로 어떤 지역에 인프라의 토대를 놓아 준다. 톨라람은 바로 이런 일을 나이지리아에서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자 한다.


인도미 라면은 20센트짜리 포장 제품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그토록 중요할 수 있을까? 바로 가난이 혁신을 통해 번영이 될 수 있는 과정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에 대한 톨라람의 투자는, 비소비와 가난이라는 맥락 속에 적용될 때 발전과 번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근본 원리를 입증한다. 이것은 시장 창조 혁신이 가진 힘, 어떤 나라의 경제에 많은 자원들을 끌어당길 때 발휘되는 어마어마한 힘을 입증한다. 톨라람의 투자는 또한 다양한 환경에서 혁신을 지역 사정에 맞게 현지화하는 것이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요건임을 보여 준다. 아스와니 형제는 나이지리아인은 아니지만 사실상 나이지리아인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하레시 아스와니는 오군 주로부터 명예족장 지위를 받았다. 명예족장은 한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데, 그가 나이지리아의 경제 발전에 그만큼 기여했기 때문이다.


톨라람이 나이지리아에 투자하고 또 성공한 덕분에, 세계 정상의 회사들이 수억 달러 규모의 해외직접투자를 나이지리아에 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다국적 식품회사인 켈로그는 2015년에 나이지리아 내 톨라람의 유통 운영권 절반을 4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으며, 켈로그와 톨라람은 2017년 12월에 60억 나이라(약 1700만 달러)의 시리얼 생산 공장 건설을 발주했다.


끌어당기기 전략의 힘과 필요성

그런데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톨라람이 라면을 평균적인 나이지리아인에게 팔기 위해 굳이 전기, 물, 교육, 물류 등과 같은 분야에 투자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물론 이 회사가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회사가 자기네 사업에서 핵심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까지 내부화하고 통합함으로써 거기에 따르는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언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경영 이론들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자기네 사업 모델의 특정한 측면들을 통합해 직접 수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외주화(아웃소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결정은 우리가 '상호의존성과 모듈성(interdependence and modularity)'이라고 부르는 이론에 따라 좌우된다. 한 기업이 특정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으며 또한 예측할 수 있는 인풋들에 대해 공급업체들에 의존할 수 없을 때 이 기업은 상호의존적인(통합적인) 사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몇몇 경우에 이 인풋은 전기나 원재료 혹은 교육이 잘된 직원일 수 있 다. 여기에서 인풋은, 해결 과제가 제대로 처리될 것임을 확실하게 보장해 소비자가 그 회사의 제품을 ‘채용’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다시 말해 만약 어떤 회사가 공급업체에서 제공하는 특정한 인풋에 확실하게 의존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 회사는 해당 공정의 운영을 내부화해야 한다. 그 모든 인풋 요소들을 스스로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톨라람은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포장 및 물류 작업과 관련해 여러 다른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가졌다. 또한 밀과 밀가루 그리고 기름은 공급업체들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공급업체들을 확실하게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톨라람은 이런 요소들까지 전부 자기네 사업 모델 안으로 내부화해야 했다.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톨라람이 굳이 사업 모델의 많은 측면들을 내부화하고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은 믿고 의지할 만한 회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 톨라람이 물류, 포장, 전기 등을 포함해 사업 모델의 많은 측면들을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나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이런 요소들을 필요로 하던 다른 많은 기업들이 톨라람에서 자신들에게 이것들을 확실하게 제공할 수 있음을 알고는 자기네에게 팔 수 있는지 톨라람에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톨라람에 비용의 늪이던 것이 이제 수익의 분수로 바뀐 것이다.



혁신은 어떻게 번영을 창조하는가

일본과 한국이 번영에 이른 방식

일본과 한국에서 얻는 세 가지 교훈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아파트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처음 시작했던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의 공동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가 당시에 개발했던 초기 혁신들은 저품질 제품 세대의 일부분이었다. 임직원을 모두 합해 봐야 20명밖에 되지 않던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막 창조한 혁신에 호응하는 뚜렷한 수요도 전혀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념하지 않았다. 모리타는 비록 영어를 하지는 못했지만, 힘겨운 투쟁과 비소비 속에서 본능적으로 어떤 기회를 포착하는 데는 달인이었다. 모리타와 그의 동료들은 시장 창조 혁신의 발전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발전소가 바로 우리가 아는 소니(Sony Corporation)라는 기업이다. 현재 소니의 기업 가치는 490억 달러이며 전 세계에서 12만 8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일본 및 전 세계에서 기술과 혁신의 동의어로 통한다.


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하게 혁신을 통해 경제적 변혁을 이룩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 년 전에는 한국이 이런 정도로까지나, 게다가 그토록 짧은 기간 안에 발전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한국이 이룬 변혁에는 흔히 '기적'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 번영을 누리게 된 요인은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일러 준다. 우리 저자들은 여기에서 다음 세 가지 교훈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첫째, 어떤 나라든 간에 그 나라가 놓인 환경에 상관없이 혁신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혁신들이 창조하고 유지하는 시장들은 다른 여러 필요한 자원들을 사회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끌어당겨진 그런 요소들 덕분에 그 시장들의 지속가능성은 매우 높다.


둘째, 시장 창조 혁신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이나 나라가 요구하는 것을 포착할 줄 아는 눈을 가진 기업가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일상의 힘겨운 투쟁에 몰두하느라 다른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역량을 가진 이 기업가들만이 그 힘겨운 투쟁들을 성공 가능성이 높은 혁신과 경제적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이 기업가들은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우리도' 혁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시장을 창조할 수 있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는다. 어떤 나라든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앞서 5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어떤 나라든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통합이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는 가난하기 때문에, 부유한 나라라면 이미 갖추고 있는 교육, 운송, 기업 및 정부 부문 등의 필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가난한 나라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혁신가들이 성공하려면 자기 사업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통합해야만 한다. 이처럼 사업에 필요한 여러 자원과 지원을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혁신가들은 자신들이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세우는 일까지 함께 하게 된다.


소니, 시장을 창조하는 기계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이룩한 중요한 혁신이자 성공의 상징으로 워크맨(Walkman)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1979년 출시된 워크맨은 전 세계에 4억 대나 팔려 나가면서 개인용 음악 감상 기기라는 세계적인 문화를 창조했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소니를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혁신 기업으로 성장하는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워크맨보다 훨씬 더 소박한 제품이었다. 그것은 바로 1949년 개발한 지-타입(G-type) 테이프 리코더였다. 이 제품은 릴 테이프가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휴대용 녹음기였는데, 당시 모리타는 이것을 '테이프 코더(tape corder)'라고 불렀다. 그는 1950년 출간한 책에서 개인용 녹음기의 가치를 설명하며 이렇게 썼다.


“테이프 코더가 발명되기 전까지 '녹음'은 우리의 생활과는 멀리 동떨어진 것이었다. 예전에는 녹음을 하려면 특수하고 복잡한 기술이 필요했으며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니의 테이프 코더가 있어서 누구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싸고 정확하게 녹음을 할 수 있다.”


수십 년 전 이스트먼의 사진이 그랬던 것처럼, 모리타는 사람들이 자기 삶의 소중한 순간과 추억을 녹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엄청난 사업 잠재력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는 이 녹음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을까?


“이것은 정말 혁명적인 제품, 일본에서 처음 나타난 제품이다. 또 이것은 매우 간편하다. 그러니 누가 이것을 사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 녹음기를 사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사람들은 휴대용 녹음기에 매료되긴 했지만 이 제품은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다. 소니 경영진은 무언가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함을 깨달았다. 판매가 지지부진하자 이부카와 모리타는 회사의 모든 직원을 판매 활동에 동원했다. 소니는 이 과정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Ronald Coase)가 지적했듯이, 시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장은 누군가가 창조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 소니는 자체 판매 유통망을 구축해야 했다. 그래서 1951년 소니는 도쿄리코딩(Tokyo Recording Company)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판매, 유통, 광고, 훈련, 고객 서비스 및 지원 등과 관련된 일련의 지역 일자리들이 창출되었다. 이부카는 도쿄 리코딩의 책임자에게 전국 학교를 돌면서 이 제품을 홍보하라고 지시했고, 이 순회 홍보 활동이 끝나자 많은 학교들에서 제품 주문이 쇄도했는데, 주문이 얼마나 폭주했는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아울러 이부카는 고객 경험을 개선할 목적으로 애프터서비스 지원을 하라고 해당 부서에 지시했다. 그 결과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여기서 소니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노력과 그에 따른 막대한 잠재적 보상 둘 다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새롭게 얻었다.


포스코, 원료는 수입할 수 있지만 인재는 수입할 수 없다

포스코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급업체이자 주요 철강 수출업체인데, 이 기업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어떤 방식으로 충격을 주었는지 살펴보자. 2016년 포스코는 42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했으며 현재 세계 최대 철강회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42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다.


1960년대에 세계은행은 한국에 일관 제철소(integrated steel mil)를 짓는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면서 섣부르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잘못된 평가였지만 당시에 과연 어느 누가 그 판단을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 한국은 가난했을 뿐 아니라 제철 공장의 원료인 철광석도 부족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급망에서 가깝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런 중공업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 역량 또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시장 문제도 있었다. 설령 한국이 제철소를 짓고 철강을 생산한들 그것을 어디다 팔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었겠지만 그때 이미 일본에는 세계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제철소가 몇 곳 가동되고 있었다.


그래서 포스코는 내수 시장을 보았다. 국내의 철강 수요에 초점을 맞추는 포스코의 초기 전략은 이 회사가 튼튼하게 서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철강을 원료로 사용하는 여러 산업 부문이 갈수록 활발해졌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점점 커져 가던 건설 산업과 자동차 산업을 지원했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건설 산업은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철강 중 각각 약 25퍼센트와 28퍼센트를 소비한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쪽잠을 자며 모래 섞인 밥을 먹던 초창기의 변변찮던 모습에서 포스코는 지금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이 회사의 연간 총수입은 600억 달러를 상회한다.


포스코가 한국 경제에 가한 충격은 다른 산업들에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포스코는 전체 공정 중 많은 부분을 조직 안으로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초대 회장 박태준은 “석탄과 기계는 수입할 수 있어도 인재는 수입할 수 없다”는 일념 아래 과학과 기술 분야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할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했다. 이 학교와 연구원의 설립 목적을 포스코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술 독립을 위한 자체 개발 기술의 필요성을 충족하고, 학계와 산업계 간 강력한 연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처럼 포스코가 직원 교육을 위한 학교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 한국은 최고 수준의 교육 기관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런 교육 기관이 매우 구체적인 어떤 과제를 달성할 목적으로 한국 사회 안으로 끌어당겨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일 누군가에 의해 한국에 밀어붙여졌다면 이런 학교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교육 기관이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국내 차원의 시장이든 세계 차원의 시장이든 간에 시장의 필요성과 연결될 필요가 있다. 포항공과대학교가 그랬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