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지은이 : 힐러리 로즈 외(역:김동광)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19년 08월




  • 신경과학이 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극적으로 높이고 있으며 과학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즉 공동 구성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신경과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스티븐 로즈와 힐러리 로즈가 장밋빛 낙관보다는 정치와 사회 정책에 대한 신경과학의 남용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신경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조기개입 : 정신 자본의 시대

    2008년 은행 파산 사태가 절정에 달하고 불황이 장기화되자 노동당 정부는 <정신 자본과 복지: 21세기에 우리 자신을 최대한 활용하기>(Mental Capital and Wellbeing: Making the Most of Ourselves in the 21st Century)라는 제목의 미래예측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 예측 보고서는 정부의 장기 전망 수립을 돕기 위해 마련되었고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많은 전문가 자문을 병행해 얻은 결과를 기반으로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예상되는 기회와 위험, 우선순위 설정 등을 제시하려 했다.


    이 보고서는 3가지 개념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신 자본(mental capital), 정신 복지(mental wellbeing), 인지 자원(cognitive resource)이 그것이다. 첫 번째 정신 자본에는 인지능력, 학습의 유연성과 효율성, 사회적 기술과 복원력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개념인 정신 복지란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튼튼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할 능력을 가리키는 역동적인 상태”를 뜻한다. 세 번째 인지 자원은 리더십에 필요한 심리적 특성, 즉 지능 ․ 경험 ․ 스트레스를 이겨 낼 능력 등을 의미한다. 보고서의 의미에서 정신 자본은 개인과 국가 모두의 자산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재정적 자본 개념을 연상시키지만, 정신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이다." 그러나 자연적이라는 주장이 생물학적 불가피성을 환기시킨다는 것은 그리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정책통들에게 이런 주장이 수사적 매력을 갖기 때문이다. 과연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보고서의 확고한 메시지는, 무자비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대의 지식 경제에서 아시아의 신흥 경제 거인들과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향상시키고, 정신 자본의 국가적 총합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 프로젝트의 경제적 추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네이처>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되살려 낸 요약 보고서 <국가의 정신적 부> (The Mental Wealth of Nations)를 발간했다.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앨런 보고서로

    미래예측 보고서(Foresight Report)가 이룬 혁신 및 우리 책의 중심 관심사는 그 보고서가 난독증이나 계산장애처럼 이미 인정되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모든 아동들에게 적절한, 특정 학습장애와 연관된 것만이 아니라 효율적인 조기개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신경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지나친 강조였다는 것을 주장하려 한다-는 점이다. 미래예측 보고서의 선입관은 신경과학자들의 그것과 조금 다른데, 신경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통찰력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본다. 보고서는 정신 자본 획득에 생애 초기가 중요하다는 신경과학적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뇌의 메커니즘이 학습의 토대를 이룬다.

    2. 대부분의 뇌 발달은 생후 몇 년 이내에 일어난다. 신생아의 뇌는 성인 뇌 무게의 2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한 살이 되면 60퍼센트, 열 살에는 95퍼센트에 도달한다.

    3. 방지, 빈곤, 학대는 스트레스를 주며, 인지와 감정 능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4 위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효과적인 개입 전략은 그들의 건강한 신경발달을 촉진시킬 것이다.


    2010년에 던컨 스미스가 노동 및 연금 담당 국무장관에 임명되었고, 앨런에게는 보고서 갱신 작업의 임무가 주어졌다. 능력이 출중했던 그는 2011년에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보고서를 작성해 연달아 발간했다. 두 보고서 모두 두 개의 뇌 MRI 영상을 표지에 실었는데, 하나는 정상적인 3세 아이의 뇌고 다른 하나는 "극도로 방치"라는 설명이 붙은 그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뇌 사진이다. 앨런이 주장하는 핵심은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인용한 신경과학적 근거, 즉 출생 후 3세까지 뇌 발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아이의 인지적 · 사회적 · 감정적 미래가 영구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 적절한 양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지나치게 증폭시킨 것이다.


    만약 잘못되면 뇌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제대로 양육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잠재적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는 아이의 정신 자본과 그로 인한 경제 성장의 이점에 개입해야 한다. 두 번째 보고서의 표지는 MRI 사진 옆에 금괴 더미를 나란히 놓고 이러한 주장을 강조한다. 각각의 금괴에는 "낮은 성취, 연금, 실패한 관계, 열악한 양육, 알코올과 마약 남용, 10대 임신, 폭력 범죄와 조기 사망"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조기 개입의 실패로 조세 납부자들이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된다는 뜻이다.


    보고서와 그들의 신경과학

    앨런은 출생 후 첫 3년은 “사람의 뇌 성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며…아기의 뇌 속 시냅스가 출생 시 10조 개에서 3세에 200조 개로 20배나 늘어나는 기간”이라고 본다. 이 시기에 아기는 어머니에게 애착을 형성하며, 이 시기에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인지와 정서를 충분히 발달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결정적인 1001일>은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 뇌의 빠른 성장 속도에서 경이로운 진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태에서 두 살까지의 기간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1001일이 되면 아이의 뇌는 성인 뇌 무게의 80퍼센트에 도달한다. …탄생에서 18개월까지, 뇌의 연결이 초당 100만 개의 속도로 생성된다!" 앨런 보고서보다 한 술 더 떠서, 1001일 선언(1001 Days Manifesto)은 이 기간이 애착, 즉 "아기와 돌보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신경과학 연구보다는 사회복지 개념을 기반으로, 그들은 아기의 사회적 · 정서적 발달이 그들의 일차적인 보호자에 대한 애착의 질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태아나 아기가 해로운 스트레스[그리고 생화학적 대리물인 호르몬 코티솔(cortisol)]에 노출될 경우, 스트레스에 대한 아기의 대응이 나중의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어머니가 "우울증이나 불안…불화…가까운 사람과의 사별” 등을 겪었을 때 발생한다.


    이 주장의 함의는 명백하다. 1001일 선언이 상세히 설명하듯이, "뇌가 성장의 절정기에 최적의 발달을 이루고 영양 공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아기들이 삶에서 최고의 출발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나 돌봄 제공자가 결정적인 시기에 이러한 도움을 줄 수 없거나 주지 않는다면, 그 부정적 영향은 거의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과학에 호소하는 모든 요소가 이러한 주장에 빠짐없이 들어 있는 셈이다. 결정적 시기, 뇌의 성장, 시냅스 수, 스트레스, 코티솔 수치,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아기와 일차적 돌봄 제공자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애착 이론 등이 그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분명 호소력을 가진다. 문제는 신경과학이 실제로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여부다. 



    뇌 기반 교육의 시대 : 신경과학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신경교육? 신경신화!

    OECD, 왕립학회, 웰컴 재단은 신경교육의 타당성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이 기구들은 모두 그들이 신경신화(neuromyths)라 부르는 것이 확산되는 데에 우려를 표명했다. 신경신화란 뇌에 대해 널리 퍼진 잘못된 생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심지어 실재하지도 않는 나쁜 과학이 그 기반이다. 일부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오개념이고, 다른 것들은 학습능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교육이나 장치에 대한 것이다.


    웰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자문단에 포함된 많은 교사들이 이런 신화를 믿고 있어서 공격적인 마케팅의 좋은 표적이 되고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과학을 아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1992년에 경제사회연구협의회가 지원했던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는데,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과학의 주장에 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신경과학에 대해서는 이런 발견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자신의 지식 수준과 무관하게 신경과학에 기반한 주장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신경과학의 뒷받침이 없으면 같은 응답자들이라도 동일한 주장을 덜 지지했다. 따라서 신경과학은 다른 생명과학보다 큰 권위를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경과학은 과거에 영혼이라고 확신하던 것을 다루는 분야가 된 것일까?


    이런 신화들이 모든 분야의 정통 과학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왕립학회와 같은 국가 학술기관들은 자신의 권위를 근거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고 그 경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우리는 뇌의 10퍼센트밖에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그 좋은 예다. 신경과학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확산된 이 믿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는 그런 주장이 무슨 뜻인지 무척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뇌에 있는 1천억 개의 뉴런들 중 90퍼센트가 비활성이거나 불필요하다는 말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런 주장의 가장 오래된 전거(典據)는 1936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베스트셀러 『카네기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지만, 카네기도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이런 주장에 아무 신경과학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신경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뉴런은 뇌 전체에서 거의 지속적으로 활동을 한다. 그러나 10퍼센트라는 수치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상당한 여유가 있으며, 뇌의 가소성 때문에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시냅스 연결과 신경경로를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암시한다.


    신경교육의 실효성

    왕립학회의 보고서에서 여러 신화들의 정체가 폭로되고 좋은 과학의 경계가 확고하게 그려지면서 비로소 신경과학자들은 신경과학이 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게 되었다. 그 좋은 예가 신경과학자 사라 제인 블랙모어(Sarah-Jayne Blakemore)와 우타 프리스(Uta Frith)의 『뇌, 1.4킬로그램의 배움터』(The Learning Brain : Lessons for Education, 해나무)다. 두 사람은 이렇게 쓰고 있다.

    "교육적 연구 자체로는 독자적인 자원과 건전한(원문 그대로임) 과학적 사고로, 많은 교육적 쟁점들에 최고의 해법을 주지 않고, 줄 수도 없다는 주장은 위험할 수 있다. 아울러 신경과학이 교육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묻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뇌과학이 교육과 학습에 대한 상식적 관점에 어떻게 도전을 제기하는지 생각하는 편이 유용할 것이다."


    OECD의 처음 세 가지 권고사항은 신경과학에 깃발을 꽂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네 번째는 교육의 생물학화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무마책에 해당한다. 그 뒤로부터 비로소 신경과학 또는 신경과학자들이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왕립학회의 권고도 비슷하며, 교육에서 뇌의 역할에 대한 "여섯 가지 핵심적 통찰"을 따른다. 그러나 설령 뇌가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직접 관련된다고 해도, 그들은 한 가지를 누락하고 있다.


    신경과학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뇌는 몸의 다른 기관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뇌에 공급되는 에너지가 부족하면 학습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 머지않아 세 명 중 한 명 꼴이 될 것이고, 부모가 부족한 연금에 의지해 생활하거나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아침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어느 쪽이든 아이들은 배를 곯으며 학교에 가는 셈이다. 영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응시 학생들에 대한 한 연구는 무료 학교 급식을 먹는 아이들 중 9.7퍼센트만이 합격한 반면, 다른 아이들의 합격률은 26.6퍼센트였다고 지적했다. 왕립학회의 신경교육학자들이라면 무료 조식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제기했을지도 모른다. 위가 비어 있는 채로 공부를 하기는 힘들다고 말이다.


    모든 신경과학자들이 왕립학회와 OECD의 권고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신경과학의 현 수준이 교실에 적용할 채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회의적인 입장은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보도가 실리면 인간 뇌 프로젝트와 같은 엄청난 자원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왕립학회 보고서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사례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사람의 뇌에 자기와 전기 자극을 가한 효과를 연구하는 훌륭한 신경과학자 빈센트 월시(Vincent Walsh)의 경우다. 아래에 굵은 글씨로 표시한 그의 논평을 주목해 살펴보라.


    1. 천성과 양육 모두 학습하는 뇌에 영향을 준다. 이 문장에서 뇌라는 단어를 지워도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천성과 양육이 모두 학습에 영향을 준다.

    2. 뇌는 가소적이다. "사람들이 학습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자. 우리가 평생 변화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핵심 통찰이 아니다.

    3. 보상에 대한 뇌의 반응은 기대와 불확실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뇌의라는 말을 사람의로 바꾸라. 그러면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4. 뇌는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조절의 행동적 방법을 학습할 수 있게" 하자.

    5. 교육은 인지 향상의 강력한 형태다. 교육은 인지 향상이다. "교육은…음…교육의 강력한 형태이다."

    6. 뇌를 기반으로 한 학습능력에 개인차가 있다. 우리는 이 문장의 한쪽 끝을 바꿀 수 있다. “학습능력에 개인차가 있다.” 또는 “경제, 계급, 기회를 기반으로 한 학습능력에 개인차가 있다.”


    신경과학과 신경다양성

    많은 어린이들이 직면하는 학습장애의 원인은 그들이 태어난 세계에 있다. 빈곤과 불안한 주거, 스스로 많은 문제가 있는 부모, 그리고 기아와 같은 문제들이 교육이 요구하는 평온, 관심, 포부를 저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배경 이외에 읽고 쓰는 능력, 숫자 계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능력에서 특별한 학습장애-난독증, 계산장애, 자폐증으로 분류 될 수 있는-를 가진 소수의 아이들이 점차 식별되고 있다.


    교육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비전형적(atypical) 인지라는 범주로 분류했고, 이 명칭은 신경전형적(neurotypical) 다수와 대비되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의 기치 아래 당사자들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경다양성은 모든 사람의 뇌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존중하며, 자기 자신이나 서로를 가리켜 "약간 아스피야" 또는 "조금 난독증이 있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신경다양성에 해당하는 사람들 수는 추정하기 어려우며, 그 범주와 경계 역시 계속 바뀌고 있다. 어떤 아이를 난독증, 계산장애, 자폐증으로 진단하는 기준은 대체로 교육학이나 행동학의 관찰에 근거한다. 영국 난독증협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아동과 성인의 10퍼센트 가량이 난독증과 연관된 읽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계산장애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6퍼센트 정도다. 영국 자폐증협회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과거에 아스퍼거증후군이라 불렸던 증상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이다)는 고작 전체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 일부 희귀 유전자 변형이 연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명확한 생물학적 표지는 없다. 신경과학과 유전학의 환원주의 공세로 단순한 생물학적 설명을 찾으려는 노력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이처럼 통합된 병명들에 가려진, 사고와 행동방식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진단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한다. 그렇다면 교육신경과학은 아이들 자신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교사들에게 진단이나 지원의 측면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계산장애

    수학적 능력은 어른과 아이에 따라 다르며, PISA 순위가 보여주듯이 선진국에서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가령 중국과 영국은 교수 방법과 자원의 투자에서 서로 다르다. 수학 성적이 낮은 사람을 계산장애와 같은 특정 장애로 분류해 학습장애 목록에 추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버터워스는 계산장애를 신경발달장애로 보며, 산수 점수가 낮은 이유가 수의 많음을 처리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이상은 부분적으로 유전된다고 보았다. 7세의 계산장애 아동이 수학 과제를 수행할 때 뇌의 영상을 촬영하자, 평균적인 수행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 비해 전두엽과 측두엽이 덜 활성화되었다. 읽고 쓰는 능력 검사에서는 영상 분석이 예측적 가치를 가질 수 있으며, 미래에는 구체적인 치료법이 개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발견은 신경과학자들을 매료시키며, 많은 교사들은 그들의 관찰 결과를 교실에 적용시키는데 열광적이지만, 이러한 열광주의를 신중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난독증과 계산장애가 구체적인 신경학적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상관관계가 교수 전략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앞에서 설명했던, 집중적인 일대일 읽기 학습이 포함된 난독증 교정 프로그램의 예를 들어 보자. 이 교정법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신경학적 이해를 전혀 요구하지 않으며, 그 성공 여부는 난독증을 가진 아이의 발달 문제가 뇌에 있든 엄지발가락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 브루어가 20년 전에 주장했듯이,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 인지심리학과 교육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신경과학과 교육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너무 무리다.


    신경과학의 역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변은 이런 증상이 실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뇌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교육이 교육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사들이 특정한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식별했을 때, 그들은 본의 아니게 신경과학자들에게 읽고 쓰는 능력이나 수 이해 능력과 관련된 뇌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이 교사들에게 뇌에 대해 교육시키는 일방통행 신호를 거꾸로 돌려서, 교사들이 신경과학자들에게 협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경과학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결론

    대중의 참여

    이 책의 관점이 비판적이기 때문에 지금이 신경과학자들-최소한 연구비나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황금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젊은 신경과학자들은 오랜 훈련과 기술에도 프레카리아트 계급으로 떠밀리는 데 면역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단일 유전자, 시냅스, 그리고 뉴런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뇌의 작동 모습을 볼 수 있고 조작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은 해묵은 물음에 답을 주면서, 동시에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전혀 새로운 물음을 제기한다.


    사회학자인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가 주장했듯이, 전문가로서의 과학자는 여전히 존경받지만, 잘못된 대상에 대한 맹종은 후퇴하고 활기찬 다수 대중의 참여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경험에 기반한 지식의 경우, 대중은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지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2천 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후 대중의 과학 참여는 힘을 잃었다. 참여라는 개념은 인정보다 더 나아간 무엇으로 희석되었고, 종종 오히려 광고라 불리는 편이 맞을 만큼 도용되기도 했다. 대학은 무료 강연을 하고 과학실험실을 개방하며 예술과 과학 전시회 등을 연다. 자신들을 위해 세금을 내는 대중에게 문을 여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대중 참여 프로그램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이러한 활동은(종종 그렇듯이) 진의가 의심스럽다. 대중은 손님, 청중, 구경꾼으로 초청받지만, "[일반인들에게] 복잡한 과학 분야의 정책 개발에서…이끌어가는 전대미문의 기회가 되었고…참여적 정부로 나아가는 획기적 진전"을 이루었던 마음의 회합(Meting of Minds)에서처럼 적극적 역할은 주어지지 않았다.


    신경과학이 조기개입과 교육으로 확장되면서 교육 연구에 필수적인 기존 분야 및 학문 분과들과 협력하며 다른 사람들의 전문성, 그리고 신경과학을 뒷받침 해주는, 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수행된 많은 연구에 약간의 겸손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신경과학자들은 특정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폭넓은 대중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따라서 조기개입 프로젝트는 학부모, 돌봄 제공자, 보육원 실무자, 그리고 가능한 경우 아이들 자신들까지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참여에서 대중은 단지 정보를 수용하는 수동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연구 설계에 참여해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역할을 하며, 참여하거나 또는 참여를 거절할 권리도 보장받는다.


    희망과 과대광고, 그리고 신자유주의

    유전학처럼 시기적으로 앞선 다른 생명과학들과 마찬가지로 뇌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며 희망과 과대광고가 수반되었고, 순종적인 언론이 이런 기대를 증폭시켰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희망과 과대광고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고 그 요구를 낳도록 돕는다.


    개인의 뇌에 초점을 맞추는 신경과학의 방법론은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의존 및 성공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강조하는 공공정책의 기조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부합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정신 자본의 저장고로서의 뇌(뇌를 가진 아이가 아닌)가 자원으로 간주되며, 부모는 그들의 뉴런과 뇌 가소성이라는 마술로 자녀를 빈곤에서 구해 내도록 요구받는다. 종종 잘못 이해되거나 지나치게 외삽된 신경과학적 통찰이 조기개입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남용된다. 그런 프로젝트에는 사적 부문의 참여자들이 제공하는 패키지들도 포함된다. 학교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두뇌 체조, 신경훈련 프로그램, 그리고 VAK 학습 양식 등의 수상한 장점을 내세우는 온갖 광고들로 포위되었다.


    다양한 뇌를 가진 아이들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신경다양성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읽고 쓰는 능력과 수 이해력이 중시되는 과학과 기술 세계에서 잘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필수 조건은 신경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저녁형 십대 뇌라고 부른 것에 맞추도록 수업시간을 늦추는 방식으로 사회적 맥락을 바꾸자는, 신경과학 기반 제안은 아직 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십대를 위한 조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름 붙이기나 의료화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회 문제나 정치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경과학을 이용하는 긍정적 사례들이다. 이들 사례는 좀 더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스스로 신경다양성의 편에 서고, 기꺼이 그들의 실험 대상자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 세계를 고찰할(바라건대 변화하도록 도울) 필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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