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지은이 : 로버트 U.아케렛(역:이길태)
출판사 : 탐나는책
출판일 : 2019년 01월




  • 수십 년 간 심리치료의 현장에 있던 로버트 아케렛 박사는 어느 날 ‘심리치료는 과연 내담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는 30년 전, 자신을 찾아온 아주 특별하고 위험했던 내담자들을 찾아 나선다. 치료자가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의 예후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간다는 점에서부터 이 책은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치료 후 몇 년 내에 예후를 관찰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30년이라는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에 내담자들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는지 알아보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을 것이다. 심리치료사이자 정신 분석가인 로버트 아케렛 박사의 여행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나오미 : 자신을 스페인 백작부인이라고 생각한 여자

    “나오미 골드버그 양은 강의실에서나 학생 활동에서나 분위기를 흐리고 도발적입니다. 행동과 옷차림도 굉장히 부적절하고요. 하루빨리 나오미 골드버그 양을 보셔야겠어요.” 나오미에 대한 의뢰서는 마닐라지 봉투에 담겨져 나에게 왔다. 그 대학 학생관리과의 딘 예이츠가 보낸 것이었다. 편지의 하단에는 내 상사인 학생 상담 지도교수 브리스코 박사가 펜으로 적은 다음과 같은 메모가 있었다.


    로버트, 이 내담자와 꼬박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 봐요. 고충이 조금 있을 겁니다.

    -브리스코박사 추신. 골드버그 양은 직업 상담 건으로 당신을 만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확히 오전 10시에 내 사무실의 버저가 울렸다. 나오미는 굉장히 아름답고 육감적인 미인이었다. 다리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났다. 내 사무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 눈과 마주친 검은 눈이 이글거렸다. “음, 여기는 따뜻하네요, 선생님.” “이것 좀 벗어도 될까요?”나오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앞으로 팔을 엇갈려 스웨터 끝자락을 잡고 천천히 끌어올렸다. 나오미는 과장된 몸짓으로 스웨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제야 나오미가 ‘강의실에서 지장을 줄 수도’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미는 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사무용 철제 의자에 앉았다. 나오미는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었고, 표정은 오만했다. 나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고 최대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오미, 기분이 어때요? 행복한가요?” 그 순간 나오미의 얼굴이 멍해지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네? 아니요!” 나오미는 불쑥 대답을 하더니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목놓아 울어댔다. 그 울음은 완전한 절망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마구 눈물을 쏟던 나오미가 드디어 진정이 되자 나는 무슨 일로 그렇게 기분이 상했느냐고 물었다. “내 인생이 마음에 안 들어요!” 나오미는 꽥 소리를 지르며 말문을 열었다. “이 빌어먹을 학교도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싫어요. 엄마도 아빠도 빌어먹을 이웃 사람들도 모두 증오해요…….” 약속된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자 나오미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처음으로 나한테서 눈을 떼고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나직이 물었다. “왜 그래요, 나오미?” “가족을 잘못 만났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입양되었다는 거예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이라고요!” 버저가 울렸다. 그 다음 내담자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오미와 치달은 결정적인 순간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50분 만에 나는 나오미의 대담한 팜므파탈의 모습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병적으로 낮은 자존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양면성을 보았다. 심지어 ‘엄청난 잘못’이라는 말 속에서 나오미가 어떻게든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너무도 강력한 욕망을 엿보았다.


    나오미는 그 다음에 상담하러 왔을 때에도 극적으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두 번 빙그르르 돌며 들어와 내 맞은편에 있는 철제 의자에 우아하게 앉았다. 나오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기세였다. 나오미는 어머니 미리암에게 무자비하게 거절을 당했다. 나오미가 딸이라는 사실과 외모부터 거슬려 했다. 미리암과 미리암의 남편 둘 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이 특징인 아슈케나지 유대인 이민 1세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미리암은 금발에 파란 눈의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무엇보다도 미리암은 나오미의 행동을 비난했다. 나오미는 열 살 무렵에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였다. 늘 ‘넌 제정신이 아니야! 너 같은 건 정신병원에 집어넣어야 해!’라고 말했죠.” 그 말은 어머니가 나오미에게 던진 온갖 악담 중에서 나오미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다. 나오미는 어린 시절 내내 책 속에서, 그리고 가끔 일요일에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위안을 얻었다. 나오미는 일요일마다 아버지와 했던 여행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면서도 씁쓸해했다. 나오미가 열두 살이 되면서 성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하자 아버지가 갑자기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일요일도 추억이 되고 말았다.


    다섯 번째 상담을 할 때 나오미는 어떤 과장된 동작도 선보이지 않고 의자로 터벅터벅 걸아와 앉았다. 그러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케렛,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이사벨라 코르테즈 드 세비야에요. 사실은 코르테즈 백작부인이죠.” 나오미가 말했다. 나는 대단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도피처로 삼은 공상 속에 떠 다른 도피를 위한 공상이 있었다.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죠?” “물론 당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환생을 믿지요.”나는 내가 나오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을 했고, 치료사로서 나오미와 여전히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사실 나오미는 변하고 있었다. 나오미의 말에 따르면 나오미는 더욱 큰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몇몇 사귀었다. 나오미는 학교생활도 나아지고 있었다. 스페인어는 고급 수준으로 올랐고, 그 덕택에 스페인 문학과 문화 대학원 과정을 이수할 자격을 얻었다.


    나오미는 나와 8월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당신을 만나면 참 좋을 거예요, 로베르토. 하지만 요즘 제가 무척 바빠요. 친구와 같이 살려고 이사를 하고 있어요. 클럽에서 춤도 추고요. 생활이 안정되면 곧바로 전화할게요. 지금은 안 되겠어요.” 나오미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오미는 자신이 이사벨라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게다가 나오미의 억양은 단지 흉내를 내는 차원이 아니었다. 분명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경비원이 인터폰으로 내 아파트에 연락을 했다. “코르테즈. 이사벨라 코르테즈랍니다.” “들여보내세요.”나는 현관문을 홱 열었다. 나오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목에서 무릎 바로 위까지 밀착된, 소매가 없는 새빨란 원피스 차림이었다. “Hola(안녕하세요), 로베르토!” “잠깐만 있다가 갈게요. 할 일이 많아서요. 내일 배를 타고 세비야에 가거든요. 로베르토, 그래도 당신을 꼭 보고 가야겠더라고요, 작별 인사는 해야 하니까요. 고맙다는 말도 하고.” “세비야에서 뭘 할 계획이에요?” “춤을 출 거예요. <발레 내쇼날 데 에스빠냐>에서 멋진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 일을 따내려면 단신이 스페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 감독이 믿어야 했겠네요?”나는 의도적으로 물었다. “전 스페인 사람이에요.”


    나오미가 소리치며 벌떡 일어서서 내 바로 앞에 섰다. 그러고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세게 마주쳤다. “이건 내 선물이에요.” 나오미가 속삭였다. 나오미는 나를 위해 춤을 추고 있었다. 플라멩코. 나오미는 춤을 추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숨을 천천히 내쉰 다음 의자에 기대어 앉아 나오미가 계속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카르멘의 플라멩코, 유혹과 거절의 춤, 노골적인 성행위와 격렬한 독립의 춤이었다. 나오미는 과감하게 더 많은 열정과 분노를 갖추었다. 그것이 나오미의 재능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오미는 어떤 망상에도 빠져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우리의 상식으로 알 수 없는 어떤 초월적 의미에서 가족을 잘못 만난 것일 수도 있었다. 나오미 골드버그가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꾼 것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었다.  


    구르던 발이 멈추었다. 춤이 끝났다. 나는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훌륭해요, 이사벨라.” “어머, 고마워요, 로베르토.” 나오미는 내게 다가오더니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사벨라, 말해봐요. 행복한가요?” “그럼요. 로베르토, 아주 행복한 걸요!” 잠시 뒤에 나는 나오미를 떠나보냈다.


    사설탐정인 내 친구 벤 로즈가 컴퓨터로 나오미/이사벨라를 10분 만에 찾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름이 두 개니까 찾기가 쉽지.” 나는 이사벨라의 전화번호를 찾아낸 날 이사벨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벨라는 “푸들입니다.”하고 전화를 받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밝혔다. 이사벨라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어제 당신 생각을 했어요, 로비.”그래서 나는 내가 계획하고 있는 순례에 대해 이사벨라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만나려는 거예요. 아무튼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걸요.”이사벨라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길을 내게 알려주었다.


    “로비! 당신이군요!” 이사벨라는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가게 문을 열었다. 눈 깜짝할 세에 35년이 흘렀다. “근사해 보이네요.” “가게 문을 잠글게요. 2층에 올라가서 차 마셔요.” 아시벨라는 차를 내온 다음 소파의 다른 쪽 끝에 앉아서 책상다리를 했다. “그래서 무엇을 알고 싶은가요, 박사님?”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요. 그게 가장 궁금해요.”이사벨라는 대답을 하기 전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저는 좋아요. 행복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지만 좋아요. 알잖아요.” 이사벨라가 조용히 대답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죠?” “1958년의 그날 밤 당신이 내 사무실 밖으로 나간 날부터 얘기하는 건 어때요?”


    “저는 12년 동안 발레 내쇼날에서 춤을 췄어요. 로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 뭐예요. 최고 중의 최고가 됐답니다. 나는 춤을 추었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어요. 신문에 늘 제 사진이 실렸죠. 2년 뒤에 저는 그 발레단에서 수석 여자 댄서 중 한 명이 되었어요. 6년 뒤에는 발레 오케스트라의 리드 기타리스트인 안토니오와 결혼을 했죠.”


    이사벨라는 눈부신 부겐빌레아(분꽃과에 속하는 덩굴 식물)앞에서 연철로 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사벨라는 사진첩의 페이지를 넘겨 저택의 테라스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머리털이 부스스하고 기타를 손에 들고 있는 이목구비가 날카로운 남자, 그 남자 뒤에서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서 있는 나이 지긋한 여자, 그 여자는 잘생긴 얼굴을 마치 왕족인 양 높이 쳐들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사벨라와 닮은 모습이었다. “이 여자 분은 누구예요.” 이사벨라가 얼굴을 붉히며 주저했다. “어머니예요. 저를 보러 한 번 오셨어요.” “어머니가 신문에서 제 기사를 보고 제가 무척 자랑스럽다는 전보를 보냈어요. 그러자 다 용서가 되더라고요. 어머니는 저를 보러 오고 싶다고 했고, 저는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두서너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벨라의 거실이 점점 어둑해졌고 이제는 분홍빛으로 채워졌다. 나는 창밖으로 리틀 하바나 항구에 해가 지는 광경을 보았다. “밖에 나가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은데 어때요?” 내가 물었다. “우리 둘이 가기 딱 좋은 곳이 있어요.”


    우리는 바닷가에 제멋대로 뻗어 있는 스페인 식당으로 갔다. 등불이 비치는 테라스를 잡고 파엘라를 먹었다. “저도 당신한테 털어놓을 게 있어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한 번 오신 게 아니라는 사실이요. 안토니오와 내가 미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그렇게 8년을 지냈죠.”


    이사벨라와 안토니오는 뉴욕에 댄스 학교를 세우는 동안 자금을 절약할 임시방편으로 미리암의 집에 들어가 살았다. 그 당시에 이사벨라는 이제 어머니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는 할 일이 없어서 무척 우울해했어요. 아파트에서 빈둥거리면서 기타를 치는 게 전부였죠. 이윽고 안토니오와 어머니는 잔뜩 취할 만큼 같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종일 텔레비전을 봤어요. 안토니오는 제가 밖에 나가서 몸을 팔고 다닌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어요. 안토니오에게 그 생각을 주입시킨 건 어머니였어요.”


    “떠날 생각도 수백 번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몸이 더 안 좋아지더라고요. 알고 보니 방광암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안토니오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꼈죠.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어요.” “어느 날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하루도 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복도 벽장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기 시작했죠. 어머니와 안토니오가 다른 방에서 술을 마시고 웃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어요. 두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런데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지 뭐예요! 이틀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안토니오는 스페인으로 돌아갔어요. 다 끝난 거죠. 또 해낸 거예요!”이사벨라의 목구멍에서 깊고 저속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와인 잔을 들고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사벨라, 당신을 위해 건배!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생존자들 중 하나를 위해!”


    이사벨라는 어떤 경우에든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삶을 해쳐 온 것 같다. 이사벨라는 전 시대를 통틀어 훌륭한 생존자들 중 한 명이었다. 어쩌면 이사벨라가 그 생명력을 키울 수 있도록 내가 일찌감치 도움을 준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사벨라가 개인적인 역사에 갇혀 있지 않도록 내가 막아준 것일 수도 있었다. 치료를 받은 뒤에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영원히 행복했다는 결말은 있을 수 없다.



    메리 :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는 여자

    메리 맥긴리는 20대 후반의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맑고 파란 눈에 긴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으며 몸매는 통통했다. 메리는 대략 8개월 전에 나를 처음 만나러 왔을 때만 해도 소심하고 잘난 체하지 않는 젊은 여자였다.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에 겁먹은 표정이었고 한 눈에 보기에도 자존감이 무척 낮았다. 메리는 아무 이유 없이 남편에게 연이어 분노를 폭발했다. “내 몸 속에 뭐가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첫 5개월에 걸쳐 치료를 하는 동안 메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배경,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상당히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메리는 아일랜드 가톨릭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메리는 가난한 대가족에서 셋째 자녀로 자라는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소외되어 외로운 삶을 살았다. 메리는 학교 성적이 아주 우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석적으로 결핍된, 그래서 애정에 몹시 굶주린 젊은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런 결핍 문제에는 이런 난감한 질문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바람직하게 양육된 아이가 부모에게서 받았을 인정과 칭찬, 위로, 사랑을 얼마만큼 주어야 메리의 애정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을 까? 우세한 이론은 애정 결핍인 내담자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그래봐야 내담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갈망하고 치료사에게 더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더구나 사랑과 지지에 대한 내담자의 오랜 결핍을 충족시키는 것은 전이, 즉 내담자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품었던 강한 감정이 치료사에게 옮아가는 현상을 앞당긴다. 


    가톨릭 신앙이 맥긴리 가족의 삶에 깊이 배어 있었고, 특히 메리에게 영향을 끼쳤다. “나는 하나님의 힘이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믿음이 산을 움직일 수 있고, 그것이 결국 내 힘이 내재 되어 있는 곳임을 나는 마음속 깊이 알았어요. 나의 유일한 힘이죠.” 메리는 마음속으로 바라기만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리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었다고 믿게 되었다. 메리는 그런 힘을 얻은 대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착하게, 아주 착하게 살아야 했다.


    “나는 늘 아주 착한 여자아이였어요. 도움을 베풀고 친절했으며 전혀 소란을 피우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내 겉가죽 안에 숨어 있는 나쁜 여자아이를 가려 놓은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도 신부님도 잘 알았어요. 나는 늘 사악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나는 매주 내 영혼에 박힌 이 모든 검은 점을 드러내기 위해 고해성사를 하러 터덜터덜 걸어갔어요.”


    메리의 아버지는 메리가 열 살 때 동맥류로 세상을 떠났다. 메리는 상담을 한 지 세 달이 될 때까지도 그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부정한다는 징후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메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삶이 바뀐 것이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평소에도 아버지가 집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메리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그 문제는 당분간 미뤄두기로 했다.


    메리는 첫 5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눈에 띄게 만족스러워했고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메리는 집에서 더 이상 분노를 폭발하지 않고, 사실 남편과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리가 빠르게 개선되고 동시에 눈에 띄게 전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내담자가 ‘새로 찾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열의를 다해 노력하다 보니 신경과민 증세를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무렵에 메리는 수요일 오후에 내가 먼저 온 내담자와 상담을 끝내기를 기다려야 했을 때 정말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신한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내담자들까지 참아야 해요? 그건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난잡해요!” 불길한 징조였다. 메리는 긍정적인 전이에서 아주 다루기 힘든 부정적인 전이로 변할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메리의 감정을 대신하는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메리가 진짜 아버지에게서 느낀 상처, 화, 분노가 메리의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인 나를 향할 것이고, 메리가 나에게 느꼈던 긍정적인 감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에 상담을 잠시 쉬는 것을 메리가 받아들이도록 2월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로 했다. 내가 메리에게 여름휴가에 대해 말하자 메리는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당신이 필요하면 전화 통화는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전화로 장시간 상담을 하는 거죠.”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이 모든 게 착각이라는 걸.” 바로 그때부터였다. 메리는 내 눈앞에서 차갑게 변했고, 그 다음 10주 동안 발길을 끊었다. 조심하려고 했던 내 노력은 역효과를 낳았다.


    60년대를 돌아보면 그 당시에 심리치료는 무모하고 대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빌헬름 라이히는 『성 혁명』의 저자로 예전에 프로이트파 비엔나 핵심층의 회원이었지만, 정신의학계의 기득권으로부터 이단아라는 조롱을 받다가 결국 1957년에 미국 연방 정부의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제 라이히의 사상은 부활되어,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몇 가지 새로운 요법을 들자면, 게슈탈트 심리 요법과 생물에너지학, 롤핑 요법으로 재포장되고 있었다. 이러한 요법은 서구 분명의 사회 종교적인 구속으로부터 한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접촉과 심리극, 나체, 비명 지르기 파티, 퇴행 게임, LSD 여행을 활용했다. 신속하고 획기적으로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면 뭐든 허용되었다.


    나는 9시 10분까지 기다렸다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어찌나 세게 했던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점점 더 기침이 격하게 나오자 나는 두 손으로 가슴 왼쪽을 부여잡으며 몹시 고통스러워서 잔뜩 인상을 쓰고 “내 심장! 내 심장!”하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죽은 듯이 입을 떡 벌렸다. 그때 메리가 흐느꼈다. “아, 맙소사! 진심이 아니었어요! 제발! 제발! 맹세코 진심이 아니었어요!” 메리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메리는 그런 식으로 몇 분 동안 울다가 마침내 누그러져 훌쩍였다. 이제 내 연기를 끝낼 때가, 마법을 풀 때가 되었다. “난 괜찮아요.” “당신은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했죠?” “당신이 죽었으며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마음속에서 당신을 살해했어요.” “당신의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요?” 메리는 의자로 돌아가 계속 시선을 내 눈에 고정하고 앉았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어요. 신부님들에게도 하지 않았어요. 할 수가 없었죠.” 메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가 여덟 살쯤이었을 때였어요. 나는 아버지가 집에 두고 간 서류를 갖다 드려야 했어요. 내가 사무실에 올라가자 아버지가 나를 상관에게 소개했고, 상관이 말했어요. ‘와, 해리, 당신에게 메리라는 딸이 있는지 몰랐어요. 나한테도 메리가 있잖아요.’ 아버지가 나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니.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요.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어.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지만 그때 아버지가 죽진 않았잖아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아버지는 죽지 않았어요. 하지만 몸이 안 좋아졌어요. 폐렴에 걸렸죠.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어요.”


    “2년 뒤에 나는 세인트 엘리자베스 학교에 다녔어요. 아버지는 집 거실에서 노트르담 미식축구 게임을 보고 있었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흥분해서 커피 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그 바람에 아버지 맥주가 쏟아졌어요. 아버지는 나에게 몹시 화를 냈고, 나는 울기 시작했어요. ‘입 다물지 않으면 네가 정말로 눈물 쏟을 만한 일이 생기게 해주겠어!’ 그래서 그때 그 말을 했어요. 아버지 면전에 대고 소리쳤어요.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메리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리고 다음 날 죽었어요.”


    메리가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이 정말로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에요.” 그러고 나니 모든 퍼즐이 맞춰지면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메리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정했던 일, 자신이 비는 소원에 치명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소원에 대해서도 똑같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요. 실상은 내가 정말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당신은 몰라요.” “나한테 당신 펜이 있어요. 당신 책상에서 훔쳤어요. 그리고 당신의 작은 재규어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 나한테 화를 안 내세요?” “드디어 우리가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메리와 나는 그 뒤로 2년을 더 함께 치료했다. 그러나 우리가 고비를 넘긴 건 그날 아침이었다. 그 이후로 메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우리는 ‘특별히’, 조건 없이, 사랑을 받아야 하는 메리의 욕구에 대해, 그리고 이제는 아내인 메리가 받을 수 있거나 받을 수 없는 사랑의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메리가 어릴 때 필요했던 아버지를 앞으로도 결코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메리의 인생에 뻥 뚫려 있는 구멍이 결코 완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마침내 1977년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메리는 결혼 생활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메리는 임신 2주였으며 자립심이 아주 강했고 행복했다.


    메리는 나에게 캘리포니아 유레카에 있는 자신의 직장 <노스 카운티 부모/자녀 센터>에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건강한 얼굴을 한 라틴계 여자 접수원에게 이름을 만하니 접수원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메리 손님 오셨어요!” 메리는 정말로 아주 좋아보였다. 메리는 우리가 함께 내 승합차를 타고 메리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우리는 내륙 도로를 달렸다. 그러는 동안 메리는 지난 17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게 말해 주었다. 대부분 행복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메리의 집은 비교적 가난한 동네에 있고 지붕널이 깨진 단층의 작은 집이었다. 식탁에는 멋진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한 뒤에 맬이 바로 주방 식탁에서 기타를 꺼내어 최근에 직접 작곡한 노래를 두서너 곡 불렀다. 멋진 저녁이었다. 메리가 나와 함께 승합차로 걸어와 잘 자라는 인사를 했을 때 나는 메리에게 멋진 저녁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달빛 아래에서 본 탓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메리의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았다.


    나는 한참 동안 샤워를 하고 가운을 입고 더블 침대에 누웠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다시 밀려들었다. 사실 종일 자꾸 그런 기분이 들었다. 메리가 내게 보여준 것처럼 행복하고 강안하게 삶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의심했을까? 나에 대한 메리의 강한 애착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 메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집으로 향했다. 나는 아이다호 어딘가에 있는 모텔 방에서 앤에게 전화를 했다. 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메리 맥긴리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메리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메리는 내가 당장 연락을 해 주기를 원했다. 나는 앤과 통화를 마친 뒤에 몇 분 동안 기다렸다가 코블에 전화를 걸었다. 애초부터 내담자들을 찾아간 것이 잘못이라고, 엄청난 잘못이라고 또다시 혼잣말을 했다.


    “메리? 로비예요. 아케렛 박사.” “어머나, 세상에, 로비. 정말 미안해요. 정말……정말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무슨 일이에요, 메리?” “당신 물건을 훔쳤어요. 미안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는 거예요?” “그렇죠. 당신은 성자 메리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아주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섬뜩했거든요.” “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해요. 일, 가족. 내가 사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거예요, 로비.” “알아요. 그냥 완벽하지는 않다는 거예요. 또 완벽할 필요도 없고요. 당신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그래서 당신 도벽이 발동한 게 아닌가 싶어요. 마치 그 일이 일어나서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잖아요. 우리 둘 다 자유롭게 해 주잖아요.” 나는 그날 방 며칠 만에 숙면을 취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은 어느 새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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