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지은이 : 이데 요이치로(역:장윤선)
출판사 : 미술문화
출판일 : 2017년 07월




  • 고양이의 지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인간이 모시는 ‘신’으로서, 중세 시대의 ‘악마’로서, 아이들의 ‘친구’로서, 그리고 지금의 사랑받는 ‘애완동물’이 되기까지의 고양이의 여정을 그림을 통해 살펴보자. 


    명화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르네상스에서 18세기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양이는 고양잇과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자나 호랑이, 표범을 대신해서 고양이를 최고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의 대접을 받았고, 로마 시대에는 수입까지 되던 고급 애완동물이었지만 중세에 들어서면서 그 지위는 악마의 심부름꾼으로 급락합니다. 그러자 고대 문화의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양이가 가진 고귀함과 우아함을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고양이의 복권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16세기부터 고양이가 회화에 자주 등장하였고, 18세기 로코코 시기에 고양이 그림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릅니다.


    <최후의 만찬> 1486년경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1494)

    기를란다요는 피렌체에 대형 공방을 운영하던 거장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처음 그렸을 때, 기를란다요의 구도를 따라 했다고 추측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화가였지요.


    이 벽화는 피렌체에서 봤어요. 다른 성당에도 있나요?


    네 맞아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 마르코 성당의 벽화는 세 번째 벽화고, 두 번째 벽화가 잘 알려진 오니산티 성당의 벽화입니다. 산 마르코 성당의 벽화는 1480년 오니산티 성당에 그려진 작품의 원형으로, 두 벽화에는 고양이가 없습니다. 이 벽화가 유일하게 고양이가 그려진 버전입니다.


    야코포 바사노의 <최후의 만찬>에서 고양이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유다의 배신이라는 나쁜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이지요. 하지만 이 고양이는 씩씩하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꽤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가 전례에 따라 그린 피렌체의 산타폴로니아 수도원 벽화(1447)를 보면 유다는 혼자서 그리싀도의 바로 앞, 말하자면 피고석에 앉아 있어요. 그런 유다에게 다가갈 듯한 포즈로 앉아 있는 고양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유다는 절대로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표정으로 앉아 있어요. 고양이도 마찬가지예요.


    바로 그 점이 기를란다요의 혜안입니다 유다는 그리스도가 싫어서 배신한 것이 아니에요. 유다가 사도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에게 아무리 충성을 해도, 응석을 부리는 애제자 요한이나 선배이자 보스인 베드로의 방해로 스승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없었어요. 그런 질투가 배반으로 이어져요. 고립된 유다의 심경을 한 마리의 고양이로 표현하다니, 정말 대단한 화가네요.


    남녀의 연예 관계와도 닮은 불안함이랄까. 고양이는 인간에게 충성하지 않고, 마음도 쉽게 변해요. 하지만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동물보다도 강하지요.


    슬픈 유다의 심경이 한 마리 고양이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군요.


    <아라크네 신화> 1657년 - 디에고 벨리스케스(1599-1660)

    스페인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네요. 만년의 대표작인 이 그림에는 바닥에 큰 고양이가 깊은 잠을 자고 있군요.


    귀를 세운 모습을 보면 자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이 도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회화의 전경에는 직물 공장에서 양모로 실을 잣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노파로 변신한 기예의 여신 아테나, 오른쪽에는 직물의 명인인 아라크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후경에는 아라크네가 완성한 타피스트리 <주피터와 유로파>가 걸려 있어요. 즉 전경은 앞에서 본성을 드러낸 여신 아테네의 질투와 분노로 인해 아라크네가 영원히 실로 둥지를 짓는 거미로 변신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전경과 후경의 의미가 이어진 그림이네요.


    맞아요. 고양이는 털실뭉치가 굴러다니는 바닥 왼쪽, 노파의 다리 밑에 있지만, 아라크네에게는 다가가지 않습니다. 이 점이 문제 같아요.


    그렇다면 고양이는 노파가 변신한 여신 아테나의 고양이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요. 고양이가 있는 위치는 구도적으로도 전경과 후경이 이어지는 중요 포인트에요. 오른쪽으로는 아라크네가 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고양이는 거미 같은 벌레를 먹지요?


    요즘 고양이들은 맛있는 통조림이 있어 벌레를 먹지는 않지만, 장난으로 발톱을 세워 벌레를 죽이는 일은 많아요.


    그렇군요. 나는 이 고양이를 직물 공장 노동자의 애완용이거나 쥐 잡기용으로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화가는 아테나가 아라크네를 거미로 변신시키는 과정의 감시역이나 더 무서운 역할을 맡긴 것 같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고양이에게 암살자 역할을 맡기는 것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고양이가 단순히 화면의 액세서리가 아닌 미스테리한 존재인 것은 기쁘네요. 특히 이런 명화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서 미스테리를 가진 존재로는 고양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저에게는 반가운 그림입니다.


    <모성> 1795-1800년 - 마르그리트 제라르(1761-1831)

    모유 육아의 역사를 찾아보니 18세기 중반까지 도시 귀족이나 부르주아는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고 시골에 있는 유모에게 맡겨 양육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염병의 유행으로 시골에 맡겨진 아이들이 많이 사망한 시기가 있었어요. 이에 대한 반성으로 많은 가정에서 모유 육아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류층 부인들은 사교 생활에 바빴고 사람들 앞에서 수유를 할 수 없었어요. 분유가 없던 당시에는 출산한 상태가 아니라도 모유가 나오는 전문적인 유모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이 그려진 1800년 무렵의 상황입니다.


    마르그리트의 작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잘 팔린 이유를 알겠네요. 이 그림들은 유럽의 첨단 육아 모습을 그렸군요. 고양이도 앙고라나 페르시아 같은 고급 품종이네요.


    맞아요. 여기서도 개는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고양이는 소파 위에 있네요.


    역시 1800년 무렵 유럽에서는 애완용 고양이의 지위가 최고였다는 증거가 되겠네요.



    근대에서 20세기로

    19세기 프랑스 대표 시인이자 비평가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에서 암코양이를 노래한 세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는 그중 두 편의 시에서 연인이 키우던 고양이와 연인의 매력을 합성한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이런 이미지는 ‘고양이=여성=남성을 파멸시키는 미녀=숙명의 여자’라는 세기말적인 고양이 해석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렇게 ‘수수께기처럼 비밀스러운’, ‘묘약과 같은’, ‘미묘한 기분과 위험한 냄새’ 같은 신비한 고양이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물이 파리의 예술 카페 ‘검은 고양이’의 등장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세기에 고양이는 동물 회화의 왕이 되었고, 사진과 애니메이션 시대를 맞아 캐릭터로도 만들어지면서 남녀노소 많은 팬을 확보하기에 이릅니다.


    <화가의 아틀리에> 1855년 -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지금까지는 쿠르베의 대표작 한가운데에 있는 흰색 페르시아 고양이를 많은 연구자가 주목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존경하는 고 아베 요시오 선생님의 해설을 통해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 그림에 보들레르가 사랑한 고양이가 그려졌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고양이는 인공의 세계에서 원시 자연이 가진 풍부한 생명과 신비를 멋지고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존재다.”(『아사히 클럽 별책 미술특집 쿠르베』, 1993) 역시 보들레르의 명번역자이며, 고양이 마니아인 화가 발튀스와도 친했던 연구가다운 견해입니다.


    정말 고양이가 화면 정중앙에 그려져 있네요. 그 위로는 캔버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르베가 친구에게 이 그림을 그리던 상황을 설명한 편지가 있지요. 고양이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요?


    쿠르베의 편지에는 “… 나는 이젤 위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의자 등받이 뒤에 선 누드모델이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잠시 보더니 그림 앞에서 옷을 벗는다. 그리고 내 의자 옆에는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라고 써 있어요.


    음, 그 정도로는 고양이에 대해 알 수 없네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나는 쿠르베의 국내 순회전을 감수하면서 이 그림의 해석을 여러 가지로 연구했습니다. 화면 왼쪽은 쿠르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슬프고 비참한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반대로 화면 오른쪽은 쿠르베의 예술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생명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양쪽 모두에서 실제 인물이 북적이는 현실적인 알레고리극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림 속 고양이와 반대되는 존재가 왼쪽에 그려진 장화를 신고 턱수염을 기른 남자와 함께 있는 두 마리의 사냥개라고 생각합니다. 이 남자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2제정을 펼친 황제 나폴레옹 3세라는 설이 있는데,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림 속 개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경찰견으로 쿠르베의 발밑에서 자유롭게 장난을 치는, 예술가가 키우는 고양이와는 대조적인 ‘속박된 슬픈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화가 뒤에 있는 누드모델과도 관련이 있겠네요.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배로 기면서 몸을 비벼대는 것은 마타타비(개다래나무로 고양이에게 최음 효과가 있다)에 취해 있거나 발정기가 와서 흥분한 상태로, 자유연애를 상징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쿠르베는 여자관계가 복잡한 독신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남자는 결혼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하면서 결혼을 경멸했습니다. 그런 쿠르베의 자유로운 태도는 고양이 옆에서 그림을 보면서 순수하게 감탄하는 남자아이로도 표현됩니다. 돌아가신 아베 선생님과 그림 속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네요.


    <올랭피아> 1863년 - 에두아르 마네(1832-1883)

    다음은 마네의 작품 중 가장 화제를 모은 그림으로 1865년 <국전>에 입선했지만, 관객과 매스컴에게 맹비난을 받은 작품입니다. 비난을 받은 이유는, 매춘부를 당당하게 그렸다는 점과 인물의 색채와 데생이 역겹고 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정고양이도 불길하고 나쁜 인상을 더했습니다.


    지금은 미술사에 남은 명작도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평가를 받곤 했지요. 마네는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발표했을까요? 그 의도를 모르겠어요.


    마네는 스스로를 고전주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그림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나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비견되는 위대한 누드의 현대판이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매춘부의 세계에 머리를 불쑥 들이민 것이지요. 19세기 초반 1-2만 명이었던 파리의 매춘부는 제2제정기가 끝나는 1872년, 12만 명으로 급증합니다. 당시 파리 인구가 200만 명이었으니 인구에 비하면 경이적인 수치입니다. 즉 이 그림에는 미풍양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감추고 싶은 금기의 현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앞장서서 외쳤겠지요.


    이 그림에는 흑인 가정부의 이미지를 통한 인종 차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이 그림이 그려진 1963년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 남부에서 목화 재배의 권리를 갖는 제2제정기였기 때문에, 중립을 가장하면서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남군을 응원했습니다. 이 흑인 가정부도 틀림없이 미국 남부로 향하는 노예선을 타고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온 노예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내용 역시 시민들이 보고 싶지 않은 금기 가운데 하나였겠지요.


    마지막으로 검정고양이에 대해 말해보죠. 이런 업소에서는 통념과는 달리 검정고양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해 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 속 고양이는 기분이 나쁜 듯 등을 말고 꼬리를 세운 채 경계하고 있어요.


    여기서 검정고양이는 올랭피아 양의 기분을 나타냅니다. 그녀는 싫어하는 손님에게서 온 꽃다발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요. 검정고양이는 마지막 거절의 표시로서, 이 그림을 완성시킨 마네의 득의만만한 얼굴이 보이는 듯하네요.


    2014년 일본 후추에서 열린 밀레전 출품작 <기다리는 사람>의 하품하는 고양이가 <올랭피아>에 그려진 검정고양이의 원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밀레가 1861년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니 마네도 보았을 거예요. 하지만 밀레 본인은 <올랭피아>에 자신의 고양이가 그려진 것을 알지 못했겠지요?


    <고양이와 소년> 1868년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이 그림은 여성 누드의 대가, 르누아르가 그린 유일한 소년 누드입니다. 소년의 뒷모습에서는 여성 같은 묘한 에로스가 풍깁니다.


    지금 봐도 충격적인 그림이네요. 제가 조사해보았지만, 이 그림의 소년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른 그림의 모델이 된 적도 없던데,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그림일까요?


    그림이 그려진 1868년이라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당시 르누아르는 몇 년간 낙선하던 국전에 <양산을 쓴 리즈>로 입선했고, 바티뇰가의 카페 게르부아에서 마네와 그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이렇게 지방의 가난한 직공 출신이던 르누아르는 27살에 파리에서 화가로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가로서 열등감이 있던 그는 집안 좋은 파리 토박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지요.


    특히 이 그림에는 마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네요. 누드와 고양이를 그린 작품이라면 <올랭피아>가 대표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구도는 전혀 다르네요.


    언뜻 보아서는 잘 모르게 신경을 썼다고 생각해요. 마네에게 경쟁심을 가졌던 세잔도 <모던 올랭피아>(1873-1874, 오르세 미술관)를 그렸지요.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한 그 그림은 평소 자신을 ‘칠장이’라고 무시하던 마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네는 르누아르를 얕보면서 모네에게 “자네 친구는 재능이 없어”라고 귓속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무시 때문에 르누아르가 더 열심히 했을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죠. <올랭피아>에서 누워서 정면을 보고 있던 여인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수상한 소년으로 바뀌었습니다. 화가 난 검정고양이도 기분이 좋아 꼬리를 말고 있는 줄무늬고양이로 바뀌었네요. 고양이가 발바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긴장을 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마네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힘들게 국전에 입선한 자신의 실력도 과시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네요. 소년의 촉촉한 피부, 고양이의 따스한 털, 꽃무늬 테이블 커버의 부드러운 질감, 그 어느 것도 스승 마네에게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흘러넘치고 있어요.


    르누아르의 본격적인 고양이 그림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도 이 그림의 가치는 중요해요.



    우키요에 속의 고양이

    일본에서 고양이는 쥐와 유해동물로부터 귀중한 경전이나 식량을 지키는 용도로 중국에서부터 수입되었으며, 애완용으로 인식되면서 일반 가정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서양과는 달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동물로 그려지면서 현실적인 테두리 안에 그려집니다. 그 예외가 사제제간인 우타가와 구니요시와 가와나베 교사이입니다. 고양이를 훌륭하게 의인화한 두 화가의 그림에서는 국제적 면모가 느껴집니다. 또 예로부터 고양이가 나이를 먹으면 요괴로 둔갑한다는 전설은 가부키로 만들어져 민중의 상상력을 표현합니다.


    <미인과 고양이> 스즈키 하루노부(1725년 경-1770)

    다음은 니시키에(위요에의 후기 양식으로 우키요에)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즈키 하루노부의 <미인과 고양이>입니다. 실내에서 마루로 나오다가 고양이의 목줄이 기모노 소매에 엉켜 곤란해 하는 모습이네요. 그림 속 미인은 누구일까요?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에 나오는 겐지 씨의 애첩 온나 산노미야입니다. 이 장면을 본 귀공자 가시와기는 그녀를 연모하고 여기서부터 불륜이 시작됩니다.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오루 장군으로, 이 그림은 비극적인 이야기의 발단이 됩니다. 이 내용을 그린 화첩 부분이 언제 그림으로 그려졌는가에 대해서는 시부야 구에 있는 쇼토 미술관의 리뉴얼 특별전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전시 도록을 참고하겠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근세까지의 육필 <겐지화>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삽화가 많은 『겐지 이야기』가 에도 시대 중시부터 출판된 점을 생각하면, 하루노부의 이 그림은 상당히 빠른 예입니다. 이후 여러 우키요에 화가들에 의해 게이샤나 다유, 목욕을 끝낸 미인의 소매에 고양이가 감긴 듯한 구도가 유행하지만, 아주 저급했기 때문에 하루노부의 이 그림처럼 고급스러운 그림은 예외입니다.


    그렇군요. 여기에서는 에도의 아가씨를 교토고쇼의 황녀로 비유해서 그렸네요. 역사와 문학적 주제를 에도의 풍속으로 변환한 천재, 하루노부가 차분한 필치로 그린 미인도입니다. 부분도를 보면 흰색 줄무늬고양이는 줄이 목에 엉켜 괴로워하고 있네요. 당시 궁중에서 키우던, 중국에서 수입된 고급 품종의 고양이로 끈으로 묶어 키우면서 귀하게 여긴 것 같네요.  


    <잠자는 고양이> 가와나베 교사이(1831-1889)

    이 그림을 그린 가와나베 교사이는 구니요시의 제자 가운데 제일 막내로, 여섯 살에 구니요시의 제자로 들어가 손자처럼 귀여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교사이지만, ‘화광’이라고 자칭하며 우키요에부터 가노파(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400여 년간 이어진 전문화가 집단) 그림과 서양화까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당시 일본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화법에 정통했습니다. 또 정부에서 고용한 조시아 콘더에게도 그림을 가르치면서 해외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콘더는 로쿠메이칸(메이지 초기 정부가 국빈이나 외교관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사교장) 등을 설계했죠.


    교사이는 원래 요괴나 변신한 고양이 같은 무서운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이 그림에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보온을 위해 다리를 몸 아래에 넣고 있습니다. 발바닥이 보이는 자세로 편안하게 있네요. 하지만 수염도 처지지 않았고, 귀도 세우고 있어서 주위를 신경 쓰는 모습이에요. 마치 교사이 선생이 자기를 그린다는 것을 알고 모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같아요. 고양이와 화가의 좋은 관계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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