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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컬처 클럽
저   자 : 김윤정
출판사 : 이야기나무
출판일 : 2016년 07월
16

아이슬란드 컬처 클럽


레이캬비크의 이방인

"여행 기자가 여행 가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말이 되니?"


악몽이다. 어두컴컴하고 한기 도는 곳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영화 <인셉션>의 레오나르도처럼 팽이를 돌려보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주머니에 팽이 같은 건 없다. 대신 앞 좌석 주머니에 친절하게 핸드폰이 꽂혀 있다. 시계를 확인하니 6월 20일 금요일. 매달 19일 마감 후 20일 대체휴무일엔 언제나 침대 위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랬는데. 왜 황금 같은 대체 휴무일에 무릎도 쭉 펴지 못하고 좁은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는 걸까? 답은 머리맡의 메모에 있었다.


'손님이 자느라 건너뛴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승무원을 불러주세요.'


기억났다. 여긴 핀란드 헬싱키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서울에서 헬싱키까지 10시간을 날아가는 동안 기내식이 두 번 나오는데 마침 마지막 식사 카트가 지나갔다. 굶주린 채 헬싱키에서 레이캬비크까지 비행기를 갈아타고 4시간이나 더 갈 순 없다. 승무원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비행기에 오르기 몇 시간 전까지 나는 여행 월간지의 기자였다. 그런데 새벽 다섯 시까지 야근을 하다 회사에서 바로 여행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가는 것으로 4대보험과 이별을 고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의 신분은 프리랜서, 즉 잠정적 백수가 되었다. 자발적 퇴사자라 불러도 무관하다.


한 달 전 편집장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여행 기자가 여행 가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말이 되니?"

"지금이 아니면 평생 아이슬란드에 못 갈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라는 멀고 아득한 말은 허울 좋은 핑계다. '제가 지금 매우 심신이 허약하여 어디든 아무 생각 없이 떠나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라든가, '39시간 동안 집에 못 가는 일상을 제 삶에서 잠시 떼어놓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좀 덜 초라할 것 같았다. 모두의 만류에도 짐을 쌌다.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직전 일주일간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비행기에 올라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렇게 찌뿌둥하게 자고 일어난 마감노동자 앞에 거짓말같이 아이슬란드가 나타났다.



토요일엔 하이파이브를!

주말 오전, 어디선가 열리는 동네잔치에 나만 초대받지 못한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텅 빈 주택가를 걸었다. 남한과 엇비슷한 크기의 아이슬란드 인구는 약 32만 명, 그중 60%가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주말 아침에 온 가족이 온천물에 수영하러 가는 전통이라도 있는 걸까. 빈 거리가 으스스하게 느껴질 때쯤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선배!"


두 동양인이 집 나간 아이슬란드인을 찾기라도 하듯 두리번거리며 멀리서 걸어왔다. 나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앞으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함께할 동행이다. 선배 N과 B, 그리고 나. 셋이 11일간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한다. 우리의 여행 계획은 어느 추운 겨울, 이태원 양꼬치집에서 시작됐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한참 극장에서 흥행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첫 직장 사수이자 한 패션매거진의 에디터였던 선배 N이 아이슬란드 여행의 운을 띄웠고 내가 여흥을 부추겼다. 그리고 몇 달 뒤 소식을 들은 선배 B가 합류했다. 잡지사 에디터 셋으로 이루어진 아이슬라드 여행자 동맹이 꾸려진 것. 셋은 무인도에 떨어져도 각자 다른 곳에 다른 모양의 집을 짓고 살 것처럼 성격이 완전히 달랐지만 아이슬란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 생각했다. 동유럽과 모스크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로 모험을 떠나길 좋아하는 선배 N과 좋아하는 LA로 여행을 떠났다 하면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선배 B, 그리고 여행이 직업이었던 나. 그래도 한가지 통하는 점은 힙스터의 그림자를 쫓는다는 거다.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자연과 레이캬비크의 힙스터 얼굴을 육안으로 확인하겠다는 부푼 마음과 각자의 꿍꿍이를 안고 여기에 왔다. 셋 중에 둘은 아이슬란드를 핑계로 회사를 그만뒀으며 나머지는 회사를 그만둔 김에 아이슬란드로 떠나왔다.


"가방 안에 햇반이랑 컵라면은 무사하죠?"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함께 장을 본 뒤 한 달여 만에 만난 선배들에게 공동 식량의 안부부터 물었다. 아이슬란드의 무시무시한 물가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가방의 절반을 레토르트 식품으로 채워왔다.


선배들이 도착하기 전 나는 호스텔에서 나와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준 에바에게 키를 받아 놓았다. 3일간 머물 동네는 도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주거 지역이다.


"그럼 이제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찾으러 가 볼까요?"



태양이 지지 않는 댄스플로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백야. 아이슬란드에 온 이후로 눈 떠서 잠이 들 때까지 해가 진 적이 없다. 하얗고 긴 밤은 우울하고 이상한 감정을 북돋는다. 고속열차를 타고 낮과 밤, 하늘과 땅, 대지와 바다의 경계가 없는 무중력의 공간을 기약 없이 달리는 기분. 그런 날이 5월부터 8월까지 계속된다. 양력으로 6월 21일 경, 밤이 가장 짧은 하짓점에 우리는 아이슬란드 하늘 아래 있었다. 모두가 잠든 사이, 레이캬비크에서는 하짓날 새벽 2시에 진 해가 40분 뒤에 다시 떠올랐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전설대로 말하는 암소와 사람이 된 바다표범, 지하세계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사람을 꾀고 다니는 엘프가 우리 집 거실까지 다녀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암막 커튼이란 도구를 얻은 인간은 하지점에 생명이 날뛰는지도 모르고 곯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여름 밤 아이슬란드에서는 백야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일부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잠들지 못할 바에야 신나게 놀자고 작정한 모양이다. 누군가는 하이킹에 나서고 누군가는 밤새 말을 타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레이캬비크의 한 귀퉁이에선 매년 6월 하지가 있는 주 3일간 72시간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시크릿 솔스티스 페스티벌은 '비밀스러운 하지점'이란 뜻. 자연 과학책 제목으로 어울릴 법한 이름이다.


미리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본격적인 아이슬란드 일주 여행을 떠나기 전 레이캬비크에서 머물면서 첫 번째로 개최되는 '시크릿 솔스티스 2014'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파티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었다. 우리는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내구경을 한 뒤 헤드라이너가 등장할 때쯤 무대로 달려갔다. 마음 같아선 페스티벌 부지에 마련된 캠핑장에서 머물며 댄스에 대한 열정을 좀 더 불사르고 싶었지만 남은 일정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 두기로 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레이가르달루르 지역으로 가는 길.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힙스터의 인구밀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구글 지도도 껐다. 모두 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광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피어싱을 주렁주렁 매달고 옷장에서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옷을 꺼내 입은 젊은이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페스티벌 사이트에는 천 년 전에 바다를 건너온 바이킹 직계후손들의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건지 분홍색 리본에 질식당하기 직전인 나무, 해먹을 풀밭에다 가져다 놓았다. 무대에 바이킹 모자를 쓰고 털 옷을 두른 뮤지션이 올라 해괴한 퍼포먼스를 벌여도 놀라지 않을 풍경이었다. 첫 번째로 열리는 페스티벌인 만큼 몹시 어수선했지만 다른 관객들은 벌써 페스티벌이 체화된 듯 히피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슬란드 밴드의 공연이 끝없이 이어졌다. 디스클로저, 칼 크레이그, 케리 챈들러 등 전 세계에서 온 뮤지션들과 구스 구스, 뭄 등 아이슬란드 로컬 뮤지션들이 한여름 밤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사이사이 우리가 알만한 매시브 어택 같은 유명 밴드들이 얼굴을 비쳤다. 모두 함께 뛰고 노는 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잘 노는 애들이 오늘 밤 여기에 다 모였다. 3살쯤 돼 보이는 꼬맹이를 목말 태운 힙스터 아버지도 눈에 띄었다.


일요일의 헤드라이너인 스쿨보이 큐의 무대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새벽 1시, 스쿨보이 큐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무대 뒤로 거북이걸음 뺨치도록 천천히 하늘이 붉어졌다. 어찌나 늦장을 부리는지 노을은 그의 무대가 끝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동그란 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고 밤새도록 DJ들이 번갈아가며 음악을 트는 댄스플로어에도 자연광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쿵쿵 가슴을 울리는 비트를 뒤로하고 집에 가는 길 언덕을 세 번이나 넘는 동안에도 하얀 밤이 거리를 비췄다. 여기도 뭐 댄스플로어라 치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언덕을 넘었다. 이튿날 신문기사엔 그해 처음으로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놀다간 비요크의 얼굴이 실렸다.



1인 1폭포의 나라

"시계방향으로 갈까요? 반시계방향으로 갈까요?"


링로드라 불리는 아이슬란드 1번 국도를 따라 아이슬란드를 일주하려는 자에게 맨 먼저 찾아오는 고민이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선택의 연속. 수천 번의 선택이 하나의 여행을 만든다.


여행자에게 두 번째로 닥치는 문제는 '아이슬란드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폭포 중 어떤 것을 구경하고, 어떤 것을 건너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1번 국도라는 것은 폭포와 폭포 사이를 잇는 길일지 모른다. 수많은 폭포 중 이름이 있는 것은 극히 일부, 매년 새로운 폭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228m로 그동안 가장 큰 줄 알았던 글리무르보다 30m나 높다. 잦은 비와 눈을 흩뿌리는 북대서양 기후와 여름엔 강의 일부가 되는 빙하가 이토록 많은 폭포를 잉태한 까닭이다. 아이슬란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물줄기는 때로는 온천수가 되어 치솟고, 강이 되어 흐르고, 빙하가 되어 단단해지고, 폭포가 되어 절벽을 타고 내려온다. 레이캬비크를 떠나 첫 번째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에도 수많은 폭포가 있는데 그중 이름난 것은 둘이었다. 우선 셀리야란스포스를 향해 갔다.


도시에서 멀어지자 아이슬란드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이끼와 돌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 높은 산이나 우뚝 솟은 나무 같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서 지평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창밖으로 흐릿한 하늘과 셀 수 없이 다양한 녹색으로 덮인 땅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그러다 반복되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야생화 알래스카 루핑 군락이 나타났다. 보라색 꽃물결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파도처럼 밀려와 넘실댔다. 그리고 다시 이끼와 돌이 점령한 땅이 이어졌다. 이끼와 돌, 보라색 꽃, 안개와 양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곳 여기가 아이슬란드다.


셀리야란스포스는 굴포스에 비하면 폭이 좁고 날카로운 물줄기가 떨어졌다. 이 폭포가 혹여나 폭포연합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면 폭포의 뒷면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길을 터주었기 때문일 거다. 폭포 뒤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폭포 줄기 바로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거기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물줄기가 땅에서부터 거꾸로 치솟는 듯한 착시가 일어났다. 폭포 아래 물이 고여 생긴 작은 연못 둘레도 걸을 수 있는데 이때 인간에겐 이끼를 밟고 미끄러져 연못에 빠지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와 폭포수에서 튕겨 나온 물이 옷에 흠뻑 젖어도 자신만을 원망하겠다는 확약이 필요했다.


유명세로만 따지면 스코가포스가 한 수 위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다른 자연환경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여러 번 출연했는데 <토르:다크 월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스코가포스의 열연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폭포는 셀리야란스포스와는 달리 폭포 뒤를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에 바이킹이 폭포 뒤 동굴에 보물을 묻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지금은 해안선이 5km밖으로 물러났지만 예전엔 스코가포스가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였다고 한다. 바이킹이 물러간 뒤 한참 지나 지역 사람들이 그 동굴에 찾아가 보니 궤짝의 손잡이 한쪽만 남아있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이야기. 보물이 사라진 폭포에는 맑은 날 어김없이 1~2개의 무지개가 뜬다.


아이슬란드에는 한 사람이 폭포 하나씩을 소유해도 될 만큼 많은 수의 이름 없는 폭포가 있다. 그들은 이끼와 돌, 보라색 꽃, 안개와 양에 생명수를 공급하며 생명을 돌본다.


"사진 찍은 필름을 잃어버리면 폭포연구학자인 줄 알겠어요."

"아니면 무명 폭포수집가."


농담이 오간다. 아이슬란드에선 이름 없는 폭포에 이름을 지어주다가 한평생을 보낼 수도 있겠다. 다음 폭포를 향해 가는 길에 속력을 높였다.


아이슬란드인의 사생활

궁금한 게 태산이었다. 링로드에서는 사람보다 양을 더 많이 만났다. 인터넷에서 본 아이슬란드 여행자의 후기는 진짜일까?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다리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났는데 서로 양보를 하느라 한참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는 사람은 지나는 차도 만나기 힘든 링로드에서 백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불운을 만난 셈이다. 우리에겐 그런 불행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남한 정도쯤 되는 땅덩이에 제주도 도민의 절반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다 마침내 아이슬란드의 일상에 끼어들 기회가 왔다. 농가 옆 민박집에서 묵어갈 기회. 도시가 귀한 아이슬란드에서는 마을 주민 10명 남짓이 모여 사는 작은 농촌이 흔하고 팜스테이라 하여 농가의 한쪽을 관광객을 위해 비워주는 경우도 많다. 빙하를 실컷 보고 지겹도록 탄성을 지르고 나자 게스트하우스 홀무르가 나타났다. 세모 지붕을 얹은 외양간은 레스토랑으로 쓰고, 게스트용 이층집은 1950~70년대 아이슬란드 농장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맞은편 농부의 집에는 노부부 마기와 군나, 그들의 자식 내외, 손주들이 살고 있다. 마당엔 골든 리트리버가, 축사엔 양, 거위, 염소, 새끼 돼지가 동거 중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가정집을 고쳐서 만들었다. 마기의 부모님과 어린 시절 마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소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침대 위 꽃무늬 이불은 군나의 취향이겠지? 벽에는 세상 모든 엄마가 좋아하는 수예작품이 걸려 있다. 털실로 만든 거위가 털실로 만든 구름을 지나 털실로 만든 하늘을 날고 있다.


"와, 이 스키르 직접 만들었어요?"


군나의 남편 마기에게 물었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이 마련되어 있는 헛간 레스토랑에서였다. 이 걸쭉하고 진하고 시큼한 유제품은 끈질기게 달라붙은 아침잠을 쫓았다.


"농장에서 짠 신선한 우유로 만들었어요. 플레인, 캐러멜, 딸기 맛 세 가지가 있으니까 많이 드셔. 다행히 마지막 아침 손님이니까. 다른 음식도 다 우리가 만든 거야."


우리는 빵과 버터, 절인 청어와 연어, 토마토, 스키르 3종과 각종 홈메이드 치즈가 담긴 커다란 뷔페식 대접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포크를 놓지 않았다.


"진짜 맛있어요."

"그래요?"


군나가 겸연쩍게 웃었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어 본 표정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다른 손님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마기와 군나가 만든 음식이 아이슬란드에서 먹은 것 중 최고라는 걸. 레이캬비크 도시에서 냉동 패티를 튀겨서 내는 햄버거와 공장에서 만든 스키르 따위는 저리 가라. 이게 진짜다.



다시, 레이캬비크

'무사히 레이캬비크로 돌아왔어. 내일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 레이캬비크 시내에 있는 에이문소에서 한국으로 보낼 엽서를 쓰고 있다. 인류 사상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사내의 이름을 딴 이곳은 레이캬비크에서 제일 큰 서점이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굵어져 서점으로 대피했다. 서점 내에 자리한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엽서와 우표를 샀다. 손바닥만 한 엽서는 언제나 쓸 공간이 부족했다. 이번에도 거창한 모험담으로 시작했다가 급하게 끝인사를 했다. 늘 반복하는 실수다.


아이슬란드에서 지낸 11일 동안 지구의 비밀을 꽤 많이 들춰보았다. 북극 언저리에 숨겨놓은 비밀을 훔쳐본 사람을 무사히 살려 보내줘서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는 링로드의 출발지인 레이캬비크로 다시 돌아왔다. 무사히. 건강하게. 자갈이 튀어 창문이 깨지는 일이나 주유소를 찾지 못해 외딴곳에 고립되는 일도 없이. 트롤에게 납치되거나 동행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험한 꼴도 보지 않고. 사지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레이캬비크의 비 오는 거리를 쏘다니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곧장 지도를 확인하고 주유소와 관광지와 식당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던 나날이 끝나고 나니 조금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자, 이제 마지막 의식을 치를 때가 왔다. 지갑에 남아있는 아이슬란드 화폐를 소진하는 신성한 의식. 특히 무겁고 성가신 동전을 한 점도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비가 그쳤다. 거리로 나가자. 발등으로 쏟아지는 안개와 습기를 뚫고 스파크 디자인 스페이스로 향했다. 지난번 레이캬비크 시내를 돌아다닐 때 눈여겨봐둔 가게다. 저번엔 늦은 시간에 방문한 탓에 쇼윈도만 바라보다가 아쉽게 발길을 돌렸지만 다시 오자며 사진도 찍어뒀다. 다행히 이번엔 문을 열었다. 비 온 후에 더욱 흐리고 희뿌옇게 보이는 도시의 색과 반대로 가게 안의 물건은 형광으로 빛났다. 쇼윈도에 걸려있던 동물 뼈로 손잡이를 만든 줄넘기, 물에 뜨는 수영모, 몸에 두르면 까마귀로 변신할 수 있는 날개 달린 담요, 아이슬란드와 국외 도시의 지도로 만든 포스터, 멸종된 동물을 그린 엽서. 정말이지 무용하고 아름다운 아이슬란드 로컬 디자이너의 작품. 감상뿐 아니라 구매도 가능하다. 선배는 서가를 뒤져 책을 한 권 골랐다. 18세기 아이슬란드 최초로 일주 여행에 성공한 남자의 사진과 여행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지갑에 있는 마지막 지폐까지 깔끔하게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렌터카는 공항에서 반납하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열쇠를 반납하고 공항 가는 길, 아직 일말의 설렘이 남아있다. 여행의 끝엔 블루 라군이 기다렸다. 블루 라군은 레이캬비크 시내와 케플라비크 공항 사이에 있기 때문에 여행의 끝에 블루 라군을 밀어 넣는 여행자들이 꽤 많다. 이 시간을 기다렸다. 새벽같이 숙소를 나서야 할 때나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할 때, 따뜻한 밀키스 색 물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몸을 푹 담그자 발바닥이 찌릿찌릿했다. 오는 길에 심상치 않던 하늘에서 기어이 또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 노천온천에 있는 것도 괜찮네요?"

"그렇지? 한적하고."


비가 온다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방문객이 적어 마음껏 헤엄칠 수 있었다. 블루 라군은 나의 것. 얼굴에 블루 라군이라는 진흙을 치덕치덕 바르면서 콧노래를 흥얼댔다. '인공 온천이면 어떠냐. 이렇게 따뜻하고 평화로운데.' 열하루 전의 뾰족한 나와는 어딘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일상에서 쌓인 분노와 시기, 무기력함과 냉소, 나를 시시하게 만드는 못난 마음이 아이슬란드의 바람에 조금은 깎여나갔나 어쨌나. 이제는 아무리 노력한 대도 수만 개의 폭포, 아이슬란드 인구보다 4배나 많은 양 떼, 빙하와 빙산, 피요르드를 지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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