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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를 멈출 수 없을까?
저   자 : 가타다 다마미(역:노경아)
출판사 : 생각정거장
출판일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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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를 멈출 수 없을까?


PART 1 억압된 분노는 어디로 갈까?

억압의 위험성

일본에는 옛날부터 분노뿐만 아니라 슬픔, 억울함, 낙담, 실망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그 탓인지 요즘 젊은이 중에도 감정을 어떻게든 억누르려다가 문제에 부딪혀 괴로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례로 필자의 심료내과(심리적 원인으로 발병한 내과 질환을 취급하는 일본의 진료과)에 통원하던 20대 남성인 A씨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저는 강한 남자가 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늘 '강한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성적,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혼란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약한 놈이라며 경멸했습니다."


감정은 참으로 성가신 것이어서, 한동안은 억제될지 모르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속에 침입한 바이러스가 잠복기에는 얌전히 있다가 예기치 못한 때에 큰 병을 일으켜 목숨까지 위협하는 것과 같다.


분노를 참은 결과

원체 인간의 출생 자체가 분노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생이란 태내의 극히 온화한 환경에서 자궁의 격렬한 수축에 의해 불확실한 세상으로 쫓겨나는 사건이니 말이다. 아기의 첫 울음은 세상에 내던져진 것에 대한 분노의 절규일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분노는 삶이 시작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게다가 아기의 모든 욕구는 즉시 충족될 수 없으므로 욕구불만의 분노도 금세 생겨난다. 아기의 분노는 울면서 팔다리를 휘젓고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어뜯는 행동으로 표출된다. 대부분의 부모는 이런 경우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보다 부모 자신의 감정을 우선하기 쉽다. 부모는 아이의 분노를 접하는 즉시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그곳에 다른 어른이 함께 있다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이의 분노를 다루지 못하는 나쁜 부모로 보이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분노를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하는 부모도 있다.


이처럼 부모가 아이의 분노 표출을 막으려 강한 비난과 거절의 반응을 계속 보인다면 아이는 자신의 욕구불만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적절치 않다고 느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절당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신의 분노를 회피할 뿐 그것을 해결해 주려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이는 아마 자신이 분노를 드러냈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짐작하며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사랑받을 수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엄청난 분노의 에너지를 있는 힘껏 봉인하고 억누르려 할 것이다. 즉 분노를 최대한 억압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을 전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감정을 표출하는 일을 스스로 금지할 것이다. 그 결과,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자란다. 혹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쓴 나머지, 내면에 존재하는 욕구를 외면하고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연기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얌전한 아이,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보일 확률이 높다. 착한 아이라며 부모의 훈육 성과를 칭찬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할 자유를 빼앗긴 아이는 얼마나 괴로울까?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폭발 직전의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억누를 방법을 혼자 찾아야 한다.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는 분노의 악순환

여기까지 읽고,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이유가 예전부터 분노를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이제부터는 마음껏 분출하라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분노를 마음껏 분출하는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명, 마음껏 분노를 분출한 순간만큼은 마음이 개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의 만족일 뿐, 오래가지 않는다. 분노를 그대로 표현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주위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새로운 욕구불만이 생겨나 더 강한 분노를 유발하는 사태를 부른다.


그 결과 악순환이 시작된다. 즉 욕구불만 ->분노 ->폭발 ->긴장 완화 ->마음의 평화, 그리고 또 욕구불만 ->분노 ->폭발 ->긴장 완화 ->마음의 평화가 반복된다. 이 도식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계기가 없으면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분노의 악순환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폭발적인 분노 발작의 반복은 분노를 분출하는 당사자의 자존심까지 상하게 한다. 이들도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자신의 차분하고 조용한 일상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또 자신이 이 악순환의 주역이라는 수치심에서도 피할 수 없다. 특히 분노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너는 글러먹었어. 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었어. 이런 짓을 반복하다가는 혼자 외롭게 죽고 말 거야'라며 자신의 통제력 부족을 되풀이하기 쉽다.


그런가 하면, 분노 발작을 자책하고도 자존심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수치심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은 반복적 분노 발작을 일으키는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 반복적인 강박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인데,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PART 2 자기 자신에게 돌려진 분노

분노를 억압하면 심신증에 걸린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분노와 욕구불만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억누르며 사는 삶이 얼마나 불쾌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 불쾌감이 강해지고 초조감이 지속되면 '울화병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분사憤死라는 말이 있듯 예로부터 분노는 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이 다양한 심신증(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난 신체적 증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심리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심신증은 부정맥과 빈맥, 편두통과 긴장성 두통, 고혈압, 기능성 설사와 습관성 변비, 무월경과 월경불순, 위궤양, 기관지천식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억압된 분노가 신체 질환, 특히 심신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규명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몇 개의 벽이 있다.


우선 첫 번째는 하나의 감정이 다른 감정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은 포도송이처럼 한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독으로 병을 일으키는 감정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두 번째는 질병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가 매우 흔하다는 점이다. 의사는 환자가 병에 걸리거나 마음의 문제가 심각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후에야 그를 진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가 "결혼생활도 직장생활도 엉망입니다. 위궤양도 전혀 낫지 않고요"라며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면, 환자의 부정적인 감정이 위궤양을 유발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감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때, 대부분의 연구자가 표본의 생활 습관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노를 억압하면 암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분노를 억압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흡연과 음주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관련 요인을 감안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거식증과 과식증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식이 장애, 특히 거식증과 과식증 환자들도 강한 분노와 욕구불만을 품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쩌지 못해 무력감과 공허감을 느끼고, 그런 감정을 체중을 통제함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이것이 강박적인 완벽주의 성향과 합쳐져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과식증과 거식증은 공통적으로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과 비만에 대한 공포를 강하게 느끼면서도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음식에 사로잡히는 병이다. 식이 장애는 '날씬해지고 싶다. 하지만 먹고 싶다'라는 현대 여성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시대 질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식이 장애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사회적 요인도 있다. 일본에서 신경성 식욕부진증, 즉 거식증의 사례가 처음 보고된 것은 1950년대지만 그 수가 확 늘어난 것은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다. 후생성(보건복지부와 유사한 일본의 행정기관)도 대책의 필요성을 통감했는지, 1977년에 특정 질환조사 연구반을 조직하여 임상적, 통계적 연구를 시작했다.


'자해 행위'라는 원색적 표현

거식증도 과식증도 넓은 의미에서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지만, 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해치는 행위를 구분하여 자해 행위라고 한다. 자해 행위는 매우 다양하다. 몸의 여기저기를 칼로 베는 자기 창상, 피부를 벗겨내는 자기 열상, 날카로운 것으로 몸을 찌르는 자기 자상, 화상을 입히는 자기 화상, 손톱이나 입술을 물어뜯는 자기 교상, 머리카락을 뽑는 탈모광증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목받는 것이 손목 자해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젊은 여성의 손목 자해가 특히 두드러졌는데, 최근에는 중고생 사이에 이 증후군이 전염병처럼 만연하고 있다.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나 손목에 상처가 난 모습을 동영상 또는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거나 전용 사이트에서 교환하는 상습자도 급증하고 있어서 학교나 병원 응급실, 정신과 임상 현장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PART 3 남몰래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들

수동적 공격의 사례

수동적 공격을 통해 억압된 분노를 남몰래 표출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 혹은 도와야 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하지 않거나, 꾸물거리며 지연시키는 수법'이 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마중을 나가기로 했는데 그것을 잊어버려 기다리게 만들고, 계좌에 돈을 보내는 것을 깜빡해 민망한 상황을 당하게 하는 것 등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표면상으로는 상대의 격렬한 적의나 분노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 뿐인지, 아니면 숨겨진 분노가 수동적 공격의 형태로 드러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처럼 악의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이 수동적 공격의 최대의 무기다. 이들은 어떤 행동을 잊어버리거나, 하지 않거나, 지연시키는 것으로 거절과 분노를 표현한다. 심지어는 복수를 꾀하면서도 본인은 전혀 모른 척하고 때로는 피해자처럼 굴 때가 많다.


이 수동적 공격은 친구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 형제 및 가족관계, 직장과 학교의 인간관계, 의사와 환자의 관계 등 갖가지 장면에서 관찰된다.


우유부단한 변덕쟁이

끝없이 마음이 동요하기 때문에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주변 사람을 항상 조마조마하게 하고, 애를 태우며 괴롭히는 우유부단한 변덕쟁이 역시 수동적 공격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저택에 혼자 사는 30대의 독신 여성이 있다. 그녀는 매해 바다의 날(일본의 공휴일, 7월 셋째 월요일)이면 친구와 지인을 집에 초대하여 바비큐 파티를 여는데, 혹시라도 일기예보에서 강수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하면 즉시 취소해 버린다. 게다가 취소 통보는 항상 파티 직전에 이루어진다.


자신의 이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면서도 그녀가 이렇게 계속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손님들에 대한 호의와 적의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동성 친구에게 그런 감정이 강하다. 그녀는 이처럼 친구들이 확실한 연휴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파티가 취소된다는 소식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실망시킨다.


한편 그녀의 내면에는 또 다른 심리가 숨어 있다. 그녀가 일기예보에 따라 파티를 취소하는 이유는 만에 하나 비가 내릴 경우 손님을 집안에 들여야만 하는데, 그로 인해 가구와 물건이 망가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이런 이유로 그만큼 심한 공포와 적의를 느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겉으로는 친한 친구, 속으로는 적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수동적 공격을 언급했지만, 마지막에 등장시킬 강력한 주인공은 바로 '프레네미Frienemy'다. 프레네미란 '친구Friend'와 '적Enemy'를 합친 신조어로, 표면적으로는 친한 친구처럼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적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프레네미라는 말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3편 16화의 제목이었다. 그 후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상영되었을 때도, 친구지만 주종관계를 만들려 하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프레네미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이 드라마와 영화를 본 일본 여성들도 프레네미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앙앙>같은 여성지에까지 이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가짜 친구는 옛날부터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친구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험담을 하고, 상대의 실패와 불행을 기뻐하며 심지어 계략에 빠뜨리기까지 한다.



PART 5 분노의 반격, 분노의 연쇄

수동적 공격이 일으키는 반응

수동적 공격을 반복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응을 교묘히 유도한다. 특히 상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를 즐기는 가해자는 상대의 자기 평가를 낮추어 자책감과 자기비판을 부추김으로써 피해자를 우울한 기분에 빠뜨리려 한다.


필자의 외래 환자 중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여성의 오빠는 은둔형 외톨이이고 자신은 식이 장애 환자로 심료내과에서 함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먼저 독립하여 혼자 살기 시작했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밖에 몰라서 얼굴만 마주치면 빨리 일하라고 재촉하는 아버지, 한숨만 쉬던 어머니 밑에서 먼저 도망쳤기 때문이다.


오빠는 시기심과 초조함 때문에 여동생에게 계속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동생이 잘 지내는지, 건강한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 내의 사소한 문제라도 여동생에게 털어놓아 자신의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라고 자꾸 재촉하기도 했다.


오빠가 마음속으로 바랐던 대로, 처음에 여동생은 오빠의 불평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엉망이 된 것처럼 느꼈다. 또 오빠를 별로 동정하지 않는 자신이 냉정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혼자 집을 나와 오빠가 부모님을 떠맡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그 탓인지 한동안 사라졌던 과식과 구토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여동생의 반응을 보면 오빠와 그 배후에 있는 어머니의 욕망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딸 또는 여동생을 침울하게 만들어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감정을 느끼도록 끌어내리고 비참한 생활의 길동무로 삼으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집안 일을 자꾸 생각나게 함으로써 부모님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수동적 공격을 반복하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그 표적이 된 사람은 강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외에도 피해자는 집요한 방해와 이중 구속에 의해 탈진하고, 은근한 거절에 의해 버려진 듯한 고통을 느끼며, 반복된 무시에 의해 굴욕감을 느끼는 등의 반응을 나타낸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상대를 괴롭히고 도발하기 위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든, 상대를 도발하여 자신을 찌르도록 만드는 경우든,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대인관계의 악순환이 계속되면 결국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어느 쪽이 공격했고 어느 쪽이 반격했는지 모르게 된다. 이처럼 고통을 주고 앙갚음을 하는 연쇄 작용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한 번 시작되면 한쪽이 단호히 물러서지 않는 이상 그 연쇄 작용을 멈출 방법이 없다.



PART 6 처방전-분노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 것

화내는 기술

그러나 분노는 그저 끄집어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일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르며, 그것을 드러내기로 선택한 이상 적절한 방법을 활용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개선하는 성과를 꾀해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다. 


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말한다

이것이 분노를 전달하고 상황을 개선하려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물론 그전에 분노를 나쁜 감정으로 받아들여 무시하지 않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앞서야 한다. 즉 분노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명확히, 제대로 그리고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한다.


명확히를 강조하는 것은 빙 돌려 말하느라 무엇을 원하는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무척 곤란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대가 미루어 짐작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을 때 상대가 당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걱정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큰 오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노의 원인이 된 사항에 관해 ①행동, ②해석, ③감정, ④영향, ⑤희망의 다섯 가지 요소를 정리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①행동-입구에 손수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②해석-어제 정리하지 않고 퇴근했는지, 오늘 아침에 일부러 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그랬다면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③감정-저는 무척 걱정이 되고 화가 났습니다. ④영향-창고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짐을 옮길 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⑤희망-그러니 입구에는 손수레를 두지 마십시오.


예의 바른 태도도 중요하다. 결코 상대를 모욕하거나 위협해서는 안 된다. 싸움을 걸기 위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분노를 표현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은근히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이 방법은 그것과는 관계없이 내 분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② 상대의 입장에서 고려한다

당신이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전달한 후에는 상대가 당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립으로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오해가 생기기 쉬우므로 상대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의도를 일단 전했다면, 이번에는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바라는지 물어볼 차례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배려한다고 느끼면 문제 해결에 협력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진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제 생각과 희망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무엇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불만이 줄어들 수 있을지 듣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물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해도 좋고 생각이 다르다면 당신의 의견을 말해도 좋다. 서로 불평/불만과 분노 등 솔직한 감정으로 의견을 나눌 때 비로소 해결책이 보이는 법이다.


③ 현실을 명확히 파악하는 포기

양측 다 불만과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면 이제는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차례다. 쌍방에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중 무엇이 각각의 기대와 희망 사항에 가장 잘 들어맞는지 검토하며 절충점을 찾는 것이다. 이때는 원하는 결과가 반드시 나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분노를 전달하고 시간을 들여 의논을 하고서도 실제로는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양보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노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분노의 원인을 전달,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며 쌍방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았던 경험은 당신을 분노 공포증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노력했는데 실패했다면 깨끗이 단념할 수 있다. 분노를 꾹 참고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훨씬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분노를 적당히 표현함으로써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즉 분노 발작을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화내는 기술이란 사실은 폭발을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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