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의 경제학
 
지은이 : 달라이 라마 외
출판사 : 나무의마음
출판일 : 2019년 04월




  • 달라이 라마와 차기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미시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 ‘행복 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레이어드, 세계 최대의 의료 장비 회사 메드트로닉의 CEO 출신으로 현재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윌리엄(빌) 조지 등은 과학적 실험과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제 사례를 근거로 지금보다 서로를 보살피는 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핵심 키워드가 바로 ‘보살핌의 경제학’이다. 


    보살핌의 경제학


    이기적 인간 VS 이타적 인간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이기심과 이타심

    서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 관점

    서양의 사고방식에서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아무리 숭고하고 사심 없어 보여도 다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늘 “나한테 좋은 건 뭐지?”라고 묻습니다. 이기주의는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궁극적 목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타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다른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궁극적 목적’은 유일한 목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상황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기주의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데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거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아니면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정말로 이타적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서양식 사고에서는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프랑스 귀족 출신 작가 로슈푸코 공작은 이런 경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 어떤 사심 없는 사랑이라 해도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려고 이런저런 흥정을 한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결국은 일종의 거래다” 사회적으로 또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징벌을 피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스스로 뿌듯해하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 보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기주의 관점은 과연 옳을까요? 이런 의구심에서 공감-이타주의 가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로부터 이타적인 동기가 생긴다는 가설입니다.


    가설에서 ‘공감에 따른 염려 empathic concern’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생긴 타인 지향적인 감정, 즉 곤경에 처함 사람을 ‘위하는’ 느낌입니다. (곤경에 빠진) 그 사람과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에는 상대에게 느끼는 연민과 자비, 친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개인적 괴로움, 즉 아기가 불속에 떨어지려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고통과 같은 자기 지향적인 감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가 생기면 도움을 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연구 사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 동기일까요? 이타적 동기일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우면 그 사람이 혜택을 보지만 우리 자신도 얻는 게 있습니다. 이기주의 관점으로 설명하면, 타인에게 돌아간 혜택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공감에 따른 염려에서 동기부여가 됐더라도, 결국 그 목적이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고통을 처리할 때와 동일하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이기주의 관점에 따른 설명입니다.


    공감-이타주의 실험 : 돕거나 떠나거나

    이타주의 관점에서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둔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그로 인해 혜택을 봅니다.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상대방의 기분이 나아진 모습에 행복해하며, 미안함을 덜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상대를 도우려 했지 우리 자신을 도우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주어진 상황에서 그 사람의 행동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도구적 목적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도움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일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동료들과 실시한 실험을 소개하겠습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에서 생겨난 동기가 자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여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일레인이라는 학생이 암기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일레인이 숫자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마다 임의로 전기 자극이 가해졌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암기 과제를 수행할 때 혐오스런 자극이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암기 과제를 절반쯤 진행했을 때 조교가 실험을 중단시켰습니다. 일레인이 전기 자극을 몹시 힘들어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이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혹시 암기 과제를 수행하면서 전기 자극을 받는 이 실험에 일레인 대신 참여할 사람이 있는지 묻습니다. 우리는 이 경우를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difficult escape’이라고 부릅니다.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일레인을 대신할 생각이 없으면 집에 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를 우리는 ‘벗어나기 쉬운 조건 easy escape’이라고 부릅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인 괴로움이 크다고 호소한 참가자들은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일 때보다 벗어나기 쉬운 조건일 때 일레인을 도우려 하는 경향이 훨씬 약하게 나타났습니다. 남을 도우려는 동기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할 때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를 느낀 참가자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의 경우 벗어나기가 쉽든 어렵든 조건에 상관없이 일레인을 도우려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 같은 패턴은 공감-이타주의 가설과 일치합니다. 공감에 따른 염려는 확실히 이타적인 동기를 부여하며, 이러한 동기부여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에 따른 이타적인 동기부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가치를 두지 않으면 누군가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더라도 공감에 따른 염려로 이어지지 못할 테니까요.


    자비심과 연결된 신경회로의 가소성

    공감의 세 가지 성향

    저는 공감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싶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공감 negative valence empathy’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접했을 때 걱정하거나 괴로움을 느끼는 성향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공감 positive valence empathy’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달래고 긍정적인 정서를 불어넣으려는 목적으로 밝은 감정을 표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공감을 과학적으로 다룬 글에서는 보통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불교에서 강조하는 ‘사무량심 four brahmaviharas(불교 교리에 등장하는 네 가지 가치, 즉 남을 대할 때의 올바른 마음가짐인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지칭한다.)’ 가운데 ‘함께 기뻐하는 마음 sympathetic joy’을 가리키는 희(喜 또는 희무량심)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접하면 반갑고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성향을 말합니다.


    자비심 기르기 실험, 2주간의 변화

    임의로 나뉜 두 집단 중 한 집단은 자비심과 자애심을 기르는 훈련을 받고, 다른 한 집단은 인지 치료를 기초로 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했던 문제 중 하나는 대상에 따라 자비심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여부였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끝난 후 참가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 자기 자신, 낯선 사람, 그리고 껄끄러운 사람을 위해 자비 명상을 시도해보기로 요청했습니다. 2주 동안 자비 훈련을 받고 나니 낯선 사람과 껄끄러운 사람에 대한 자비심이 훈련을 받기 전 자기 자신에게 가졌던 자비심과 비슷한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하루에 30분씩 겨우 2주에 걸친 훈련이었지만 이처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참가자들이 2주간의 훈련을 시작하기 전과 훈련을 마친 뒤에 각각 뇌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자비심 훈련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뇌의 특정 부위, 그중에서도 편도체와 뇌도에서 확인된 변화 정도가 경제 게임을 수행할 때의 이타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자비심 훈련이 편도체 활성화를 억제했습니다. 2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뇌에 생긴 변화가 클수록 사람들은 훨씬 이타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인지적 치료 집단에서는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결과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인간의 이타적 본능, 경제학으로 증명하다

    이타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경제 모델

    경제적 비용과 이타심의 상관관계

    경제적 비용이 이타주의와 자비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에른스트 페르와 제가 확장된 형태의 신뢰 게임을 한다고 할 때, 에른스트가 제게 10달러를 보내고 제가 5달러를 돌려보낸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정의에서는 제 행동이 이타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 때문에 에른스트에게 5달러를 돌려줄까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게임에 참여한 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벌을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 행동의 동기요인은 에른스트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비용이 들었더라도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과 다른 목적이 있는 행동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티베트어로 일반적인 동기를 나타내는 단어는 ‘쿤 롱 kun long’입니다. 이 같은 동기가 의미하는 바를 이타심이나 이타적 행동과 연결시켜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그 결과가 징벌의 형식을 빌리더라도 이타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요인, 즉 ‘쿤 롱’입니다.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의문은 순수하게 이타적인 행동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면, 불교에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결국 그 자신도 혜택을 보기 마련이라고 여깁니다. 정신이 밝고 건강해지니까요. 따라서 이타적으로 행동한 당사자가 아무런 혜택을 보지 않는 이타적 행위는 사실상 있을 수 없습니다. 모순적인 개념이지요.


    이타심을 키우는 법

    불교 수행의 중심 목표는 자비심과 이타심을 이루는 자발적인 태도와 성향,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주요 요소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며, 그것이 가장 일반적이고도 근본적인 동기요인이라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만듭니다. 모든 존재를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본다면, 이타심과 자비심을 편향적이고 편파적으로 만드는 내집단/외집단 구분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불교 관점에서 본 자비심을 기르려 하는 것일까요? 지극히 실증적인 근거에 기초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타고난 자기중심성 때문에 인식이 왜곡되고 좌절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기주의적 성향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왜곡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행복을 위한 시도들이 실패하고 맙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만, 자기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더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복 경제학

    부富와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 이유

    성공적인 경제 시스템을 창조하는 데 있어 경쟁과 협력이 기여하는 정도를 비교해보려면 먼저 개인과 조직을 구분해야 합니다. 협력이 개인 간의 관계 유지에 필요한 기본 원칙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조직, 특히 기업끼리는 경쟁 관계가 최선이라고 믿습니다. 경쟁을 벌여야 하는 기업들은 최대한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고, 가능하면 시장의 다른 경쟁사보다 더 앞서가고자 합니다.


    협력과 경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관계 유형입니다. 현대 경제 이론을 정립한 애덤 스미스는 협력과 경쟁 둘 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뒤를 이은 경제 이론들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간에도 경쟁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저는 경제학이 ‘음울한 학문 dismal science’으로 불리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이론은 음모가 아니라 이상적이고 지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경제 이론에서 가장 주요한 명제는 ‘사람들은 자유와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에서 최대 행복을 누린다’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행복을 이루는 수많은 필수 요소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소득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삶의 경쟁적인 측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쏟은 나머지 인간적 관계는 너무나 무시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생활수준과 금전적 수입은 유례없이 높아졌음에도 그에 비례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주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950년대보다 조금도 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의 비율 역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기부를 하는가?

    미국 사람들이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라는 개념입니다. 가격은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동기를 제공합니다. 만약 당신이 생산자라면 고객에게 받는 돈의 액수가 바로 가격입니다. 당신은 그 돈을 받아 당신이 원하는 것과 바꿀 수 있습니다. 가격은 당신이 열심히 일해 물건을 더 싸게 생산할 방법을 찾고,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제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이 수행하는 또 다른 기능은 정보 제공입니다. 당신이 어떤 물건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려 한다면 그것으로 그 물건이 당신에게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회가 작동하게 만드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일단 만들어지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도 혜택을 보게 되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가치가 높은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복지나 원조, 그 밖에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도움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가격이 매겨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입니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면 나도 더 행복한 기분을 느낍니다. 따라서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행복한 감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저소득 계층이나 다른 가난한 나라에 대한 지원과 보조, 도움은 모두 부족한 상황입니다.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를 충분히 돕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가 도우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이 필요한데, 이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자선 기부에 의존하거나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천차만별입니다. 미국에서는 전체 가구 중 68퍼센트가 가난한 사람 뿐 아니라 문화 시설, 교육, 그 밖에 여러 단체에 자선 기부 목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으며, 대체로 소득의 2퍼센트를 기부합니다. 이 수치도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은 1퍼센트, 프랑스는 0.3퍼센트, 이탈리아는 0.1퍼센트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이처럼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는 스위스나 영국과 달리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말의 요지는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관대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관대함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부 금액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합니다. 그래서 전체 소득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많이 기부하는 현상은 아마도 행복 수준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소득의 약 2퍼센트를 기부합니다. 퇴직 연령에 가까워질수록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금액이 늘어나는데 약 4퍼센트에 이릅니다. 넉넉한 인심은 교육 수준과도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많은 부분을 기부금으로 내놓습니다. 하지만 나이와 교육 수준이 같아도 어떤 사람은 아주 적은 금액을 기부하고, 또 어떤 사람은 큰 금액을 기부합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근본 원인을 이 기회에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기부의 합리적인 손익 계산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저는 오레곤 대학의 동료 교수 두 명과 함께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100달러를 주면서 그 돈을 다 가져도 되고 저소득층에게 음식을 구입해 제공하는 푸드뱅크에 일정 금액을 기부할 수도 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다만 이 실험에 한 가지 장치를 두었습니다. 기부 받은 비용 가운데 실제 푸드뱅크에 전달하는 액수를 수시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과 데이터를 갖고 아주 단순한 경제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타적 공급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함수를 측정하고, 기부에 비용이 많이 들수록 사람들이 기부를 더 적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들인 비용과 가난한 사람들이 입게 될 혜택을 비교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비용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큰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지극히 이타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신경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 또 하나 있습니다. 현실에서처럼 우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그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합니다. 현실에서 세금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실험에서도 이 부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선택해서 한 행동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들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 그들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뇌의 ‘배쪽 선조 ventral striatum’라고 하는 부위는 각종 보상을 처리하는 아주 중요한 영역입니다. 우리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갖는 돈이 많을수록 혹은 세금을 적게 낼수록 이 보상 영역의 활성화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기 몫으로 돈을 챙길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자선단체에 기부금으로 전달될 때도 활성화됩니다. 결국 기부를 할지 말지 결정할 때 뇌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부위가 서로 인접해 있으며 심지어 동일한 부위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선 기부를 결정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자선 단체가 도움을 받을 때 보상 영역이 더 넓게 활성화되고 자기 몫으로 돈을 챙길 때는 오히려 더 작게 활성화된 사람은 정반대 반응을 보인 사람에 비해 자발적으로 기부할 가능성이 훨씬 컸습니다.



    미래 자본으로서 이타심

    통합적 경영과 이윤 추구

    지속 가능성의 기반은 순환

    돈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며 물이나 지식처럼 순환합니다. 돈은 흘러야 합니다. 지속 가능성의 기반이 순환이기 때문에 돈을 가진 사람들은 투자에 앞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경영 방식과 사람, 상품, 서비스, 생산 공정에 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투자하고 싶은가?’


    현재 우리가 가진 금융 시스템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경제 시스템도 우리 책임입니다. 이 두 시스템은 금융계에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이 거품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몇 안 되는 아주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사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삶의 질까지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스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을 분석해보면 물질적 성장과 이익의 극대화, 효율성과 단기 성과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폭이 좁은 직선적 사고방식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정말로 우리 소비자와 투자자가 중시하는 가치인가요? (다행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 투자할지 매우 신중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그저 이윤만 추구하던 과거와 달리 목적이 있는 이윤을 추구하고, 양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투자로 바뀌고 있으며, 무형의 가치가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투자 방식의 기준

    제가 설립한 독립 자산 관리 회사 포르마 푸투라에서는 180가지 지속 가능성 요인을 기준으로 기업을 분석합니다. 저는 포르마 푸투라를 설립하기 전에 투자은행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 은행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도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때 주요 가치 중 하나가 공정한 고객 대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객에게 금융 상품과 보험을 팔아 남긴 이윤을 따져본 다음 이익을 과도하게 챙긴 직원에게는 보너스를 적게 지급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정책을 시행한 지 3~6개월 만에 직원들의 행동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고객을 공정하게 대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더울 책임감 있게 투자하도록 설득할 수 있습니다.


    포르마 푸투라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혁신을 장려하는지도 평가합니다. 우리는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희귀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시장에 적합한 상품을 확보하고 있는지, 노동ㆍ생산ㆍ자재 구매 관행에서 인권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는지도 평가합니다. 이렇게 지속 가능성 분석을 마친 뒤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무 분석도 합니다. 투자자들은 오로지 이 모든 검증 과정을 통과한 기업에만 투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더 있을까요? 먼저 생태학적 진화와 환경을 보호하는 시장경제가 필요합니다.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지속 가능한 금융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합리적인 목표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금융 시스템은 법적 효력을 갖는 효과적인 규제 틀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기자본비율 equip-to-assets-ratio입니다. 은행이 스스로 초래한 위험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지속 가능한 금융 시스템은 책임지는 구조에서 가능합니다. 대기업 이사회가 해야 할 임무 중 하나가 위험 요소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를 지금의 기업 대표들이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진화 혹은 혁명이 일어나 우리 시민 사회가 책임 있게 행동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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