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
 
지은이 : 조지프 F.코글린(역:김진원)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19년 03월




  •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한국의 경우 14.6퍼센트)가 본격적으로 노년에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획과 마케팅이 인구 비중이 줄어드는 젊은 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그간 여러 기업이 노인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야심차게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거나 도리어 뼈아프게 실패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고령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노인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 시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


    새로운 시장을 이해하는 방법

    여성에 주목하라

    궁극의 소비자

    2장에서 언급했듯이 고령층을 겨냥한 상품은 대부분 노인이 되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에 대한 자의적이고 고루한 이야기를 반영한다. 그렇지만 이제 노인의 경험은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계층이 판단하기로는 50세 혹은 60세 이후 삶에 대한 20세기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만족스러운 노후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고 새로운 내용의 이야기를 제공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따금 최첨단 신상품의 도움을 받기도하고, 그 최첨단이라는 것이 말만 그럴듯한 경우에는 스스로 그런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개척 정신으로 똘똘 뭉친 소비자 계층은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개인 재산을 상당히 굴리고 있고 천성적으로 기계를 잘 다룬다. 더구나 베이비붐 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주변의 경제 세계와 물질 세계를 다듬고 가꾸는 데 익숙하다.


    또 한 가지. 이 계층은 남성이 아니다. 여성이 생각하는 ‘고령이란 무엇인가’는 남성과 달리 널리 알려진 기존의 생각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이 결과 고령층을 겨냥한 기존 상품에 대해 여성 소비자의 만족도가 유난히 낮다. 그리고 이런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에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고령 시장에서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소비자 상당수가 바로 여성이다.


    고령 집단으로 범위를 좁히면 여성 소비자가 쥐고 있는 권한은 더욱 막강하다.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는 질문은 고령 여성이 구매 결정을 내리는 범위가 어느 정도냐가 아니라 남편에게 남아 있는 결정권이 무엇이냐다. 아직 남편이 살아있기나 하다면 말이다. 여기서 노인에 대해 명백하면서도 불변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늙어 갈수록 동년배 중에 남성이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65~69세 미국인을 보더라도 여성 100명당 남성은 96명이다. 85세 이상에서는 이 수치가 60명으로 뚝 떨어진다. 몇몇 나라에서는 성비가 훨씬 더 불균형을 이룬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알코올 관련 사망률을 포함해서 여러 문제 때문에 64세 이상에서 여성 100명당 남성이 겨우 44명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가계 소비를 주도하는 경향도 크다는 점 외에 고령 소비자 시장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불평등한 사실에 기인하다. 여성이 노인을 간병하는 데 훨씬 많은 몫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든 간병을 받는 노인 대부분은 순전히 가족이나 친구에게 의존한다. 여기서 의미를 좀 더 확실하게 못 박아두자면 ‘간병’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일만을, 즉 대소변을 받거나 옷을 갈아입히거나 약국에서 약을 타오는 행위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전구를 갈고 도서관에 데려 가고 전화기를 새로 살 때 도와주며 서류 작성에 도움을 주고 컴퓨터를 업데이트 하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 심지어 말벗이 되어 달라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들어간다.


    간병인이 종종 떠맡는 여러 역할 가운데 중요하지만 세상이 잘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가족 내 두 세대 혹은 세 세대, 심지어 네 세대를 관장하는 소비청장이라는 역할이다. 여기에 고령 여성이 남성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며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이 소비자 지출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어째서 상품을 생산할 때 기본값으로 여성을 설정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논거를 얻은 셈이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노후의 혁신

    사실 여러 부문에서 경제는 여전히 남성 손아귀에 있다. 그것도 ‘젊은’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 남성 대다수가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고 여기지만 그 내용을 남성이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다. 고령 여성의 요구에 관한 한 특히 더 그렇다. 남성과 여성이 노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극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 MIT 에이지랩에서는 각별한 관심을 쏟아붓는다.


    한 시험 연구에서 에이지랩은 자유롭게 대답하는 새로운 조사 방식을 써서 25~60세를 대상으로 65세 이후 삶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갖고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지 묘사하도록 유도했다. 참가자는 수북한 사진 더미에서 사진을 고르는데, 사진에는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이 담겨 있었다. 낚시 여행을 가거나 병원에 입원하거나 조용한 저녁 외식을 즐기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등의 내용이었다. 그러고는 이 사진들을 과녁에 붙였다. 가장 안쪽 원은 노후에 간절히 기대하는 삶을 나타내고 가장 바깥쪽 원은 피하고 싶은 큰 걱정거리를 나타냈다(이 바깥쪽 원을 우리는 ‘공포의 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참가자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선택에 대해 한 마디씩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기록한 이 설명에서 남성이 보인 반응과 여성이 보인 반응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노년에 맛볼 즐거운 결과물에 더 집중했다. 이 결과물을 어떻게 이룰지 과정은 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따라서 독립, 여가, 휴가, 충족과 같이 결과 지향적인 단어를 더 자주 썼다. 반면 계획, 투자, 담보 대출, 채권, 주식, 연금, 사회보장, 저축, 보험, 재정과 같이 과정 지향적인 단어는 덜 썼다. 여성은 정반대였다. 목적한 바를 노년에 이루기 위한 과정이 대화를 장악했다. ‘대가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소망과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여성 생각을 잘 담아내는 듯 했다.


    간략하게 정리를 해 보면 이렇다. 연구에 참여한 남성은 낙관적이지만 막연한 태도로 노년에 다가가는 반면 여성은 노후의 삶이 또 다른 도전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노년을 맞이한다. 남성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수십 년을 ‘기대’한다. 반면 여성은 노년을 맞아들일 ‘계획’을 세운다.


    남성이 여가 중심의 은퇴라는 막연한 장밋빛 미래로 노년을 그리는 반면 여성은 더욱 선명하고 더욱 가혹한 관점에서 노년을 바라본다는 사실은 매우 결정적인 차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소비자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현재의 노령 개념에 반기를 들 때 그 맨 앞에는 여성이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각 연령대마다 여성이 상대 남성보다 노년에 해결하길 바라는 여러 문제에 대해 더 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해결책에서 어떤 점이 미흡한지 깨닫고 잘못된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여성이다. 또한 노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품과 노인‘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인식할 사람도 여성이다.


    핵심은 소비자의 일이다

    지금까지는 중요한 경제 개념을 암암리에 사용했지만 이제 숨기지 않고 밝힐 때가왔다. 바로 소비자의 일이다. 화학에서 원자가 하는 일을, 생물학에서 유전자가 하는 일을 자본주의에서는 소비자(혹은 사용자 혹은 고객)의 일이 한다. 가능한 한 가장 작은 개개 단위가 나머지 현상을 모두 일으킨다.


    이는 본래 저 전설적인 냉전 시대에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이던 시어도어 레빗이 주창한 개념이다. 레빗 교수가 학생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한 유명한 말이 있다. “소비자는 4분의 1인치 드릴이 아니라 4분의 1인치 구멍을 산다!” 즉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가령 벽에 구멍을 뚫을 일이 있으면 이 일을 할 상품을 ‘구한다’. 제조업자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소비자를 구멍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드릴이 필요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소비자가 몰두하는 건 해야 할 일이지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을 더 잘 해낼 신상품이 등장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예컨대 홀펀처 5000이 시장에 나와 드릴보다 더 쉽고 더 싸게 벽에 구멍을 뚫었을 때 드릴 제조업체는 곤경에 빠졌다.


    ‘해킹’을 주시하라

    역사적으로 기업은 소비자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무척 반가워했다. 새로운 시장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크리넥스를 예로 들어 보자. 크리넥스는 1920년대 킴벌리-클라크가 미용 티슈로 처음 시장에 선보였다. 그런데 소비자(와 제조업자)는 이 부드러운 종잇장이 곧 일회용 손수건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킴벌리-클라크는 마케팅 전략과 포장을 바꾸었고 ‘크리넥스’는 곧 ‘콧물닦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그러고는 하룻밤 사이에 모두 코 푸는 방식을 바꾸었다. 영원히.


    오늘날 고령 소비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소리 없이 슬금슬금 해킹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상품을 이용하는데, 그렇게 해서 요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해서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런 경우 대다수 고령 소비자의 진정한 일이 드러난다. 요양 시설에서 한 가지 예를 들면 테니스공에 칼집을 내어 노인이 사용하는 보행 가구 다리 끝에 끼운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이렇게 해킹해서 고무신 신은 보행기로 바꾸면 훨씬 부드럽게 밀 수 있다. 최근에는 다리에 조그만 플라스틱 스키를 단 보행기가 꽤 흔한데 테니스공 사용에서 드러난 소비자의 일을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해킹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즉 고령 사용자를 겨냥해 맞춤 생산한 상품까지 변경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더욱 흥미로운 사례는, 원래 노인이나 간병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분명 아님에도 이런 상품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하는 경우다.


    킴벌리-클라크가 크리넥스로 단순히 화장을 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우면서도 기뻤듯이, 수요 중심의 공유 경제 체제 내의 젊은 기업 역시 고령층이 자신의 서비스를 이례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는 현실을 발견하고 이런 성장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예로 들어 보자. 당시 20대이던 공동 창립자가 창업할 때 원래 붙인 이름은 에어베드&브랙퍼스트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기 주입식 침상이 달린 다락방을 비싸게 빌리고 난 뒤였다. 그리고 이 혁신적인 발상을 곧 인터넷 서비스로 전환했다. 대상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었다. 숙박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배고픈 젊은이와 잠만 잘 수 있는 값싼 곳을 찾는 유랑 여행객. 그런데 이내 고령 사용자가 무리를 지어 이 사이트로 몰려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에어비앤비 집주인 대다수가 40세 이상이다. 이들 가운데 10퍼센트 이상이 60세 이상이며 에어비앤비 집주인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 집단이다. 그리고 이들 고령층 집주인 3분의 2가 여성이다.


    이런 소비자 대면 스타트업이 거대한 고령 시장 덕에 어떤 전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면 얼핏 꿈이 이루어지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거의 산업 영역에서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운영하는 기업인 경우에는 이런 성장이 오히려 위험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장수 경제를 위한 제품 개발

    근본적 공감과 초월적 디자인

    하지만 상품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머지않아 성공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다른 고려 사항은 한 편으로 밀어두고 우선 이런 상품은 소비자가 자신의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이 말이 곧 ‘사용하기 편리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무를 입힌 큼지막한 리모컨이나 버튼 세 개짜리 핸드폰이나 응급 호출 목걸이나 아무도 갖고 싶지 않은 온갖 종류의 상품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미명 하에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다. 내가 말하는 ‘편리성’은 소비자를 얕잡아보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상품 개발 정신의 최고 경지를 초월적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탐색해 나가겠지만 초월적 디자인은 고리타분한 산업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영역을 허무는 융합으로 뜻밖의 매력을 발산한다. 인구 통계 부문에 근거해 소비자의 일에 따라 첨단을 걷는 해결책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몇몇 경우에 초월적 상품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아 소비자가 사는 곳에서부터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다.


    고령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가 당연하게 들리지만 거짓된 노령 담론과 막상 마주하면 벗어나는 데 꽤 애를 먹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소비자 내부에 웅크린 욕구와 요구, 불만과 희망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때때로 기업은 새로운 팀이나 직원이나 상담역을 고용해서 이런 범주의 전문 지식을 사들인다. 그렇지만 소비자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다. 바로 신중하게 의도한 공감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다가가면 어느 틈엔가 뜻밖의 횡재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조급하게 굴지 말자. 우선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장도에 첫 걸음을 내딛는 데에는 거창한 지적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건전한 상식만 있으면 된다. 장수 경제 상품에 편리성을 결합할 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고령 소비자가 불만을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도 여러 상품과 상품 포장과 마케팅 활동에서 이 점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대다수 소비자 상품은 가상의 건강하고 젊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생산된다. 이 결과 몇 가지 뻔한 실패를 낳는다. 예를 들어 날카로운 가위나, 암벽 탈 때에나 쓸 법한 악력을 써야 겨우 뜯을 수 있는 포장 따위가 그렇다. 이보다 눈에 덜 띄는 실패 요소도 있다. 웹 사이트를 예로 들어 보자. 정보 전달 수단이 신문 지면에서 후면 발광 액정 화면으로 바뀌면서 더욱 폭넓고 더욱 섬세한 색 배열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고령 소비자는 색을 볼 수 없다. 특별한 질병을 앓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수정체가 점점 파란빛을 투과하지 않는다. 이는 망막에 닿는 빛이 노랗다는 의미다. 노란빛이 파란빛의 보색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이런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나이가 들수록 노란색을 하얀색과 구별하기가 힘들고 파란색을 검은색이나 초록색이나 자주색과 구별하기도 힘들어진다.


    정신모형

    사실을 말하면, 고령층은 기술에 매우 유식하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60대와 70대에 접어들 즈음이면 역사상 가장 첨단 기술에 능통한 고령 집단이 된다. 노인이 기술을 기피하거나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통념이 퍼진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앞서 언급했다시피 단순히 시기에 따른 우연이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대략 20년 동안 사무실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집에서까지)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과 컴퓨터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 없이 아슬아슬하게 은퇴한 사람 사이에 구분이 생겨났다. 양극단 사이에 회색 지대는 있었다. 예를 들어 늙은 축에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작업 환경에 맞추어 컴퓨터에 적응한 베이비붐 세대가 있는 반면 젊은 축에 들어도 사무직이 아니어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써 본 적이 없는 베이비붐 세대도 있었다.


    이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컴퓨터 문맹률이 증가하면서 기존 노령 담론에 근거한 생각과, 즉 늙은이는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익힐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우연히 딱 맞아떨어졌다. 지금도 우리는 노인이 기술을 두려워한다는 편견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다. 현실은 사무실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꽤 능숙하게 다루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상대적으로 쉽게 익힌 사람이 고령 연령대를 지금도 빠른 속도로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이 기술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체로 오랫동안 일정한 방식으로 일을 해 오면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신 모형은 가장 익숙한 방법이나 도구와 단단히 결합한다.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쓰는 힘의 실질 매몰 비용을 보면 이와 같은 고령 예비 사용자가 젊은 층보다 비용이 더 크다. 그래서 새롭게 제안한 행동 방식이 그저 그렇다고 여기면 종종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그럴 가치가 없어 보이는군요.” 내 경험상 노인이 기술을 거부할 때는 배울 능력이 없거나 고지식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한 기술을 제공하는 업체가 노인이 관심을 기울일 만큼 강렬한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 결과 고령층이 감동하고 환호하는 상품을 디자인하려면 결코 생리적인 요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소비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활보할 때에 의지하는, 잘 예시된 정신 모형을 무시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품이 소비자와 친해지지 못한 이유가 이런 정신 모형을 상품 설계나 시장 판매에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이는 생산자 잘못이지 소비자 잘못이 아니다. 에이지랩 입장에서 고령층이 어떤 기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고령층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기술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의 기술적 단점 자체가 분명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기술’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 요소든 ‘좋다’라고 여기려면 고령층을 비롯해 예비 사용자 모두가 마음에 든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세대를 아우르는 디자인

    정신 모형도 중요하지만 이 외에도 아이드라이브와 관련한 BMW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더 있다. 접근성이나 정신 모형 문제를 모두에게, 심지어 젊고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방식으로 직관적이고도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는 의미다. 계단 한쪽에 설치하는 경사형 휠체어 승강기는 이 디자인 특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반면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디자인 결정은 ‘보편적 디자인’이라고 한다(이 용어를 달리 ‘모두를 위한 디자인’과 ‘포괄적 디자인’이라고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레버식 손잡이가 있다. 팔꿈치나 의수같은 인공기관, 온전치 않은 팔다리나 관절염을 앓는 손으로도 작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무릎으로도 열거나 닫을 수 있다.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나 보편적 디자인이나 그 특성은 기능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모두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수준이 더 높은 또 다른 접근성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제껏 보편적 디자인으로 잘못 묶어서 다루었는데, 바로 초월적 디자인이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디자인이되 10점 만점에 11점까지 후한 점수를 받은 경우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특성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높은 호감을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열망도 일으킨다. 우리가 맞이할 고령 미래 사회에서 개념을 정의하고 담론을 구성하는 힘이 바로 이런 요소에, 즉 고령층이 소비자로서 해야 할 일을 수월하게 완수하는 조건에 있다면 초월적 상품이나 디자인의 특성은 이 여정에서 최선봉에 설 것이다.


    노년의 삶을 돕는 마법 같은 기술

    노인학계 관련자에게 큰돈 들이지 않고도 노인을 위한 건강 및 간병 가치를 높이 수 있는 요인에 대해 질문하면 십중팔구 기술을 유력한 후보로 내세운다. 그런데 다시 어떤 기술이냐고 물으며 바로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언급한다. 노인 돌봄 로봇과 복약 알림 장치. 앞서 한 차례 살펴보았듯이 실제 이 기술 분야는 이 두 범주 외에도 훨씬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겉보기에 그럴듯하고 현재의 노령 담론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노인 돌봄 로봇이나 복약 알림 장치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한편 먹고 씻고 입고 용변하고 곳곳을 방문하고 절제하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돕는 돌봄 로봇은 간병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소위 ‘간병 위기’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 입장에서는 이런 로봇이 향후 10~15년 사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로봇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빨래 개키기와 같은 섬세한 일도 점점 능숙하게 해내겠지만 비록 살아 있어도 매우 쇠약한 사람과 협력하여 이런 일련의 동작을 수행하는 일은 인간과 로봇 간 상호 작용 가운데 육아에 버금가는 최고난도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목욕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언제 어떻게 욕실로 가도록 보조해야 하는지 안전하게 확인하는 능력을 갖춘 장치는 가사 로봇처럼 다른 유형의 로봇이 일상에서 별 탈 없이 쓰인다는 사실을 증명한 다음에나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 간병은 아름다운 행위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수고라고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를 자동화한다는 주제가 등장했을 때 다수가 난색을 표했다. 저명한 MIT 사회 심리학자 셰리 터클이 자신의 인기 도서 『외로워지는 사람들 Alone Together』에서 의문을 품은 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식이 부모를 더 쉽게 버리기를 우리가 정말 바라는 건 아닐까?” 터클이 쓴 논평이 주로 (잠시 뒤에 살펴볼) 반려 로봇을 다루고 있지만 신체장애가 있는 노인을 돌보는 로봇에게도 똑같은 비중으로 관심을 보인다. 이상적으로 돌봄 로봇을 활용하되 인간 간병인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수고를 덜어주는 정도로만 허용했다면 돌봄 로봇의 도덕적 가치를 논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돌봄 로봇이 지닌 효용성 때문에 적어도 몇몇 경우에 한해서는 인간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았다. 터클 주장에 의하면 노인 간병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형성해 온 사고방식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거의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 따르면 “고령층까지 돌아갈 재원이 부족하다고 이미 결정되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시각에서 로봇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만 터클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마땅히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우려하는 점은 현재 부정적인 노령 담론이 만연하는 가운데 우리가 직면한 선택은 로봇이냐 보편적인 사랑을 간직한 인간 간병인이냐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쓸 수 있는 기술 도구 덕분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풍부한 간병 지원책을 제공하는 사회와, 가장 늙고 쇠약한 계층을 실질적으로 포기해 버리는 끔찍한 시나리오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아소나 이매뉴얼 같은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판단하기에 노년의 삶은 이미 가치가 매우 낮아 이를 위해 어떤 지원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매뉴얼은 고령층 요구를 사회에 무거운 짐으로 다룬다. “경제적인 부담과 간병하는 부담은 매우 현실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오며 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소위 낀 세대에 속하는 다수는 아이와 부모를 동시에 돌보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노인 간병은 이미 개인이나 국가에 시간과 자금과 역량 면에서 크나큰 손실을 입히고 있으며 이 여파는 점점 커질 전망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최상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선뜻 집까지 저당 잡힌 사람에게 국가 차원에서 노인을 부양한다는 소식은 꽤 충격을 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재미는 마법을 낳고 두려움은 비극을 낳는다

    두려움이 아니라 재미다. 불안이 아니라 열망이다. 이런 요소가 소비자를 자극한다. 이는 신체적 기본 요구와 개인 안전에만 초점을 맞춘 첨단 기술 상품에도 해당한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수조 달러짜리 질문은 여러 기본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고령층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당당히 즐기는 능력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배양하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온라인 안전을 강화한답시고 교도소 같은 인상을 풍겨선 안 된다. 베지마이트가 지닌 우수성을 서로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안전하게 마련해야 한다(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한마디 보태자면 베지마이트는 장보다는 잼에 가깝다). 낙상 사고 감지 장치도 모든 세대가 사용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서 누구나 무리해서라도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가정 간호 회사라면 어느 정도 고객과 대화가 통하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갖춘 간병인을 보내 고객이 이런 문제를 짚어 내며 불만을 토로하지 않아야 한다.


    재미와 사용자가 경험하는 즐거움과 고령 소비자가 지닌 열망을 우선시하는 상품은 결코 미래 지향적이지도 첨단 기술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여러 의료 서비스가 병원에서 소매 시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예컨대 환자라는 처지가 삶에서 1순위가 되는 처량한 기분을 떨치기가 더 쉬워졌다. 그리고 가령 하루 일정 중 유일한 계획이 고작 시내 외진 곳에서 치료를 받는 게 전부인 사람보다는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친구를 만나는 사람이 훨씬 매력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건강 상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줄 수 있다.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질병 완화보다는 성능에 강조점을 두면 된다. 너무 바빠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인터넷 회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식사 대용 음료 소이렌트와, 영양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보조 음료 엔슈어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장 전략이다.


    노인의 요구가 아니라 ‘욕구’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처럼 최고 수준의 노인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가능하다. 사실 이런 시설은 행복보다 보건 통계를 우선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종착점에 다다른 삶을 바라보며 진지한 성찰을 담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아툴 가완디는 이렇게 썼다.


    “일상적인 삶을 돕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우리에겐 없다. 반명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쯤 되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지 짐작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하는 것보다 체중이 감소했는지, 약을 빼먹지 않았는지,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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