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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저   자 : 사토 겐타로(역:서수지)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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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의약품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원숭이와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고?

인류학자, 고고학자 등의 전문가들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열다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오늘날이라면 잠깐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하면 쉽게 나을 정도의 감기나 가벼운 질병이 그 시대에는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그런 사정으로, 당대의 사람들이 특효약을 찾는 마음은 현대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간절하고 절박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약품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다양한 기록들과 정황들을 근거로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의약품의 발견과 활용은 인류가 탄생하기도 전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남미에 사는 꼬리 감는 원숭이는 방충제를 이용하는 방법을 안다. 이 원숭이들은 노래기를 발견하면 잽싸게 잡아서 자기 몸 여기저기에 문지른다. 노래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 벤조퀴논을 몸에 바르면 뱀이나 해충 등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곤충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생파리라는 곤충은 애벌레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은 애벌레 몸속에서 성장한다. 이윽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될 무렵, 기생파리 유충은 숙주의 외피를 아귀아귀 뜯어 먹고 바깥세계로 나온다.


그러나 기생 당하는 쪽, 즉 숙주인 불나방 유충도 기생파리 유충에게 아무 대책 없이 무기력하게 잡아먹히지는 않는다. 불나방 유충은 기생파리가 제 몸에 알을 낳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나도독미나리속의 독당근 같은 독성식물을 찾아 먹는다. 이렇게 독성식물을 뜯어 먹은 불나방 유충은 독초를 먹지 않은 녀석들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즉, 불나방 유충들은 제 몸속에 둥지를 튼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해 ‘약초’를 이용하는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세계 각지에서 문명을 발전시켰다. 파피루스, 점토판 등의 도구를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에 사용할 줄 알았던 초기 문명인들은 예외 없이 다양한 약이나 독약 등에 관한 특징과 사용법 등을 문자로 남겼다. 후나야마 신지 일본 약과대학 교수는 “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 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독과 약의 세계사》,2008)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으면 병에 걸리는지, 또 무슨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현재까지 남겨진 기록을 보면,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식물이나 동물, 광물 등과 그 밖의 온갖 물질이 진지한 탐구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문자 기록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비법과 비방(자기만 알고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특효의 약방문-옮긴이)이 축적되고 그중 탁월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명의’라는 이름으로 대단한 권위가 부여되었다. 이렇게 각 문명에서 의료 체계가 완성되었으며, 그 일부는 ‘한약’이나 ‘아유르베다’와 같은 이름으로 오늘날 의학에까지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지은 위대한 약, 비타민C

대항해 시대에 바다 사나이들이 풍랑이나 해적보다 두려워한 것은?

“비타민C가 의약품인 줄 아셨어요?” 이 질문에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었죠!”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지 않다.


비타민C는 틀림없는 의약품이며, 그 밖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식품 첨가물, 음료수나 과자 등 다양한 식품 재료로 사용된다. 그런 까닭에 현대인에게는 의약품보다는 식품 성분, 기껏해야 영양제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타민C는 일본 정부에서 펴낸 약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어엿한 의약품이다.


비타민C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비타민C는 그저 여러 필수 의약품의 하나 정도가 아니라 때때로 세계사의 큰 흐름을 뒤바꾸어놓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만하다.


인류 문화는 수많은 발명과 발견이 서로 맞물리고 충돌하는 과정을 겪으며 발전해왔다. 그중에서도 15세기에 시작된 ‘대항해 시대’는 세계적 규모의 문화 교류가 급속도로 진전된 시기였다. 뱃사람들은 일곱 개의 바다를 오갔고, 세계 각지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거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나운 풍랑도 해적의 습격도 아니었다. 뱃사람들을 가장 큰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은 뱃사람들만 걸리는 희한한 질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배 위에서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난파나 전투 중 사망한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많았다고 한다.


대항해 시대에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페스트도 결핵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그 이름조차 듣기 힘든 ‘괴혈병’이라는 질병이었다. 이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은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며 차츰 쇠약해졌다. 손가락으로 살갗을 누르면 쑥 들어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탄력을 상실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렀고,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천천히 죽어갔다.


괴혈병은 대항해 시대에 느닷없이 발생한 신종 질병이 아니었다. 이 병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매우 오래된 질병이다. 그 밖에도 괴혈병에 관한 기록이 역사적 문헌에 다수 남아 있다. 다만 이 질병이 세계사 무대에서 집중 조명 받은 시기는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항해 거리가 엄청나게 큰 폭으로 늘어난 이후부터 괴혈병은 전 세계적으로 활개를 치며 세력을 떨친 것이었다.


콜라겐은 일반적인 단백질과 달리 세 줄의 펩타이드 사슬이 얽힌 섬유 구조를 이루고 있다. 콜라겐 사슬에는 이 ‘삼중 나선’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프롤린이라는 아미노산에 산소 하나가 더부살이하듯 특수한 아미노산이 바로 콜라겐이다. 이 산소는 수소 결합력으로 사슬끼리 서로 연결되고 단단하게 맞물려 쉽게 풀어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프롤린에 산소를 덧붙이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비타민C는 그 반응을 돕고 원활히 진행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데, 비타민C를 식품으로 얻지 못하면 산소 결합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결국 약한 콜라겐 섬유만 만들어진다. 콜라겐 결합이 느슨해지면 혈관과 잇몸조직이 약해져 잇몸이 헐고, 출혈이 생기며, 심해지면 치아 결손 등의 더욱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진다. 괴혈병으로 고생한 기록을 늘어놓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지경이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국 해군은 4년여에 걸쳐 항해하는 동안 1,000명 이상을 괴혈병으로 잃었다. 같은 기간에 전사한 승조원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 각 나라 해군은 심각한 고민과 논의 끝에 강제 징병으로 선원을 보충했고, 그중 절반이 도중에 사망해도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넉넉한 인원을 승선시켜야 했다.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종식시킨 영웅, 제임스 린드

18세기 후반,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끝낸 영웅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린드,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이었다.


1747년 린드는 효과적인 괴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1. 열두 명의 괴혈병 환자를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매일 같은 식단을 제공한다.

2. 환자를 두 명씩 여섯 조로 나누어, 각각의 조에 사과 과즙과 황산염 용액, 식초, 바닷물, 마늘 등으로 만든 반죽과 오렌지 두 개, 레몬 한 개를 먹인다.


린드는 다양한 사례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 결과를 꼼꼼히 기록했다. 그로부터 엿새 후 실험 결과가 나왔다. 오렌지와 레몬을 제공한 병사는 병의 거의 완치되었으나, 사과 과즙을 마신 사람들은 미미하게 회복 조짐을 보였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증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 실험으로 린드는 ‘감귤류는 괴혈병 특효약이다’라는 가설을 훌륭하게 증명해냈다.


현대인에게는 이 실험이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린드는 다른 조건을 최대한 일정하게 조율하고, 비교 대상군과 같은 실험을 시행하여 무엇이 효과적인지를 판명해냈다. 린드의 문제의식과 결론은 당대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전문가들과 대중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닌 약, 모르핀

스위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양귀비 재배 흔적이 발굴되었다는데

진통제만큼 인류가 절박하게 갈구해온 의약품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절박한 요구와 노력의 결과, 인류가 손에 넣은 역사상 최강의 진통제가 바로 ‘모르핀이다. 제약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갖 진통제가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까지도 모르핀을 능가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르핀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아픔 치료에까지 효과를 발휘한다. 소량의 모르핀을 투여하면 평소 느끼던 우울감이나 슬픔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해준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르핀 사용을 위해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르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효과적인 진통제보다는 인생을 파괴하는 마약에 더 가깝다. 역사 속에서도 모르핀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노출되었다.


모르핀은 덜 여문 양귀비 씨방에서 얻을 수 있다. 모르핀을 생산하려면 양귀비 속 중에서도 파파베르 솜니페룸과 세티게룸이라는 종이 필요하다. 일본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서는 이들 양귀비의 무허가 재배를 금지하고 있다.


꽃이 떨어지면 며칠 후 달걀 크기의 씨방이 남는다. 이 씨방이 여물기 전 상처를 내면 하얀 우윳빛 즙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 즙을 모아 잘 말리면 우리가 ‘아편’이라고 부르는 마약이 만들어진다. 아편의 효과는 아주 먼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다. 줄잡아 5,000년 이상은 충분히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그 근거로 스위스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양귀비 재배 흔적을 들 수 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에는 설형문자로 아편 채취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쯤 되면, 인류는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아편의 작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남북전쟁 동안 아편중독자가 급증한 이유

아편의 효능을 널리 알린 계기는 16세기 연금술사이자 의학자였던 파라켈수스였다. 파라켈수스는 아편을 바탕으로 삼아 환약을 개발했고, 이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권장했다. 아편은 진통 및 진해 효과를 지니고 있어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질병 증상을 완화해 준다. 사실 이 시대에 사용된 의약품 중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 효과다운 효과를 내는 약은 아편 이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아편팅크’가 개발된다. 아편팅크는 적포도주 등의 술에 적정량의 아편을 녹인 제품이다. 이윽고 아편팅크는 감기와 콜레라 등의 감염병, 생리불순, 원인 불명의 통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처방되며 마치 진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된다.


아편의 무시무시한 탐닉성, 중독성이 이 시대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수많은 의학자가 환자들에게 아편 사용을 권장했다. 그 바람에 유아부터 노인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아편을 수시로 사용하게 된다. 그에 따라 아편 입수가 비교적 손쉬웠던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아편 중독자가 급증했다.


그 무렵, 순수한 모르핀 성분을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발견은 인류 과학사를 갈무리한 신문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당당히 1면 상단에 머리기사로 실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건이다. 통증을 완화하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은 생명의 신비스러운 힘 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단순한 물질에 포함된 성분임을 똑똑히 보여준 발견이었다. 근대 약학과 유기화학이 모두 이 발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순수하게 유효 성분을 추출해 정확한 양을 계량해 약을 투여할 수 있게 된 것도 실용적으로는 큰 변화였다. 19세기 중반에는 피하주사기가 개발되어 모르핀을 주사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중독환자 증가로 이어지는 지름길도 일반에 활짝 개방되었다.


그 연장선에서, 남북전쟁(1861~1865) 동안 남군 측에서만 무려 1,000만 정의 아편 정제와 200만 온스 이상의 아편 관련 약제가 팔려나갔다. 그 결과, 전쟁 기간에 아편 중독자가 속출했다. 이때 발생한 아편 중독자를 사람들은 ‘군대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초기에는 ‘만병통치약’으로 환영받았던 아편이 서서히 ‘위험한 마약’으로 민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닌 약, 모르핀

여러 면에서 인류의 골칫거리가 되었던 모르핀이지만, 진통 효과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지금도 모르핀은 말기 암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적인 진통제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물론 금단증상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사용을 꺼리는 환자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통증을 덜어준다는 본래의 목적으로 적절히 사용하는 한 중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는 모르핀을 투여해도 통증을 완화할 뿐 쾌락을 느끼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작용과 중독성 걱정 없이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르핀이 개발된다면 그야말로 궁극의 진통제로 인류에게 크나큰 축복이 될 것이다. 최근 그 꿈같은 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모르핀 수용체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고, 중독성에 관여하는 수용체, 진통작용에 관여하는 수용체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진통작용에 관여하는 수용체로만 약을 만들면 꿈의 진통제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모르핀 수용체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연구가 진행되면 모르핀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


모르핀 수용체 연구는 인간 마음의 움직임을 알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갈구해온, 인류 역사마저 크게 뒤흔들어놓았던 특수 화합물 모르핀. 이 약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특별한 존재로서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모두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서 녀석은 우리의 애간장을 녹이며 들었다 놓았다 하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약, 아스피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 아스피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약의 이름을 공개하자면, 이번 장의 주인공인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 제조사인 바이엘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아스피린 생산량은 연간 5만 톤에 달하며, 5,000mg 알약 기준으로 1,000억 알 분량에 해당한다. 이를 일직선으로 늘어놓으면 100만 킬로미터 이상이라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반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아스피린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약이지만, 특히 미국인들의 아스피린 사랑은 유별나고도 각별하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아스피린의 3분의 1가량이 미국 내에서 소비된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이 연간 100알 가까이 아스피린을 먹는 셈이라고 하니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1899년 출시된 이후 아스피린은 줄곧 바이엘을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의 지위를 지켜왔다. 한 세기 사이에 의학과 과학, 생물학은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보했으며 전 세계 제약기업에서 신약이 끝없이 출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스피린은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약국 진열대에서 변함없이 팔려나가고 있다. 19세기부터 기본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은 채 꾸준히 팔리는 공업제품은 아스피린을 제외하면 찾기 힘들 정도다.


아스피린이 버드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버드나무 껍질과 이파리에 진통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의사이자 약리학자였던 그리스의 디오스코리데스는 ‘버드나무 잎과 나무껍질을 잘게 빻아 와인과 후추와 함께 먹으면 심한 복통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또 이쑤시개는 충치로 생기는 치통을 방지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씹었던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1819년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졌고, 이 물질에도 진통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사실 버드나무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살리실산에는 의약품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살리실산을 경구로 먹으면 환부의 통증이 완화되고 염증이 가라앉는 대신 극심한 위통을 일으켰다. 바이엘은 당시 스물아홉 살이던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에게 이 부작용을 경감시킬 방안을 찾아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호프만은 살리실산 구조를 요리조리 변환해 부작용이 약한 구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는 연구 목적으로 살리실산의 산성 성분의 바탕이 되는 하이드록시기에 카복실기라는 원자단을 결합했다. 살리실산의 강한 산성이 위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성분을 중화하는 카복실기를 추가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접근법이지만 우연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합성된 아세틸살리실산은 소염 진통작용을 유지하면서 멋지게 부작용을 완화했다. 1897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호프만이 개량한 신약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상부에서 무시당했고, 한동안 연구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묵혀졌다. 일설에 따르면, 살리실산이 심장에 좋지 않다는 설을 상부가 맹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약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행히도 아세틸살리실산에는 진행 명령이 내려졌다. 바이엘은 이 약에 아세틸의 ‘아’와 스필산(살리실산의 별명)을 합쳐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을 붙여 1899년 시장에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일본에도 상륙하여 의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건너온 최신 약품으로 소개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주는 건 아스피린밖에 없다”

유럽에서도 아스피린은 인기를 독차지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주는 건 아스피린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창작의 동반자로 삼았다. 아스피린이 출시되고 몇 년 후 바이엘은 “아스피린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이 약을 능가할 약은 없다”고 자랑스럽게 광고했다. 물론 아스피린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고향 독일에서 특허 취득에 실패하며 쓰라린 경험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률의 차이로 미국에서는 아스피린 특허 취득에 성공했다. 바이엘은 1903년에 미국에 새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이라는 거대시장 진출을 꾀했다.


1917년,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미국은 적국인 독일 기업의 자산을 접수하고, 바이엘이 보유한 특허권과 상표에 이르기까지 바이엘의 모든 소유물을 몰수해 미국 정부 관리하에 두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자, 미국 정부는 바이엘의 현지법인인 바이엘 아메리카를 경매에 부쳤다.


스털링 프로덕츠라는 회사가 경매에 참여해 바이엘 미국 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권리를 낙찰받았다. 낙찰 가격은 현재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1억 달러에 가까운 거금이다. 미국 진출 15년 만에 바이엘과 아스피린의 몸값은 곱절로 불어났다.


1920년대 미국은 경제 번영을 구가하며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와 금주법 실행, 세계공황 등 대중을 엄청난 스트레스에 내몰던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두통과 위통을 줄여준다는 아스피린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힘입어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 끼인 이 시대를 후대 역사가들은 ‘아스피린 에이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나의 약 이름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던 사례는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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