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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지 않습니다
저   자 : 알렉스 수정 김 방(역:박여진)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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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쉬고 집중적으로 일하는 법

최고의 아이디어를 선사하는 걷기

“나는 내 최고의 생각들 속을 산책했다”라고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에서 아주 긴 산책을 즐기기로 유명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수많은 철학자의 대변인이자 의도적인 휴식을 실천했던 모든 이의 대변자다.


오래 전부터 걷기와 사색은 가까운 관계였다. 창의적인 철학가들 중에는 걷기가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고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다. 혼자 고독하게 걸어도 좋고 여럿이 함께 걸어도 괜찮다. 걷기는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를 준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거나 여럿이 걸으며 회의를 할 수도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조카에게 머리를 식히고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으로 산책을 권했다. 그는 “산책을 갈 때에는 절대 책을 갖고 가지 마라. 산책의 목적은 느긋하게 새로운 주변 환경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제퍼슨은 매일 아침 일어나 아침을 먹기 전 잠을 깨기 위해 산책을 했다. 프랑스에 대사로 있을 때는 파리 근교를 8km가량 걸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오후로 시간대를 옮겨 산책이나 승마를 계속했다.


옥스퍼드대 입시를 준비하던 작가 루이스는 아침에 집중해서 공부를 했고 오후에는 산책을 했다. 이들이 즐겼던 산책은 주로 대화가 아닌 침묵과 명상을 즐기는 것이었다. 이들은 걷기와 말하기를 큰 즐거움으로 여겼으며 두 가지를 섞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생각의 기술》의 저자인 그레이엄 월러스는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며 쉴 때나, 도서관에서 오전 독서를 마친 후에는 활력을 찾기 위해 하루에 몇 km씩 걸었다. 작가 앨리스 먼로 역시 하루에 약 5km씩 걸었다. 우버의 CEO 트래비스 칼라닉은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있는 회사에 설치된 실내 트랙을 일주일에 64km씩 걸었다. 주당 60km가 넘는 거리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차로 다닐 법하다. 하지만 비즈니스 전문 작가 토니 슈워츠에 의하면 CEO나 간부들이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 오후에 산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팔로 알토의 낙엽 쌓인 거리를 걸으며 산책 회의를 하기로 유명했다. 링크트인 직원들 역시 본사 건물에서 나가면 바로 있는 쇼라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곤 한다. 마운틴 뷰에 있는 구글 지사에는 회사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캘리포니아 주 멘로 파크에 본사를 둔 페이스북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물을 디자인했으며 2015년 초 건물 내부의 벽을 최소화한 건축물이 완공됐다. 이 건물 옥상에는 3만 6000㎡에 달하는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에는 800m  길이의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몇몇 기업들은 회사 건물 주위에 30~50분가량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고 회사 일정에 아예 산책 회의 시간을 정해 직원들이 산책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걷기가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고 기분 전환을 하게 해준다는 개념은 건축가이자 신경과학자인 제니 로이의 연구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제니는 에든버러에서 걷는 사람들의 뇌에 뇌파 측정기를 장착하고 걸을 때 뇌의 활성도를 기록했다. 기록된 자료를 분석한 제니는 사람들이 공원이나 녹지를 걸을 때와 복잡한 상업 지구를 걸을 때 뇌파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복잡한 도심에 있다가 덜 붐비는 공원에 들어왔을 때 마음이 더 차분해진 것이다. 심지어 멍하니 있거나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뇌파는 상당히 안정적이 됐다. 자연 경관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숲을 걷다보면 무의식이 자유롭게 펼쳐지기 딱 적당한 정도로 의식이 조절된다.


1927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늦은 밤 코펜하겐 거리를 걷다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떠올렸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만든 방정식으로 미립자의 운동량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위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펠 공원을 산책하다가 번뜩 ‘수학 이론이나 모델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 불확정성이 미립자의 특성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탄생했다.


헝가리의 발명가 루비크 에르뇌는 다뉴브 강변을 걷다가 그 유명한 큐브 퍼즐 디자인을 떠올렸다. 부다페스트대 응용미술대 교수였던 루비크는 모든 면이 세 축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큐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작은 블록들로 큐브를 만들면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블록들을 어떻게 고정시킬지가 문제였다. 어느 봄날 루비크는 산책을 하다가 ‘강물이 조약돌 주위를 감싸며 도는 광경’을 관찰하게 됐다. 조약돌 둘레를 빙글빙글 돌던 물살을 보던 그는 문득 작은 블록의 한쪽 면이나 모서리만 고정시켜 여러 개의 블록들을 하나의 큐브에 고정시키는 디자인이 떠올랐다.


바버라 매클린턱의 사례는 걷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어떤 일에 몰입하면 자신의 어린 시절 이름조차 깜빡 잊을 정도로 정신없이 푹 빠지곤 했다고 밝혔다. 대학생이 된 매클린턱은 이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과학 연구에 적용하는 법을 익혔고 무의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알아냈다. 어느 날 그녀는 스탠퍼드대의 캠퍼스를 걷다가 무의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완전하게 이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로스포라 곰팡이를 연구하며 풀리지 않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된 것이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무의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걷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며 걷기를 과학적 발견 분야에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매클린턱은 콜드하버스프링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녀는 어려운 장기 프로젝트를 해내는 능력으로 인정받았으며,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긴 산책을 즐겼던 것으로도 매우 유명했다. 걸으면서 직관을 이용하는 능력 덕분에 그녀는 혁신적인 발견인 ‘튀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튀는 유전자란 염색체 내에서 이리 저리 장소를 옮겨 다니는 유전자를 말한다. 이 발견으로 매클린턱은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걷기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에너지 회복을 위한 강력한 도구, 낮잠

런던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와 웨스트민스터 사원 사이의 트레저리 건물 지하에 박물관 같지 않은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작전을 수행하고 싸웠던 장관과 장군들의 상황이 담긴 ‘처칠 전시 내각실’이 있다. 오늘날 이 공간은 단지 처칠을 기리는 곳으로만 남아 있다. 박물관은 처칠 정치사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영국을 지키려는 불굴의 에너지, 작가로서도 손색없는 유려한 글 솜씨, 전쟁 중 소소한 일상, 정치적 기회주의, 현실 정책, 이상주의 등이 혼합된 그의 정치 스타일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의 중요한 습관에 관해서는 박물관 끝부분에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돼 있다. 그 습관은 바로 낮잠이었다.


처칠은 정오의 낮잠을 정신 균형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보충하며 원기를 회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겼다. 처칠은 해군 장관으로 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낮잠 자는 습관이 있었다. 심지어 독일에게 영국 대공습을 당할 때에도 처칠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군복을 벗고 작전본부 내 자신의 방에서 한두 시간 낮잠을 잤다. 처칠의 수행 비서였던 프랭크 소이어는 훗날 “처칠에게 낮잠은 일상의 철저한 규칙이었으며 좀처럼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처칠은 낮잠을 통해 늘 심신을 좋은 상태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아 내각과 장교들에게 귀감이 됐다. 의회에서 지루한 논쟁이 오갈 때에도 처칠은 낮잠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폭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낮잠을 자러 들어가는 처칠의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이 암울한 전쟁이 승리로 끝나리라는 확신을 줬다.


윈스턴 처칠은 수많은 리더에게 모범이 됐으며 두 명의 미국 대통령도 그를 따라 낮잠을 잤다. 그중 한 명이 존 F.케네디다.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케네디가 “오후 낮잠을 예찬하는 처칠의 연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훗날 백악관에 입성한 케네디는 점심 식사를 마친 후 45분가량 낮잠을 자곤 했다. 케네디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도 낮잠과 샤워로 긴 오후 시간을 나눠 사용했다.


어떤 이들에게 오후의 낮잠은 하루를 길게 늘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처칠의 수행비서였던 프랭크 소이어는 “완전한 휴식의 효과 덕분에 처칠은 하루를 둘로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일반인보다 정확히 두 배 정도 더 많은 일을 했으며 보통 8시간의 근무시간에도 두 배 정도 힘을 쏟았다.”라고 말했다. 오후 낮잠을 잤던 린든 존슨 역시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하루를 이틀로’ 사용했다. 린든 존슨은 오전 6시에 일어나 다음 날 새벽 2시 경에 일과를 마쳤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학도들에게 “오후의 짧은 낮잠은 필수다. 낮잠은 하루를 둘로 나눠주고 원기회복과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을 준다”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왜 낮잠이 이로운 걸까? 낮잠의 가장 뚜렷한 효과는 기민함을 증가시키고 피로를 줄이는 것이다. 약 20분가량의 짧은 낮잠은 고갈된 에너지를 회복시켜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이 아닌 규칙적인 낮잠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규칙적인 낮잠은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밤잠을 통해 뇌가 기억을 정리하듯 낮잠 역시 저장된 기억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낮잠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는 낮잠의 경계에 머무는 능력 덕분에 문학적 실험을 한층 더 탄탄히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잠의 지배로 들어가는 경계 지대를 벗어나지 않고 머물면서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깨어 있는 세상과 꿈의 세상 중간 지대에 머물 수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로통은 초현실주의 시인이라고 하는 작가적 위치를 1919년 ‘절대 고독과 잠의 언저리’에서 확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SF작가 윌리엄 깁슨도 “낮잠은 내 작업에 있어서 필수 과정이다. 꿈 꿀 때가 아니라 잠들기 직전의 그 상태, 정신이 깨어 있는 그 상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작가들은 선잠 상태, 즉,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 어딘가에 머무는 방법을 터득했다.


현대 사회의 대다수 문화권에서 낮잠은 하찮게 취급당한다. 낮잠은 어린 아이들이 유치원에서나 자는 것이며 어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특히 리더의 자리에 있거나 진지한 사고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걸맞지 않은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으며, 전 세계가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우리도 생체 시계를 무시한 채 쉼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리고 있다. 심지어 몸에서 제발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신호를 보내도 일을 멈추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낮잠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회복시켜주는 강력한 도구다. 창의력이 더욱 활짝 필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더욱 건강해지도록, 의식과 잠 사이의 경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디어의 숲을 탐험하도록 낮잠을 활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가 하는 일이 그만큼 긴박한 것인지. 그리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 습관

1950년대 후반, UCLA의 사회학자 버니스 이더슨은 어째서 몇몇 과학자들은 남달리 뛰어난 성과를 내는지 궁금했다. 많은 심리학자는 뛰어난 과학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파악했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한 가지 특징, 그들만의 인지적 우월함을 입증하는 이른바 ‘천재 유전자’는 찾지 못했다. 이더슨은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의 성과를 관찰하고, 일정한 주기로 인터뷰를 하고 테스트를 한다면 한 번의 인터뷰와 단기간의 연구로는 알아낼 수 없는, 성공한 과학자들의 고유한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더슨은 UCLA와 캘리포니아 공과대에서 경력이 중간 정도 되는 40명의 젊은 과학자들을 찾았다. 장기간 모두 자신의 삶과 직업에 대해 정기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심리테스트를 받는 데 동의한 사람들이었다. 모든 대상자는 최고의 대학원 과정을 밟은 장래성 있는 연구원들이었으며 장기간 추적 관찰이 가능한 젊은이들이었다.


40명의 과학자들이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 이더슨은 20년에 걸쳐 이들을 관찰했다. 몇몇 과학자들은 미국국립아카데미(미국의 과학, 기술 분야의 자문을 맡고 있는 학술단체로 영국 왕립학회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옮긴이)에 선발되고 학교에서도 직위가 올랐다. 한 명은 대통령 과학자문위원이 됐다. 4명은 노벨상을 받았다. 반면 나머지 과학자들은 이들에 비해 그다지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없었다. 어떤 이들은 진지한 과학 주제를 연구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연구를 지속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주로 행정가나 교사가 됐다.


이 집단은 처음 10년 정도는 비슷해보였지만 이후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더슨은 연구를 통해 그 이유를 밝혀야 했다.


이더슨의 연구 대상 그룹의 심리 상태는 매우 다양했다. 지능 검사 결과로 보면 대체로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뛰어난 과학자 기질을 지닌 이들은 있었다. 1985년 이더슨이 사망한 후 그녀의 오랜 동료였던 모린 번스타인이 연구를 계속 이어나갔고 여기에 번스타인의 아들 로버트 스코트 루트 번스타인과 통계학자 헬렌 가르니에가 합류했다. 세 사람은 기존의 인터뷰 질문에 새로운 질문 몇 가지를 추가했다. 추가된 질문에는 운동이나 야외활동을 하는지 여부도 포함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취미와 예술적 관심 분야는 무엇인지, 과학이 아닌 활동 중 경쟁을 해야 하는 활동은 있는지 여부도 물었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시간에 쫓기는 듯한 압박감은 얼마나 느끼는지도 질문에 추가됐다.


새로운 질문들이 추가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최고의 경력을 쌓은 과학자들은 “과학 못지않게 운동에도 대단히 높은 열의와 의무감을 보였다.” 그들이 선택한 운동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두루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최고의 과학자들은 테니스를 치고, 수영도 하며 하이킹과 스키를 즐겼다. 서핑과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대다수 과학자들이 규칙적인 산책도 즐겼다. 반면, 상대적으로 성취도가 적은 과학자 중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적었다. 간혹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팀 경기를 했던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운동은 포기했으며 새로운 운동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과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전도유망해보였던 존 풀턴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존 풀턴은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휴식이나 운동으로 풀던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술을 마셨다. 40대에 그는 고기능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결국 연구원 자리와 교수 자리를 잃었다. 그는 이따금 총명함이 돋보이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결국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한 채, 1960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성공한 과학자로 살아가다 보면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들이듯 산만한 요소들이 몰려든다. 과학자의 달력은 각종 마감과 위원회 참석, (자녀나 가족과의 일, 그리고 기타 집안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사의 업무 지시 등으로 빼곡했다. 하지만 훌륭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은 주로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서 등산이나 서핑, 암벽 등반, 테니스, 달리기 등을 했다. 그들은 머리는 좋으나 세상 물정 모르고 허약한 과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운동이 주는 장점을 활용했다.


과학 실험을 하는 데 근력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적이고 지적인 노동은 물리적으로 대단히 고되다. 한 번에 몇 시간씩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하고, 연구에서 행정으로 재빨리 주의를 전환시켜야 하며, 외과 수술실과 회의실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등 이 모든 일을 해내려면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은 온갖 압박과 좌절을 대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하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며 지적인 예리함과 창의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일과 휴식을 정반대 개념으로 여기거나 운동을 어쩌다 시간이 날 때나 하는 행위 정도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이더슨의 연구에 나온 성취도가 아주 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운동은 성공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산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줬다.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일을 해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건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쉬어가는 시간, 휴식기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7년마다 사무실 문을 닫고 1년간 휴식기를 갖는다. 사그마이스터는 어도비나 BMW같은 기업과 구겐하임박물관과 뉴욕현대미술관,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 그리고 루 리드와 브라이언 이노부터 롤링 스톤스와 제이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뮤지션들과 작업을 했다. 사그마이스터 하면 1999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광고 강연 포스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포스터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그마이스터의 맨몸에 칼로 새겨진 글씨들이 있다. 이 포스터 외에도 거대하고, 노동 집약적인 작품들이 있다. 암스테르담 광장에는 ‘강박으로 인생은 고달퍼지지만 작품은 좋아진다’라는 문구를 설치했는데 이 문구는 25만 개의 동전으로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 넘게 꼬박 작업해서 만든 것이다. 1만 개의 노란 바나나와 녹색 바나나로 만든 벽도 있다. 노란 바나나로 바탕 벽을 만들고 녹색 바나나로 ‘자신감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구를 썼다. 이 메시지는 바나나가 갈변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1999년, 사그마이스터는 첫 번째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디자인 성과는 훌륭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이는 그는 짓누르는 부담이 됐다. 그는 고객들에게 휴식기를 갖겠다고 알리고, 얼마간의 돈을 모아 2001년 작업실 문을 닫았다. 일이 잘못될 경우 모든 경우의 수도 생각했다.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잃을 수도 있고, 고객들이 떠날 수도 있으며, 디자인 업계가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휴식기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작업실 문을 연 사그마이스터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 디자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7년 동안 쉼 없이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난 후 디자인을 단순한 경력이나 직업이 아닌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고객들은 다시 그를 찾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휴식기가 그에게 신비스러움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더해줬다는 점이다.


휴식기가 그의 작품 활동에도 도움이 됐을까? 2005년 그는 토킹 헤즈 그룹의 앨범 ‘Once in Lifetime’ 디자인으로 그래미상을 받았고 내셔널디자인어워즈에서도 상을 받았다. 2008~2009년 두 번째 휴식기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데이비드 번과 브라이언 이노의 앨범 ‘Everything That Happens Will Happen Today’ 디자인으로 다시 한 번 그래미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미국그래픽아티스트골드메달협회에서 상을 받았다. 행동과학과 디자인의 조화를 탐구하고 행복에 대해 자신이 직접 실험한 내용을 전시한 ‘행복 전시회’는 휴식기에 구상하기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사그마이스터는 휴식기를 가진 덕분에 디자인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1년을 통째로 쉬어도 될 만큼 창의력이 풍부하고, 비즈니스 관계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으며, 경제적 상황이 안정된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경쟁이 치열하고, 변화가 빠른 업계에서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충분히 실행 가능하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사실을 보여줬으며 “여유가 없을 때일수록 뭔가 재미있는 일을 시도해보라”고 말했다.


작품 세계를 넓히기 위해 휴식기를 갖는 유명인사는 또 있다. 스페인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페란 아드리아는 분자요리(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 새롭게 변형시키거나 전혀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창조하는 것-옮긴이)의 아버지로, 매년 6개월은 레스토랑의 문을 닫았다. 아드리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엘 불리는 1990년대 호기심 많은 미식가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밤에는 50석이 꽉 찼고(주방 직원들도 거의 50명에 달했다) 계절별로 8,000명의 사람들이 찾았으며, 대기 목록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름을 올렸다. 아드리아는 엘 불리에서의 식사를 한 편의 공연 관람에 비유했다. 다재다능한 비요크가 알렉산더 맥퀸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아방가르드한 무대를 선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떤 요리는 맛을 내기 위해 거품과 얼린 수증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친숙해 보이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재료로 만든 요리도 있다. 가령 파스타가 아닌 오징어로 만든 라비올리도 있고 캐비어처럼 생겼지만 알고 보면 달콤한 멜론인 요리도 있다. 또한 그는 익숙한 요리를 구성 재료 단위로 해체하기도 했다. 가령 스페인 오믈렛은 거품처럼 부드럽게 만든 감자와 양파 퓌레, 계란 흰자위로 만든 사바이옹 소스(보통 사바이옹 소스는 계란 노른자로 만든다-옮긴이)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낸다. 스페인 요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올리브 오일은 액화질소로 순간 냉각해 감자칩처럼 얇게 썬 요리가 되기도 하고, 스프링처럼 감아 올린 요리가 되기도 한다. 필연적으로 인기가 많은 요리가 생겨났다. 일본 감자와 콩껍질로 만든 사라지는 라비올리는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조개로 만든 차는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아드리아는 새로운 요리 개발을 위해 1년 중 절반을 새로운 식재료와 새로운 조리법, 새로운 요리(dish)를 연구하는 데 보냈다.(여기서 dish는 요리뿐 아니라 말 그대로 식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엘 불리 레스토랑에서는 새로운 수저와 나이프, 접시, 유리잔 등을 선보이기도 했고 때론 어디서부터 음식이고 어디까지가 접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휴식기간을 갖자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그의 제자들도 그를 따라하게 됐고 덕분에 엘 불리는 2011년 문을 닫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됐다.


휴식기가 주는 가장 큰 보람은 활력과 재충전이다. 빌 게이츠는 오두막에서 하루에 18시간씩 독서에 푹 빠졌고, 어떤 때는 수요일 오전까지 바깥출입도 하지 않은 채 책에 몰두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그렇게 푹 쉬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적절한 상황하에 적절하게 활동적인 휴식을 취하면 훌륭한 재충전과 회복의 기회가 된다.


마지막으로 보통 휴식기라고 하면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이는 엔지니어나 패션디자이너나 마찬가지다. 일주일의 휴가도 기술적으로 잘 활용하면 충분히 좋은 휴식이 될 수 있으며 한 달간의 휴가는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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