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18
 
지은이 : 김난도 외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17년 10월




  • 해마다 다음 해의 소비트렌드 전망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방향타를 제시한 <트렌드 코리아>가 발간 10주년을 맞이했다. 출간 이전 전망을 발표한 것이 2년 먼저인 2007년부터이니 2018년이면 12간지를 모두 돈 셈이다.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격변의 시대에 10년을 한결같이 분석과 예측, 전망에 매달린 <트렌드 코리아>의 주요 키워드들은 단 1년만 머무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주요 현상으로 아직도 주목받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번 10주년 특별판에서는 지난 12년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끈 주요 동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가운데 9가지 메가트렌드를 도출해 소개한다. 


    트렌드 코리아 2018


    2007-2018 메가트렌드 코리아

    Monetary Value 과시에서 가치로

    지난 12년간 소비트렌드 키워드의 흐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지향점이 과시에서 가치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소비 일상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한국 소비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소위 명품의 인기가 한풀 꺾이고, 백화점이 유통 채널의 왕좌를 마트나 편의점에 내주는가 하면, 브랜드파워보다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인의 소비가 자기지향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1인 매체의 등장과 1인 가구의 확산이라는 배경에 힘입어, 집단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공동체 사회가 자기 자신이 먼저라고 여기는 개인 중심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가치지향적 소비가 확산하는 것은 소비자 정보 측면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이나 SNS상에 동료 소비자들이 남겨놓은 비교적 정확하고 중립적인 소비자 정보가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이 브랜드나 생산자의 후광에 의존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정보 환경의 변화는 소비가 가치지향적으로 변화하는 근원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 소비자들이 똑똑해졌다.


    Evolution of the Sharing Economy 공유경제로의 진화

    근대 이후 소비의 역사는 개인화의 역사였다. 전화기가 발명됐지만 한동안 그것은 마을에 한두 대 두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후 가정에 한 대씩 놓는 집전화의 시대에 이르렀다가, 다시 대부분의 개인이 혼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시대로 진화했다. 공동의 소비가 개인화한 것이다.


    이처럼 소비물이 개인화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자서만 써도 되니까 편리하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시장의 폭발적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후기 자본주의 경제 아래서 소비의 개인화는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플랫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화를 거스르는 공유경제의 흐름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고 앞으로도 계속 일반화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단순한 트렌드라기보다는 메가트렌드로 자리 매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가능해지는 것은 기술의 발전, 정책적 배려, 소비자 가치관의 변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접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기술적 진보에 대해 살펴보면, 양면시장의 플랫폼 경제가 공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공유 주차, 공유 자전거, 공유 주거 등 각종 공유 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으로서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공유의 인프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도 차츰 공유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남과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스스럼없이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형제나 친구와의 관계가 깊지 않고 개인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르는 타인과 1회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매우 익숙해진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공유의 대상을 찾는 작업을 편안해 한다. 익명의 타인과 식사를 하거나 방을 빌려주거나 심지어 생활을 함께하는 소셜다이닝, 에어비앤비, 셰어하우스 등은 이런 배경 아래서 가능해졌다.


    공유경제의 확산은 소비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의 질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생산 측면에서 보면 시장의 감소, 고용의 질 하락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을 바꾸어 접근하면 새로운 공유의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시장이 열려 있는 것과 같다. 늘 그렇듯이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2017년 소비트렌드 회고

    Cmon, YOLO! 지금 이 순간, 욜로 라이프

    여행 트렌드의 지형을 바꾸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에게 욜로는 주변을 환기할 여유와 그래도 괜찮다라는 위안을 선사했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그 와중에 돈을 쓸 곳과 쓰지 않을 곳을 명백히 나누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돈을 쓸 곳으로 정해놓는 기준 역시 욜로였다. 남들은 이해 못할지언정 내 생활에 기쁨을 주거나, 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비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타인을 의식하던 한국인의 소비 행태가 자기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명품백 같은 과시형 아이템을 득템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이제는 SNS에 공유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단연 여행이었다. 욜로 열풍은 장기 여행, 세계 여행, 오지 여행 등 다양한 유행을 만들어내며 여행 트렌드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았다.


    막연한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찾다

    전셋집이라도 예쁘게, 하루라도 폼 나게 살아본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전셋집조차 욜로족에게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무대가 되었다. 세 들어 사는 집 꾸며봤자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기성세대와는 생각이 다르다. 단 하루를 살아도 품격 있게 살고 싶은 욜로족들은 2년 후면 나가야 하는 남의 집이지만, 그 2년만큼은 내 집이나 다름없기에 벽지와 바닥재, 페인트칠과 현관문 등을 본인의 취향껏 꾸미고 바꾸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다.


    하루라도 폼 나게 살고 싶어 하는 욜로족들의 극단적인 취미도 화제가 되었다.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딱 하루 슈퍼카를 렌트하는 데 쓰고, 그 하루 동안의 기분을 누리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슈퍼카 렌트족이 등장한 것이다. 경제 수준에 상관없이 본인이 모든 돈으로 하루의 행복을 맘껏 누리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고 누리는 것이기에 본인에게는 당당한 취미 생활이라지만 수입을 넘어서는 소비가 사치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은 탕진잼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욜로족의 부정적인 단면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재를 즐기는 작은 사치, 디저트/편의점 맥주 시장의 급성장

    욜로족의 소소하고도 특별한 소비 행태는 탕진잼에 이어 작은 사치로도 발현되었다. 밥값은 줄여도 디저트는 호화스럽게 즐기는 것이다. 고급 디저트를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비주얼 경쟁이 붙은 디저트 시장은 인스타그램의 인기와 함께 급성장했다.


    미래보다는 지금을 위한 소비에 충실한 욜로족들, 이들이 현재를 즐기는 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서 고급 수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이른바 편맥족이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 편의점에서 즐길 수 있는 맥주의 가짓수도 매우 다양해지고 퀄리티도 높아졌다.


    욜로 라이프, 세대를 넘나들다

    백세 시대에 걸맞게 4050세대도 욜로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 비해 구매력이 있는 이들은 레저나 문화 관련 상품 시장에서 이미 핵심 고객군으로 부상했다. 2017년 캠핑 시장의 경우 40~50대의 텐트 구매량은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중년보다 청년에 더 가깝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젊은 40~50세대는 헬리캠이나 드론과 같은 고가의 취미 장비 구매에도 관심이 많다.


    욜로 트렌드는 보험 업계까지 확산되었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자녀 걱정보다 본인의 노후 생활비 확보가 더욱 중요해진 장년층을 대상으로 예금처럼 필요에 따라 연금이나 생활비로 빼서 쓰는 것이 가능한 종신보험들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이러한 보험은 경제활동기에는 사망보험금의 역할을 하지만, 은퇴후에는 생활비로 용도를 전환해 지불받을 수 있다. 가족을 위한 목돈보다는 자신을 위한 생활비를 보장받고 싶어 하는 가입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보험이 개발된 것이다. 이른바 욜로 보험으로 불리는 이 같은 상품은 실속형 보험의 상징이 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욜로 라이프는 세대를 넘어 소비시장과 현대인의 가치관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2017년의 욜로족은 불안한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희생적이고 비장한 각오보다는 소소하게 값진 하루하루를 보내는 쪽을 택했다. 욜로를 충동구매의 확산으로 비판할 문제만은 아니다. 욜로는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No One Backs You Up 각자도생의 시대

    세상에 믿고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달걀, 생수 등 기본 식재료에 대한 불신 커져

    08이레, 11송암, 14소망, 14인영, 08SH, 13우리, 13대산, 14해찬… 마치 암호 같은 이 번호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달걀의 난각 코드다. 소비자들은 구매한 달걀이 이 난각 코드에 해당하는지 하나하나 살펴봐야 했다. 닭에 기생하는 벼룩이나 진드기 등을 없애는 데 쓰는 살충제가 달걀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도 살충제 달걀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같은 살충제는 미국 환경보호청에서 발암물질로 분류된 것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 중 하나인 달걀이 문제가 되면서 식품 시장 전반을 향한 의심과 불안이 가중됐다.


    이러한 비상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대응은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살충제 달걀 생산 농가의 명단과 숫자를 잘못 발표한 것이다. 또한 1973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된 DDT가 친환경 양계농장 두 곳에서 검출됐는데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아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비자들의 걱정이 커졌다.


    먹거리 안전 문제는 도처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와 급기야 건강에 직결되는 먹는샘물에까지 위험이 뻗쳤다. 충청샘물의 경우 악취가 심하게 난다는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어 환불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크리스탈은 발암물질인 비소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어 소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병원성 세균인 녹농균, 불순물 알루미늄, 발암물질 브론산염 등 각종 수질오염 성분들이 과다 검출됐지만 해당 제조사들에 대한 처벌은 경고 조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화학제품의 끊임없는 습격

    생활화학제품 사고도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생필품인 생리대에서 생식 독성과 발암성을 지닌 유해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발표가 났다. 논란이 거세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9월 28일 생리대에 함유된 휘발성유기화합물 검출량이 인체에는 유해한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발표를 신뢰하는 소비자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생리대 안전 문제로 인한 여성들의 불안감은 전체 생리대 판매 감소로 이어졌다. 덩달아 유아 기저귀에 불안감도 높아져 해외 직구를 통해 외국산 생리대와 친환경 기저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2017년 1월, 물티슈 일부에서도 허용 기준치를 초과하는 메탄올이 검출되어 어린아이를 둔 주부들의 심장이 또 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심지어 2월에는 아기 기저귀 제품에서 살충제 성분인 다이옥신이 검출되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 외에도 치약, 비누, 면도크림, 샴푸, 공기청정기 등 생필품 제품에서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케미컬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확산되었고, 소비자가 스스로 알아서 제품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체크슈머들도 늘고 있다.


    셀프 부양의 시대가 온다

    노년층에게 가장 절박하게 다가온 각자도생

    각자도생이라는 이상 현상이 재난이나 소비자 식품 안전 분야를 넘어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 관찰되는 거대한 증후군이 되고 있어 보다 장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향후 혼자 사는 노인들의 부양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노인 가구의 60% 이상은 자식과 따로 살고 있다. 자식이 부모와 따로 살면서 부모를 돌보는 방식으로 부양의 모습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셀프 부양의 개념이 필연이 되고 있다.


    각자도생을 넘어서기 위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때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미 노인 부양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자식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정부가 요양원 시설을 늘려왔지만, 그 수는 노인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탓에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비인가 요양원까지 생겨나고 있다. 반면 독일은 부모의 부양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진다. 독일 가정의 70%는 자식이 부모를 집에서 모시지만 부담하는 비용이 거의 없다. 정부가 가족에게 최대 700유로의 부양비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사회적 지원을 통해 셀프 부양이 가능해지면 가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경제의 양적 성장을 넘어서 행복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은 그동안 많이 성장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주관적 만족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세부 지표에서는 무엇보다 가족/공동체 지표가 10년 전보다 악화되었다.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이혼과 사별, 기러기 가족의 급증이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약화시켰다. 이런 때일수록 신뢰 회복을 위해 작은 연대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각자도생을 넘어 개개인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관용과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2018년 소비트렌드 전망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스페인어 케렌시아는 바라다라는 뜻의 동사 querer(케레르)에서 나왔다.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란 의미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기장의 특정부분을 머릿속에 표시해둔다. 싸움소는 그곳을 자기 스스로 케렌시아로 삼는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며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해 에너지를 모은다. 케렌시아는 회복과 모색의 장소다.


    어디 싸움소뿐이랴! 매일매일의 삶의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현대인들 또한 케렌시아 같은 도피처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번아웃 증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6년 기준 국내 직장인 연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의 2,246시간에 이어 가장 길었으며 OECD 평균치인 1,763시간보다 무려 306시간이나 길었다. 연령대로는 20대(84.1%), 30대(90.3%)의 체감 피로도가 다른 연령대보다 높게 조사됐다. 젊은 세대의 피로도가 고연령층보다 높게 나타나 휴식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24시간 분주히 돌아가는 경쟁사회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절대휴식을 취할 수 있는 피난처가 절실해졌다. 대한민국의 현대인들은 과연 저마다 어떤 케렌시아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케렌시아의 다양한 형태

    도심 속 패스트힐링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휴식을 누릴 시간도 넉넉지 않다. 마치 패스트푸드를 선택하는 것처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패스트힐링이 현대인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패스트힐링 업체로는 도심 속의 수면카페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해먹 위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리클라이너와 안마의자를 이용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비록 짧은 휴식이지만 수면부족이 만성화된 현대인들이 간편하게 일상의 활력을 재충전할 수 있어 그야말로 도심 속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산소캡슐 안에 들어가 무공해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카페가 등장할 만큼 빠르게 힐링할 수 있는 방식과 공간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패스트힐링 서비스는 주요 이용층이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크지 않아야 한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20대의 힐링카페 건당 이용액은 평균 1만 9,623원이었고, 1회 방문시 이용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이었다. 이용자 수도 급증해 2017년, 수면힐링 카페 이용자 수는 전년대비 75% 늘었다.


    힐링카페는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취향이나 취미와 결합되기도 한다. 낚시 카페는 도심 속 실내로 들어오면서 계절에 관계없이 즐기는 패스트힐링 아이템으로 부상해 2014년 대비 1,145%라는 놀라운 급성장을 기록했다. 만화카페도 어린 시절 만화방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대인의 변화된 취향을 저격한 독립된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만화카페를 찾는 이들은 만화를 보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쉬기 위한 목적도 강하기 때문이다. 한방 카페도 인기다. 이곳에서는 한방차와 허브티를 마실 수 있고 자기 몸에 맞는 환약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으며 안마기와 찜질팩도 이용할 수 있다. 카페들이 다양한 요소와 결합되어 고객들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창조적 체험 공간으로서의 케렌시아

    케렌시아에서는 그저 조용히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과 휴식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만들면서 힐링을 받기를 원한다. 자기만의 공간에만 침잠해서 힐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을 휴식하고 재충전하는 것이다. 체험카페가 대표적이다. 체험카페는 드론/오락/플레이스테이션/VR 등의 기기를 즐기며 보다 액티비티한 감정을 재충전하는 곳이다. 청춘문화싸롱처럼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는 등 문화체험 활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들도 많아지고 있다.


    도심의 케렌시아는 활동적 체험을 넘어서 창조적 예술 활동과 결합되기도 한다. 휴대폰 케이스를 직접 제작해본다던가 나노블럭이나 팔찌 등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는 DIY 카페가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미니어처와 클레이 핸드메이드 공방을 겸한 카페에서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하는 작은 창작을 통해 심리치유와 힐링을 얻는다.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와 대면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새로운 힐링 활동이 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치료가 대표적이다. 그 자체로 창작활동이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정서적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향후에는 이러한 예술적 활동과 결합된 창조적 힐링 방식이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사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케렌시아는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알고 자기만 점유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공간, 그곳에서 싸움소가 힘을 비축하고 다음 전투에 대비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일상이라는 전투에 대비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케렌시아가 필요하다. 골목길 트렌드가 부상한 것도 위치기반 정보가 발달해서이기도 하지만 복잡하고 분주한 도시 속에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지트와 같은 길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틈을 내 찾아가는 공간은 더욱 달콤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고궁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작은 책방이 되기도 하며, 혼술하는 이자카야,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코인 노래방이 자기만의 케렌시아이기도 하다.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사무실 책상이 케렌시아가 되기도 한다. 사막 같은 힘든 직장생활 속에서 내 자리만이라도 오아시스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젊은 직장인들이 혼밥이나 혼술하면서 자기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도시공간의 환경도 현대인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빛과 소음, 붐비는 자동차, 부대끼는 사람들.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피로감은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여기에 끊임없이 울려대는 SNS메시지는 우리의 뇌를 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대두되는 것도 과부하에 지친 현대인들이 끝나지 않는 일로부터 로그아웃하려는 열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초연결이 이시대의 화두인 동시에 완전한 단절 역시 사람들이 절실히 원하는 카운터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1인 가구, 1코노미의 증가로 인해 자신만의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지는 것도 공간 비즈니스가 부상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은 전통적으로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을 중심으로 개인의 방이 그 주변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에서 공간 비즈니스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공간 비즈니스의 개념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제3의 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휴식이 절실한 현대인들에게 자기만의 안식처와 아지트를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현대인들의 필사적인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시장의 원동력이 될 이 평화롭고도 강렬한 공간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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