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만이 무기다
 
지은이 : 시라토리 하루히코(역:김해용)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17년 09월




  • 『초역 니체의 말』의 저자이자 일본 최고의 지성인으로 손꼽히며 젊은이들 사이에 독서 열풍을 불러온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말하는 읽기와 생각하기의 모든 것 『지성만이 무기다』. 학창 시절 교과서의 문장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공부 실력이 바닥이었던 저자는 어떻게 유럽 최고의 지성들이 모이는 베를린자유대학교에 들어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지성만이 무기다


    읽기에서 시작하는 공부 - 생각하고 이해하고 의심하는 기술

    생각하는 것은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읽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행위다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간단한 일 같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생각할 재료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책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읽고, 읽어서 알게 된 것으로부터 자극을 받아야 한다. 자극 없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안이하게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는 연습도 할 수 없다. 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일상적인 판단이나 태도도 기존의 습관을 반복하거나 누군가를 모방하는 생활 방식을 취한다. 의외로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책에서 무엇을 찾아낼 것인가

    독서는 생존 욕구는 아니지만 뇌의 굶주림을 채워 준다는 의미에서 생존 욕구에 가까울 수 있다. 뇌의 일부는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뇌가 태어나면서부터 논리적인 문법을 갖추고 있는 이유가 말이나 문장을 음미하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옛날에는 어땠을까.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금처럼 책이 없었다. 고대에는 구전과 전승에 의해 부족의 역사가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귀에서 몸 안으로 들어왔다. 고대인들은 서조로부터 이어 온 이야기를 그저 재미로만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역사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간파했을 것이다. 간파는 멍하니 듣기만 하는 태도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말이나 문장 속에서 어떤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행하는 적극적인 작업이며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책은 그저 놓여 있는 상태만으로는 종이 다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면 문자가 연이어 나온다. 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 봤자 경전을 외우거나 시를 낭송하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아는 단계에 이르러야 우리의 머리가 작동한다.


    독서가 수종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작업인 이유는 반드시 뇌의 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간파한다는 것은 더욱 고도한 작업이다. 독서가 인간의 머리를 활발하게 만드는 것은 이 간파라는 형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상을 완성한 메모의 기술과 노트 사용법

    다채로운 사상을 탄생시킨 니체는 어떻게 메모했을까

    니체는 스위스의 바젤 대학을 그만두고, 그로부터 10년 동안 여름이면 스위스, 겨울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머물며 무수히 많은 원고를 썼다. 그는 그 고독한 10년간 문득 떠오른 짧은 문장을 작은 종잇조각에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기록했다. 그 메모의 집적으로부터 그만의 다채로운 사상을 끌어냈던 것이다.


    노트는 좌우 페이지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노트 등에 무언가를 쓸 경우 처음에는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만 기입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기입하지 않는다. 뭔가 나중에 기입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한다. 즉 왼쪽 페이지에 기록한 메모에서 촉발되어 발전한 사고에 대한 문장, 그 메모와 관련된 사안, 그 메모에 대한 주석, 관련 도서 등을 오른쪽 페이지에 기입한다. 따라서 왼쪽 페이지는 기원, 오른쪽은 그것의 확대, 발전, 파생, 주석, 보충이 되는 셈이다.


    눈에 잘 띄는 장소에 펼쳐 둔다

    메모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에 띄어 사고의 발상이나 발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니 눈앞에서 사라져 까맣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나로 묶여 있는 수첩이나 노트가 아니라 종잇조각에 메모하는 방법을 취한다면 그 메모를 쓰레기로 착각해서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에 잘 띄는 장소에 펼쳐 놓아야 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시야 속에 두지 않으면 다음 전개나 발상을 이어 가기 어렵다.



    읽는 것이 무기가 된다 -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식과 내적인 힘을 늘리는 지름길, 정독

    다독을 자랑하기보다 한 권을 정독하라

    책을 많이 읽었다고 양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한 권의 책을 시간을 들여 정독해야 한다. 정독한다는 것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에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펼치고, 인명이 나오면 인명사전을 펼치며, 모르는 도구나 식물이 나오면 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용어의 의미를 하나씩 확인한다. 그러면서 책의 여백에 기록하고, 표현의 의미를 조사하며, 종합적으로 문체, 즉 문장의 특징을 토대로 작성된 글의 사상적 핵심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시대 배경까지 캐내는 것이다.


    정독으로 새로운 힘이 몸에 밴다

    정독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우선 하나의 일과 진득하게 마주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배양해 준다.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를 얻는다는 목적, 이를테면 시험에 합격한다, 자격을 취득한다, 돈을 번다 등의 목적을 위해 공부를 한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주안점이기 때문에 공부는 시험에 나올 법한 사항을 이해하고 암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유형의 공부는 목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도구일 뿐이다. 그 자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배우는 것이 늘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이라면 그것은 이미 허무주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방식이 몸에 깊이 배어 버리면 무슨 일을 해도 불만족과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어쨌든 인생의 대부분의 것이 수단이나 도구로 변해 버린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정독으로 변화시킨다

    뭔가 비결을 원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과거 한 번도 자신만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홀로 시작하는 정독은 과거 자신의 안이하고 자발적이지 못했던 일 처리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비결도 없고, 목표도 없이 홀로 어둠 속을 걷는 과정이다. 보수도 없다. 그래서 헛된 노력이나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행위다. 그래도 역시나 정독에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 본 적 없었던 정밀한 독서 방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크게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읽기 어려운 고전은 건너뛰며 읽기로 시작한다

    질이 높은 책이란 어떤 종류일까. 거기에 포함되는 첫 번째가 세계적인 고전이다. 그런데 대부분 고전을 읽지 않는다. 읽기 힘들다는 이유가 가장 큰 듯하다. 고전이 너무 두꺼워서 읽기 힘들다면 몇몇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부분적으로 읽다가 점점 흥미가 생기면 그 부분이 있는 전체를 읽는다. 그 챕터가 재미있으면 다른 재미있을 것 같은 챕터를 골라 읽는다. 이런 식으로 건너뛰어 읽다 보면 마침내 전체를 읽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고전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록의 해설 같은 것을 읽으면 훨씬 좋다. 미리 책의 해설을 읽었는데도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구절이나 용어를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꼼꼼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조용한 장소에서 시간을 늘리는 방법 - 공부를 위한 환경에 대해

    가장 좋은 서재는 자신의 내면에 있다

    언제 어디서든 최적의 장소로 만드는 방법

    서재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하고 차분히 책장을 넘길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코니나 다실, 거실과 나무 그늘, 침대, 복도 모퉁이 등 어떤 곳도 일시적으로는 서재가 될 수 있다. 이 본질을 좀 더 파고들면 서재란 어느 조건이 충족된 환경을 의미한다. 그 장소에 있으면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몰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므로 환경이라고는 해도 물리적 상태가 아닌 자신의 내적 환경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즉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일 때 자신이 있는 곳이 서재가 된다는 말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흥분하지도 않고 감정적으로도 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이 세상의 소음이나 타인의 말이 수선스럽게 들어오지 않는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강한 원망이나 패배감 같은 심리적 고통도 없다. 요컨대 몸과 마음이 조용한 상태다. 그런 상태라면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서재가 된다. 이 서재에서 생산적인 작업이 나온다.


    시간을 늘리는 기술

    1. 취미를 버린다

    공부를 하기 위해 좀 더 시간을 쓰고 싶다면 취미를 버려야 한다. 취미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 도피의 한 형태다. 혹은 지인을 늘려 고독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력서의 칸을 채우거나 누군가에게 떠벌릴 만한 취미는 거의 대부분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활동에 불과하다.


    2. 망상을 버린다

    망상이나 번뇌는 우리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거나 아무 일도 처리하지 못하게 할 만큼 무력화시킨다. 이만한 낭비와 상실이 또 있을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맴돌고 있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의 반복도 당연히 가난으로 직결된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만 비로소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하루 시간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망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 망상을 버리면 그만큼의 시간이 생기고, 그 시간을 본래의 일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3. 시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가장 간단하게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은 시간을 신경 쓰거나 정해진 기한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여 분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계획한 시간 안에 맞추면 된다는 생각은 더욱 나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어떤 장애도 없이 계획한 모든 것이 술술 기계적으로 처리될 거라는 망상을 현실로 착각한 탓이다.


    애당초 자신을 위해 시간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마음속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할지언정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미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즉 시간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행동이 앞선다. 마치 시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다 보면 영원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도, 하고 있는 일이 현실 속에서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열중하고 있어 심리적인 절박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많고 적고는 처음부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시간을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는 시계를 보지 말 것, 시간을 정해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말 것,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으면 그대로 집중하면 되고, 쉬고 싶을 때는 쉬고 배고프면 식사를 하면 된다. 요컨대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자신의 자발적인 의욕에 순순히 따르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성인의 공부는 인생을 가슴 떨리게 한다 - 하고 싶은 일과 재능 그리고 지성

    성인의 공부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왜 나이를 먹을수록 공부가 어려워지는가

    왜 어렸을 때는 공부하는 게 쉬운데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워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생활환경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늘어날수록 고정관념도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자신의 내부에 층층이 쌓여 있는 고정관념이 새로운 지식이나 사고방식의 흡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이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진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이란 자신의 의식 상태다. 놀이에 열중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태, 즉 자신의 능력과 감성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가 행복이다. 애당초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 자체가 인간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혹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 자체가 암유일 것이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상식과 고정관념, 법률 등은 좁은 사회 환경에서 원만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용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활에까지 적용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 버리는 순간, 자신의 감성과 능력을 어두운 곳에 처박아 놓는 무거운 덮개가 되고 만다.


    우리 어른은 공부를 할 때 보이지 않는 길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종래의 길로, 사회로부터 주어진 사안 혹은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형의 공부다. 이는 자신의 머리를 기성의 주물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상식과 고정관념으로 만든 기성의 주물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와 자신의 감성과 능력으로 터벅터벅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이 황야의 길이야말로 한없이 피곤하다. 강제도, 기준도, 윤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만이 새로운 땅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관점과 표현 방법에 도달한 유명한 예술가도, 과학자도, 혁신자도 모두 자신만의 황야의 길을 걸어 왔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

    모험, 거기에서 일반적인 지식이 생겨난다

    19세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파우스트 박사는 다양한 학문에 능통했지만 세계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지성의 좌절이었다. 그래서 파우스트 박사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하여 청년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며 연애를 하고 결투를 하고, 황제로 추대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결국 바다를 메우는 대사업에 뛰어든다. 그 결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그 아이를 죽게 만들고, 다시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하거나 실망에 빠트린다. 최후에는 실명하여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려는 순간 과거 사랑했던 여성의 영혼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희곡에서 전개되는 파우스트의 생애는 비극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 인간의 생애치고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 왜냐하면 인생도, 세계도 지성으로만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몸소 체감하는 차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데다 의기양양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한계를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모험에 도전했다.


    현대인은 파우스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에서 필요 사항을 필요한 만큼만 암기하고, 지식을 다음 사회적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며, 높은 임금과 안전, 보호를 요구하는 한편 교활함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비루한 욕망의 일부분을 음란한 장소에서 남몰래 맛보고 주식과 연금을 계산하면서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 삶의 방식은 땅속에서 사는 벌레나 매한가지다. 자신의 주변만 주된 관심사로 여기며 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에는 전체를 내려다본다는 개념이 없다. 사고방식의 비상도, 행동의 모험도 없다. 손 안의 작은 사안만 좇는 스페셜리스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날아다니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는 될 수 없다.


    우리 각자의 공부도 마찬가지다. 뭔가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공부는 고역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도중이라도 자신의 내부와 일치하는 호기심에 따라 공부의 깊이와 범위를 넓혀 간다면 공부는 모험가 같은 양질의 떨림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렇게 얻은 제너럴한 지식은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응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 철학 사상과 종교

    독학하는 힘에 대해

    기력을 단련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

    독학의 초기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물리적인 힘, 즉 근력이다. 적극적인 기력을 만들어 내는 근육이 충분하지 않으면 공부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식사, 영양, 운동, 수면 등이 필요하다. 그런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공부를 위한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피곤할 때는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체력이 있어도 극심한 슬픔, 초조, 불안, 공포가 마음속에 있으면 독학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인생이므로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맞서 하나하나씩 자신의 힘과 인내로 극복해 가야 한다. 즉 정식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강인하지 않으면 독학은 어렵다.


    혼자만의 풍요로운 시간

    독학이란 세상에서 통용되는 사안의 틀 밖에 서는 일이다. 세상 바깥쪽에 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독학을 하면 결국에는 세상의 밖에 서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독학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바꿔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혼자 있는 동안은 자신이 가장 흥미를 가진 사안에 몰두할 수 있다. 또한 책을 통해 동서고금의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토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학하는 사람의 머릿속은 조금도 고독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집단으로 존재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풍요롭다.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거의 모든 사안을 알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면 될까. 이 물음에 대해 나는 무엇이든 마음대로라고 대답한다. 혹은 거의 모든 사안을이라고 진지하게 대답할 것이다. 거의 모든 사안을 공부하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이 곤란해하는 것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분야의 책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안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러는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사안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종교를 공부하기 시작해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리나 역사, 정치, 경제, 철학, 과학까지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공부하든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광범위한 사안을 알아야 할 필요가 생긴다. 혹은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공부한 보람이 없다.


    교양이란 높은 곳을 향해 변모해 가는 것

    교양이란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여전히 느슨하고 애매하다. 교양이라는 이 미묘한 말은 독일어의 빌둥(Bildung)을 번역한 것이다. 빌둥은 빌덴(Wilden)이라는 동사에서 파생했다. 짓다, 만들다, 도야하다, 양성하다, 형성하다를 뜻한다. 즉, 자신이 높은 곳을 향해 변모해 가는 것이 교양, 즉 빌둥의 본래 의미다.


    단순히 무엇을 위한 공부는 결코 교양이 되지 못한다.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격을 취득해도 그 사람이 대단한 인물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교양이라는 자기 변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통해 여러 분야로 넓혀 갈 수 있는 공부를 함으로써 변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양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공부야말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재미있다. 자신이 변해 가는 공부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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