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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저   자 : 유시민
출판사 : 생각의길
출판일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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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인생은 나의 것

벌써 35년 전 일이다. 봄비가 차분하게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대학 기숙사 창가에 서서 관악산을 바라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막함과 씨름하고 있었다. 얼마나 막막했는지, 그때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스무 살이 된 젊은이들 중에도 틀림없이 막막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깊게 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대학 교양과목 강의는 고등학교 수업과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정신을 깨우기는커녕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치학 강의에는 한국정치가 없었고 경제학 강의에는 한국경제가 없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대학 강의실은 비판적 지성이 자라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강의를 듣느니 혼자 책을 읽는 게 차라리 나았다. 나는 혼자 남아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었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어 읽었지만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내 문제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걸 하지 못한다면 삶이 깜깜해질 것 같은,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제사를 지내러 큰집에 가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조상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문의 영광'에 대한 강의가 끝나면 어른들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모범 답안은 판사나 검사였다. 그와 다른 대답은 어른들을 실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판사가 되겠다는 모범 답안을 말하곤 했다. 어른들은 매우 기꺼워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는 공부가 좋았다. 초등학생 때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그리고 만화와 축구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는 축구와 핸드볼, 추리소설에 빠졌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고문(古文)을 배우면서 공부도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신라 향가나 고려가요, 이육사 선생과 만해 선생의 시를 암송하는 것이 쉽고 재미있었다. 그때는 대입 본고사가 있어서 교과서 말고도 다른 책을 읽었다. 작문 시험에 대비하려고 읽은 문학평론이나 논설문이 재미가 있었다. 김소운 선생의 《목근통신》이나 이어령 선생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같은 수필집을 읽으면서 언어라는 게 무척 신기하다고 느꼈다. 대학에 언어학과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거기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입 원서를 쓸 때 아버지가 영문과를 권하셨다. 영문학을 하라는 게 아니었다. 영문과에서 영어를 익히고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을 가 서양철학을 공부한 다음, 돌아와 동양철학을 더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오만해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철학을 배우고 동양철학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동서양 철학을 통합하는 학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권고를 외면했다. 그때는 인생도 세상도 잘 몰랐다.


부모님에게 자식을 유학 보낼 만한 경제력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아주 잘하면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나는 별 돈 들이지 않고 빨리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법학과가 포함되어 있던 사회계열을 선택했다. 시험을 잘 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선택이었다. 환갑을 눈앞에 두었던 아버지는 이상주의를 추구했는데, 고작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현실주의를 택한 것이다. 법학과에 가서 사법시험을 볼 작정이었다. 그때 아버지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깊게 사랑하셨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열아홉 살의 나는 도전하지도 않고 좌절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목표도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았다. 마구잡이로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때그때 눈앞에 닥쳐온 일을 나름 성실하게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설렘과 환희로 빛나야 마땅한 청춘을 그렇게 아무 흔적 남기지 않고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일만 하는 사람, 권력을 좇는 사람, 신을 섬기는 사람 등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 대해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싶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와 기쁨을 느끼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 자신도 더 훌륭해져야 한다.


여태껏 오로지 남을 위해서 산 건 결코 아니었다. 세상을 위해 살았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인생은 훌륭할 수 없다는 관념에 눌려서 산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진정 원하는지 깊이 들여다보질 않았다. 무엇에선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때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누구에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누군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도덕주의적으로 보든 실용주의적으로 보든 좋은 생각이 아닌 것이다. 내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떳떳하게 그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 싶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존엄한 죽음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자식을 낳거나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한 채 늙고 병들고 죽는다. 세상은 커다란 저수지와 비슷하다. 위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유입된다. 아래로는 죽음이 흘러나간다. 그러나 유입되는 생명과 사라지는 생명은 똑같은 물방울이 아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저 새로운 생명일 뿐,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미래의 이상을 보면서 매순간 현재를 산 주체가 아니다. 막 태어난 아기에게는 아직 삶의 스토리가 없다. 살아가면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강을 이루는 물방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인생 스토리를 썼던, 세상에서 하나뿐이었던 자아들이다. 자신의 죽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미리 준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식이 꺼지려는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자기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면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사람은 대부분 병에 걸려 죽는다. 압도적 다수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당뇨병, 폐렴, 고혈압, 간 질환 등의 질병으로 사망한다. 질병 다음은 자살이다. 2011년 한 해 동안 1만 6천여 명, 하루 평균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자살자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언론 보도만 보면 사람들이 온통 자살, 범죄, 교통사고, 자연재해, 산업재해로 죽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살기 때문에 이례적인 죽음을 크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하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죽음이 사람들의 감정을 크게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 병에 걸려 죽는다.


대한민국에서 최근 태어난 남자아이는 평균 78년, 여자아이는 평균 84년을 살 전망이다. 40년 전에는 59세와 66세에 불과했던 '출생시 기대여명'이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은 좋은 일인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장수는 기회인 동시에 위험이다. 운이 없거나 잘 대비하지 못하면 재앙이 된다.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장수가 축복이 된다. 무엇보다 먼저 삶이 의미가 있고 사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장수는 또한 건강해야 축복이 된다. 건강이 나쁘면 행복하게 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는 돈이 있어야 장수가 축복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살아남는 것, 오래 사는 것 그 자체가 삶의 목표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사망자의 절대 다수가 노환과 만성 질병으로 서서히 죽는다. 죽음은 무작정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차분히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비천함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도모할 수 없을 때는 존엄한 삶을 생각하기 어렵다. 죽음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처럼 다가올 때는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존엄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해야 마땅한 세상이다.


나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다. 어떻게 죽는 것이 제일 좋을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을까? 선택하기 어렵고 보장할 수도 없다. 그래도 최대한 소망과 가까운 방식으로 삶과 작별하고 싶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무슨 이유에서든 내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가정하자. 나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 누가 대신 결정해주어야 한다.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해두지 않으면 나는 내 뜻대로 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드물지 않게 생긴다.


2008년 2월 연세대병원에서 폐질환 검사를 받던 고령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 병원 측은 의학적 사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인공호흡기를 대고 혈관으로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했다. 심장이 멈추면 응급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서 다시 살려놓았다. 입원 당시 환자의 나이는 일흔여섯 살이었다. 언론은 이 환자를 가리켜 '김 할머니'라고 보도했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존엄사' 논쟁에서 큰 획을 그었기에 오래 기억할 가치가 있다. 정확하게 기록해두자. 그 할머니 성함은 김옥경이다.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병원에 요구했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의사와 병원은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도덕적 법률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명이란 생물학적 의학적 개념이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이어지면 환자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자녀들은 달리 생각했다. 그것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인위적 영양 공급과 응급 심폐소생술 시행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한편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본안소송도 냈다. 기나긴 소송 끝에 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만장일치로 확정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가 되었다.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떼어냈다. 그런데 김옥경 할머니는 곧 사망할 것이라던 의료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스로 호흡하며 무려 201일을 견딘 끝에 2010년 1월 10일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흔히들 이 사건을 '존엄사의 첫 사례'라고 한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법원이 인정한 존엄사의 첫 사례'일 뿐이다. 김옥경 할머니는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사에 대해 어떤 의사 표시도 할 수 없었다. 평소 고인의 인생관을 잘 아는 자녀들이 대신 결정권을 행사했다. 김옥경 할머니가 만약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유족들은 판단했다. 법관들도 그랬지만 국민 여론도 대체로 유족들의 결정에 공감했다. 그런데 일부 종교계 인사들은 이 결정이 생명의 존엄성을 해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만약 그대가 김옥경 할머니 또는 그 자녀들과 같은 상황에 봉착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나는 유족의 선택을 지지한다. 생명은 존엄하다. 그러나 죽음 역시 존엄해야 한다. 김옥경 할머니 유족은 생명과 죽음 가운데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존엄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 할머니의 사례를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보자. '나는 혼자 힘으로는 숨을 쉬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입술 한번 달싹할 수 없다. 의사들은 인공호흡기와 혈관주사로 내 몸에 산소와 영양을 넣어준다. 심장이 멈추면 전기 충격을 주어서 다시 뛰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의식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이해한다.' 이렇게 가정하자.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내 선택은 단 1초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다. 감각은 죽고 의식 혼자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자아는 감각과 정신, 욕망과 이성의 통일이다. 운동이 멈춘 몸에 존재하는 의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게다가 연명치료에 드는 비용이 숨을 쉴 때마다 불어날 것이다.


의식이 있어도 그러할진대, 아예 의식 자체가 없다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경우 의학적 연명치료는 단순히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욕하고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옥경 할머니에 대해 법원이 '존엄사'를 허락했고, 이 결정이 큰 무리 없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볼 때, 죽기 위해서 국가나 사회의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본질적으로 나의 자유이며 권리이다. 국가는 나를 죽일 권리가 없으며 살라고 명령할 권리도 없다.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삶에 대해서든 죽음에 대해서든 국가나 사회가 나의 의사 결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자기 방식대로 죽는 것은 만인에게 주어진 자연법적 권리이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


늙으면 일을 하기 어려워진다. 근력뿐만 아니라 일반 지능과 판단력, 민첩성, 집중력이 모두 떨어진다.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 따라서 은퇴하기 전에 노년기의 소비 생활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돈을 확보해두어야 한다.


노년기 삶의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면 되도록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즐겁게 활동적으로 살 수 없다. 일상생활조차 남에게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활 습관이다. 이것이 절반을 좌우한다.


자기 결정권을 지키는 세 번째 조건은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를 계속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최선이다. 급여가 나오는 일자리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면 봉사활동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든 전문성을 활용한 재능 기부든 상관이 없다.


놀이도 중요하다. 바둑, 등산, 낚시, 당구, 산책……. 그 무엇이든 젊을 때 하던 놀이를 계속하거나 새로운 놀이를 배워야 한다. 노년을 함께 보내는 배우자나 연인, 친구가 있어야 한다. 전면적이고 깊은 정신적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노년기 삶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시민단체, 동호회, 정치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나는 멋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이를 품격 있게 먹을 수 있는지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젊다. 표현을 자칫 잘못하면 어른들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하는 대신 연세가 많이 든 분이 쓴 글을 인용한다.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없는 체 한다.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 한다.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사실 노인만 그런 게 아니다. 젊은 사람도 그럴 수 있다. 나는 훨씬 젊었을 때에도 이런 '밉상짓'을 좀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늙어서 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원래부터 있다. 홍사중 선생이 예시한 '밉상짓 목록'은 젊은이들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만약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만 한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똑같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이렇게 하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품위 있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품위 있게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품위 있게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젊을 때 품격 없이 살았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품위를 갖추면 차선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품격 없이 사는 것은 아주 좋지 않다. 그러나 최악은 젊을 때 품격이 있었던 사람이 늙어서 밉상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젊어서도 품격이 없었던 사람보다 훨씬 더 격렬한 비난을 받는다. 젊었을 때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나는 이것이 공정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와 달라졌다고 해서 다 변절인 건 아니다. 정체성이 달라지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게 당연하다.


나이를 먹는 데도 롤모델이 필요하다. 내 노년기 롤모델은 2010년 작고하신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다. 그는 자유의 고귀함을, 진실과 지성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반공주의와 싸웠고,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자유를 실천하며 살았다. 여러 번 구속당하고 언론사와 대학에서 해직되었지만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나는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은사로 존경하지만 역사와 사회, 인간과 정치에 대한 그의 모든 생각과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그를 노년의 롤모델로 여기는 것은 그가 보여준 인간적 품격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은 어디에서도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모임에서는 윗자리에 앉는 것을 사양했다.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했다. 건강이 악화된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절제했고 글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시간을 보냈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도 노년기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내가 그를 노년기 롤모델로 삼는 것은 그가 글 쓰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쇼가 만년에 쓴 에세이가 《쇼에게 세상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4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갔을 때 그는 여든여덟 살이었다. 토지 문제에서 시작해 민주주의와 정당, 교육, 금융, 전쟁, 미학, 건축, 과학, 생물학,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중요한 쟁점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제2의 아동기'를 맞아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나도 버나드 쇼처럼 하고 싶다. 여든 여덟까지는 못 살더라도 내 지성적 자아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을 가진 마지막 시간까지 무슨 글이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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