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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
저   자 : 장졘팡(역:김지은)
출판사 : 생각정거장
출판일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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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


스페인|포크로 긁어 먹는 일요일 한솥밥

나는 스페인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소소한 배움을 얻었다. 스페인 가정이 화목한지 여부는 일요일 점심에 가족이 한데 모여 파에야를 먹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썰고 다진 재료를 한 솥 가득 넣어 끓인 음식은 그다지 고급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페인 대표 음식인 파에야는 소금 한 꼬집, 콩 한 컵, 피망 두 개, 쌀 세 움큼에 냉장고에 있는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만든,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내가 머무른 곳은 삼대가 함께 사는 가정집이었다. 세이타 할머니는 마치 추장처럼 자녀들의 중심에 있었다. 집에는 큼지막한 부엌이 있었는데 그녀는 때때로 그곳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손자와 손녀를 지켜보고는 했다. 그녀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으로는 주앙 삼촌이 있었다.


세이타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전화해 손자와 손녀를 합해 몇 명이 올 수 있는지 일일이 손가락으로 세면서 확인한 후 인원에 맞는 솥을 꺼냈다. 그러고는 아침에 코를 찡긋하면서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던 토끼를 솥에 넣고 튀긴 후에 다른 솥에 옮겨 넣고 물을 부어 약불로 끓였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바구니 속에서 토마토, 피망, 콩 두 움큼, 양파 한 개, 마늘 몇 쪽, 작고 못생긴 오이 몇 개를 꺼냈다. 나는 옆에서 이 채소들을 다듬었다.


이어서 세이타 할머니는 달궈진 팬에 기름을 넣고 향을 내다가 채소를 볶은 다음, 토끼고기를 넣은 솥에 볶은 채소들을 천천히 넣었다. 이어서 사프란 몇 개를 넣고 간을 맞춘 뒤에 마지막으로 쌀 몇 움큼을 넣자 국물이 천천히 걸쭉해지고 쌀밥은 먹음직스러운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토끼 파에야가 식탁에 차려졌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포크를 들고 큰 솥 앞에 빙 둘러앉았을 때까지도 나는 멍하니 접시만 기다렸다.


"파에야를 먹을 때는 접시가 필요 없어. 자기에게 가장 가까이 놓인 쪽을 포크로 먹으면 돼. 특히 팬 밑바닥에 눌어붙은 부분이 가장 맛있어."


식사를 마친 후, 남자들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더니 나른했는지 이내 낮잠을 청한다. 세이타 할머니의 막내딸인 아이와는 세제 대신 뜨거운 물로 솥을 씻고는 햇볕에 말렸다. 말린 솥은 창고에 세트로 있는 솥들과 함께 보관했다가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꺼내 쓸 것이다.


나는 아이와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시냇가로 물장난을 하러 갔다. 주앙 삼촌은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게 껄껄 웃고는 자신도 어릴 적 이 나무 아래서 다이빙을 했다고 말했다.


이곳의 개울이 그러하듯 주앙 삼촌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아오는 법이 없는 차가운 개울물이 70여 년 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삼촌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기억의 파편, 두 번째로 입양된 집에서 구박받았던 기억의 파편이 깨진 유리처럼 삼촌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나 망각은 세월이 노인에게 주는 선물인 듯싶다. 아픈 기억의 파편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좋은 기억들이 그 자리를 채워 나가는 것도 신의 축복이 아닐까.



프랑스|자투리 재료로 만든 근사한 식사

발란시의 신청 서류가 이렇게 밀리고 밀려서 처리가 더뎌지는 동안 그녀의 월급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차에 기름 넣을 돈마저 부족했다. 하필 이럴 때 20년 동안 타고 다닌 차가 갑자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역시 차를 고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발란시와 나는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갈 수 없었다.


일단 우리는 부엌에 있는 재료란 재료는 모두 꺼냈다. 팩 안에 조금 남은 우유, 딱딱하게 굳어 버린 버터, 한 컵이 될까 말까 한 밀가루, 냉장고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말라비틀어진 소시지 하나, 상자에 외롭게 놓인 달걀 두서너 개, 축 늘어진 무와 시금치, 먹다 남은 닭구이와 버섯볶음, 싸구려 모텔에서나 주는 비누보다 더 작은 치즈 부스러기가 전부였다.


"좋았어! 이 정도면 키슈를 만들 수 있어!"


대만 음식으로 치면 볶음밥과 같이 키슈는 프랑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다. 재료에 신경 써서 만들면 근사한 음식이 되기도 하고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몽땅 넣어 만들면 간단한 요기가 가능하다.


또한 키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식전 음식으로도 가능하고, 메인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도시락으로도 먹을 수 있어서 굳이 따뜻하게 데워 먹지 않아도 된다. 야외에서도, 실내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베이킹 팬에 버터를 두른 후 반죽을 올려 페이스트리 모양을 잡고 포크로 여기저기 구멍을 냈다. 그 다음으로 페이스트리에 달걀흰자를 바르고 그 위에 베이킹 스톤을 얹은 후 페이스트리가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오븐에 구웠다.


페이스트리를 굽는 동안 소시지를 얇게 썰은 다음 달군 팬에 넣어 기름을 냈다. 여기에 버터와 양파를 넣고 양파가 황금색으로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볶았다. 이어서 잘게 썬 무와 시금치를 넣어 볶다가 마지막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후 그릇에 따로 담았다.


마지막으로 달걀에 우유를 넣은 다음 방금 전에 볶았던 재료들과 남은 채소, 그리고 치즈를 함께 넣고 골고루 섞은 후, 구워 낸 페이스트리에 얹고 다시 오븐에 구웠다.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 사람인 까닭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줄 알기 때문이야."


발란시는 음식에 어울리는 식기를 꺼내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우리는 푸아그라나 송로버섯처럼 값비싼 음식만 즐기는 건 아니야. 어디서나 흔하게 맛볼 수 있는 키슈에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고.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말이야."


현명한 사람은 소박한 식탁에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즐긴다. 이들은 천박한 태도로 음식을 대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미슐랭가이드'의 별과 유명 쉐프를 신봉하지도 않으며 명성만 따르지도 않는다.

삶이 비록 넉넉하지 않을지라도 자투리 재료로 만든 근사한 식사로 즐거운 추억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그린란드|가혹한 추위를 이기는 야생의 맛

내가 덴마크에 있을 때 퇴직한 의사인 릴리언을 알게 됐다. 그는 그린란드 북극권의 황량한 산과 야생 환경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남은 생애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릴리언은 늑대처럼 생긴 알래스칸 맬러뮤트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헬리콥터가 가지 못하는 지역까지 달려가고는 했다. 그곳 거주민들은 바다표범의 뼈를 발라 먹으며 살았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모피와 고래이빨을 팔아야 썰매 부품과 세탁기를 살 수 있었다. 그들 집에 있는 세간들은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모은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화폐 경제가 유입된 후, 예전에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전기난로,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외부 물품들이 필수품이 됐고, 기름만 넣으면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전동 썰매가 등장했다.


하지만 치아가 다 빠진 이누이트 노인은 날렵한 알래스칸 맬러뮤트가 끄는 썰매에 여전히 의존했다. 전동 썰매와 달리 개들은 가야 할 길을 잘 알았고 부주의로 눈 속에 빠질 염려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은 고기는 이누이트 사람들이 사냥한 거야. 냉장고에 바다표범 고기가 있을 때도 있어."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으니 이제 이곳 사람들도 굳이 고기를 먹으려고 사냥할 필요는 없겠어요."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몇천 년 동안 북극에서 사냥을 하고 살았어. 그러니 사냥이 아니면 무엇을 하며 지낼 수 있겠니?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이라도 때워야 할까?"


현대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타조 같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리면 가축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없으니 안심하고 육식을 즐길 수 있고 죄책감을 덜어버릴 수 있다는 듯 행동한다.


수렵 문화는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위풍당당하고 기개 넘치는 남자들이 사냥에서 얻는 원시적 쾌감은 쇼핑하는 여성의 기분과 비슷할까?


"정말 아무것도 잡지 못해서 먹을 것이 없을 때, 이누이트 사람들은 가장 아끼는 개를 망설이지 않고 죽여. 고기를 먹는 건 이곳에서는 신성한 삶의 의식이야."


이누이트 사람들이 극지방의 혹독한 추위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그 지혜의 결정체들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절대 취미나 흥미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살기 위해서였다.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 사람들은 이제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사회복지를 누리며 산다.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빈곤에 허덕이는 다른 원주민들에 비하면 그들은 수천, 수백 배의 행운을 누린다. 그러나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보내는 삶이 독이 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은 채 술병을 끼고 텔레비전에 빠져들어 산다.


그린란드에 올 때마다 릴리언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받았던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보조금에 의지하다 술주정뱅이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한다.

현대 문명이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준 거대한 충격은 얼음산, 쓰나미, 기후 온난화보다 컸다.



이라크|차를 사랑한 양탄자 부대

중동 사람들은 양탄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기 때문에 실내에 들어갈 때는 늘 신발을 벗는다. 스티븐은 점령군이 더러운 군화를 신은 채 이라크 사람들이 매일 두 무릎과 두 팔, 머리를 땅에 대고 예배를 드리는 양탄자를 밟는 무례한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주민들은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더러워진 바닥을 닦고 양탄자를 세탁하느라 바빴다.


스티븐은 한참 생각에 빠졌다. 무턱대고 자기 병사들을 비난하기에는 현지 사람들의 생활에 따를 수 없는 군인들의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일단 군화는 무거워서 신고 벗기에 불편했다. 군화를 벗는다손 쳐도 무장한 군인이 문 앞에 서서 신발을 벗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도 벗으면 안 된다. 군화는 발과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신는 신발이니까.


고심 끝에 스티븐은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병사에게 시장에 가서 긴 양탄자를 사 오라고 했다. 그 후 민간인 주택에 들어갈 때는 항상 이 양탄자를 집 안에까지 길게 깐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스티븐은 병사들에게 자신의 양탄자 외에 다른 것은 함부로 걷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후부터 민가의 양탄자를 더럽히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임무를 마친 병사들은 양탄자를 둘둘 만 다음 어깨에 걸치고 자리를 떠났다. 양탄자에 묻은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한 가닥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스티븐 덕분에 이라크의 할머니와 주부들은 군화에 더러워진 양탄자를 털고 세탁하는 일손을 줄였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가스로 물을 끓여서는 스티븐과 그의 병사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여느 영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차를 좋아했던 스티븐은 차를 마시고 또 마셨다.


차의 세계에서 이라크와 영국은 생각보다 그리 먼 거리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주로 인도나 스리랑카의 홍차를 즐겨 마신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이라크의 차는 찌꺼기가 많고 떫은맛이 강하다. 그러나 상관없다. 설탕을 살짝 넣으면 되니까.


어느 날 스티븐은 모처로 집합하라는 급한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그와 그의 병사들은 복통을 심하게 앓던 중이라 바로 명령에 따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스티븐은 화장실에 가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방금 전 얼굴을 가린 두 노인이 타 준 차를 마셔서 그런 건 아닐까?'


잠시 후 우여곡절 끝에 스티븐은 병사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 바로 앞에서 폭발음이 크게 들렸다. 이어서 지진 같은 거대한 진동이 다리로 전해져 왔다. 자살부대 때문에 꽤 많은 군인들이 사망했고 병원은 부상자로 넘쳐 났다.


몇 년 후 그는 내 찻잔에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여성이 집에서 하는 일을 절대 우습게 보면 안 돼. 그들의 수고를 존중하면 우릴 자기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줄 거야."


쿠르드|검붉게 우려낸 홍차 한 잔의 노래

홍차 밀항

쿠르드의 장년층들은 발효된 홍차를 즐겨 마신다. 진한 차는 마치 벽돌 같은 어두운 진흙색이다. 찻잎은 스리랑카에서 배를 통해 이라크나 이란으로 들어간 후 육지를 거쳐 터키 국경으로 밀수된다.


동남부의 쿠르드 진영에서 나와 터키 곳곳을 가면 흑해 연안의 터키산 홍차만 맛볼 수 있다. 터키의 흑해 연안에서 재배된 찻잎은 정부가 전매해서 판매한다. 판로를 알 수 없는 차는 불법이다. 밀수 홍차에는 관세가 붙지 않으며 당연히 등록도 안 된다. 터키에는 이렇게 밀수 홍차가 존재한다.


쿠르드 사람들은 흑해 연안에서 재배한 차는 맹물 같아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쿠르드 이외 다른 지역의 터키 사람들은 밀수 홍차가 약처럼 너무 진해 마시면 입과 위가 모두 쓰릴 지경이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그래서 찻물의 색을 '토끼의 피'로 비유한다.


옛날 이 비옥한 땅은 쿠르드족의 고향이었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티그리스 강에서 소와 양을 방목해 키웠고, 황토의 푸른 풀은 신선한 우유와 치즈가 됐다.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끌어다 키운 밀로는 빵을 만들고 맥주를 빚었다.


언어를 통해서도 차의 무역 역사를 유추해볼 수 있다. 오늘날 차가 'cha'로 발음되는 곳은 대부분 육지를 통해 차의 무역이 이루어진 곳이며, 실크로드와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te'로 발음되는 곳은 대부분 바다를 통해 차의 무역이 이루어진 곳으로, 해상권을 가진 유럽 국가를 거쳐 차를 수입한 곳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수백 년 먼저 찻잎 무역을 시작했다.


그러다 19세기에 한 영국 상인이 무역용 차나무를 인도와 스리랑카에 옮겨 심었다.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을 따라 세계 각 지역은 차라는 새로운 음료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차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보편화되어 저렴한 대중 음료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차는 큰돈이 들어가거나 손이 많이 가지도 않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심리적 요구를 만족시켜 준다.


차는 빠른 속도로 커피의 자리를 대신했다. 쿠르드 사람들은 카페에서 차를 주문한다. 커피는 명절, 축제, 결혼식 때나 마신다. 차는 다른 나라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물이고 내륙 무역의 산물이지만 그들에게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사는 게 팍팍해도 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즐기는 쿠르드 사람들의 손에는 찻잔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유럽 열강이 중동의 국경을 지금처럼 분할했을 당시, 쿠르드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 분열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맞은편 마을에 사는 친척이 졸지에 외국인이 되어 서로 다른 국가의 정책에 제약을 받으며 살았다.


사람의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그 무엇보다도 완고하다. 풍습, 종교, 언어는 바뀔 수 있어도 미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유로 국경은 바뀌었지만 차에 대한 쿠르드 사람들의 입맛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서로 다른 국경으로 나뉘어져 버린 쿠르드 사람들은 자리에 모여 따뜻한 차를 마실 때면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에 대한 변하지 않는 입맛을 이어 나간다.


인도|불효자의 눈물로 만든 사탕

콜카타로 향하는 야간열차 3등석에 누운 나는 잠을 자고 싶었지만 뒤척이기만 할 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희미한 달빛 아래로 인도 여성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은 거대한 그림자가 내 다리 근처로 다가왔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났고 몹시 피곤했는지 어깨를 축 내려뜨리고 자리에 앉았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올 때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다 침대 맡에 있던 어젯밤 그 아주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붉은 사리를 입고 싸구려 액세서리를 했지만 넓은 어깨와 평평한 가슴, 툭 튀어나온 목젖을 보니 분명 남자였다.


내가 다가서자 그녀가 놀라서 벌떡 깼다. 잠에서 깬 그녀는 씩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인도에서는 규칙을 모르는 외국인인 척하면 얼마든지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그들의 문화를 관찰했다. 그러다 마지막 칸에서 나는 열차 칸을 잘못 찾아왔던 그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는 바르피를 먹고 있었다.


입을 뗀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목소리는 허스키했다. 나는 그녀가 영어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그렇게 나는 그녀, 소니를 알게 되었다.


소니는 손가락 가득 반지를 끼고 매니큐어를 바른 투박한 손으로 바르피를 건네주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그녀가 준 바르피를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달아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고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섰다.


인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맛을 좋아한다. 특히 진한 맛과 바삭바삭하고 이에 달라붙는 느낌을 좋아해서 축제가 열릴 때는 반드시 단 것을 마련한다. 인도는 면적이 넓어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 특산물도 가지각색인데 그중에서 콜카타 사람들의 '단맛'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바르피는 북인도에서 가장 전통 있는 사탕이다. 우유를 약불에 졸이다가 설탕과 말린 과일을 넣은 후 식히면서 모양을 잡으면 된다. 고급스럽게 만들고 싶을 때는 은박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칼로 대칭을 맞춰 마름모꼴로 잘라주면 고급스럽게 빛나는, 우유 향이 가득한 바르피가 완성된다.


소니는 시골에서 높은 계급 출신이었다. 여동생 말고는 형제가 없어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콜카타에 있는 중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소니는 인도에서 오래되고 신비한 공동체에 속한다.


현지 사람들은 그들을 '히즈라'라고 부른다. 히즈라는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다. 인도에서 히즈라는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존재했다. 히즈라는 동성애, 양성애자, 거세, 이성의 복장을 입는 크로스드레서 등 이른바 성정체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남녀로 구분하기 어려운 성소수자들이다.


그녀들은 히즈라 중 연장자를 스승으로 삼아 분장과 춤, 노래를 배운다. 그리고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모르겠지만 결혼식, 출산, 승진, 생일잔치가 있는 곳을 찾아가 화려하게 분장한 모습으로 악사의 반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한다.


히즈라가 잔칫집에서 가장 많이 받는 답례품은 단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은 어느 집의 단 것이 맛있고 맛없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히즈라는 답례품으로 누구보다 단 것을 많이 받지만 정작 자신들의 결혼, 출산, 졸업, 승진에서는 평생 축하받지 못한다. 단 것이 아무리 많아도 쓰린 가슴을 달래 주지 못한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솔직했지만 그 대가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삶을 빼앗겼다.



캄보디아|희망을 먹고 자라는 버섯

대만 희망의 씨앗협회는 위츠쉰이 캄보디아에서 만든 NGO로 의료봉사와 아동물자 공급 외에도 현지 사람들의 빈곤 탈출을 장기적으로 돕는다.


씨앗협회가 가진 빈곤 탈출 계획은 이렇다. 버섯을 통한 4달 코스의 빈곤 탈출 계획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집단 작업을 하고, 2주 동안 작은 생산 라인을 조직해 톱밥과 균종을 넣은 버섯 봉지를 만든 다음에 각자 집으로 가져가 버섯을 키운다. 다 큰 버섯은 직접 판매해 수입을 올린다. 1기 계획은 일체 무료로 실시됐고 2기 계획부터는 일부 비용을 지불해야 참가할 수 있다.


자기 능력을 믿고 버섯을 잘 키우면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예쁜 화장과 예복을 갖춰 결혼할 수 있고 생활용품을 살 수 있으며,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탈 수 있고 평소에 갖고 싶었던 귀걸이나 팔찌도 살 수 있다.


동정과 연민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정을 얻어야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앗협회는 "네가 가여워서 도와주는 거야"라는 말을 거부한다.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을 책임지도록 해 원하는 꿈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향 목표다.


비즈니스 모델의 타당성이 입증된 후, 씨앗협회는 토지를 매입해 작업장을 만드는 등 규모를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만일 버섯 수확량이 안정된다면 현지 사람들 외에도 음식점과 호텔에 공급이 가능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는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니 판로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버섯은 부가가치가 높고 현금 회전이 빠른 농작물이다. 또한 매일 이른 아침 장사해서 모은 돈으로 40달러 하는 어린 돼지와 사료를 산 후, 석 달이 지나 약 200달러에 팔면 꽤 많은 수익이 생겼다. 토지를 담보로 무리하게 비싼 대출을 받지 않으면서 수입과 지출을 잘 관리하면 버섯 재배와 돼지 키우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은 버섯볶음이나 맑은버섯생선탕을 즐겨 먹는다. 버섯은 흔하지 않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주로 결혼식 같은 잔치에 등장한다. 로드나는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버섯을 남겼다가 호텔 매니저에게 팔았다.


어두운 버섯 재배실에서 한 잎 한 잎 자라는 건 버섯만이 아니었다. 어둡기만 하던 미래에 희망도 함께 자랐다.


음식에는 이런 힘이 있다. 버섯은 사회안전망이 되어 주었고 더 이상 손을 벌려 구걸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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