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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저   자 : 강원국
출판사 : 메디치미디어
출판일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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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비서실로 내려온 '폭탄'-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

국민의 정부 당시만 해도 대통령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 위 직급인 공보수석조차 연설에 관해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모든 소통은 필문필답. 연설문을 출력해서 대통령 부속실에 올려주면 그 종이에 대통령이 직접 수정해주었다. 김 대통령은 그 바쁜 와중에도 연설문만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고쳐서 되돌려주었다. 한 자도 고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연설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대통령의 수정 정도에 따라 연설비서관실 나름의 등급도 매겼다. 단어 몇 자 고쳐서 내려오면 만점 수준. 한 단락을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그것 또한 매우 양호. 한쪽 전체에 가위표를 치고 뒷장에 다시 쓰면 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녹음테이프가 내려오는 경우다. 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어찌 손을 댈 수가 없을 때는 직접 녹음을 해서 테이프를 내려 보낸다. 이것을 우리는 '폭탄'이라고 불렀다.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씩은 폭탄이 터졌고, 연설비서관실 구성원 모두 폭탄 하나 정도 맞는 아픔을 겪었다.


"이것은 국군의 날 연설문입니다."


놀랍게도 녹음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다. 연설 시간에 꼭 맞는 분량으로 끝이 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실에서 감당할 만큼만 일을 맡겼다.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도 정확히 알았다. 초안이 아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자신이 직접 작성하거나, 시간이 없어 도저히 쓸 수 없을 경우에는 부속실에서 쓰게 했다.


연설에 대한 열의는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연초부터 1년 동안의 연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신년연설부터 시작해 3.1절, 4.19, 5.18, 광복절로 이어지는 주요 계기마다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 미리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연설문은 연설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더한다. 광복절 경축사와 국회 연설문이 특히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문에 관한 한 지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더 나은 연설을 하기 위해 고민했고, 대충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글에 관한 대통령들의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건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손녀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습하는 대통령- 결국엔 시간과 노력이다

두 대통령은 글을 빨리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꾹꾹 눌러쓰는 타입이라고 할까? 노 대통령은 그렇게 글을 많이 쓰고, 글쓰기의 달인이면서도 글 쓰는 것을 힘들어했다. 언젠가는 '양극화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써놓고, '씨름'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느낌을 살리는 다른 표현을 찾느라고 몇 시간 고민한 적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고 일필휘지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급하면 급한 대로 뚝딱 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좋은 카피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정곡을 찌를 한마디를 잘 찾아냈다.


김 대통령은 먼저 의견부터 듣기 시작했다. 광복절 연설의 경우 두어 달 전부터 경축사에 담았으면 하는 내용이 전 부처와 각종 위원회에서 올라왔다. 청와대 안팎의 사람들을 모아 식사를 하면서 직접 청취하기도 했다. 국민이 듣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진보 쪽 얘기를 들으면 보수진영의 얘기도 들어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 후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두 읽었다.


이를 통해 머릿속에 얼개가 서면 비로소 집필에 들어간다. 그리고 연설문이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혼자 해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이희호 여사를 앞에 두고, 또 어느 때는 손녀처럼 생각했던 관저 비서팀의 장옥추 씨(현재 김대중 평화센터 국장)에게 들어보라며 연설을 했다. 그러다가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면 수정했다. 퇴고하는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손녀뻘 비서 앞에서 연설을 해 보이는 일흔의 대통령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정말 멋있지 않은가.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얽힌 이야기.

2007년 1월 임기 마지막 신년연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충정 어린 고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했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원고를 낭독하지 않았다. 즉석연설 방식을 택했다. 대통령은 두툼한 책 한 권을 들고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다 읽으려면 두 시간이 넘는 분량의 원고였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원고 중간중간에 경과 시간을 표시해두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너뛸 수가 없었다.


결과는 안 좋았다. 대통령 스스로 "페이스를 잃었다."고 할 정도로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 준비 안 된 연설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대통령에겐 임기 중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설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네"- 횡설수설하지 않으려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은 꾸지람 중에 가장 얼굴을 붉히게 했던 말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네."이다. 글쓰기 최고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횡설수설한 글은 읽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두 대통령 모두 횡설수설하는 글을 가장 싫어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멋있게, 예쁘게, 감동적으로 쓰려고 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길어진다. 글쓰기야말로 자제력이 필요하다. 둘째, 느끼해진다.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수식이 많아진다. 셋째, 공허해진다. 현학적인 말로 뜬구름을 잡고 선문답이 등장한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드는 순간, 헤매게 된다. 몇 가지만 명심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가급적 한 가지 주제만 다루자. 감동을 주려고 하지 말자.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거창한 것, 창의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자.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 논리적인 얘기보다 흉금을 터놓고 하는 한마디가 때로는 더 심금을 울리기도 하니까.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 얘기가 분명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요점만으로 간략히 정리가 된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이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은가. 둘째,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두 대통령은 눈이 높았다. 한마디로 고수다. 고수일수록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초고가 완성되면 발제 정도가 끝난 것이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이다. 고치는 것은 마감 시한도 없다. 연설하는 그 시각이 마감 시각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고친다. 무엇을 고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주제의 적절성 여부다. 두 번째 주안점은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글의 전개에 무리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내용상의 보완, 다섯 번째는 표현상의 문제, 여섯 번째는 오류 찾기, 그리고 일곱 번째는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들이다.


오류를 수정하면 나아지는 게 반드시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반드시 있다. 2006년 신년사 준비. 노 대통령이 초안을 수정하여 내려 보냈다. 2006년은 병술년 개띠였다. '개의 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수정본이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연설비서관실은 고민에 빠졌다.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하셨을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개띠 해에 '개해'라고 표현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결국 대통령에게 여쭤봤다. 대통령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거 오타네." 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자판에서 'ㄱ'과 'ㅅ'은 붙어 있다. 확인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였다.


글을 쓴 사람에 머물러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가차 없이 고쳐야 한다. 글을 쓴 다음에 곧바로 고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 자기 글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입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운율이 맞는 글이 잘 읽힌다. 어색한 부분은 읽으면서 걸린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어볼 것이고, 느낌은 얘기해줄 것이며, 명백한 오류는 잡아줄 것이다. 나아가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줄 것이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필수다.



대통령의 언어 VS 서민의 언어- 쉽게 쓰자

쓰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할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듣는 사람이 잘 알아차릴까? 김대중 대통령의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은 최대한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비유나 속담이 많이 등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것은 중학교 1,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주는 사람이 이해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세 번째 방법은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것이다.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반복할 것을 주문했다. 다 알아듣는 것 같아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하는 사람은 여러 번 해도 듣는 사람은 한 번이라고 했다. 예시를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독창성을 얘기할 때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되풀이했다. 다른 예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저것 사례를 들면 헷갈릴 것을 염려해서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2007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기공식 행사가 줄줄이 있을 때, 혁신도시의 취지를 매번 달리 설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평소 말을 할 때는 반복 화법을 자주 썼다. "맞습니다, 맞고요."가 대표적이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일반인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서민의 언어를 쓰고자 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막하자는 것이지요?"라고 했을 때,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대못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도 언론은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 대통령의 말에 품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군림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 사이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권위가 있어야지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국민은 '서민 대통령'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머릿속에는 '강하고 근엄한 대통령'이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씨는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따로 있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만들었는가.'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말과 글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갑이다. 설득당할 것인가, 감동할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쉬운 글은 쓰기 쉬운가? 더 어렵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어려운 글은 쓰기 쉽다.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 '눈물'- 이미지도 놓치지 말자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사투리를 버리지 못했다. 고집 센 투사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쇳소리와 특유의 억양이 TV 토론에 걸림돌이 될 만큼 단점으로 지적됐다. 김 대통령에게는 '빨갱이', '정치 술수의 화신', '거짓말쟁이', '대통령병 환자', '더블백'이라는 용공조작과 지역감정 그리고 온갖 추잡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노 대통령에게도 '아마추어', '친북좌파',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독불장군', '돈키호테'같이 고집 센 예측불허의 인물이라는 악의적인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들을 광복 이후 최고의 연설가라고 하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또한 사후에까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됐다. 왜일까? 그 답은 정체성에서 찾아야 한다. 정체성은 행적으로부터 나온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이미지가 정수기를 거쳐 나온 물이라면, 정체성은 있는 그대로의 물이다. 그 사람 자체다. 두 대통령의 살아온 역경이 좋은 연설을 만드는 힘이었던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이미지 메이킹'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더욱 그러했다. 청와대 생활 5년 동안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화장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억지로 꾸미는 것을 싫어했다. 대선 후보 기간부터 퇴임 때까지 노 대통령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담당한 박천숙 씨는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전한다. "준비한 의상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옷은 입어서 편하면 된다는 소탈한 성격이셨습니다. 양복은 대중적인 국산 브랜드를 구입했고 대통령이 자주 입으셨던 베이지색 점퍼는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두 대통령은 본인 뜻과 무관하게 이미지 덕을 보기도 했다. 그것은 눈물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눈물'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투사 이미지로만 비쳤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노 대통령은 또 2007년 9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를 붙들고 오열하는 모습은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비록 당국의 반대로 추도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이었다. 함석헌 선생이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눈물도 흘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타고난 품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눈물은 '악어의 눈물'로 비칠 수 있다. 실제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 가짜는 금세 들통 나게 돼 있다. 만들어낸 가짜는 반드시 실패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런 점에서 두 대통령은 좋은 '진짜'를 가졌다. 속이 한없이 여렸다. 감동도 잘하고 수줍음도 많았다.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다.


영상 시대다. 비주얼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감성적,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다. 콘텐츠를 중시하되 이미지도 놓치지 말자. 아니 적극적으로 신경 써 관리하자. 단, 진짜를 보여주자.



"하나님 뜻에 따르겠다니요?"-유머 던지기

두 대통령은 유머감각이 남달랐다. 그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이의 있다'며 결연하게 일어섰던 그 눈동자가 아니다. 장난기가 묻어난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는 악동 같다. 나아가 두 대통령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뜬다. 볼 때마다 새롭고 기대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재밌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마음이 느껴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녹화할 때였다. 배석하는 참모들은 휴대전화를 놓고 올라간다. 녹화 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시 녹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형사고를 치는 셈이다. 그날 처음으로 녹화 중에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공보수석실 비서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원을 끄려 했지만, 버튼을 못 찾고 허둥댔다.


"내가 꺼줄까요?"


폭소가 터졌다. 대통령은 싸할 뻔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조크로 넘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비서관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대통령은 2000년 1월 MBC '21세기위원회'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1980년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데, 우리 아내가 '김대중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겠다'고 해서 어찌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유머와 위트의 달인이었다. 2004년 5월 연세대 리더십 특강에서 노 대통령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다가 요즘 근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손녀가 예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뻐봤자 뻔하죠.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보면 상상이 되지요?"


참모들과 격의 없는 농담도 즐겼다. 봉하에 내려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집필에 몰두하고 있던 대통령은 책의 목차를 짜서 참모들에게 넘겨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헉!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예의 중시 vs 교감 중시- 두 대통령 연설문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지도자는 원래 이렇구나 생각했다.


노 대통령의 연설 중에 매우 인상 깊은 것이 있다. 2002년 10월 서울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즉석연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목사 한 분이 있습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마르틴 니뮐러라는 분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므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다음엔 노동자를 잡아가고, 신부를 잡아갔다. 역시 나는 무관심했다. 그러다 나치가 나까지 잡아가려 할 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2개월 전쯤인 2009년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행사에서 유언처럼 연설했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기는 길은 얼마든지 있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김 대통령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믿었고 그것에 의지해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역사 청산'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두 대통령 모두 사상가적인 면모를 지녔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논리를 중시한 것도 많다.


차이점 또한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동, 솔직, 소탈, 강조어법이 강하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안정, 설득, 논리, 반복을 주로 활용했다. 먼저 일반론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반론을 담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리와 주장, 제안을 담으려고 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론에 가까운 지론을 펼치는 걸 즐겨했다.


다음은 인용에 대한 선호 차이다. 노 대통령은 남의 말이나 속담, 격언, 명언을 인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세계적인 학자나 권위 있는 국제기구를 자주 인용했다. 마치 대학교수의 좋은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연설문을 썼다. 한자어 사용도 달랐다. 노 대통령은 가급적 우리말을 쓰려고 했다. 즉석연설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다. 김 대통령은 반드시 사전에 준비한 연설문을 읽었다. 정치인은 그래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 직접 호흡하는 현장 교감형 연설을 선호했다.


김 대통령은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래서 튀는 내용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노 대통령은 다소 직설적이더라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우회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지도 하락으로 정권 재창출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던 2007년 2월 대통령은 '한겨레'에 다음의 내용을 기고했다.


"저는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습니다.(중략)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진영이 성공하고 못 하고는 스스로의 문제이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두 대통령 모두 존경하는 사람으로 링컨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다. 김 대통령은 링컨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 노 대통령은 겸손한 통합의 리더십이 존경하는 이유다. 이처럼 두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같으면서 달랐고, 다르면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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