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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세상
저   자 : 롭 헹거벨트(역:서종기)
출판사 : 생각과 사람들
출판일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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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세상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구 성장과 그 한계 - 망가지는 자연

삼림 벌채와 그 결과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프랑스 남동부의 드롬주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곳은 알스프 산맥의 서쪽 산자락에 자리 잡아 점차 경사가 낮아지는 지형을 보이고 있다. 주로 석회암으로 이뤄진 산지에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절벽이 늘어서 있다. 한겨울 추위 때문에 그곳의 가옥과 농장 건물들은 대개 두께 1미터 안팎의 두꺼운 돌벽으로 둘러싸였고 사람들은 높게 쌓인 눈 때문에 2층 발코니의 출입문으로 건물을 드나든다. 그쪽 산은 사보이 지역 부근의 중앙 알프스보다 높이가 낮지만 그래도 여전히 겨울에는 엄청나게 춥다. 하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은 유럽의 겨울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으니 드롬 지역 역시 지금보다 더 추웠을 것이다. 아마 농부들은 추위 때문에 땔감을 구하다가 주변의 숲을 몽땅 베어냈을 터, 우리는 경관을 둘러본 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지역 역사를 알아보니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프랑스 혁명까지, 그러니까 1800년 전후까지 그곳은 벌채된 적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이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거주민의 수가 적었으며, 또 그곳 땅이 대부분 귀족이나 교회의 소유였기 때문에 함부로 벌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00년 이전의 몇 세기 동안 프랑스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결국 그로 말미암아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 이후에는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귀족과 교회가 힘을 잃자 농부들은 자신의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계곡부터 산 높은 곳까지 수많은 나무를 베어 넘기며 땅을 개간했다. 19세기 후반이 이 지역을 찍은 사진을 보면 산비탈이 온통 파헤쳐지고 침식된 민둥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사진에는 가지가 모조리 잘려나가고 몸통만 남은 나무와 함께 흙투성이 산비탈을 맨발로 오르는 농민들이 보인다. 그 시절 이후로 새로운 숲이 생겨났지만, 폐허가 된 옛 수도원 근처의 오래된 숲이나 목초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역사 표지판에는 이런 설명도 있었다. 과거에 흐르던 개울이 급류로 변하면서 크고 작은 돌덩이가 물길을 따라서 이리저리 흩어졌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물살은 수세기에 걸쳐 숲 바닥에 축적된 비옥한 토양 역시 침식시켰을 터, 그제야 우리는 지금 숲이 자리한 곳의 토양 두께가 왜 그리 얕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숲 지대의 비옥한 토양은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다. 하지만 과거에 농지로 개간되면서 부식토는 모두 분해되고 많은 흙이 비가 내리는 동안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그때 그 숲에서 우리가 본 나무는 다들 나이가 어려 보였다. 다른 곳에서 옮겨온 다 자란 사과나무나 이국적인 나무들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나무가 없었다. 아마도 재조림 사업이 이뤄졌거나 주로 침엽수에 의해 숲이 자연적으로 재생되었을 것이다. 개간을 했지만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과 벌채로 인한 침식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그 땅을 떠나면서 숲이 다시 생겨난 것이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였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남북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각지에서 인구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인구 증가 속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수준이 수백만 명이 아닌 수천만 명 단위로 뛰었다는 점이 수십 년 전과는 크게 달랐다. 절대적인 인구수의 증가는 과거에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났을 때보다 환경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결국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습지대나 산지로 인구가 퍼져 나갔고 도시에는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렸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주택, 공장, 선박, 수레 등을 만드는 자재나 연료로 나무를 대체할 것이 없었다. 도로 건설은 물론 철도 건설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나무가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객차만이 아니라 기차 바퀴와 레일까지 모두 목재로 만들어졌다.) 나무는 사회 곳곳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가구와 온갖 도구 제작부터 광택제와 타르 생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무는 장거리 운송용 연료로도 쓰였다. 기관차와 증기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연료로 많은 나무가 사용되었고 초창기 농기계 역시 나무를 태워 발생시킨 증기로 움직였다. 증기력은 광산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고 나무는 이 증기를 얻기 위해 물을 끓이는 용도로 이용되었다. 19세기 전반에 석탄이 대체 연료로 등장하기 전까지 철의 용융 작업에는 대량의 숯이 사용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석탄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이 연료는 더럽다고 여겨져 빈민층 외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너무 무거워서 진흙투성이 도로를 따라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전에 없었던 대대적인 인구 증가 현상은 전 세계의 삼림 파괴 속도를 증가시켰다. 사람 수가 느는 만큼 의식주와 운송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고 점점 더 많은 숲이 농경지로 바뀌었다. 또 인구 증가로 인해 목재 거래가 시작되고 대륙 간 거래도 활성화되었다. 물론 목재의 장거리 이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16세기에 런던의 주택 건설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잉글랜드로 나무가 수송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강대국들은 전쟁을 통한 식민지 확보와 확장, 또는 독립(북아메리카의 경우)으로 필요한 나무를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세운 부유한 나라들은 목화를 재배하고 차, 커피, 후추, 계피, 고무 등 수많은 사치품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땅이 필요했다.


이런 작물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넓디넓은 대농장이 필요했고, 결국은 그 때문에 많은 숲이 사라지고 말았다. 또 대규모 농업을 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했기에 그들을 먹이고 재우는 데 엄청난 양의 나무가 소모되었다. 그렇게 해서 생산된 작물과 각종 물품은 대농장과 항구 사이에 깔린 목제 레일을 따라 수송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는 철로가 목제 레일을 대체하면서 남아프리카, 인도, 북아메리카 등지에 광대한 철도망이 구축되었는데, 이 철로를 잇는 데 수만 개에 달하는 침목이 사용되었다. 철 수요가 대량으로 늘면서 철광석의 채굴과 제련 작업도 활발해졌다. 철은 각종 교각을 비롯하여 기차역의 골조와 배수관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 철도 근처에는 수많은 나무 울타리가 세워졌고 도시와 도시, 역과 역 사이의 통신을 위해 전신선(나중에는 전화선)이 사용되면서 목조 전신주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전신선의 길이는 수백,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결국 이 모든 발전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나무가 소비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은 고기를 마치 사치품처럼 소량으로 소비했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함께 곧 엄청난 양의 육류가 소비되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와 아르헨티나의 내륙 지방은 육용 가축이 대량으로 사육되는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통조림 고기는 19세기에도 서구 문명의 중심지로 종종 수출되었다. 처음에는 소떼를 기르는 데 주로 목초지와 대초원이 이용되었지만, 이후 고기 수요가 늘면서 이제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넓디넓은 원시림 지역도 나무하나 없는 방목장으로 변해 햄버거나 빅 맥 같은 패스트푸드용 고기를 생산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그렇게 몇 세기에 이어 개발 작업이 이뤄지면서 아열대 지방과 온대 지방의 숲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이제 삼림은 주로 열대 지방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숲이 파괴되면서 사라지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오래된 숲이 사라진 뒤에는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비옥한 토양까지 함께 사라지고 만다. 결국 지속농업(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농업-옮긴이)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농토가 황폐해져서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숲으로 다시 손을 뻗친다. 그 결과 또 다른 지역에서 벌채와 방화, 토양 황폐화가 반복된다.


삼림 벌채는 가족 단위의 수요 충족을 위해 소규모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수백만 헥타르에 달하는 원시림이 산업용 기름야자 나무를 재배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벌채되고 불탄 적이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인 야자유는 마가린, 각종 과자, 스마티즈 캔디, 아이스크림, 페트로륨 젤리(흔히 바셀린이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졌다.-옮긴이), 립스틱, 비누 등 수많은 공산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때 숲을 없애는 작업은 현지인들에 의해 진행되지만 그곳에서 자란 소들을 죽여 만든 패스트푸드용 고기를 먹는 것은 대부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연료 작물에서 뽑아낸 에탄올 역시 생산되는 곳이 다르고 소비되는 곳이 다르다.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까지 단백질이 풍부한 먹을거리를 요구하면서 원시림 파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물론 그런 요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전 세계의 원시림과 밀림 지대는 2040년경에 모두 사라지리라 예상된다.


한편 북반구의 넓은 아한대림과 툰드라 숲지대도 침엽수 수요 증가로 지속적으로 깎여나가고 있다. 침엽수는 우유와 과일주스를 담는 종이갑을 만드는 데 대량으로 사용된다. 이 종이갑이 매일 같이 수백만 개씩 소모되는 탓에 지금도 삼림은 계속 파괴되고 있다. 이 수많은 종이갑은 일단 한 번 사용된 뒤에는 재활용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종이 안팎으로 금속과 여타 물질들이 섞인 얇은 막이 씌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쓰레기 더미에 섞인 수많은 종이갑은 분해되어 메탄이 되고 코팅제는 다른 폐기물과 뒤섞인 채 사라지고 만다.


그 밖에도 벌채된 북반구 삼림의 나무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 잡지, 책, 수많은 서류첩, 관광 안내용 소책자, 매일 같이 우편함에 꽂히는 광고 전단을 만드는 데 쓰인다. 침엽수를 잘게 분쇄하여 만든 목재 칩은 경질섬유판 제작부터 정원의 잡초 방제를 위한 뿌리 덮개까지 다양한 곳에 활용된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얼마 남지 않은 온대 원시림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얼토당토않게 사라지고 있다. 정치가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 정리해고 위기에 놓인 벌목공들이 몇 년 더 일할 수 있도록 벌채를 허용한 것이다. 물론 이유가 어떻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숲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중세 이후로 잉글랜드에서는 집을 짓는 데 주로 벽돌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1666년에 런던 대화재로 수많은 목조 주택과 건물이 불타버린 후에 특히 더 강해졌다. 하지만 건축에 목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무 소비량은 여전히 많았다. 벽돌은 굽는 데 많은 땔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물론 이후에는 석탄이 이 역할을 대신했다.) 벽돌과 기와는 메소포타미아 시대와 파키스탄의 하라파 문명시대에도 제작되었지만 벽돌이 대규모로 사용된 것은 공중목욕탕처럼 거대한 공용 건물과 5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진 로마 시대부터였다. 이제는 오래된 수도원 근처에서나 그 시절 지중해와 중동 지역에 존재했던 숲들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벽돌을 지중해 지역의 주요 건축 자재로 쓰였다.


실제로 우르비노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서는 3~4층 높이의 주택, 도로와 거리의 계단, 대성당과 그 밖의 크고 작은 교회들, 거대한 기념묘, 성관, 르네상스식 궁전과 극장 건물, 정원 담장,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방어벽 등이 모두 벽돌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건축물들을 짓는 데는 정말 엄청난 양의 벽돌이 사용되었을 테고, 그 수많은 벽돌을 굽는 데는 그에 못지않게 많은 나무가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르비노는 장구한 건축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그 규모가 적은 편이고 지도상의로도 아주 작은 점으로만 표시되는 곳이다. 이 작은 도시에 벽돌이 그렇게 많은데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나무는 가마에서 벽돌, 도자기, 기와 등을 대규모로 굽는 용도 외에 가정용 연료로도 쓰였다. 과거에 기근은 꼭 식량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음식을 조리하는 데 필요한 땔감이 부족해서 일어나기도 했다. 선사시대 이후로는 습지대를 통과하는 도로 또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일전에 나는 러시아 북부에서 과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하르한겔스크를 이었던 수백 킬로미터짜리 목재 도로의 흔적을 본 적이 있다. 그 도로는 기다랗고 육중한 나무 빔을 다섯에서 여섯 겹으로 쌓아서 만들어졌는데, 맨 아래의 빔이 썩어 없어지면 다시 맨 위에 새로운 나무를 얹는 식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고대 문명시대에 지중해 인근의 사람들은 나무를 이용해 배를 만들었다. 중세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바이킹은 물론이고 이후 한자 동맹을 결성한 스칸디나비아의 독일 북부의 상인들은 목조 선박 수백 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통해 교역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교역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었고 이 흐름은 해외 식민지의 건설로 이어졌다. 바다 건너편으로의 정복 활동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순으로 이어졌으며, 수백 척으로 이뤄진 함대에는 상선과 전투함이 섞여 있었다. 로마 시대 이후 스페인에 남은 나무란 나무는 죄다 무적함대를 만드는 데 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함대는 결국 폭풍을 만나 흩어지고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아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많은 나무가 덧없이 물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항해를 위한 선박들은 주로 활엽수, 그중에서도 특히 참나무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선박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조선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버려지는 배가 많아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의 참나무는 거의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렀다. 목조 선체가 빠르게 썩는다는 사실도 이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목재의 부식은 열대 수역에서 특히 더 심했다. 실제로 옛날에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를 오가던 선박 중 전반 정도는 부식 때문에 해체와 재건 작업이 뒤따라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배가 고물로 변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필요한 나무를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3국에서 구했고 잉글랜드도 유럽 내 다른 지역에서 배를 만들 나무를 구해 썼다. 앞에서도 한 번 이야기했듯이 잉글랜드는 16세기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목재를 일부분 수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잉글랜드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참나무 공급을 위해 올리버 크롬웰은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았고, 이후 19세기 동안 대영제국의 관심은 다시 북아메리카로 옮겨갔다. 19세기 중반에 시카고 부근의 숲들은 지금과 같은 삭막한 모습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19세기 전반에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구리판을 덧댄 목재로 제작된 그 배에서는 목수들이 일정 기간마다 선체의 부식된 부품들을 교체했다. 이런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몇 천 년 간 목재에 의존해온 인간의 온갖 경제 활동 중에서 선박 건조가 유럽과 여타 대륙의 삼림 파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지구 상에 존재했던 임목 대부분은 이산화탄소로 변해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어떤 것은 불에 타서, 또 어떤 것은 미생물에 의해 썩어 없어졌다. 일단 그렇게 공기 중으로 흩어진 성분들은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은 한 원래대로 되돌리기다 어렵다.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방법 중 그나마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사라진 옛 숲 지대에 다시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숲을 새로이 조성하면 종의 구성, 계층성, 역동성 면에서 이전에 존재하던 것과 유사한 진짜 숲의 모습이 재현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숲에서 자연스럽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역학 관계가 형성되려면 나무, 덤불, 풀, 곤충, 새, 포유동물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끼, 균류, 박테리아 등 식물종과 동물종의 시간적, 공간적 구성까지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야 한다. 수백 또는 수천 가지 종의 나무와 덤불로 빼곡하게 들어찬 숲을 생각해보라. 그런 숲을 다시 되살릴 목적으로 묘목을 키운다고 해도 어디서 종자를 구할까? 또 묘목장은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묘목만 키운다고 해도 숲 자체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숲에서 잘 자라는 수종은 맨땅에서 키우기가 어렵다. 그런 조건에서는 습도나 온도, 또는 그늘 같은 조건이 발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떻게 해서 숲 비스름하게 나무가 자란다고 해도 숲에 사는 짐승들과 수없이 많은 곤충을 어디서 구할 텐가? 더군다나 숲에서 사는 생물종의 조성은 굉장히 느리게 변화한다. 대개 숲의 나무들이 다음 세대로 대체되는 데는 100년에서 200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온대 지방에서는 생물, 물, 토양, 기후 조건 등을 포함한 숲의 자연적인 변화, 즉 숲의 천이가 최소 600년에 걸쳐 일어난다.


원래 있던 숲이 제거될 경우 보통은 부식토가 분해되고 무기물이 포함된 표토가 메말라버리거나 물이나 바람에 의해 침식된다. 그러면 토양의 수분 함유량과 물 흐름이 바뀌게 된다. 그렇게 삼림이 파괴된 지역의 수문적 특성이 완전히 변해 버리면 기존 숲의 자연적 조성이나 역학적 특성의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 다들 한 번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육중한 중장비가 물웅덩이와 깊게 파인 도랑, 불타는 나뭇가지와 부러진 나무줄기를 남긴 채 부식토로 가득한 삼림 토양을 뒤집어엎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파괴와 황폐함만이 남은 세상, 결국 부식토를 분해하고 나무와 덤불과 크고, 작은 풀의 발아, 생활, 생식을 돕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균류는 모두 뜨거운 햇볕 아래 말라붙고 타죽고 만다.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새와 포유동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살 곳을 잃은 후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들이 없는 숲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 일단 환경이 바뀐 상태에서는 재조림한다고 해도 온전한 숲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래가지도 못한다.


사실 숲 지대를 조사해보면 토양 영양분이 빈약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는 삼림 식물들이 이미 그 지역의 영양분을 모두 써버렸거나 체내에 저장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숲에서는 영양물질의 순환이 매우 빠듯하게 이어진다. 새로 자라는 나무는 바로 전에 그 자리에서 자라던 나무들의 영양분을 활용한다. 물질적인 조성면에서 새로운 나무가 죽은 나무를 그대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땅에 떨어진 열매와 잎, 부러진 가지 등이 새, 포유동물, 곤충, 균류, 박테리아처럼 세대교체 속도가 다른 다양한 생물과 함께 나무, 덤불, 풀 사이에서 이뤄지는 영양분의 끝없는 순환을 통하여 조화롭고 지속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지금까지는 삼림 벌채로 인한 국지적인 영향, 그리고 우리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영향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큰 숲을 벌채하면 대륙 단위의 구름 형성에도 영향이 미치고 기온과 강우 유형까지 바뀐다. 이런 변화는 한 번 일어나면 원래대로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숲의 부식토와 무기질 토양은 스펀지와 비슷하게 작용한다. 숲의 흙은 빗물이나 눈 녹은 물을 흡수하고 이후 조금씩 수분을 방출하면서 1년 내내 초목에 물을 공급한다. 또 이를 통해 더 많은 부식토를 형성하고 토양이 침식되는 것을 막는다.


숲이 없다면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거친 급류를 형성하기 쉽지만, 각종 초목 덕분에 이 물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되어 크고 작은 웅덩이를 이루면서 수많은 곤충과 물고기, 포유동물들이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숲은 산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속도를 줄이고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다. 하지만 숲을 벌채할 경우 홍수와 건조 현상이 번갈아 나타나기 쉽다. 숲은 새로운 토양을 형성하고 안정화하지만 벌채는 필연적으로 침식을 유발한다.


삼림 벌채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계곡 지역에 자리 잡은 원시림을 한번 생각해보자. 계곡은 대개 토양이 비옥하고 강이나 산에서 내려오는 개천과 개울 덕분에 물이 풍부하다. 계곡 지대의 강은 인근 거주민에게 식수와 물고기, 교통수단을 제공한다. 또한 지대가 평탄한 계곡에서는 농작물의 성장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관계용수를 끌어오기도 좋다. 그래서 어부와 농부들은 주로 계곡 지역에 정착했고 그러한 정착지는 훗날 마을과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생활에 필요한 나무를 구하고 농작물을 더 많이 키울 필요성이 생겨나는데다가 거주 공간을 확충할 필요도 생긴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먼저 거주지인 계곡 지역의 숲을 베어냈다.


이후 인구가 더 늘어나자 농경지와 도시를 확장할 공간이 부족해졌다. 결국 사람들은 식량 생산을 위해 산비탈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산림이 벌채되어 나무가 없어지자 숲의 지표면에서는 토양 침식이 일어났다. 빗물은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흘러내렸고 처음에는 부식토를, 그다음에는 무기질 토양과 각종 암석을 산 아래 계곡으로 쓸어내렸다. 그렇게 하여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산림 특유의 토양이 사라지고 말았다. 산비탈에 개간한 밭들이 점점 황폐해지자 사람들은 인접한 숲을 다시 깎아냈다.


벌채된 지역이 더 넓어지면서 침식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면서 부식토와 무기질 토양, 진흙과 모래, 온갖 크고 작은 자갈과 돌덩이와 바위, 그리고 벌채 후 남은 나무들이 산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위에서 굴러 내려온 벌채 작업의 잔해는 야트막한 경사지의 밭들을 뒤덮고 강을 메웠다. 필자는 실제로 하룻밤 사이에 폭우로 인해 비옥한 알프스의 목초지가 진흙과 돌덩이에 묻혀 사라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산림 파괴 현상은 현재 필리핀과 뉴칼레도니아의 열대삼림을 비롯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벌채로 인한 토양 침식은 산비탈의 흙을 없앨 뿐 아니라 계곡 지대의 비옥한 토양까지 못 쓰게 만든다. 그리고 강이 토사와 유기 폐기물로 막혀버리면 물의 흐름이 바뀌어 농경지와 주거지, 더 크게는 마을 전체와 도시까지 파괴될 수 있다. 먼 옛날 중국의 황하 강에는 대량의 황토를 운반한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고, 강이 도달하는 바다에도 같은 이유로 황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사가 유구한 황하 강은 그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곳저곳에서 쓸려 내려온 돌덩이와 토사가 가라앉아 강바닥이 높아지고 수면 높이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 결과 강가의 제방 높이가 계속 높아지면서 붕괴 위험과 함께 저지대 주민이 수해를 입을 위험도 커졌다. 일부 구간에서는 강물의 높이가 지면보다 10미터 이상 높은 곳도 있다. 깊고 가파른 협곡이 교차하는 상류 쪽은 식생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침식된 상태로, 더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풍경으로 바뀌었다.


삼림 파괴로 생기는 문제는 또 있다. 지하수의 흐름이 역전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인데, 이 문제는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이 현상은 물이 토양 아래로 스며드는 대신 위를 향해 상승하는 것으로, 깊은 토양층에 녹아 있는 염분과 무기물질을 지표면으로 끌고 올라오는 특징을 보인다. 숲이 벌채된 후 햇빛이 지표면에 직접 닿으면 표토의 온도가 높아지고 건조하게 되면서 토양이 더 많은 물을 끌어당긴다. 그렇게 지하수가 증발하면 수분과 함께 올라온 염분과 각종 무기물은 그대로 남아 땅을 딱딱하게 굳히거나 염분이 포함된 토양 피각을 형성한다. 이 문제는 농업용수로 강이나 호수, 대수층에서 염류가 포함된 물을 끌어다 쓸 경우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농작물을 포함한 대다수 식물과 동물은 염류가 집적된 토양에서 살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농부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땅을 버리고 떠나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염분과 무기물질이 해마다 나일 강의 범람으로 씻겨 나갔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집트와 달리 땅에 염분이 계속 축적되면서 유구한 문명이 멸망을 맞이하고 말았다. 수목이 우거졌던 중동 지역의 토양은 고대 문명 시대 이래로 염분과 무기물질이 계속 지표로 상승하면서 점차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결국 과도한 염분 집적으로 내염성 식물조차 살지 못하는 땅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때 비옥했던 넓은 대지는 소금기뿐인 쓸모없는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나타나 아스텍 문명의 멸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세계 각지에서는 물에 용해되어 표층으로 운반된 산화철 때문에 토양이 단단하게 굳어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 유럽 북서부 지역에서는 약 60센티미터 깊이의 토양층에서 철 성분이 섞인 6~7센티미터 두께의 불투수층이 종종 발견된다. 그런 곳에는 강우량이 증가했을 때 배수가 되지 않아 습기로 가득 찬 불모지가 되기 쉽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높은 지대에 뗏장집을 짓고 감자와 귀리를 재배하면서 지내다가 여름에 물이 마르면 저지대에서 자라는 헤더를 양떼에게 먹였다. 사실 꽤 황량한 환경이지만 땅을 뒤집어 보면 모래흙 사이사이로 얇은 무기질 층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그 지역에 건조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도 요즘은 깊이갈이를 통해 황무지 아래 철이 축적된 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농경지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삼림 벌채는 인류 문명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 긴 세월 동안 이 문제 때문에 무수히 많은 땅이 다시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황폐하게 변했다. 삼림 파괴는 식량 작물의 생산 면적을 서서히 줄이는 동시에 생물다양성까지 위협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손실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어떤 이론이나 재조림 계획을 통해 숲을 원래대로 되돌리기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저 나무를 새로 심고 다른 곳에서 동물을 데려오면 다들 바뀐 환경에 알아서 잘 적응하고 살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 사라진 숲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옛 숲에 살던 생물들도, 그곳만의 독특한 수리 환경과 기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삼림 벌채의 역사와 그 결과 역시 밑바탕에는 인구 증가라는 원인이 존재한다. 인구 증가는 전 대륙에서 광범위한 삼림 파괴를 불러일으켰다. 유럽에서는 지중해성 삼림을 시작으로 온대림과 북부의 아한대림, 타이가가 차례차례 사라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에서도 원주민들의 손에 숲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 인간은 열대 밀림까지 손을 뻗쳤다. 여전히 농경지의 수요와 도시화에 필요한 목재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고, 나무를 자르는 도구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강력해졌다. 아마 지금 같은 추세로 간다면 2040년경에는 지구상의 천연림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인류가 더욱 크고 무거운 기계 장비와 더 빠른 운송 수단을 만드는 시대,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목재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목재 기근 시대'가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일단 한 번 숲이 파괴된 곳에서는 다시 삼림이 조성되기 어렵다. 우리 뒤를 이을 미래 세대는 나무와 숲이 없는 헐벗은 지구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현 세대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의 존속 - 이 세계의 또 다른 미래?

우리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

이 세계는 우리 인간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 우리 때문에 자연계와 지질계, 생물계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놀라우리만치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 세계까지 모두 황폐하게 변해간다. 이런 세계는 이 우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 어딘가에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하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바람이다. 설사 지구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된다고 해도 이 멋진 행성을 우리 손으로 직접 파괴하고 더럽히는 행동은 아무래도 용납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의 엄청난 잠재력을, 그리고 무려 40억 년에 달하는 길고 긴 생물학적 변천사의 끝에서 수천 년에 걸쳐 우리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저버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미래와 자연계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우리 인간이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도 많은 폐기물을 배출하는 탓에 황폐하게 변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폐기물을 자연의 순환계로 되돌릴 수 있는 생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우리가 직접 자원을 재순환시킨다 해도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할 뿐이다. 우리는 쓸모없고 더러운 온갖 폐기물을 지상과 지하, 강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사방팔방으로 흩뜨린다. 눈앞의 이익, 부유함, 안락함, 양적인 발전과 성장에 눈이 먼 인류는 앞으로 다가올 극도로 빈곤하고 황폐하며 열기로 가득 찬 세계를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에 경고의 메시지가 들려왔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 속도를 높였다.


다들 알겠지만 사람은 대개 큰 문제를 한 번 겪어봐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는 불구덩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전진중인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하지만 그 또한 다들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 끝에 존재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시선을 돌리고, 우리 의지대로 세상을 움직일 여지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려 하지 않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증유의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경고 앞에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대로 눈가리개를 쓴 채 앞으로 나아간다.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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