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인문
Preview
Trend
Briefing
힘있는 말하기
저   자 : 데이비드 크리스털(역:이희수)
출판사 : 토트
출판일 : 2016년 10월
14

힘있는 말하기


달변을 만드는 것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주어진 시간이 얼마이고 어디서 말을 할 것인지, 청중이 누구인지 모두 파악했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차례다.


- 무슨 말을 할 것인가

- 그 말을 언제 할 것인가

- 어떻게 말할 것인가


첫 번째 사항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강연에 초청을 받았다면 보통 주제가 미리 정해져 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말해달라고 미리 요청 받을 수도 있고 관례상 주안점을 둬야 할 주제가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테이블스피치는 "아무거나 원하는 내용으로 말씀하세요" 라고 해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된다. 스피치를 할 때는 행사의 성격과 청중의 관심사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선택한 주제를 청중이 익히 알고 있는지 여부도 무시할 수 없다. 6장에서 간단히 언급한 업계 은어나 전문용어가 그런 경우다. 경주용 자동차에 장착되는 엔진의 역사에 대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말할 수 있는 강연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청중이 토크나 가변 흡기 시스템, 트럼펫이 뭔지, RPM, FIA 같은 약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이는 기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결혼식에 가서 축사를 할 때도 가족 은어를 조심해야 한다. 집안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쓰거나 예를 들어 가족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그레이스 고모님'을 반복해 언급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레이스 고모님'은 신랑 가족이나 신부 가족 중 어느 한쪽만 아는 분일 것이고 그나마 친척들도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면 책이나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대중화시켜놓은 책을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방법이나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결혼식에서 멋진 연설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나 웹사이트는 얼마든지 많다. 확실히 도움이 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문제 해결 방법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효과 만점이라는 농담을 그대로 외워서 읊는다든가 책에 적힌 조언을 시시콜콜 다 따를 필요는 없다. 농담은 금방 입소문이 돌기 때문에 참석자들 중에 다른 데서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효력이 '일회성'이라 옛날에 한 말을 다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출판기념회, 금혼식, 장례식에서 한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밖의 이야기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역 친목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여행담을 들려주었더니 다른 그룹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면서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청중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상관이 없다. 그 사이에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아찔한 일화가 입소문이 났다면 전에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기 바라는 기대감이 클 것이다.


"꼭 다시 모시고 싶어요" 이것은 달변에 대한 칭찬이다. 같은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고 싶을 정도로 청중의 만족도가 높다는 말이다. 때로는 예의상 그런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되면 자신이 했던 말을 기록해두어야 한다. 정작 두 번째 초대를 받아 지난번에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리려고 하면 분명히 자신이 한 말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 놀라게 된다. 매년 여러 차례 강연을 다니는 사람은 더 심하다. 그런데 과거에 한 말을 똑같이 반복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달변가라도 '저번에 다 들은 이야기'라 따분하다는 식의 반응 앞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정치 연설가는 선거 캠페인을 할 때마다 그런 반응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항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더라도 참신하게 느껴지게끔 해야 한다.


어쨌든 처음 강연을 할 때 즉흥적으로 말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견이나 내용이 추가되어 매번 조금씩 다른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1장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정한 달변은 그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다. 사람들이 그걸 듣고 즐거우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더라도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어쩌면 은근히 그걸 바랄지도 모른다. '햄릿'의 대사를 줄줄 외우는 사람도 무대에서 상연될 때마다 연극을 즐겁게 관람한다. 배우와 연출자라면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비결은 친숙한 내용에 참신한 뭔가를 더하는 것이다. 남 앞에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참신한 뭔가'란 남들보다 새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연례 만찬과 같이 매년 열리는 행사라면 전년도 연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계획적으로 전년도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울 생각이 아니라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연설은 기업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전문이나 요약본이 게재되므로 과거에 강연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방법이 여의치 않으면 나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을 오래 기억하고 달변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작년만큼 좋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엇을 말할까' 궁리할 때는 7장 말미에 덧붙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생각을 바꿀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는 항상 적용이 가능하다. 의도는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다. '정보, 교육, 즐거움'을 주겠다는 BBC도 자신의 논거가 정당함을 입증하려는 사람도 앞에 놓인 과제는 똑같다. 청중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내가 하는 말에 기꺼이 귀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로 중요한 것은 에토스다. 청중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역할이나 지위, 평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선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안다. 신랑의 지인이라는 관계를 안다는 뜻이다. 문학 축제나 컨퍼런스에서 스피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다. 사회자들은 '소개가 따로 필요 없는 분'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누구인지 안다는 데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성함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름만 알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격언 '내가 당신을 볼 수 있도록 말하라'의 참뜻이다.


모두 발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게 바로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달변가들은 보통 신변에 관한 언급이나 개인적인 사연으로 스피치를 시작하고 스피치 내내 자기 생각을 자주 언급한다. 그래서 스피치를 다 듣고 나면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좀 알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 사람의 일부를 공유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진정한 달변가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달변가라도 일관성은 변화무쌍하다. 프레젠테이션 내내 시종일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한 말 중에 재미없게 들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섬광처럼 번득이는 작은 달변의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전체적인 인상을 물들인다. 그 작은 순간들이 바로 우리가 들었다고 기억하는 이야기의 편린이고 누가 "무슨 말 했어?" 라고 물을 때 되풀이해 들려주는 부분이다. 스피치의 시작은 그만큼 특별한 순간이다.


다들 시작 부분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데 십분 공감하고 그래서 스피치에 관한 안내서마다 개인적인 사연으로 시작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대성공을 거둔 테드 강연을 분석한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카민 갤로의 '어떻게 말할 것인가 세상을 바꾸는 18분의 기적'에 보면 2장 '스토리텔링의 기술'에 그런 내용이 다뤄져 있다. '우리가 누구냐 하는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토리다'. '스토리를 들려주면 이성과 감정을 모두 잡을 수 있다'. 스토리는 강연자 자신에 대한 것을 수도 있고(에토스)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파토스). 어쨌든 하는 역할은 같다. 카민 갤로는 저서의 2장을 이런 말로 끝맺고 있다. '스토리는 생생하게 설명하고 눈을 뜨게 하고 영감을 불어넣는다.' 나는 여기에다가 사람의 본질을 똑똑히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개성을 부여한다' 혹은 '인간성을 부여한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나는 강연을 할 때마다 늘 스토리텔링을 한다. 예전에 그 지방을 방문했을 때 느낀 소회를 밝힐 때도 있고 사회자의 소개사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할 때도 있다. 아니면 강연의 제목에 관해 말하기도 한다. 별로 긴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미래(The future of Englishes)'라는 강연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강연 제목이 잘못 나가는 바람에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영어를 'Englishes'라고 복수형으로 쓰는 경우는 없다고 어림짐작해 강연 제목을 'The future of English'라고 보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다. 일 분 남짓의 짧은 이야기지만 청중 중에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나 언어학과 학생들은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역설을 금방 눈치 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최소의 것이다. 요점을 이해하는지 보는 것이다. 스토리로 강연을 시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청중의 반응이 뜨거운지 미적지근한지 가늠하려는 것이다. 강연의 '골자'와 거리가 멀거나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듣는 사람들이 내 목소리와 강연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다. 또한 목소리와 강연 방식이 특이한 강연자라면 그의 스타일에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다. 비교적 덜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말이 잘 들리는지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청중의 기분이 어떤지,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는 것이다. 청중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비전문가 집단이라면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듣는지 이해도를 측정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내 말을 들으면서 재미있어 하면 수준을 제대로 맞춘 것이고 멍한 표정을 짓거나 당황스러워하거나 웅성거리거나 심하게는 휴대폰을 들고 내가 사용한 단어를 온라인 사전에서 검색하면 청중을 과대평가 한 것이다. 첫 반응이 이렇게 예상과 다르면 구어체를 줄이든가 유모를 자제하는 등 말하는 스타일을 바꾼다.


외모가 스토리의 소재가 될 때가 있다. 나는 수염 때문에 생긴 사건이나 일화가 정말 많다. 강연자들마다 독특한 특징이나 습관이 있을 테니 그것을 잘 이용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방금 외모라고 했는데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몸의 일시적인 상태가 소재가 될 때도 있다. 예전에 영국문화원의 요청으로 이집트에 가서 영어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강연 전날, 나는 주최 측의 배려로 카이로 남쪽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피라미드를 보러 관광에 나섰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이드가 피라미드 중간쯤에 난 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막상 위에 올라가서 보니 피라미드의 한가운데로 내려가려면 굉장히 좁고 가파른 수직 계단 통로를 지나야 하는 구조인데다가 몸을 쭈그리고 네 발로 기다시피 게걸음을 해야 통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가까스로 피라미드의 중앙에 도착해 묘실에 서서 머리 위에 있는 수천 톤짜리 바위를 감상한 뒤 다시 게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비틀거리면서 차로 돌아온 나는 바로 호텔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어보니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로비 계단 앞에 섰는데 두 다리가 뇌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아 발을 질질 끌면서 벽을 잡고 옆걸음으로 올라가야 했다. 강연은 그날 오전에 열렸다. 주최자가 나를 소개하는 동안 연단 옆 의자에 앉아 있다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중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연단을 비스듬히 움켜잡은 채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깜짝 놀랐던 표정이 미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내가 어떤 고통에 시달리는지 이해한 것이었다. 멋진 공감의 순간이었다. 그것이 바로 파토스다. 그날만큼은 내가 전화번호부를 낭독했어도 다들 이해해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스토리로 스피치를 시작하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럼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훨씬 더 너그럽고 수용적인 태도로 변한다. 스토리텔링으로 스피치를 시작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이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달변을 위한 실전 팁

상황별 스피치에 관한 간단한 조언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 내용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달리 생각하면 대단할 것 없는 내용이나 말을 해도 전달 방법만 좋으면 다들 좋은 것 배웠다면서 뿌듯해 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젠가 대학교에 강연을 나갔다가 혼란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준비해 간 메모가 뒤죽박죽이 되는 바람에 횡설수설 발표를 끝낼 수밖에 없어 속으로 울화가 치밀던 차에 누가 다가오더니 정말 흥미로웠다면서 고맙다고 따뜻한 말을 해줬다. 아마 내가 정신없는 와중에도 부실한 내용이나마 달변의 발표를 했던 것 같다.


스피치의 내용은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아니지만 발표가 달변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데 내용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는 스피치를 하는 상황에 따라 제약이 있기 마련인데 제약이 무엇이냐에 따라 할 말을 선정하고 구성하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어학의 하위 분야 중에 문체론이라는 것이 있다. 언어에는 다양한 변종이 있으며 변종마다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예측 가능한 요소들이 있다.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문체론이다. '법률 영어', '종교 영어', '스포츠 해설', '신문 기사체' 등 이름만 들어도 텍스트에 어떤 종류의 언어가 포함되어 있을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대중 연설'도 마찬가지다.


문체적 변종에는 다시 하위 변종들이 있고 하위 변종들 사이의 언어적 차이도 큰 편이다. 예를 들어, 법률 언어에는 계약서, 유언장, 양도증서, 법정 대화 등이 있다. 스포츠 해설도 운동 경기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하위 장르가 있다. 강연자나 작가는 각각에 필요한 요건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언어의 선정, 구성, 전달이 상황에 적절해야 하고 전통적인 용례와 격식을 갖춰야 제대로 된 내용이 될 수 있다. 축구 해설에서 쓰는 언어는 당구에 맞지 않고 당구 해설 언어는 축구에 적합하지 않다.


대중 연설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고 장르마다 관행과 관례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포괄적이고 유연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강연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엄격한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앞서 설명한 공통 사항들을 잘 지켜 청중이 누구인지 알고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발성을 하고 기술적인 측면을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에서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대중 연설에는 스무 개 정도의 하위 장르가 있다. 결혼식 축사 같은 장르는 자기계발서나 온라인에 많이 다루고 있지만 그 외의 장르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장에서는 대중 연설을 장르별로 소개하면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곁들이려고 한다.


강연자소개

주요 특징 : 간결, 정보 제공, 격식 중시

소개는 대개 1분 남짓이면 끝난다. "제가 아니라 ○○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셨단 말이죠" 이렇게 말문을 연 사람은 벌써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정보 제공이란 강연자와 행사명, 강연 제목을 밝히고 청중이 꼭 알아야 할 것만 전달한다는 쓰이다. "소개가 필요 없는 분이시죠"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장황하게 소개를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신상 정보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사전에 강연자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봐야 한다. 소개를 하러 나와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조심스럽게 유머를 구사하면서 경직되지 않게 오로지 강연자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 강연자에게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할지 미리 묻지 않도록 하되 혹시 내용을 암시해서 선수 치는 일이 없도록 강연자와 사전에 조율을 한다. 새로 쓴 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강연에 나갔더니 소개자가 굳이 시간을 내서 그걸 다 읽어보고 내가 서두에 할 말을 대신 해버려서 당황스러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강연자에게 감사 인사

주요 특징 : 매우 간결, 스피치 내용반영, 격식 중시

매우 간결하다는 것은 보통 1분 미만이라는 뜻이다. 스피치 내용 반영이란 강연자가 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말을 해서 스피치를 잘 들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표시하라는 것이다. 과찬을 할 필요도 없다. 강연이 좋았다면 불필요한 칭찬이고 나빴다면 가식적인 말이 된다. 이런 말은 미리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즉흥성이 중요하다. 사전에 준비한 메모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준비된 원고를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해달라는 요청만 받고 소개를 받지 못했다면 강연자와 청중을 위해 당신이 누구이고 왜 그런 요청을 받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라


개회사

주요특징 : 간결, 초점이 확실한 내용, 격식 중시

길어야 5분이다. 초청해준 데 대한 감사인사, 초청을 받아들인 이유 설명, 주최 측과 실무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한다. 행사와 관련된 내용에 국한시켜야 한다. 혹시 유명 인사라면 유머러스하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장황한 이야기를 할 계제가 아니다. 기념행사, 바자회, 모금 행사의 경우, 행사의 취지를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혜택 받을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맨 끝에는 개회 또는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선언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

주요특징 : 간결, 정보제공, 개인적

간결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너무 짧지 않도록 한다. 공로를 인정하고 칭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대 5분 정도가 좋다. 수상자의 성취 내역과 함께 상의 취지와 성격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상의 이름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밝힌다. 왜 시상을 요청받았는지, 현재 어떤 기분인지 말한다. 의례성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퇴임 선물을 증정하는 행사라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가족적일 것이다.


상을 받는 시상식

주요특징 : 매우 간결, 진솔한 감정, 격식 중시

최대 30초가 보통이다.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이지만 지나치면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나중에 욕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상식의 주최자와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수상 후보에 오른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하라. 아무리 솔직한 말이라도 "전 이런 상 받을 자격이 없어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잘해야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수상자로 뽑아준 사람들에게 누가 될 수 있다.


건배사

주요특징 : 간결, 초점이 확실한 내용, 격식 중시

국왕이나 국가 원수, 나라를 위해(영어로) 건배할 경우, 대상의 이름만 당당하게 큰소리로 외친다("The Queen!" 여왕님을 위하여!) 이런 때는 단순함이 최고의 달변이다. 단, 공식적인 명칭과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건배사가 따로 있을 경우에는 그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다 같이 건배사를 따라 외친 다음에 자리에 앉는다. 결혼기념일 등 친목을 위한 건배일 때는 길이와 형식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보통 2~3분 정도가 적당하다. 식상할 정도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면 인용문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건배사 마지막에는 반드시 축하받을 사람들의 이름을 외친다.


학교 스피치데이

주요 특징 : 20분 이하, 활기와 의욕, 일화 중심

많은 사람들이 스피치데이(영국의 일부 사립학교에서 주로 학기 말에 시상식과 함께 외부 연사를 초청해 연설을 듣는 스피치데이를 갖는다고 함 –옮긴이)에 너무 지루해서 빨리 끝나기만 고대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모교에 초대되어 스피치를 한다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적인 추억과 일화로 생동감을 더해야 할 것이다. 모교가 아니라도 다른 학교들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다뤄줬으면 하는 주제가 있는지 교장에게 물어 확인하는 것이 좋다. 청중은 교직원과 학교 경영자, 부모와 가족, 학생, 이렇게 세 부류로 구성되다. 어른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 사람들만 재미있어 한다.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모두 즐거울 수 있다.


테이블스피치

주요 특징 : 부담 없는 분위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기지와 재치

주어지는 시간은 자리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보통 10~15분 정도이며 사전에 합의된 것이 아니라면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만찬 스피치이고 다른 강연자들이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짧게 끝내는 것이 좋다. 강연자의 개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겸양의 미덕을 발휘할 때가 아니다. 스피치의 형식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격식을 중요시하는 자리라도 유머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공간의 크기가 어중간하고 원탁 배치라 시각적 보조 자료를 사용하기는 어렵다. 청중의 주의력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특히 스피치 중에 사람들에게 취향을 물으면서 커피 서빙을 한다면 집중도가 많이 떨어질 것이다. 밤이 늦으면 아무리 유창한 달변도 졸음 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무엇보다 술을 조심해야 한다. 술기운에 본인은 훌륭한 스피치였다면서 만족스러워 해도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동호회나 단체 모임

주요 특징 : 개인적, 초점이 확실한 내용, 기지와 재치, 대화형

시간제한에 관해서는 미리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식사를 먼저 하는 자리가 아니면 보통 30~45분 정도 진행된다. 이런 자리에서는 질문 할 기회가 따로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할당된 시간에 질문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지, 질문을 강연자가 직접 받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담당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맨 마지막 행사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임을 알리고 최종 질문 받는 일을 누가 할 것인지 사전에 합의가 되어야 한다.


강의나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주요 특징 : 시간제한, 정보 제공, 격식 중시, 대개 기술 관련 내용

산업 컨퍼런스에서 스피치를 하거나 비즈니스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학술적인 내용으로 강의를 할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앞 장에서 이미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런 경우에는 항상 시간제한이 있는데 4장에서 설명한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질의응답이 따로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하다. 스피치의 내용은 행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컨퍼런스의 일정 중에서 처음에 하는 강연인지 중간이나 마지막에 하는 강연인지도 중요하다. 다른 강연자의 스피치 내용이나 컨퍼런스에서 일어난 일들에 언급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토론회 발언

주요 특징 : 시간제한, 대화형, 수사학적, 격식을 중시하는 성격과 그렇지 않은 성격 혼재

입론을 할 때, 그에 반대하거나 찬성할 때, 참가자 입장에서 발언을 할 때 모두 시간제한이 있다. 격식을 차리는 행사지만 스피치를 할 때는 대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발언하기 때문에 강연자들이 청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이므로 7장 말미에 덧붙인 글에서 설명한 세 가지 수사학적 방법론(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이 모두 사용된다. 주장을 할 때 열정적인 태도와 유머 등으로 사실 내용을 강조하기도 한다. 토론 교과서에 보면 스피치를 할 때 상대방이 아니라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예의를 갖춰 자제력 있는 태도로 발표하라고 되어 있지만 항상 '험악한 분위기'에 대한 언론 기사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게 토론하다는 것이 이상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원격방송

주요 특징 : 간결, 고립적, 수동적 대응, 격식 중시

전화를 이용하거나 홈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이나 녹화방송으로 스피치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말하는 스피치와 달리 고립된 상태로 의사소통한다. 인터뷰 진행자와 시선을 마주칠 일도 없고 순조롭게 잘 되고 있는지 시각적 피드백도 실시간으로 받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뜻으로 내는 목소리 반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라디오 인터뷰 진행자들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자제하기 때문이다. 다른 참석자들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패널로 발언할 때는 상황이 더 나쁘다. 인터뷰 진행자가 전권을 갖기 때문에 질의응답을 하듯이 소극적으로 반응할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질문에 답을 하면서 얼마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 최소한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메모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 없이 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관록 있는 라디오 진행자들은 수많은 청취자들을 잊어버리고 단 한 사람을 상대로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3~4분 정도로 길이가 짧다. 따라서 요점만 최대한 간결하게 말해야 한다.


팟캐스팅

주요 특징 : 가변적인 시간, 고립적, 주도적, 격식을 따지는 정도가 다양

팟캐스팅도 전통적인 방송 프로그램처럼 다양할 수 있다. 형식에 구애 없이 제작되는 팟캐스팅은 길이가 대부분 5~15분 정도지만 한 시간 이상 방송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오디오만으로 이루어진 방송도 있고 비디오가 동반될 수도 있다. 실시간 방송이 아니라면 재녹음이나 편집이 가능하고 그럴 경우에 즉흥성과 자연스러운 맛은 줄어들지만 유창성은 향상된다. 모든 방송이 다 그런 것처럼 청취자나 시청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다. 따라서 능동적, 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내용을 선정해야 한다. 동영상을 촬영할 때 배경에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 없는지 점검하고 동영상에 몸의 어느 부분까지 노출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화면에 잘 나오도록 프레임을 신경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말할 때 몸을 많이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심하다. 나는 매번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즉석연설

주요 특징 : 간결, 비격식, 개인적, 수동적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말씀'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갈 때는 미리 준비를 해야 시답잖은 말로 본인은 물론 듣는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매끄러운 연설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개인적인 일화를 곁들여 행사에 대해 느끼는 소회를 들려주면 다들 좋아할 것이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쌓아두면 한 번씩 꺼내 유용하게 재활용할 수 있다. 신문이나 TV에서 본 최신 뉴스를 암시하면 이야기의 신선도를 보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