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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저   자 : 타마키 타다시
출판사 : 스몰빅인사이트
출판일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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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잃어버린 20년이 던지는 경고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의 종말

일본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자.'라는 풍조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적어도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부동산을 재테크나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일은 없어졌다. 집은 어디까지나 내가 '생활하기 위한 공간'이 되었다. '좋은 부동산은 비싸고, 그렇지 않은 것은 싸다.' '집은 생활하기 위해서 구입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일본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생각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생을 만나서 부동산에 대해 물어보면 일단 두 개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돌아가셔서 일시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일 때문에 아주 작은 원룸을 회사 근처에 빌려 쓰고 있는 정도다.


부동산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활하기 위한 것'으로, 더는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부동산의 뉴노멀new normal(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인 것이다.


한국도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상당 부분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상승했으면 하는 '기대'와 '희망'이 주류인 것 같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인 버블'인지 아닌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반드시 과거 일본의 상황과 똑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한민국 부동산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해소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전셋값'이 '매매 가격'에 육박하는 현상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2016년 중반인 시점에서 아직 서울 등의 전셋값은 상승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아직 전셋값이 좀 더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역전세난'이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너무 많이 올라버린 전세 보증금을 되돌려 주기 힘든 집주인들이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상식은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바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이토록 낮은 금리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세 제도'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한국의 가계 부채가 1,200조 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상점에 존재하는 '권리금 제도'는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랐을 때의 산물로서 이것 역시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은 분명 사라질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한국의 부동산 가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은, 아니 나는 어떻게 해서 부동산 가격의 급속한 하락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결국 거의 20년간에 걸쳐 '실패'를 조금씩 나누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버블 경제의 붕괴로부터 일본경제가 미미하게나마 회복하기까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부동산에 대한 사고의 차이, 교육제도, 자녀와의 관계, 서울에 대한 극심한 집중도 등 한국경제에는 한국경제만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일본과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재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인구 구조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다. '58년 개띠'가 그 전형일 것이다. 지금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 세대가 40대였던 2000년대 초반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후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처럼 맹렬한 부동산 투자를 할까? 결혼하지 않은 젊은 세대와 1~2인 가족의 증가로 베이비붐 세대와 같은 부동산 수요는 기대하기 힘들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앞으로 '부동산 신화'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1960년대 초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이렇듯 한국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국가다. 그 결과 높은 생활수준은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급속한 소득 증가와 함께 주택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넓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추구하는 욕구와 맞물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개발이 진행되었다. 부동산이 팔리면 가구나 가전제품 등도 함께 팔린다. 이러한 선순환이 한국경제를 더욱 성장시켰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그로 인해 인구는 늘지 않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왜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부동산은 중요한 '자산 형성 수단'이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부동산을 사놓으면 반드시 올라서 재산이 불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주거환경은 기본적인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사람들은 쾌적한 생활을 하기 위해 부동산을 사거나 빌린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고 부동산이 돈을 버는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 비정상이다. 특히, 5, 60대 이상의 시니어 세대에게는 '안전 투자'가 최우선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어서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했다면 별개지만, 그렇지 않다면 '투자를 위해서는 부동산이 최적이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필자의 생각으론 최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정말로 심각할 정도다. 마치 '참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파는 사람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사는 사람은 '내릴 것'이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어서 매매가 성립되지 않는다. 매매가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여전히 부동산 중개업소의 '표시 가격'은 높은 채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을 담보로 한 융자는 반드시 반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세가'가 높기 때문에 일단은 돈이 회전되고 있지만,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거나 경기가 더욱 악화되어 '전세' 시장이 무너지면 어느 시점에서 파는 사람은 싸게라도 팔려고 할 것이다. 그때는 아파트 가격이 반 토막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일본경제와 나를 포함한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일본의 교훈을 참고해서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뉴노멀'이 오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정상적인 사태는 반드시 수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변화를 얼마만큼 준비된 자세로 대비하느냐가 관건이다.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야 할 때

버블 경제의 붕괴가 시작될 무렵 일본에서는 '디플레이션 논쟁'이 격화됐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는 '인플레이션'보다도 무서운 '경제 병'이라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플레이션은 경제가 축소되고 대책도 잘 통하지 않아서 장기화되기 쉽다는 분석이 있다.


이 즈음, "디플레이션은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가 있었다.


나쁜 디플레이션은 무엇일까?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경제가 축소되는 것이다. 그런데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그것이 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의 실적도 악화되고 급여도 떨어진다. 그러면 소비는 위축되고, 그 결과 기업의 생산 활동은 저하된다. '물가 하락 ⇒ 기업 실적 악화 ⇒ 급여 하락 ⇒ 소비 위축 ⇒ 생산 감소 ⇒ 기업 실적 악화 ⇒ 급여 하락….'


이와 같은 경기 침체의 악순환 현상을 '디플레이션의 스파이럴 현상'이라 한다. 가장 무서운 경제 병이다. 그렇다면 좋은 디플레이션은 어떤 것일까? 비싼 물가가 내려가면서 소비를 자극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식품, 의류 가격 등 수많은 품목의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그런데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물가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많은 경제학자는 '악성 디플레이션=장기 불황'의 시작이라고 경종을 울렸지만, 소비자 중에는 "물가가 떨어지는 게 뭐가 나쁘냐."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1990년대 후반, 어떤 대형 마트가 수입 맥주 한 캔을 100엔에 팔았다. 그 당시 이 마트는 '소비자 지킴이. 엔고 환원 가격파괴 세일'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이 광고에 유력 기업인이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맥주를 100엔에 파는 것이 정말로 소비자를 위한 것인가. 그렇게 싼 가격으로 파는 것은 결국 기업의 수익을 감소시키고, 종업원의 급여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다." 이 논쟁은 결국 어느 쪽이 맞는지 가리지 못하고 끝났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는 오랫동안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것이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처럼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서 일용품이나 식료품을 대량으로 사재기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일본에 와서 "싸고 품질이 좋다."라고 말하며 대량으로 물건을 사서 돌아간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좋은 디플레이션일까?, 나쁜 디플레이션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물가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국제표준에 가까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20년.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플레이션을 잊어버린 일본인. 디플레이션을 모르는 한국인.'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은 지 20년이 지난 일본은 현재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사실상 인플레이션 목표치까지 설정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어떨까? 오랫동안 인플레이션에 익숙했던 소비자는 아직 물가가 떨어진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듯하다. 정책 당국자도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경제 대책이 계속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돈의 배반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이 피해야 할 일본의 실패

1990년대 초부터 약 20년간, 일본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1980년대 공전의 호황을 경험했던 일본인들은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어찌할 줄 모르고 혼란스러워했다. 그 와중에 '불황', '저성장', '고용 불안' 등은 '당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래의 4가지 항목은 당시 일본인이 새롭게 겪게 된 '현실'이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말로 바꿔 말하면, '뉴노멀'이었다.


1) 물가는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2) 주가는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것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너무 길게 지속된 탓에 '위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위기의 만성화'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젊은이들은 취직을 포기했다. 30~40대의 한창 일을 해야 할 세대도 '그냥저냥 생활만 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한 불황'이었다. 그러다 '잃어버린 10년'이 되었고 결국엔 '잃어버린 20년'이 되고 말았다. 왜 이런 '위기의 만성화'가 일어난 것일까? 많은 착각과 잘못된 생각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일본인이 '위기의 만성화' 상황에서 익숙해져 버린 '10가지 착각'은 다음과 같다.

1) 경제 정체는 일시적이라는 생각

2) 과거의 성공 경험과 법칙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

3) 누군가 다른 사람이 위기를 타개해 줄 것이라는 생각

4) 누군가 책임을 질 것이라는 생각

5) 자신의 회사만큼은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

6) 자신의 세대까지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

7) 좋은 상품만 만들면 팔릴 것이라는 생각

8) 고령화 사회는 '먼 미래'라는 생각

9) 그래도 '일본은 특별하다.'라는 생각

10) 나는 남에 비하면 상황이 '낫다'라는 생각

10개 항목을 잘 읽어보길 바란다. 자신 또는 자신의 회사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위험 신호'다. 반드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피해 갈 방법을 마련하기 바란다.



불황에도 생존하는 비즈니스 방정식

쉬어갈 줄 아는 자가 승리한다

토요타

【토요타의 한계 돌파에서 배울 점】

- 성공은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과거의 성공 모델과 결별한다.

- 미래 성장 동력에 집중한다.

- 기업 경영과 주주 대응에 대한 혁신을 통해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난다.


성공의 순간에 위기는 닥쳐온다

'세계 1위 기업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토요타 자동차는 기업이 안고 있는 공통의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끊임없는 자기혁신으로 '세계 1위'라는 한계 돌파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11일, 토요타 자동차는 2015년도 결산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4.3% 증가한 28조 4,031억 엔, 영업이익은 3.8% 증가한 2조 8,539억 엔으로 과거 최고의 이익을 갱신했다.


그러나 이날 결산 발표에서 토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단기적인 수익에 한가롭게 일희일비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세계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 자동차는 2015년 4월 15일 멕시코와 중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멕시코에는 1,000억 엔을 투자하여 소형 승용차 '카로라'를 연간 20만 대 생산할 계획이다. 그리고 중국의 합병 공장에는 500억 엔을 투자하여 신형 모델을 연간 10만 대 생산할 계획이다.


"드디어 토요타의 반격이 시작됐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한목소리로 토요타의 결정을 이같이 평가했다. 단순한 증산 투자가 아닌 중요한 전략적 결정으로 본 것이다.


"앞으로 3년간 공장 신설을 동결한다."


토요타는 2013년 이렇게 선언했다. 당시는 토요타, GM, 폭스바겐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토요타의 '3년간 공장 신설 동결'이란 결정은 충격적인 뉴스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5년, 토요타는 동결 기간을 1년 앞당겨 해제한다. 모두가 '반격 선언'이라 보는 이유다. 이 2년간 토요타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세계 시장을 향한 토요타의 쾌속 질주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멈출 줄 몰랐다. 북미, 동남아시아, 중국 등 주요 시장뿐 아니라 인도, 러시아, 동유럽, 브라질 등 신흥 시장에서도 토요타는 잇달아 공장을 신설하며 판매 대수를 급속하게 늘려 갔다.


2008년은 토요타에 있어 역사에 남을 만한 해였다. 세계 시장에서 판매 대수가 897만 대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GM을 체치고 세계 1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GM은 77년간에 걸쳐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대역전극이었다.


토요타는 1937년 창업 이래, 끊임없이 GM과 포드라는 미국의 거대 자동차 업체를 목표로 달려 왔다. 포드의 생산 시스템, GM의 다브랜드·다채널 전략, 글로벌화, 다각화 등 토요타에 있어 이 두 회사는 항상 교과서였다. 그런 GM을 따라잡은 것이다. GM은 이듬해인 2009년 사실상 도산했다. GM의 황금시대는 이 시점에서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토요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토요타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토요타는 2008년에 자동차 업계 세계 1위가 되긴 했지만, 판매 대수는 전년의 917만 대에서 877만 대로 감소했다. 같은 시기에 GM이 927만 대에서 820만 대로 판매가 급감한 덕분에 1위에 올랐던 것이다. 2008년 후반부터 토요타는 판매 감소의 길을 걷는다. 리먼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북미를 중심으로 판매가 단숨에 급감한 것이다. 2009년의 판매 대수는 전년보다 100만 대가 더 감소한 771만 대에 그친다. 그 결과 2009년 3월기의 결산에서 토요타는 적자로 전락하고 만다. 2008년 3월기의 영업이익은 2조 2,700억 엔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최대 규모였지만, 불과 1년 후에는 4,61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2009년에도 GM 등의 판매 부진으로 인해 토요타가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적자를 기록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적자 결산을 계기로 토요타 아키오 씨가 사장에 취임했으나, 고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해, 미국에서 '렉서스'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한다. 그로 인해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2010년 2월에 미 의회의 청문회에서 혹독한 질문 공세를 받게 된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토요타의 생산기지는 심각한 피해를 당한다. 부품이나 재료 관련 제조사들도 피해가 커서 세계 각국의 생산 체제에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토요타는 그리도 바라던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순간, 미증유의 위기에 빠지고 만 것이다.


토요타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라이벌 제조사들은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GM은 회사 회생 절차를 통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고, 폭스바겐은 중국 시장 등에서 약진하여 세계 1위 자리를 넘볼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현대 자동차나 닛산 자동차, 혼다도 토요타를 목표로 순조롭게 성장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선택한 '의도적 휴식'

이런 상황에서 토요타가 선택한 것은 반격의 길이 아닌 '3년간 공장 신설 동결'이었다. 시간을 두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리먼 사태 후의 적자 전락, 리콜 문제, 동일본 대지진 등 많은 고난에 직면하면서 토요타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길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의도적인 휴식'의 길을 선택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일부러 '일단 멈춤'을 선택하고 경영의 기본을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토요타는 1995년 이래 세계 시장에서 대공세를 펼치며 GM과 포드를 추격했다. 매년 세계 각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놀라울 정도의 기세로 증산을 거듭했다. 그러나 리먼 사태로 세계 수요가 급감하게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토요타의 연간 최대 생산 능력은 1,000만대에 이르렀으나 수요 급감으로 인해 300만 대 가까운 '잉여 능력'을 떠안게 되었다.


원래는 바로 생산량을 줄여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10년 이상 '증산'에만 집중하다 보니 생산량을 줄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세계 시장에 맞춰 세부화된 차종을 개발한 관계로 부품이나 재료의 발주, 생산 시스템이 복잡해져서 신속하게 감산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증산에는 강하지만 감산에는 약한' 회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증산을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설비 투자가 급증했다. 토요타는 1995년 이래, 거의 매년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2~4개의 공장을 신설하며 약 50만 대씩 생산 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를 위해서 11조 5,000억 엔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고비용 공장'인 관계로 생산 규모가 감소하면 거액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그 시장에 맞는 차종을 개발, 생산해온 탓에 차량 종류는 100종류, 엔진은 800종류가 넘었다.


이 모든 것이 '확대 최우선'의 노선을 지향해온 결과였다. 확대 주의는 GM과 포드를 '따라잡기' 위해서 필요했고, 한때는 실제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세계 1위'가 되고 난 후에는 그것이 한계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공 모델을 과감히 버린다

'신공장 건설 동결' 기간에 토요타는 신차 개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TNGA. 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의 도입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플랫폼을 비롯한 주요 부품들을 통일시켜 부품, 소재의 조달, 신차 개발 추진 방법 등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통의 플랫폼으로 복수의 차종을 개발함으로써 원가, 개발 기간, 공장의 신규 투자액을 크게 축소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플랫폼 공통화'는 과거에도 해오던 일이지만, 그 규모와 시스템을 전사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변경했다.


토요타는 과거에 신차를 개발할 때 한 사람의 치프 엔지니어(CE)가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TNGA를 도입한 후에는 일단 중장기적인 차량 개발 계획을 결정하고, 주요 부품은 가능한 모듈화한 다음에 CE는 디자인, 내장, 외관 등의 개발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또한, TNGA를 바탕으로 한 생산 시스템의 구축으로 생산 라인이 기존보다 짧아져서 설비투자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토요타의 지금까지의 강점이 성공 모델'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토요타는 이 작업을 엄청난 속도로 추진했다. 그 결과 공장의 신설 투자액을 최대 30~40% 정도 줄일 수 있었고, '공장 신설 동결'을 1년이나 앞당겨 해제할 수 있었다.


TNGA의 효과는 이미 일부 차종에서 나오고 있다. 토요타의 2015년 3월기의 영업이익은 2조 7,502억 엔으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 리먼 사태, 리콜 문제, 동일본 대지진으로 커다란 위기에 빠졌지만 멋지게 부활한 것이다. '공장 신설 동결'을 해제한다는 선언을 계기로 토요타는 다시 세계 시장에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판매 점유율도 중시하지만, 그 이상으로 유연한 생산과 개발 체제에 의한 수익을 중시한 확대 노선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래도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를 1997년에 발매하여 세계의 친환경 자동차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던 토요타였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일을 시작했다.


2015년 2월 24일, 토요타는 아이치 현 토요타 시의 공장에서 수소를 사용한 연료 전지 자동차의 양산을 시작했다. 차명은 '미라이MIRAI'로 일본어의 '미래'라는 의미이다. 미라이의 양산 개시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2010년 2월 24일,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미국 워싱턴의 미 의회 청문회에서 토요타 자동차의 리콜 문제에 관해 의원들로부터 따가운 비판과 질문을 받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후 토요타의 부활을 상징하는 기념식이 열린 것이다.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2015년 토요타는 기업 경영 면에서도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6월 17일에 토요타 시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3시간에 걸쳐 주주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토요타가 7월 말, 세계적으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주식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장기보유를 하는 개인 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AA주'라는 이름의 새로운 주식이 바로 그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행 시점에서 주가보다 20% 정도 높은 가격으로 발행한다. 주식에는 의결권도 있고, 배당도 하지만, 5년간은 매각할 수 없다. 5년 후에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구입한 가격으로 토요타에 매각할 수 있다.


투자가에게는 주가 변동의 위험성이 없는 주식이고, 토요타에는 단기적인 주가나 업적에 좌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토요타의 경영을 지켜주는 개인 투자가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새 주식은 주주와 함께 미래의 자동차 회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반격에 나선 토요타의 장래를 장기 보유 중인 개인 주주와 함께 열어나가고자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신주 발행은 주주의 선택지를 넓혀서 토요타를 이해해주는 사람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포석이다. 세계 1위의 판매 대수와 고수익에만 강한 것이 아니라, 주주의 지지를 얻어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욕이 보인다.


토요타는 2014년 세계 판매에서도 세계 1위의 자리를 유지했다. 2013년도 이후의 '신공장 건설 동결'의 영향이 있었지만, 2015년 4년 연속으로 1위를 지켰다. 그렇지만 단기적인 판매 대수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토요타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공세'를 시작했다. 먼저 단행한 것은 조직 개편이었다. "토요타는 급격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2016년 5월 11일, 2015년도 결산 발표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토요타는 덩치가 너무 큰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4월에 '사내 컴퍼니 제도'를 도입했다. 이미 영업 부문에서는 선진국을 담당하는 '제1토요타'와 그 외 지역을 담당하는 '제2토요타'로 나뉘어 있었지만, 자동차 개발이나 생산 분야에서도 '소형차', '고급차', '승용차' 등 7개 회사로 분할했다. 각각의 회사에는 전무급의 '경영자'를 배치했다. 소비자들의 세세한 요구를 수용하여 획일적이지 않은 자동차 개발을 하는 것이 목표다.


미래를 위한 준비

'미래'를 위한 준비도 계속하고 있다. 친환경차 등의 개발에 지속적으로 거액의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고 있고, 자동 운전이나 AI(인공지능) 등의 분야에도 한층 몰두하고 있다.


토요타는 2016년 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AI 연구소 '토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TRI)'를 설립하여 5년 동안 1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이미 실리콘밸리 외에도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나 미시간Michigan 대학 근처에 TRI 연구소를 설립하여 AI 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더욱이 구글과는 로봇 개발 회사 인수 건과 관련하여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AI나 자동 운전 등 미래의 기술 취득에 대한 포석이다.


토요타는 '잃어버린 20년' 동안에도 꾸준히 성장을 계속해 왔다. 일본 내의 시장이 축소되자 과감하게 글로벌 시장 개척을 추진했다. 20년 전에는 쫓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GM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토요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항상 '대기업 병'에 대한 위기감을 가지고 새로운 차, 새로운 만족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토요타도 1990년대까지는 GM이나 독일의 자동차 업체를 뒤쫓는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였다. 그러나 현재는 새로운 생산 시스템, 연료 전지차 등 지속적인 자기혁신을 통해 선도자(first mover)로서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재 육성만이 살길이다

토요타 자동차는 2016년 8월, 거의 모든 종합직 사원을 대상으로 한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새로운 근무방법을 모색하는 토요타의 실험은 한국 기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토요타의 '재택근무 제도'는 획기적인 내용이다. 경리, 인사, 영업, 기획 등의 사무직과 개발 등의 기술직 2만 5,000명을 대상으로 '1주일에 1회, 2시간'만 출근하면 그 이외에는 자택 등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 이 제도로 육아나 간호 등으로 매일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힘든 사원이라도 토요타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의 도입은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본격적인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돌입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큰 의미로는 회사와 사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회사는 사원이 열심히 일해서 '실적'을 올리길 바란다. 그 대가가 '임금'이다.


원래는 회사와 사원은 대등한 관계여야 하지만, 아무래도 임금을 지불하는 회사 쪽의 입장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재택근무 제도는 임금을 지불한다는 이유, 또는 임금을 올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원에게 '무리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하지는 않는가?' 또는 '능력과 의욕이 있음에도 회사를 그만둬야만 하는 사원은 없는가?', '어떻게 하면 사원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자 하는 실험이다. 토요타의 '인재 육성'의 일환인 것이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2009년의 사장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에 GM을 따라잡고 판매 대수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된 토요타지만 토요타 아키오 사장이 취임하고 바로 큰 위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1980년대 이후 급성장을 계속해 왔다. '품질이 좋은 차를 적정한 가격에 판매한다.'라는 제조사로서 당연한 일을 성실히 해온 덕분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세계 1위가 된 순간 위기가 닥쳐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토요타 사장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업적이나 판매 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더 좋은 차'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최우선이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의미다. 토요타가 최고의 실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원이 능력을 높이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회사와 사원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토요타는 '회사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사원이 이를 달성하면 임금을 올려서 보상을 한다.'는 식의 방법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토요타는 연료 자동차, AI, 자동 운전,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량생산 모델 시대'와는 다른 인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일해 줘야만 한다. 그에 맞는 고용 형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택근무의 도입은 이러한 '근로 형태 혁명'의 일환이다.


어느 나라든 사원을 '도구'나 '원가'로 생각하는 경영자는 수없이 많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무리한 명령을 계속해서 내리고, 이익이 오르지 않으면 '경비 삭감'을 위해서 인원을 감축한다. 과거 미국에는 '중성자 폭탄 CEO'나 '전기톱 CEO'라는 별명을 가진 '스타 경영자'가 있었다. 중성자 폭탄은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 인간만을 몰살시킨다. 건물은 남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사라질 정도로 격렬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CEO가 한때 미국의 월가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는 좀 더 악질적인 '블랙 기업'이라는 말도 있었다.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거나 가혹한 조건으로 사원을 고용하는 기업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CEO나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회적 비판을 받거나 사원이 채용되지 않아서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원을 너무 많이 감원해서 활력을 잃어버리는 예도 많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어떨까? IMF 위기를 빠른 경영과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극복하여 찬사를 받은 한국 기업들이지만, 사원들의 '기업 만족도'는 결코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심야까지 일하는 것이 만성화되어 있다. '위기 대응'이라는 이유로 오전 5시나 6시에 출근하게 된 것이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른다. 철야나 휴일 근무를 하는 사원의 이야기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업 문제가 최근 몇 년간 업적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노동 시간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열정 페이'라는 말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회사가 사원에게 많은 공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마이너스 효과를 내게 된다.


한국에서는 과거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대기업을 피해 공무원을 지향하는 경향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아직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을 그만두고 해외로 이민을 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성실성과 우수성은 세계 제일 수준이다. 이러한 귀중한 인재들임에도 불구하고 국부를 창조하는 기업을 기피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 버린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크나큰 손실이다.


선진국의 기업을 목표로 달렸던 시대에는 게임의 규칙이 단순했다. 어떻게든 선진국 기업보다 장시간 일하고 원가를 줄여서 조금이라도 싼 상품을 만들어 내면 됐다. 경영자는 부하를 압박하고 때에 따라서는 원가 삭감을 이유로 필요 없는 사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찾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최대의 무기는 바로 '인재'다.


토요타가 실행한 개혁의 시사점은 회사가 자세를 낮추고 사원의 시선에 맞춰 '일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고 젊은이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며, 작아지는 파이를 둘러싸고 노사 간에 격렬한 다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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