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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Up Short: A Memoir of My America

미국, 사다리가 짧아진 사


Coming Up Short: A Memoir of My America
    | Robert B. Reich
ǻ | Knopf
    | $30.00
| 202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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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가 짧아진 사회의 언어

한때 미국은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움직였다. 그 믿음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생기지 않았고, 오를 수 있는 통로가 실제로 존재할 때 유지됐다. 문제는 통로가 좁아지는 순간보다, 좁아진 통로를 사람들이 ‘자기 탓’으로 해석하게 되는 순간에 더 빠르게 굳어진다.

보이지 않는 패배감의 제조 공정
불평등은 숫자이면서 동시에 감정이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통계로 측정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형태로 저장된다. “분배가 불공정하다”보다 더 자주 떠오르는 감정은 “내가 밀리고 있다” “내가 부족하다” 같은 자책이다. 사회 전체가 실패를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의 문제로 번역하기 시작하면, 불평등은 단지 결과가 아니라 평가 체계가 된다. 성공은 미덕이 되고 실패는 결함이 된다. 그러면 구조의 문제는 흐릿해지고, 남는 것은 서로를 향한 도덕 판정과 조롱뿐이다.

이 번역 공정이 강해질수록, 정책 논쟁은 생활의 언어를 잃는다. 임금, 교육, 의료, 주거 같은 주제는 “어떤 규칙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가”의 질문이어야 하는데, 점점 “누가 더 성실한가”의 질문으로 바뀐다. 그 순간부터 공공의 해법은 ‘설계’가 아니라 ‘훈육’이 되고, 사회는 문제를 고치는 대신 사람을 벌주려는 방향으로 기운다. 불평등이 위험한 이유는 돈의 격차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이 감정과 정치의 형태를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사다리가 짧아지는 방식은 선언이 아니라 누적이다
상승의 통로가 무너지는 과정은 대개 조용하다. “오늘부터 사다리를 없애겠다”는 선언은 없다. 대신 사다리는 조금씩 가늘어진다. 노동의 협상력이 약해지고 임금은 생산성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며, 학자금과 주거비 같은 ‘입장료’가 올라간다. 의료비와 돌봄 비용이 불안을 일상으로 만들고, 실수 한 번이 회복되지 않는 구조가 강화된다. 이런 변화는 각각은 제도나 시장의 세부처럼 보이지만, 함께 놓으면 한 가지 결론으로 모인다. 열심히 일해도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려운 사회가 된다.

여기서 결정적인 변화는 ‘노력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이 아니다. 노력의 가치가 유지되려면 노력과 성과를 연결하는 중간의 사다리(공정한 교육, 감당 가능한 주거, 예측 가능한 노동시장, 공정한 세제, 재도전 가능한 안전망)가 있어야 한다. 중간 단계가 사라지면 개인의 성실함은 계속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때부터 성실함은 결과를 만드는 힘이 아니라 결과를 설명하는 도덕이 된다. 성공한 사람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실패한 사람은 더 나쁜 사람으로 읽히며, 사회는 격차를 ‘정당한 차이’로 오인한다.

괴롭힘의 사회학, 압박이 표준이 되는 순간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제는 협상보다 압박에 가까워진다. 괴롭힘의 핵심은 공개 폭력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힘이다. 상대의 선택지를 줄이고, 말하기 전에 침묵하게 만들고,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꾼다. 이러한 방식이 특정 개인의 성격을 넘어 제도와 관행으로 확장될 때, 괴롭힘은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 된다. 불공정은 누군가의 일탈이 아니라 ‘유리한 기술’로 자리 잡는다.

권력이 집중될수록 압박은 더 효율적이 된다. 법무와 로비, 계약 구조, 플랫폼 규칙, 정보 비대칭이 결합하면, 강한 쪽은 위험을 분산하고 약한 쪽은 위험을 떠안는다. 계약은 동등한 합의가 아니라 책임의 전가가 되고, 시장은 경쟁의 장이 아니라 지위의 유지 장치가 된다. 이때 약한 쪽은 단지 소득이 낮은 것이 아니라, 말할 권리와 선택할 권리까지 함께 잃는다. 불평등은 금전의 격차를 넘어 관계의 격차로 진화한다.

경제의 불안은 문화전쟁으로 번역된다
사다리가 짧아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설명을 찾는다. 설명이 없으면 불안이 커지고, 불안이 커지면 분노가 필요해진다. 가장 쉬운 분노는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다. 이민자, 특정 세대, 특정 지역, 특정 직업군이 ‘원인’으로 호출된다. 그러면 경제의 문제는 문화전쟁의 언어로 바뀐다. 누가 도덕적으로 옳은가, 누가 나라를 망치는가, 누가 특혜를 누리는가 같은 프레임이 경제적 좌절을 흡수한다.

이 과정은 정치에도 유리하게 작동한다. 구조를 고치는 데는 시간과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하지만, 분노를 동원하는 데는 적이 필요할 뿐이다. 분노가 정책의 연료가 되면 해결은 느려지고 처벌은 빨라진다. 처벌 중심의 정치가 강화될수록 사회는 더 쪼개지고, 쪼개질수록 공동의 해결 능력은 약해진다. 결국 경제적 불안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정치적 불안으로 변한다. 불평등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다.

상승의 약속이 무너지면 신뢰가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최소한의 감각, 실패가 영구 낙인이 아니라는 믿음, 노력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상승의 약속이 무너지면 신뢰가 먼저 무너진다. 신뢰가 무너지면 협력이 줄고, 협력이 줄면 공공재 투자가 어려워지며, 공공재가 약해지면 다시 개인이 더 큰 부담을 떠안는다. 그 부담은 다시 불안을 키운다. 이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더 개인화된 생존 전략으로 이동한다. 교육을 사적으로 해결하고, 의료를 개인 책임으로 떠안고, 노후를 각자도생으로 준비한다. 그 결과, 공동체는 점점 더 ‘같이 살기 어려운 장’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불평등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문제”로만 좁히지 않는 것이다. 중산층의 불안, 젊은 세대의 미래 상실감, 지역 간 격차, 학력·직업에 따른 존엄의 차이가 한꺼번에 얽히면서 사회 전체의 기대 수준을 바꾼다. 기대가 낮아지면 도전은 줄고, 도전이 줄면 성장도 둔화되며, 성장 둔화는 다시 분배 갈등을 키운다. 경제와 문화와 정치는 서로를 밀어 올리며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시 길어지려면 무엇이 설계돼야 하나
상승의 통로를 복원하는 일은 “더 열심히”라는 구호로 되지 않는다. 통로는 도덕이 아니라 구조물이다. 구조물을 다시 세우려면, 노력과 성과를 잇는 중간 지점을 복구해야 한다. 감당 가능한 주거, 회복 가능한 교육 비용, 예측 가능한 의료·돌봄 부담, 노동의 협상력, 공정한 세제와 규제, 재도전 가능한 안전망 같은 것들이다. 이 요소들은 서로 연결돼 있어, 하나만 손봐서는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 주거가 막히면 임금이 올라도 삶이 나아지기 어렵고, 교육비가 과도하면 출발선이 고정되며, 의료비가 불안을 만들면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고 혁신은 줄어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설명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실패가 개인 결함으로만 해석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제도 개혁도 쉽게 “무책임한 퍼주기”로 낙인찍힌다. 반대로 구조의 문제를 구조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정책이 도덕 전쟁이 아니라 생활의 설계로 돌아온다. 사다리를 다시 길게 만들려면, 사다리가 왜 짧아졌는지에 대한 공통의 언어가 먼저 필요하다. 언어가 합의되면 설계가 가능해지고, 설계가 가능해지면 신뢰가 조금씩 돌아온다.

결국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많은 사람이 “내가 부족해서”라고 믿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을 개인의 자책에서 사회의 설계로 되돌릴 수 있는가. 사다리가 짧아진 사회는 더 강한 사람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좋은 구조물을 요구하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