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국가와 법률가 사회, 두 세계의 속도
새로운 시각: 속도와 절차의 충돌
중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렬한 대비는 ‘엔지니어 국가’와 ‘법률가 사회’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중국은 무엇이든 빠르게 짓고, 미국은 무엇이든 절차와 논쟁 속에서 늦게 움직인다. 이 차이는 단순히 건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 사고방식의 차이로 드러난다.
댄 왕(Dan Wang)은 이를 명확히 지적한다.
“중국은 엔지니어 국가로, 물리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 모두에 쇠망치로 접근한다. 반면 미국은 법률가 사회로서 모든 것을 중단시킨다(China is an engineering state, which brings a sledgehammer to problems both physical and social, whereas the United States is a lawyerly society, where everything is gavelled to a halt)."
이 문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두 나라가 보여준 궤적을 요약하는 표현이다.
중국의 엔지니어적 속도
중국의 발전상을 떠올리면 언제나 ‘속도’와 ‘규모’라는 단어가 따라온다. 고속도로와 고속철, 초대형 공장과 도시 인프라까지 중국은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을 바꾸어왔다. 미국이 18년 동안 구축한 고속도로망을 중국은 9년 만에 다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중국은 고속도로망을 18년에 걸쳐 구축했고… 같은 규모의 도로망을 불과 9년 만에 다시 만들었다(China took 18 years to build a motorway network… Then China did it again in nine years)."
중국에서 이러한 속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한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체제와 결과 중심적 의사결정 방식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효율과 성과를 최우선으로 두며, 위험과 부작용은 뒤로 미뤄둔다. 그 결과 눈부신 성취가 나타났지만 동시에 한 자녀 정책이나 제로 코로나 봉쇄와 같은 사회적 실험도 같은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사회 문제조차 엔지니어적 해결책으로 다루려는 태도는 사람을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냉정한 면모를 드러낸다.
중국 정치의 핵심 권력자들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국가적 기조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2020년까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엔지니어 출신이었다(By 2020 all nine members of the Chinese Politburo’s standing committee had trained as engineers)."
국가 최고 의사결정자가 동일한 사고방식을 공유할 때, 사회 전체가 기술과 건설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의 절차와 자유
미국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움직인다. 변화와 개혁은 언제나 법률과 규제, 소송의 그물망 속을 지나야 한다. 환경 평가와 행정 심사, 주민 반대와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프로젝트는 수십 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속도를 늦추지만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창발적 아이디어와 다양한 문화적 성취의 토양이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 할리우드의 문화 산업,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소들은 모두 이러한 자유와 법치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스스로 만든 규칙의 무게에 발목이 잡히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댄 왕은 이를 간결하게 요약한다.
“미국은 법률가들의 정부, 법률가들에 의한 정부, 법률가들을 위한 정부다(The United States … has a government of the lawyers, by the lawyers, and for the lawyers)."
법률의 지배는 미국 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지만, 과도한 절차주의는 실행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끝없는 과정 속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두 모델이 보여주는 세계
중국과 미국의 대비는 속도와 절차, 집단과 개인, 가시적 성취와 창발적 혁신이라는 축으로 설명된다. 중국은 짓는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미국은 토론과 절차로 사회를 지탱한다.
댄 왕은 이 차이를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중국은 짓고, 미국은 토론한다(China builds, America debates)."
이 간명한 대조 속에는 두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담겨 있다.
세계와 한국이 직면한 선택
이 두 모델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개발도상국은 빠르고 값싼 인프라 성과를 원하기 때문에 중국식 모델을 매력적으로 본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제도적 안정과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미국식 절차가 여전히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 이 두 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중국처럼 실행력과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미국처럼 자유와 절차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같은 전략 산업에서 한국이 요구받는 것은 엔지니어적 효율과 법치 기반의 신뢰를 함께 확보하는 일이다. 두 모델을 절충해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적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긴장 속의 미래
중국의 엔지니어 국가 모델은 눈부신 성취를 가능하게 하지만 인간을 수단화할 위험을 동반한다. 미국의 법률가 사회 모델은 느리지만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장기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미래는 이 두 모델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댄 왕은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강조한다.
“미국은 집을 짓고, 대중 교통을 짓고, 탈탄소화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 시스템을 지을 수 있는 엔지니어링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America needs an engineering culture to build homes, build mass transit, and build the energy systems necessary to decarbonize)."
중국은 짓고, 미국은 토론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은 짓는 힘과 토론하는 힘을 동시에 요구한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이 긴장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