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의 정치에서 풍요의 정치로 ? 전환의 시대를 위한 새로운 해법
우리는 왜 더 이상 만들지 않는가?
오늘날 미국은 전례 없는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부족은 자연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주택은 있지만 건설되지 않고, 일할 사람은 있지만 이민이 제한되며,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기술도 있지만 인프라는 갖춰지지 않았다. 이는 ‘하지 않음’의 결과다.
“이제야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위기는 수십 년간 쌓여온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The crisis that’s clicking into focus now has been building for decades?because we haven’t been building enough)."
우리는 위기를 진단하는 능력은 비약적으로 키웠지만,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은 퇴보하고 있다. 이는 기술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의지와 체계의 문제다. 과거에는 대담한 국가 프로젝트가 가능했지만, 오늘날은 도로 하나, 철도 하나 만드는 데도 수년이 걸리고, 끝내 무산되기 일쑤다.
“우리의 문제 인식 능력은 날카로워졌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능력은 쇠퇴했다(Our capacity to see problems has sharpened while our ability to solve them has diminished)."
더 이상 만들지 않는 사회는 결국 제자리걸음에 머문다. 시민들은 부족에 익숙해지고, 정치권은 기회보다는 위험을 회피하며, 공공영역은 방어적인 절차 속에 갇힌다. 위기의 본질은 무능이 아니라 ‘정치적 마비’에 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짓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선의로 만든 법이 다음 세대의 족쇄가 되다
많은 제도와 규제는 한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컨대 1970년대의 환경오염 위기 속에서 미국은 강력한 환경법을 제정했고, 이는 공장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법은 의도치 않게 오늘날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1970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규칙과 규제는, 2020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 밀집도 및 녹색 에너지 프로젝트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Rules and regulations designed to solve the problems of the 1970s often prevent urban-density and green-energy projects that would help solve the problems of the 2020s)."
의도는 선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법은 ‘고정된 틀’이 되었다. 유연한 조정 없이, 시대에 맞게 수정보완되지 않은 법은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좋은 법’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정부의 모든 행동이 고려되고 검토되도록 만든 법이 이제는 정작 정부의 행동 자체를 가로막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정부가 행동의 결과를 고려하도록 만든 법들이, 이제는 정부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하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Laws meant to ensure that government considers the consequences of its actions have made it too difficult for government to act consequentially)."
법과 제도는 시대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법을 바꾸기 위한 정치’가 실종되었다. 이대로라면,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실패를 낳는 아이러니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문제다"와 "정부가 해답이다" 사이
미국 사회는 오랫동안 정부에 대한 양극단적 인식을 반복해 왔다. 보수주의는 “정부는 문제다”를 외치고, 진보주의는 “정부가 해답이다”를 강조한다. 하지만 진정한 해답은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핵심은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진보는, 정부가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는, 정부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It means, for liberals, recognizing when the government is failing. It means, for conservatives, recognizing when the government is needed)."
오늘날 정부는 예산을 늘리거나 축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밀하게 역할을 설계하고 조정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도로나 주택, 에너지처럼 공공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정부의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 반면 혁신이나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민간의 자율성이 더 큰 가치를 낳는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인정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너무 크고, 또 어떤 경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균형의 시작점이다.
실행력 있는 정부는 단지 크거나 강한 정부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문제를 읽고, 유연하게 행동하며, 공동체 전체의 효용을 최대화하는 조직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정부의 역할론’을 다시 써야 할 시점에 있다.
풍요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현대 정치가 자주 빠지는 함정은 ‘제로섬 사고’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잃어야 한다는 생각. 이 틀 안에서 정치는 누가 얼마큼을 나눠 가질지를 두고 싸우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풍요는, 이 틀 자체를 넘어서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풍요는 단지 물질적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제로섬 갈등이 아니라, 가능성의 열린 장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Abundance is not merely a material condition. It is a mindset. A way of seeing the world not as a zero-sum conflict but as an open field of possibility)."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한정된 몫’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몫 자체를 늘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기술, 제도, 사회협력 전반에 걸친 상상력의 문제다.
풍요의 상상력은 미래 도시를 상상하는 능력,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설계하는 힘, 기술을 인간 삶에 맞게 조율하는 지혜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과학과 정치, 문화와 철학을 통합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를 상상하지 못하면, 정치적 행동도 존재할 수 없다.” 풍요를 믿는 순간, 새로운 정책과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정치가 할 일은 바로 그 믿음을 시민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풍요를 위한 정치,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결핍의 정치’가 득세하고 있다. 이민자 수를 줄이고, 복지를 삭감하며, 자원 사용을 통제하는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람들의 분노만 증폭시킨다. 반대로, 풍요의 정치는 생산과 확장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결핍의 흐름이 세계 곳곳에서 힘을 얻고 있는 지금, 풍요의 정치는 이 순간의 도전에 부응하는 해답이다(At a time when movements of scarcity are gaining power in country after country, this is an answer that meets the challenges of the moment)."
풍요를 위한 정치란, 자원을 더 만들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며, 미래를 위한 공동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정치철학이다. 이는 단지 국가의 예산 배분을 넘어서, 전체 사회 시스템의 재조정을 의미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더 이상 만들지 않는가? 무엇이 우리를 멈추게 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만들 수 있는가?
풍요는 이상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것은 사회가 다시 믿음을 갖고,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때 현실이 된다. 상상력은 시작점이지만, 정치적 의지가 그것을 실현시킨다.
우리는 다시 ‘짓는 사회’를 선택해야 한다. 주택을 짓고, 에너지 인프라를 만들고, 교육을 재설계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선을 설계하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다시 살아나는 길이며, 우리가 이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