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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세계를 엮을 때, 폭력은 제도가 된다
- 자본주의는 시장이 아니라 축적의 엔진이고, 그 엔진은 처음부터 전 지구적으로 돌아갔다
자본주의는 너무 익숙해서 자연처럼 보인다
자본주의는 너무 익숙해서 자연처럼 보인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일, 이윤을 다시 굴려 더 큰 이윤을 만드는 습관, 성장을 당연한 목표로 삼는 감각이 마치 인간 본성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이라는 인상 자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의 일상이 당연해 보이는 이유는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체제는 경제를 움직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회의 규칙과 도덕, 상식의 배치를 바꾼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묻는 질문은 결국 삶을 무엇이 지배하는가를 묻는 질문과 겹친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의 감각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무엇이 성공인지, 무엇이 안전인지가 같은 단어로 말해져도 다른 의미로 재조립된다. 이때 자본주의는 단지 생산과 소비의 체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장치가 된다.
축적이라는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밀어붙인다
자본주의를 교환이나 소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왜 세상이 이렇게 거칠어졌는지 설명이 부족해진다. 핵심은 축적이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게 만드는 구조를 어떻게 고정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축적이 강해질수록 사회는 현재의 만족보다 미래의 확대를 우선순위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선택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축적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밀려간다. 노동은 비용으로 쪼개지고, 시간은 생산성으로 환산되며, 실패는 개인의 무능으로 정리되기 쉽다.
축적의 언어가 도덕의 언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성과를 숭배하면서도 불안을 키운다. 번영이 커질수록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그 압력은 제도와 관행을 통해 일상에 스민다. 결국 축적은 경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문장처럼 작동한다.
전 지구적 시스템은 연결만큼이나 강제로 확장됐다
자본주의를 국제 교역의 멋진 이야기로만 설명하면 결정적인 장면이 사라진다. 세계가 연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결은 언제나 공정한 교환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항로와 시장이 열릴 때 그 뒤편에는 군대와 식민 행정, 강제노동이 함께 움직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지역은 생산지로 고정되고, 어떤 사람들은 노동력으로 분류되며, 어떤 생명은 비용으로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 되었다. 총과 법은 시장을 방해하는 예외가 아니라, 시장이 확장되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전 지구적 축적은 먼 곳의 고통을 가까운 곳의 이윤으로 바꾸는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통로는 한 번 만들어지면 세대가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평등이 과거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는, 이 통로가 남긴 형태가 제도와 관습으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배경이 아니라 엔진이고, 법은 도덕이 아니라 장치다
시장은 국가가 물러날수록 건강해진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축적의 역사에서는 자주 어긋난다. 축적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려면 소유를 보장하고 계약을 강제하며 분쟁을 해결하는 권력이 필요하다. 그 권력은 많은 경우 국가라는 형태로 작동했다.
국경을 관리하고 항로를 보호하며 통화를 신뢰하게 만들고 세금을 걷고 부채를 발행하는 기능은 축적의 속도를 높였다. 법은 정의를 구현하는 언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유를 확정하고 노동을 배치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어떤 재산은 신성해지고 어떤 생계는 불안정해지는 순간이, 종종 법과 제도의 설계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기업과 시장만 보지 말고, 국가가 무엇을 보호했고 무엇을 방치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국가의 선택이 바뀌면 축적의 경로도 바뀌고, 그 경로 변화는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형태까지 흔든다. 자본주의는 정치와 분리된 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경제를 특정 방향으로 밀어주는 구조의 합이다.
어디서나 축적이 있었고 어디서나 저항도 함께 있었다
축적의 기계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현실의 복잡함을 놓치게 된다. 체제가 확장되는 곳마다 반발과 조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임금과 시간을 두고 싸웠고, 농민들은 땅과 세금을 두고 버텼으며, 도시들은 규제와 복지로 균형을 시도했다.
저항은 단지 도덕적 분노가 아니라 축적의 속도를 조절하는 사회적 힘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노동조합과 복지가 축적의 과열을 누르고 안정성을 만들었고, 어떤 곳에서는 억압이 불안을 누적시켰다. 자본주의는 저항을 완전히 제거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흡수하고 재배치하면서 형태를 바꿔 살아남기도 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승리한 제도의 역사만이 아니라 충돌과 협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관점은 오늘의 선택을 다시 보게 만든다. 지금의 규칙도 자연이 아니라 협상된 결과라면, 다시 협상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플랫폼을 타고 돌아가지만 핵심은 여전히 같다
오늘의 축적은 공장 굴뚝만이 아니라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더 빠르게 움직인다. 플랫폼은 사람들의 시간을 모으고, 주의를 모으고, 관계를 모아 수익으로 바꾸는 기계를 만든다. 금융은 숫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의 방향을 정하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지식재산권은 혁신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경쟁의 문을 좁히기도 하고, 국가 간 기술 갈등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겉모습이 바뀌어도 핵심은 같다. 가치를 만들고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축적을 계속 확대하는 방식이 사회의 중심에 놓인다.
그 결과로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주거 위기 같은 현상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이 현상들을 단지 부작용이라고 부르면 문제의 뿌리가 가려진다. 축적이 어떤 비용을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라면, 그 비용은 언젠가 사회 전체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질문은 이제 무엇인가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굴러가게 할 것인가로 옮겨간다
자본주의를 자연처럼 받아들이면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숭배하기 쉽다. 하지만 축적의 역사에는 언제나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은 누군가의 선택이었다. 누가 소유할 수 있는가, 무엇을 사유화할 수 있는가, 어떤 노동이 정당한가, 어떤 위험을 사회가 함께 떠안을 것인가 같은 질문이 축적의 방향을 바꿔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시장으로 돌아가자 같은 구호가 아니라, 축적의 장치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다. 예측 가능한 법과 공정한 경쟁 환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불평등이 커지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혁신도 투자도 장기적 실험도 줄어든다.
그래서 성장의 언어와 함께 분배와 안전망, 공공 인프라의 언어가 다시 중요해진다. 자본주의가 낳은 풍요를 유지하려면 축적이 만들어낸 공포와 불신을 관리해야 하고, 그 관리는 결국 정치와 제도의 몫으로 돌아온다. 체제를 찬양하거나 저주하는 대신, 어떤 규칙을 선택할지 묻는 것에서부터 다음 시대의 경제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