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역:박문재)
ǻ
현대지성
   
16500
2020�� 02��



■ 책 소개


‘연설’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저서
2400년 동안 읽히고 연구되어 온 ‘설득의 기술’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과이다. 정의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사학』은 그 정점에 있는 저술이다. 왜냐하면 수사학은 그가 제시한 변증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현실 정치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논증 수사학, 문예 수사학, 기호론적·언어학적 수사학에 의한 담론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수사학이 관심 받고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2,400년 동안 수사학 체계에서 ‘논증’ 이론에 관한 성찰의 기본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로마의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빼놓고 새로운 수사학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정의와 윤리를 다 배제한 채로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학적 기초 위에서 어떤 것이 국가에 이롭고 정의로우며 훌륭한 것인지를 개연적으로 증명해내는 수사학이야말로 ‘설득의 기술’로서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서는 전체적으로 내용을 개관한 후에, 연설가가 사용해야 할 설득 수단이자 수사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 중 논리적 추론에 해당하는 ‘로고스’와 관련한 전제들을 집중 설명한다. 제2권에서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3권은 연설가가 신경 써야 할 추가 문제, 즉 문체와 배열, 그리고 전달의 문제를 다룬다.

■ 저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322.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북부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그가 17살 때 어머니마저 죽은 뒤 후견인인 프록세노스에 의해 아테나이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인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5년에 헤르메이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살해되자, 그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로 갔고, 거기에서 수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를 만났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에 그는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서,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의 기원이 된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가 쓴 책들과 글들 다수는 이 기간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지성과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가 다룬 분야들은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폭이 넓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정치학』, 『범주론』, 『명제론』, 『수사학』, 『시학』 등이 있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나이에서는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고 그는 불경죄로 고발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났고, 그 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역자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신학과 사회과학을 좀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독일 보쿰Bochum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헬라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저서들을 공부하였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하였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신학과 인문학 도서를 번역해 왔다. 역서로는 『자유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실낙원』, 『톨스토이 고백록』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 『철학의 위안』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차례
제1권
제1장 수사학의 본질
제2장 수사학의 정의
제3장 수사학의 유형
제4장 조언의 범위
제5장 행복
제6장 좋은 것과 이로운 것
제7장 상대적 이로움
제8장 국가 형태
제9장 선전을 위한 연설
제10장 불의와 불법
제11장 즐거움
제12장 범죄자들의 심리 상태
제13장 범죄와 처벌
제14장 범죄의 경중
제15장 수사학 밖의 설득 요소들

제2권
제1장 감정과 성격
제2장 분노
제3장 평정심
제4장 우의와 적의
제5장 두려움과 자신감
제6장 수치심
제7장 호의
제8장 연민
제9장 의분
제10장 시기
제11장 질투
제12장 청년기
제13장 노년기
제14장 장년기
제15장 태생
제16장 부
제17장 권력
제18장 모든 연설에 공통적인 논제들
제19장 가능성
제20장 예증
제21장 금언
제22장 생략삼단논법
제23장 증명을 위한 명제들
제24장 유사 생략삼단논법의 명제들
제25장 반박
제26장 확대와 축소

제3권
제1장 문체에 관한 서론적인 개관
제2장 명료성
제3장 무미건조함
제4장 직유
제5장 정확성
제6장 풍성함
제7장 적절성
제8장 운율
제9장 간결하게 완결된 문장
제10장 세련미와 은유
제11장 생생함
제12장 연설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문체
제13장 논제와 증명
제14장 도입부
제15장 편견
제16장 설명
제17장 증명과 반박
제18장 질문
제19장 맺음말

해제·박문재
아리스토텔레스 연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수사학의 정의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 내재된 설득력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다른 기술 중에 이것을 과제로 삼는 것은 없다. 다른 기술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분야에 속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설득한다. 예컨대, 의술은 건강과 질병에 관해, 기하학은 크기의 속성에 관해, 산술은 수에 관해 가르치고 설득하며, 그 밖의 다른 기술과 지식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수사학은 어떤 것이 주어진다고 해도 거기에서 설득력 있는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학이라는 기술은 특정 부류를 자기 영역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설득력 있는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은 이 기술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이 기술이 아니다. 이 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 함은 연설가가 제시하지 않고도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컨대 증언이나 자백이나 계약서 등이 그것이다. 반면에 이 기술에 속한다 함은 수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연설가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자는 사용하면 되고, 후자는 찾아내야 한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은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고, 어떤 것은 청중의 심리 상태와, 어떤 것은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다.


화자의 성품으로 인한 신뢰는, 청중이 그를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도록 화자가 말할 때 생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을 더 크게 신속하게 신뢰하고, 어느 쪽이 옳은지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신뢰도 화자의 말을 통해 얻어야 하고, 화자에 대해 가진 선입관을 통해 얻어서는 안 된다. 수사학에 관해 글을 쓴 일부 사람과는 달리, 우리는 화자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성품이 청중을 설득하는 데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다고 보고 수사학에서 배제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로 화자의 성품은 청중에게 신뢰를 주는 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청중으로 인한 신뢰는 화자의 말에 청중이 어떤 감정을 지니게 되었을 때에 생긴다. 괴로우냐 기쁘냐에 따라, 또는 좋아하느냐 미워하느냐에 따라 우리 판단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오늘날 수사학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오로지 이것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데만 몰두한다.


말 자체로 인한 신뢰는 화자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진정으로 설득력 있는 요소들, 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을 드러낼 때 생긴다.


신뢰는 이 세 가지로 생기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려면 삼단논법을 통한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성품과 미덕에 대해 알아야 하며, 셋째로는 감정과 관련해서 각각의 감정이 어떤 것이고 그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수사학은 일종의 변증학이고, 성품에 관해 다루는 일종의 윤리학일 뿐만 아니라 정치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옳다. 수사학은 변증학의 일부이고 한 짝이다. 둘 중 어느 쪽도 제한된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 분과가 아니라, 둘 모두 논증을 수행하는 능력을 뜻한다.


수사학이 하는 일은, 많은 것을 결합해 이해하거나 일련의 긴 추론을 따라갈 능력이 없는 청중을 대상으로, 우리가 숙고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다른 전문 기술에서도 다루지 않는 것을 고찰하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해 보이는 것을 고찰한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서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무것도 고찰하지 않는다. 고찰해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과 이로운 것

좋은 것이란 다음과 같다. 그 자체로 사람들의 선택을 받거나 사람들이 그것을 얻고자 다른 것을 선택하는 바로 그것, 모든 존재 특히 지각이나 이성을 지닌 존재가 바라는 것, 어떤 존재가 이성을 지니게 되었을 때 바라는 것, 이성이 일반적으로 또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각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더 건전해지게 하고 더 부족함 없게 하는 것, 부족함이 없는 것, 이를 만들어내거나 보존하거나 수반하는 것, 이와 반대되는 것을 막아주고 파괴하는 것.


“수반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동시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속적인 것이다. 예컨대 아는 것은 배우는 것에 수반하지만 후속적인 반면, 사는 것은 건강한 것에 수반하지만 동시적이다. “만들어내는 것”에도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건강함이 건강을 만들어내고, 두 번째는 음식이 건강을 만들어내며, 세 번째는 (통상적으로 그렇듯이) 운동이 건강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확증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좋은 것을 얻는 일과 나쁜 것을 버리는 일이 둘 다 좋다는 것이다. 나쁜 것을 버리면 동시적으로 좋아지는 결과가 따르고, 좋은 것을 얻으면 후속적으로 좋아지는 결과가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덜 좋은 것 대신 더 좋은 것을 얻거나, 더 나쁜 것 대신 덜 나쁜 것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더 큰 것은 더 작은 것을 초과하는 까닭에 그 초과되는 정도만큼 전자는 좋은 것을 얻고, 후자는 나쁜 것을 버린 게 되기 때문이다.


미덕은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즐거움도 좋은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누구나 선택하고, 부족함 없게 해주며, 그것을 얻으려고 다른 많은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좋다. 정의로움, 용기, 절제, 고결함, 관용을 비롯해 그 밖의 다른 비슷한 성품은 정신의 미덕이기 때문에 좋다. 건강함과 아름다움 등은 신체의 미덕으로, 다른 좋은 것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좋다. 부는 소유의 미덕으로 다른 많은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좋다. 말하는 능력과 행동하는 능력도 좋은 것을 만들어낸다. 또한 타고난 재능, 기억력, 잘 배우는 능력, 재치 등도 좋은 것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식과 기술도 좋고, 생명도 좋은 것이다. 정의도 공동체에 유익하기에 좋다.


나쁜 것과 반대된다면 좋은 것이다. 또한 적에게 이롭지 않다면 좋은 것이다. 예컨대 한 국가의 시민이 비겁하면 적에게 대단히 이롭지만, 그 시민이 용감하여 국가에 대단한 도움이 되어 좋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적이 원하거나 기뻐한다면, 그것과 반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어서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어떤 것이 적대 관계인 양쪽에게 모두 이롭거나 해로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양쪽 모두에게 해로울 때, 그 나쁜 일이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킨다고 말한다.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고,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으면 나쁘다. 또한 많은 노력이나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 좋다.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이것을 얻고자 한다면 좋은 것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일은 좋은 것이다.


다수가 얻고 싶어 하고 얻으려고 서로 다투는 일도 좋다. 칭송받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것은 좋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사람의 출신 배경이나 역량으로 그에게 귀속되어 있어 각자에게 어울리는 일도 좋은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도 좋은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하찮게 여기더라도, 그것을 얻으려는 그 사람의 간절한 욕망은 전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해낼 수 있어서 실천 가능한 것도 좋은 것이다. 친구를 기쁘게 하거나 적을 괴롭게 하는 일도 좋은 것이다. 또한 훌륭하다고 존경받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해서 행하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도 각자가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좋은 것이다. 예컨대,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승리가 좋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명예가 좋으며, 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좋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부류의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청중에게 어떤 것이 좋고 이롭다는 신뢰를 갖게 하려면,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말한 것에 속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불의와 불법

불법을 행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고 해악을 입히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잇다. ‘의도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어떤 강제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알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알면서 행하는 것이다. 자신이 계획해서 하는 일을 모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법을 어기고 다른 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비열한 짓을 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것은 악덕과 도덕적 결함이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악덕이나 도덕적 결함을 지닌 경우, 그 사람은 그러한 악덕이나 결함과 관련된 불법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색한 사람은 돈 문제와 관련해서, 방탕한 사람은 육체적인 쾌락과 관련해서, 의지가 약한 사람은 나태함과 관련해서 불법을 저지를 것이고, 겁 많은 사람은 위험한 것과 관련해서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그런 사람은 위험에 빠졌을 때 두려워 동료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스스로 했거나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하지 않은 행위는 우연히 일어났거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필연에 의한 행위는 강제적이거나 본성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하지 않은 행위는 우연이나 본성에 의한 것이거나 강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여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행위는 습관이나 욕구를 따른 것이고, 후자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욕구를 따르거나 혹은 불합리한 욕구에 의한 것이다. 소원은 좋은 것을 바라는 합리적인 욕구이고, 분노와 욕망은 불합리한 욕구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원인으로 무슨 일이든 행한다. 우연, 본성, 강제, 습관, 계산, 분노, 욕망.


행위의 원인을 추가로 세분해서 나이나 성격이나 행위와 관련된 다른 것에 따라 구분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쉽게 흥분하여 분노하거나 욕망이 강한 것이 청년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것은 청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분노와 욕망 때문이다. 또한 부유함이나 가난함이 행위의 원인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자신의 성품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도 위에서 열거한 일곱 가지 원인에 따라 행동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은 성품에서 좋은 행위가 나오고, 나쁜 성품에서 나쁜 행위가 나온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이 어떠한 행위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옳다. 어떤 사람의 피부색이 희냐 검으냐, 또는 키가 크냐 작으냐 하는 것은 그가 어떤 행위를 할지 보여주지 않지만, 어떤 사람이 청년이냐 노인이냐, 정의로우냐 불의하냐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행위에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에게 이롭거나 이로워보이는 것들, 또는 즐겁거나 즐거워 보이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지 않는 행위는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에게 이롭거나 이로워 보이고, 또는 즐겁거나 즐거워 보인다. 사람들이 해로운 것이나 해로워 보이는 것을 피하고, 더 해로운 것을 덜 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도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괴롭거나 괴로워 보이는 것을 피하는 것과 더 괴로운 것을 덜 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도 자기에게 즐거운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자신감

두려움이란 파멸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나쁜 일이 곧 닥친다고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괴로움 또는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나쁜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불의해지거나 우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오직 큰 고통이나 파멸을 가져오는 어떤 나쁜 일이 먼 훗날이 아니라 곧 닥쳐올 것으로 보일 때 두려워한다. 즉, 우리는 아주 먼 훗날 일어날 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지만, 당장 죽지는 않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징후라 함은 두려워하는 일이 곧 닥칠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두려운 일이 다가오는 것이 바로 위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징후로는 해악을 가할 자들이 품은 적의와 분노가 있다(해악을 가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마음도 있다면, 해악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가 불의를 행할 힘을 지닌 것도 그런 징후다. 불의한 자는 불의를 밥 먹듯이 저지르는 자여서 불의한 자라 불리기 때문이다.


불의를 당한 자나 적들이나 경쟁자 중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자는 감정을 잘 드러내고 속내를 털어놓는 자가 아니라, 점잖고 음흉하며 교활한 자들이다. 그런 자는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서, 그들이 해코지하려는 때가 가까웠는지 아니면 한참 후인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다음과 같은 때에 생긴다. 즉, 두려워하는 것은 멀리 있고, 자기를 위험에서 구해줄 것은 가까이 있을 때, 어떤 위험이 닥쳐오더라도 대처할 수단이 많거나 강력하거나 둘 다인 경우, 불의를 행환 적도 없고 불의를 당한 적도 없는 경우, 경쟁자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힘이 없거나 힘이 있더라도 친구이거나 경쟁자가 자기에게 잘해주었거나 자기가 경쟁자에게 잘해준 경우, 자신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사람이 다수이거나 더 힘 있는 자이거나 둘 다인 경우가 그렇다.


우리에게 자신감이 생기는 심리 상태는 다음과 같다. 즉, 많은 일에서 성공을 이루어냈고 실패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늘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위험을 겪어본 적이 없는 때이고, 다른 하나는 대책이 있을 때다.


우리는 자기와 대등한 자나 자기보다 열등한 자, 혹은 그들에 비하자면 자신에게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을 더 많이, 또는 더 나은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자신감을 갖는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았거나 많은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았거나 자신이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은 때에도 자신감을 갖는다. 또한 자기가 어떤 일에 손댔을 때 전에도 실패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성공한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는 자신감을 얻는다.



노년기

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속기도 많이 하고 잘못도 많이 저질렀으며 성과가 형편없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열정이 부족하다. 노인은 악의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나쁜 쪽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실제로 나쁜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불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사랑할 때든 미워할 때든 강렬하지 않다. 노인은 이런저런 굴욕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포부가 별로 없다. 위대하거나 비범한 것을 원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만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은 돈을 쓰는 데 인색하다. 재물이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인데, 그들은 재물을 얻는 것은 어려워도 잃는 것은 한 순간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노인은 겁이 많고,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미리부터 겁을 낸다. 노인의 심리 상태는 청년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뜨겁지만 노인은 차갑다. 그리고 겁내는 것은 차가움의 일종이기 때문에, 노년은 겁을 낼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또한 노인은 삶을 사랑하고, 죽을 날이 가까워오면 더욱더 그렇게 된다.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고, 자기에게 꼭 필요한데 실제로는 없는 것을 가장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비관적이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이 경험적으로 볼 때 대체로 좋지 않았고 실망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인이 되어 겁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은 희망이 아니라 추억으로 살아간다. 노인에게 남은 삶은 짧고 지나간 세월은 긴데, 희망은 미래에 대한 것이고 추억은 과거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난 일을 끊임없이 얘기한다. 회상하며 추억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노인은 화를 잘 내기는 하지만 강도가 약하고, 욕구를 보더라도 어떤 것은 사라져서 없고, 남아 있어도 약하다. 그래서 그들은 욕구보다는 이해득실을 따라 행동한다. 이 연령대에 속한 사람들이 절제력이 있어 보이는 이유다. 그들은 이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노인도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기는 하지만, 청년과는 이유가 다르다. 청년은 인류애에서 연민이 나오지만, 노인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즉, 노인은 다른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을 자기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유에서 노인은 트집 잡고 불평하기는 쉬워도, 재치 있게 말하거나 농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치 있는 말이나 농담은 트집이나 불평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생략삼단논법

생략삼단논법은 긴 추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추론 과정에 포함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변증적 삼단논법과 다르다. 추론 과정이 길어지면 논지가 모호해지고, 명백한 것을 추론 과정에 포함시키면 쓸데없이 장황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군중 앞에서 말할 때 무식한 사람의 말이 유식한 사람의 말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군중 앞에서는 무식한 자들이 더 말을 잘한다”라고 했다. 유식한 자들은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것을 말하는 반면에, 무식한 자들은 자기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과 삶에서 피부에 와닿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연설가가 가장 먼저 알아둘 것은 자신이 말하거나 증명해야 할 논제가 정치적인 것이든 다른 종류의 것이든 그 논제와 관련된 사실을 전부 또는 일부라도 미리 파악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파악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면,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비난할 때도 마찬가지다. 즉, 사람들은 사실 관계를 살펴보고 실제로 비난할 만한 일이 있었거나 그렇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비난한다. 예컨대, 아테나이 사람은 그리스인을 예속시켰고, 자신과 함께 이민족과 싸워 큰 공을 세운 아이기나인과 포티다이아인을 예속시켰으며,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그 밖의 다른 잘못도 저질렀다. 또한 이것은 법정 변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고발하거나 변호하려는 연설가는 사실에 입각해서 고발하거나 변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설에서 다루는 논제가 무엇이든 아무 차이가 없다. 예컨대, 연설가가 정의라는 논제로, 정의가 좋은 것이냐 아니냐를 논증하는 연설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 연설가는 정의 및 좋은 것과 관련한 실제 사실에 입각해서 연설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추론 과정이 엄격하든 아니면 좀 느슨하든, 무엇인가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사실이 아니라, 특정한 논제와 관련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에서 논증을 시작해야 하고 이것과 다른 방식의 논증으로 연설에서 뭔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생략삼단논법의 구성요소는 명제를 의미한다. 생략삼단논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것이 참이라거나 거짓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변증학에서 증명과 반박의 차이와 동일하다. 따라서 증명을 위한 생략삼당논법에서는 서로가 동의하는 전제에서 결론을 도출해내지만, 반박을 위한 생략삼단논법에서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명료성

문체의 미덕은 명료성에 있음을 분명히 하자. 연설은 어떤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인데, 명료하지 않다면 그런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문체는 저속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고상하지도 않게끔 적절해야 한다. 가령 시어는 저속하지는 않지만 연설에는 적절하지 않다.


연설가는 고상한 말은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청중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서, 연설가가 인위적이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은 설득력이 있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설득력이 없는데, 청중은 연설가가 어떻게든 술수를 써서 물 섞인 술을 자기에게 주려 한다고 생각하면서 잔뜩 의구심을 품은 채로 연설을 듣기 때문이다.


연설 문체로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친숙한 단어와 은유만이 유용하다. 평소에 말할 때 모두가 오직 이런 종류만을 사용하는 것이 그 증거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쓰는 친숙한 단어와 은유를 사용해 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설을 잘하려면 이색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청중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그 의미 또한 명료해야 한다. 훌륭한 수사학적 연설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수사와 은유는 적절해야 한다. 즉, 대상과 어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함께 놓여 부적절함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예컨대, 우리는 청년에게 어울리는 붉은 색 외투가 노인에게도 어울릴지 숙고해야 마땅하다. 동일한 옷이 청년과 노인에게 둘 다 어울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연설가가 어떤 것을 추켜세우고 싶다면 그와 관련된 말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와 은유로 사용해야 하고, 반면에 깎아내리고 싶다면 그것과 관련된 말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을 가져와 은유로 사용해야 한다.



적절성

적절한 문체는 감정과 성격을 충실하게 표현하면서도 다루는 소재와 잘 어우러진다. 문체가 소재와 잘 어울리게 하려면, 비중 있게 다룰 중요한 것을 건성으로 다뤄서도 안 되고, 일상의 가볍고 소소한 것을 장엄하게 다뤄서도 안 되며, 평범한 단어를 거창한 수식어로 장식해서도 안 된다.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문체가 되게 하려면, 오만방자한 일에 대해 말할 때는 분노한 사람의 문체를 사용하고, 불경스럽고 치욕적인 일에 대해 말할 때는 분개하여 그런 일은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의 문체를 사용하며, 칭송할 만한 일에 대해서는 탄복하는 사람의 문체를, 연민을 자아내는 일에 대해서는 측은히 여기는 사람의 문체를 사용하는 등 각각의 소재에 따라 거기에 부합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문체를 사용해야 한다.


적절한 문체는 연설가가 말하는 내용을 설득력 있다고 믿게 한다. 그런 문체는 마치 연설가가 진실을 얘기하는 듯이 착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즉, 청중은 그런 문체가 만들어내는 감정에 동화되어, 연설가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설가가 하는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감정을 실어 말을 하면, 청중은 언제나 연설가가 하는 말에 공감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연설가는 어떻게든 야단법석을 떨어서 청중을 압도하려고 한다.


연설가가 이렇게 문체에 어떤 감정적 특징을 부여해서 자기가 하는 말이 사실임을 청중이 믿게 할 수 있듯이, 문체에 어떤 성격적 특징을 부여해도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각각의 부류와 성향에 맞는 문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류’는 아동, 성인, 노인 같은 연령대, 여자, 남자, 스파르테인, 테살리아인 같은 국적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향’이란 한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습성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습성으로 그 삶이 형성되어 같은 성향을 띠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은 특성 습성에 따라 특정 성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설가는 각각의 부류와 성향에 맞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성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농부와 지식인은 같은 것을 말하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수사학적 기교들이 청중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연설가는 모든 수단을 동시에 동원해서 기교를 표현해선 안 된다. 예컨대 연설가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엄숙하다면, 그 목소리와 표정도 동시에 엄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동원된 수단이 모두 다 엄숙하면, 청중은 그것이 인위적인 기교임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런 기교를 표현하는 데 오직 한 가지 수단만을 사용하고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청중은 연설가가 기교를 사용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면서도 그 효과는 똑같이 나타난다. 예컨대, 다정다감한 내용을 엄숙한 어조로 말하거나 엄숙한 내용을 다정다감한 어조로 말한다면 거기에서 설득력이 생겨난다.



논제와 증명

연설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어떤 논제를 제시하고 그것이 옳음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제만 제시하고 설득하지 않는다거나, 논제를 먼저 제시하고 설득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제를 제시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설득하려는 것이고, 어떤 논제를 제시하는 사람은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설의 두 부분 중 하나는 논제를 제시하고, 다른 하나에서는 설득한다. 이것은 우리가 문제와 답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오늘날의 구분 방식은 불합리하다. 진술은 오직 법정 변론을 위한 연설에서만 사용되고, 선전을 위한 연설과 조언을 위한 연설에서는 진술이나 상대방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없으며, 증명을 위한 연설에서는 맺음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언을 위한 연설에서 도입부와 쟁점 비교와 요약은 반론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따라서 연설의 필수적인 구성 부분은 논제 제시와 설득이다. 이 둘은 연설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고유 부분이고, 그 밖의 다른 부분까지 최대한 모두 포함한다 해도 연설은 도입부와 논제 제시와 설득, 맺음말로 구성된다. 상대방에 대한 반론은 설득의 일부이고, 쟁점 비교도 설득을 확대한 것으로 설득의 일부지만(쟁점 비교는 곧 설득을 위한 것이기에), 도입부와 맺음말은 설득의 일부가 아니라 연설에서 다룬(다룰) 것을 상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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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