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

   
이길환 (지은이)
ǻ
이든서재
   
18800
2025�� 04��



■ 책 소개


장자가 건네는 삶의 지혜
"누군가의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가라"

삶은 단순하지 않다. 앞만 보고 달려온 마흔, 하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불안하고 마음은 복잡하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흔들릴까? 이 책은 그런 마흔을 위한 따뜻한 쉼표이다. 동양의 현자 장자의 지혜를 빌려, 힘을 빼고 인생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다. 일과 인간관계에 치이며 고민이 많아지는 나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왜 장자인가?

장자는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갔다. ‘견고한 빈 배’는 다른 배와 부딪히더라도 갈등으로 번지지 않듯, 마음의 배를 비우면 인생이라는 바다의 너울에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다.

『장자』는 다른 동양 고전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장자 하면 ‘무위’ ‘자연’ 같은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며 현대인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장자가 하고자 한 말은 “세상 만물은 상대성에 의해 존재한다. 그러니 이것은 곧 저것이 될 수 있고 저것은 곧 이것이 될 수 있다”이다. 이러한 만물의 상대성을 깨닫는다면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장자 이야기 속에서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찾도록 도와준다. 무작정 긍정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더 유연하고 단단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 저자 이길환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지방공무원으로 14년째 재직 중이다. 현재는 정책지원관이라는 자리에서 지방의회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유튜브 도서 낭독 채널 ‘나눔서재’를 3년간 운영하며 인문, 철학 분야의 책을 200여 권 탐독했다. ‘읽는 삶’은 자연스럽게 ‘쓰는 삶’으로 이어져 일상 속 행복을 찾는 여정을 글로 남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책밤’이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발행하고 있다.

『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는 저자가 장자 철학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묘리를 모아 펴냈다. ‘세상 만물은 상대성에 의해 존재하니 이것은 곧 저것이 될 수 있고, 저것은 곧 이것이 될 수 있다.’라는 장자의 사상을 받아들이면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 온전한 쉼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달리듯 살아가는 인생에서 눈을 감고 장자의 사상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지은 책으로 『딸에게 주고 싶은 가장 좋은 말』, 『너랑 걷는 이 길이 참 좋아』가 있다.

■ 차례
추천사 _ 당신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시간
프롤로그_인생은 힘을 뺄수록 뻗어나간다

1장. 마음이 어지러운 마흔에게
· ‘이것’은 ‘저것’이 될 수 있다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선명해진다
· 남이 아닌 자기의 즐거움에 즐거워야 한다
· 생각의 자물쇠를 풀어야 도둑맞지 않는다
· 꽃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
· 마음의 일렁임을 멈추어라
· 멀리서 봐야 크게 볼 수 있다
· 자신의 걸음걸이를 수시로 점검하라
· ‘진짜 지혜’는 말로 전할 수 없다
· 지위에 걸맞은 능력이 없으면 자리가 불안하다
· 못 본 것은 알지 못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
· 삶 곳곳에 담긴 인생의 묘한 이치

2장. 삶의 희망을 찾는 마흔에게
· 세상 만물은 타고난 본성이 있다
· 내가 가진 것을 모를 때 부러움이 생긴다
· 채우려면 먼저 부족해야 한다
· 열려 있는 미래는 불안하지만 기대할 만하다
· 인생에서 웃는 날을 늘려라
· 자유롭게 경험해야 즐거울 수 있다
· 인생의 ‘진짜 곤경’을 찾아라
·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더라도 자유롭고 싶다
· 칭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성장한다
· 근심을 더하는 이도, 덜어내는 이도 자신이다
· ‘죽음’으로 얻을 수 있는 깨달음

3장. 관계의 평화를 원하는 마흔에게
·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응원이다
· 공연히 자랑하지 않아야 화를 면할 수 있다
· 스스로 빛나면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 자신의 판단으로 인생을 채워라
· 폭군은 내 마음속에 있다
· 일방적 호의는 상처가 될 뿐이다
· 짧은 것을 늘여주어도, 긴 것을 잘라주어도 안 된다
· 사람은 마음으로 사귀어야 하는 법이다
·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본성을 살펴라
· 빈 마음에 사람이 머문다
· 상대의 배려를 다시 한번 생각하라
· 베푼 마음은 잊고, 받은 마음은 기억하라
· 생각을 여는 열쇠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다

4장. 앞만 보며 내달리는 마흔에게
· 누군가의 꿈을 좇지 말고 나만의 꿈을 꿔라
· 발에 꼭 맞는 신발은 자주 닦아주어야 한다
· 일확천금보다 동전 한 닢
· 유한한 삶에서 무한한 지혜를 추구하는 법
· 힘을 빼야 ‘핵심’이 보인다
· 멍에를 둘러멜지라도 장점에 집중하라
· 완벽한 대안보다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 크게 봐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 ‘상’과 ‘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 하잘것없는 성취란 없다
·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
· 인생에 낭만을 더하라

에필로그_걱정 빼기 인문학의 힘

 




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


마음이 어지러운 마흔에게

남이 아닌 자기의 즐거움에 즐거워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보는 순간 머리 위로 물음표가 뜨는 옷들을 볼 때면, 다가가서 어디 한군데는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봅니다. 마흔의 눈에는 편안해 보이는 옷이긴 합니다. 아마도 그 익숙함은 일상의 많은 시간을 치장하는 데 쏟던 이십 대에 굳어진 유행들입니다. 점점 챙겨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유행에 둔감해지다 보니, 집안 옷가지들은 십여 년 전 스타일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유행을 좇아 입게 된 옷들이 과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그 어떤 외부의 휘둘림 없이 좋아하는 색, 품. 선호하는 소재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장자』 「변무」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함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본래 타고난 바를 잘 가꾸는 것이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함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본성의 자연에 맡김을 뜻함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귀 밝다'라는 것은 자기 밖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눈 밝다'라는 것은 자기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본성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 본성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것을 본다든지, 자기 스스로는 얻지 못하면서 남들을 얻게 하려는 사람은 곧 자기를 버리고 남을 본받자는 사람이거늘, 그들은 남의 만족을 자기의 만족으로 알고 자기의 만족을 만족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며, 남의 즐거움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여겨 자기의 즐거움에 즐거워할 줄 모른다.


장자가 말하는 '눈 밝음'과 '귀 밝음'은 오로지 자기의 내면을 보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2천 5백 년 전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남을 따라 하느라 정작 자기 본성을 잊고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장자는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수없이 강조합니다. 훌륭함을 찾는 근원도, 만족을 찾는 근원도, 즐거움을 찾는 근원도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눈에 거슬리는 것도 미디어에 수없이 노출되면 유행이 되는 시대입니다. 자기 밖의 소리를 듣고 자기 밖을 보는 사람들은 유명인이 입은 옷, 먹은 음식, 집에 들인 가구를 실시간으로 검색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찾아 나서다 보면,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잊게 됩니다. 공자가 말한 '불혹', 즉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흔을 위해서는 자기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손가락을 조금만 놀려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원할 것 같은 정보'까지도 누군가 쉴 새 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줍니다. 그러니 멍한 정신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는 어느새 자신이 찾아 나선 정보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처음 검색창에 넣었던 검색어와 몇 분 뒤의 스마트폰 화면이 열에 아홉은 다릅니다. 이렇듯 넘쳐나는 유혹 거리에 정신을 뺏기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어야 합니다.


자기 모습부터 '진짜' 원하는 모습으로 가꾸어 나가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일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성을 따르는 삶을 살면, 더 이상 유행을 좇지 않게 됩니다.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고, 귀하고 천하고의 구분이 없어지기에 더 이상 누군가의 모습을 평가할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마흔에 걷는 도의 길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집 앞 문구점에 들렀습니다. 아이는 가게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눈을 반짝입니다. 딸아이가 고민 끝에 손에 든 것은 예쁜 무늬의 색종이와 젤리 한 봉지였습니다. 잠시 색종이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초등학생 시절. 손바닥만 한 색종이를 이리 접고 저리 접으면 어느샌가 학이 되고, 범선이 되고, 비행기가 되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침을 먹고 난 뒤, 저녁이 될 때까지 한자리에서 종이접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종이접기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이 옆에 가만히 서있다가 손을 뻗어 색종이 한 묶음을 더 집어들었습니다. 색종이 두 묶음, 그리고 젤리 하나를 계산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누군가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거창한 그 무언가도 아닙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손으로 집어든 색종이를 접으며 진짜 즐거움을 느껴봅시다.



삶의 희망을 찾는 마흔에게

근심을 더하는 이도, 덜어내는 이도 자신이다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마음이 무너지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몸은 운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단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손에 잡을 수도 없기에, 평생을 돌봐도 '마음 건강'은 자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 백 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남과 비례해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우울하고 불행해졌습니다. 늘어난 몸의 수명만큼 마음 수명이 늘어나지 못한 탓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 건강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삶에 '근심'이 없습니다. 근심의 사전적 의미는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함'입니다. 근심거리가 생기면 답답함에 주먹을 동그랗게 움켜쥐고 가슴을 내려치기도 합니다. 마음 건강을 챙기려면 근심거리를 만들지 않거나 이미 생긴 근심을 하나둘 덜어내야 합니다.


『장자」 「지락」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산다는 것은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며, 오래 산다고 해도 역시 근심에 매여, 차라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니,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이렇게 육체를 보전하고 위하는 일은 결국 참된 즐거움에서 멀고 먼 것이다.


장자는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삶은 고통이다."라는 부처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장자는 육체를 보전하는 일은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니, 오래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일 뿐이라고 합니다. 자연을 따르는 삶을 통해 만물의 상대성을 깨우친 장자조차도 때때로 근심거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마음 건강을 위해 근심거리를 하나둘 비워내야 합니다. 근심은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생겨납니다. 현실과 이상이 다를 때 '해결되지 않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목표에 대한 열망이 강할수록 기대보다 못한 결과에 좌절하고 속을 태우게 됩니다.


장자는 "모든 만물은 상대성에 따라 존재한다."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이루어 낸 결과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일에 실패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름답지 않다'라는 생각들은 반대되는 기준과 비교해서만 가능한 판단입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더 나은 무언가와 비교하기 시작할 때, 눈앞의 일은 '해결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즐거움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깨닫고 마음속 근심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근심 없는 삶을 꿈꾸지만,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내달리지만, 자기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에 근심은 늘어갑니다. 하지만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사랑하고 근심을 덜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해결되지 않은 일에 속을 태운다면,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걸어온 길에서 어떤 배움이 있었고, 지금의 결과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작은 결실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마음먹는 순간, 작은 결실은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큰 밑거름이 될 테니 말입니다.


마흔에 걷는 도의 길

자기 믿음이 강할수록 '실패'를 경험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자신의 노력을 깎아내리지 않고, 어떤 결과가 따르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기에, 같은 결과도 실패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 믿음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생겨납니다.


하루는 아이가 눈을 감고 엄지와 약지를 뻗어 가슴에 대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행동의 의미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눈을 뜨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랑 약속하는 거야."


마음의 근심을 덜려면 그 어떤 평가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자기와의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어기고, 그런 날들 속에 자기 불신은 쌓여갑니다.


마흔에는 마음의 근심을 덜기 위해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합니다. 물론 내 마음에 대고 하는 약속 말입니다.



관계의 평화를 원하는 마흔에게

빈 마음에 사람이 머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 인색했던 점'입니다.


우리는 짧은 생을 바쁘게 보냅니다. 매 순간 고민에 휩싸여 진짜 돌봐야 할 것을 챙기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소중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후회만 남습니다. 결국 '곁에 아무도 머물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럼,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장자』 「인간세」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 텅 빈 방을 봐라. 거기에는 햇빛이 가득하고, 고요한 곳에는 행운이 머무르는 법이라네. 만일 마음이 고요하게 비어있지 못하면, 그것은 몸은 거기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리저리 줄달음치는 것이네.


귀와 눈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마음에 머물게 하고, 자기의 주관과 지혜를 버린다면, 빈 마음에는 귀신도 찾아와 그에게 머무는 것이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방안 곳곳에 햇빛이 들어차려면 쌓인 물건이 없어야 합니다. 부피가 큰 물건일수록 바닥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어 빛이 온전히 들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놓인 곳의 위치를 옮기는 일은 또 다른 그늘을 만드는 일일 뿐이기에, 결국은 물건을 덜어내야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찾아와 머물게 하려면, 고요하게 비워야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누군가를 맞이할 여유가 없습니다. 빈틈없이 들어찬 마음을 바라보는 상대는 만석 버스를 올라타야 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결국 올라타기를 주저하다가 당신의 마음을 보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장자는 자기 주관과 지혜를 버리면, 귀신도 찾아와 머문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스러운 존재조차 찾아 들 정도라면, 이승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입니다.


삶에서 자기 주관과 지혜는 꼭 필요합니다. 이를 버리는 일은 자기 삶을 남에게 내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장자는 그런 인생의 무기조차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복잡한 인생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마음은 하나지만 공간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마치 집이라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알맞은 크기의 방을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주관과 지혜 같은 인생의 무기는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마음 한편에 마련된 공간에 잘 넣어둡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찾아와 머무를 수 있도록 마음의 너른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입니다.


만약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넘치는 지혜, 고민, 걱정, 불안과 같은 감정들이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빛이 들어서지 못하는 마음에는 사람이 찾아와 머물지 않습니다. 설령, 문을 두드려 방문하기를 원한대도, 발을 들이밀 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사람들은 점점 당신의 정류장을 찾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마음을 비워낸들, 한평생 햇빛이 들지 않은 곳에 남는 것은 썩은 곰팡이 자국뿐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 매일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비우기가 어렵다면, 마음 한편에 공간을 마련해 두고 그곳에 잠시 짐을 옮겨두십시오.



앞만 보며 내달리는 마흔에게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입니다. 하나를 끝내면 더 큰일이 기다리기에, 좀처럼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마음을 돌볼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때론 폭풍이 몰아쳐 마음의 호수에 물결이 일고, 여기저기서 떠내려온 고민의 부유물들로 마음은 잿빛이 되어갑니다. 이렇게 뒤죽박죽 헤집어진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장자』 「덕충부」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흐르는 물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지 않고, 멈춰 있는 물에 자기를 비춰봅니다. 오직 고요한 수면이라야 사람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매 순간 크고 작은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흐르는 물에 비춰본 사물의 모습은 고정되지 않은 채 기괴하게 일그러집니다. 수면에 무언가를 온전하게 비춰보려면, 호수와 같이 고여 있는 물이어야 합니다.


수면을 거울삼는 것이 아닌, 물속을 들여다볼 때도 흐르는 물보다 고여 있는 물이 좋습니다. 일렁이는 물결은 수면 너머에 있는 수풀이나 물고기의 형상을 제멋대로 흩트려놓기 때문입니다.


마음 또한 물과 같습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일렁이는 마음은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마음 표면에 비친 자기 모습은 이목구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기괴한 형상입니다.


그러니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표면에 비친 내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의도적인 쉼입니다.


'한숨'은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입니다. 대개 근심이 있을 때, 해결되지 않은 일을 붙잡고 늘어질 대로 늘어지다 막막함에 터져 나오는 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한숨은 되도록 참아야 하는 걸까요?


지금 당장 한숨을 내쉬어 보십시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는 호흡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숨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바쁘게 보내는 일상 중에 의도적인 쉼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진 휴가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할 뿐입니다. 이런 허울뿐인 휴식보다 일상에서 내쉬는 한숨이 몸과 마음을 쉬게 합니다. 그러니 긍정의 기운을 담은 한숨은 되도록 많이 내뱉는 것이 좋습니다. 긴 한숨 끝에 들이마시는 신선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고, 마음의 호수에 이는 물결을 가라앉혀 줄 테니 말입니다.


마흔에 걷는 도의 길

무언가에 열과 성을 다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무리 없이 진전됩니다. 그런데 매일 반복하는 연습이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실력이 정체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슬럼프'입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사람은 그동안의 노력이 한꺼번에 발현되어 전에 없던 성장을 이룹니다. 반면, 그대로 주저앉아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듯 슬럼프는 위기이자 기회인 셈입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매진하는 것이 아닌, 한 발짝 떨어져 매몰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쉴수록 슬럼프를 극복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슬럼프에 빠진 사람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실력을 갈고닦은 사람이기에, 더 이상의 노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그렇게 되찾은 고요함으로 천천히 문제점을 찾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글쓰기의 매력은 '퇴고'에 있습니다. 매력이라고 표현했지만, 퇴고의 과정은 지난한 고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쓴 글이지만 수십 번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도무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구분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일종의 '글쓰기 슬럼프'인 것입니다. 그럴 땐, 책상 서랍에 글 뭉치를 넣어두고는 존재 자체를 잊을 때까지 내버려 둡니다.


한참이 지나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때쯤 다시 글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읽는 글에는 신선함이 느껴집니다. 글도 내 마음도 잔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고요해진 글에 비로소 내 마음이 온전하게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흔에는 쉼을 통해 고요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