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마이라 칼만 (지은이), 진은영 (옮긴이)
ǻ
윌북아트
   
25000
2025�� 01��



■ 책 소개


간신히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삶의 무게에 관한 마술적인 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자신으로 태어나 무언가를 손에 쥐고,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희망, 돈, 크고 작은 슬픔, 사랑하는 사람, 자기 몫의 일.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이처럼 우리가 평생 가지려 애쓰는 것, 사로잡히는 것, 기대는 것들을 조명하며 인생의 면면을 찬찬히 사색하는 그림책이다. 특히, 여자의 인생을.

책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그림과 짤막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떤 여자는 책을 들고 있고 어떤 여자는 닭을 들고 있다. 어떤 이는 원한을, 혹은 용기를 지니고 있다. 딸을 위로하는 어머니, 막 결혼식을 올린 신부, 통나무 같은 두 다리로 인생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할머니가 있고, 내면의 어둠과 싸우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에게 진실한 글을 쓰는 거트루드 스타인도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삶의 허들을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내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는지,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질 수 없는지 가만히 반추하게 한다. 마치 여러 빛깔의 조각들로 만든 모자이크화처럼, 이 책은 86점의 그림으로 ‘인생’이라는 모자이크화를 완성한다.

■ 저자 마이라 칼만
세계적인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포함한 전 세계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30권이 넘는 책을 그리고 썼다. 2008년에는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아 앤디 워홀, 이세이 미야케가 이름을 올린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17년에는 “스토리텔링,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모두에서 탁월한 경지를 이뤘다”는 평가와 함께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에게 수상하는 미국 그래픽아트협회AIGA 메달을 받았다. 1999년부터 수많은 《뉴요커》 매거진의 표지 그림을 그렸고, 오랜 시간 《뉴욕 타임스》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의 일러스트 칼럼을 보여주며 ‘뉴욕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5세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뉴요커 예술가로 살고 있다.

마이라 칼만은 아이들을 낳은 뒤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사랑이자 20세기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로 손꼽혔던 남편 티보 칼만이 49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글쓰기에 더욱 몰두했고 2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티보 칼만이 설립한 전설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M&co.에서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디자인 컬렉션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소니SONY, 맥MAC, 케이트 스페이드 등과 디자인 콜라보 작업을 했으며, 테드TED에서 여러 차례 삶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다. 쿠퍼 휴이트 스미소니언 국립 디자인 뮤지엄 어워드 최종 후보에 두 차례 올랐으며, 세계적인 그림책 어워즈인 보스톤 글로브 혼북 어워즈, 마이클 프린츠 어워즈에서 명예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뉴욕 타임스》 ‘올해 최고의 아트북’, ‘가장 주목할만한 책’으로 선정된 『불확실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Uncertainty』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s』,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파이어보트Fireboat』 외 다수가 있다.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글쓰기의 요소』의 일러스트 에디션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2022년 《뉴욕 타임스》 ‘최고의 아트북’으로 선정되었으며, 국내에 출간되는 마이라 칼만의 첫 책이다.

■ 역자 진은영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로 등단했다.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출간했고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과 시집 『에어리얼』을 우리말로 옮겼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추천의 글

가끔 세수를 하다 말고, 동그랗게 모은 두 손을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도 같고 모든 게 들어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무엇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든 놓이도록 둘 수 있다. 때로는 책이 놓이고 때로는 얼굴이,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오고 가는 그 자리를 이 책은 가만히 바라본다. 무엇이 손바닥에 놓일지는 삶에 맡겨두고 다른 이의 손바닥에 무엇을 놓을지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사라질 세상에서도, 그 자리에는 여전히 물건들과 기억과 사랑이 오고갈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이의 손을 소중히 스쳐갈 따름이므로.

-김겨울 (작가)



마이라 칼만의 독특한 책들은 늘 묘한 전율을 선사한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과감히 무너뜨리는 책들. 언젠가 나도 그 책들처럼 나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 가장 내밀한 무언가를 펼쳐 보이리라 꿈꾸고 기대했다. 이토록 새롭고도 근사한 화법을 만들어내는 그의 책들을 나는 사랑한다.

-윤가은 (영화감독)



여자들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지니는 것이자 품는 것이 된다. 여자들이 무언가를 들고 있다면 그것은 소중하고 묵직한 것이라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칼만은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여자는 드물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혼자이면서 아기를 돌보고, 혼자이면서 세상을 수선하고, 혼자이면서 고통을 헤아리고, 혼자이면서 사랑을 도모하는 여자들. 이들의 손은 팔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뻗어 나온다.


그림 속 여자들은 오래된 가방처럼, 텅 빈 테이블처럼, 따뜻한 찻잔처럼 있다. 그저 존재한다. 기다리고 움직이고 멈춰 있다. '정지' 상태로 흐른다. 능동과 수동이, 기쁨과 슬픔이 나란한 상태다. 칼만은 'holding'이란 단어를 매 그림 곁에 놓아두었는데, 내게는 그 단어가 세상을 여는 문고리처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나긴 시간이 눈앞에서 압축해 흘러간 듯한 기분이 든다. 먼 곳까지 흘러갔다 돌아온 기분. 마술이다.

-박연준 (시인)



책장을 덮으며 문득 내가 이제껏 붙잡아 온 것, 지금 붙잡고 있는 것, 그리고 붙잡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몹시 두려워진다. 삶이란 그 무언가를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다시 그 무언가를 애써 포기하는 일의 연속이니까. 게다가 우리는 알고 있다. 손에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결국 그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때로 그 명료하고 잔인한 사실이 삶의 의지를 모조리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슬픈 아이러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칼만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아이러니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회한이나 달관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부조리야말로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할 정수라고, 당신을 버티게 해줄 단 하나의 진리라고, 단호하지만 상냥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꼭 버티세요'라는 마지막 문장으로부터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경험 어린 위로를 받게 되는 건.

-김선우(화가)



작은 찻잔 속에서 바다를 발견하게 하고, 사소한 대화 속에서 우주를 느끼게 하는 놀라운 작품.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의 이야기와 그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며, 우리가 지나쳐온 평범한 순간들을 다시금 특별한 빛으로 물들인다. 이 책을 읽는 건 마치 삶이라는 거대한 직물 속에 새겨진 무늬를 한 땀 한 땀 들여다보는 과정과 같다.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웃과 나눈 일상이 오래된 편지처럼 소중하게 다가오고, 그 속에서 나의 기억과 감정들이 조용히 깨어난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 속 사소한 물건들이 삶에서 잃어버렸던 조각을 찾아주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독자는 편안히 읽다가도 어느 순간, 책의 시선이 깊숙이 와닿으며 가슴이 묵직해지는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잊고 지냈던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게 하는 한 편의 서정시이자,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다정한 포옹이다.

-이소영(미술 에세이스트)



마이라 칼만은 평범함 속에서 장엄함을 포착하는 흔치 않은 철학자다. 꽃, 사랑하는 사람, 슬픔, 풍선, 질투, 희망. 이 책은 우리가 삶에서 가지는 모든 것들을 기념한다. 간신히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삶의 무게에 관한 마술적인 이야기다.

-마리아 포포바(작가)



여자들은 무얼 가지고 있나?


집과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음식.

친구 관계.

일. 

세상의 일.

그리고 인간다워지는 일.

기억들. 

근심거리들과 

슬픔들과 

환희. 

그리고 사랑.


남자들도 그렇긴 하지만, 그닥

비슷한 방식은 아니다.


What do women hold?


The home and the family.

And the children and the food.

The friendships.

The work.

The work of the world.

And the work of being human.

The memories.

And the troubles

and the sorrows

and the triumphs.

And the love.


Men do as well, but not

quite in the same way.


***


때로,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별히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그럴 땐 수많은 사람을

내가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온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어떨 땐, 작은 방조차 겨우 가로지른다.

나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다. 얼어버린다.


Sometimes, when I am feeling

particularly happy or content,

I think I can provide sustenance

for legions of human beings.

I can hold the entire world in my arms.


Other times, I can barely cross the

room. And I drop my arms. Frozen.



세잔의 체리

여기 세잔의 체리가 담긴 그릇이 있다. 세잔은 바로 이 그릇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와 그의 아내 오르탕스가 그 체리를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잔과 오르탕스가 다투거나 의견이 달랐던 게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사사건건 그랬는지 나는 모른다.

두 사람은 벽을 어떤 색깔로 칠할지, 혹은 의자에 어떤 커버를 씌울지,

혹은 세잔이 오르탕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를 두고 다뤘을지 모른다.

혹은 오르탕스가 세잔에게.


그들은 의견이 다르고, 다투고, 부루퉁해지고, 침울해지고, 맥이 빠지고,

그런 뒤에 세잔은 체리 혹은 나무를 그리고, 오르탕스를 그리고

또 그린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난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건 하루하루가 투쟁이고,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리가 담긴 그릇을 그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내 친구(남자)가 말했다. 내 어휘집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다.


***


이 그림 속 여자들은

나의 시어머니 메리앤, 그리고 그의 쌍둥이 자매 돌리다.


이들은 태어난 날부터 서로를 미워했다고 말한다면, 부당할까?

하지만 정말 그랬다.


메리앤은 돌리가 자기를 어떻게

배신했는지 자세히 들려주곤 했다. 그래, 배신했다고.


전쟁이 끝난 후, 돌리는 부다페스트에서 메리앤의

통행증을 팔았다(마치 영화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처럼).

하지만 돌리는 헝가리인이었고, 그래서


뉘우치지 않았다.

끄떡없었다.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지 않는 데에는 좋은 점이 있다.


메리앤은 티보를 낳았다.

그때 메리앤은 몰랐다. 티보가

나를 만나고 우리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내가 자신을 대신해

그의 애정을 차지할 거라는 걸.

내 입장에서 열쇠를 쥔 건 그였다.


메리앤과 그의 남편 조지는 성적으로 자유로운

결혼 생활을 했다. 그 점에선 둘 다 방탕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그들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그들이

실버타운에서 생애 마지막 몇 해를 보낼 무렵, 메리앤이

그곳에 살던 콘래드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그들은 아주 작은 공동체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메리앤은 조지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 애썼다.

메리앤도 그렇게 솔직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콘래드와 메리앤은 파리로 밀회를 떠났다.

조지에겐 캐나다에 있는 돌리를

방문할 거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을 떠나자마자,

돌리는 조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주었다.

메리앤이 어디에 없고

어디에 있는지.


메리앤이 있는 곳은

생루이섬의 아름다운 아파트였다.

콘래드는 아침마다 메리앤에게

쟁반에 크루아상과 커피를 담아 가져다주었다.


그건 그들만의 신혼여행이었다.

두 사람은 몽소 공원에 갔다.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에 갔으며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 셰 조르주(Chez Georges)에 갔다

(아이러니다). 

그 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조지는 집을 나갔다.

그는 아흔 살이 다 되었었고

이 로맨스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조지는 메리앤의 품에 안겨 죽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콘래드도 메리앤의 품에 안겨 죽었다.


쉬운 일이 없다.


***


엘리자베스와 나는 공원을 걸으며

옷을 입은 개들과 입지 않은 개들을 본다.

나무는 앙상하거나, 잎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고 있다.

체리나무. 라일락. 보리수. 대기를 향기로 가득 채운다.

불쑥 나타났다 차츰 시들어가는 꽃밭들.

늘 변하고 옮겨가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걷는 내내, 엄청난 사람들의 행렬.

대부분 딱 한 번 마주친 사람들이다. 종종 보았던 이들도 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철학자들은 보조를 맞춰 걸으며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뒤뚱뒤뚱 걷고 있는 키 작은 쌍둥이들은 렌즈가 콜라병처럼

두꺼운 안경을 쓰고, 길고 곱슬곱슬한 회색빛 머리는

앞가르마를 탔다. 험프티 덤프티처럼 생긴 목소리가 큰 남자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으며 전화에 대고 소리치듯 의견을

말한다. 우리가 돌체라 부르는 상냥한 남자는 늘

모자와 스카프를 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 작은

개를 산책시킨다. 우리는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는 이방인이다.

많은 길을 천천히 돌아간다.


하찮은 듯 보이는 뜻밖의 발견이 몹시 만족스럽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묻곤 했다.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우린 정답이 시간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불행한 결혼 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만큼 불행했을까? 셰익스피어적인 수준으로?

흔해 빠진 정도로? 알 수 없다.

어머니는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여쭤볼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떠났고

자신의 시간을 찾았다.


그런 시간을 찾는 게 우리가 원하는 전부다.

당신은 시간을 찾자마자 더 많은 시간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을.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너무나 이상하다.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죽는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


아버지에 대해서 한마디.


그의 이름은 페사흐.

아버지는 벨라루스의 볼로진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아버지의 가족은 포목점을 운영했고 부유했다.

전쟁 전에 아버지는 두 형제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갔고

나머지 가족은 벨라루스에 머물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물론, 당신도 알 것이다.

이미 천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 죽었다.

총에 맞아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내 사촌들과 나는 그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나는 그걸

더는 그곳에 없는 것을 방문하는 여행이라 불렀다.


아버진 뭘 가지고 있었을까?


그는 나를 안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약속한 건 다 했다.

그가 모든 비용을 댔다.

우리는 잘 먹었고 잘 입었다.

여행도 잘 다녔다.

나는 무용 레슨과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갔다.


그 밖에 그는 뭘 가지고 있었나?

가족을 잃은 비통함.

어쩌면 그 비통함이 그를

이상하고 부조리한 세계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방탕했다. 많이.

그는 점점 더 멀어졌다.

의심이 많아졌고, 화가 났고, 상처를 받았다.


그는 무엇을 갖지 못했나? 말하려니 슬프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사랑과 이해였다.


어쩌면, 아버지가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은

그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은 쉽지.


우리 가족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지식을 나누는 실질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모든 걸 불쑥 내뱉거나,

웅얼거리거나, 

수군거리거나, 

고함을 쳤다.


어떤 것도 의미가 통하질 않았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줄곧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우린 서로에게 무슨 말을 했던 걸까?

정말이지 모르겠다.

어떻게 우리가 그 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소통의 결핍이

진정한 소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지독히 길었던 남편의 투병 생활 끝 무렵엔

우리가 서로의 문장을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다는 점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