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도서정보

■ 책 소개

내 영혼에 새겨진 파리의 감각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진 건 여행의 순간이었다

어떤 여행의 순간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우리를 위로한다. 이 책은 그러한 순간들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포착해낸 에세이다. 언어를 사랑하는 통번역가인 작가는 평소 불어에 매력을 느끼고, 막연히 파리를 동경해왔다. 그러다 서른의 문턱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질문들을 견딜 수 없어, 홀로 파리로 떠난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나를 사색할 기회가 많아진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이가 없어, 나와 대화하고,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나와 친해지게 된다. 작가는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내면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작가는 이 과정을 ‘파리의 감각’이라고 말한다.

■ 저자 정연숙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뒤 인하우스 통역사를 거쳐 지금은 통번역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 커피와 비 냄새, 고요한 밤공기, 그리고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의 서정성을 좋아한다.

이성의 언어로 가득 찬 세계에서 언제나 감성에 목말라했다. 그러다 감각적인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에 정신적 풍경을 바꾸는 해갈의 능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글을 쓴다. 쓰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005

파리 제1의 감각

시각: 내 눈에 담긴 파리의 얼굴

마담과 마드모아젤 사이에서 017

모네, 영혼의 정수 022

아멜리에와 사랑스러운 고독 029

언젠가 함께 파리에 036

방돔 광장에서 마주친 반 고흐 블루 041

빗속에 녹아드는 아름다운 침묵을 047

어린 파리지엔느 053

자신만의 표정이 있을 것 057

한없이 따뜻한 센강의 블루 062

파리 제2의 감각

청각: 내 귀에 울려 퍼진 파리의 음성

메닐몽탕 거리에 울려 퍼진 새벽의 종소리 071

눈을 맞추며 건네는 작은 인사 075

오페라 하우스와 인생의 아라베스크 081

파리는 빛나는 순간들 088

쓸쓸한 영혼을 위한 노래 092

마들렌에서 만난 파리 남자 097

카페 크렘 한 잔 주세요 103

1870년 파리를 걷다 110

파리 제3의 감각

미각: 내 혀에 드리워진 파리의 맛

크레페를 먹을 때는 크레페만 생각하자 119

관능적이면서 우아한 파리의 맛 123

솔직하고 자유롭게, 카페 필로에서 철학 한잔 128

마카롱에 물든 마음 134

사르르 녹아내리는 몽블랑과 눈 덮인 산 139

한낮의 와인과 에스카르고와 밀푀유 143

말차 같은 시간들 148

미지근한 와인 대신 시원한 맥주를 154

파리 제4의 감각

후각: 내 코에 스며든 파리의 냄새

수프에 기대는 밤 161

파리의 정원을 담은 차의 향기 166

바게트 품에 안기 171

브리 치즈가 내게 알려준 것 175

종이 냄새가 그리운 날에 179

월하, 달빛 아래 184

몽소 공원 진초록 벤치에 앉아 189

파리 제5의 감각

촉각: 내 피부에 스친 파리의 위로

파리를 부드럽게 품어내는 존재, 에펠탑 199

헤밍웨이의 토끼 발 204

말 없는 것들의 위로 209

보주 광장의 촉감 213

너에게 진한 키스를 보내 218

머리칼에 파리의 밤이 스쳤다 222

찬란한 고독과 별 헤는 밤 227

옛것의 고상함 233

파리 제6의 감각

육감: 내 영혼에 각인된 파리의 느낌

루브르 밤의 신비 241

파리 최초의 카페에서 만난 위대한 작가들 247

생폴 생루이 성당에서의 낮잠 253

길을 잃은 파리의 밤에 256

나를 사색하는 여행 261

물랭루주와 생의 슬픔을 그려내는 사람 266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273

흑과 백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샤넬을 만나다 278

가장 따뜻한 언어 282

도서요약

파리의 감각

모네, 영혼의 정수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인 사람들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왜 하염없이 바라보는지를. 부동의 자세로 그림을 마주하던 몇몇 이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스산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내가 방문했을 당시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비교적 한가했다. 특별한 공간에서 사색과 고독을 만끽할 수 있는, 인생에서 몇 안 될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나에게 침잠하는 법을 잘 몰랐다. 작품들이 근사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앞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왜 저렇게 오래 앉아 있는 거지?’라는 생각뿐, 작품 자체에 감동하거나 어떤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수련 연작이 뿜어내는 공간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그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모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파리 근방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서 기분 전환을 위해 수련을 심었던 그는 처음엔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수련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마음이 영글지 않았을 때는 큰 관심이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늘 눈앞에 있던 대상이 빛나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모네는 수련을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몇 해 전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그의 수련 연작을 마주했을 때는 별 느낌이 없다가 세월이 흘러 아련한 감정을 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나는 그림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었다. 나의 눈은 오로지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사물의 내면이나 본질에는 마음을 할애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만물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에도 그 ‘때’가 존재한다. 마음이 영글어지는 때 말이다. 나는 파리 여행 이후로 그 시기를 맞이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혼의 유배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비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며 폭풍이 끊이지 않던 그 시절, 스스로가 인생의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나의 마음에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기는 신이 나에게 주는 어떤 표지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우면서 의식의 성장을 이룰 시기이니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한 단계 더 진화할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풋풋한 마음의 계절을 지나, 열매가 무르익어가는 것처럼 더 성숙하고 단단한 마음이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 후 당장 눈앞의 상황이 확 바뀌진 않았지만 확실한 건 내 안에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것이고, 좀 더 괜찮은 나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나의 의식이 이전과 달리 성숙해졌다고 느꼈을 때는 다름 아닌 실패의 경험들을 두루두루 거치고 난 후였다. 어쩌면 삶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나를 쓰다듬고 위로해주어야 마땅하다.

파리 제3의 감각
미각: 내 혀에 드리워진 파리의 맛
크레페를 먹을 때는 크레페만 생각하자

뱅센 숲으로 가는 여정은 꽤 험난했다. 생각보다 긴 이동 시간에 숲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피곤해진 나는 현지 사람들이 갈 만한, 요란스럽지 않은 카페를 찾고 싶었다. 타박타박, 사박사박. 파리의 동네 이곳저곳을 무작정 거닐었다. 그러다 어느 카페 앞에서 우연히 발길을 멈췄다. 커피와 크레페를 파는 가게였다. 인테리어에 크게 공을 들이진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 났다. 관광객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근처에 사는 사람들만이 동네 마실 나올 때 드문드문 방문할 것 같은 소박한 분위기의 카페에, 나는 이끌리듯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쩌면 나를 이끈 것은 블루 컬러의 테이블보였을지도 모른다. 카페 문을 열기 전, 창문 너머로 보이던 선명한 블루 컬러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마치고는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테이블보와 함께 의자도 창틀도 모두 블루로 통일되어 있던 이곳은, 어딘가 모르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주문한 에스프레소와 크레페가 나왔다.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잔 옆에는 스틱 설탕이 있었고, 아몬드색으로 알맞게 잘 구워진 크레페는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 진한 누텔라를 곱게 펴 바른 크레페를 한 입 먹자 궁극의 단맛이 느껴졌다. 단맛으로 꽉 찬 입 안으로 에스프레소의 쓴 맛이 밀려왔을 때 나는 행복을 느꼈다. 온갖 멋진 것에 둘러싸여 느끼는 큰 행복보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버릴 만한 행복, 나는 이런 작은 것에 자주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한창 미각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때 노부부 손님이 들어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차림으로 보아 근처에 사는 동네 주민인 듯했다. 노부부는 익숙한 듯이 우선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노부부는 메뉴판에 몰입하며,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추가로 시킬 것들을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묘하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오롯이 현재에 충실하고 있었다. 커피에 곁들일 크레페를 고르는 단순한 행위가 노부부에게는 큰 기쁨인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들과 달리 나는 언제나 인생의 기쁨을 미래에서 찾고 있었다. 미래에 언젠가 멋지고 근사한 일들이 나를 찾아올 거라 믿으며 지금 존재하는 것들은 그저 흘려보내면서 살았다. 그런데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그 현재를 버리고 또 다른 미래를 그리며 보이지 않는 이상을 좇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크레페를 먹을 때는 크레페만 생각할 수 없을까? 나는 언제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내면은 고요하지 않았다. 곧잘 사색과 몽상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은 ‘지나치게 자주 생각에 빠지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였다. 생각이 많다는 건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생각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함이 밀려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데, 잠들기 전은 물론이거니와 잠을 깨고 난 직후에도 그날의 고민들을 미리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크레페 가게에서는 어떤 크페레를 먹을 것인지만 생각하고, 크레페가 테이블 위에 놓였을 때는 크레페를 먹는 것에만 집중하던 파리의 노부부처럼. 무언가를 먹을 때 맛을 음미하는 데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인생인가.

파리 제4의 감각
후각: 내 코에 스며든 파리의 냄새
몽소 공원 진초록 벤치에 앉아

고소한 버터 향이 풍기는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몽소 공원을 걸었다. 아침 시간을 조용히 즐기기 좋은 장소였다. 적당히 차분하고, 적당히 소란스러웠으며, 적당히 생기가 돌았다. 파리에서 여러 공원을 방문했지만, 이토록 생활감이 묻어나는 곳은 보지 못했다.

나는 파리에서 오래 지낸 사람처럼 걸었다. 근처에 있는 집에서 막 나와 나른한 기운을 쫓아 보내려는 사람처럼. 걸음을 뗄 때마다 그들의 생활에 한층 가까이 다가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록이 흠뻑 드리워진 길을 걸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숲의 신성한 기운과 싱싱한 공기가 내 안에 가득 담겼다. 나는 숲 냄새를 좋아한다. 숲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사연들이 가득 넘쳐흐르니까. 사람을 포근히 감싸 안는 숲의 자상함이 좋았다. 나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무를 닮은, 자연을 닮은 진초록 벤치였다.

벤치 뒤로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몇 년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나무들이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월등히 긴 삶을 살았으리라.

나무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에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물질이 나오는 게 틀림없다. 나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벤치 등받이 위에 팔베개를 한 채, 나무의 숨결을 느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무가 다친 내 마음을 치유하도록,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어둠의 감정을 모두 밀어내도록, 숲 냄새에 나를 맡겼다. 이곳이 나쁜 기억을 망각하게 하는 숲이라고 생각하면서.

초록이 우거진 공원에서 명상을 한 적이 있다. 눈을 감으면 숲 냄새가 코 안으로, 목구멍 안으로, 폐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숲의 숨결을 가득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명상을 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부드럽게 내 볼을 감쌀 때면 나도 모르게 나른한 한숨을 내뱉곤 했다. 어둠이 걷히는 것만 같아서, 따스한 위로를 받는 것만 같아서.

몇 분이 흘렀을까. 나는 눈앞에 있는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 나무의 나뭇잎이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나무가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나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무가 나 같았고, 내가 나무 같았다. 나무와 명상은 매우 닮아 있었다.

몽소 공원의 벤치에서 나는 직접 명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머물렀다. 탁한 마음이 맑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명상을 하는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다. 한결 밝아진 기분으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지만, 어쩐지 그날 커피 맛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 이 커피를 마셨을 때는 특별한 향을 내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커피라고 생각했지만, 숲 냄새를 깊이 음미하고 난 후 다시 마셔보니 맛이 달랐다. 잊힌 향을 끌어올린, 숲의 기운이 가미된,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담은 그런 맛이었다. 조금 식긴 했어도, 몽소 공원의 숲 냄새가 담긴 소중한 커피였다. 거기에 고소한 크루아상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파리다운 아침 식사였다.

파리 제6의 감각
육감: 내 영혼에 각인된 파리의 느낌
나를 사색하는 여행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앞에는 파리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내 옆에는 할머니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견종을 가늠할 수 없는 개였다. 누런색과 검은색의 짧은 털이 거칠게 나 있고, 엷은 갈색 눈을 지녔다. 늠름하고 기세 좋게 생긴 이 개는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이 개는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단계의 눈빛이 나닌,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사람의 말을 이해할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늠름한 자세와 눈빛에 빠져, 나는 개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사색의 기운은 나에게도 스며들었다. 나는 발아래로 펼쳐진 파리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 눈빛이 멈춘 곳은 루브르 박물관도 에펠탑이나 튈르리 정원도 아니었다. 눈은 그저 열려 있을 뿐, 나는 내 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은 과거 어디쯤에 이르러 멈추어 있었고, 그 시간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그것은 파리를 위한 것도, 내 옆의 개를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눈물이었다. 그때를 기억하자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파리에 오기 전 나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그런 내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힘들면 힘내지 않아도 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은 내가 기억하고 신이 기억해. 이제 곧 보상받을 날들이 찾아올 거야. 찬란하게 빛나는 날들이 찾아올 거야.”

뻔하지만 힘이 나는 말, 나는 그 말에 위로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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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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