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환단고기 2: 계연수, 스승 이기를 만나다

   
신광철
ǻ
느티나무가있는풍경
   
16000
2021�� 05��



■ 책 소개


한국정신의 원형, 배달겨레
세계최초, 최고의 문명을 생산한 동이

한국인을 만나려면 만나야 할 책이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다. 역사서의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의 근원을 밝혀주는 책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이름의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감히 말한다. 인류문명의 출발이 동방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소설 환단고기』에서 인류의 원형문화를 만날 수 있고, 근원적인 인류의 정신세계를 연 곳이 동방임을 깨우칠 수 있다. 『소설 환단고기』는 환단고기를 엮은 계연수 선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엮는데 도움을 준 독립군 대장 홍범도와 계연수의 스승이었던 이기 등이 등장한다. 후일 환단고기를 세상에 펴낸 이유립의 아버지인 이관집도 등장한다.

내 조국, 대한민국의 근원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한민족의 피를 가진 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저자 신광철
저자 신광철은 한국학연구소장이며, 시인 및 작가이다. 한국학 연구소장 신광철은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살아있음이 축제라고 주장하는 사람, 나무가 생애 전체를 온몸으로 일어서는 것이 경이롭다며, 사람에게도 영혼의 직립을 주장한다.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성장하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며 살아있을 때 살라고 자신에게 주문한다. 그리고 산 것처럼 살라고 자신을 다그친다. 

신광철 작가는 한국인의 심성과 기질 그리고 한국문화의 인문학적 연구와 한국적인 미학을 찾아내서 한국인의 근원에 접근하려 한다. 40여 권의 인문학 서적을 출간한 인문학 작가다. 최근에는 『긍정이와 웃음이의 마음공부 여행』을 두 권으로 묶어냈다. 1권은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거야’ 2권은 ‘인연은 사람을 선물 받는 거야’를 발표했다. 

■ 차례
중국의 역사에 중화는 없다 
1.계연수와 단학도인이 만나다 
2.민란의 조짐이 보이다 
3.홍범도와 기사범 그리고 건달들 
4.계연수, 역사의 은자 이형식을 만나다 
5.중국의 역사에 중국은 없다 

계연수, 『 북부여기』 를 만나다 
6.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나선 홍범도 
7.끊긴 국통맥을 이어줄 《북부여기》 
8.나철, 과거에 급제하다 
9.홍범도, 옥녀를 찾아 떠나다 
10.계연수와 이기가 만나다 

스승을 만난 계연수 
11.홍범도와 범잡이가 만나다 
12.계연수, 이기를 스승으로 모시다 
13.홍범도, 옥녀를 만나다 
14.계연수, 역사학당에서 강론하다 
15.행복한 홍범도, 홍범도 역사의 길에 들다 

전봉준, 혁명의 횃불을 들다 
16.전봉준, 동학도로서 우리역사에 발을 딛다 
17.홍범도, 포수들의 대장이 되다 
18.전봉준, 세상이 횃불을 들게 하다 
19.전봉준, 큰바위얼굴을 찾다 
20.이건창, 세상을 예언하다 

비서秘書 <태백일사> 
21.이기가 계연수에게 비서秘書 《태백일사》를 전해주다 
22.동학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다 

 




소설 환단고기 2:계연수, 스승 이기를 만나다


중국의 역사에 중화는 없다

계연수와 단학도인이 만나다

늑대의 울음이 가까웠다가 다시 멀어지고 아침이 밝아왔다. 가져온 선식(仙食)으로 계연수와 단학도인은 끼니를 대신했다. 단굴암 안에서 소리도 없이 솟는 샘물로 얼굴을 씻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다시 눈을 뜨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역사를 가진 유일한 동물, 인간으로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삼한관경제의 흥망이 우리 역사에서는 중요한 단서가 아닙니까?

-그렇네. 단군조선은 삼한관경제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했다고 할 수 있네.

계연수의 물음에 단학도인이 답했다.

-무엇이 삼한관경제를 깼고, 무엇이 삼한관경제를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삼한관경제는 왜곡된 단군조선사의 뿌리와 정통성을 바로잡는 핵심내용이었다. 단군왕검은 세계 문명의 시원 국가인 환국과 배달의 대도(大道)정신을 정통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삼신 원리에 깃든 광명 원리를 근본으로 해서 단군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 번한 마한이었다. 진한은 단군 천제가 직접 통치하고 마한과 번한에는 부단군 격인 왕을 두어 다스리게 했다. 진한 번한 마한이 북삼한으로 전삼한(前三韓)이라고도 한다. 삼한관경제는 고조선 문화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였다.


계연수의 질문에 단학도인이 답했다.


-역사에 대한 믿음의 문제였네. 초기 단군 때부터 시작한 삼한관경제는 잘 유지되다가 믿음을 저버리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는 22세 색불루단군 때 크게 흔들렸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색불루단군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천도를 하게 되는데 천도와 더불어 문제가 생기게 되네.

-말씀하신대로 믿음에 대한 문제겠지요.

-그렇네. 진한이 정통성에 문제가 생겨 전체를 관장하는 주군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되자 반발이 일어나게 되네. 그것이 바로 위계가 무너지고, 삼한 체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뀌게 되는 요인을 제공하게 되네.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바뀌고 고조선이 다시 망하는 계기는 무엇입니까?

-핵심은 군권의 독점이 무너졌기 때문일세. 모든 국가권력은 결국 힘에서 오지. 삼한에서는 진한만이 군권을 가지고 있어 힘의 위계가 있었는데 삼조선 체제로 바뀌면서 삼조선이 모두 군권을 가지게 되니 삼조선이 모두 독립된 세 나라가 되었지. 통치체계가 무너지자 고조선의 힘의 약화가 급속하게 왔지.

-결국 망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군요.

-그렇네. 44번 째 단군이었던 구물단군이 대부여로 국호를 바꾸고 국가 재건에 힘을 쓰지만 결국은 망하고 마네.

-아하. 그랬군요.

-결국 마지막 단군인 47번째 고열가 단군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네. 역사에는 흥망이 있고 성쇄가 함께 하지.

계연수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단학도인에게 말했다.

-저와 도인님과는 무슨 인연입니까?

-만나야 할 인연이지.

계연수의 말에 단학도인의 답이었다.

-왜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 만나야 할 사람 몇은 정해놓고 태어난다네.

-그게 사실입니까?

-여기에 내가 찾아온 것도 마찬가지야.

-저를 만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사를 짊어진 자, 역사의 기록자에게 천부경의 실체를 알려주고 가는 것이 내 임무야.

-제가 역사를 짊어진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도 모르네. 다만 나를 이끄는 힘이 있었네. 그리고 자네를 만날 사람인 것은 선몽으로 알았지. 자네 얼굴을 보았고, 단굴암으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네. 그리고 자네가 선몽처럼 단굴암으로 찾아온 걸세.


믿어지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고 있지 않은가.

-역사를 짊어진 자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간단하네. 은자들이 가진 역사를 집대성하는 일일세. 지금 은자들이 할 일은 역사서를 통합해서 하나의 정통역사서를 만들어 내는 것일세. 역사의 기록자가 필요한 때지. 그것이 자넬세.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까?

-그렇지는 않네. 임무는 임무일 뿐일세.

그러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네.

단학도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역사의 짐을 짊어졌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단언이었다. 다시 말하면 모두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인생의 책무를 지고 살아가지만 임무 완수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계연수의 머릿속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스스로 선언했다. 그리고 다짐과 결의를 다지기 위해 단굴암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단학도인을 만났다.


-어제 말씀해 주셨지만 다시 묻습니다. 역사란 무엇입니까?

-역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라고 생각하네.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앞서 산 자와 지금 살고 있는 자가 역사라는 사실 앞에서 마주하는 것이지.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어 있고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네.


계연수는 단학도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역사라는 과거의 사실을 두고,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단학도인이 다시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의식은 달라야 하네.

계연수는 단학도인의 말에 귀가 섰다. 일반적인 역사의식과 지금 역사를 짊어진 자가 대해야 할 역사의식은 달라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듯했다. 지금 환민족의 역사는 절박하고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우리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인생을 걸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단학도인의 말에서는 결기가 느껴졌다.


-인류 최초의 국가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류 최초로 문화를 만들어 냈고, 연합국가로 출발해 다함께 잘 살자고 선언한 최초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에. 그래서 반드시 지켜내야 하고, 다시 복원시켜야 하네.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역사를 보존하는 일이고, 복원시켜야 한다는 것은 조각난 역사를 하나로 묶어 완성된 역사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중국의 역사에 중국은 없다.

이기를 중심으로 황현, 이건창, 나철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기를 만나기 전까지 세 사람은 철저하게 유학자였고, 유학으로 무장한 선비였다. 세 사람 모두 중화 중심의 역사의식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기를 처음 만났을 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무시했던 세 사람이었다. 이제는 이이가 가지고 있는 역사에 빠져들고 있었다.


-화하족의 왕조라고 하는 나라가 한송명漢宋明 3왕조뿐이지. 진시황의 진나라도 서융계 왕조이고, 수와 당은 흉노계 선비족 왕조일세. 조금만 공부하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일세. 한송명 세 왕조가 땅을 넓힌 적이 있는가?

이기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었다.


-중국의 사서에는 유방이 흉노에게 신하가 된 사실을 극구 숨겼네. 그리고 바친 조공도 오랑캐에 대한 하사품이라 왜곡을 했지.

-그러면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이번에는 황현이 물었다.


-당나라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네. 당시 북방에서 위세를 떨친 위구르족들에 대해 중국은 온갖 선물을 다 바치며 구걸외교를 했네. 다시 말하면 조공을 바치며 화친을 유지했지. 송나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송나라는 거란족의 요, 서하와의 싸움에서 패해 속국이 되었지. 요나라에는 매년 금 20만 냥과 비단 50만 필을, 서하에게는 금 10만 냥과 차 2만근을 보내 평화를 구걸했지.

-그러면 명나라는 어땠습니까?


명나라는 조선의 꿈이었다. 조선이 꿈의 나라로 섬기는 나라 아니던가. 명나라의 속국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지금의 조선이었다. 명나라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명나라에 대해 알고 싶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떠받들며 스스로 사대를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 조선이 청나라보다도 그토록 섬기는 명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네.

이건창과 황현은 명나라마저 그랬다는 말에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몽고족이 명나라를 위협하자 몽고족을 위해 말 시장을 열고 수십 만 마리의 몽고말을 비싼 값에 사주었고, 몽고의 사신이 오면 선물을 안겨 아부했네. 하지만 역사 기록은 이렇게 적었네. 원나라의 황제가 조공을 바치러 와 명의 황제가 사은품을 하사한 것으로 기록했네.


-역사를 반대로 기록했군요.

-그렇네. 우리도 마찬가질세. 우리의 형제국인 북방민족을 오랑캐라고 하면서 이미 망해버린 중화의 명나라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대를 하고 있네. 사당까지 세워 머리를 조아리는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안타깝네.


명나라에 사대해야 한다는 송시열의 뜻을 받들어 명나라 황제를 위한 사당을 세운 송시열을 비롯한 일단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송시열은 제자들과 만동묘를 세웠다. 만동묘는 임지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만력제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승정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다. 이미 망한 나라의 공덕까지 챙겨서 사당을 세우고 기리는 사대의 현장이었다. 지금도 버젓이 한 자리를 잡고 있다. 정작 그들은 조선의 국조인 환인 환웅 단군은 버리고 있었다.


나철이 이기에게 다가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흉노 몽골 말갈이 우리와 동족이거나 형제국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이 있나요?

-있지. 4세 단군인 오사구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했네. 동생을 몽고의 왕으로 보냈으니 몽고는 우리의 형제국인 셈이지. 몽고족에 대한 첫 기록이네. 여기서 한汗은 우두머리, 군장이라는 뜻이고,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밝고 크다는 한(韓)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네. 칭기즈칸이라고 할 때 칸과 한은 같은 의미일세. 이 말은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같은 풍속이나 관제를 사용했을 수도 있겠군요.

-당연하지. 같은 계통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많네. 백색을 숭상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문화를 가지고 있네. 고수레나 돌장승 그리고 모자에 깃털을 장식하는 것 등이 같지. 샤먼의식도 같다네. 몽골에 가면 놀랄 수밖에 없지. 너무 닮아서.

-중화와는 다른가요?

-그렇다네. 중요한 질문일세. 중국의 화하족과는 이런 유사성이 없다는 점일세.

-아하. 놀랍군요.

-그럼에도 우리 조선은 명나라만을 숭상하는 어리석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네. 더 들어가 보면 우리와 몽골반점이 있는 것에서부터 언어와 설화 그리고 신앙까지 한 민족, 한 혈통이라는 동질성을 확인하게 되지. 역사를 공유한 동일문화권으로 보아야 하네.


-그러면 중화와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중국 땅에 중화는 없네.

-예?

이건창이 놀라는 듯 말을 받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투였다.

-그런 놀라움이 당연한 것일세.

-당연하다고요.

-그렇지. 중국 땅에는 중화의 잔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네. 동이족의 역사가 흥망을 계속 했을 뿐일세.

-그럼, 지금의 청나라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여진이나 거란 민주족이 우리의 형제국인 셈이지. 여진이나 거란 민주족이 우리의 고토 아니던가. 고조선 이전부터 고조선 이후까지. 그리고 고구려와 대진이 도읍했던 땅에 지금의 청나라가 발원한 땅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 만주는 어떤 풍속과 정신을 가지고 있겠는가. 당연히 우리와 같은 정신과 기질을 가지고 있고 문화와 풍속까지도 닮아있지.


-흔히 중화는 문화가 있고, 북방의 오랑캐들은 문화와 정신이 없다고. 그럼 북방민족을 야만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기는 혼자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건창이 이기의 말을 받아 응원하듯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세상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자신들만이 문화가 뛰어나다고 하겠지. 그러나 수많은 사서에 그대로 적혀있네. 아무리 자신들이 중심이고 문화의 생산자라고 우겨도 역사책을 다 없애지 못하는 이상 이를 비웃는 진정한 역사가들은 늘 있을 걸세. 중화의 땅보다 만주 대륙과 북방 쪽에 위대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발견이 계속 되고 있네. 《만주원류고》나 《요사》그리고 《동이원류사》를 찾아보게. 점점 속이기 어려운 상황이 올 걸세.



전봉준, 혁명의 횃불을 들다

전봉준, 동학도로서 우리역사에 발을 딛다

의심 많은 선비와 달리 말없이 그러나 깨어있는 정신으로 전체를 관망하고,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전봉준이었다. 전봉준은 눈매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날카로웠다. 입은 무거웠으나 세상을 판다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었다. 전라북도 고부군의 잔반 출신으로 서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집안은 몰락해가는 과정에 있었으나 정신이 빛나는 인물이었다. 전봉준은 이미 우리 전통의 사상과 정신에 대한 기본 무장이 되어있었다. 전라도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에서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바 있는 향반이었다.


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태어날 때부터 재기 넘치고 활달한 기상을 가졌으나 유난히 키가 작아 5척에 불과했다. 녹두알처럼 키가 작아 ‘녹두’라는 별명을 들었다. 전봉준은 양반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정생활은 상당히 곤궁했다. 그나마 땅이 있었으나 논밭 합쳐 3마지기밖에 되지 않았다. 전봉준은 의협심이 있었으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불만이 있었으나 침묵하고 있었다.


동학을 창시한 교조 최제우가 처형되어 군문 효수되었다. 이후 동학도들은 매년 교조의 무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는 등의 교조 신원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동학도들은 동학도들대로 매년 한성으로 상경하여 교조 신원과 포교 허용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렸다. 전봉준도 청원하기 위해 상경했다.


전봉준은 정확하게는 동학교도가 아니었다. 친구의 영향으로 동학에 대해 몇 번 들은 지식이 전부였다. 전봉준은 역사학당이 조선 전통의 역사를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무장을 위해 찾아왔다. 동학에는 우두머리인 법포에 최시형, 다음 단계로 지역 책임자인 접이 있었다. 손병희가 직계인 북접과 다시 김개남을 지도자도 하는 남접으로 나뉘었다. 남접은 김개남과 손화중이 지도자로 있었다. 전봉준은 역사학당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일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의심 많은 선비의 지적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또한 조선의 선비들로서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였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내용이었다. 명나라에 대하여 사대만 했지 환민족의 정신과 역사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었다. 중국의 역사에는 정통하고, 중국의 역사는 꿰뚫고 있었지만 우리의 고대 역사에 대하여는 어두웠다. 의심 많은 선비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술자리로 이어졌다. 편안하게 사적인 이야기는 물론 궁금한 것에 대하여 물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의심 많은 선비가 이기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전봉준은 말석에 앉아 있었다. 전봉준이 앉아있는 자리는 정적이 흘렀고 흡사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의심 많은 선비가 다시 이기에게 물었다.

-배달의 후손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가셨습니다. 배달은 무엇인가요?

-배달은 우리의 고대 국가인 단국(檀國)의 우리말 표현입니다. 우리는 동이족인데 동이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가 단국입니다. 단국을 배달이라고 하는데 배달의 배는 ‘밝’을 말하고 ‘달’은 땅이라는 말입니다. 연결하면 밝은 땅의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강론할 때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선비의 물음에 이기가 짧게 답했다.

-다시 설명해 주시지요.

-우리 민족은 밝은 기운을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한(韓)의 정신이고, 배달도 같은 뜻이고, 조선의 조(朝)도 같은 뜻입니다.


다시 선비가 물었고 이기가 대답했다.

-그러면 단국 이전에도 나라가 있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최초 국가는 환국이었고, 다음을 이은 단국 그리고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고조선이 있습니다.

-놀랍군요. 너무 몰라 부끄럽기도 하고. 한데 우리는 왜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말에 전봉준도 귀가 번쩍했다.

-당연하다고요?


의심 많은 선비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그대로 물었다. 이기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습니다. 조선은 건국하면서 자신의 조상 역사를 버립니다. 버려도 혹독하게 버리고, 사대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혼과 얼이 담겨있는 책들을 거둬들이고, 완전히 무시해 버립니다. 이런 말 하는 내가 지금 당장 잡혀갈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기강이 느슨해졌고,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상태라 그나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지금도 국법에 위반한 말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선이 어찌하였기에 우리 조선인이 조선의 역사를 모르게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조선 왕조는 태조가 즉위하면서 우리 전통 역사를 버리고 사대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를 소중화小中化라고 합니다. 명의 한 부속국임을 자랑으로 알았습니다. 모든 사상과 교육은 철저하게 중화화됩니다. 다시 말하면 명나라화 되었습니다.

의심 많은 선비는 조용히 대꾸하지 않고 들었다.


-우리 조선에 조선의 인물은 어디에도 없고, 중국 쪽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공부 내용도 모두 중국의 역사요, 문화요, 일화로 가득 찼습니다. 선비들이 시를 지을 때도 모두 중국의 문인들을 예로 들고, 모든 학문은 공자의 유교가 집어 삼켰습니다. 종교도 남의 나라 종교인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상도 중화의 사상을 가져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물도 우리 환민족의 인물은 알지도 못하고 인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그랬군요. 문인은 도연명이나 이백이요, 정치가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비 제갈량 같은 인물이나 초한지의 인물입니다. 병법은 손자가 차지하고. 심지어 글씨까지도 중국의 것을 모범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것은 없군요.


이기의 말을 받아 의심 많은 선비가 말했다.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기가 말을 하기 전에 학생들이 얼마나 자신의 것을 버리고 중화의 것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이순신 장군은 어디 가고, 을지문덕 연개소문은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영웅, 치우천황 같은 분의 이름은 아예 모르고 삽니다.

술자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전봉준은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함께 했으나 한 마디 말도 않고 자리를 지켰다.


전봉준, 큰바위얼굴을 찾다

전봉준은 고민했다.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패를 넘어서 백성을 기만하고 백성을 무시하는 처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함께 들고 일어날 것인가, 멈추어서 원망만 할 것인가. 거사를 두고 전봉준은 보따리 짐을 메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전봉준이 향하는 곳은 혈기황성하던 약관의 나이 때 인생의 방향을 정했던 곳이었다. 평화로운 삶을 살 것인가, 세상으로 나아가 장부로서 고난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다. 전봉준은 세상으로 나아가 한 역할을 하는 삶을 살 것을 결정했었다. 큰일을 할 것이란 마음의 다짐을 했던 곳이었다.


전봉준이 찾아가는 곳은 영암의 월출산이었다. 고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황봉과 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매봉 등이 연이어 있었다. 전봉준이 찾아가는 곳은 영암의 큰바위얼굴이었다. 거대한 암석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근엄하나 인자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인간으로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서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듯한 의연한 바위였다. 사람 얼굴을 가진 거대한 바위 얼굴에 위압감보다는 경외심과 넉넉한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했다.


-나는 왜 흔들리는가. 저 큰바위얼굴은 한 자리에서 마치 산처럼 굳건하게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데. 내가 나를 끌어안지 못하면 누가 나를 끌어안는단 말인가. 나를 안아 줄 사람은 나여야 한다. 그래. 큰바위얼굴을 만나보자.


큰바위얼굴이 새겨진 구정봉을 오르자 왜 구정봉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홉 개의 샘물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바위가 움푹 파여 샘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아홉 개의 샘물처럼 보였다. 한참을 서서 내려 보았다.


-나는 저 큰바위얼굴처럼 큰 사람이 되자.

전봉준은 자신의 마음에게 말했다.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큰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신은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까.

자신에게 물었다.

-분명 신은 내게 태어난 목적을 주었을 거야.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무모하게 던져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다. 내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것은 내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실행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결정을 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몫이었다. 전봉준은 자신이 자신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전봉준은 큰바위얼굴을 만나서 안정되었다. 마음 밖에 부는 바람은 어찌할 수 없지만 마음 안에 부는 바람은 내가 다스려야 할 바람이었다.


전봉준은 구정봉 정상에 올라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아래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했다. 발 아래 펼쳐진 세상이 평화로웠다. 자신감이 솟았다.

-그래. 큰바위얼굴처럼 큰 사람으로 살자.

젊은 날 다짐했던 것처럼 다시 마음 안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전봉준의 복잡한 마음만큼이나 월출산은 제각기 다른 형상을 한 거대한 바위 조각산이었다. 다른 형상들이 모여 월출산을 만들고 있었다. 많은 봉우리와 암괴들을 지휘하는 듯한 것이 큰바위얼굴이었다. 말없이 월출산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 큰바위얼굴이었다. 수천 개의 암봉들이 예술 작품일 정도로 명산이었다. 명산에서 산봉우리와 암봉들을 통틀어 침묵의 통치를 하고 있는 큰바위얼굴처럼 백성들을 마음으로 품어 안아 아픔을 해결해줄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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