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황상호
ǻ
이상북스
   
17000
2020�� 12��



■ 책 소개


원초적 갈망과 도도한 명랑함으로 극한의 길을 걸어낸 사람들 

이 책은 삶의 여러 지점에서 피시티에 대해 알게 되어, 피시티를 꿈꾸다가, 결국 피시티 4300킬로미터를 걸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이다. 노량진 고시원을 탈출해 장거리 하이킹에 도전한 취업준비생, 고급 호텔 허니문을 포기하고 거지꼴로 여행한 신혼부부,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인생 2막을 선택한 청년 등 각양각색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자연 풍광과 함께 펼쳐진다. 

하루 30-40킬로미터씩 걷다가 발에 물집이 생기고 고관절이 덜그럭거리는 육체적 고통에 부딪힌다.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만나 낭패감을 넘어 죽음의 두려움과 싸운다. 시뻘건 사막을 통과해 향긋한 허브향 풍기는 덤불숲을 지나며 나무와 새를 보고 호수의 잔물결에 새삼 감동한다. 밤하늘의 별 운행에 전율하며 깊고 깊은 설산에 올라서는 알몸으로 일출을 맞는다.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그 길을 완주한 사람들의 내밀한 사연과 고군분투한 여정 속에서 그들이 느끼고 깨달은 융숭 깊은 이야기가 무한경쟁과 분투의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삶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처음으로 네 명의 하이커가 피시티를 완주했고, 그 이후 해마다 열 명이 넘는 하이커들이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피시티를 완주한 열 명의 하이커와 피시티에서 영면한 남편을 대신해 펜을 든 아내, 그리고 삶의 다양성과 사회적 기여를 추구하며 활동하는 트레일 엔젤의 에세이 열두 편과 함께 피시티에 대한 기본 정보까지 담아 피시티 안내서로서 부족함이 없다. 

■ 저자 황상호
천연사이다가 익숙해질 때쯤 도미해 진저에일을 마시고 있다. 붙잡지 않으면 금방 날아가버릴, 모험가들의 경험을 글로 옮겼다. 이야기 열매를 따 으깨고 끓이고 발효ㆍ숙성해 책이라는 병에 옮겨 담았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 코르크 마개를 열어 한 잔 음미해보기 바란다. 《내 뜻대로 산다》 《벼랑에 선 사람들》(공저)을 썼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자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 차례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 황상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4300킬로미터를 걷다 
고시원을 나와 6개월을 걸었다, 매일 그만두고 싶었다..... 주민수 
날마다 이동하는 산속 한 평짜리 허니문 빌라 ..... 박준식, 손지윤 
휘트니산 정상에서 아침을 맞다 ..... 윤상태 
산티아고냐 피시티냐, 출발부터 꼬일 줄이야 ..... 박종훈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는 운명의 사람처럼 ..... 권현준 
바람의 신은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 정힘찬 
늘 한 길만 보던 남편, 피시티에서 잠들다 ..... 신선경 
지독하게 힘들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 박승규 
밤하늘 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켜다 ..... 장진석 
그래, 나는 피시티다! ..... 정기건 
기록으로 들어가 다시 길을 걷다 ..... 김희남 
하이커들의 허기를 채우는 ‘부대찌개 끓이는 천사’ ..... 정 인걸 줄리엔 

당신이 알고 싶은 피시티에 대한 모든 것 
30문 30답 
피시티 용어 
피시티 지도 약어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4300킬로미터를 걷다

휘트니산 정상에서 아침을 맞다 ..... 윤상태

담배를 태우던 과장은 애써 태연한 척한다. 비 오는 겨울 하늘,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뱉으며 내게 묻는다. “언제까지 할 거야?”


“한 달 반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종종 소주 한잔 기울이며 속마음을 터놓았던 과장님. 다음날 나의 퇴사 소식은 사무실 모두에게 전해졌고, 그렇게 퇴사과정은 약속이나 한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소위 대기업이라는,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월급날과 휴일을 기다리며 사는 삶이었다. 심심치 않게 퇴사를 꿈꿨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달리고 싶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달리다보니 땀도 나고 심장이 뛰었다. 그것이 왠지 좋았다. 곧장 10킬로미터 마라톤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연이은 대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하고 중국 고비 사막에서 열리는 250킬로미터 사막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하니 아웃도어 스포츠를 향한 열정이 더욱 뜨거워졌다.


폭풍 검색을 통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알게 되었다. 미국 서부 4300킬로미터를 종주하는 길. 그 길을 완주한 하이커의 강연도 듣고 직접 만났다. 그 이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드디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죽어가던 심장의 불씨가 타올랐다. 2017년 2월, 나는 7년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피시티로 떠났다.


미국 최고봉에서 일출을 보다

새벽 5시. 등반한 지 다섯 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육중하고 무수한 돌덩이들이 우리를 반겼다.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울 것 같았던 정상은 예상과 다르게 품이 넓었다. 정상 높이 4421미터. 찬 공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몸에 열을 내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콧잔등 위까지 옷깃을 끌어올렸다.


일출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대피소로 향했다. 대피소는 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돌덩이 틈에 들어가 바람을 피했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끓여 몸을 녹였다.


추위에 얼마나 몸을 떨었을까. 지평선 너머 불그스름한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학수고대하던 일출이다. 붉은 점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어둠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태양의 붉은 기운으로 바뀌어갔다.


토마스와 나는 옷을 남김없이 몽땅 벗었다. 극한 추위가 온 신경을 따라 몸 구석구석 퍼졌다. 몸은 굳어갔지만 심장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동쳤다. 알몸으로 일출을 바라보며 휘트니산 등반은 그렇게 끝났다.


이렇게 난 7년간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탁 트인 사막을 건너 설산을 넘으며 5개월 동안 피시티를 걸었다. 이것으로 내 인생이 크게 바꾸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화려하지만 어두운 네온사인 숲을 벗어나 생의 신비가 가득한 자연의 품을 온전히 느꼈다. 또 내가 오랜 세월 갖고 있던 벽을 깨뜨리고 조금 더 넓은 세상에 나왔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나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 그곳에서 치이고 부딪히고 깨질 것이다. 하지만 조금 여유롭고 단단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면 피시티는 딱 그 정도의 보상을 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찌들려 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내가 피시티를 걸을 줄 몰랐듯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저 마음이 설레는 길로 한 발자국씩 내디디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일출을 맞이하겠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는 운명의 사람처럼 ..... 권현준

세계여행을 멈추고 길 위에 서다

세계여행이 지루해질 그때쯤인가 어느 세계여행자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미국 서부 4300킬로미터를 종단하는 피시티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스토커처럼 피시티 하이커들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팔로우하며 여러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들의 짧은 감상을 읽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2018년 1월 4일, 아르헨티나 모레노빙하 앞에 섰다. 억겁의 시간이 얼어붙은 얼음장벽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별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 결심했다. 피시티다. 나는 걸어야 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처럼.


베트남을 시작으로 인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유럽으로 향하려던 어느 날,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피시티에 도전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피시티는 4~6개월 걸리는 장거리 하이킹이다. 그래서 6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한 B1/B2 비자를 준비해야 했다.


2018년 5월 7일,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도착해 아웃도어 용품점에 들러 부족한 장비를 샀다. 피시티 출발 지점인 멕시코 접경 도시 캠포로 가기 위해 샌디에이고에 있는 한인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아, 너무 즉흥적으로 온 것 아닌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산에서 조난당해 죽진 않을까. 곰이 공격하면 죽은 척을 해야 하나. 부모님께 손 편지를 썼다. 유서가 아니길 바랐다. “도전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선택이 옳은지 틀렸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겨내겠습니다.”


나름 여러 경험을 통해 장거리 도보여행에 자신이 있었다. 체력이 부족해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5월 9일 낮 12시 34분, 대장정을 시작했다.


40도 뙤약볕 아래 혼자가 되어 걷다

낮 기온이 40도 가까이 되는 캘리포니아 뙤약볕 아래 어깨는 맥없이 처졌다. 장딴지와 허벅지에는 알이 배고 근육은 빨래 짜듯 죄어왔다. 가방은 바윗돌이라도 넣은 듯 천근만근 무거웠다. 어깨가 아파 배낭끈을 손으로 번갈아 부여잡고 허리를 숙이고 걸었다. 배낭 허리끈이 골반을 쓸어 벌겋게 상처가 났다. 첫날, 오후 5시가 안 돼 운행을 멈췄다. 운행거리는 고작 9.1킬로미터. 고난이 예고돼 있었다.


미국 서부 장거리 도보여행은 한국 국토대장정과는 급이 다르다. 한국이 아스팔트 평지를 걷는 거라면 피시티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걸어야 한다.


물 수급에 대한 불안감도 견뎌야 한다. 한국에서는 편의점에 가서 물을 사 먹어도 되지만, 이곳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주변엔 상점 자체가 없다. 겨우 도착한 물 수급 장소에는 소금쟁이가 떠다니거나 벌레가 빠져 죽어 있는 등 오염된 경우도 있다.


피시티 종주는 2년간 세계일주를 함께한 친구 두 명과 동행했다. 아프리카와 남미 여행을 하며 위험한 순간을 함께 이겨낸 동지들이었다. 하지만 보름 만에 이별해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는 걷는 속도가 달랐다. 회복 속도도 같지 않았다. 상대방의 운행 리듬을 방해하고 있다는 걸 은연중 서로 알고 있었다. 의논 끝에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됐다.


트레일 전체 구간 중 8할은 혼자 걸었다. 한인 피시티 하이커가 모여 있는 카카오 톡 단체방에서는 서로 으쌰으쌰 하며 여행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걸 볼 때마다 미치도록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한국 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일기를 쓰며 외로움을 달랬다.


모두 버려야 걸을 수 있다, 산다</P> 출발한 지 한 달이 지나고 험난한 산세가 펼쳐진 캘리포니아 중부 하이 시에라 구간을 지날 때쯤 나도 모르게 몸이 장거리 하이커의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새벽 4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다리 근육도 ‘딴딴’하게 모양이 잡혔다. 휴대전화가 꺼져 내비게이션을 볼 수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 방향이 맞겠지 하는 촉이 생겼다. 이때부터 하루하루 행복했다.


운행 33일째, 1130킬로미터를 걸어 사막 구간 끝이자 시에라 구간 시작점인 케네디 메도우즈에 도착했다. 여러 나라의 하이커를 만났다. 일본에서 클라이밍 강사를 했다는 30대 후반 하이커 노부는 일본 전통 삿갓을 쓰고 사무라이 문신이 그려진 토시를 입고 길을 걸었다. 알레스카 출신 제레미는 수염과 머리카락이 얼굴을 완전히 뒤덮어 에스키모 같았다.


그들은 나보다 일주일가량 늦게 출발했지만 나를 따라 잡았다. 비결은 무게였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친해진 베테랑 하이커에게 내 가방을 점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불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이커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너, 배낭에 든 짐보다 마음속에 가득 찬 욕심부터 버려.”


필수품은 자체 제작했다. 미국 세탁소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일회용 비닐봉지로 우비와 레인커버를 만들었다. 텐트를 버리고 야영지에서는 비닐 돗자리와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에서 잤다. 밥도 적게 먹었다. 식사량 자체를 줄였다.


청결도 버렸다. 하이킹을 할 때 입고 있던 옷과 양말 두 켤레, 경량 패딩을 뺀 모든 옷을 최종 목적지로 보냈다. 배낭 무게가 4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가벼워진 배낭 덕분에 매일 40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었다.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마지막 관문인 워싱턴주. 새벽 촉촉한 안개 속을 걷는 것이 좋았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젖은 나무 향과 차가운 공기는 나를 황홀하게 했다. 캐나다까지 800킬로미터. 20여일이면 이 끝없는 여정도 끝이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캐나다 국경 도착 전 마지막 마을 마자마(운행104일째, 운행거리4170킬로미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이커들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이 산불로 막혔다는 것이다. 내 눈 앞에 실제로 펼쳐진 자욱한 산불 연기가 뉴스 속보를 확인해주었다.


계획을 바꿔 마자마에서 히치하이크를 해 시애틀로 갔다. 렌터카를 빌려 캐나다로 넘어가 그곳에서 남은 거리만큼 거꾸로 걸어 내려갔다. 하이킹 106일째 최종 목적지인 모뉴먼트78에 근접했다.


긴 트레일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허무했다. 성취감도 밀려왔다. 눈물이 떨어졌다. 모뉴먼트에서 혼자 세 시간을 앉아 생각에 빠졌다.


피시티 하이킹은 힘든 일의 대명사 같다. 하지만 이것을 완주했으니 뭐든 잘하리라는 생각은 좋지 않다. 그 또한 그것에 갇혀 있는 것이니까. 하이킹을 마친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것은 그것대로 놓아주었다. 이미 나는 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늘 한 길만 보던 남편, 피시티에서 잠들다 ..... 신선경

“여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어”

해외 장거리 하이킹을 하고 돌아올 때면 남편은 걸었던 거리만큼 가슴이 텅 비어 보였다.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계속 걷고 싶어 했다. 그러다 우연히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순례>를 보게 되었는데, 4300킬로미터를 걷는 피시티에 대한 내용이었다. 남편의 눈은 반짝였고 도전의식과 모험심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결심을 하면 늘 운동부터 시작했다. 북한산 둘레 길을 걷고, 서울 집에서 양평 시골집까지 걸으며 몸을 만들었다. 발에 물집도 잡히고 관절이 아파 고생도 했지만 컨디션을 조절해 점점 걷는 거리를 늘렸다. 배낭에 13킬로그램 무게의 짐을 넣고 한 달간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걷기도 했다. 준비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피시티 정보도 꼼꼼히 모았다. 미국의 3대 트레인인 애팔래치아 트레일,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 피시티를 모두 종주한 같은 연배의 윤은중 씨, 피시티에 관한 책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나를 찾는 길》을 쓴 김광수 군, 《PCT 하이커 되기》를 쓴 김희남 군 등 여러 하이커를 직접 만나 정보를 얻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예비 하이커들과 단체 카카오톡 방을 만들어 정보를 교환했다.


피시티는 스페인의 순례길과 달랐다. 거리도 2천 킬로미터 이상 더 길고, 사막과 산림을 지나 눈이 덮인 산과 얼음장 같은 계곡을 건너야 했다. 때로는 곰과 방울뱀도 피해야 했다.


거실에는 산악 장비가 쌓여갔다. 피시티를 떠나며 남편은 내게 말했다. 이제 사업에서 손을 조금씩 떼겠다고. 그동안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한길로만 열심히 뛰어왔다고. 그는 인생 2막 무대의 시작을 피시티로 정한 듯 보였다.


“여보, 이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어. 아직 보지 못한 자연을 보고 싶어. 하나님이 만드신 멋진 세계를 보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의 목표야.”


하늘나라로 가기 전 나흘간의 여행

2018년 4월 3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남편은 그 도시를 사흘간 여행하고 트레일 엔젤 ‘스카우트와 프로도’의 집에서 며칠 묵었다. 남편은 피시티를 허락해줘서 고맙다며 나를 ‘엔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고 말이야. 만약에 말이야. 예기치 않은 상황이 온다 해도 난 후회하지 않아. 난 정말 이 세상 정말 멋지게 살다 간 사람이야.”


남편은 늘 눈이 와도 좋고 비가와도 좋다며 노래했다. 항상 기뻐서 일부러 슬픈 생각을 떠올릴 정도라고 말했다.


4월 9일부터 남편은 걷기 시작했다. 사막 기후는 40도를 육박했고 물도 구하기 어려워 남편은 힘들어 했다. “이렇게 힘든데 내가 왜 걸어야 하냐”며 푸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 속에 있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화상 전화를 하다 신이 났는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남편은 하루(4월 10일)더 걷고 다음날 쉬었다. 그리고 또 하루를 걷고 이튿날인 13일 정오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출발 56킬로미터 지점, 피시티 시작 닷새 만이었다.


남편이 숨지기 여덟 시간 전 나는 그와 20분 정도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 시간으로 아침 7시였다. 남편은 전날도 힘들어서 20킬로미터밖에 못 걸었는데 오늘은 14킬로미터만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은 평평해서 하루에 30-40킬로미터씩 걸었지만 이곳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힘들면 그만두고 와도 괜찮다고 말했다. 남편은 피식 웃고 목표했던 길을 떠났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 박승규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으로 걷고 또 걸었다

4월 7일 오전 6시, 피시티 시작점인 캠포로 향했다.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도시에서 황색 사막으로 풍경이 변해가고 있었다.


해가 떠올랐다. 출발점인 캠포 모뉴먼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세계 각지에서 온 하이커들이 인증샷을 찍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 같이 모여 파이팅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함께 길을 걸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 말없이 걸어야 했다.


출발 후 사흘이 지나자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혔다. 양속에 잡은 스틱을 목발처럼 짚으며 한 발 한 발 신음하며 걸었다. 온종일 절룩거리며 걸었다. 대화하고 밥 먹을 친구조차 없었다. 찢어질 듯 아픈 발바닥과 먼지투성이 새카만 발만 보였다.


순간 눈물이 주룩주룩 발등에 떨어졌다. 여긴 어딘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답답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갖 욕을 하늘에 해댔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었다.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열 장 남짓한 고향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혼잣말을 했다.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오로지 가야 할 곳만 바라보았다.


하이킹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자 발바닥 전체에 잡힌 물집이 사라지고 그 안에 새살이 났다. 한 달 동안 혼자 900킬로미터를 걸었다.


몸이 적응하니 마음도 편해졌다. 외로움도 적응됐다.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사색하며 일기를 썼다. 나무와 대화하고 도마뱀과 인사했다. 푸념이 사라졌다. 혼자 있기 달인이 돼갔다. 어지간한 사건에는 감정이 동요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캐나다 국경이 다가오자 마음이 오히려 침울해졌다. 10킬로미터를 남겨둔 마지막 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더욱 차분하고 덤덤했다. 굵직한 한숨이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다. 목적지 2킬로미터 앞. 캐나다 국경지대가 멀리서 얼핏 보였다. 지난 6개월 동안 이날만 상상했다. 그런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저 멀리 나무 틈 사이로 제법 많은 사람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 먼저 도착한 하이커 20여 명이 축하한다며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쳤다. 난 캐나다 국경 기념비 모뉴먼트78을 손으로 만지고 입술을 가져다댔다. 내가 이걸 보려고 생고생을 했나. 공허함도 몰려왔다.


피시티는 지독하게 힘들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모인 발자국들이 4300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만들었다. 완주 뒤 나는 변했다. 노을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생이 끝날 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답하리라.


“지독하게 힘들었던 그때 그 순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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