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저   자
이청안
출판사
레몬북스
가   격
14,000원(264쪽)
출판일
2020년 07월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에도 졸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졸업’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멀어져갔다. 시차는 있었겠지만,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한 단계의 졸업이 지나면 꽤 많은 사람을 잊고 살았다.


나는 지금, 학교가 아닌 회사에 다닌다. 퇴사한다면, 졸업과 비슷한 끝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랑에는 졸업이 없었다. 대상이 달라진다고 해도 같은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 팔순에도 아흔에도 새 사랑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신입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찾는 교정을 거닐 듯이 싱그러울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는 졸업이 없었다. 완결 지어진 실수투성이 작품만이 남아 있을 뿐.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다가 문득 ‘퇴근이란 참 좋구나.’ 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퇴근은 퇴사도 아니고 졸업도 아니지만, ‘실수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시간’을 벗어나 ‘원래 실수투성이인 인간 이청안’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자유를 주고 있지 않은가.


사랑에도 졸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지 못할 거라면, 퇴근이라도 시켜주었으면 한다. 더는 실수투성이 작품을 찍어내지 않고 이제 그만 감사하며 퇴근하고 싶다.


세기의 걸작으로 졸업작품을 만들지 못할 거라면. 사랑, 졸업하고 싶다. 불가능하니 염원하고 있겠지만.


눈물이 다 말라야 여자는 이별을 고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더 지독하다고 말한다. 독종이라고, 돌아서면 끝이라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여자가 독해지면 아무도 못 말린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여자는 지독하다. 아니 지독해져야 한다. 여기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여자인 것이 자랑스럽고 좋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수긍할 것이다. 다만 여자가 이별을 고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 고심에 대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남녀를 나누었다.


풋사랑을 제하고 말을 꺼내자면,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여자는 이별을 연습한다.


연애하는 남녀는 점차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익숙해진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달콤하게 지속하지는 않는다. 계절이 거듭 옷을 바꿔 입듯이 사랑도 그 모습이 계속 변화하지만, 권태라는 두꺼운 나무껍질을 껴입은 사랑은 좀처럼 빛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기는 만큼, 그날들만큼 이별을 준비해나간다.


여자의 마음은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롤러코스터를 탄다. 괜찮다가, 죽을 것 같다가, 끝이 오는 것이 두렵다가 이내 덤덤해진다. 가끔 이유 모를 눈물이 한두 방울 흐르고, 그 눈물이 말라갈 때 잠을 자고 일어난다.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게 되면 비로소 여자는 이별을 고한다.


독해서가 아니다. 혼자 먼저 이별하며 연습하기에 무대 위로 올려졌을 때, 괜찮아 보이는 거다. 혼자 연습하며 차가운 바닥에 넘어져 내 마음이 다칠 때,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간절하게 바란다. 다시 그의 손을 잡게 되기를.


하지만 끝내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을 때 처절하게 절망하고, 눈물이 다 마르면 여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연습한 대로.


너는 소중하단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었다. “선생님, 세상 사람들 키는 다 똑같았으면 좋겠어요. 얼굴은 어차피 다 다르니까 키는 똑같아서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도 나도 키가 작은 편이었으니, 선생님은 내 말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아니었다. “키가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어. 제각각이니까 재미있는 세상이지. 제각각이라서 소중하고 세상 사람 모두 다 달라서, 너는 소중하단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선생님은 내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는 소중하단다.’라는 고귀한 말씀을 주셨다.


시간이 흘러서 이와 비슷한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삶에 바닥이 있다면, ‘그 바닥을 경험하는 순간이 지금일까?’ 하는 아픔을 겪었던 때였다. 나에게는 격동의 한때, 한 친구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아픈 시간도 결국엔 다 지나간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자.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매우 소중한 아이야. 아파도 굶으면 안 돼. 우리 나이에 굶는 건 안 돼.”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타인의 들러리로 전락시킨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기어코 그렇게 만들어낸다. 내 잘못이 아닌데,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한다. 또 세상의 주변부로 살아가며 ‘내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남이 재미있는 일’에 귀를 기울이고 서성인다.


우리는 모두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소중하다. 설령 내가 누군가의 들러리처럼 느껴질지라도, 한 번씩 나 자신에게 말해주어야겠다. ‘너는 소중하단다’라고 말이다. 한때는 나를 최고로 여겼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배신하고 내 곁을 떠나도, 누군가 나의 소중함을 모르고 나를 버려도, 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추락시켜도 잊지 말지어다.


나는 소중하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서.



바람 불지 않는 이별이란 없었다

술의 유혹을 뿌리친 아침에

악마가 나를 괴롭히고 싶을 때는 두 가지 생각을 보낸다. 하나는 너에 대한 미칠 듯한 생각들이고, 하나는 술에 대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 둘은 결국 같기에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악마의 유혹은 그토록 뿌리치기 어려운가 보다.


술은 사람의 자제력을 잃게 한다는 걸 알아서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너를 향한 갈증이 너무도 커서 결국 다 마셔버렸지. 술을 제외한, 당신을 향했던 모든 것들.


밤새 내 방에 남았던 너의 모든 흔적을 찾고 또 찾아서 지우고, 감정의 실오라기는 다 삼켜버렸어. 그래도 잘 버텼어. 길고 길었던 밤이 모두 다 지나고 이렇게 아침이 왔거든. 그런데 잠들지 못한 내 눈빛이 허공에 둥둥 떠서 나를 또 걱정해. 악마는 매일 밤 계속 찾아올 테니까. 내일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내가 삼켜지는 파국을 맞을까 봐서.


헤어진 다음 날에도 살아야 한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지금 짓는 글’의 상황을 겪은 이를 억지로 찾아내 그때의 감정을 캐내고 대화를 베껴내어 글을 만들어냈었다. 예를 들면,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의 울분을 표현할 때 그런 시련을 겪은 친구를 찾았던 거다.


사랑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이별의 통증이 목젖에 켜켜이 쌓여가는 그 느낌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서 글을 지어내곤 했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골몰했었고, 이별의 고통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수많은 연인을 눈물짓게 하는지 궁금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랑 비슷한 것만 나누어도 이렇게 아프게 될 것을. 사서 고생한다는 말을 이해하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미리부터 기웃거렸을까. 이제는 만남과 헤어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회사에 다니면서, 예전처럼 스토리가 있는 글을 쓰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 헤어진 다음 날의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그려낼 수 있다. 그와 헤어진 지금, 내 글은 감정의 풍요 속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거나 어떤 장면을 겪거나 서핑보드에 몸을 맡긴 선수들처럼 역동한다.


저절로 글이 써지는 상황이란 이럴 때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삶의 비극이 이토록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한 슬픔이 아닌가. 적어도 나에게는.


일과를 마치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저기 멀리서 불빛을 깜박이는 차가 당신의 차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도,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도 열두 번씩 바뀌는 나를 발견하고 낯설어진다. 괜찮았다가 안 괜찮았다가.


정말 까마득하게 그 사람을 잊은 것 같았는데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떠올리고는 아파하고 숨이 멎을 듯 눈물을 쏟아낸다.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갈까. 이렇게 기다린 날들이 하염없이 흘러서 어디가 부딪혀야 당신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허공에 대고 아무리 외쳐도 당신에게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을 것을 위한 시(詩)

“너 변했어!”로 시작되는 연인 사이의 비극이 있다.


존재는 대부분 변화가 시작되면 버림을 받는다. 보풀이 일어난 옷과 녹슨 가위, 고장 난 전자제품은 버려진다.


반짝거리지 않는 것,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아름답다’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다. 함께 나누었던 반짝거린 시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반짝임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움을 거둔다.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이 무색하게.


보통의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을 사랑한다. 어쩌면 변하지 않을 내 마음을 믿고 내 감정의 동요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만을 사랑할 수는 없다. 변하지 않을 것이란 원래 없으니까.


사람도 사랑도 다 변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인 거지. 그래서 조금은 슬프다. 이제 변하지 않을 사랑만을 사랑한, 내 과거에 미안한 안녕을 고한다.


우리를 집어삼킨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한 번씩 ‘운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무엇이 나를 모두 삼킬 수는 없다. 그렇게 내 삶이 나약하진 않았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 계속 되뇌었다. 슬픔이 나를 슬퍼하는 것이 아닌지. 더는 사랑하지 못할 이 사랑을, 내 안의 비극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었는지. 우리를 집어삼킨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두 ‘꿈’이라고 세뇌했다.


나쁜 꿈도 아니고 좋은 꿈도 아니지만, 이제 꿈은 끝났으니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현실을 살기 위해 어둠과 슬픔은 모두 한데 모아 꿈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어딘가에 삼켜진 것도 다시 뱉은 것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줄 사람

한때 ‘연민’이라는 단어를 혐오했었다. 대체 누가 누굴 가엽게 여길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 위에 사람 없다”라는 말을 최고의 정의로 여겼던 나에게 ‘연민’이라는 단어는 ‘악의’로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요즘 연민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분쟁을 호전시킬 수 있다.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 자체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연민이다.


까놓고 솔직해지면 나는 내가 제일 안쓰럽다. 그래서 타인도 모두 안쓰럽다. 또, 그러하기에 같이 울어줄 마음 한 자락을 남겨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울 때, 같이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사람. 서로 연민의 마음을 품어줄 사람. 지구 멸망이 곧 확정이라면 그 첫날을 끌어안으며, 함께 보내줄 사람. 그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이니까,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지

두려웠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을 대면하는 일이 내게는 너무도 두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살면서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깨달은 것은, 적이 없다면 ‘내 편’도 없다는 것. 나는 아버지처럼 선비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아무리 적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도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적과 마주해야 할 일은 생애 꼭 한 번은 다가오며 그건 사람이라면 모두 다 두렵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왜 나를 미워하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다만, 알 수 있는 감정이었다. 미움은 그저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가듯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돋아나기도 하니까. 그래서 깊이를 모르는 그 미움에 넒은 아량으로 다가서지도 못하고 성내며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두려워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아졌다.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때로는 순한 양의 모습으로, 한 순간에 포악을 떨 수도 있지만, 소소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쌓아 올리며 생을 버티어 낸 그저 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 사람이니까 누굴 미워할 수도 있지. 그런 거지.


떠나고 싶은 날의 유의사항

‘여행의 이유(김영하 작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의 제목만으로 마음이 동하는 책이다.


여행의 이유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살다 보면 문득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사소한 괴로움이 넘실거릴 때,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의 파도는 어느새 내 턱밑까지 차오른다. 생각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정하지 못하고 밀물 때가 되었다가 썰물 때를 만났다가 마냥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상의 나를 지배하는 수많은 것들 사이로 비집고 나아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다면 가끔은 떠나도 좋을 것이다. 물론 하던 일을 다 마쳤다면. 그러나 일상의 완결이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떠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하며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내가 무책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글귀를 만났다. 전 국민이 싸이월드에 푹 빠져 있을 때 적어 놓은 메모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여행을 다녀봐서 알지만 돌아오고 나면 떠나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남기고 간 것은 남기고 간 그대로 놓여 있는 게 보통이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윤대녕 소설)’에 나오는 글귀이다. 다시 그 책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떠남’ 그 자체보다 나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줄 것만 같다.


아무리 떠나도, 아무리 잔류해도 내게 남을 것들은 남고 사라질 것들은 사라져간다. 오늘 아무리 바빠도 오늘의 과업은 내일이 되면 약간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가며, 내 오랜 친구 같은 여행의 기억들은 오래도록 남아 내 책임감을 단단하게 다져준다.


그냥 훌쩍 떠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떤 자리로든 돌아오게 된다. 일상의 나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 떠나기 전에 꼭 생각해봐야 할 유의사항이다.


조언 반사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니야. 결과가 좋지 않아도 돼.


-열심히 해!

+아니야. 뭐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하고 싶은 걸 해.


-좌절하지 마!

+아니야. 최선을 다했다면 가끔은 좌절하는 게 당연해.


-다시 일어서야 해!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돼. 조금 쉬어가도 돼.


하지만 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금 해. 하려고 해봐. 그게 뭐든 너의 삶이 채워질 수 있다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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