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오누리
ǻ
팜파스
   
14000
2019�� 05��



■ 책 소개

 

내 방 한 칸도, 우리 부부 신혼방도 부모님의 집 일부지만,
조금 부족해 보여도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그레이톤의 벽에 걸린 시디플레이어, 그 옆 벽 선반에는 각종 CD와 유리병, 드라이플라워. 작고 평범한 소품들이 모여 자아내는 분위기가 방 안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사진 한 장으로 소품과 소품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주는 힘을 보여준 소품 가게 슬로우어 오누리 작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4만 여명을 이끌며 자신만의 감각과 소품의 중요성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인스타그램에는 다 담지 못했던 슬로우어 오누리의 공간과 공간을 아끼는 태도, 거기에서 비롯되는 소품을 활용한 인테리어 노하우를 담았다.

 

그간 슬로우어는 자기만의 속도대로, 자신만의 소품을 만들고 모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잠원동 어느 주차장 안쪽 4평 남짓한 공간, 찾기 어렵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았고 자신만 알고 싶어 했던 소품 가게 슬로우어에서 말이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 용산 열정도에 새롭게 꾸민 슬로우어의 모습도 담았다.

 

■ 저자 오누리
소품 가게 슬로우어를 운영하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질까 봐 방황하던 때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꾸몄던 방의 벽 사진이 SNS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즈음 각기 다른 소품들이 모여 하나의 안락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매료되어 집순이에서 소품 가게 주인이 되었다.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의 상품이 시중에 없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자신의 취향을 온전히 담아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소품 가구부터 신혼방, 용산 열정도로 이전한 슬로우어 2기 공간도 직접 꾸렸다. 이제는 수많은 팔로워들의 질문을 받고, 소품 가구 판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는 등 바쁜 생활을 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되 할 수 있는 만큼의 캔들과 소품 가구를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의 공간에 놓여 빛을 발할 소품들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슬로우어’라는 어떤 곳 그리고 어떤 사람
안‘락(樂)’하지 않았던 방
버리기, 물건 하나하나와 대화하는 것
각기 다른 소품들로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다
집순이에서 소품 가게 주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곧 자신의 감각이다

 

Part 2. 지금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
집이 나에게 주는 온기
어디서든, 근사한 시작을 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나누고 붙이다 보면… 공간이 보인다
생소하고, 어렵고, 지겨울지라도 무한 반복! 필요한 재료와 작업 순서 정하기
힘들지만 때론 영화 같은, 머릿속 공간을 실현한다는 것
공간에 무게감을 주려면, 목공 테트리스
세상에서 하나뿐인 방의 시작이자 끝, 색 고르기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공간의 이름 찾아주기

 

Part 3. 내 취향들로 채우는, 소품 인테리어
공간을 변화시키는, 소품에 반하다
전체 분위기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새롭게, 패브릭 활용하기
큰 가구 위에 놓을 작은 것, 공간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 것
벽을 사랑합니다(?!), 벽을 활용해 연출하기
공간이 살아나는 법, 식물 놓기

 

에필로그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슬로우어’라는 어떤 곳 그리고 어떤 사람

안‘락(樂)’하지 않았던 방

고모들과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함께 지내던 집을 떠나 처음 아파트로 이사해 내 방이 생겼을 때, 너무 들떴었다. 그 방에서 친구들과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으로 필통을 만들고, 다이어리를 꾸미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사춘기 때는 부모님의 간섭을 피하고 많은 고민의 순간에 내가 늘 있었던 나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익숙함은 시간이 흐르면 당연해진다. 나의 방, 그 공간이 평범하고 당연해졌고 그래서 공간을 돌보거나 가꾸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듯 놔두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3년의 시간이 공간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내 손길이 닿아 애정이 가득한 나의 첫 자취방은 어렵고 외로웠던 유학 생활의 가장 큰 위로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울기도 하고 낯선 타지의 나라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밥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편안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내가 자리한 공간은 나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으로 돌아온 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치되었기 때문인지, 내 취향은 어느 것 하나 없는 가구와 벽지들 그리고 내 방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 것은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쉬는 날에도 내가 온전히 나다울 수 있는 공간에서 편하게 즐기고 싶었고 내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나가고 싶었다. 내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공간을 가꾸는 일을, 안락하고 나의 취향이 가득한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었다.


그 방은 내가 학창 시절부터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여기저기 낡은 흔적이 가득했다. 일본 유학 시절의 자취는 아무래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설프고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돌아온 한국의 내 방은 달랐다. 커다란 가구부터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들이 가득한 내 방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생각하고 시도했지만, 실제로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두려움은 20대 중반에 친구의 소개로 어느 작은 아동복 쇼룸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떨쳐낼 수 있었다. 아동복 쇼룸을 새로 열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테리어 공사부터 살펴야 할 것이 많았다. 어느 날은 쇼룸에 칠할 페인트 색을 고르러 외근을 가야 했다. 찾아간 곳은 흔히 볼 수 있는 인테리어 자재 가게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준 곳이었다. 근사하게 꾸며진 가게 안에 수천 가지의 다양하고 예쁜 색상표가 있었다. 수많은 색 중 마음에 드는 색, 조화로운 색을 고르고,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구입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인 것도 인상 깊었다.


그들을 보며 ‘인테리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떠오르던 ‘큰 비용이 들고 전문가가 하는 일’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조금씩 사라졌다. 자신의 공간을 직접 바꾸고, 꾸미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나자 나도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샘플 북 속 멋진 공간들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만 하기는 싫었다. 내 집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 계기로 나의 방 꾸미기가 시작되었다.


공간의 안락함은 곧 공간의 의미이다. 유학 생활 당시 느꼈던 외로움이나 불안함을 가장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공간이 내 자취방이었듯 앞으로 다른 공간이 아닌 내 방에서 조금 더 아늑하고 따뜻하게, 가장 편하게 많은 것을 즐기고 싶었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책도 읽고, 나에게 가장 좋고 안락한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부터 소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냥 여기저기 눈에 띄는 소품 가게를 다니며 이것저것 ‘예쁜 것’들을 사왔다. 때론 귀여운 것, 심플한 것들을 샀다. 이들의 주요 무대는 책상이었다. 다이소 철망 인테리어가 한창 유행할 땐 철망을 왕창 사다가 책상을 중심으로 벽에 붙여 폴라로이드 사진, 엽서들을 걸어 보았다. 이케아에서 산 큰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를 벽에 걸어 두기도 하고, 러그 위에 좌식 테이블을 놓아 보기도 했으며 친구가 사용하지 않는 소파를 얻어 와 놓아 보기도 했다. 어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통일감 없는 방 꾸미기 아닌 방 꾸미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방 안에는 넘치는 가구들과 함께 물건들까지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것은 그냥 버려져도 그만인 ‘잡동사니’가 되었다. 엄마는 매번 “제발 그 ‘쓰레기’ 좀 갖다 버려”라고 말했다. 첫 번째 방 꾸미기는 실패했다. 왜 꾸미면 꾸밀수록 더 정신없고, 정리하겠다고 또 다른 것들을 사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방을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사기에만 급급했던 소비를 잠시 멈췄다. 천천히 바꿔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떠한 다른 방향이 필요했다. 할 거면 제대로, 이왕 시작한다면 버리는 것부터. 애초에 방을 꾸미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득 채워진 방을 일단 비우지 않으면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일이 아니었다.


우선 필요 없는 가구들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먼저 방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오래된 책상의 서랍과 책장을 비우고, 정리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오래된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버렸따. 가구 두 개만 정리했을 뿐인데, 부피가 큰 가구였던 만큼 넓은 공간이 생겼다. 이에 이어 그간 수차례 시도하며 사 모으던 물건들과 크고 작은 가구들을 과감하게 버렸다. 버릴 것들을 버리고 공간을 만들었다. 낡아서 버리고 새로 구입해야 할 물건들도 정리했다.


집순이에서 소품 가게 주인이 되기까지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나는 방황 중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진득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적금을 들고 안정된 생활을 찾아갈 때도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로 방황 중이었다. 모아둔 돈도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만 가득했고 무모하게 도전하기 바빴다. 부모님은 걱정했고 스스로도 두려웠다. 아닌 척 했지만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 ‘내 방’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갖고 집착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방 안에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스스로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가끔 불안함과 함께 초조함이 밀려올 땐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라고 말했다. 불안한 나에게 말하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냥 나대로 천천히 가야지.’ 수도 없이 반복했던 마음 속 위로의 말이었다. 그 문구가 지금 슬로우어의 슬로건이 되었다. 비록 월세방이었지만 낯선 일본에서 엄연한 나의 공간이었던 내 자취방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듯, 20대 후반이 되도록 방향도 잡지 못한 나에게 내 방은, 공간은 마음의 큰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특정 공간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애정은 무한히 샘솟는다. 나의 경우, 한동안 취미가 방 청소, 가구 배치 바꾸기였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카페 투어나 예쁜 공간을 찾아다니며 보냈던 시간을 오로지 방에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집순이가 되었다. 벽지 위에 페인트만 칠했을 뿐인데, 한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화이트의 벽 선반과 화이트 프레임의 침대만 놓았을 뿐인데, 그 공간에 나 자신이 가득 담긴 기분이었다.


내 공간에 놓을 소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먼 거리에 있는 광명 이케아를 일주일에 두 번이나 오가며 겨우 화분 하나, 혹은 수납 바구니 하나를 사왔다. 그보다 더 먼 제주도의 소 품 가게에 들러 고민을 거듭하다 사온 캔들 하나에 마음이 풍족해지기도 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갈 때면 소품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고, 카페나 음식점을 가서도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작은 소품들이 공간의 분위기와 풍성함을 주고 결국 그곳의 정체성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나 역시도 내 공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소품들을 찾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소품 하나하나를 살 때마다 하나, 둘씩 나의 이야기를 담는 기분이 들었다.


방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소품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새로운 소품을 발견하면 어떻게 놔두면 좋을지 고민하며 설레하던 마음이 지금의 소품 가게 슬로우어의 기반이 되었다. 누군가의 공간에 따뜻함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소품,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소품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운영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소품 가게에 대한 소망을 실현하고 일로 삼아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내가 내 방에서 위로를 받고 그 방을 채워 나갔던 소품들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듯 누군가도 자신의 공간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소품들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듯 누군가도 자신의 공간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소품들로 가득 채워 자신을 찾고 돌아보는 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소망도 생겼다.



지금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

집이 나에게 주는 온기

엄마는 늘 오빠와 나에게 고향이 없다며 그런 우리를 보면 슬프다고 말했다. 흙과 나무, 물과 자연이 있는 추억할 만한 고향이, 고향의 그 정겨운 집이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픈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엄마처럼 동네에 흐르는 작은 냇가에서 송사리를 잡아서 놀던 기억, 가을이면 산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워 삶아 먹던 기억, 추억이라고 할 만한 기억이 담긴 고향이 없다. 정겹고 구수한 시골 풍경이 있는 고향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늘 기억 속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정겨운 추억의 집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서울 연신내에 있었다. 작은 차고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우리는 2층에 살고 1층에는 작은 약국이 있고 동생 또래의 남자 아이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차고지를 마당처럼 쓰며 개도 여러 마리 키우고, 그곳이 놀이터인 것처럼 놀기도 했다. 2층 창문에서 1층 마당까지 바구니를 끈에 묶어 올리고 내리면서 오빠랑 놀고 가끔은 아빠의 세차를 돕기도 했다. 대문만 나서면 같이 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걸어서 2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문방구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곳이었다. 도시 속 집이었지만 엄연히 나에게는 고향이었다. 큰 거실, 방 세 개가 있는 그 집에서 우리 가족과 고모들이 함께 살다가 고모들은 시집가고, 오빠의 학업을 걱정하던 엄마의 결정에 따라 일산의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그곳은 완전한 추억이자 고향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 가족의 따뜻한 집. 그 집에 대한 기억은 참 오래도록 머문다. 그래서 나에게 집이란, 공간이란 매우 중요하고 꼭 소중히 가꾸어야 하는 곳이다. 나에게 고향이란 바로 집이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우리의 삶에서 늘 한 곳에만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정성들여 가꾸고, 자신의 취향과 마음을 담아 생활하던 곳에서 불가피하게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자신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애초에 노력을 안 하는 편을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해도 그 공간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서 쌓았던 추억과 이야기, 경험들은 새로운 공간에서의 출발을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다시 공간을 꾸리면서 이전과 변함없는 자신, 반대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그 공간에 담는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추억에 추억을 하나 더하고, 좀 더 성장하고 달라진 자신을 담는 공간,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자신을 담는 공간’이다. 이런 믿음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더 신중하고, 더 고민할 수 있으면 고민하고, 가능한 한 최대한 직접 만지고 느끼며 내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나의 취향이 가득한 소품들과 내가 만든 캔들, 그리고 남편이 만드는 작은 나무 소품들을 판매하는 소품 가게 슬로우어라는 공간도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지만, 이곳이 종착점은 아닐 것이다. 소품 가게와는 별개로 우리의 꿈이 있다. 엄마가 말하던 풍경, 그 정취를 품은 집을 짓는 꿈.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단 한 팀이라도 정성들여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가족 단위의 손님이 오면 아빠와 아들은 내 남편과 함께 나무 의자를 만들고, 엄마와 딸은 나와 함께 캔들을 만드는 공간이 있는 그런 집. 우리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언젠가 생길 그곳이 우리의 마지막 고향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고향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 취향들로 채우는, 소품 인테리어

공간을 변화시키는, 소품에 반하다

소품에 있어서 나는 편식쟁이이다. 소품 가게 슬로우어에 들이는 모든 물건은 내가 직접 만지고 고 르고 선택한다. 소품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생활에서 보이는 작고 큰 모든 것들이, 공간을 채우는 것들이, 소품이다. 이 소품들을 크게 ‘사용되는 것’ 그리고 ‘보여지는 것’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사용하는 물건은 튀지 않고 안정적인 디자인, 주변과 쉽게 어우러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책상 위의 책꽂이, 화장대의 거울 등 당연하게 여겨지는 조화와 너무 안정적이라 눈에 띄지도 않는 배열이나 인테리어 방식을 깨고 싶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 하나만 예쁜 것으로 바꾸어도 책상의 분위기 전체가 바뀌는 것을, 손이 많이 가는 물건들에 신경을 쓰면 공간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소품에 반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소품 중에서 ‘보여지는 것’에 속하는 것들은 장식용인 소품들이다. 다른 말로 ‘쓸모없지만 예쁜 것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빈티지(vintage)! 늘 똑같은 새 물건들 사이에서 옛것이지만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빈티지 스타일의 소품들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문화 같은 것이기도 하다.


빈티지에는 시간이 주는 멋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을 때 더 근사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다. 물론, 그 소품에 걸맞은 장소에 두었을 때 말이다. 수집품의 종류 중 버려야 하는 것들과 남겨야 하는 것, 경계선에 있는 것이 바로 빈티지 제품들이다. 그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이 빈티지한 물건들을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그 물건의 값어치가 달라진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공간과 물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다.


소품 가게 슬로우어 구석구석에는 오랜 시간을 품은 것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그림, 레이스, 장식장 등. 재미있는 사실은 부모님에게는 새것이었던 것들이 내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 시간에 물들어 나에게는 빈티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소품 가게 슬로우어를 꾸미면서 집에 있는 가구들과 물건들을 사용해도 되겠냐고 부모님께 여쭤 봤다. “쓸모없으니 가져가서 써봐!” 부모님에게는 쓸모없어지거나 익숙한 것들이 슬로우어에 와서 너무나 근사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되었다.


그중에서 집에서 오랜 시간을 품은 반달 거울이 있다. 그 거울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 쭉 있었던 거울이었다. 그것을 슬로우어에 가져 와 놓고 나니 마치 제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아주 멋진 빈티지 거울이 되었다. 그 어떤 비싼 거울보다 금액을 측정할 수 없는 세월이라는 멋은 지닌 인테리어 소품이 된 것이다.


슬로우어에는 유리 제품이 많다. 그 이유는 슬로우어의 주요 소품인 캔들을 유리에 올려놓고 태우면 촛농이 녹아내리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충분히 따스한 분위기를 누릴 수 있고 나중에 그 촛농이나 캔들을 제거하고 싶을 때 손쉽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 제품이 주는 반짝거리는 깨끗함이 있기 때문에 액세서리 트레이나 간단한 디저트 트레이로 사용하면 공간에 깔끔함을 더해 줄 수도 있다.


쓸모가 없을지언정 쓰임이 있는 가치 있는 것을 고를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활용할지, 내 공간의 분위기와 흐름에 어울리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소품을 구매한다면 공간에 포인트를 주고 자신의 감각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가치와 역할이라면 쓸모없어도 괜찮다.


에필로그

눈 오는 날 ‘슬로우어’를 남기다

잠원동 건물 주차장 안쪽 후미진 곳에 있던 소품 가게 슬로우어의 첫 번째 공간을 떠나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더니 자면서도 몇 번을 뒤척이고 시간을 확인했다. 결국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창밖을 봤다. 최근에 눈이라곤 첫눈 내릴 때 한 번 오고는 눈다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2019년 2월의 중순, 이사 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잘하고 오라는 엄마의 말 끝에 ‘이사하는 날 눈이라니 부자 되려나 보네’라는 말이 들렸다. 슬로우어의 터전이었던 공간을 떠나는 날, 눈 오는 날이었다.


4평 남짓한 공간, 주차장 안쪽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 곳에 누가 찾아 줄까 걱정하는 마음에 시작한 공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고 슬로우어를 아는 분들만 찾아주는 것으로, 이 작은 곳이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가 터질 듯이 물건을 많아졌고, 찾아 주는 손님이 많아질수록 나도, 손님들도 그 공간이 작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소품들이 손님의 옷깃이나 가방 끝에 닿아 쓰러지는 날이 늘어났고 그만큼 내 고민도, 걱정도 커졌다. 그간 단골손님이 꽤 생겼고 애정이 많이 담긴 곳이었기 때문에 이사 결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욕심이 났다. 지금까지보다 더 슬로우어만의 색이 가득한 다양한 소품들을 놓고 슬로우어의 작은 가구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들어오는 문부터 모든 공간에 내 손길과 애정이 묻은 공간을 떠나야 하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막상 결심하고 나니 새로운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 손님들이 문걸을 보고 살 수 있는 공간과 내 작업실, 그리고 남편의 작업실을 따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깐 동안은 서운함보다는 얼른 가게가 나가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덧 이사하는 알이 왔고, 눈발 때문에 불편한 시야로, 길을 살펴볼 정신도 없이 이삿짐을 실었다. 떠나기 전 텅 빈 슬로우어를 보니 괜시리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첫 번째 슬로우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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