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즐거움

   
P.G 해머튼(역자: 박해순 외)
ǻ
베이직북스
   
18000
2008�� 08��



■ 책 소개
이 책은 편지투 형식을 빌어 지적 활동에종사하는 지적 노동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저술되었다. 더불어 일반 교양인에게도 지적 향유를 통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삶의 각 영역에있어서의 본능에 의한 지적 생활의 추구를 돕는다. 지적 생활에 있어서 육체적·정신적 기반, 교육, 시간, 금전 등에 대해 다룬다.
 


■ 저자 P.G 해머튼 (Philip GilbertHamerton)
영국의 예술가이자 예술평론가, 작가이다. 1834년 영국 랭커셔 출생으로써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꾸었다.미술잡지의 편집책임자를 역임했으며, 다수의 수필집과 전기를 저술하였다. 직접 월간 예술잡지 포트폴리오(The Portfolio)를 창간하였으며,마지막 순간까지 포트폴리오와 기타 예술 관련 서적의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1896년 필립 길버트 해머튼 자서전과 부인이 전하는 회고록이출판되었다. 저서로는 『The Life of J. M. W. Turner』『The Intellectual Life』『French andEnglish』『Human Intercourse』등 다수가 있다.


■ 역자 
김욱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동시통역사를 준비 중이다. 저서로는 『영문법 출제공식 307』이 있으며, 『어린이 필수 영어회화』『10년 해도안 되는 영어 동사에서 결정난다』를 집필 중이다.


박해순 - 단국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공주민속극박물관연구원 겸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성과 미디어』『아니무스와 아니마』『뇌내혁명2』『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공역) 등이있다.


이성원 -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현재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데리다 읽기」「인문학과 문학적인식」「목소리, 자아, 영상」「자유로의 딜레마」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지적 생활에 있어서 육체적 기반 
건강에대하여 
취미생활에 대하여 
습관에 대하여 
마스쿨라 크리스찬에게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에게 
건강이 좋지않은 작가에게 
사회 초년생에게 

Part 2 지적 생활에 있어서 정신적 기반 
지적인사람에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모럴리스트에게 
훈련이 부족한 작가에게 
지적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지 묻는친구에게 
지적 교양은 성도덕관을 높이지 않는다고 말한 도덕가에게 


Part 3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육 
다양하게 많이배우기를 권하는 친구에게 
박학다식한 친구에게 
다시, 박학다식한 친구에게 
문학을 연구하는 친구에게 
아들이 딜레탕트가될 것 같다고 한탄하는 시골 신사에게 
프랑스에 있는 어느 대학의 학장에게 
다시, 프랑스에 있는 어느 대학의 학장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에게 
다시,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에게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하는 학생에게 
어느 유명한 화가가어중간한 교육밖에 받지 않았다고 질타하는 문학 석사에게 


Part 4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시간 
시간이부족하다고 투덜대는 한가로운 사람에게 
희망에 찬 미래를 기획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독서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에게 
늘 시간에쫓겨 허둥지둥하는 사람에게 
지적 연구에 몰두하는 친구에게 


Part 5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금전 
너무도 유복한학생에게 
금전문제에 둔감한 천재에게 
찢어지게 가난한 학생에게 


Part 6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결혼 
결혼을 앞둔지적인 젊은이에게 
결혼이 지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지적 결혼의 조건에 대하여 
여성의 지적 성향에 대하여
지적인 사람이 결혼할 때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하여 
고독에 길들여진 연구자에게 
동성과의 대화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지적인여성에게 
지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말이 안 통하는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Part 7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제와 고독 
지적인우정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쾌락을 좇는 젊은이에게 
다시, 쾌락을 좇는 젊은이에게 
다시 또, 쾌락을 좇는 젊은이에게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젊은이에게 
고독의 악영향을 경고하는 친구에게 


Part 8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지적 즐거움
처녀작을 집필중인 젊은 작가에게 
열렬하게 학문의 길을 지향하는 학생에게 
지적 에너지를 발산할 곳을 찾고있는 사람에게 
비범하지만 비생산적인 사람의 친구에게 
재촉받고 있는 것 같이 느끼고 있는 학생에게 
맹렬하게 일하는 열정적인친구에게 
다시, 맹렬하게 일하는 열정적인 친구에게 
신문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현대문학의 공로를 인정하는 작가에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에게 


Part 9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직업과 천직 
취업준비 중인 젊은이에게 
재능은 있으나 아직 미숙한 젊은이에게 
지적인 삶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지나치게 정력적인 CEO에게
CEO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Part 10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환경 
자주 이사다니는 친구에게 
몰입할 수 있다면 환경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친구에게 
새로운 아틀리에를 준비하고 있는 화가에게


에필로그 
필립 길버트 해머튼(Philip Gilbert Hamerton)이력




지적 즐거움


지적 생활에 있어서 육체적 기반
건강에 대하여

여기서 생리학적 관점에서부터 말을 시작하면 너무 어려운 얘기가 될 것이고, 또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처럼 과학과 인연이 먼 사람에게는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생리학에 대한 것은 지금 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리학자들의 고매한 학설에 양보하기로 하고, 지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에 입각하여 두세 가지 실제적인 충고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충고는 앞으로 쉬지 않고 격렬하게 지적인 노동에 종사하게 될 사람에게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몇 년 전의 일인데, 런던에서 열린 어떤 학회에서 흥미로운 논문 하나가 발표되었다. 그 논문에서 논자는, 지나친 두뇌활동이 원인이 되어 건강을 해친 사람들은 대부분 이전에 앓고 있던 질병 탓이지, 건강한 사람에게 정신노동은 전혀 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꽤 성가신 학설이다. 요컨대 정신노동이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기존의 질병을 악화시킬 수는 있다? 물론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실제로 실험해보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주 건강한 몸이라면 뇌를 사용하건 하지 않건 건강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또 확실히 건강이 나쁜 경우라도 정신노동이 얼마나 원인이 되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반론은 아무리 적합한 사례를 많이 인용해도 입증하기 어렵다. 두뇌노동이 질병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또 신체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두뇌 활동이 적지 않은 원인이 된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시인 워즈워스(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는 ‘릴스톤의 흰 사슴’을 창작하고 있을 무렵 발에 부상을 입었다. 그때 그는 창작 작업을 계속하면 상처의 고통이 심해지고, 일을 중단하면 통증이 사라지며, 또 정신을 완전하게 쉬어주면 상처가 완치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리하여 워즈워스는 시에 도취되어 오래도록 창작활동을 지속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으레 몸 상태가 이상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을 돌본 그는 72세에도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현존 유명작가는 작품을 한 편 완성할 때마다 꼭 심한 병에 걸린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은 집필을 하지 않는데 오히려 일요일마다 몸이 아프다는 작가도 있다. 그 작가의 경우, 평일 내내 긴장해 있던 정신이 일요일이면 너무 풀려 오히려 몸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다. 틈틈이 글을 쓰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어떤 목사는 글을 쓸 때에는 규칙적이고 편안한데 가만히 있으면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몹시 초조해진다고 한다. 또한 정력적으로 무역업을 하는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일할 때는 괜찮은데 유용하게 쓰이는 외국어 공부만 하면 이상하게 소화기 장애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래서 계획을 포기하고 공부를 그만두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 상태도 좋아졌다고 한다.


월터 스콧 경(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시인, 역사가, 전기 작가)은 유별나게 건강에 자신만만했다. 말년에 찾아온 중풍 발작은 생활이 궁핍해져 너무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심하게 지적 노동을 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좀 더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했을 것이다. 바이런(영국의 낭만파 시인, 풍자가)의 죽음은 시적 흥분 때문인데 그에 못지 않게 방탕한 생활태도가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두 가지 악영향이 겹치지 않고 어느 한 쪽만 있었다면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바이런의 경우 심신을 모두 소모시키는 생활을 하면서, 설상가상으로 끊임없이 시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격렬한 창작활동으로 인해 자기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친 지적 노동으로 건강을 해친 사람의 경우, 본래 그가 완전하게 건강한 몸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때가 있다. 지적 노동과 아무 관련 없는 질병으로 갑자기 악화되었을지도 모르고 실제 그런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 역시 머리를 심하게 혹사하는 것은 육체 건강에 해로우며, 모든 지적 노동은 건강한 신체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 변함없는 진리를 망각한 채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치 신선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면 큰일이다.



지적 생활에 있어서 정신적 기반
지적인 사람에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모럴리스트에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 솟아나면 불길처럼 감정이 일어난다. 이 정열에는 커다란 효용이 있다. 이 정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또 도저히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강렬하게 고무되면 이룰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지적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지적 생활이 주는 기쁨이 큰 것은 지적 노동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지적인 인간을 창조해낸 신은 자신의 창조물에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얻을 수 있는 일을 부과했다. 그 일에는 최대한의 인내와 용기와 자기 수양이 요구된다. 동시에 그 성질상 금전적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매우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이 많이 있다.


그래서 신은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 장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 작품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기개를 담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적 작업을 행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 자체가 매력으로 가득 차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들의 경우 일상의 단조롭고 평범한 일을 할 때는 그 기개를 지탱하지 못한다. 그 일로 부를 획득하여 세상의 지위를 얻을 가망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해야 하는 힘겨운 일은, 과학적 발견을 했을 때의 승리감이라든가 탁월한 시적 표현에 성공했다는 만족감으로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신은 그들을 고무시키기 위해 와인의 도취에 버금가는 신성한 도취감을 부여해준 것이다. 이 고귀한 흥분은 꼭 필요한 것이며 중대한 활력원으로 인정된 이상, 나는 다음 사항을 덧붙인다. 즉 모든 지적 노동자가 매일 착수해야 할 일이란 대부분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강한 정신력이 요구된다.


시를 창작하는 직업은 사람을 가장 도취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시 창작을 포함한 인간의 일이란 어떤 종류이건 모두 뼈를 깎는 듯 힘든 일이며, 훌륭한 성과를 거두려면 상당히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시인들조차 창작 작업에 두려움을 품고 있는 자가 있을 정도이다. 문학 이외에 예술의 경우에도 작가에게 근면함이 요구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은 마치 쾌락 자체인 것 같은 매혹적인 작품, 즉 멜로디와 색채로 굶주린 귀와 눈을 단지 기쁘게 해주는 작품을 만난다.


그러나 음악과 그림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들 중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을 꿋꿋하게 견뎌내지 못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작품의 준비 단계뿐만 아니라 제작 중에도 예술가는 쓰라린 고통을 맛본다. 예술가들의 작업 특징은 기쁨이나 행복감을 전제로 내세우며 되도록 고통의 흔적을 숨기는 것에 있다. 그러나 작업장의 비밀을 아는 자는 모두 그들이 끊임없이 기술상의 어려움과 격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들을 황홀하게 현혹시키는 작품의 매력은 힘들게 싸워온 보상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지적 훈련만으로 공부해야 하는 일도 많이 있다. 하지만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내심과 경건한 마음에 덧붙여 신념이 필요하다. 신념은 강한 정신력인 동시에 가장 고귀한 정신이기도 하다. 무릇 사람이 종사하는 일 중에서, 그 일을 통해 좀 더 현명한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는 일만큼 동기나 목적 면에서 고귀한 것은 없다. 부디 주의 깊게 관찰해 보기 바란다. 좀 더 커다란 지혜를 희구하는 마음이 이처럼 고상한 노력을 지속시킬 만큼 열렬한 것이라면 그때는 늘 경건한 마음과 신념이 함께 해야 한다. 현재의 결점을 인정하는 경건한 마음과 지적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신비한 법칙을 굳게 믿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는 모두 커다란 정신적 강인함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번뜩이는 직관은 불과 한 순간에 안개가 걷히고 천국의 땅에 다다르는 것처럼 스스로 높이 희구하는 목적지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또다시 구름이 주변으로 몰려들어 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불굴의 의지를 끌어안고 한 발자국씩 착실하게 전진해 왔다. 오늘날 세계는 지적인 선인들이 획득한 귀중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재산 역시 선인들의 숭고한 인내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귀중한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보내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우리들의 염원도 인내심이 있어야 성취할 수 있다. 지적인 인간들의 목표는 그들의 정신을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가운데 유약함에 빠지지 않았다. 약간의 결함은 있어도 조르다노 브루노(이탈리아의 자연철학자, 이단자로 화형에 처해졌다)의 정신적 특질 중에서 최선, 최고의 것은 모두 철학을 향한 고귀한 정열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정열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철학을 위해서라면 노동도 고뇌도 귀양도 쉽게 견딜 수 있다고. 그는 ‘짧은 노동 속에서 긴 휴식을, 가벼운 슬픔 속에서 커다란 기쁨을, 좁은 귀양지에서 광대한 조국의 땅을’ 찾아냈던 것이다.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시간
늘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빗발치듯 채찍을 맞고 있는 사륜마차의 말처럼 수확을 거둬야 하는 연구나 관찰에 적합하지 않는 불리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쫓기는 상황이 될 때까지 빈둥거리며 일하지 않는 아주 게으른 인간은 재촉받는 쪽이 좋다고 말한다. 늘 행하는 간단한 실무적인 일이라면 쫓기는 기분이 들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정한 형태를 갖춘 단순한 일이라면 경우에 따라 능률이 오르고, 이로 인해 일의 내용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뛰어난 기교를 지난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마치 아다지오를 켜는 것처럼 정확하게 프레스티시모(악보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를 연주할 수 있다. 은행원은 재빨리 돈을 계산하고 또 당신과 내가 차분하게 앉아 계산한 것보다 훨씬 숫자적 오류가 적다.


게으른 사람은 시간이 절박해지면 활기가 생기고 평상시보다 머리도 맑고 유능해진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이 화급을 다투는 일에 쫓겨 흥분하고, 평소 빈둥거리던 상태 때보다 많은 일을 해낸다 해도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이처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경이적인 작업을 해낸 예는 무수하게 많다. 그러나 학문을 할 때에도 쫓기는 기분이 들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고도의 지적 노력은 조금이라도 초조함이 생기면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뛰어난 저널리스트가 될 소질이 있다면, 감명을 줄 수 있는 논설을 테이블 위의 시계를 쳐다보면서도 마감시간에 늦지 않게 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시인이라도 시간에 쫓기면서 심금을 울릴만한 훌륭한 시를 써내지는 못한다.


또 과학적 발견도 마찬가지이다. 과학 발견은 두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인데, 그 번뜩임도 고통스럽게 실험을 거듭하면서 오래도록 숙고해서 얻은 성과물이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며 명령을 받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병사와 상인을 흥분시키는 긴급사태도 시인이나 과학 발견자의 경우 하고자 하는 마음만 사라지게 할 뿐이다.


사실 외적인 압력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 실무적인 일은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하고자 하는 의욕이 왕성하게 생겨나지만, 좀 더 고도의 지적 작용은 둔해진다. 게다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면 고도의 지적 능력은 완전히 꺾여 버리고, 고도의 지성도 더욱 낮은 차원인 눈앞의 사태에 즉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무적인 지능에 자유로운 활동의 여지를 빼앗겨 버린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일정기간은 조급하게 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일의 순서를 잘 배치하는 것이 지적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를 위한 비결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선택’이다.


어떤 뛰어난 풍경화가는 무엇을 그리건 서두르다 자기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언제나 일의 순서를 미리 정하는 데 가장 마음을 쏟는다고 한다. 그가 행하는 방식의 근본원리는 선택을 잘 하는 것에 있었다. 선택은 풍경화를 그릴 경우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적용된다. 그는 아무리 짧아도 그 정해진 시간을 이용함에 있어서 아주 냉정하고 신중했다. 사실 이 냉정함과 대상을 선택하는 교묘함을 서로 유용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냉정하고 교묘하게 선택이 가능했던 것도, 그릴 대상을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택의 요령을 우리 일에도 응용하면 이 풍경화가의 부러워할 만한 냉정함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좀 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림 그릴 붓을 잡는 대신 우리는 독서를 많이 하거나 글을 써야 하겠지만, 그것을 잘 하려면 우리의 목적에 가장 유용한 책을 선택하여 읽고, 적은 매수로 최대한 명료하게 자기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해서 써야 하는 것이다.


독서의 기술은 가장 중요한 핵심을 파악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건너뛰고 읽는 데 있다. 오늘날에는 모든 책의 내용이 현대 문화 전체가 반영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책의 저자들이 걸어온 학문의 자취를 일일이 꼼꼼하게 더듬듯이 독서할 필요는 없다. 건너뛰고 읽어도 상관없다. 읽으려고 마음먹은 몇 권의 책 중에 자기에게 중요하지 않아 읽는 순간 완전히 잊어버릴 책도 으레 섞여있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모두 빼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절대로 빠뜨리지 말 것. 이것이 독서의 기술이다. 연구에 따라 이러한 선택을 잘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언어는 일단 배우기 시작하면 읽거나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모든 어휘를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어야 하므로 실제로 취사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편 자연과학은 잘 생각해 보면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학은 자기가 선택한 소수의 식물만을 연구할 수도 있다. 글을 쓸 경우 응용할 수 있는 선택의 요령은, 되도록 적은 언어로 표현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요령을 나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는 것이 상업에 관한 것이라면 많이 쓰게 된다. 보통 기량을 갖춘 작가라면 대개 시간이 촉박하면 자기의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집필 계약을 이행할 때,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의 원고를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다. 원고 마무리로 가면 선택하는 기술도 별로 유용하지 않다. 실제로 글을 쓰는 작업도 어느 정도의 수준이 유지되면, 품질보다 마무리한 양이 존중된다는 점에서 다른 수공업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제와 고독
고독의 악영향을 경고하는 친구에게

“불쌍하도다 고독한 자여”라고 당신은 나에게 소리친다. 이것은 편지에 쓰여 있어도 역시 가슴 철렁하게 하는 말이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움칠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나의 생활과 연구가 하찮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후 곰곰이 생각한 결과, 점점 나의 마음은 안정되어 갔다. 지금은 다시 쾌활한 기분으로 돌아와 이렇게 기분 좋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불쌍하도다 고독한 자여”라는 말은 자주 듣는 말이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은둔자가 “불쌍하도다 고독을 모르는 자여.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자여!”라고 말을 바꿀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사람과의 교제도 필요하고 고독도 필요하다.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운동과 휴식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이따금 아는 사람이나 친구들과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하늘에 감사드린다. 마찬가지로 조용히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고독하게 일에 몰두하거나, 사색에 잠기는 감미로운 한때가 주어지는 것에도 감사드린다. 사람은 각자의 역할과 지위가 있으므로 사람과의 교제는 집단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고독은 개인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개인에게 교제가 필요한 것은 국가에 무역이 필요한 것과 같다. 말하자면 고독은 국민의 가정생활에 해당하며 그곳에서 국민은 각각의 독창성과 재능을 키우는 것이다.


자신을 개인적으로 의식한 적이 없고 늘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도 완전한 은둔자의 생활도 모두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완전한 생활이란 군함의 움직임과 비슷하다. 군함은 함대가 편성되면 함대 전체의 지휘에 따라 공격의 일익을 담당하며 행동하는데, 단 한 척만으로도 무한히 펼쳐진 바다로 출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에 속하며 그 임무의 한 자락을 담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서 떨어져 완전히 자신만의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짐차처럼 다양한 사상을 운반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사람과의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성실하기 때문에, 또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좀 더 깊이 하기 위해 고독도 중요하다. 고독할 때만 우리들은 진정 자신을, 그리고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몽테뉴는 한때 허영을 뽐내기 위해 책을 샀지만, 그 후 자기가 진정으로 읽고 싶은 책만을 샀다고 적고 있다. 허영을 위해 책을 사는 마음에는 사교계의 힘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만을 사게 된 것은 고독에 빠져 자기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본 결과일 것이다. 사교적인 사람은 자신의 지적 욕구 등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손님의 눈만을 의식한다. 한편 고독한 연구자는 고독한 나그네가 호텔의 정식에 눈도 주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처럼 자기가 읽고 싶은 문학을 읽는 것이다.


고독의 악영향만 보고, 고독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악영향의 뒤에는 귀중한 보상이 있다. 고독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자기의 재산을, 군주처럼 마음대로 사용한다. 언제까지나 일에 몰두할 수 있어 방해받지 않는다. 허영을 과시할 필요도 없고, 소박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느긋하게 살 수 있다.


우리의 모든 본능이 그러하듯이, 고독해지려는 본능에도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주위의 진부한 세계에서 아주 드문 섬세한 천부적인 자질을 지키려는 것과 같다. 은둔자는 세상에 익숙한 속물이 보기에 본래부터 무능한 인간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제 그들의 지적 연구는 뛰어나며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어쩔 수 없이 고독해진 덕분에 위대한 일을 이룬 인물도 많이 있다. 스스로 원해서 교제를 끊은 것이 아니라 해도, 그만큼 그 성과가 본인과 인류에게 유용한 것이었다. 밀턴(영국의 시인)이 『실락원』을 쓴 것은 시력과 건강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은둔하고, 그가 속한 정당이 완벽하게 패배했을 때였다. 바니얀이 불멸의 우화 이야기를 쓴 것은 감옥에 갇혀 지루한 세월을 보낼 때였다. 훌륭한 업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빈곤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천재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빈곤 덕분에 행복하게도 사교계에서 내쫓겼고 시간만 잡아먹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양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생활은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와 마음을 터놓고 평등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고, 동시에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그런 생활이다. 나의 꿈은, 런던 가까운 곳에 찾아가면 반드시 폭넓은 지식을 줄 만한 인물이 두 세 사람 살고 있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동시에 갈매기와 대서양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파도소리 이외에 친구로 삼을 것이 없는 헤브리티즈 제도에 탑을 갖는 것이다.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지적 즐거움
열렬하게 학문의 길을 지향하는 학생에게

당신은 의욕에 불타 학문의 길을 향해 걸음을 떼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 의욕이 영원히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 당신이라면 분명 오래도록 지속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학문의 길이 아무리 고난으로 가득한 힘든 길이라도 여하튼 당신의 지적 생활이 침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적 생활이 침체하고 그로 인해 우울해지기 쉬운 시기가 있겠지만, 당신 스스로 그러한 상태에 결코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신은 지적인 일을 착실하게 유쾌한 기분으로 해나가기를 원하고 있다. 되도록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젊은 시절 최초의 꿈이 사라졌을 때, 대부분의 지적노동자처럼 괴로워하며 오랜 시간 불길한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 정신병에 걸리면 학문에 의한 의욕이 감퇴하고, 학문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 버린다.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결심하고 그것을 익혀도 이미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또 용기를 내어 무엇인가를 창작해도 그 작품에 긍지도 희망도 품지 않게 된다. 지적 생활이 늘 재미있고 즐거운 생활이라 믿기야 쉽지만, 가장 재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일할 때 사려가 모자라거나,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원인으로 인해 두려운 권태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젊은이를 고무하여 지적 작업에 착수하게 하려는 훌륭한 의도를 갖고 쓴 책이 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책 속에는 지적 생활에 수반되는 위험이 고의로 무시되어 있으며, 지적 노동은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 서술되어 있다. 외면적, 물질적으로 늘 성공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내면적인 기쁨은 반드시 얻을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에게나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써서 여러 오락에 빠져 있는 부자들도 불가사의하게 어쩐지 나른한 기분에 사로잡혀 마음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와 똑같은 일이 최고의 지식을 갖추고 아무리 퍼도 마르지 않는 풍부한 지성을 지닌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지적 생활은 어느 정도의 지적 생활을 행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하고 불건전해져 버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홈볼트나 괴테 같은 자질을 지닌 인간은 일이 많은 쪽이 행복하다. 그리고 그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자는 그에 맞는 정도의 일이 필요하다. 지적 욕구를 지닌 우리 모든 인간은 건전하다고 생각되는 어느 정도의 일을 한다. 일이 너무 적으면 지적 활동에 대한 욕구불만으로 권태감을 느끼고,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면 능력을 혹사하여 다른 권태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권태감 쪽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Part 10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환경
몰입할 수 있다면 환경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친구에게

아주 불편한 조건 아래서도 지적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의 유명한 예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먼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이름을 떠올려 보자. 그는 수학 문제에 몰두해 있을 때는 대군이 시끌벅적하게 밀려와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정신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마당의 땅에 그림을 그리며 기하학 문제에 몰두하고 있을 때 시라쿠사로 공격해 들어온 로마군 병사에게 사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는 그 진위만큼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기이한 버릇으로 평할 만큼 사물에 몰두했던 그의 성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마 공학에서 위대한 발명을 한 인물이라면 어떤 환경 하에서도 아무리 위험해도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버린 사색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전쟁은 화학을 사용하므로 시라쿠사에서 일어났던 전쟁보다 훨씬 시끌벅적하겠지만 그래도 평상시부터 사색하며 집필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전쟁이 일어났다 해서 사색과 집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모으고자 하면 간단히 많은 예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예는 적어도 다음 사항을 증명해줄지도 모른다. 즉 가장 방해받기 쉬운 환경이라도 개인적인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도 환경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불안이 초래하는 정신적 중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학과 과학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 오로지 머리를 사용하는 일은 적어도 일시적으로 불안감을 잊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얼마간의 영향을 꼭 우리의 사고에 미치게 된다.


전쟁터에서 광학 공부를 한 괴테의 경우조차 소년기를 보낸 프랑크푸르트 생활의 영향을 인정하고 있다. 그의 전기를 쓴 영국 작가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옛날 프랑크푸르트의 마을.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정기적으로 장날이 서고,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시민, 사람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많은 것들. 이러한 것들을 위해 변덕스러운 천재는 온갖 것에 매력을 느끼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환경이란 것이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역력하게 보여주는 예일지도 모른다. …… 장기간 끊임없이 사색하고 노력하는 기질과 그토록 변덕스러운 기질은 아마 본래는 서로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환경 아래서도 그와 같은 두 가지 기질을 겸비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조용하고 작은 옛날 독일 마을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곳에는 매일 조용한 거리에서 똑같은 얼굴을 만나고 비슷한 개성의 인간들과 교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괴테의 교양은 좀 더 다양성이 결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더욱 깊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시골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부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의 주의를 끈 것은 계절의 변화와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이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괴테는 분명 다른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혼자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긴 여름날 오후와 음울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깊어가는 황혼, 필연적으로 내재된 경험의 미묘한 차이에 더욱 눈을 뜨게 되어 표면적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획일적인 생활 등은 분명히 그의 재능에 색다른 방면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주 다른 정신을 작품에 불어넣게 되었을 것이다.”


재능을 펼치려면 수도가 있는 대도시에서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괴테가 생활한 가장 큰 마을은 프랑크푸르트였다. 그는 파리도 런던도 간 적이 없다. 그 재능의 건전함은 대부분이 바이마르의 조용한 땅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화원의 집”에 틀어박혀 일름 강으로 이르는 다리의 문을 모두 잠가버렸던 것이다.


괴테 이상으로 환경에 축복받은 문필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조용함이 있었지만 지적인 인간과 교제를 앗아가지는 않았다.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원하는 경치가 있고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압도되어버릴 만큼 장려한 경치는 아니었다.


우리들은 스스로 혼자만으로는 어떤 존재도 될 수 없는 것이며, 인류의 지성이라는 사슬의 일부에서 약간의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그 사슬에 의해, 말하자면 전기처럼 지성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또 우리를 경유하여 다른 인간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고, 좋은 환경의 혜택을 받았다면 지성의 전류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