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한 끼

   
주영욱
ǻ
덴스토리
   
14000
2015년 04월



■ 책 소개


‘진짜 맛집’을 아는 사람은 따로 있다


2012년부터 「중앙선데이」에 연재 중인 ‘주영욱의 맛있는 이야기’ 중 저자가 엄선한 47곳의 서울 맛집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장을 파악하고, 대안을 비교 분석해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마케팅 리서치 분석가로 오랫동안 일했다. 거기에 타고난 미각과 음식에 대한 지식까지 겸비하고 있어 맛집의 옥석을 가리는 객관적인 시선을 완비하고 있다. 때문에 지인들 사이에서 그가 소개하는 음식점은 ‘보증수표’로 통할 정도다. 무엇보다 문사철이 녹아 있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저자 주영욱
세상은 그를 ‘음식 칼럼니스트’, ‘여행 전문가’, ‘사진작가’, ‘경영학 박사’라고 부른다. 그는 스스로를 ‘문화 유목민’이라고 말한다. 여행, 음식, 사진,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전형이다. 맛있는 음식을 하는 곳을 찾아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큰 기쁨으로 삼아오다가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2012년부터 「중앙선데이」에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을 연재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과 시장을 분석하는 마케팅 리서치 전문가로 글로벌 리서치 기업 NFO, Ipsos, Macromill의 한국법인 CEO를 역임했다.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KCMC)’의 사무총장이었으며,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코리아’의 회장을 지냈다. 틈틈이 찍은 사진으로 한국과 인도 등지에서 몇 차례의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지금까지 300여 번이 넘는 해외여행을 했다. 현재는 문화가 있는 특별한 테마여행 전문 회사인 ‘베스트레블(Bestravel)’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놀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여행’, ‘새롭고 즐거운 여행’의 경험을 널리 나눠 주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가 좋습니다 _ 친구들과 함께 하기 좋은 맛집
라무진 _ 삿포로스타일로 참숯에 구운 양고기, 소고기 부럽잖네 - 마포구 | 목포집 _ 쫄깃한 고기, 매콤달콤한 양념, 보드라운 감자 – 강남구 | 옴 _ 순도 100% 마살라향에 기분 좋게 중독되다 - 종로구 | 미 피아체 _ 청담동 드렌드 세터들도 반한 이탈리안 요리 - 강남구 | 미 카사 _ 메인을 잊게 하는 전채 ‘타파스’, 골라먹는 재미가 있네 - 용산구 | 디 안다만 _ 우리 입맛에 딱 맞는 화려하고 독특한 태국의 맛 - 서초구 | 아야진 생태찌개 _ 싱싱하고 푸짐한 생태가 보글거리면 마음도 따듯해지네- 강남구 | 산채향 _ 쌀밥의 단맛, 더덕의 쓴맛, 자꾸 숟가락에 가네 - 종로구 | 충무상회 _ 도다리와 어린 쑥, 간단하지만 간단치 않은 맛 - 강남구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_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 맛집
이닝 _ 광둥, 쓰촨 정통 요리에 한식의 특성을 더하다 - 강남구 | 레써피 _ 작디작은 유러피안 식당에 정성이 흘러 넘치다 - 종로구 | 문경집 _ 야생 산나물에 조선간장 양념장, 보약이 따로 없네 – 송파구 | 범스 _ 추억이 새록새록,엄마가 해 주던 바로 그 음식 - 강남구 | 카페 휘바 _ 건강하고 맛있게, 자연 속에서 먹는 봄 - 경기도 양주 | 스와니예 _ 겉은 바삭하게, 퓌레는 걸쭉하게, 새 옷 입은 추억의 통닭 - 서초구 | 두루 _ 양반가 ‘국시’ 한 그릇, ‘억수로’ 대접받은 기분 - 강남구 | 진미식당 _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밥도둑’ 중의 ‘밥도둑’ - 마포구


평범한 일상이 새삼 고맙습니다 _ 부담 없이 즐기는 골목 맛집
광화문집 _ 젓갈 뺀 시원한 김치와 넉넉한 돼지 생목살의 궁합 - 종로구 | 하단 _ 두툼한 면발에 깊고 시원한 국물, 그래 이 맛이야! - 성북구 | 오가와 _ 숙성시킨 생선회와 찰진 밥이 입안에 착! - 종로구 | 사모님 돈가스 _ 두툼한 고기에 상큼한 소스, 한국식 돈가스의 격을 높이다 - 마포구 | 인사동 수제비 _ 상큼 새콤한 겉절이가 오묘한 국물 맛에 방점을 찍다 – 종로구 | 진남포면옥 _ 기름기 쏙 뺀 닭고기와 부추의 환상 궁합 - 중구 | 대성집 _ 야들야들한 도가니에 40년 내공이 느껴지네 - 종로구


문득, 삶이 쓸쓸합니다 _ 혼자라도 괜찮은 맛집
디미 _ 겉멋 들지 않은 조화로운 맛이 입 안 가득 - 종로구 | 투 브로즈 _ 숯불 향 가득한 환상적 패티, 햄버거의 누명을 벗기다 - 용산구 | 쌀가게 by 홍신애 _ 제철 반찬에 매일 도정한 쌀밥, 소박해서 더 맛있다 - 강남구 | 오복 _ 매일 새로 끓이는 뜨끈한 곰탕 한 그릇 - 서초구 | 남순남 순대국 _ 맑지만 구수한 국물과 푸짐한 머릿고기의 하모니 - 강남구 | 중국 _ 파기름에 볶아 고소한 짜장면이 추억을 부르네 - 종로구


나는 프로입니다 _ 미팅하기 좋은 맛집
아오야마 _ 에도시대 쇼군 부럽잖은 가이세키 요리의 정석 - 강남구 | 파올레 데 마리아 _ 이탈리아 본토의 맛은 역시 다르다 - 용산구 | 류니끄 _ 음식이 예술이 된, 현대식 창작 요리 - 강남구 | 가스트로통 _ 도토리만 먹고 자란 이베리코 흑돼지의 부드러운 유혹 - 종로구 | 보타이 드 버틀러 _ 닷새 끓여 만든 소스, 천천히 만든 아메리칸 요리 - 강남구 | 테이스팅룸 _ 미국 남부 요리와 전혀 새로운 레시피 - 용산구 | 밍글스 _ 된장에 재운 양갈비를 화력 좋은 고급 숯에 굽다 - 강남구 | 비채나 _ 코스 대신 한상차림, 기본에 충실한 고급 한식당 - 용산구 | 서순금류 복요리 전문점 _ 국물 첫술에 감탄사가 절로, “아, 시원하다” - 종로구


그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_ 가족과함께 하기 좋은 맛집
더 키친 살바토레 투오모 _ 장작 화덕에 구운 피자, 나폴리에서 인정받은 귀한 몸 - 강남구 | 병우네 _ 살살 녹으면서도 쫄깃한 ‘덕자’의 맛이여 - 종로구 | 바오 차이 _ 쫄깃 투명한 만두피에 튼실한 새우가 꽉! - 중구 | 타 버나드 포르투갈 _ 재료 본연의 맛살려 주는포르투갈식 소스의 감칠맛 - 마포구 | 그릴 데미그라스 _ 기교는 버리고 정성만 담은 경양식 – 종로구 | 구 스테이크 528 _ 고기, 숙성, 굽기의 완벽한 3박자를 이루다 – 강남구 | 플라잉 팬 _ 최고급 식재료로 만드는 특별한 브런치 – 강남구 | 채운 _ 그날 아침 손질한 생물로만 만드는 광둥요리 - 강남구


지역별 맛집 인덱스


 




맛있는 한 끼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가 좋습니다 _ 친구들과 함께 하기 좋은 맛집

라무진 _ 삿포로 스타일로 참숯에 구운 양고기, 소고기 부럽잖네


add.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40-2 tel. 02.3144.0737

open. 17:00-01:00

menu. 양갈비 25,000원, 칭기즈칸 양고기 22,000원

site. ramuzin.co.kr


고기 요리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을 보면 우리처럼 소고기를 편애하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즐기는 편인데 소고기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양고기다. 고급 식당에서는 양고기 요리가 소고기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때로는 한 단계 위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양고기는 아직 좀 낯설다. 전통적으로 양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영향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양고기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고, 입맛이 다양하게 바뀌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나도 원래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입맛을 붙이기 시작해 지금은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곤 한다.


양고기는 소고기보다 육질이 부드럽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중간쯤이라고 할까? 근육의 섬유 조직이 더 가늘고 연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된다. 소고기에 비해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이 더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포만감도 덜하다. 쉽게 말해 소고기보다 몸에 좋은 고기가 바로 양고기다.


양고기를 처음 맛보는 이들은 특유의 냄새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후 1년 미만의 어린 양고기인 램(lamb)은 냄새가 심하지 않아 처음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살짝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국식 양꼬치가 유행이지만 양고기 구이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전문점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양고기 구이 전문점인 라무진이 갖는 의미는 크다. 라무진은 일식 요리사 출신인 주일용 대표가 일본 훗카이도에서 즐겨 먹는 양고기 구이 방식을 도입해 2013년 3월 처음 문을 열었다. 몽고 병사들이 쓰는 투구를 불판 삼아 양고기를 구워 칭기즈칸이라 부르는 요리다. 그 맛을 살리기 위해 삿포로에서 양고기 구이 불판을 수입하고, 찍어 먹는 소스도 직접 배웠다고 한다.


이곳에서 참숯으로 굽는 양고기 구이는 한마디로 입에 착 달라붙는다. 찰진 양고기가 입에서 부드럽게 씹히면서 술술 넘어 간다. 냉동하지 않은 품질 좋은 램을 골라 사용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느끼하지 않아서 먹으면서도 부담이 별로 없다. 소고기에 비해서 고기의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중독적이다. 같이 굽는 숙주나물과 대파, 양파, 버섯, 방울토마토에 양고기 기름이 배어들어 풍미가 더해지고 야채 본연의 맛은 더 살아난다.


소고기는 맛있다. 하지만 월등하게 사랑 받을 정도는 아니다. 또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도 많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양고기를 일단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고기 맛이 양고기 안에 있다. 가격도 착해 왜 진작에 몰랐나? 하는 생각에 억울하다는 분들도 있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_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 맛집

이닝 _ 광둥, 쓰촨 정통 요리에 한식의 특성을 더하다


add.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22-12 tel. 02.547.7444 open. 12:00-22:00

menu. 부추탕면 13,000원, 버섯 새우 구이(소) 33,000원

site. yining.kr


주위에 널린 것이 중국 음식이지만 막상 일부러 찾아가겠다고 하면 선뜻 갈 곳이 없다. 배달 음식이 아닌 정식 중국 요리를 제대로 하는 식당이 많지 않은 탓이다. 입맛에 잘 맞고, 거기에 맛있기까지 한 중국 음식점을 찾겠다고 하면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진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너무 비싸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곳을 찾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최고 난이도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중국 음식점이 있다. 바로 이닝이라는 곳이다.


중국 음식 중에서도 기름기가 적은 광둥 지방이나 매콤함이 특징인 쓰촨 지방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이닝은 광둥과 쓰촨 지방의 음식에 한식의 특성을 가미한 퓨전 중국 요리를 선보인다. 정통 중국 요리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서 철마다 다양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봄이면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굴소스에 볶아 내고, 가을에는 능이버섯 요리, 겨울에는 홍합탕을 만드는 식이다.


이곳에서는 가급적 기름에 튀기지 않고, 찌거나 굽는 조리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조미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육수를 통해 음식의 맛을 낸다. 보통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거나 맛이 강해서 한 번 먹으면 당분간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닝의 음식은 그렇지 않다. 지인들 중에서는 이곳을 구내식당이라고 부르며 점심, 저녁으로 연이어 다니는 분들도 꽤 있다.


사실 이곳은 정치인, 경제인, 유명 연예인 같은 저명인사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단골들이 많아서 그들 사이에서는 청담동 사랑방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몇 해 전에 단골 중 한 명이던 유명 배우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는 일본 팬들이 매월 단체로 성지순례를 오기도 한다.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음식 맛이 훌륭한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비밀은 바로 김은자(55세) 사장님의 남다른 친화력 덕분이기도 하다. 유명인이건 보통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주위에 좋아하는 언니, 오빠, 동생들이 많단다.


김 사장은 1999년에 이닝을 처음 시작했다. 원래 여러 가지 다른 사업들을 했는데 워낙 음식을 좋아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은 만나서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음식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에 서울 계동에서 음식점을 하시던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승만 대통령 때 이화장(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에 초청받아 음식을 할 정도로 솜씨가 좋으셨다고 한다. 결국은 어머니의 뒤를 따르게 된 모전여전이다.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데 부추탕면도 그중 하나다. 부추는 기름기를 중화시켜 피를 맑게 해 주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건강식 재료로 아주 좋다. 원래 중국 탕 요리에는 부추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일본의 유명한 라면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롭게 개발했다고 한다. 닭을 베이스로 한 뜨겁고 진한 육수가 부추의 맛과 잘 어울린다. 거기에 마찬가지로 새로 개발했다는 버섯 새우구이를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없다.


이닝은 이미 자리를 잡은 음식점이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 그대로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 그런 노력이 오늘의 이닝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계절에는 사랑방 누님이 또 어떤 새로운 맛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이 새삼 고맙습니다 _ 부담 없이 즐기는 골목 맛집

광화문집 _ 젓갈 뺀 시원한 김치와 넉넉한 돼지 생목살의 궁합


add.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43 tel. 02.739.7737

open. 09:00-22:00

menu. 김치찌개 7,000원, 계란말이 5,000원


긴 유럽 출장의 끝자락, 터키의 어느 작은 해변 도시에 간 적이 있다. 지중해 휴향지답게 풍광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오랜 출장에 지친 탓인지 경치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거창하고 고급스런 서양식 만찬도 신물이 났다. 그저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 비벼서 뚝딱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 식당을 찾아보려 애쓰다 공연한 그리움만 커졌고, 덕분에 남은 일정만 더 고달파졌다.


마침내 일을 마치고 수도인 이스탄불로 넘어왔다. 이틀 밤을 더 보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기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국 식당을 수소문했다. 두 군데 한국 식당 정보를 얻어서 바로 택시를 탔다. 30분쯤 걸려서 첫 번째 주소에 도착했지만 식당이라고는 흔적도 없었다. 잘못된 주소였던 것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두 번째 주소를 찾아갔다. 다행이 한국 식당이 있었지만 또 한 번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히필 식당이 쉬는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시 그곳을 찾았다. 호텔에서도 먼 곳에 위치했지만 뭔가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돼지고기 대신 가공 베이컨을 넣고 끓인 김치찌개였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먹었던 김치찌개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훌륭한 맛이었다. 김치찌개 한 그릇 덕분에 해외 출장의 피곤함과 외로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다음부터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의식적으로 김치찌개를 찾아 먹게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가장 먼저 찾는 음식 영순위도 김치찌개가 되었다. 김치찌개를 잘한다는 집은 꼭 찾아가 보는 습관도 생겼다. 사실 김치찌개는 어디서나 하는 흔한 메뉴지만 맛있게 하는 집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김치찌개 식당 중 하나는 광화문 부근에 있는 광화문집이다. 여주인 노병복(70세) 씨가 40여 년을 같은 자리에서 운영해 온 광화문의 터줏대감 식당이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한식 요리를 하다가 김치찌개 한 가지로 특화한 것이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시원하고 칼칼하면서도 잘 숙성된 김치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매년 가을 김장 때 2,000여 포기를 직접 담근 후 숙성시켜 사용한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의 고향이 바다가 없는 충청도인 탓에 고향 풍습대로 젓갈을 넣지 않고 담근 김치를 사용한다. 그래서 진하지는 않지만 대신 깔끔한 맛이 나는 것이 이곳 김치찌개의 또 다른 특징이다.


광화문집은 30년 된 단골 정육점에서 매일 배달해 주는 생고기만을 사용한다. 냉동하지 않아서 탄력이 살아 있는 돼지고기에 김치 맛이 배어들면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 완성된다. 돼지고기 양도 아주 푸짐하다. 다른 집에서는 2인분은 됨직한 고기가 이곳에서는 1인분이다. 여기에 40년 내공이 양념으로 곁들여지면서 이 집만의 중독성 있는 김치찌개가 완성이 된다.


광화문집 입구에 들어서면 일곱 평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투박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테리어가 화려한 요즘의 식당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식사 시간이 되면 단골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맛과 옛날 그대로의 변함없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에게 이곳의 김치찌개는 그냥 음식이 아니다.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소울푸드이고, 허름한 식당은 소울 플레이스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꺼이 광화문집 앞에 줄을 선다.



문득, 삶이 쓸쓸합니다 _ 혼자라도 괜찮은 맛집

디미 _ 집밥 같은 파스타를 만나다


add.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1-1 tel. 02.730.4222

open. 11:00~23:00

menu. 토마토소스 스투루치 15,000원, 생면 페투치네 17,000원

site. cafedimi.co.kr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을 때 일이다. 관광객들을 피해 혼자 이리저리 걷다가 골목의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호젓한 분위기가 좋아서였지 맛에 대해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맛이 아주 훌륭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파스타에서 집밥의 느낌을 받았다. 호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충실한 맛이었다. 그저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나에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이 되었다. 얼마 전 서울에서도 이렇게 편안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느낌의 작은 식당을 하나 알게 되었다.


디미는 경복궁 돌담길 옆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카페 겸 파스타 음식점이다. 매일 반죽을 해서 만드는 생면 파스타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본 재료의 맛에 충실한 요리를 만드는 곳이다. 이곳의 파스타 요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 같이 편안하고 따뜻한 맛이 특징이다. 뭔가 기억에 남는 강렬한 맛은 없지만 재료들이 골고루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입 안을 꽉 채워 준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맛이다.


이곳은 낙천적이고 유쾌한 두 명의 아가씨가 직접 요리를 하며서 운영한다. 이희재(35세), 안지윤(34세) 씨다. 요즘은 유학파 오너 셰프들의 이탈리안 식당이 많아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유학은 고사하고 요리를 전공한 적도 없고, 그저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독학으로 하나씩 배우면서 음식의 맛을 만들어 온 분들이었다.


두 분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한 분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또 한 분은 식품 디스플레이 일을 하면서 식 공간 연출에 대해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생소한 분야라 일자리도 많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차라리 자신들이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시작은 다섯 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일 때문에 주방을 만들었는데 막상 일거리가 많지 않아 재미 삼아 지인들을 상대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시작했다. 둘 다 음식에 솜씨가 있었고,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 보았기에 음식에 대한 센스가 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하나씩 공부를 해가면서 음식을 만들었고, 조금씩 맛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4년 만에 작지만 정식 이탈리안 음식점을 꾸리게 된 것이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우선 예약을 받고 나서 선보일 음식들을 미리 만들어 직접 맛을 보며 메뉴를 선정하는 무모한 방식을 사용했다. 때문에 테이블 밑바닥에 은박 돗자리를 깔고 쪽잠을 자기도 했고, 아예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계란을 거의 1년 동안 먹기도 했다.


1년 여를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어느 정도 메뉴도 개발하고,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요리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식당 문을 닫고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한 달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본고장에 가서 직접 맛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나름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 전환점이었다.


디미는 음식의 맛을 알아간다는 뜻의 지미(知味)의 고어식 발음이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라고 하는 17세기 조선의 한글 조리서에서 따왔다. 겸손하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온 두 사람의 노력이 이름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독학으로 이렇게 충실하고 인정받는 맛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가을이면 더욱 호젓해지는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영춘문 옆,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디미를 찾을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유쾌한 두 분의 아가씨 사장님이 따뜻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거창한 학력과 배경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서울에 이런 소박한 음식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지칠 때 위로를 받으며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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