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라시아 횡단기

   
남영호
ǻ
살림
   
13800
2007년 07월



>■ 책 소개
산악전문지 사진기자 남영호의 유라시아횡단기. 넘치는 도전 정신과 뜨거운 젊음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책이다. 230일, 18,000킬로미터, 13개 나라를 자전거로 달리며 전개되는생생한 에피소드는 물론, 사진기자인 저자의 프레임에 담겨진 유라시아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을 벗어나고픈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뚫린시원함을 전달하고 있다. 


무자비하게 불어닥치는 모래바람과 작열하는 태양, 폭우, 한여름에 내리는 눈, 즉흥적으로나타났다 사라지는 길….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숨을 쉬고 있는 유라시아의 모습이다. 그 외에도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아얼진 산,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넘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라이딩, 제한된 통로를 통해서만 접했던 무슬림들의 진짜 모습,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대원들에게 벌어진 뜻밖의사고와 위기, 짜릿한 로맨스 등 230일간 13개 나라에서 몸으로 겪은 한 편의 드라마가 담겨있다.


■ 저자 남영호 
1977년 1월에 강원도 영월군산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중앙대학교에서 보도사진을 전공했고 이후 산악전문지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등산학교를 수료하고 수년간우리의 산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을 직접 탐험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준비중이다.


■ 차례
- PLOLOGUE : 길 위의 수많은 만남을위하여 


1부 거대한 중국 대륙의 바람이 불다 
호된 신고식끝에 도착한 베이징/ 중국 신문을 장식한 4명의 라이더/ 한류 덕 볼 기회를 놓치다니!/ 숲을 날아다니는 무림의 고수들은 어디에?/ 민박집주인장과 펼친 수도꼭지 쟁탈전/ 졸지에 애 딸린 유부남이 되다/ 칭하이성의 차가운 여름/ 나를 떨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야!/ 아줌마, 아줌마맞아요?/ 때론 고생 끝에 또 다른 고생이 온다/ 수상한 경찰/ 이방인에게는 냉혹한 아얼진 산/ 거칠고 질긴 타클라마칸/ 폼에 사는라이더인데…/ 하늘과 맞닿은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버스에 실린 채 국경을 넘다 


2부 세상의 편견을 넘어 무슬림으로 
웰캄 투빠키스탄!/ 산이 이어준 인연/ 훈자 사람들만의 장수 비결/ 꿈꾸는 알피니스트 박정헌/ 새로운 출발, 서바이벌은 시작됐다/ 끊임없는 카라코람의산사태/ 라이더를 향한 분노의 돌팔매/ 그들만의 금기, 무슬림의 아내를 만나다/ 정(情), 우리를 지탱해준 힘/ 나를 막는 것은 길이 아니라사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란/ 공포의 도시 자헤단을 지나다/ 상처만 남은 도시, 밤시티/ 마약 중독자와 함께한 환상의 질주/ 흥겨운이란의 전통 혼례/ 웃기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그리운 나의 친구, 알렉스/ 이란의 끝, 터키의 시작/ 쿠르드 가족과 함께한 공포의 하룻밤/아르바이트 목동, 캐난/ 나에게도 영광의 상처가/ 알라신이여, 배고픈 나를 용서하소서/ 넴룻 산 정상에서 펼쳐진 신의 향연/ 내 입술을 훔쳐간카파도키아의 여인/ 치명적인 라키의 유혹/ 흐릿하기만 한 나의 길 


3장 유럽, 새로운 길의 시작 
일본 라이더, 키타노부유키/ 신산한 유럽의 변방, 불가리아/ 소피아의 낯선 풍경/ 첫눈 오는 날의 생이별/ 길 위에서 찾은 길, 슬라브브로드/ 고통은 이겨내라고있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도전, 베니스를 향해 달리자!/ 임페리아로 향하는 길에 재발한 통증/ 한밤중의 뺑소니 사고/ 난 자리, 든 자리/자전거보다 힘든 스페인의 자전거 타기/ 자전거 탄 돈키호테와 산초/ 펠리스 나딸! 포르투갈/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곳,로카




자전거 유라시아 횡단기


거대한 중국 대륙의 바람이 불다

하늘과 맞닿은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는 중국의 카슈가르에서 시작되어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Islamabad)까지 연결되는 길로 1959년부터 20년 간 만들어지면서 8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하이웨이란 말 때문에 포장이 잘된 고속도로를 상상했지만 막상 그 길 위에 올라서고 나서야 하이(High)웨이, 즉 하늘과 맞닿은 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의 안개가 채 가시기도 전에 카슈가를 빠져나왔다.


도시 외곽을 빠져나가자 그 지긋지긋하던 사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곧장 한가로운 농촌의 풍경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금세 웅장한 산군이 우릴 둘러쌌다. 간간이 주변의 붉은 산들 너머로 흰눈을 머리에 쓰고 있는 고봉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첫 목적지인 게즈까지는 아직 15킬로미터가 더 남았지만 산길은 계속해서 이리 돌고 저리 돌고를 반복하며 마치 제자리를 빙글 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중에서는 해가 일찍 지는 탓에 같은 시간이라도 여느 때보다 어두워졌고 그쳤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게즈를 10킬로미터 앞두고 더 이상 어둡고 비 내리는 산길을 가는 건 무리라 생각해 길가에 있는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로 비를 피했다. 군 검문소 정도로 쓰였을 법한 작은 건물은 창문이 다 떨어져나가 바람이 사정없이 들이쳤지만 다행히 천장은 남아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다음 날 10여 킬로미터 달려가 나온 게즈에서는 지난밤 우리 건물을 지나간 스페인팀이 자전거를 손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4명이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건너는 중이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카슈가르에서 출발한 날짜도 같고 묵었던 숙소도 같았다. 그 친구들은 휴가기간 동안 자전거로 카슈가르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갈 계획이라며 같은 일정이니 잘 어울리자고 하고는 먼저 출발을 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되었을 때 먼저 출발한 스페인 팀의 라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다들 컨디션이 괜찮았는지 스페인 팀에게 은근히 경쟁심을 유발시키며 추월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좀전에 봤던 스페인 팀을 제치고 "아디오스~"라고 인사하며 안 힘든척하며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한참의 오르막이 끝나고 나니 이번엔 엄청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바람도 불지 않는 다운힐(downhill)은 금세 믿지 못할 속도인 시속 70킬로미터까지 자전거에 가속을 붙여줬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카라쿨은 무스타그아타라는 멋진 산을 곁에 두고 있는 산골마을로 카라를 호수에 비친 무스타그아타의 풍경이 절경인 곳이다. 먼저 도착한 일행과 같이 있던 동네 주민들은 나머지 우리 일행이 좋아서가 아니고 자신들의 게르(Ger, 이동식 천막)에 손님을 받아 생활을 하는 장사꾼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인상이 착해 보이는 아저씨를 하나 골라 그리로 가자고 제안했다. 아저씨를 따라간 곳은 호수 근방의 풀밭이었는데 큰 게르가 두 동 있었다. 천막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크고 아늑했다. 살림살이들이 있는 걸 보아 주인집 식구들이 생활하는 곳인 듯했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데 처음부터 들어와 같이 앉아 있던 주인집 식구들은 나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식구는 다섯으로 주인 남자와 그의 아내, 아이 둘 그리고 젊은 여동생이었다. 오늘만큼은 편하게 자고 싶은데 혹시 이 사람들이 여기서 같이 자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저씨 이제 우린 잘 거니까 자리 좀 비워주세요"하고 말하니 나를 한 번 쳐다보곤 "우리도 여기서 잘 건데…"라고 하며 나갈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홉 사람이 뒤섞여 잔다는 게 내키지 않을뿐더러 숙박비까지 내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자야 한다는 건 더더욱 싫었다.


"아저씨 여긴 우리 방이잖아요. 같이 잔다고 얘기 안 했었잖아요."


몇 번을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들은 서운하단 표정으로 애들을 들쳐 업고 나갔다. 내가 좀 야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히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과연 그들은 이 밤중에 어딜 갔을까. 나는 낮에 먹은 수박 때문인지 수시로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갔다. 수많은 별빛을 바라보며 잠시 집 생각에 빠졌을 때 어디선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애~!"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바로 옆, 스페인 팀이 자고 있는 게르였다.



세상의 편견을 넘어 무슬림으로

그들만의 금기, 무슬림의 아내를 만나다

우리를 도와준 이 남자의 이름은 라시드였다. 라시드는 만세라(Mansehra)에 살고 직업은 사업가 겸 변호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며 우리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만세라의 외곽에 자리한 집은 한눈에도 라시드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임을 짐작케 했다. 큰 집과 잔디가 깔린 마당엔 라시드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우릴 보곤 신기한 듯 빤히 쳐다보다가 씩 웃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슬림들의 관습대로 손님을 접대하는 차가 나왔다. 이 더운 날에 뜨거운 차라니…. 아직 이것까지는 적응이 안되었던 터라 힘들었지만 빨리 마시고 비우는 게 낫겠다 싶어 후딱 차를 마셨다. 그렇게 비우고 나니 차를 좋아하냐며 그새 잔을 채웠다. 남의 속도 모르고. 나중에 알았지만 이 사람들은 더운 날에도 한자리에서 차를 몇 잔씩이나 마시고 상대의 잔이 비면 빨리 채워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때 만세라 근방의 지진피해 지역에서 NGO 활동을 한다는 라시드의 친구가 찾아왔다. 라시드가 우리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길 하니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며 오히려 나에게 충고를 했다.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지진 이후에 더욱 먹고 살기 힘들어진데다 반미감정까지 극에 달해 외국인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해, 화가 조금은 누그러들었고 그런 현실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한참을 얘기하며 저녁식사까지 마쳤지만 다른 식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식사 준비는 라시드가 직접 했고 후식은 친구가 가져왔다. 물론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지만 부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라시드에게 부인과 다른 식구들은 어디있냐고 물으니 방 안에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곤 아이스크림이나 먹자고 한다. 무슬림 남자들은 부인을 외간 남자앞에 드러내지 않는다더니 정말이었다. 우리의 생각엔 손님이 오면 예의상 인사라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꼭꼭 숨겨놓으니 우리와는 정말 다른 문화였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무슬림 남자라도 남자는 남자인가 보다. 아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면서 재미있는 게 있다며 한번 보란다. 무슬림 남자들이 재미있다는 게 뭔가 싶어 받아보니 짤막한 코미디가 하나 나오고 곧이어 낯뜨거운 성인 동영상이 나오는 것이었다. 엄격한 무슬림 사회에서 이런건 어디서 구했을까 싶어 물어보니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다면서 피식 웃었다. 알고 보면 세상은 달라 보여도 다 똑같다!


남자들이 이러면 여자들도 별다를 게 없겠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파키스탄 여인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단 호기심이 발동했다. 고민을 하다 부인을 볼 수 있는 묘수가 하나 떠올랐다. 나는 라시드에게 당신의 비밀을 지켜줄 테니 가족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제안을 했다. 마치 못 찍게 하면 다 불어버릴 거라는 일종의 부드러운 협박이었다. 나는 사진작가이고 정말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달콤한 멘트까지 곁들여서. 나의 제안에 라시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곱게 화장을 한 부인과 라시드가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왔다. 부인은 촬영을 마치자 집 안으로 들어가자며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는 내가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과 한국에 대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한국 여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국의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등등. 얼굴을 가리고 바깥출입을 잘하지 않는 무슬림의 주부라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왜 없을까. 라시드는 그런 아내의 수다에 당황했는지 나와 부인을 번갈아가며 혹시나 모를 두 사람의 묘한 눈빛을 감시하는 듯했다.


어두운 천에 감춰진 무슬림 여인에 대한 신비감은 라시드의 아내를 통해 조금은 해소되었다. 그녀들 역시 예쁜 것을 좋아하고,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었다.



유럽, 새로운 길의 시작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곳, 로카

드디어 이 길고도 길었던 유라시아 횡단의 최종 목적지인 로카곶을 향하는 날이었다. 리스본에서는 약 40킬로미터 거리여서 오전에 출발하면 점심때 즈음 충분히 도착이 가능했다. 리스본이 바다에 면한 도시인지라 해발은 재보나 마나 한 것이었고 외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를 타고 두 시간여를 달리고 나니 해발 145미터의 로카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이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렇게도 힘들게 하더니 이놈의 오르막은 끝까지 나를 괴롭히네."

남은 이 길 역시 우리가 이겨내야 할 또 하나의 언덕이었다.


해안을 벗어나 숲길로 접어드니 로카곶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언덕 위의 갈림길에서 마침내 로카로 가는 길이라는 마지막 표지판이 등장했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5킬로미터,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더 달리고 싶어도 이게 끝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길을 달리리라, 하고 다짐했건만 키타의 눈물을 보는 순간 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스럽고 감사할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눈물을 훔쳐내고선 다시 핸들을 꽉 잡았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정성껏 페달을 밟으며 주위의 풍경을 차근차근 눈과 마음에 담았다. 모퉁이를 돌자 저 멀리 우뚝 솟은 탑이 보였다. 로카곶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은 내리막이었다. 끝까지 오르막에 힘겨워한 나에게 로카는 작은 여유를 선물한 것이었다. 230일, 18,000킬로미터. 유라시아를 달려 우린 드디어 로카곶 위에 섰다. 그곳에서 대륙의 길이 멈추고 짙푸른 대서양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끝은 없는 것이다. 길의 끝이 바다의 시작이듯 나의 여정은 로카에서 끝이 났지만 새로운 꿈이 다시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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