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라는 우주

   
오선화 (지은이)
ǻ
이상북스
   
18000
2024�� 11��



■ 책 소개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 써나쌤의 말캉뭉클한 청소년 이야기

이 책은 청소년과의 일상적 대화와 함께 어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문하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을 단순히 어른으로 가는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로 존중한다. 그들이 겪는 상처와 아픔을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다소 미숙하게 보이는 순간조차 소중히 다루며, 청소년과의 관계를 통해 어른들 역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판단하는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을 지우고 그들만의 독립적인 감정과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이 책은, 그들이 문제아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우주임을 일깨우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 저자 오선화
저자 오선화는 청소년 활동가이자 작가이다.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이라는 활동명이 말해주듯 청소년을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과 연결해주기도 하고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쌤! 밥 먹어요!” 하고 바로 만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으로 산 지 15년이 되었다.

소설을 쓸 때는 ‘오하루’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지은 책으로는 ‘ㅈㅅㅋㄹ’, ‘살자클럽’, ‘그저 과정일 뿐이에요’, ‘너는 문제없어’,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등이 있다.
  
■ 차례
작가의 말

1장 우리가 처음 함께 웃던 날
“얼마나 친해?”
사랑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알지만 모르는 여름이 이야기
내 어리석음과 아이들의 지혜로움 사이에서
평범해지고 싶은 아이
우리가 처음 함께 웃던 날
이름을 불러주세요

2장 잘못하지 않은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사과한다
꽃이 피어도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가 와도 꽃이 피는 것이다
“진짜 엄마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마지막 인사였다는 걸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잘못하지 않은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내 손은 두 개뿐이라고 변명한다

3장 문득 무너질 땐 마라탕
한 사람에게는 꼭 한 사람이 있다
문득 무너질 땐 마라탕
이제 그만하고 싶어, 숨바꼭질
거짓말하는 아이
“그러니까 죽지 마!”
같이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슬픔을 듣는다
거품이 조금 넘쳐도 괜찮잖아요

4장 괜찮아요, 수정이들
어느새 또 사랑하게 된다
멋진 것은 삶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오늘도 나는 그 우주를 향해 걸어간다
아픔도 지나가고 나면 꿈처럼 아득하다
괜찮아요, 수정이들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
내 마음에 생긴 스위치
‘더 그리움’이 이기는 날들

5장 내일은 모르겠고, 그냥 오늘을 살자
저요? 저는 그냥 쌤입니다
내일은 모르겠고, 그냥 오늘을 살자
나는 오늘도 죽고 싶은 아이를 만나러 간다
내 마음에 사랑의 부메랑이 차곡차곡
시작을 확인하는 것의 의미
나는 안다, 나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은 예쁘다!

 




청소년이라는 우주


우리가 처음 함께 웃던 날

“얼마나 친해?”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쌤, 또 작두 타요?”


“내 쉬키, 뭐 좋은 일 있구나!”

“역시 우리 쌤, 작두 살아 있네요.”

작두를 한 번도 탄 적 없으면서 작두 잘 탄다는 소리를 듣는 나도 글이 안 써질 때 글을 쓸 재간은 없다. 그런데 어쩌면 내 재간과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빛나는 말을 글로 담는 일은 사실 언제나 어렵다. 아이들 마음속에만 있는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그걸 목격했다고 해서 그 샘물의 성분을 알 길은 없다.


친하다는 것

시설에 있는 쉬키가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랑 친한 친구예요.”

“얼마나 친해?”

“제가 여기 사는 걸 알아요.”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떨렸다. 친하다는 건 뭘까? 나는 과연 이렇게 짧고 명확하고 직관적인 문장 하나로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친하다는 게 뭔지 알고 있기는 하는 걸까? 친한 줄 알았는데 친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던 몇몇 일이 떠오른다. 그럼 정말 친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친한 사람들은 친한 게 맞을까? 이어지는 물음표 속에서 문득 전화를 걸었다. 오래전부터 친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에게.


“언니, 우리 집 어딘지 아나?”

“서울이잖아.”

“아니, 서울 어딘지 아냐고.”

“그걸 알아서 뭐해. 내가 너네 집 가서 잘 것도 아니고, 우리는 니가 여기 와서 쉴 때 만나잖아. 내가 서울 가면 내 숙소에서 만나면 되고. 굳이 알 필요가 없잖아.”

“그럼 우리 친한 걸까?”

“무슨 개소리고? 친하니까 생뚱맞게 전화해서 인사도 없이 생뚱맞게 그리 묻지. 니가 안 친한 사람에게 이럴 수 있나?”

“맞네.”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내 쉬키’라고 부른다. 어디 사는지 아는 쉬키들을 떠올려본다. 어디가 아픈지 아는 쉬키들도 생각이 난다. 내 마음에 살고 있는 쉬키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내 좁은 마음이, 쉬키들을 살게 하려고 조금씩 넓어졌다. 현실의 집은 좁아도 마음만큼은 펜트하우스만큼 넓어지기를, 나의 신에게 기도한다.


목소리에 힘이 다 빠져 있어서 힘이 빠졌냐고 한 것뿐이데, 목소리가 한껏 들떠서 기쁜 일이 있냐고 한 것뿐인데, 나를 작두 타는 쌤으로 만들어준 귀여운 녀석들의 마음 어딘가에도 내가 살고 있을까? 그곳에 꽃 한 송이 피어나면 좋겠다. 그 꽃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잘못하지 않은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사과한다

꽃이 피어도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가 와도 꽃이 피는 것이다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며 겪었던 일을 또 다시 겪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겪었다고 적응이 되는 건 아니다. 매번 처음 겪는 일처럼 당황하고 놀라고 분주해진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일 중 최고를 꼽으라면 ‘죽음’이 아닐까.


엄마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과 부부 동반 여행을 가다가 쓰러졌다. 그 여행은 다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첫 호의였고, 나 같으면 잡지 않았을 아버지의 손을 엄마는 소녀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덥석 잡았다. 나는 싫었지만, 엄마가 저렇게 좋다면 아버지의 손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더 이상 손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쓰러졌고, 구급차로 옮겨졌고, 응급실에서 뇌출혈 판정을 받았고, 며칠 못 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그때 내 마음은 주저앉을 수도 없었고 울 수도 없었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늘이 엄마를 다시 반납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쩌면 지금도 문득 내가 가장 힘들 때 가장 바라게 되는 소원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은 소원을 지닌 아이를 만날 때면 ‘어쩌면’이라고 시작한 문장이 자동으로 수정된다. ‘지금도 문득 내가 가장 힘들 때 바라게 되는 소원은 그것이다’라고.


한 녀석이 아버지를 잃었다. 1년이 지났지만 녀석은 하늘이 아버지를 반납해주기를 바란다. ‘1년’을 ‘10년’으로 바꾼다고 해도 뒤 문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녀석의 아버지는 50대 초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녀석에게 아버지는 나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묻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늠할 수조차 없는 녀석은 자꾸 묻는다. 유독 어둡게 느껴지는 밤이 찾아오면 녀석의 물음이 시작된다.


“쌤, 오늘도 아빠가 보고 싶어요. 쌤은 이제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괜찮아.”

“나는 계속 안 괜찮아요. 괜찮기도 한 건 언제쯤 그래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또 살아야 하니까 살아지긴 하더라. 근데 완전히 괜찮아지는 건 없어. 문득문득 삶의 길목에서 그리움이 툭 튀어나와. 그리움하고 같이 사는 거 같아.”


녀석은 이렇게 아픔을 먼저 겪은 나의 뒤에서 묻는다. 내 뒷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소리쳐 묻는다.


“거기는 꽃이 피어요? 거기 가면 정말 비가 그쳐요?”


‘응, 여기는 햇살이 가득한 꽃밭이야.’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꽃은 피었어. 그런데 비는 오네.”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에서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난다. 차라리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지, 차라리 펑펑 울지, 차라리 따라가고 싶다고 소리 지르지, 그러면 같이 울기라도 할 텐데... 녀석은 항상 맘껏 울지도 않고,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지도 않고, 금이 갈 때까지만 긁는다. 속이 상하지만 그게 녀석이 애도하는 방법이란 걸 잘 알기에 잠자코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이제 좀 자야지?”


내 물음에 녀석이 대답한다.


“비가 와도 꽃은 피는 거잖아요. 그것도 희망이에요.”

“오, 맞네. 그렇네.”


그래, 꽃이 피어도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가 와도 꽃이 피는 것이다. 내일 또 비가 오면 이곳에 핀 꽃을 보여줘야지. 아픔의 틈에 피어나는 꽃을 같이 보고 있다보면 빗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도 오겠지. 비가 와도 괜찮다고 말할 날도 오겠지. 비가 많이 와서 꽃도 많이 핀 거라며 웃을 날도 오겠지. 그래, 그날을 꿈꾸어보자.



문득 무너질 땐 마라탕

문득 무너질 땐 마라탕

“쌤!”


밤새 울어 눈이 퉁퉁 부은 녀석이 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지금 쌤이 보이긴 해? 눈이 아주 묻혔는데?”

“아, 쌤!”

“알겠어, 안 놀릴게. 뭐 먹을래?”

“문득 무너질 땐 마라탕이죠.”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무너졌다고 말한 녀석이 메뉴를 고르지 못해서 했던 말인데, 몇몇 녀석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마라탕은 요즘 청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데, “마라탕 먹자!” 그러면 “좋아요!”라는 대답이 90% 이상이다.


녀석이 다시 마라탕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먹기 시작하려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의 상차림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상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라탕이 올라갔고, 버블티가 올라갔다. 어른들이 보았다면 “그런 걸 올리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음식들이었다. 한 어른이 말했다.


“원래 상차림 치우고 너희가 올리고 싶은 걸로 올리자.”


눈치를 보며 음식을 하나씩 올리던 아이들은 이제 마음껏 올리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수정이는 이경이가 만드는 계란말이를 참 좋아했다. 이경이는 “그냥 평범한 계란말인데, 넌 왜 내가 만들어주는 걸 그렇게 좋아해?”하고 물었다. 수정이는 해맑게 웃으며 “몰라, 난 네가 해준 계란말이가 젤루 맛있어!”하고 대답했다.


이경이는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계란말이를 가지런히 담아 상 위에 놓았다. 그새 다른 친구들이 수정이가 좋아하는 음료를 몇 잔 더 놓았고, 연어초밥과 베이글도 놓았다. 사진 속 수정이는 이경이가 떠올린 웃음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수정이의 친구들은 죽음에 순서가 없다는 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열여덟 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수정이가 갑자기 떠난 이후 수정이 친구들이 맞이하는 하루는 매일 변덕을 부렸다. 하루는 수정이의 죽음이 믿어졌다가 또 하루는 믿어지지 않았다가, 수정이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괴로웠다가 다시 선명해져서 반가웠다. 어떤 날은 수정이를 얘기하며 웃기도 했고, 웃다가 울기도 했다. 그렇게 변덕을 부리는 마음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움은 지독했다. 매일 녀석들을 찾아왔고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리움만은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경이가 방학을 맞아 서울에 와서 만났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경이는 그날 그 상차림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맑고 예쁜 녀석들이 자신들의 진심을 담아 차려낸 상차림을 보니 마음이 몽글해졌다.


“작가님 덕분에 진짜 많이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영혼은 늙지 않는다는 말, 너무 위로가 되어서 친구들에게 다 말해주었어요. 저도 친구들도 많이 나아졌어요. 하지만 아주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게 잘 사는 거야. 그러다 문득 무너질 뿐이지. 그럴 땐 울고 싶으면 울고, 그리워하고 싶은 만큼 그리워해도 돼.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늘에 가서 수정이랑 마라탕도 먹고 베이글도 먹고 버블티도 먹자. 아, 넌 거기서도 계란말이 해줘야 함!”

“좋아요. 꼭 우리들 모인 곳에 놀러오세요!”

“그럼 그럼!”



괜찮아요, 수정이들

어느새 또 사랑하게 된다

선이는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월급을 받았다며 선물과 편지를 내밀었다. 나는 녀석의 병이 걱정되어 고맙다는 말도 미처 못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며칠을 병원에서 보냈다. 어쩌다가 두 명의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병실과 응급실을 오가며 잠을 설치고 가슴 졸이며 며칠을 보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정신은 몽롱했다. 패잔병처럼 집에 돌아왔다. 가족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푹 자고 나니 집 나갔던 정신이 백 분의 일쯤 돌아왔다.


‘아, 선이가 준 선물이 있었는데!’


그제야 떠올라 가방을 열어보니 선물과 편지가 받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선물은 콜라겐 마스크 팩과 헤어 트리트먼트였다. 편지에는 어버이날 선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승이라고 하기엔 오글거리고 어버이라고 하기엔 부모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싫지만, 그래도 곧 어버이날이라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녀석은 5월이 싫다고 했다. 부모가 있지만 부모라고 하는 것도 화가 날 만큼 아픔과 고통만 준 사람들이기에. 5월에 교회에서 부모를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도대체 왜 그런 행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서 다른 달보다 더 기분이 안 좋았는데, 비록 병원이지만 쌤하고 함께 있어서 웃고 얘기하고 기뻤어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쁜 5월이네.”


녀석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날 밤이었다. 우연히 녀석의 앞 침대에 자살 시도를 한 청소년이 실려왔다. 나는 두 녀석을 번갈아 보며 간절히 바랐다.


‘이 녀석들이 어린이였을 땐 이 날을 즐길 수 있었을까. 한 번이라도 꼭 행복했던 어린이날이 있었다면 좋겠다’


사랑은 참 어렵다. 힘들고 괴롭다. 연대는 더 어렵다. 타인의 고통이 건너와 내 마음을 사정없이 비트는 일이라 때론 살이 찢기는 것처럼 아프고, 때론 불이 떨어진 것처럼 뜨겁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 진짜 ‘내가 미쳤지, 왜 이렇게 사나’ 싶어 주저앉을 때도 많다. 그야말로 속이 썩는다.


그런데도 아직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이들이 주기별로 주는 이런 ‘마약’ 때문이다. 바로 오늘 열어본 선물과 편지 같은 것들. 문득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빛 같은 것들. 매일 죽겠다던 녀석에게 처음으로 살아보겠다는 말을 들은 달콤한 밤 같은 날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크고 깊은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말간 감동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일은 모르겠고, 그냥 오늘을 살자

저요? 저는 그냥 쌤입니다

나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처음에 내가 한 일은 그저 동네 놀이터에 있는 녀석들 치킨을 사주는 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녀석들이 배고프다 했고, 나도 배가 고팠으니까.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녀석들이 찾아왔다. 올 때마다 치킨을 먹었다. 검정고시를 보고 싶은데 학원비가 없다고 했고, 국어는 자신 있으니 같이 해보자고 했다.


녀석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치킨을 그냥 사주는 게 신기하다며 친구들을 데려왔다. 배고픈 사람끼리 밥을 같이 먹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신기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밥을 같이 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사촌이 한 명도 없던 내 어린 딸들은 오빠, 언니들과 함께 노는 걸 무척 좋아했고, 우리는 그냥 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모임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는 한 아이의 말에 ‘비전반’이란 이름을 만들었고, 나를 ‘써나쌤’이라 부르는 아이들이 모인 ‘비전반’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모아 ‘힐링 멘토’라는 책을 낸 건 내 직업이 작가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 책의 출간을 계기로 강의를 시작하게 된 건 나에게 치킨값을 벌게 하려는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되고 떨렸다. 걱정도 되고 자신도 없었다. 비전반 아이들을 만났을 때 이 마음을 털어놓았다.


“쌤 강의하면 치킨값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잘할 수 있을까? 진짜 너무 떨려.”

“쌤,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해요. 그래야 애들이 알걸요? 우리의 ‘내부인’인 걸.”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이제 밥만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다 보면 경찰도 만나고, 쉼터 소장도 만나고, 기관에 근무하는 상담사도 만나고, 병원의 사회사업팀도 만난다. 아이들은 “도움을 주는 어른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여지없이 ‘써나쌤’을 말한다. “혹시 오선화 작가님?”이라고 반문한 분은 여태껏 한 분이다. 나머지 분들은 “그게 누구야?”라고 묻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나를 말한다.


결국 신뢰관계인이나 후견인이란 이름으로 나에 대해 질문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 정체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여러 형태의 질문이지만 결국 묻고 싶은 건 하나다. “누구세요?”


‘소속 기관도 없고, 상담사도 아니고, 작가인 건 알겠는데 왜 청소년들을 만나지?’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나도 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충분히 이상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설명을 해야 한다. 그게 참 웃기고 어렵다.


“쌤은 우리 쌤인데, 누가 이상하게 보든 무슨 상관이에요.”

“쌤이 누구냐고요? 그냥 쌤이잖아요.”


아이들 말에 어른들 사이에서 눌린 내 자존감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 사람들은 어른들에게 자존감이 눌린 아이들을 내가 회복시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이 사회에 치이고 눌린 내 자존감을 아이들이 회복시켜줄 때가 더 많다. 무슨 경력이나 직함 따위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있는 쌤이면 된단다. 친구들에게도 당당히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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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