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의 미술

저   자
심은록
출판사
미술문화
가   격
22,000원(304쪽)
출판일
2018년 03월






이성자의 미술


대지 陰: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

짧은 행복, 긴 이별

1946 년, 그의 우주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50년 6월에 발발한 전쟁을 피해 피난민 행렬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간다. 1951년, 남편의 외도로 파경에 이르렀지만 세 아들 모두 남편이 거두게 된다.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이성자는 한꺼번에 밀어닥친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상 시대 1954-1956

빛의 도시 파리로

이성자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빛을 찾아왔다. 어둠과 카오스 그 자체였던 한국에서 볼 때, 프랑스 파리는 평화와 빛의 도시였다.


장폴 사르트르는 더 이상 ‘본질’이 아닌 따끈따끈한 현실적 ‘실존’을 앞세우는 참여 지성적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었다. 미술계에서는 다다에서 떠난 초현실주의자들이 몽파르나스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앵포르멜이 열기를 띠었다. 지성과 새로운 예술이 요동치는 이곳 몽파르나스에서 이성자는 미술관에 다니고, 불어를 배우고, 미술도 시작한다.


그는 디자인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몽파르나스 근처에 있는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아카데미에는 많은 교수들이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스승들은, 프랑스 출신의 이브 브라예, 미국 출신의 앙리 고에츠, 그리고 러시아 출신의 오십 자드킨이었다. 그는 자기 색이 뚜렷한 3인 3색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교수로부터 세 개의 다른 미술을 거의 동시에 배웠다.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는 이성자가 6층 자신의 방에서 바라본 뜰의 풍경이다. 그의 방 창문을 통해 초등학교가 보이는데,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몰려나와 운동장에서 논다. 그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떠올렸다.


캔버스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뜰의 끝에는 병풍처럼 나열된 건물들이 놓여 있다. 빈틈없이 자리 잡은 검회색 건물들은 대지의 눈 때문에 더욱 우중충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뜰과 건물을 나누는 긴 담벽은 왼쪽의 빨간 지붕 건물에서 시작해서 캔버스를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원근법에 따르면, 멀리 있는 굴뚝은 더 작고 간격도 더 좁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어떤 굴뚝은 멀리 있는 것이 더 크게, 앞에 있는 것이 더 작게 묘사된다. 비교적 대담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가, 이처럼 신경 써서 상세하게 굴뚝을 그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성자는 ‘눈’의 특성을 사용하여 원근법을 해체하고 있다. 눈이 쌓인 평원에서는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데, 화폭에서도 이러한 지각 불가능한 거리가 눈을 통해 재현된다. 원경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어두운 건물들은 우리의 시선이 그 너머로 가는 것을 막고 있다.


이성자는 1961년에는 알렉산드르 코스탄다의 아틀리에에서 도자기 작품을 만든다. 이후에 한국에 들르면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하고, 도자기 작품을 전시한다. 2003년 그는 프랑스 발로리스의 마넬리 도자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한다.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 산드라 베나드레티 펠라르는 2002년 이성자와의 첫 만남 이후 교류를 지속해왔기에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상당히 깊이 알고 있다. 펠라르는 그의 작품이 “아주 예외적이며, 프랑스 사람들이 볼 때는 상당히 독특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고 평한다.


추상 시대 1957-1960

신들의 황혼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이었던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 전쟁의 시기가 끝나고, 이제 평화로운 인간세계를 이성자는 염원한다. 신들과 영웅처럼 선악이 분명하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흰색과 검은색, 붉은색과 푸른색의 이원론적인 시대의 끝을 말하듯, 원색적이며 강하고 거친 필치가 아니라 중간색의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이 사용된다. 전쟁에서의 적군과 아군이라는 대립이 끝나고, 프랑스의 50-60년대처럼 좌파도 우파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톨레랑스(관용)가 흐르기를 기원한다.


이성자는 모티브의 중요성을 알고 자신만의 모티브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서양화를 배우면서, 삼각형, 사각형과 같은 형태와 물질의 기본 요소를 배웠다”고 말하며 이러한 형태는 “2000년 전에도 그리고 2000년 후에도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설명한다. 그는 “모티브를 가진 개념미술이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판화 대지 시대 1957-1963

1957년, 이성자는 영국의 판화가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가 1927년 파리에 세운 전설적인 판화 공방 17 Atelier 17에서 판화를 배웠다. 헤이터 공방은 피카소, 미로, 샤갈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화가들이 즐겨 찾았다. 특히 헤이터는 ‘한판 다색법’ 혹은 ‘헤이터 기법’으로 알려진 한판에 다색을 사용할 수 있는 판화를 개발하여 판화계에 혁명을 가져왔다. 헤이터가 훌륭한 판화가라는 것을 안 이성자도 그에게서 판화를 배웠으나 쇠, 유리, 플라스틱과 같은 차갑고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싫어서 그만둔다. 이러한 금속판은 자신의 예술과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던 중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알게 된 작가 로돌프 비쉬가 목판화로 전시 포스터를 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목판화를 시도해 본 이성자는 금속판과 달리 나무가 주는 따뜻한 질감과 생명력에 빠져들었다.


여성과 대지 시대 1961-1968

가이아, 어머니 됨

파리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환희도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막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만큼 이성자는 당시 작업하고 있던 ‘여성과 대지 시대’의 그림에 더욱더 매달렸다.


이처럼 그의 붓질에는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그림에 더욱 몰두했다. 이때의 그림은 두꺼웠는데, 그는 “두껍게 칠한 것이 아니라, 땅을 깊이 가꾸었다”고 말한다. 이성자의 ‘대지’, 즉 ‘가이아’는 땅도 의미하지만 동시에 모든 피조물의 생의 근원인 모성성, 바로 ‘어머니 됨’을 의미한다.


이성자는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며 내가 아는 어머니를 그렸다. 그는 나는 …이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열어놓았듯이, 어머니의 정체성도 제한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아는 어머니를 재현하는데, 이때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와 실제 나의 어머니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는 내가 한정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싶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이 작품을 보며 각각 그들이 아는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 이성자는 그의 어머니를 좀 더 포괄적인 ‘대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돗자리 짜기, 모내기, 땅 가꾸기

도쿄의 UNAC 갤러리에서 열린 초대전 《이성자, 대극지의 길》(1986.11.8.-11.20)을 계기로 이성자 특집호로 발행된 UNAC Tokyo 10월호에 미당 서정주의 시 「이성자」가 개제되었다. 시인은 이 시를 쓰기 2년 전에 이성자를 한국에서 만났고, 일본 전시를 계기로 이성자의 열정을 기리며 지은 이 시를 헌정했다. 시인의 감성은 봄날 햇빛의 바이올린 G 선처럼 부드럽게 심금을 달래기도 하지만, 시인의 직관은 겨울 아침의 바이올린 E 선상의 노래처럼 예민하기도 하다. 이성자의 “지상”, 즉 ‘여성과 대지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 시인이 언급했듯이 “돗자리를 엮은 것도 같고, 모내기를 한 것도” 같다. 작품 자체에서의 느낌도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그러하다.


시인이 “모내기를 한 것”같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5월이나 6월 초에, 물이 찰랑찰랑 담긴 논에 모내기를 한다. 논을 가로질러 못줄이 쳐지고, 못줄 양쪽 끝에는 못줄을 옮기는 두 사람의 줄잡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못줄 뒤에 늘어서서 모를 심는다. 못줄이 있는 곳에 모를 다 심으면 줄잡이의 호령과 함께 줄이 다음 모심을 곳으로 옮겨진다. 모심는 사람들은 모두 모심는 속도나 리듬에 맞춰야 한다. 모심기는 풍성한 수확을 기리며 희망을 심는 행위다. 어린 모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한 농부의 마음이, 공교롭게도 이성자가 한국에 있는 그의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과 일치된다.


샤르팡티에 갤러리와 에콜 드 파리에 입성

1962년 ‘여성과 대지’를 주제로 한 이성자의 개인전이 생테즈 갤러리에서 열린다. 조르주 부다유가 전시를 주관하고 서문을 썼다. 20세기 후반, 미술계에서 갤러리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어떤 갤러리와 일하는지에 따라서 작가의 위상이 바뀌고 미래가 약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성자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질다스 파르델은 레이몽 나셍타가 운영하는 샤르팡티에 갤러리(1942-1965 파리, 1968- 파리 근교 뇌이에 개관)에 이성자를 소개한다. 이때 부다유의 미술평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샤르팡티에 갤러리는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에서 가까운 샹젤리제 지척에 있었는데, 현재는 그 자리에 크리스티 옥션이 있고, 그 옆에는 세계 최강의 가고시안 갤러리 파리 지점이 있다.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이성자 작품을 인정하여 초대하고, 그는 당당히 파리 화단에 들어간다.


1962년,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에콜 드 파리》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대받아 내가 아는 어머니를 출품한다. 환갑을 맞은 어머니를 위해 제작한 이 작품은 “파리의 하늘에 떠오른 직녀성”이라는 호평을 받고, 프랑스 문화성에서도 작품 한 점을 구입한다.


이성자는 이제부터 파리의 명성 있는 작가들도 부러워하는 공공미술품 요청을 받는다. 보베의 태피스트리 공장은 이성자의 작품의 원도판을 주문하여 태피스트리를 제작한다. 또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1962년과 64년에 참여한 《에콜 드 파리》를 계기로 1970, 72, 73, 74년, 스웨덴의 보라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에도 참여하게 된다.


첫 번째 귀향

1965년은 한불 문화협정이 체결되는 해였다. 이 해에 이성자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파리에서 한국으로 갈 때는 러시아 상공을 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북극과 알래스카를 거쳐야 했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설산의 아름다움과 오로라를 보며 받은 감동으로 훗날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을 한다. 그는 한시도 잊지 못하던 세 아들을 만나고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열린 첫 귀국전도 큰 성공을 거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기철과 이강세의 작업실과 가마를 빌려 도자기를 만든다. 또 우나가미 마사오미의 주선으로 도쿄 이치방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주최하는데 이때 전시 도록의 글을 도미나가 소이치, 레이몽 나셍타, 조르주 부다유가 쓴다.

귀국전에 출품된 오작교에는 앞으로의 그의 예술적인 고향이 될 그리고 아틀리에의 이름이 될 ‘은하수’가 암시된다. 오작교를 본 시인 조병화는 같은 제목의 시를 지어 이성자에게 헌정하였다.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만 놓이는” 이 다리를 이성자는 자식들, 어머니,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렸다. 그 다리가 1년이 아니라 15년 만에 마침내 연결되었다.



틈: 은하수를 찾아서

4장 중복 시대 1969-1971

중복의 발견

많은 사람들이 이성자에게 ‘대지 시대’에 좀 더 머무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여행을 준비한다. 잠든 자만 머문다고 생각한 그는 대지와 자연의 아늑함에서 깨어나 도시로 나아간다.


1969년 마침내 뉴욕을 방문한 그는 미국에서 팝아트가 위상을 떨치는 것을 직접 보며, 스승 고에츠와 동료 화가들이 이야기한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 나열된 고층 빌딩들도 충격이었다. 거대함 속에 반복되는 조밀함, 물질적 풍요로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 야경을 바라보며 받은 감동은 중복 시대의 작품에 묘사된다.


미국, 브라질 등을 여행하며 그는 새로운 공간 개념이 도래하고 있음을 느낀다. 수평적 전원생활에서 수직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성자의 대지 시대가 ‘수평적 반복’이라면, 중복 시대는 ‘수직적 반복’이다. 대지 시대의 작품이 주로 성터나 궁전의 자취만 남거나 단층으로 된 건축물이었다면, 중복 시대에서는 여러 층을 투시하듯 내려다보는 식이다.


중복 1과 오작교를 비교해 보면, 양쪽에 있는 곡선의 형태가 거의 비슷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복 시대’는 ‘대지 시대’의 모티브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두 시대의 작품들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작교나 ‘대지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 수많은 점이나 짧은 선분들이 모여서 모티브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일부, 폐허가 된 성 등에서 보이는 낭만적이고 따스한 색채의 느낌이다. 반면에 중복 1이나 ‘중복 시대’의 작품들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모티브가 구성되면서 속도감과 세련됨이 증폭된다.


대지를 닮은 표의문자

새로운 표의문자에서 이성자가 창안한 문자, 즉 그림 속의 글, 모티브, 기호 등은 얼핏 한자 같지만 이는 한자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다. 뷔토르는 이성자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겨진 기호들을 읽을 수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그것은 한국어지만, 이따금 우리 유럽인들에게는 꾸며내고 재구성된 글자가 오늘날의 풍경 뒤에서, 우리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와 뉘앙스를 지닌 고전적인 꿈을 내보여주는 것 같다.” 즉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읽을 수 없고 단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자는 한국어를 쓰면 한국 사람만, 불어를 쓰면 불어권 사람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지를 닮은 표의문자’를 발견하고자 했다.


도시 시대 1972-1974

음과 양, 은하수의 탄생

마침내 이성자는 철학적이며 개념적인 자신만의 모티브를 찾는 데 성공한다. 이 모티브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양어장에서 보면, 왼쪽 형태처럼 가운데가 들어간 ‘음’, 오른쪽 형태처럼 가운데가 볼록나온 ‘양’, 그리고 반복된 선으로 두 형태 사이를 흐르는 은하수가 있다. 여기서 은하수는 오작교처럼 음양 간의 관계성(긴장, 리듬)을 가리킨다.


그는 동양화의 가장 좋은 점이 모티브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군자와 같은 기본적인 모티브가 있고, 이를 응용해서 동양화가 그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모티브란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진(학문), 선(삶), 미(예술)의 총체적인 것이다. 사군자 역시 삶, 행위,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덕과 학식이 높은 군자는 이 모티브를 보면서, 그 정신을 삶 속에서 실행한다.


이성자에게 원은 삶의 실체이며, “우리의 삶처럼 원은 시작도 끝도, 긍정도 부정도 없는, 우리 미래의 도시가 추구해야 할 바로 그 모습”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원’이 반으로 나뉘면서 음양의 관계가 생성된다고 보았다. 좀 더 정확히는 음양이 생겨서 관계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생성되기에 음양이 만들어진다.



하늘 陽: 아버지의 정원으로

자연 시대 1977-1979

나뭇결과 우주

이성자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 자연과 기계에 대한 문제”는 물론, 회화와 관련된 스타일에서도 “한 화면 위에 기하학적인 동시에 구상적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는 이전에 ‘구상과 추상’, ‘기하학적 추상과 비기하학적 추상’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을 했었다. 로베르 들로네가 추상 가운데 구상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을 선보였다면, 이성자는 그 반대로, 구상 가운데 기하학적인 추상이 드러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구상적 현실인 배경의 숲은 에어 브러시로 표현하고, 그 위에 붓을 가지고 ‘도시 시대’처럼 기하학적 형체를 그린다.” 바로 ‘자연 시대’의 작품이 그러하며,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도 마찬가지다. 구상과 기하학적 추상의 화해가 한 화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랫동안 도시에 머무른 이성자는 이제 도시를 자연과 우주로 가지고 간다.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가져감으로써 도시와 자연의 조화가 이뤄진다. 초월 연작에 있던 실제 나무는 사라지고, 나무의 그림자 같았던 배경이 작품의 중심이 된다. 이 나무의 흔적들은 숲이 되고, 숲 속을 거닐다가 마침내 바다와 숲이 된다. 때로는 우리가 아직도 소우주의 나뭇결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이 시기에 오방색 곡선 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샘물의 신비와 주름

이성자는 음양 사이에 흐르는 은하수 혹은 관계(긴장)을 주로 선분으로 표시한다. 여기서의 긴장은 음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긴장으로부터 음양이 태어난다. 긴장의 가시화는 이미 ‘여성과 대지 시대’부터 나타난다. 보물차에는 네모와 원으로 된 모티브와 기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세로선들이 양쪽의 모티브들을 연관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산수화에서 산과 물 사이의 여백을 가시화한 것과 같다. 내가 아는 어머니에는 8개의 작은 동그라미가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분할되어 있다. 이 두 그룹은 긴 가로선으로 긴장(관계성)이 가시화되었다. 사실 이 관계성은 가로의 긴 선분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짧은 선분이나 점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이성자의 선의 반복(주름)은 다른 추상회화에서 많이 보이는 선의 반복과 구별된다. 한스 아르퉁이나 소니아 들로네의 작품에도 연속된 선이 있는데, 이는 두 실체 간에 발생하는 ‘관계성’을 상징하는 선이 아니라, 구성적으로 놓여 스스로가 ‘실체’가 되는 선이다. 반면에 이성자의 주름은 언제나 음과 양 사이에, 혹은 다른 어떤 오브제 사이에 놓여 그 사이의 관계성과 긴장을 상징한다. 여기서의 주름은 실체가 아니라 실체를 존재하게 한다. 이 촘촘한 주름들은 그의 마지막 작품까지 계속 접히고 펼쳐지는 것을 반복한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 1980-1994

색과 입체의 분리

이성자는 프랑스에서 “지구의 반원을 그려가며” 한국으로 향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북극과 알래스카를 지나면서 ‘극지의 아름다움’과 ‘극도의 순수함’을 발견한다. 이때 보이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 작품들이다.


1980년대부터 그는 에어 브러시를 사용하여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순결한 만년설이 뒤덮인 산 위로 날면서, 이성자는 “그 순간 나는 태어났다”고 말한다. 순수한 색이 자신을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순수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전체를 채도가 높은 붉은색으로, 혹은 푸른색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게끔 표현했다. 그리고 설산의 봉우리들은 이러한 색의 결정체인 듯 하얀색으로 솟아오르게 했다.


우주로 가기 위한 배, 은하수 출범

1935년 일본 유학 때 들었던 건축수업이 훗날 자신의 아틀리에를 구상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파리지만, 그림에 중요한 공간 개념은 아시아에서 배웠다. 한국에서는 문인화를 보면서 여백의 개념을 체험했다면, 일본 유학 시절에는 건축을 통한 3차원적 공간 개념을 익혔다. 당시 일본은 간토 대지진을 겪은 후 서구식 건축술을 도입, 확산하는 분위기였다. 자연적 환경과 경제적인 요건 등으로, 일본은 일찍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훌륭한 건축가들을 다수 배출했다. 다니엘 뷔렌이나 이브 클랭 등의 현대 작가들은 일본에서 인식한 새로운 공간 개념을 자신의 예술에 적용한다. 뷔렌은 “일본의 생활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인지 일본인들의 공간 활용은 놀라우며, 협소한 공간에도 작은 마당이나 정원을 만들어 ‘공’을 향유한다”고 했다.


이성자의 음양 사이로 ‘은하수’가 흐르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다. 문인화에서 산과 물 사이에 아무리 넓은 여백이 있더라도 산과 물이 서로 긴장감을 주고받지 않으면 이것은 여백이 아니라 공백이 된다. 그는 이러한 여백, 비가시적인 공간을 선분이나 다른 모티브를 통해 시각화한다.


1992년 그의 나이 74세에, 마침내 투레트 쉬르 루에 오랫동안 염원하던 아틀리에 ‘은하수’가 준공된다. 그리고 3년 정도 준비를 갖춘 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우주’를 항해하게 된다.


은하수 혹은 은하수의 많은 별 중의 하나를 상징하는 아틀리에는 커다란 하나의 기호를 구현했다. 역동적인 조화의 상징인 이 기호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의 심오한 철학, 종교, 예술의 원리, 그리고 우주의 이치를 상형화했다.


이성자의 모티브, 은하수가 흐르는 음과 양

완전한 원의 형태인 모티브(음과 양) 사이에 ‘틈’이 있다. ‘틈’은 실체에서 만들어진 라이프니츠적인 공간으로, 울림이 있고 관계성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틈’이라는 것은 두 상반된 것이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이로 인한 생성과 창조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카오스(틈, 구멍)’다. 이렇게 음과 양 사이에 있는 ‘틈’은 둘 사이의 관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이 ‘틈’이 ‘은하수’로 펼쳐지고 다시 카오스로 접힌다. 이성자 모티브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음과 양 사이에 은하수가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고정화된 음양이나 또는 이와 비슷한 다른 모티브들과 확실히 차별을 두는 그만의 특징이다.


우주 시대 1995-2008

멜랑콜리아: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와 ‘우주 시대’의 차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와 ‘우주 시대’, 두 시대가 하얀 산만 빼면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성자가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한 스타일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다. 우선 평면성과 입체성에 의한 차이는 이미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에서 상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깊이의 차이를 설명하겠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에는 그 배경이 모노톤이거나, 아니면 작품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와 같이 근경의 붉은 색, 중경의 핑크색, 원경의 푸른 색이 가로로 이어진다. 마치 몇 개의 산이 겹쳐진 듯한 느낌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1월 4의 경우는 별의 흐름과 눈발이 섞여서 가로로 흐르는 톤의 흐름이 다소 애매하지만, 이 역시 바탕에 하얗게 가로로 먼 산들이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우주 시대’에서는 산이 없을뿐더러, 배경도 지구가 아니다. 은하수에 있는 나의 오두막 8 월의 배경을 보면 보라색이 스며들면서 우주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진다. 따뜻한 보라색은 앞에, 푸른 색조는 뒤에, 그리고 진한 푸른색은 훨씬 뒤에 있는 느낌이다. 주변에 퍼져 있는 성운들은 한참 뒤에 있지만, 모티브 모양의 별들은 지구 가까이에 있다. 큰곰자리에 있는 나의 오두막 10월에서도 하얀 성운들의 흐름이 가로나 세로가 아닌 무작위이며, 우주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성자는 여러 번에 걸쳐서 대지에서 하늘로, 그리고 우주로 향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작품까지도 그는 수직적인 여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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