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생각한다

   
임명묵
ǻ
사이드웨이
   
17000
2021�� 05��



■ 책 소개


대한민국 ‘K 열풍’의 실상은 무엇인가

1994년에 태어난 작가 임명묵은 『K를 생각한다』에서 대한민국의 ‘K’라는 키워드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이면서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다섯 가지 측면을 해부한다. 그는 ‘90년대생’과 ‘K-방역’, 민족주의와 다문화, ‘386’ 논란과 입시 및 교육 시스템 등 끈끈하게 상호연관된 다섯 개의 챕터를 통해서 우리 안의 자부심과 스트레스, 욕망과 통제가 빚어낸 위계적인 질서, 계층 세습과 서열화의 피라미드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투쟁적 상향심, 겉으로 내세우는 도덕과 실제로 추구하는 세속적 욕망의 충돌, 강력한 국가에 대한 반발감과 역설적인 희구 등을 통찰력 있게 빚어낸다. 

■ 저자 임명묵
1994년생으로 조치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및 중동 지역을 전공하고 있다. 문명과 역사, 사회와 국제정세, 대중문화와 과학기술 등 다방면의 분야에 관심이 많아 《서울신문》, 《매일경제》, 《시사저널》, 《충청리뷰》, 《슬로우뉴스》 등의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덩샤오핑 시대에서 시진핑 시대로의 전환을 다룬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에이지21)이 있다.

■ 차례
서문
한국이라는 혼란 │ 지구적 변화로서 세계화와 정보화 │ 심화된 정보화: 과잉 연결과 전능한 시스템 │ 급류 속의 한국 │ K를 생각한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지금의 20대가 되었는가
90년대생들의 전장: 온라인과 콘텐츠 │ 세계화의 물결과 이중경제체제의 도래 │ 피라미드의 무게: 계층화

정보화의 격랑: 콘텐츠와 커뮤니티
군중 속에서 깊어지는 우울: SNS 시대 │ 콘텐츠를 향한 몰입, 그리고 팬덤 문화의 등장│ 온라인 커뮤니티, 혹은 투쟁 공동체

90년대생들의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
지위의 사다리, 감각의 천국 │ 90년대생은 개인주의적인가? │ 한탕주의: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다” │ ‘공정한 세대’? │ 90년대생은 사회적 안정과 성취감을 누릴 수 있을까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
제조업의 승리: 첨단장비에서 마스크까지 │ 총력전 동원 체제의 승리 │ 디지털 멍석말이: 사회적 압력을 통한 행동의 억제 │ 중국과 사스, 그리고 코로나19 │ ‘방역 국가’가 던지는 질문

국가의 위기, 그리고 부활: 1990-2020
무질서의 가혹함: 국가의 빈자리에서 │ 2010년대: 진퇴양난에 처한 국가 │ 부활한 주권, 그리고 동아시아 │ 바이러스는 사라지지만 국가는 남는다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영혼을 향한 속삭임: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하여
민족은 실재하는가? │ 부족주의: 내면으로부터의 열정 │ 최적 협력체로서의 민족국가 │ ‘정치적으로 올바른’ 부족주의: 세계도시의 코즈모폴리턴 엘리트들 │ 한국과 한국인의 민족주의 │ 휴전선 너머는 ‘우리’인가?: 분단과 민족의 재구성

아래로부터의 ‘한국적 다문화’
조치원 역전 김밥천국의 기억 │ 충청남도의 ‘국제도시’들 │ 이중의 세계화를 들여다보기 │ L의 이야기 │ Y의 이야기 │ 한국적 다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386의 형성
태동기: 1970년대 │ 광주라는 대전환점 │ 오직 안티테제로만 이루어진 이념

신전통주의 혁명론: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386
다시 소환된 과거, 종교의 부활 │ 순결한 민족과 사악한 앞잡이들: 이중경제체제 속의 혁명가들│ “농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다” │ ‘386주의’는 애초부터 틀렸다 │ 혁명을 꿈꾸던 청년에서 노멘클라투라로

선진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계층 세습과 이중사고
뉴라이트의 도전과 패배 │ 문재인 시대: 전면에 선 386과 그들의 혼미 │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이들 │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자: 386의 이중사고와 이중생활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출세라는 욕망, 개혁이라는 허상: 학생의 입장에서 본 입시
한국 교육과 그 ‘표리부동’ │ ‘진보’ 교육이 만들어낸 혼란 │ 입학사정관제로 도래된 무한 세습 시대 │ 매일매일이 곧 경쟁: 학생부와 내신 기반 입시 │ ‘제대로 작동하는’ 능력주의를 위하여

학벌 체제의 기원과 교육의 변화에 관한 제언
프로이센식 교육과 미국의 통합형 대학 │ 세계적 고도화와 대학의 위기 │ 학벌은 왜 생기는가? │ 학벌은 왜 문제인가? │ 마주할 수밖에 없는 대학 개편

감사의 말
참고문헌 및 더 읽을거리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누구인가

90년대생들의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

최근 30여 년간 진행된 세계적 변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세대에서 더 이상 모종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투신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90년대생만의 독특한 특징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할 수 있다. 조금 더 거시적 시야에서 본다면, 과거 선진국의 68세대가 보인 면모와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68세대는 냉전기 여러 국제정치적 이슈와 국내의 차별 문제에 대한 집단적 사회운동을 조직했었다는 점에서 분명 추구하는 가치가 있었다.


혹자는 국내에서 이미 X세대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 X세대는 탈권위라는 가치를 처음 의제화시켰고, 그런 가치를 상징하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주력 세대이기도 했다.


80년대생은 행태적으로 90년대생에 더 가까운 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80년대생도 광우병 시위와 같은 대규모 정치 운동에 참여했고, 반값등록금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소기의 성과를 내기도 하는 등 집단적 가치 추구라는 전통을 이어갔다. 그런 점에서 거의 언제나 온라인 공간 안에서만 서로를 물어뜯지, 그 바깥에서는 이렇다 할 소리를 내지 않는 90년대생은 앞 세대와 충분히 구분된다.


지위의 사다리, 감각의 천국

90년대생의 중요한 특징은 공적 가치뿐 아니라 사적인 가치도 덜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동안 한국인에게 추호의 의심도 받아본 적 없는 절대적 가치인 가족주의 가치였다. 몇몇 90년대생은 그들의 부모 세대인 60년대생에게서는 강하게 남아 있는 가족주의 덕택에 유·무형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기도 했는데, 정작 그들에게서는 가족주의 가치가 놀랍게도 빠르게 퇴조한 것이다.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결혼율과 출산율은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입증한다.


공적 영역에서 집단적 사회운동은 퇴조하고, 사적 영역에서 가족주의조차 쇠퇴하는 가운데 90년대생이 추구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기존 한국 사회에서 추구되어 온 가치와 대등한 또 다른 가치는 아니었다. 90년대생은 그런 것을 추구할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는 저성장, 고용불안, 계층화와 같은 경제적 문제도 있었지만, 인정 투쟁을 유도하는 SNS 환경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분노 표출 공간의 부상 같은 문화적인 변화도 주효했다.


90년대생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생각해보면, 가치 추구 대신에 그들이 어떤 영역에 인지적 자원을 할당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계층화가 상당히 진행된 90년대생은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영역에 몰두했다. 먼저, 사회경제적 상층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던 90년대생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해진 경쟁에 투신했다. 그들의 삶은 최소한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학업 경쟁과 그 뒤를 잇는 취업 경쟁, 그 뒤의 자산 경쟁의 연속으로 묘사되었다.


주류 사회의 경쟁에 참여할 여력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길로 향했다. 물론 이들도 각자의 사회 영역에서는 경쟁을 했고, 주로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보다는 SNS의 인정 경쟁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90년대생이 마주한 이중경제체제는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경쟁과 지위 상승, 획득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주류 경쟁에는 참여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그들이 대신 몰두한 것은 스마트폰만 켜면 쏟아지는 무수한 대리만족 수단, 즉 감각의 홍수였다. 비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당장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웹소설, 웹툰, 드라마, 인터넷 방송, 온라인 커뮤니티, 대중음악 등에서 그들은 정서적인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90년대생의 키워드인 ‘욜로’와 ‘소확행’은 지위 경쟁에서 피로 혹은 좌절감을 느끼고 감각적 수단에 몰두하는 그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성취감을 얻을 전망도 보이지 않는 경쟁에 몰두하기보다는 당장의 감각적 만족감을 누리기를 원하는 가운데, 더 과감하게 미래 가치를 대폭 할인하여 현재의 소비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면 욜로고, 그만한 대담함이 없어 최소한이나마 훗날을 생각하여 여유분을 남겨두는 소비를 하면 소확행인 것이다. 핵심은 경쟁에 몰두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이라는 것이었다.


90년대생은 개인주의적인가?

90년대생은 집단적 가치에 동조하는 경향이 적으며, 자신들의 개인적 만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조직 및 집단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하여 90년대생이 굉장히 ‘개인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모습도 그래서 많이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90년대생이 개인주의라는 어떤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까?


개인주의는 곧 모든 가치의 기준이 개인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이 내재화하고 추구하는 자신만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상호 배려하고 규율하는 상태를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개인주의의 적절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온라인 세계에서 많은 90년대생의 행태는 개인주의와 반대된다.


물론 과거에 개인주의를 내세웠던 모두가 이런 기준에 맞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이념이나 가치에 이상적 기준을 부여하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모두 결격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분명 90년대생이 부당한 집단주의를 거부하고 개인의 의사를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이끈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생이 집단주의 문화에 거부감을 표출하기 시작한 최근의 현상을, 개인주의 가치의 추구보다는 모든 종류의 책임과 간섭을 거부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치를 추구하기에는 격화된 지위 경쟁과 감각의 홍수로 인해 심리적으로 피로해진 이들이, 자신에게 심리적 피로만 더할 것 같은 간섭과 책임에 적극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간섭과 책임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에 대해서 고려하기보다는 일단 자신에게 추가되는 모든 압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개인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90년대생들 또한 자신이 타인에게 지위나 권력, 상황적인 위계를 통해 간섭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감정적 동기를 보편적인 개인주의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건 어려운 듯하다.


한탕주의: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다”

가치 대신에 90년대생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강력한 문화 코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한탕주의였다. 한탕주의가 성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화과 계층화를 겪은 한국의 경제 구조에 대한 90년대생의 인식에 있었다. 그들은 한낱 작은 노동소득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본소득 상승분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탕주의는 2017년에 있던 ‘코인 열풍’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암호화폐가 갑작스럽게 급등하면서 시작된 거대한 투기장은 특히 한국에서 엄청난 열기로 끓어올랐는데, 90년대생 다수는 이 무렵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었음에도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비를 모으거나 심하면 빚을 내서라도 ‘코인판’에 투신했고, 몇몇 소수는 돈을 땄을지 몰라도 거의 대다수는 변변찮은 수익에 그치거나 돈을 잃으면서 또다시 좌절했다.


암호화폐 대란은 규제가 도입된 이후 빠르게 식었지만 한탕주의는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90년대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음지에서는 2010년대에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불법 토토가 번성하면서 한탕주의에 빠진 이들을 더욱 나락으로 몰았다.


양지에서는 2018년 무렵부터 시작된 유튜브 열풍이 한탕주의를 반영했다. 유튜브 채널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착실하고 꾸준한 노력보다는, 당사자도 알지 못하는 어떤 계기로 인한 갑작스러운 성장, 즉 ‘떡상’이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한탕주의의 유행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90년대생은 사회적 안정과 성취감을 누릴 수 있을까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결국 성취감, 노력하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어떤 개혁을 통해서 이런 상태를 개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회 구성원 다수가 세계시장과 연결된 상층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적자본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그리하여 그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면서 지속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90년대생이 겪는 심리적 압박은 상당히 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의 만족을 찾은 이들은 미디어, 콘텐츠,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집착도 어느 정도 내려놓아 투쟁성도 낮아질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아마 가장 시급하게 바꿔야 할 것은 20대 중반에 이중경제체제의 어느 곳에 안착하느냐로 평생의 지위가 결정되는 지금의 경직된 교육과 고용 시스템일 것이다. 지대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미스매칭을 양산하는 공교육, 특히 대학 교육을 정말 현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유연한 제도로 대체하고, 경직된 지금의 상황에서 지대를 편취하는 기득권 자본과 기득권 노동의 독점을 풀어 더 유연한 사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그러면 경쟁에서 탈락하고 불안감에 고통받는 다수도 성취감을 주는 경로를 찾을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

2019년 말 중국의 우한에서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COVID-19는 2020년 벽두부터 중국 전역을 패닉으로 몰아갔으며, 곧이어 중국과 이어진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따라 세계를 금세 덮어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지구적 전염병으로 인해 각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방역 체제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가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유통되는 시대가 되었기에, 누구든지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자국의 역량과 타국의 역량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각국이 바이러스를 예견하고 움직인 게 아닌 이상에야 모든 방역 정책은 해당 사회가 갖고 있던 경로 의존성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각국의 엇갈린 방역 성과는 결국 그 사회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창이 되어준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특히 극명하게 나타났다. 한국은 중국과 인접하고 있었고 다양한 인적 교류가 많았던 터라, 중국 역외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중국인을 잠재적 감염원으로 간주하고 입국을 차단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여파를 생각하여 계속해서 국경을 개방할 것인가를 두고 설전이 있었다. 마침내 대구에서 신천지 교단을 중심으로 감염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중국인 입국 금지를 시행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있었고, 정부는 그렇게 위기에 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구발 집단감염의 위기 속에서 한국은 불사조처럼 살아서 돌아왔다. 감염자가 폭증하던 초반의 패닉이 지나가자, 한국은 방역을 전담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지휘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차분히 사태를 진정시켜 나갔다. 그 사이 바이러스는 대구를 보며 한국을 바이러스 위험국으로 지정한 국가들로 스멀스멀 건너가 그 나라들을 초토화했다. 그렇게 초기에 공격받은 한국이 방역에서 선전하는 동안 선진국이라 칭송하던 유럽 각국은 급증하는 감염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사실상 의료체제가 붕괴했고, 한국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시기 한국의 성공과 대비되는 유럽, 이후 미국의 실패는 한 세기 가까이 선진국에 대한 선망과 콤플렉스를 떨쳐내지 못하던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겪는 현상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한국에서도 한국의 이 성공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설명이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용어가 바로 한국 특색의 방역 정책을 일컫는 단어인 ‘K-방역’이었다. 대구 집단감염 당시 등장했던 ‘K-방역’이라는 개념은 순식간에 인지도를 쌓아 올려 각 정부 부처 회의와 브리핑부터 동네의 카페에 이르는 한국 사회 전역에서 울려 파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K-방역은 과거 우러러보았던 선진국조차 넘어선 한국의 방역 역량을 상징하는 단어로 다가왔고,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정부의 탁상행정과 국민 억압을 치장하는 말이자 조소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한국이 분명히 다른 사회와 구별되는 방식으로 방역을 수행해왔으며, 그 결과가 사회 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높다고 간주되어 오던 나라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좋았다는 것이다. 국제 비교는 분명히 K-방역을 긍정하는 많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대구 감염이 진정된 후 정부를 필두로 숱한 지식인까지도 K-방역을 추켜세우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K-방역을 추켜세우는 초점은 명확했다. 한국은 공격적 검사와 격리를 통해 감염원의 추가 전파를 막고, 정보를 빠르게 공개하여 국민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일선 방역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유도했다. 이 같은 정책은, 일군의 정부 관료 및 지식인들에겐 중국을 필두로 한 다른 국가들이 추진한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 정책과 대비되는, 자유주의적·개방적·민주적 방역 정책의 모범이었다. 이들에게 공동체를 위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는 다수 한국인들의 행동은 공공에 기여하고자 하는 민주적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이런 논의들이 종합되며, K-방역은 이제 한국이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제적 표준을 선도한다는 개념으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방역에서 한국이 거둔 성공이 정말 개방성과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의 승리일까? 혹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진짜 요소들을 잊은 채, 우리가 밖에 보이고 싶은 모습을 꾸며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허상이 만들어낸 위기: 2020년 연말 유행

한국이 방역에 성공한 여러 원인을 따져보았을 때, 적어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만큼은 방역과 별 관련이 없음을 손쉽게 추론할 수 있다.


첫째로 방역이 일종의 ‘전쟁’과 유사하다고 할 때, 한국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병력을 징발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에 이길 수 있었다. 한국의 제조업 역량은 가장 위험한 시기에도 필수적 의료 물자 수급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국가가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고도로 숙련된 의료 인력은 가장 위급한 순간에 적재적소로 배치되어 가혹한 정도의 노동을 수행해냈다. 이를 만들어낸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국의 자유주의자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토록 증오하고 평생을 싸워야만 했던 군사독재 시스템, 즉 총력전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병영국가였다.


둘째로 한국은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치이자 권리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에 무심했기에 ‘편리하게’ 방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보급된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국가는 국민의 사생활을 파악해 개인의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사회 말단까지 뻗어 나간 중앙집권적인 행적 시스템과, 생체 정보부터 교통 기록까지 모든 사생활 정보를 국가에 제공하는 데 저항감이 별로 없는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굳이 분류한다면, 국가의 동원력·행정력·정보력을 활용한 한국의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구 국가들보다는 중국에 더 가까웠다. 자유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든 그저 정밀한 행정력이 부족해서든 프라이버시와 같은 개인권을 더 잘 보장해준 서구 국가들은 바이러스 대유행을 겪어야만 했다. 말단 제조업 덕분에 마스크 수급 문제를 재빨리 해결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은 중국 쪽에 놓여야 마땅했다. 즉, 코로나 19와 ‘K-방역’은 자유, 개방, 투명성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사실 이는 한국의 방역보다 더 심한 수준에서 억압을 행사하고, 디지털 기술을 한국보다도 더 깊은 수준으로 활용하는 중국의 방역에서 더 잘 드러난다. 중국의 방역은 현재 인간이 이룩한 기술 수준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예시하는 것과도 같았다. K-방역은 서구보다는 중국의 방역과 더 유사한 면이 많았던 바, 중국을 통해서 우리는 K-방역이 갖는 의미, 나아가 정보시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출세라는 욕망, 개혁이라는 허상: 학생의 입장에서 본 입시

한국 교육과 그 ‘표리부동’

‘한국 사회는 교육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서 정시나 수시를 비롯한 모든 교육제도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강조하자면, 정시나 수시는 절대적으로 주어진 제도가 아니며, 그저 구성원들의 합의로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이 말은 입시 전형과 각종 제도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특히 교육 당사자들이 교육에서 원하는 어떤 가치나 목표를 구현하기 위하여 여러 협상과 논의를 거쳐 만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교육은 지식을 가르쳐 현대사회에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게 돕고, 학교생활을 통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과 관습을 익히게끔 해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각자 자아와 적성을 발견하여 그에 맞추어 더 상급 교육기관으로 가거나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한편으로 이 시스템은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며, 공정한 평가는 정의로운 보상의 기반이 되어주어야 한다. 계층이동, 공정성, 공동체성 등의 개념과 이어지는 교육의 이런 공적 가치는 교육에 대한 제도권 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교육을 경험해본 사람은 이런 제도권 논의는 말 그대로 ‘좋은 말의 향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교육 ‘개혁’과 정책들이 이런 가치에 입각해서 설계·공표되고 시행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교육이 표방하는 ‘겉의 가치’와 교육 당사자, 특히 학부모와 학생이라는 수요자가 원하는 ‘속의 요구’는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겉의 가치’와 다른 ‘속의 요구’는 무엇인가? 중위권에서 하위권을 구성하는 대다수 학생에게 학교는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곳이고, 수업은 들으라고 해서 듣는 것이다. 이들에게 교육이란 국가가 제공하는 의무이며 생애주기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정도이다. 오히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낮 동안 아이들을 잡아두어 주며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주는 등 학교의 핵심적 ‘부가 기능’이다.


상위권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학교를 바라보는 이런 인식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제도권이 표방하는 교육의 가치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상위권 학생 및 학부모의 교육 인식에는 중위권 및 하위권 학생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바로 교육을 ‘출세’를 위한 통로로 인식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다는 것이다.


‘진보’ 교육이 만들어낸 혼란

한국 사회의 고도화가 임계점을 넘으면서, 기존 교육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역기능들은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다. 첫째 역기능은 교육 현장의 과열된 경쟁이 가져오는 역기능이었다. 새벽같이 등교하여 모두가 교사의 엄격한 감독 아래에서 공부하고, 모든 학생의 석차가 일렬로 정렬되는 분위기는, 경쟁에 참여하는 청소년기 학생들의 심리에 막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가중되는 사교육비 부담 또한 그런 피로감에 크게 일조를 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감수하고도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이들은 어쨌든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어느 시점부터 이 모든 노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 시기부터 본격화된 각종 진보적 교육 개혁 정책은, 유권자들이 호소하기 시작한 한국 교육의 역기능에 대한 피로감을 진보 좌파 인사들이 자신들의 구상을 구체화할 계기로 활용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둘째 역기능은 교육을 통한 출세의 실질적 의미가 점차 바뀌고 있는 것에 있었다. 출세는 점점 교육을 통한 계층의 상향이동이 아니라 계층의 고착화, 세습을 의미하는 쪽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상류층과 중산층들이었다.


이런 역기능에 대한 반발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김대중에 의해 실질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뒤 더 본격화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런 불만을 수용하였고, 당시 교육부 장관을 맡은 이해찬이 강력한 교육개혁 정책의 추진을 맡게 된다. 이해찬표 교육개혁의 골자는 모의고사, 학력고사를 비롯한 각종 평가 시험, 아침 0교시 자습과 야간 자율학습과 같이 학생에게 학업 부담을 안겨주는 제도를 전면적으로 없애는 데 있었다.


이해찬의 정책 추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분명 당시 교육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 등이 갖고 있던 피로감이었다. 게다가 그들 또한 교육은 어떠해야 한다는 ‘겉의 가치’를 가치로서 공유하고 있다. 0교시부터 야자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극도의 통제 속에 앉아서 공부하고 비싼 사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불만이 정당하다고 언제나 해결책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은 정책 자체가 근거 없는 환상에 기반하여 수립되었다는 점, 실제 입시제도가 이미 정교하게 짜인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성급한 변경은 예측 불허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 ‘겉의 가치’가 추구하는 바와 사람들의 ‘속의 욕망’은 전혀 다르다는 점 때문에 처참히 실패했다.


‘제대로 작동하는’ 능력주의를 위하여

내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한국인들이 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속의 욕망’이 과연 부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교육에서 추구한다는 그 ‘겉의 가치’가 과연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관해서다. 한국 사회는 교육에서 추구하는 겉의 가치가 속의 요구에 의해 타락된다고 으레 비판해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한국이 현재 세계적 선진국으로 성장해온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며, 21세기에도 유지되는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 교육 전반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설명하지 못한다.


교육을 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삼고, 그 획득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과연 잘못일까? 그런데 그 심리가 한국인의 지독한 상향 이동 의식과 관련이 있어, 이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면 이걸 잘못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일지 먼저 질문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진짜 문제는 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이 사회적 지위의 세습 수단으로 변질되어 그 역동성이 가로막히는 데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교육 문제에는 새로운 해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은 해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부조리한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또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을 부조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서 늘 반복되는 뻔한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왜 교육이 문제가 되는지를 물어야 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과연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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